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4 주일설교 <성령의 상소>
본문 사도행전 25:10-22
- 김양재 담임 목사님
내일은 77주년 광복절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도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의 디아스포라로서 천국에서 만나자고 미국에 가 상소를 했습니다.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오기전에 성령의 상소를 알아보겠습니다.
1. 인내의 때를 채워야 합니다.
(10-11절) 3차 전도여행 마지막에 바울은 아시아 각 지역에서 부조를 모아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감옥입니다. 바울은 지난 2년동안 가이사의 재판 앞에 섰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에게 심판받을 자격이 있으나 이 상소권을 사용하지 않다가 이제야 사용합니다. 모든 상황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황제의 법정에서 판을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참다가 사용하니 그 권리가 빛이 납니다. 인내의 때를 채워야 합니다.
# 구원을 위해 쓰는 권과 쓰지 않는 권은 무엇입니까?
# 할 수만 있다면 상소해서라도 당장 해결하고 싶은 억울한 일은 무엇입니까?
# 구원을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있습니까? 상대방을 인내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부르짖어야 합니다.
(12절) 상소하다 - 에피칼리오 / 구원을 위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바로 상소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사건은 주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전히 갇혀있는 내어줄 수 없는 환경이기에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성령의 상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 문제가 생기면 나는 누구를 가장 먼저 찾습니까
# 주님께서 나의 상소를 들으신다고 믿어지십니까? 최고의 응답을 주심을 믿습니까?
3.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기회를 주십니다.
베스도는 상급법정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때 아그립바 왕과 누이 버니게가 나타납니다. 아그립바 왕은 신실한 유대교 신자였고 상당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내 옆에 의논 상대가 있음은 복입니다. 우리 목장이 항상 경영을 잘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할까 말을 하지 않습니다. 목장에서 얘기하는 것이 겸손한 것입니다.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도 목장에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목장을 우습게 보시면 큰코 다치십니다.
자신은 로마총독으로서 법대로 처리하려고 하나 바울의 혐의를 증명할 수 없고 또 바울의 말은 종교적 논쟁일 뿐이라고 아그립바 왕에게 보고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모두 압니다. 그러나 그 부활을 말할 때 바울에겐 감격이 있고 베스도는 차가운 금속처럼 냉정하게 말합니다.
내 힘을 놓고 의지하고 가만히 서서 통과하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봅니다. 변명의 때엔 변명의 기회를, 상소의 때엔 상소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지겹게 반복되는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리번거립니다. 성도가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회가 있으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기회가 아니라 기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잡아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 착한 일을 할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괴롭힘은 벗어나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 죄가 고난보다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겨운 괴롭힘은 내가 심각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하며 전한 것이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할말 없는 죄인임을 알았기에 바울은 주님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면 자기도 모릅니다. 이게 바로 애굽 바로의 관점입니다.
# 괴롭도록 지겨운 사람, 지겨운 상황, 지겨운 사건은 무엇입니까?
# 여기서 벗어날 기회를 얻으려고 누구를 또는 무엇을 기웃거리고 있나요?
4.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22절) 바울에 관한 베스도의 보고를 들은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합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가진 것이 많으나 그들의 삶을 보면 채울 수 없는 죄악의 굴레가 있습니다. 목적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상소를 하고 난 다음에도 구류된 시간을 더 보내게 됩니다. 상소를 하고 기다리면 한 사람이라도 더 듣게 됩니다.
오직 구원이기 때문에 또 며칠을 묶여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로마에서 말씀을 전할 한 사람이 있는 것이 목적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전도를 위한 상소가 목적이 될 줄 믿습니다. 어디서나 누구이거나 구원이 최고의 가치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인생이 허무할 때가 있습니까?
# 허무함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습니까?
# 내 인생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 구원은 몇 번째 목적입니까?
# 말씀 전할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눔
준범이 조부상 오프닝 - 구원의 확신이 참 중요하고, 명료한 문제같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본인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
안식
1-1.형이 수고하고있는데, 마음이 회복되지 않아 또 시작이네 하는 부분
1-2.이직하고 싶었던 때에도 하나님이 그래도 환경을 주관하신다는 고백이 있어서, 어쩐지 묻고갈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다.
3- 형에 대한 문제가 대두될 때와 아빠에 대해 토로하는 엄마에 대해 지겹게 느껴졌었다.
4- 우울증을 통한 허무함이 떠오른다. 우울증이 올라오면 곧장 죽고싶을정도로, 인생이 허무해진다.
이경민
1-2. 죽기전에는 내가 붙어있다보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거같다. 그런데, 엄마가 생각이든다. 엄마가 요즘 죽겠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근데 그런 말을 할때 또 저러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잘 호응해주면 될 일이 잘 안된다. 속으로 되게 귀찮고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가 내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계시다는 마음은 잘 안든다 아직까진.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
2- 스스로가 먼저 고민해보는 것 같다. 목장에도 자기검열 후에 얘기하는 것 같다. - 어렸을 때의 피해기억이 나서 그렇다. 엄마 목장에서 엄마가 힘든 얘기를 할 때, 왜그렇게 힘든얘기만 하세요? 하는 피드백을 듣고 상처받았던 걸 보고나서, 나도 그렇게 생각이 동화됐다. 또 중고등학교때, 형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도 형이 한마디하면 금새 내 편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졌던 기억들 때문에, 교회는 내가 말해도 안믿겠네 하는 마음이 생겼다.
3- 알바가 너무 지겹다. 작년 5월부터 1년이 넘었는데, 일이 너무 지겹다. 바꾸고 싶은데, 딱딱 이어져야하는데, 이직이 잘 안되고 또 여기만한 데를 못 구할거같아서 지겨운데도 바꾸지 못해서 그렇다.
4- 정신이 조금 성장한 이후로부터, 어느 때부터는 허무하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살아왔다. 사는 데 진정성을 못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생의 반이 허무했던 것 같다. 중학교때는 휴대폰, 휴대폰게임. 먹는걸로도 채우고. 최근에는 소재가 떨어져서 채우는 것도 지겹고 따분한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는 활동적인 걸 하고 살고싶었는데, 요즘은 돈을 벌면 한적한 시골같은 곳에서 나와 가족까지만 유유자적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도시의 빠르기가 너무 숨막혀서 그런 생각 하는 것 같다.
유다니
1-2. 부모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스스로도 기다리고 있다.
2- 거의 왠만하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다. 혼자서 해결하기 좀 어려운 고민들은 부모님이랑 보통 상의하는 것 같다. 또 부모님이랑도 갈리는 의견을 목장에서 나누는 것 같다.
3- 엄마가 하나님 믿으라고 하는게 너무 지겹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김양재목사님 설교를 오래간 들어왔는데, 매주 다른 말씀을 하시지만 결론이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도 약간 지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4- 고3때 수능보고서 재수할 때 인생에서 제일 허무했던 때 같다. 왜 살지? 이런 물음표가 많았다. 그때부터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그 시기에서 나올 수 있었다.
4-2 인생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 세상은 좀 많이 스스로의 의지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에 얽메여 살아가는 게 대부분같은데,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인 것 같다.
기도제목
이경민
- 일찍일어나기
- 운동 빠지지 않고 하기
- 엄마의 구원의 확신을 확인 할 수 있도록
유다니
-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 엄마의 병이 나을 수 있도록
안식
- 형에 대한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 엄마의 투정을 잘 듣고 피드백 하지 않을 수 있도록
- 속에 있는 할말을 생각을 깊히 꿍하지않고 잘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