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6 성령의 광풍
사도행전 27:9-20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도 간신히 간신히 의지해야 될 구브로 해안도 있고, 피해야 될 바람도 있고, 그냥 지나쳐야 될 길리기아와 밤빌리아도 있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가만 인도함을 받으니 간신히 간신히 겨우 미항에 도착을 했어요. 로마로 사명 정해서 떠나기까지도 너무 힘들었는데 짠 하고 도착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마에 도착한 것이 아니고 미항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너무 진도가 안 나가니까 하나님은 광풍을 허락하셨어요. 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광풍은 성령의 광풍이라고 부릅니다. 성령의 광풍이 왜 오는지 말씀을 듣겠습니다.
1. 생명과 재물에 타격을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9-12절)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 바울을 태운 알렉산드리아 호는 무라에서 출항해 역풍을 맞으며 간신히 간신히 미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3대 절기,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이 나팔절을 지키면서, 마지막 절기죠. 모두가 모여 금식하면서 그 마지막 날을 대 속죄일로 지켰는데요. 그 금식의 절기를 지낸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때가 요즘으로 계산하면 10월 초순쯤 해당이 되는데요. 당시 지중해 항해는 5월에서 9월은 항해하기가 안전한 기간이었어요. 그리고 나머지 기간은 다 위험 기간으로 분류됐고 11월에서 2월은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항해하기가 위태하다는 단어를 썼는데요. 이 얘기는 모두가 아는 상식이라는 거예요. 거기다가 실제로 바울은 여러 번 항해의 경험과 바다에서 파선당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조언할 수 있는 실력이 충분히 있었어요. 무엇보다 상식과 경험으로 나라의 암묵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은 아주 상식이고 영적인 일이에요. 이거는 상식이라 이 말입니다.
9 ....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 이 권하여는 미완료 시제로 계속 권했다, 간절히 권했다 이제 이런 뜻이에요. 이 경고의 말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항상 성경은 인간론이라고 그랬어요. '어떻게 더 믿을 수가 있지?' 그게 아니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을 해 봐야죠. 당연하지 않겠어요? 바울은 죄수의 몸이고 선장과 산주는 알렉산드리아 호라는 아주 큰 범선을 책임지는, 날때부터 지중해를 손바닥 안에 가지고 있고, 손금 보듯 보고 있는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보기에도 존경스러워보아는 경력자이고 게다가 부자였겠죠. 그러면서 '내가 이 지중해 바닥 수 십년이야. 걸음마부터 지금 지중해 바닷가에서 배를 몰아서 눈 감고도 로마까지 가.' 와, 멋있어요. 이제 그 말만 듣고도 우리는 이 선장을 우러러보는 것이죠. 우리가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감기 걸렸을 때는 의사의 말을 들어야죠. 그러나 암에 걸리고 생명이 오늘, 내일 할 때는 생명의 주인이 의사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말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요. 저희 남편이 의사자나요. 생명,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거예요. 선장과 선주의 말 보다 이때는 바울의 말을 들어야 할 때인데, 그러면 언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어제 전도서 큐티 말씀인 7장 5절은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랬어요.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십자가를 통과한 자이겠고, 타이밍을 아는 자예요. 그런데 우리들의 대부분의 목장이 이렇게 지혜롭게 처방을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듣기 싫겠지만 이 책망이 우매한 찬양, 맨날 칭찬만 해주는, 우매한 자의 그 찬양, 노래보다 낫다고 하네요. 이렇게 설교자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나눔을 통해서 들려지는 말씀이 있을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가졌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 가르쳐 주시는데 이게 참 비밀이네요.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무시하면 부흥보다는 광풍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들으면서도 '이거는 아니지.'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많아요. 바울 말을 들으면서 '이건 아니지.' 왜 아직도 안 들릴까요? 아직 나에게 타격과 손해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를 않아요. 우리는 권력가나 재산가의 경험이 너무 위대해 보입니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는 것이 100%, 1000%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험과 그 사건에 대한 분별력은 너무나 다른 겁니다. 지식과 경험에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교양으로 생명을 구할 수가 없어요. 남편의 외도, 부인의 외도, 자식의 가출, 사업과 재산 문제 등에서 여러분은 어떤 전문가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까?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경험 많은 선장과 선주가 떠나자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백부장은 배 주인이 떠나자고 하는데 어떻게 바울 말을 듣겠습니까? 배가 파선이라도 한다면 누가 책임을 지겠습니까? 제가 다음, 카카오 쓰는데 어저께 불 났대요, 거기. 그런데 그러면 그 서버가 불 나면 어떻게 하나. 구글은 그래서 그 서버를 바다에다가 보관을 한대요. 그런데 돈이 많이 들어가자나요. 그러니까 이 파선하면 누가 책임지겠어요? 선주도 배와 곡물이 자기 돈 아니겠습니까? 또 선장도 월급이 아니고 그 당시는 동업 형태로 할당제로 이익을 나누기 때문에 이게 배가 파선, 곡물 운송을 못하면 남는 게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큰 배에 보따리 장사는 없었겠습니까? 로마에 AD 41년과 52년에 두 차례 큰 기근이 있었어요. 특히 이동이 어려운 이 늦가을과 겨울에 곡물을 수송하는 선주에게 엄청난 포상금을 주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중해의 법칙은 그게 아니자나요, 그 로마가 다 관할하는데. 로마는 지중해의 겨울 행을 금지 해놓고도 뒤로는 이렇게 법을 어기면서 엄청난 포상을 한 거예요. 왜냐하면 곡식이 지금, 곡물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바울은 여기서 이제 원칙을 지키면서 '생명이 중요하다.'고 '가지 말자.'고 했죠. 그러니까 바울의 경험은 똑같은 경험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경험인데, 그들의 경험은 돈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거기 욕심이 들어갔죠. 욕심이 들어가니까 원칙을 어기는 죽이는 경험이 되는 거예요. 살리는 경험, 죽이는 경험이 있어요. 항상 생명을 생각해야 되는데 이익을 생각하면 안 되죠. 우리들교회가 엄청 돈 아끼죠. 그런데 정말 이번에 청소년 큐페온 돈 다 지급했는데 생명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 때문에 그날 갑자기 취소를 했자나요. 생명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돈이 아까우면 절대로 취소 못하는 거죠. 중요할 때믄 생명이 먼저인 거자나요. 이해타산이 없는 사람이 바울 한 사람 밖에 없지만, 그 사람은 죄수의 상태인 거예요. 엄청난 이 배에서 감옥에 있다가 같이 끌려가는 죄수 얘기를 누가 믿겠어요. 여러분은 이 상황이면 바울 말을 듣겠어요? 다같이. 듣겠어요? 거봐요, 안 듣는다 그러자나요.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다 유라굴로 광풍에 가야돼요. 들을 사람 있었겠죠, 누가와 아리스다고 두 사람.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 슬펐어요. '아, 진실인데 아무도 안 듣는구나.' 안 들으면 또 그 상황을 같이 들으면서 갈 수밖에 없자나요. 우리 안 듣는다고 버려요? 아니죠. 잠시 뒤의 상황을 알 사람은 바울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이 10절에 내가 보니라고 말 문을 열었어요. 우리가 전도서를 보면서 묵상하면서 계속적으로 듣는 단어가 '내가 보니', 또 '해 아래서 행한 일을 내가 본 즉' 이렇게 계속 나오자나요.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에서 또 내가 보니의 이 데오로는 관찰자라는 뜻을 지녔는데, 우리가 이제 코람데오아시자나요.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관찰하여 지금 위험을 경고했다는 거죠. 그러면 바울의 말씀이 어찌하여 성경 말씀인가. 결국 생명과 구원을 향한 바울의 이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 다 기록된 성경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비밀인 거죠. 그래서 '그들에게 이 말을 권하여.' 이게 이제 미완료 과거형, 계속 권했다는 거예요. '큰 일 난다, 죽는다.' 한 마디로 이 얘기하자요. 생명과 재물에 타격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게 있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생명에 관한 것은 바울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전문가라는 사실이었어요. 선장과 선주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돈을 벌려고 무리해서 항해하려고 결정한 자신들의 돈을 향한 결정이 재물도 생명도 죽음의 위기로 다 몰아넣었다는 거죠. 그들의 판단 기준은 오직 돈이었어요.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판단 기준은 오직 돈이에요. 여기서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여러분도 오늘 전부 다 바울 말을 안 듣겠다 그랬자나요. 안 듣겠다고 한 거를 하나님이 들으셨어요. 그러니 바울의 이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믿음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내 속에 판단 기준인 이 돈과 생명에 타격을 입어야 되는 거예요. 돈과 생명에, 생명과 재물에 타격을 입지 않고는 바울의 말을 안 듣는 거예요. 제가 2016년에 암을 전하고 수술 직전에 설교한 본문이 성령 충만 사도행전 2장이었어요. 그때 본문 중에 19절이 또 내가 피와 불과 연기로다 그리고 이제 제가 항암을 받을 때 큐티 본문은 바로 오늘 레위기 대속죄일에 관한 본문이었죠. 오늘 9절에 금식하는 절기가 바로 대속죄일이었는데, 제가 그때 암이란 사건으로 생명에 타격을 입어야 했던 것이 그 암 사건은 저에게 평생, 특히 개척 후 19년 동안, 저는 평생에 안식년을 가진 적이 없어요. 어려서부터 중,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를 다 치렀어요. 그리고 결혼했고, 끝나자마자 또 이 사명의 길을 오고, 또 교회를 하자마자 이렇게 19년 동안 쉬지 않고 왔어요. 그래서 육체의 연습을 소홀히 해서 책임을 물으신 하나님의 메세지라고 깨달은 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신학도, 목회도 50 넘어 시작을 했고, 항상 제 생명을 가져가시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제가 경건주의자는 아닌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제 환경이 몰아갔죠. 왜냐하면 제가 과부이기 때문에 혼자서 안식년을 할 수가 없어요. 놀 수가 없어, 짝이 없어서. 남편이 있으면 혼자 어디를 가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남편은 호적에만 있어도 있어야 되는 거예요. 진짜 평생을 쳐 누워 있어도 있어야 되는 거예요. 보세요. 다 남편이 있으면 50에다가 더하기 1이자나요. 여자가 아무리 잘나도 50인 거예요. 그래서 이것조차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서 수 십년을 목회해도 나올 수가 없는 책들이 19년에 40권 이상이 나왔어요. 저는 날마다가 수능 시험 봐요. 매 주일 수능 시험을 봐요. 밤을 새우고 봐요. 또 개척하고 수요일 설교도 제가 했자나요. 그냥 설교하는 기계 같아. 그런데 사람을 살리려고 하니까 그냥 누구 꺼 보고 베끼고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간의 힘으로 사실 못하는 거죠.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 게다가 백부장 율리오의 인본적인 판단에도 갖다 붙일 이유가 있었어요. 백부장 혼자의 결정이 아니고 돈에 눈이 먼 선장과 선주의 욕심 때문도 아니라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이 미항을 떠나서 뵈닉스에 가자고 했다는 거예요. 왜죠? 미항이 겨울을 지내기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에요. 미항의 규모가 너무 작았고,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미항은 수세식 화장실이 없지 않았을까요? 답답했고, 또 무미건조해서 술집, 노래방이 없고, 특별히 골프장이 없었을 것 같아요. 이왕이면 골프장이 있는 곳에 가서 지내자고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돈이 있는 곳에는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다 따라다니니까. 불편을 못 참아요. 사람이 100% 죄인이라 배에 탄 모두 아무쪼록 뵈닉스로 가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게 아니예요. 그 이유가 너무 타당한 것이 미항에서 서쪽으로 65km 정도 떨어진 곳에 뵈닉스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 거기가 너무 좋은데 그럼 거기 가서 겨울을 나야지. 북서쪽이 육지고 남동쪽만 바다로 열려있기 때문에 북풍을 대비해사 배를 정박하기가 수월했다고요. 여기서 천안까지가 80km인데 65km밖에 안되는 거리예요, 거기가. 길어야 하루고 순풍을 받으면 반나절이라도 도착할 짧은 거리였기 때문에 하루 고생해서 석 달 이상 편하게 지내는 것이 이게 얼마나 이득이에요, 그렇죠? 그래서 다 동의한 거예요. 그야말로 뵈닉스는 완벽해요, 지금. 선장과 선주의 말이 지금 완벽합니다. 바울은 바보같아요, 지금. 그야말로 완벽하죠. 제가 학창 시절에 정말 놀아보지 못했어요. 그것이 참 늘 좀 안타까움으로 남긴 해요. 놀아야 하는데 돈 버는 것이 너무 고달프니까 제가 예고 선생보다는 장로님 댁에 정말 호강할 것 같아서 시집 갔죠. 그리고 특별히 우리집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시댁에는 있더라고요. 뵈닉스자나요. 그래서 거꾸로 저는 '이 결혼을 안 한다.'고 했지만 우리 부모님이 하라고 강권하셔서 갔는데 지금 보니까 선장과 선주 같으십니다. 사실 바른 소리 해주는 사람도 없고 반대할 명분도 없죠, 장로님 댁이자나요. 누가 봐도 가고 싶은 뵈닉스 항이 되는 거죠. 이게 다수결이에요. 결국 못 이기는 척하고 내가 이렇게 결혼을 한 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끝에 돈이 있는 거죠. 그래도 저만 반대를 했는데 부모님은 제가 교만해서 그런다고 나무라셨어요. 지나고보니까 그래도 안 하려고 해봤던 제가 바울인가요? 그러나 결국은 부모님이 맞으셨기 때문에 부모님이 바울인가요? 생각해보세요. 어쨋든 선을 이루게 하셨어요. 생각은 자유예요. 적용해보세요.
[적용] 어떤 생명과 돈에 타격을 입었나요? 이 타격을 목장에서 나누며 내가 보니의 말을 믿음으로 듣고 있나요? 아니면 온갖 합리화를 시키며 불편한 것 도저히 못 참아서 듣기도 싫고 회복하려고 또 다른 항구로 가려고 애쓰고 있나요?
2. 자기 뜻을 이룬 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13-17절)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 그래서 결국 이제 미항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마침 남풍이 불어요. 막 바울이 안 된다고 말렸는데 순하게 남풍까지 불어줍니다. 그러니 그들이 자기 뜻이 옳은 줄 알고 행선을 하게 됐어요.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서 늘어뜨려 두었던 이 닻마저 감아 올리고, 이게 보험인데 말이죠. 순풍에 돛을 활짝 펴고 전진했어요. '내가 맞아.' Beginners Luck이라는 말이 있죠. 처음 해봤는데 행운이 왔어요. 주식에 처음 투자했는데 돈을 벌고, 고스톱을 했는데 땄고, 부동산도 처음 사봤는데 값이 올랐어요. 목장에서 아무리 권하고 말하고 반대해도 뭔가 일이 되니까 공동체와 목장에 깊이 뿌리내렸던 닻을 딱 감아 올리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런 고난의 바람을 겪으며 이런 지내기 힘든 미항 목장에 있어야 하지? 내가 주식하니 오르자나, 내가 투자하니 벌리자나, 내가 이혼해도 사업이 잘 되자나. 저 힘든 남편, 저 아내 버리고 도장 찍으니까 술술 남풍이 불어오네.'하며 닻을 감아 올리고 그레데 해변을 끼고 그레데 섬을 의지해서 지금 항해를 시작합니다. 항상 우리는 '이 길이 아닐 수도 있다. 끝까지 신중하자. 매 순간 공동체에 묻고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자.' 이렇게 이런 믿음으로 멈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닻까지 감아 올리고 '이제 안심이다. Full 악셀로 달려보자. 고지가 바로 앞에 있다.' 이렇게 외치면서 닻을 감아 버립니다. 묻고자 하는 생각 마저도 도로 감아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혼을 하고, 주식을 하고, 여자, 남자가 생기면 다들 미항 목장을 무시하면서 떠날 거가 그냥 입에 붙었어요. 그러면서 지금 실패하지 않을 것처럼 닻을 지금 감아 올리고 지금 떠나는 거자나요, 그렇죠? 이 결혼이, 이 사업이 너무 위대해 보이는데 돈이 보이니까 절대 포기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한 번 이 사건에서 돈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세요. 길이 보일 거예요. 돈을 내려놔 보세요. 자기 정욕을 내려놔 보세요.
그런데 이렇게 신나게 항진하던 알렉산드리아 호에게 어떤 일이 생깁니까? 십리도 못 가 14절에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 다 이루어진 것처럼 신나게 전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얘기치 못한 북풍이, 그것도 내륙에서 불어오는 돌풍이 광풍이 되어서 배에 불어 닥칩니다. 아드라뭇데노 배 타고 항해할 때 역풍은 외부에서 온 자연적인 바람이었죠. 그래서 이 바람은, 그래도 있자나요 그 외부에서 온 핍박은 간신히 간신히 그래도 미항까지 이를 수 있는 바람이었어요. 그런데 유라굴로는 이 바람을 막아주리라 의지하고 해변을 끼고 항해를 했는데 바로 그레데섬 가운데로부터, 그 이다 산맥, 미친 바람, 광풍이 시작된 것이에요. 반나절이면 갈 곳을 파도가 너무 세가지고 배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땅에 떨어지고, 솟구쳤다가 땅에 떨어지는데 이 풍랑을 아무도 다스릴 수가 없어요. 정말 여기 말씀대로 얼마 안 되어 광풍이 왔어요. 여러분 광풍의 사전적 의미는 봄볕이 따사로운 맑은 날씨에 부는 바람이래요. 그러니까 내가 광풍이 오리라고 아무도 생각 못해. 전혀 생각지 못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풍랑이 일어난 거죠. 남편은 저랑 만나자마자 무의촌에 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 기사가 딸린 차하고 데이트한 것이 정말 얼마 안 되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그 날부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유라굴로 광풍이 밖에서도 아니고 이 세상의 바람을 막아주리라 의지했던 따사로운 맑은 날씨에 시댁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 말씀 내 삶으로 적용해 보면 굉장히 쉽게 기억이 나요, 본문이.
그레데는, 그럼 이제 그레데 시댁을 생각해 봐야 하자나요. 그 의지했던 그레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제우스 신의 고향이에요. 그런데 제우스는 늘 거짓말하죠. 그리고 늘 거짓말로 여자에게 접근을 해요. 에우로페라는 여자에게 반해가지고, 자기가 또 아내가 있으니까, 이제 소로 변해서 접근을 합니다. 제우스가 변한 이 아름다운 소를 타고 에우로페가 도착한 곳이 바로 이 그레데 섬, 크레타 섬이었고요. 그녀가 정착한 이 크레타 섬에서 미노아 문명이 꽃을 피워 이 미노아 문명이 유럽 문명의 시초가 되는 거예요. 유럽을 콩글리쉬로 발음 그대로 읽으면 에우로페인 것이죠. 이해되시죠? 성경에서는 짧게 얘기하면 다윗과 유다를 끝까지 괴롭힌 블레셋 종족이 바로 이 그레데 출신이에요. 디도서 1장 12절에는 .... 그레데 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헬라어로 그레데인처럼 말하다는 뜻을 가진 크레티조는 거짓말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지경이에요. 그러니까 그레데는 모든 문명과 역사, 인류의 시초라 불리는 그리스 신화가 탄생된 너무 신비한 곳이에요. 내가 가진 지식, 경험, 학문, 세상의 시초, 내가 탁월하다고 의지하는 이곳, 이곳 그레데 한 가운데서 유라굴로 광풍이 크게 일어났단 말이죠. 그 뿌리가 뭐예요? 거짓말하지 않으면 여자를 만날 수가 없자나요, 그렇죠? 거짓말이에요. 선장과 선주의 욕심과 거짓말로 지금 광풍이 왔어요. 이게 사람 망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전문가의 조언에 힘입어서 주식을 하고, 부동산을 또 사재끼고, 그래서 아이 결혼 자금까지 손을 대고, 전세금까지 손을 대는. 전문가의 조언을 힘입어서. 여러분들 정말 전문가 위에 바울이 있어요. 우리들교회에 유명한 광풍 목장이 있어요. 그 광풍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보기에 멋지고 이쁜 외모에, 병원장에, 그러니까 여자를 네 명이나 만나려면 거짓말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러니까 문명의 가장 탁월한 위치에 있어 보이는 것들이 거기 다 있어요. 그 광풍의 뿌리는 욕심과 거짓이죠. 돈이 있으면 그 다음에 이제 불편한 건 못 참는 거죠, 다 노래방이 있어야 되고. 이것을 적나라하게 회개하는 이 광풍 목장이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우리가 다시 또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전히 세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렇게 그레데 섬을 의지해서 항해를 시작하니까 광풍이 일어났어요. 여러분들이 공동체에 내려놓았던 이 닻을 그렇게 감아 올리면 안돼요. 그 보험이에요. 잘 붙어 있어야 해요. 광풍이 일어나기 전에 그 말씀의 처방을 잘 들으셔야 돼요. 전문가의 처방은 연필심 하나 세우는 거 밖에 안되는 거예요. 우리는 부활의 그 세계로 둥둥 떠다녀야 되는데 이렇게 감당 못할 유라굴로가 일어날 때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솟구쳤다 내려오고, 솟구쳤다 내려오는데 뭘 할 수가 있어요.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 그러니까 이제 배가 그레데섬 육지로부터 바다로 점점 밀려나요. 돛을 조절할 수가 없어요. 조절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광풍이라서 도저히 배 방향을 조정할 수가 없습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멈추려 해도 이미 닻을 걷어 올렸기 때문에 바로 멈출 수가 없고 이미 속도가 닻을 내렸다가는 멈췄다가는 배가 뒤집히게 생겼습니다. 선장, 선주, 선원, 백부장도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배가 가는 대로 그냥 둘 뿐이에요. 여러분 이렇게 내가 목장을 떠나서 이 닻을 딱 감아 올리고 남풍이 불어서 그렇게 딱 가면 속도가 불어서 여자 광풍, 남자 광풍, 도박 광풍, 마약 광풍에 속도가 붙으면 말릴 자가 없어요. 이런 집이 너무 많을 거예요. 우리가 썩을 속이 없네요. 그런 집이 많아요, 지금 말 안하고 있어도. 우리나라가 역대로 제일 잘 사는데 왜 이런 집이 없겠어요. 그 돈가지고 다 이런 거 하고 있는 거죠.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 가우다는 그레데섬 남쪽 37km 지점의 작은 섬이에요. 사실 아주 가까운 섬이자나요, 37km면. 여기서 한 의정부 정도 가는 거리도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솟구쳤다 떨어지고, 솟구쳤다 떨어지는, 그 큰 배가 말이에요. 가까운 거리를 이렇게 하느라고 그냥 이 섬에서 바람을 피해, 보통 거루가 구명정이거든요. 그 배 뒤어 묶어서 끌고 다녀요. 그런데 솟구칠 때 그 구명정 따라 올라가면 당연히 깨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 생명줄이야. 이 구명정이라도 우리가 배에다 올려야 돼. 그래서 그걸 겨우 거루를 잡았어요. 이제 이해가 되시죠?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 이제 지도를 좀 보면, 그렇게 지금, 그레데가 보입니까? 그레데 가는 길은 저쪽 서쪽 오마자나요. 가야지 로마 그런데 이놈의 바람이 북아프리카쪽 바다로 지금 이제 계속 표류를 해가지고 거기는 모래톱이 있기 때문에 걸리면 그냥 다 깨지는 거예요, 배가. 제일 무서운 게 지금 스르디스인데, 글쎄 폭풍우가 와도 하나님 뜻이면 서쪽으로 갈 건데 이 풍랑이 와서 완전히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지금 망망대해입니다, 지금 유라굴로 광풍.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속도를 줄이려고 이제 연장을 내렸자나요. 쫓겨갑니다. 누구도 이런 실패와 불행인 속수무책의 사건을 당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 뜻과 달리 쫓겨가는 삶을 우리가 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일이 왔어요.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생각해보면 목장에 내렸던 닻을 딱 감아 올리고 떠났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삶의 결론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대로 지금 내려오는 거예요. 저도 교회를 다녔지만 닻을 내리고 목장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교회 다니는 거 하고, 목장 들어가는 거 하고 너무 다릅니다. 제가 지체가 없었자나요. 도와줄 사람이 없어, 바울이 없어, 저에겐 바울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성도에게는 이 쫓겨감의 사건이 멸망의 사건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영원히 멸망할 뿐이기 때문에 멸망하지 말라고, 이제 돌이켜 주의 뜻을 따르라고, 욕심과 교만의 뜻을 무너뜨리시는 사건인 거예요. 따라서 성도에게는 쫓겨감의 사건이, 이 광풍이 성령의 광풍이 되게 하시는 거예요. 내 뜻을 쫓아가던 죄악에서 쫓겨가게 하시는 구원으로 바뀌는 것이 성령의 광풍입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의지한 그 그레데가 거짓말을 하고 배신을 했는데 무엇을 의지합니까? 우리 남편은 나에게 '내 눈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해준다.'고 했고, '1년에 한 번씩 독주회를 열어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왜 약속 안 지키냐?'그랬더니 '그걸 믿었냐?' 이렇게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레데 사람들은 이런 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인생이 100% 죄인이니까, 하나님이 생명을 치시면 몸이 아프니까 바람 피는 거 생각 하나도 안 나요. 죽을 거 같으니까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알렉산드리아의 그 아름다움이 가득 찬 그 곡식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저 지금 구명정 하나 챙기고 그냥 쫓겨 다니는 거예요, 그래도 그거 하나 생명줄 잡고. 이는 아직도 믿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바울의 말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그레데를 의지하기 때문에 유라굴로 광풍을 축복으로 지금 주시는 거예요. 여전히 그레데를 의지하고 있어요. 저도 그런 세월이 필요했죠, 저에게. 적용질문 드려요.
[적용] 내가 끝까지 의지하고 있는 그레데는 무엇입니까? 정신없이 쫓겨다닌 내 생애 최악의 유라굴로 광풍시절은 언제입니까? 다시는 안 나가리라 감아올린 닻 목장에 다시 나갈 생각은 없으신가요?
여러분, 전문가, 우리가 목장 우습게 보는데요. 다 찌질한 사람 모였는데 거기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나요.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 있는데 바울 한 사람만 제대로 말을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안 들리죠. 가만히 보면 상식을 지키는 사람 바울밖에 없어요. 전문가들이 상식을 안 지켜요. 진짜 상식이라는 게 영적일 때가 많이 있어요.
3. 내 손으로 버리게 하십니다. (18-20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 여기 심히 애썼다는 것은 뭔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엄청나게 심한 그 풍랑에 휩쓸려서 고생했다는 거예요. 바다의 풍랑에 그냥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아주 쫓겨감의 극치에 해당하는 고통을 지금 당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래도 선원들은 항복하지 않아요. 왜 여전히 가만히 있어요? 내가 쥐고 있는 이게 너무 좋아서 버리지 못하고 애를 쓰고 있어요. 뭐죠? 부적절한 관계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있어, 쾌락도 있어, 경제적인 도움도 있어요. 심히 괴로우면서도 버리지 못해요. 그 끝에는 돈이 있어요. 돈의 손해를 보기에 믿음인 것 같으면서도 나도 속고, 정말 너도 속고. 그러니까 이 유라굴로가 오기 전에는 내 믿음을 생각조차 안 해보고 있어요. 저도 교회 반주를 10년 하면서 '나는 축복받을 거야.' 세상적으로 애를 썼죠, 주를 위해서 애를 쓴 게 아니고. 그러니까 다들 신앙적으로 철야 기도도 하고 다 애를 쓰지만 정작 다 버리지 못해, 아무것도 버리지 못해. 내가 의지하고 있는 그것, 손해를 보더라도 버려야 합니다. 지워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못한 모든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 아프다고 결혼하고서 배우자를 버리면 안돼요. 유라굴로 광풍이 오는 거예요. 어떻게 아프다고 버릴 수가 있어요. 이것이 이제 다 버리는 거, 아픈 배우자를 버리는 게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부적절한 관계, 옳지 못한 거를 버리는 거, 이것이 성령의 광풍의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애를 쓰다가, 쓰다가 육이 무너져야 영이 살아나는데, 드디어 안되니까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버립니다. 그리고 19절에 사흘째가 된 날, 이제 계속 솟구치고 내려가고, 솟구치고 내려가니까 배의 기구들도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버리는 거를 성경이 또 뭐라고 그러죠?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예요. 그들의 손으로 내 손과 발이 가서 죄를 끊어내고, 이것이 성령의 광풍이 되는데 누가 남이 버려주지 않아요. 부모 손도, 남편 손도 아니고 내 손으로, 그들의 손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다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의지하고 있는 거 1%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어요. 지금 해도 별도 다 보이지 않는,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해, 달, 별이 다 떨어져야지 그때 비로소 우리 속에 내가 보니라고 권한 바울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목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이 지혜의 소리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때 바로 '광풍이 있어야 할 광풍이었구나.' 해석이 되면서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이때 당시는 나침반이 없었어요. 낮에는 해를 바라보고, 밤에는 별을 보면서 했는데, 칠흑같이 어두운데 지금 해와 별이 다 없다고요. 지금 어디로 가는지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져야 그 광풍이 성령의 광풍이 되는 거예요. 이때 별이라도 조금 또 보이면 또 그 별 보며 항해를 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세상의 모든 빛을 다 빼앗아서 가장 어두울 때, 바로 그때 태양이 떠오르는 거예요. 지금 내게 닥친 광풍은 성령이 임하기 위한 축복인 거예요. 어떤 환경에서도 성령이 임하기만 하면 광풍도 최고의 축복이 되는 거예요. 이 세상 어떤 한 톨의 땅도 성령이 임하면 그곳 자체가 축복의 곳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거 나쁜 거 없어요. 성령이 임하면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없어요. 성령의 광풍은 가장 좋은 광풍이에요. 부부 간의 광풍에도 성령이 임하기만 하면 가장 좋은 부부 생활로 바뀌어요. 성령의 광풍이 정말, 미풍은 광풍만큼 영향이 없자나요. 광풍을 거친 사람들이 다 남을 살리자나요. 목장의 광풍에도 성령이 임하기만 하면 최고의 목장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역사적으로 이 유라굴로 광풍은 가장 최고의 광풍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2천년 동안 주께로 인도하는 광풍이 된 줄 믿습니다. 저의 결혼의 광풍도 성령이 임하시니까, 성령이 임하시니까 최고의 광풍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있지 않자나요. 그런데 '나는 도저히 못 살겠다. 갈아치자.'하면, 여러분이 택자라면 이제 유라굴로 광풍이 딱 기다리고 있는 줄 아셔야 합니다. 예외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보다 선장, 선주, 그레데를 더 믿은 것 때문에 하나님은 광풍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어요. 별 인생이 없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 바울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아야 전도가 될 거 아니겠습니까? 276명 다 안 믿는데 바울의 말이,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때 전도가 됩니까? 큐티 사역을 위해서도 제가 지나고 보면 제 입에서 나간 말을 이루어 주신 것이 너무 많아요. 나는 나도 모르게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보면 그대로, 말한 대로 됐어요. 그런데 바울의 말이 이게 땅에 떨어지는 말입니까? 여러분들은 목장에서 하는 말을 그렇게 허투루 들으시면 안 돼요.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런 성령이 임하시는, 저는 우리들교회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형편없는, 여러분들 보기에 찌질한 사람이 모여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게 있다고요. 그럼 여러분들이 '목자가 이상하고 다 이상한데 뭐가 그래요.' 이러실 수 있지만 이상하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거예요. 이상한 사람이 우리들교회 와 있자나요. 그 사람도 지금 광풍 가운데 있자나요. 그러니까 닻을 그렇게 보험처럼 들고 있어야 돼요. 맨날 옳고 그름으로 목장을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이상한 사람이 와 있는 목장에 내가 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은 나를 쓰시는 줄 믿습니다. 목장은 옳고 그른 데가 아니예요. 좋고 나쁜 게 아니예요. 목장은 그냥 위대한 거예요. 할렐루야. 적용해보세요.
[적용] 아직도 심히 애쓰고 있나요?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맺어요. 성령의 광풍은 생명과 재물에 타격을 주셔야 하기 때문에, 내가 너무 내 생명, 내 재물인 줄 알고 있으니까 타격을 주셔야 하기 때문이래요. 그리고 이제 남풍이 불어서 자기 뜻을 이룬 줄 착각하기 때문이 광풍이 와야 돼요. 결국은 내 손으로 내어 버리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광풍의 목적이라고 하십니다.
목장 모임
미혜, 연수, 예선, 민희
기도제목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에서 잘 매어 있기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고 마침내 정확히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도록
환청 증세가 있다고 해서 포기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이 또한 때가 되면 온전케 회복시켜 주시기를 믿음으로 바랍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에 이루실 줄 믿고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을 바랍니다. 온전케 회복시켜 주세요.
여동생이 일본유학 가는데 하나님의 뜻하신 바 있기를 바랍니다.
남동생 지방직 공무원 발령이 속히 나고, 엄마 피부병 관리 잘 하고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아빠 직장문제도 함께 관여해주세요.
목장모임 할 때까지 목장원들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미혜
모든 시기와 기회는 하나님의 권한 아래에 있는데 편안함을 우상으로 삼는 저는 시기와 기회의 결과물에 두려워하여 결국 제 가치판단으로 모든 걸 결정합니다. 저의 교만함을 용서해 주시기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기와 기회를 잘 분별하며 믿음으로 겸손히 순종할 수 있기를
회사에서 제 역할 감당하며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우울해하고 무기력한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아빠 구원해주시기를
목장식구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루하루 살아낼 수 있기를
예선
날마다 올라오는 나의 열심으로 애쓰는 것들을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잘 보고 가도록
옳고 그름이 아니고, 좋고 나쁜 게 아닌 위대한 닻 목장에 잘 붙어가도록
건강 잘 챙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