설교: 성령의 기다림 (김양재 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27:27-37
장소: 한강 (잠실새내역 부근)
인원: 찬, 수근, 원범, 무현 & 윤제 (5/8)

출처: www.wallpaperbat.com
성령의 기다림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내가 끊어내야할 것은 끊어내고 마지막에는 함께 살아나 안심하고 즐겨 먹는 것이다 (예배).또한 바울은 항상 의인이 아니라 죄인의 신분으로 있었기에 성령의 기다림을 행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내가 죄인임을 구속사를 통하여아는 것이 성령의 기다림이며, 또한 본질적으로 기다림의 목적은단순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것이다.
성령의 기다림은...
1.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것 입니다
27절. 광풍 유라굴로로 인하여 죽음의 날을 열 사흘째 보내던 중 밤 12시에 여전히 구원을 나의 손으로 이루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기에 광풍은 반드시 있어야 할 사건임을 인정하게 된다.
광풍으로 인하여 기다리는 시간이 성령의 기다림을 알게 된다. 그 기간동안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기에 나의 죄를 보게 된다. 나의 죄를 보지 못하면 인간은 얄팍하게 된다. 내가 죽어야 나의 죄가 보이고, 다른 영적 자녀를 낳게 될 수 있다.
적용질문. 내 인생에 이리저리 쫓겨다녔던 적은 언제 있나? 그 가운데 나의 죄가 보였나? 그 가운데서'내가 잘해야해'를 외치나?
2. 묻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28-29절. 800키로의 거리를 가게 하신다. 아드리아 바다는 이탈리아 남부의 바다, 즉 로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이다. 쫓겨다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목적지가 코 앞이였던 것이다.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코 앞이라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을 해서는 안된다. 사공들이 닿을 내려서 물 깊이를 반복적으로 가늠하는 모습을 본다. 이들이 간절히 밤이 새길 기다리면서 기도를 하는 모습도 묵상한다.
기다리의 끝이 온 것같은 그 때는 더더욱 긴장하고 조심해야한다.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재고 닻을 내리고 돌다리를 두드리듯 공동체에 묻고 측량을 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못참을 때가 많다. 특히, 눈 앞에 섬이 보인다고 해서 성급하게 나아가다가 암초에 닿아 배가 박살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루하루 큐티를 하며 물길을 재고 또 재는 습관을 키워가야한다. 암초를 피하는 방법이다. '내가 해야지'하는 게 아니라 파도에 밀리고 밀려서 하나님께 말씀으로 묻고가게 된다.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밝혀진다. 결론은 큐티하고 공동체에 가라는 것이다.
적용질문. 육지가 보인다고 묻지 않고 돌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돈인가요, 승진인가?
3. 끊고떼어가게 하신다
30-32절. 사공들은 프로이다. 고객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업이야한다. 그러나 닿을 4개나 내려 물 깊이를 가늠하였음에도, 암초에 걸려서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오다가 살 소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니 슬그머니 내린다. 직업윤리보다 더 높은 것이 구속사적인 가치관이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기 밖에 없다. 닿을 내리면 내렸지 닿을 내리는 척을 하는 것이다. 남을 위하여 하는 척 하지만 걸국은 나의 살 길을 위한 것이다. 구원을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엔 욕심과 돈이 나의 안에 있는 것이다. 야근을 하는 채 하면서 바람을 피고, 자녀를 위하는 채 하면서 이혼을 하는 것이고, 구원을 위하는 척하면서 불신교제를 하는 것이다. 아이에 부모는 비교불가항력이다. 마약중독자나 거지라도 아이에게 부모는 부모이다. 인간적으로 분리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바울이 이렇게 하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니, 날카로운 칼로 거룻배 밧줄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적용을 하는 모습을 본다. 이 광풍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나만 아는 은밀한 밧줄을 끊어내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오지 않는 밤 속에서도, 성령의 기다림 속에 아직도 내가 끊어내야할 밧줄이 있다는 것을 묵상하고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길 바란다.
때가 중요하다, 오늘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적용을 지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밧줄을 끊어내는 것). 예수님의 일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적용질문. 내가 지금떼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유혹, 동정, 연민, 사치, 이혼, 불신, 여자, 남자, 등
성령의 기다림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내가 끊어내야할 것은 끊어내고 마지막에는 함께 살아나 안심하고 즐겨 먹는 것이다.
4. 축사하고 떼어내여 드리는 예배가 축복이다
35-37절. 내가 끊는 적용으로 나 한 명이 아니라 모두 276명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을 하라고 광풍이 왔다. 바울이 성찬을 하니 다른 사람들이 따라한다. 눈물을 흘리며 먹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먹었다'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안심하고 먹지 않았더라면 필히 체하였을 것이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이러한 자세가 성령의 기다림이 아니라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적극적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며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의 기다림 끝에는 예배가 있어야 한다.
(김양재 목사님의 경우, 과부가 된 후로 자기에게 날마다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수 있던, 있는 비결에는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항상 의인이 아니라 죄인의 신분으로 있었기에 바울이 사도행전에 적힌 일들을 행할 수 있었다. 내가 죄인임을 구속사를 통하여 정말 아는 것. 나의 잘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것.
적용질문. 광풍이 불어 예배를 떠났나? 아니면 광풍을 통하여 예배에 더욱 나오게 되었나?
말씀 및 근황 나눔
윤제: 나의 죄패는 교만뿐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끊어내야할 밧줄은 무엇일까 묵상하다보니 나의 죄패는 염려 중독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의지로 하는 모든 것이 중독이라고 THINK양육 5주차 주일설교에서 김양재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그런 맥락에서 나의 중독은 염려인 것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하여 필요 이상으로 찾아보고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여러번 돌려서이상적인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닥쳐올 시련들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대비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어느 새 나무위키에서 새로운 지식을 탐하느라 정작 내가 직면한 시험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세부전문성을 어느 쪽으로 키워가야 여러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고지를 점할 지, 현재 특정 시장은 어떤 상황인지 관련 보고서 읽어보기, 등). 현재로선 하등에 쓸때 없는 고민인걸 사실은 스스로도 알기에 (결국 배우는 단계에서는 고용자가 고용인에게 일임한 업무를 신속하고 실수없이 수행할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염려중독을 유발하는 강박의 이면에는, 모든 상황을 나의 원대로 통제하고자 하는 나의 굳은 의지가 담겨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커리어에 있어서 단 하나의 위험 요소 (혹은 변수)라도 내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자꾸 대비를 하고자 지식을 탐하는 것이다. 웃긴 일이다. 오늘 말씀에서 김양재 목사님이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지금 그리고 현재 주어진 하루에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내가 예배를 못 드리며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덕(德)을 보여 나의 도리를 하더라도 결과는 하나님한테 달려있다는 것을 내가 진정 믿는다면, 나는 지금 결코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시는 시간들을 허투로 쓸 수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열심히 준비하는 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며 기쁨과 안심하는 마음으로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며 착실히 붙어가는 것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매 순간 말씀에 기대어 안심하여 함께 축사하고떼어내어 드리는 예배를 드리며 가길 소망한다, 기쁨으로.
수근: 내가 성령의 기다림 속에서 떼어내길 원하는 밧줄은 의심 중독이다. 한창 힘들었을 당시 타인의 사소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확대해석하여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나의 신변에 대한 압박을 느껴 상대의 저의를 의심하는 습관이 있었다. 길을 걷다가 내가 모르는 두명이 서로 이야기하며 지나가면, 나에 대하여 험담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가끔은 겪고 있는 일이다. 객관적인 공동체들의 권면 및 처방이 없었더라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말씀과 목장에 붙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큐티를 하는 것이 실제 정서적으로도 안정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이번 주에 업무적으로 있었던 사건을 통하여 나에게 이중적인 잣대가 있다는 사실을 묵상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타인에게는 완벽에 대한 강박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요할 때가 있으나, 정작 나 자신에게는 업무적으로 보다 관대할 때가 있음이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이 특별하게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기존 갑의 입장에서 을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곤 했는데 이번엔 입장이 바뀌면서 이번 주 을의 입장에서 내가 실수를 하게되었다. 나의 갑에게 혼나며 그가 나에게 쏳아냈던 말이 다 옳은 말들이였지만, 입장이 바뀌어 실수한 을의 입장이 직접 되어보니 아, 갑이 옳은 말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도 저랬었구나 돌아보게되었던 것 같다. 성령의 기다림 속에서, 죄수의 입장이 되게 허락하셔서 공감능력이 생기게 허락하시니 감사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원범: 수근이가 말해준 것에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보다 다리통증이 심하였던 때가 있었다. 당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 타인이 가까이 와 살짝 스치기만하고 지나가도 너무 아팠었기에 극도로 예민해진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상황들이 몇번 반복이 되다보니, 나도 타인들이 별 생각없이 행하였던 행동들에 대하여 분이 올라오면서 확대해석을 하곤 했던 순간들이 있다: 왜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이 사람은 여기와서 나한테 이러지?, 등등. 다리 통증이 발병하는 것이 나에겐 쫓기고 쫓기는 사건들이였는데,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사람들을 더욱 쉽게 미워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국엔 다리 통증이 완화되며 여유가 조금씩 생기며 치유가 되어가니 보니 점차 객관화가 되어지며 말씀이 조금이라도 들려가는 붙어가는 지금이지만, 예전 쫓기는 사건을 통하여 나의 죄가 바로 보였다기 보단 내가 잘해야 해를 외쳤던 셈이다.
지금 성령의 기다림 속에서 결국엔 이 병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보게 하시는 것이라고 해석이 조금은 되어간다. 전문가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통증이 발병하지 않았더라면 운동중독이 있는 내가 자유분방하게 살고 또 지금처럼 나 자신이 교회에 붙어서 갔으리라 자신을 할 수가 없다. 현재 성령의 기다림 속에서 내가 끊고 떼어놓아야 하는 것은 자전거를 탈 때에 나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앞서가는 사람들을 추월하거나 질주하는 나의 본능인 것 같다? (웃음).
무현: 현재 말씀이 아예 안들린다. 그리고 이번 주 원래 하던 주방일 (3개월차)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목장에 나오길 권면하셔서 나오게 되었다. 올해 전역하고 쉽지 않게 일을 구했기에 (그리고 원래 요리가 적성에 맞고 주방일 자체를 매우 좋아하기에) 인간적으로 붙어가려 하였으나 사장과의 잦은 마찰 (터무니 없는 요구, 비인격적인 가스라이팅, 등)들로 인하여 부모님과 상의 후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만 두게된 음식점에서 몇달 전 내가 일하는 것을 두고 고민을 할 당시 우리들교회를 다니는 어머니는 반대를 하셨었고, 나는 평소 목장에 잘 안나왔었기 때문에 사실 말씀을 기반으로 결정할 생이 없었으며, 공동체에 묻고 정해야 한다는 생각과 확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짧은 출근시간과 해당 음식점의 사장이 우리들교회 목자출신 (무현曰: '지금은 공동체에 안나오는 것 같다')이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려 일을 시작하였었다. 결과는 일을 그만 두기까지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였다.
목장의 권면:일단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오는 적용을 하여 매우 대단한 것 같다. 말씀을 붙들고 가는게 당장엔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공동체와 말씀이 말도 안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무현s, 칭찬한다.
오늘 말씀 중에 사공들이 닿을 내려서 물 깊이를 반복적으로 가늠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광풍을 피하여 고비를 넘기고 이제 곧 섬이 보인다고해서 성급하게 나아가다가 암초에 닿아 배가 박살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말씀이 잘 안들려서 설교중에 잠을 자게 되더라도, 설교시간에 나와서 졸고 목장에 나와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는 연습을 하다보면 다음 직장을 구할 때에 암초를 피하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말씀을 듣고가면 조금씩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큐티책에서 있는 간증만 하루에 한번씩 읽어보는 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을 위하여 이제부터라도 목장에 꾸준히 나와서 같이 큐티하는 습관을 키워가보도록 하자. 렛스기릿...!
찬이: 이번주 동생이랑 같이 '하하, 호호'하며 티비를 재미있게 보다가 다소 사소할 수 있는 일로 작은 논쟁이 있었다. 최근에 지인을 통하여 애완용 물고기를 받게되었는데, 바로 어항관리 문제였다. 물고기 밥을 주는 건 비교적 손이 안가는 일이기에 내가 맡을 수 있는 영역이였지만, 어항의 수질 관리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다가왔기에 동생에게 물고기들의 운명을 맡기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잠시 감정이 서로 격해지는 과정이 있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제어가 잘 안되기 때문에 표출하는 과정에서 어항을 깨부셔야했다. 안그래도 사소한 논쟁으로 조울증이 올라왔었는데, 잠시 씻으러 가며 자리를 피하였다. 그러곤 잠시 정신이 나갔었는지 내가 동생을 찾고 먼저 사과하는 적용을 하게되었다. 동생도 나의 사과를 잘 받아주어 차후 어항관리 방안에 대하여 잘 합의를 하게되는 사건이 잠시 있었다.
병이 인정이 안될 때는, 내가 그저 운이 안좋아서 병이 걸린 것이라 생각하고 구속사로 받아들이길 열렬히 거부하곤 했었다. 목장을 나오지 않기로 결심했었고, 닿을 내려놓을 수 없도록 배에서끊어버리고 공동체를 떠나고자 했었다. 그러다 나를 찾아온 광풍을 통하여 내 현실이 내 삶의 결론임이 조금씩은 인정이 되어가니 중독을 끊으려고하는 적용을 하며 나아가고 있다. 양육교사를 하니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어항사건을 목격하신 어머니가 물어보기도 하셨다.
반면 내가 여전히 끊어내고 떼어내야 할 밧줄은 게임과 음란물이다. 크고 작은 승리들이 있는 최근이지만 목장과 말씀에 붙어가는 것이 해결책임이 인정이 된다. 기도부탁한다 !!
목장 소식
- 다음 주 모두 앞자리에서청년부 간증하는 찬이를 응원하겠습니다 :)
- 이번 주는 부목자(윤제)의개인 버켓리스트 한강에서 라면먹기를성취하기 위하여 추위에도 불구하고 목원들이 함께하는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기도 제목
무현:
- 광풍이 임한 사건을 통하여 공동체와 말씀으로 해석이 될 수 있도록..!
- 취업을 준비하는과정에서 공동체에 묻고 분별하여 정할 수 있도록(욕심을 내려놓기)...!
수근:
- 업무적인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 물질적인 소비심리 분별하며 갈 수 있도록...!
찬:
- 정시취짐 & 정시복용을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 청년부 간증 다음주 렛스기릿-!!
원범:
- 다리저림을 위한약이크게 효과가 없는데,해석을 잘하고 갈 수 있도록..!
- 여자친구를 위하여 교회빼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적용을 잘 할 수 있도록...!
(생색이 올라와도 잘 순종하고 갈 수 있도록)
윤제:
- 나의 염려 중독을 끊어내고 시험을 온전히 준비할 수 있도록....!
- 미국에 가더라도, 말씀을 기반으로하여 각자자기 죄를 보고 가는 공동체에붙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