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성령의 약속 - 김양재 담임목사님
사도행전 26: 1 ~ 7
성령의 상소를 할 때 너무 위축되니까 위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요한 것이 우리의 본향 천국 백성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약속을 받아 누려야 이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잘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약속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손을 들고 변명한 것은 습관적인 제스처나 경외에 표현인 아니라 에크테이노로 자기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모본을 따라서 사역하기 원한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괴롭힘이 반복되는 이 지겨운 순간에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능력을 의지한다는 기도의 표시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위엄이 아니라 성령의 위엄을 갖춘 모습인데요, 아무리 지적인 사람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감정이 앞섭니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5분 뒤 10분 뒤도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반응을 합니다. 아무리 지적이라도 5초 10초를 못참습니다.
사고를 쳤을 때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그래도 조금 조심합니다. 그러니까 잃기 싫은 것 때문에 내일도 살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소유만으로 재물만으로도 내일을 걱정하는데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성도인 우리는 천국 보장을 받았으니 더욱 내일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잃을까 두려워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장된 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이땅에서 당하는 크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약속을 받은 사람의 징표입니다. 약속이 이뤄질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손을 드는 행위는 말씀을 펴는 것입니다.
성경 책 가지고 아무데서나 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매일 함께 정해진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날 상황을 그 말씀으로 비춰 해석해야 합니다.
그 묵상 자체가 주님께 손을 높이 드는 것이고, 그 말씀대로 기도하는 게 모든 적용의 시작이고, 그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적용질문]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전두엽 등 각종 병명 뒤에 숨어서 거기에 묶인 채로 감정의 노예로 살 것인가요?
거기서 손들고 나와서 큐티하고 나누며 치료 받을 것을 결단하시겠습니까?
2. 어떤 일도 다행히 복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지겨운 괴롭힘이 반복되는 이땅에서 나그네로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에게 천국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약속을 받은 인생 자체가 복된 인생임을 알면 어떤 일을 만나도, 무슨 일을 만나도 다행히 여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 눈으로 보면 불행한 일인데, 성령의 약속을 받은 성도의 관점에서는 그 또한 복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촉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에 붙어도 떨어저도 말씀대로 나가서 전하니까 다행이고, 말씀대로 지키는 자가 이루어지니 복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만 얘기하면 복 있는 인생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복 있는 사람임을 아니까 위축되지 않고 부담스러운 일도 종착지가 전도의 사명입니다.
가족의 안녕도 전도의 사명을 위해서 때에 따라서 그럴 수 있는 거지, 내 인생 결론이 이렇게 저렇게 잘하는 것도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적용질문]
지겹고 무서운 환경에서도 나는 복 있는 사람인가요?
'내 말을 인내하며 너그러이 들어 보라'며 어떤 만남과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고 있습니까?
전도할 때 차별없이 전하며 상대방의 눈높이와 정서, 상황에 맞게 다가갑니까?
3. 기복의 약속이 아닌 팔복의 약속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권능은 지도자, 권력자, 왕이 되는 권능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이 당하는 핍박의 결과 중 가장 마지막이 순교인데 핍박이 얼마나 당연한 것이었으면 증인=순교자가 성립할 정도였겠나요?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다 똑똑할 수록 예수님의 대적으로 살았다 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죽음에 이르는 핍박을 받는 것이 무리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만큼 세상의 악과 음란의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결국 성령의 약속대로 받은 모든 권능은 오직 예수님이 되라고 주시는 권능입니다. 넓고 편한길 가라는 것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 가라는 뜻입니다.
그럴려면 세상에서 오해와 미움과 핍박을 받아서 순교자와 같은 처지에 놓이더라도 이상히 여기며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복이 아닌 팔복을 쫓아가는 삶은 정말로 본성을 거슬르는 삶이고,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향하는 삶이고, 멸망이 아닌 구원을 위한 삶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도저히 따라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임하시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려면 예루살렘 같은 중요한 공동체를 떠나지 말고 꼭 붙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함께 마음을 같이해서 기도해야 하고, 날마다 묵상함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공동체에 진짜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으면 성령의 약속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3년을 다녔어도 성령을 안받으면 제자들이 사도 역할을 못합니다.
예배를 사수하시고, 목장에 참석하시고, 매일 큐티하시고, 큐티가 어려우면 듣기라도 하시고, 본문에서 단어 하나만이라도 기억하셔서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적용질문]
전자동으로 기복적으로 구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팔복의 복으로 증인 되어 순교자의 길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기도제목]
A.
1. 안 아프게 이 세상 떠나는 방법 알려주세요
2.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가 너무 힘들고 괴롭네요, 태어난 이유 알려주세요
3. 지랄 맞은 인생 빨리 떠나고 싶네요
B.
1. 매일 생활예배 잘 드리고 회사사옥 이전 잘 준비하고 코로나 이후 후유증이 빨리 완치되어 건강도 잘 회복되고 항상 지체들 잘 섬길 수 있도록
C.
1.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D.
1. 내면이 성숙해저서 큐티도 열심히 함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하여 좋은 사람과 잘 만나서 신교제,신결혼이 잘 될 수 있도록
2. 목장 식구들하고 잘 붙어있기를
3. 드론 촬영과 편집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4. 하나님 말씀과 적용이 함께 하여서 행동이 함께하길
5. 어디를 가나 안전.운전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