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주일설교
김양재 목사님
성령의 도우심
사도행전 26:16-23
우린 다들 도움받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최고의 위로는 같은 고난을 겪어본 자의 위로다. 고난 속에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성령의 도우심이다. 성령의 도우심에 대해 묵상해보자.
- 종과 증인으로 그들에게 갈 때 도우십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사도행전 26장 16절
주님은 두 번이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밝히셨다. 그리고 바울보고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고 하신다. 바울이 엎어진 자리는 세상 권한을 휘두르다가 주님을 만나 자신의 실체가 드러난 상황이다. 부끄러움, 절망의 자리다. 바울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자리다. 내가 깨달았다고 해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눈도 멀어버렸다. 그때 예수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신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 사도행전 26장 17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바울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다시 보내어 종과 증인으로 삼기 위해 일으키신다고 말씀하신다. 구원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멀리멀리 떠나 편하게 행복하게만 살고싶은데, 이제 나를 괴롭게 하던 그들에게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신다. 회심하고 이혼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전도라는 건 그런게 아니라. 주님은 우리를 종과 증인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종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고 시킨 일을 철저히 해야하는 자다. 세상이 듣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을 해야하는 사람이다. 무시당하고 비판받더라도.
낮고 낮은 천한 이 땅에 작은 점 하나로 오신 예수님처럼 말이다. 누가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낮아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늘 효과적인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종과 증인으로 삼으신다는 것은 우리를 예수님처럼 세우시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삼는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뜻이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사도행전 26장 18절
눈이 떠져도 환경은 그대로다. 그런데 환경이 해석이 된다. 뼛속까지 죄인인 나를 위해 허락하신 고난이라는 게 깨달아지니 모든 것이 해석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가정에 종과 증인으로 나아갈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종과 증인으로 살아내며 본을 보여야 한다. 죄를 대물림하지 않고 섬김의 삶, 이타적인 삶을 물려주어야 한다. 종과 증인으로 힘든 가족과 살게 하신 것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는 성령님이 도우시니 힘든 사람을 감당하고 섬길 수 있다.
내 옆의 그들인 힘든 식구들이 내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을 믿습니까
?
거기서 종과 증인이 잘 되고 있나요 가르치며 명령하며 갑니까?
-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때 도우십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 사도행전 26장 19절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 사도행전 26장 20절
바울은 아그립바 왕 한 사람에게 주목한다. 바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메섹이라는 도시는 피바람이 부는 도시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은혜의 도시가 되었다. 한 사람이 변하면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복음의 공동체로, 은혜의 공동체로 변해가는 것이다.
바울은 하늘이 바울에게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박해했다는 것을 인정한 그때부터 회복이 시작된다.
아그립바가 거스를 수 있는 힘이 펄펄 살아있기에 그가 성령의 도우심을 못 구하는 것이다. 거스를 수 있는 힘이 다 빠져야 하나님 앞에 나아올텐데 말이다. 아그립바는 자신이 예수를 박해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하늘에서 말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나의 연약함을 아는데 나만 그것을 모르고 인정도 못하는 것이다. 입만 열면 '그게 아니라니까요'라고 한다. 이것이 하늘을 거스르는 사람이다. 아직도 펄펄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100프로 죄인이기에 그게 아니고요라고 말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나만 내가 비정상인 것을 모른다. 하니님의 말씀을 거스르니까 내가 속한 공동체에 피바람이 부는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러사람이 말하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성령님이 도우신다. 하늘에서 보이셨으면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서 보이셨다는 것은 온 천하가 다 안다는 것이다. 온 공동체가 다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동체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거스르지 않고 인정하고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면 성령님께서 도우신다. 죄를 끊을 수 있도록,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내 연약함을 공동체에 날마나 나누며 서로 기도하며 나아가면 성령님이 도우신다.
하늘이 알고 모두가 아는데 나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장에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외치는데 적용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할 회개에 합당한 일은 무엇입니까?
공동체에 연약함을 나누면 하늘이 알게 되니, 모두가 알게 되니 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죄를 이길 힘이 생긴다.
- 나를 죽이는 상황에서 증언할 때 도우십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 사도행전 26장 21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 사도행전 26장 22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 사도행전 26장 23절
바울은 자신의 간증으로 복음을 전한다. 내가 어떻게 예수를 핍박하고 죽였는지. 그런 예수가 어떻게 내 삶에 찾아오시고 나를 용서하셨는지를 전한 것이다. 예수를 전하는 첫 출발이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러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지나고 있을 때를 늘 언급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을 깊이 깨닫지 못한 자는 그러니 복음을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죄인됨을 너무도 인정했기에 어떤 사람도 정죄하지 않고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나와 같은 죄패, 고난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고 도움인 것이다.
도우심 - 에피쿠리아 - 동맹자, 조력자. 성경에서 한 번 쓰였다. 내가 죄인된 나를 살리신 예수를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보혜사 성령님이 늘 내 곂에서 도우신다. 동맹군처럼 달려오셔서 도우신다. 결코 나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는데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으시겠는가. 가난하고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의 나라가 내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복이 너무 큼을 알았기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복음을 대가 없이 전하고 내 권을 쓰지 않는 것이 상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앞에 있고 인생이 짧은데 생색을 낼 시간도 자랑할 시간도 아깝지 않은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핏값을 에스겔에게 물으실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게 된다. 감옥에 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자랑할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잘나서, 자격이 있어서 전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전적인 은혜 덕분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다.
잘난 게 하나도 없다. 그냥 붙어만 있고 하라는 대로 조금씩 순종하면 성령님이 다 알아서 도우시는 것이다.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먼저 사과하고 섬겨야 한다. 우리 모두 긴장하고 깨어서 말 실수하지 않도록 연약한 한 영혼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날마다 큐티를 해도 어느새 기복의 큐티가 될 때가 있다. 출애굽한 백성들 중 2명이 남았던 것처럼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된다. 그래서 부활의 실재를 경험한 사람이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 좋은 나라를 값없이 전해야 한다.
기복 큐티 합니까? 팔복 큐티 합니까?
목장예배가 값없이 권을 쓰지 않는 상입니까? 벌입니까? 생색납니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정과 일터, 어느 곳에서도 눈이 떠지고 빛을 환하게 비추길 소망합니다.
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
목모
오늘은 조인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