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1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8:25-32
김정태 목사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제 소개를 좀 하자면 저는 혈기가 많은 고라니 김정태 목사입니다. 아주 재밌게 그려줬죠? 우리 청년부 친구들이 그려줬는데요. 저의 MBTI는 IMJA, 임자, 임자라는 거예요. 제 성격은 1%의 온유 그리고 99% 야생이에요. 야생의 고라니는 착한 얼굴과 귀여운 눈을 가지고 있지만 성격은 꽤액! 이 소리죠? 야생의 정태도 온유한 얼굴에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성격은 꽤액! 이다. 서식지가 있습니다. 또, 서식지 100% 보호를 받고 있어요. 출생지는 임자도. 고난과 죄로 영혼 멸종 위기, 전라도에 위치한 섬인데. 목적지는 천국.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영혼이 보호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들 공동체를 만나서 제가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죠. 감사합니다. 또 성장 과정이 있습니다. 100% 가정 고난. 과거에 아버지가 죽이겠다고 가스통을 들고 왔다. 어느 날은 트랙터로 집을 들이받아서 무너뜨리려고 했다. 아버지 때문에 여러 번 죽을 뻔했다. 현재,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주신 건 아버지이다. 정말 은혜가 됩니다. 그죠? 외모가 또 있습니다. 60% 탈모빔. 날마다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힘차게 큐티하는 남자 김정태 목사입니다. 날마다 대머리 독수리가 되어가는 남자 김정태 목사입니다. 탈모가 진행이 좀 됐어요. 첫째 아들이 한 번 얘기를 해요. '아빠는 이마가 왜 뒤로 가 있어?' 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제가 탈모가 진행 중에 있는데, 모공들이 좀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이렇게 부족한 저를 강단 위에 세우셨는데 너무나 걱정되는 게 뭐냐면 제가 이렇게 또 저렴한 설교를 하잖습니까. 단어도 저렴하고 억양 자체가 저렴해요. 또 우리들교회 주일 강단의 격을 좀 떨어뜨리지 않을까 너무나 걱정이 됐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강단에다가 고라니 한 마리 풀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그래도 감사하는 거는 전에는 저보고 '뱀 목사님, 뱀 목사님.' 이랬거든요? 지금은 '고라니 목사님, 고라니 목사님.' 이래요. 다리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비록 네 다리지만 다리가 생겼어요. 이제는 직립 보행을 해야 되는데 점점 진화되고 점점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김정태 목사입니다.
오늘 제목이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제목을 정해봤는데, 광야가 이곳이 광야네요. 그냥 입이 쩍쩍 마르는 게, 이게 이 자리가 그냥 광야인 거 같아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부족하나마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리라고 믿고 은혜를 받기를 소망합니다. 자, 하나님께서 피, 개구리, 이, 파리, 이 재앙으로 큰 권능을 보여주시니까 모세와 아론이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바로 앞에 나아가서 얘기를 하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처음에 모세가 어떻게 했죠? '어찌하여 나를 보냈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보냈습니까?' 어찌하여만 외쳤던 모세가 담대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 전하는 걸 보면서 진짜 우리의 자신감과 담대함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피, 개구리, 이 재앙을 겪었어도 완강했던 바로가 이번 파리 재앙을 겪으면서 그 마음이 흔들렸는지 두번째로 모세와 아론을 부르게 됩니다. 구원을 위해서 광야로 나아가야 하지만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는 바로와 같은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애굽과 같은 그런 곳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광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광야가 어떻습니까? 살아내기가 정말 힘들지 않으세요. 황량하고 거친 환경. 아무것도 없는 환경이지만 나와 내 가정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만 있는 환경으로, 하나님만 있는 광야로 우리가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해야 될까요?
1. 부당함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25-27절)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 25절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선 피, 개구리, 이 재앙, 이 재앙과는 다르게 파리 재앙은 애굽과 고센 땅을 구별하셨어요. 고센 땅이 구별된 것을 본 바로는 고민을 엄청나게 했겠죠. '왜 고센 땅만 구별하지? 왜 우리 땅만 재앙을 주지?' 너무나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회개해서 부른 것이 아니예요. 회개해서 부르지 않고 무엇 때문이에요? 무수한 파리 떼로 애굽 땅이 황폐해졌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부른 거예요. 파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파리채 하나면 끝나는데 아무것도 아닌 파리를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면 난리가 난다. 난리가 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는 약간 좀 귀엽자나요.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파리가 또 겸손해요. 우리나라 파리는 겸손해가지고 파리채 들면 어떻게 해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하고 도망가요. 이 파리가 아닙니다. 또 파리 하나가 또 있죠. 고급스러운 에메랄드 빛이 나는 무슨 파리? 똥파리. 똥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똥파리하고 우리는 동선이 겹치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파리가 있는데 그 파리는 쇠파리라고, 쇠파리. 쇠파리 본 적 있으세요? 시골에 가면 소 엉덩이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가지고 피 빨아먹는 파리예요. 그 파리들은 굉장히 강퍅해요. 잡으려고 하면 쳐다봐요. 이렇게. 파리가 얼마나 큰지, 그 엄지 손톱만해요. 파리가. 진짜로. 이 파리 삼형제들이 다 달라붙어가지고 애굽을 힘들게 하니까 황폐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때 우리나라 파리도 파병 갔다 왔습니다. 그 파리들 때문에 그 애굽이 황폐해졌어요. 먹고 살만 할 때는 하나님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습니까? 바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 죽을 것 같은 환경에서 구원이 필요한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제가 친구들과 수영 시합을 했었어요. 열심히 그냥 수영을 했는데, 막 하는데 앞으로 안 가요. 앞으로 안 가고 다리가 점점 움직이지 않아요. 보니까 제 다리에 물풀이 감긴 거예요. 저수지에서. 물풀이 감겼는데 너무 당황해가지고 힘차게 발을 저섰어요, 저었거든요? 오매, 절대로 사투리 안 쓸라고 했는데. 좌우지간 열심히 저었어요. 저으니까 물풀이 더 감긴 거예요. 안 풀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 몸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목까지 왔을 때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포기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모든 것이 포기가 되고 몸의 힘이 쫙 빠졌어요. 여러분 이 환경을 직면해 본 분 아니면 이 느낌 모릅니다. 진짜. 그런데 이제 물이 이까지 차오를 때 '어푸어푸'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나님.'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신기하게 물풀이 스르륵 스르륵 다 풀린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가 살아났던 거 아닙니까. 그랬는데, 그렇게 살아났는데 바로처럼 저도 교회를 안 다녔어요. 살아나서. 사람은 이렇게 죽을 것 같은 환경이 아니면 하나님을 찾을 마음이 없어요. 마음이 없어요. 자신의 집과 애굽의 온 전역에 황폐하는 사건이 오니까 그제서야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 바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뭐라고 얘기합니까?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네번째 재앙을 겪었으면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될 텐데 바로는 아직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를 보면 고난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는 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병 낫고, 뭐 환상 보고. 이게 기적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 믿는 게 가장 큰 기적이고, 내가 천국 가는 게 가장 큰 기적이에요. 당연한 거 아니예요. 기적이에요. 진짜 그 기적인지를 모르겠으면 옆 사람을 한 번 봐 보세요. 옆 사람. 그 사람이 천국 간데요. 그 사람이 예수님 믿는데요.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코로나 같은 국가적인 재앙, 이 재앙이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을 겪었단 말이에요. 바로가. 그러니까 얼마나 국가 경제가 마비가 됐겠습니까? 바로의 입지는 더 위태해지는 것이죠. 조, 중, 동 할 것 없이 한겨례, 경향 신문 다 대쪽 같이 막 언론에 나오고, 페이스북, 유튜브 다 나오고, 여야가 분열되고, 파업하고 난리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렇게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바로의 마음은 부담감을 안고 있었어요. 그래서 뭘 제시해요? 타협점을 제시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해요. 바로는 지금 노동력도 잃지 않고 재앙도 면해보려고 하는 그런 생각에 있는 거죠. 그래서 끝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자신의 영향력과 통치권 아래 가둬두려는 그런 속셈입니다. 자, 세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합리적인 타협을 제시하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을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에게 타협점을 제시하는 것은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둬두려는 시도임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정말 어렵죠. 그래서 목장에서 나누면서 이런 문제들을 인도함 받고 가야 하는 거죠. 자, 합리적인 타협점을 제시하는 바로에게 모세는 뭐라고 얘기를 합니까?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 26절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제안, 그 제안의 부당함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것을 애굽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싫어하다라는 단어가 가증하다, 부당하다, 미워하다 이런 의미를 품고 있어요. 그래서 당시 애굽 사람들의 문화에는 동물들은 신성시기는 그런 문화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린 양 같은 경우에는 암몬 신에게 속한 짐승이었기 때문에 죽일 수가 없었고, 흰 암소는 절대로 죽일 수 없도록 입법화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죽이면서 희생 제사를 드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돌에 맞아 죽을 수가 있는 것이죠. 모세의 말처럼. 이런 문화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그 문화 아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릴 수가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식대로 제사를 지낼 수가 없는 것이죠. 양을 제물로 삼아야 되는데 애굽 사람들이 돌로 치니까 '그럼 우리 양 대신 돼지로 할까?' 이렇게 하면서 또 다른 타협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되면 그 타협은 또 다른 타협을 낳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우리 가정을 거룩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예전의 가치관과 문화, 전통에서부터 완전히 분리돼야 되고 떠나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맥락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인도하시는 광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광야에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이 있는 광야로 가야 되는 거예요. 비록 그 길이 사흘 길이 걸리는 그런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길에 가야지만이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세울 수 있고, 예배를 세울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을 세울 수가 있다는 것이죠.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 27절 함께 읽겠습니다.
자, 모세가 세운 제사의 기준은 뭐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나 편리한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가 제사의 기준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예배 드리고, 내가 예배 드리고 싶을 때는 예배 드리고, 예배 드리기 싫을 때는 안 드리고 이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나 원하지 않으나 예배의 자리로 나와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 땅에서 제사 드리라는 바로의 명령과 사흘 길을 광야로 나가서 제사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그리고 민족을 구원을 위해서 모세가 어땠습니까? 부당하다고 외쳤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런 적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나와 내 가정과 내 자녀를 구원하기 위해서 때로는 부당하다고 얘기할 수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네, 네.'하면서 YES맨이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부당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저는 10년 전에 전도사로 사역을 했었는데 그때 저희 가정은 전도사 사례비 70만원을 가지고 다섯 식구가 살았어야만 했어요. 그런데 이 돈으로 생활 자체가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주말에는 사역을 하고, 주중에는 수업 끝나고 새벽까지 공장에 들어가서 단순 노동을 하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아내는 그런 제가 좀 안쓰럽다면서 집에서 갓 태어난 셋째를 돌보면서 인형 눈을 붙이고, 눈이라니까 좀 와닿지 않죠? 인형 눈깔 붙이고, 크리스마스 카드 접고, 이렇게 하면서 생계를 연명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부 업체에서 제게 연락이 왔어요. 전화를 받아보니까 아내가 저 몰래 대출을 받았더라고요. 대출을 받았어 대출을, 대부 업체에다가. 이자가 얼마나 셉니까. 한 달 생활비가 70만원인데 그 일이 잘못 되가지고 한 달에 이자가 50만원이 넘는 돈이 나가게 되는 거예요. 아, 참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지금까지 살아보려고, 버텨내려고 그냥 방학이 되면 짜장면 배달도 하고, 그리고 대리 운전도 하고, 공장에도 나가보고, 조선소에도 가 보고, 순대 공장에도 가 보고 그렇게 했었는데 이 사건이 터니지까 더 이상 제가 버틸 수가 없었어요. 제가 마주한 삶을 뚫고 이겨낼 자신이 없고, 살아낼 자신이 없어졌어요. 도움을 부탁할 사람도 없고, 뭐 비빌 언덕도 없고,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얼마나 돈 때문에 시달렸는지 월말이 되면 각종 고지서 돈 내라고 정말 꼬박꼬박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거. 안 빼먹어요. 잊어버리지를 않아요. 좀 잊어버렸으면 좋겠는데 아주 고지서가 여전한 방식대로 날라옵니다. 그거를 보면 가슴이 막 벌렁벌렁하고, 막 토 나올 거 같고 그러더라고요. 손이 달달달 떨리고. 그런 증상까지 나왔어요. 상황이 이러니까 아내랑 또 얼마나 피 튀기는 전쟁을 하며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아내는 스트레스 받는다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싸우다가. 저 혼자 집에 있으면서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살 바에는 죽어버리자. 해결할 방법은 내가 죽는 것 말고는 없다.' 생각을 하면서 못된 짓을 했죠. 주님께 귀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전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가난의 사건의 해석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일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내버려두신 하나님께 부당하다고 외치며, 그렇게 소리지르면서 베란다에서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목을 매니까 고생할 아이들이 그렇게 눈에 밟히더라고요. '나 없으면 아이들이, 저런 어린 것들이, 핏덩이들이 얼마나 더 고생할까.' 세 아이들이 눈에 그렇게 밟혔습니다. 그리고 지옥 갈 것이 너무나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살포시 풀었어요. 살포시 풀었어요. 그리고 풀긴 풀었는데 승질은 또 나지 않습니까.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하는 이 환경, 아시죠, 여러분. 죽고 싶은데 죽을 수가 없어요. 누가 죽여줬으면 좋겠는데 죽여주지도 않고 얼마나 건강한지 잘 살아요. 죽고 싶은데 못 죽어. 너무 화가 나니까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하나님께 고래 고래 고래 소리질렀습니다. '이렇게 거지처럼 살다가 죽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나를 이렇게 거지처럼 살다가 죽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까? 그러려고 나를 보내셨습니까? 그러려고 나를 목화자로 부르셨습니까?'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천장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 고래 고래 그렇게 욕을 좀 섞어가면서 하나님께 못된 그런 거시기를 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하나님께 성질 내고 욕하고 비방하고, 막 그렇게 온갖 했는데, 문뜩 그 생각이, 한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는 거예요. 결혼 초에 아내와 단 둘이 마주 앉아서 한 약속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도시 가스가 끊겨서 있었던 때라서 아내와 마주 앉아서 사이에 냉수 한 사발을 떠놓고 아내와 약속을 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사명의 길을 가는데 때로는 하루에 밥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물 한 그릇 먹는 것에 우리가 감사하면서 우리 사명의 길을 가자.' 그런데 지금 제 모습은 뭐예요? 돈 없다고, 죽겠다고 막 하나님 협박하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 내가 죽어버릴라니까, 하나님. 다 하나님 책임인 거 아시죠?'하면서 협박했어요. 제가. 돈 없어도 그렇게 아내와 함께 사명의 길을 잘 걷자고 했던 제가 많이 변질이 된, 물질 우상을 삼고 그렇게 살았던 저의 모습이 보여져서 회개가 됐습니다. 얼마나 제가 물질 우상을 삼고 살았는지 깨달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무릎 꿇고 물질 우상 삼았던 것들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봐서라도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 달라는 말을 제가 진짜 많이 합니다. 여러 번 살아났어요. 그 말 해가지고. 여러분들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하면 우리 하나님 완악하지 않으세요. 다 살려주시더라고요.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분을 쇠똥으로 감해주셔가지고 대출의 문제가, 디테일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진짜 해결됐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세요. 그래서 재정적 문제도 잘 통과가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으로 해석이 되니까 있어야 될 사건이었음이 100% 인정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와 우리의 가정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세팅임이 인정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억울함의 사건, 부당함의 제목이 회개와 감사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말씀으로 해석이 되면 내게 부당하다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되는 그런 귀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적용]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부당하다고 말하나요? 아니면 나의 만족과 유익을 채우기 위해 부당함을 말하나요? 지금 내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부당함을 외친 적이 있나요?
2. 죄로부터 멀리 가야 합니다. (28절)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 28절 함께 보겠습니다.
자, 바로는 자신의 술책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번에도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의 마음 가운데는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보낼 의도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이 말의 원 뜻이 '너희는 절대 멀리 가지 말라.' 이 뜻이에요. 아주 강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활동 반경을 제한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바로는 어떻게해서든지 이스라엘 백성을 붙잡아 두려고 했던 거예요. 자신의 욕심과 고집 때문에 온 애굽 백성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일관합니다.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탐욕과 욕심, 야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밍기적 거리는 거죠. 그런데 이런 바로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고, 또 저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지금 내려놔야 될 그런 죄와 욕심이 있는데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 우리는 고민을 합니다. 목장에서 늘 권면을 받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를 발견합니다. 바로 한 사람이 내려놓지 못해서 애굽의 모든 사람이 고난을 겪는 것처럼, 나 한사람의 죄와 탐욕,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서 우리 가족이 고난을 겪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거예요. 손해보지 않으려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죄를 사랑해서 포기하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에 타이밍을 놓지고 결국 더 큰 손해를 우리가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또 야망과 욕망, 쾌락, 음란의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 내가 바로 바로다. 다시 하겠습니다. 오늘 또 야망과 욕망, 쾌락, 음란의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 내가 바로다. 내가 바로입니다. 내가 바로.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내려놔야 되는데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아쉬움만 가득해요. 내가 바로임을 인정하고, 목장에 오픈하고 더 늦기 전에 내려놔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바로가 모세에게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죄악으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술에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말라, 음란에서부터, 도박에서부터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적당히만 해.' 얼마나 속기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 내가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질 수가 없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 내 배우자, 내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죄와 멀어져 하나님이 이끄시는 광야로 가야 하는 것이죠. 그 길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광야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려놓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나와 내 배우자, 내 자녀를 치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려놔야 될 것이 있다면 내려놓는 적용, 죄와 멀리 떨어지는 적용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죠.
저는 지금 청소년부를 맡고 있어요.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현장 수련회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올해 현장 수련회가 가능해져서 4월달부터 현장 수련회 준비를 했고, 청년 스탭들 120명이 모여서 주일 예배 끝나고, 목장 예배 끝나고, 모든 일정 끝나고 밤 10시까지 그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할 때 참 힘들고 고단하죠. 그런데 기대가 되는 거예요, 힘든 것보다도. 왜? 아이들이 수련회 장에 와서 은혜 받을 게 너무 기대가 되고 너무 감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수련회를 며칠 앞두고 코로나가 갑작스럽게 확산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청소년부가 자체적으로 방역을 강화하면서 코로나 확진자, 그리고 동거 가족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는 경우, 확진이 아니더라도 코로나 증상이 있는 경우는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수련회 참석 불가 방침 내놨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련회장에서는 각 방에 매시간 소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출발 당일 아침에 아이들은 각자 코로나 키트 반드시 검사할 것,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수련회 전 날, 바로 직전에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집단 감염 걸린 것 뉴스 기억하시죠. 그게 이슈가 됐어요. 그걸 보면서 코로나 집단 감염 아무리 준비 많이 했어도 그 집단 감염의 위험성을 가진 채로 수련회를 강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과 행사를 맞바꿀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즉시 온라인 수련회가 가능한지를 확인해보고 버스가 출발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현장 수련회 취소를 공지하게 됐습니다. 사역자들은 버스가 떠나는 시간까지 진짜 고민도 많이 하고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했지만,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라 하셨자나요. 마지막 타이밍을 잡고, 그래서 출발했지만 다시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25대의 버스가 다시 회차해서 판교와 종합운동장역으로 아이들을 내려주고, 또 선생님들은 귀가 조치를 시켰는데, 실망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까, 또 그리고 아이들의 변화될 것을 기대했던 우리 선생님들, 그리고 12주 동안 열심히 수련회 준비한 우리 120명의 스탭들. 그들을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스톱되어져버린 그 텅텅 빈 수련회장을 갔는데 진짜 망연자실하고,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황망하다 이런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 그 황망하다 이게 느껴지더라고요. 옳은 선택인 것은 알지만 진짜 3년 만에 현장 수련회를 준비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 큐티 말씀이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본 그 말씀이거든요. 모세가 떨기 나무 불타는 걸 보고 뭐라 합니까? '이 큰 광경을 보리라.'라고 말을 했었는데, 그날 25대의 버스가 일제히 유턴하는 그런 큰 광경을 봤습니다. 이건 여러분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런 상면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제가 살면서 도깨비불을 두 번 봤거든요. 아주 진짜 봤어요. 도깨비불을 두 번 봤는데 25대의 버스가 도는 건 처음 봤습니다. 도깨비불 보는 것보다 더 힘든 걸 우리가 본 거예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뭐냐면, 제가 공동체에 정말 감사가 됐습니다. 아이들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서 어떤 손해라도 감수하는 그 공동체를 보면서 '정말 세상에 이런 공동체가 또 어디 있을까, 이것은 우리들 공동체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구나.'라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더 놀라웠던 거는 뭐나 하면, 수련회장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25대의 버스가 돌았자나요. 돌았어요. 다 돌았어요. 돌았는데 진짜 이게 황당한 일 아니겠습니까, 고속도로에서 다 돌았으니까. 그런데 누구 하나도 '돌면 안 됩니다. 유턴 안됩니다.' 이렇게 딴지 거는 분들이 단 한 명도,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부장부터 시작해가지고 25명의 차장을 맡으신 선생님, 아이들 케어를 하시는 그 선생님들 모두 질서에 순종한 게 너무 놀라왔어요. 제가 보낸 카톡 한 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어요. 정말 너무 놀라웠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공동체 질서에 순종하시는 모습 보고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선생님들께서는 뭐라고 카톡이 오냐면 '욕은 자신들이 먹을 테니 목사님은 얼른 온라인 수련회에 집중하십시오. 욕은 내가 먹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정말 우리 선생님들 너무나 대단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날 말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니 발의 신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가만가만 '내가 벗어야 할 신은 뭘 까?' 가만가만 생각을 하니까 다름 아닌 현장 수련회라는 그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완벽하고 멋진, 그리고 성공적인 행사로서의 수련회를 하나님께서는 벗으라고 하셨어요. 바로가 끝까지 탐욕을 포기하지 못하고 너희는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성공적이고 멋진 수련회를 내려놓지 못해 그렇게 전전긍긍했습니다. 지금까지 준비한 것과 큰 재정이 들어간 수련회, 그리고 아이들의 건강을 놓고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지 못해 바로처럼 고민할 때 청소년부 동료 사역자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행사의 신을 벗을 수가 있었고, 온라인 수련회 준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수련회를 끝내고, 원거리에서 온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에게 청소년부 사역자 전체 전화를 돌였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통화를 했었는데,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전화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부모님들의 반응이었어요. 교회에서 어려운 결정을 했는데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면서 저를 위로해 주셨고, 오히려 저한테 어디 가지말고 끝까지 붙어 가시자.'고. 제가 어디 떠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셨나봐요. '어디 가지 말라고, 제발.' 그렇게 하면서 저를 위로해주시고 저한테 치킨도 보내주셨습니다. 아이들과 또 통화를 해보니까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차 타고 내려가면서 손 들고 찬양하고. 어떤 친구는 선생님이 데려가가지고 먹을 것 사주고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어떤 친구는 온라인 예배 드리면서 녹취를 또 해서 보내왔어요. 정말 우리 아이들, 선생님, 부모님 다 놀라워, 모든 게 다 놀라워요. 수준들이 너무나 높으십니다, 여러분. 욕심의 신발, 고집의 신발, 행사의 신발을 벗어 놓으니까 모든 게 다 은혜였습니다. 저도 바로처럼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해가지고 아이들에게 큰 해를 끼칠 뻔했지만 함께 하는 사역자가 있었기 때문에, 또 우리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빨리 내려놓을 수가 있었고, 수련회 온라인으로 잘 준비할 수가 있었습니다. 청소년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적용]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내 욕심과 탐욕, 죄는 무엇입니까? 내가 멀리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멀리 해야 할 습관과 장소는 어디입니까?
3. 인내로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29절)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 29절 함께 봅니다.
모세가 바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 땅에 파리 재앙이 끝남으로 인해가지고 바로와 애굽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고, 또 출애굽을 시키는 그런 일을 진행하기 위함이었죠. 그렇기는 하지만 모세의 입장에서는 바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애굽을 위해서 기도할 때 믿음의 적용이 필요했을 것이에요.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적용이 필요했듯이 애굽은 430년 동안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고 핍박했습니까. 그러니까 모세가 기도하는 이 기도가 정말 믿음의 적용인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내 백성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바로 원수 같은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는 적용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가 당장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그 원수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를 해줘요. 바로가 지금 얼마나 수고를 해줍니까. 그렇기 때문에 비록 내가 내 원수와 살고 있지만, 저희 어머니가 항상 한 말이, 저희 아버지를 향해. '오매 저 웬수. 귀신은 뭐하나 저 웬수 안 물어가고.' 원수랑 같이 살고 있을지라도, 원수와 함께 있을지라도 인내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거예요. 나는 이 원수랑 절대 살지 못하겠다고 떠나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굉장히 폭력적이셨어요. 그래서 너무나 제게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어머니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렇게 다툼을 하셨어요. 동네 사람들 말리지도 못해요. 얼마나 정말 심했는지. 그 모습을 보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이럴 거면 차라리 온 가족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태어나면 안 됐을 인간이었구나.' 생각하며 제 스스로를 부정하고 저주하며 살았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수님을 믿게 됐는데 그때부터 아버지의 핍박이 시작된 거예요. '교회에 계속 다니면 호적 파 버리겠다. 너 같은 놈이 무슨 목사냐. 교회 얘기하려면 그냥 가라.' 아주 온갖 핍박을 하시면서 쌍욕을 그렇게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대원 입학을 준비하다가 아내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아가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입학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저에게 딱 얘기하시는 거예요. '남자가 말이야 한 번 마음먹었으면 끝을 봐야지.'하면서 저한테 뭐라 하는 거예요. 안티 크리스천인데 신대원 안 가겠다고 하니까 저한테 또 쌍욕을 하시면서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참을 얘기해가지고 '그러면 아버지 제가 야간 다니고 주간에는 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아버지가 또 저한테 뭐라하는 거예요. '니 주제에? 니 머리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한다고? 아서라, 아서. 야간은 무슨 야간. 주간으로 가.'라고 얘기하시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어요. 그렇게 저는 이상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인도함 속에 신대원에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신대원 간 제가 아버지께서 항상 얘기하셨어요. '너 목사 되면 내가 제네시스 하나 뽑아 줄게.'라고 얘기하면서 제 차를 빼앗아 가셨어요. 그리고 3일 뒤에 날라옵니다, 아버지의 편지 딱지 8장. 아, 진짜 힘들었습니다. 진짜 힘들었어요, 아버지. 아버지 힘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목사 안수 받으면 '내가 목사 안수 받으면 너 교회 하나 지어 줄게. 농사 잘될 수 있도록 기도나 좀 해라.'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신대원도 다 포기했을 텐데 아버지 때문에 사명을 이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대원 들어가고 나서도 아내와 또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늘 안 좋자나요, 우리가 사실. 늘 안 좋아요, 저희는. 좋았던 적이 뭐 있나, 없어. 없어. 없어요, 없어. 그렇죠? 없죠? 신대원 들어가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때는 상황이 좀 심각했어요. 그래서 이혼하겠다고 양가 부모님께 얘기를 드렸어요. 그리고 이혼 서류를 썼습니다. 그때 또 누가 등장합니까? 아버지. 아버지가 한 걸음에 달려오셔서 또 제게 쌍욕, 그놈의 쌍욕. 쌍욕을 하시면서 '이혼? 니 주제를 알아야지. 뭐 이혼? 없는 집에 시집 와줘서 나는 눈물만 나는데. 뭐 이혼? 같이 살아주는 것도 고마워하지도 못할 망정에 뭐 이혼?'하면서 저의 이혼을 막아 주셨습니다. 본인도 평생을 이혼을 외치며 살았는데 저의 이혼을 막아 주셨어, 정말. 하나님께서는 제게 두 가지의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목회자의 삶이고, 하나는 가정이었어요. 그런데 이 두 가지 사명 다 저를 가장 핍박하고 힘들게 했던 아버지 때문에 지켜졌던 거예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버지께는 제가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을 보시고 5개월 뒤에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정말, 집이 완전히 망했을 때, 급성 맹장으로 수술하실 때, 급성 간경화가 왔을 때, 손가락이 절단됐을 때 항상 복음을 전했거든요. 그때마다 쌍욕을 먹었는데 간암 말기 판정 받으시니까 또 예수님 믿으시더라고요. 고난은 정말 축복인 것 같아요. 아멘이십니까.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는데, 참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으로 해석받으니까 아버지의 사명이 제 가정지키는 것, 저를 목회자의 길로 가도록 인도한 것, 그것이 아버지의 사명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를 핍박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핍박하는 사람이 나의 구원을 위해서 정말 부단하게 노력하고 수고해주고 있다 라는 것을 우리가 믿으시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기도를 해줘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세가 이렇게 기도를 했자나요. 기도하면 바로가 기도하면 바뀝니까? 안 바뀌어요. 또 거짓말을 합니다. 그것처럼 내 배우자, 내 자녀, 각종 중독에 빠져있고 술, 도박, 외도 뭐 여러가지 중독에 빠져 있는 내 배우자, 내 가족들 '다시는 안 그럴 게.'하지만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걸 보면서 우리의 마음도 무너지고 우리의 믿음도 무너질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잘 아는 대로 내 배우자, 내 자녀의 구원은 나의 한 번의 적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기까지 열 번의 재앙을 겪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그때까지,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를 힘들게 하고 숨통을 조이는 바로 같은 내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내 가정, 내 자녀를 위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며 적용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 갚는 일도, 그리고 내 가족의 구원도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우리가 인정하며 가야 되는 거예요.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시간표에 맡겨드려야 된다 라는 거예요. 우리도 바로처럼, 32절에 바로가 마음을 완강하게 했다고 하자나요. 우리도 바로처럼 여전히 내 고집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집이 강퍅한 마음이라고 말씀으로 얘기해주시지만 하나님께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반역합니다. 가정에서 배우자 앞에, 자녀들 앞에 내 고집과 아집, 그리고 나의 개똥 철학을 내려놓지 못하는 내가 완악한 마음을 가진 바로인 것이 인정이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권면을 해도, 위로를 해도 내 생각의 판단이 맞다며, 내 습관이 맞다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내가 바로인 것을 우리가 인정하며 가야 합니다.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의 보지 못하는 바로 한 사람 때문에 애굽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자나요. 그것처럼 나 한 사람의 완악함으로 인해 우리의 가정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 모두,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바로 같은 나의 성품, 그리고 바로 같은 내 배우자, 내 자녀들 앞에서 그 삶의 자리를 잘 인내하고 예배의 잘, 목장의 자리 잘 지켜 가면서 바로의 마음이 아니라 순종하는 모세의 마음으로 채워 넣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적용]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세입니까? 아니면 끝까지 고집 부리는 바로입니까?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 가운데 거한다는 것이 인정되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죄를 끊어 내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세상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온갖 유혹들로 나를 잡아 두려고 하지만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어쩔 수 없는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가야합니다. 내 죄를 회개하고 가야합니다. 또한 세상을 향해 우리는 모세처럼 부당함을 느끼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세상의 말을 뒤로 하고 죄로부터 멀리, 멀리 떠나야합니다. 나 한 사람이 죄를 보지 못해 내 배우자, 내 자녀가 고난 겪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광야의 길을 갈 때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일어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사람들이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내로 그 자리를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제목
환청이 계속 있는데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encapsulation 잘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남동생 최종면접 무난하게 합격해서 붙회하도록
주님이 나를 선하게 인도해 주심을 신뢰하고 환청 마귀에게 놀아나지 않도록
여동생이 취업하고 직장생활을 잘 적응하고 교회에 다시 나와서 말씀을 듣기를. 예수님을 붙들수 있도록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소리에 놀아나지 않도록. 무엇보다 thought broadcasting이 끝나고 사라지도록
미혜
10년 이상 교회를 떠나 있던 저를 출애굽 시켜 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생으로 살게 하신 것에 감사드리기를. 그것만으로 감사가 안되는 애굽 가치관에 젖어 있는 저입니다.
하나님께서 회사를 공고히 이끌어 주시기를
아빠 엄마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하나님께서 아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주시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의 힘듦을 돌보시고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보호해주시기를
우정
새로 시작한 일 때문에 바빠져서 큐티와 목장에 소홀해지는 것 같은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면서 잘 붙어있기를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데, 붙여 주신 데는 어떤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잘 이끌어 주시기를
신혼집이 아직 구해지지 않아서 걱정이 되는데, 가정 이룰 곳 잘 인도해주시기를
남자친구 현재 코로나 격리 중인데, 후유증 없이 무사히 잘 회복할 수 있기를
목장 식구들 각자가 처한 힘든 상황을 알아봐 주시고, 보호해주시기를
지영
저희 엄마는 열이랑 구토가 계속 있어요. 어서 균이 잡힐 수 있도록
민희
남자친구(최관우)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더 예수님을 알아가는 삶이 되도록
남자친구와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가정이 되도록 가지치기와 하나됨을 경험하며 가도록
내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도록
목장식구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예선
다음주에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개인 서류 관련된 것들이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하셨다 하는 것 감사함으로 보고 갈 수 있도록
다음주에 가는 아웃리치 참석 가능할 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여쭤보려고 하는데 용기 낼 수 있는 상황과 힘 주시길. 어떤 답변을 듣더라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코로나로부터 우리 목장 식구들 지켜 보호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