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7 어디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빌립보서 1:20-21
선린감리교회 권구현 목사
반갑습니다. 저는 선린감리교회를 섬기고 있는 권구현 목사입니다. 이성훈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하셨을 때 꿈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감히 우리들교회에 설 수 있다니.
설교를 요청하셨을 때 '당연히 사양해야지. 고사해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들교회 여러분들도 영적 질서에 순종하시듯이 저도 우리들교회에서 THINK 양육을 받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삶으로 말씀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저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 위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웬만해서는 잘 긴장하지 않는데 설교 요청을 받고 2주간 제가 집에서 얼마나 한숨을 쉬고 다녔는지 모릅니다. 아내가 안쓰러웠는지 '두 번은 못할 일이다.'그렇게 얘기했는데 또 매번 순종하시는 우리 초원지기, 또 평원지기 여러분들 정말 정말 존경합니다. 엊그제 딸이 제가 우리들교회 찬양대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위로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딸이 그럽니다. '꿈에 아빠가 우리들교회 찬양대에 서 있는데 정말 웃겼어.' 딸이 생각해도 제가 우리들교회 강단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 모릅니다. 제가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저도 한 번만, 제가 교회를 담임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 예배를 현장에서 드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제가 주일 예배 우리들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면.'하면 그 사모하는 마음이 너무 너무 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 주셨고, 오늘 찬양대의 그 찬양을 들으면서 '그냥 나는 오늘 설교 안 해도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은혜의 시간이었고,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져서 오늘 주일 예배를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저기 앉아 있어야 되는데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저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그러십니다. '왜 권목사님은 맨날 김양재 목사님 말씀만 하십니까? 아니 새벽 예배도 큐티인으로 바꾸시고, 그리고 수요 예배도 아니 김양재 목사님 책으로 우리 부목사님들이 설교하게 하시고, 그리고 맨날 죄만 보라고 하시니 우리 목사님 좀 말려주세요. 아니 우리 교회가 무슨 우리들교회 지교회입니까?'라고 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한, 두 달 저러시다 말겠지.' 그랬는데 벌써 7개월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부족하고, 또 연약하고, 또 아직도 여러분들에게 배워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목사입니다. 저희 장모님도 우리 아들에게 그러셨습니다. '야 너네 아빠는 언제까지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한다니.' 그랬더니 아들이 이야기했답니다. '할머니가 말씀이 들리실 때 까지요.' 제 아들이 요즘 양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게 담대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우리 선린교회가, 우리 성도님들께도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들교회 지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상 우리가 우리들교회 예배 다 참여할 수 없고,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다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THINK 양육, 지금 광고하셨지만 우리 성도님들이 다 THINK 양육 받으셨으면 좋겠는데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양육한다.' 라는 그러한 마음으로 7개월째 김양재 목사님의 그 설교, 특별히 여호수아 큐티 강해를 지금 24번째 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그대로 주일날 우리 성도님들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직접 김양재 목사님께 그 말씀을 들으시니 얼마나 복된 분이신지 모릅니다. 그걸 모르시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저희가 목욕탕 큐티 세미나에 참여했고, 또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저의 22년 목회 중에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부족한 사람, 그리고 또 제가 섬기고 있는 이 선린감리교회가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 이제 막 초보의 걸음마를 뗀 그러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교가 아니라 초보 큐티하는 남자의 이 찌질한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제 막 큐티 목회를 시작한 이 교회의 모습을 여러분들에게 나누고 여러분들에게 간증하는 시간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설교하지 않고 간증하겠다고 하니까 제 아내가 '우리들교회 설교도 날로 먹는구나.'라면서 판단과 정죄로 또 지적질을 했는데 이상하게 큐티를 하고 난 다음부터는 제가 혈기가 잘 올라오지 않습니다. 먼저 저와 제 아내가 살아났고, 그리고 또 우리 가정이 살아났고, 우리 교회와 그리고 정말 많은 교회들이 살아나도록 여러분들께서 부끄러움 없이 여러분들의 죄를 고백해 주시고, 또 나누어 주시고, 또 오픈해 주셔서, 또 약재료로 써 주셔서 저희가 그것을 먹고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부끄럽지만 저의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그렇게 약재료로 써 주신 우리 김양재 목사님, 그리고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1. 목욕탕 세미나와 THINK 양육
저희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THINK 양육을 줌으로 받았습니다. 성난숙 평원지기님이 저의 양육 리더셨는데 '목사님은 어떤 죄가 있으세요?'라고 물으셨는데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태연하게 '글쎄요. 저는 모태신앙이고, 또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신학교도 바로 갔고, 그리고 선교사하고, 그리고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규모 있는 교회에 담임도 하고. 뭐 그러다보니까 크게 비행을 저지른 적도, 탈선한 것도 없고 큰 죄도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와 목사님은 집탕 중의 최고봉이시네요.' 그래서 제가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목욕탕 세미나 후에 들은 거라서 '아아, 집탕. 집에 있는 목욕탕. 집에서도 열심히 때를 밀고 계시는구나.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시간 김양재 목사님의 '돌탕집탕' 그 설교를 들으면서 '아 내가 정말 집에 있는 탕자, 집탕이었구나. 집탕 중에서도 최고봉이었구나.' 그리고 그것만 깨달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의 눈과 가정의 눈을 피해서 세상의 쾌락을 쫓던 돌아온 탕자, 돌탕이었구나.'라는 것도 깨달아졌습니다. 양육 시간에 김양재 목사님 그 말씀을 듣고, 또 함께 나누면서 제가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거룩한 척, 경건한 척, 그리고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셨으니까 당연히 교회에서의 신앙 생활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것이 저의 본래 모습인 줄 착각하며 나도 속고, 또 남도 속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저의 별명은 권 목사였습니다. 중, 고등학교,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별명이 권 목사였습니다. 얼마나 제가 연기를 잘했는지 겉으로는 모범생이었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판단과 정죄로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비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범생으로 인정받고자 끝없는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감투란 감투는 다 썼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반장할 사람.'그러면 항상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시켜주지 않아도 '내가 반장 할 게요.', 전교 회장도 '제가 할 게요.' 그래서 감투란 감투는 다 쓰고 삶의 스펙들을 쌓아갔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겉으로 보이는 여유로움과는 달리 속에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과 초조, 또 완벽하지 않으면서 완벽한 척을 하려니 그 강박, 이것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온유하고, 따뜻하고, 겸손한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게으르고 미루고, 그리고 쉽게 욱하고 혈기 부리는 성격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양보하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시기와 질투, 경쟁심이 있었고, 또 내 뜻대로 상대방과 상황을 끌고 가려는 조종 욕구도 굉장히 강했습니다. 제가 상담을 전공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공감을 참 잘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속에서는 공감하지 못하고 체휼하지 못하는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연기를 하고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데 가정에서는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는 왕 같은 제사장이 아니라 정말 왕이 따로 없었습니다. 파키스탄 선교사, 목회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미국 유학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 헌신한다.'라고 하면서도 저의 인정 욕구를 채우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그러한 도구였습니다.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이렇게 갖춰진 욕심은 아버지 교회를 물려받는데 넉넉한 스펙으로 쓰여졌습니다. 세습이라는 따가운 눈총에는 언제나 나의 화려한 스펙, 파키스탄 선교사라는 방패가 있었습니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척해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겸손해 보일까. 또 있어 보일까.' 그렇게 힘쓰는 그 모습이 영적 흉년의 증상임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치리하는 말씀으로만 쓰여졌습니다. 날 선 검과 같이 나의 혼과 영과, 그리고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성도들만 찔렀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의 고기 갈고리처럼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성도에게 상처만 주었습니다. 나를 자르고 쪼개는 말씀이 아니라 항상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고, 비방하는 말씀으로 사용했습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하니,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피할 수 없는 흉년이 저의 삶 속에 찾아왔습니다. 1차 흉년, 2차 흉년, 3차 흉년이 찾아왔음에도 이것이 흉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찬양의 풍성한 그 떡집을 떠나서 화려한 모압 땅에 거하면서도 이것을 축복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선교 단체, NGO, 미국 학교 이사, 뭐 열 몇 개 되는 그러한 이사의 자리, 인정과 자리에 욕심이 있었고, 이생의 자랑, 그리고 또 생색내는 것도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열심을 가지고 일하다보니 어느 해에는 해외를 나간 것이 열 여섯번이나 나갔습니다. 물론 단기 선교도 가고, 또 세미나도 인도하고, 회의도 참석하고 그랬지만 열 여섯 번을 나가니 어떻게 성도들을 잘 돌볼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교만했는지 김양재 목사님께서 10년 전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집회를 해 주셨고, 8년 전에는 목사님이 직접 문자로 '권 목사님 목욕탕 세미나 꼭 참석하세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물론 그때 뭐 다른 일정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감사가 아니라 세미나를 들으라고 하시는 것이 인정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흉년의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해외 일정이 다 취소된 지난해 하나님의 은혜로 장례식장에서 김양재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이 그러십니다. '아니, 그렇게 참석하라고 했는데 아직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올해에는 온라인으로 열리니까 꼭 참석하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목사님 앞에서 약속을 했습니다. 접수 기간이 지났음에도 목사님의 특별 배려로 끌려오듯 목욕탕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첫 시간 김양재 목사님의 룻기서 큐티 강해를 통해서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지금 내가 바로 죄가 보이지 않고,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영적 흉년에 있구나.' 그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럼에도 판단과 정죄의 죄가 있어서 '아니, 죄를 고백하는 것은 좋은데 왜 공동체 앞에서 고백을 해야 될까? 그리고 이렇게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상담가로써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그리고 우리가 카톨릭도 아닌데 왜 고해성사하듯 그렇게 죄를 고백할까?' 저의 세상 가치관과 인본주의 공부의 판단의 잣대로 감히 의심하면서 세미나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들교회 여자 목장을 참석했는데 심층 상담에서나 나올 법한 고백과 솔직한 이야기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자님의 확신에 찬 그런 처방, '아니 어떻게 저렇게 확신에 차서 저렇게 처방을 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그 처방에 순종하는 목원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목회의 모습이 깨달아졌습니다. 그 영적 권위에 순종하는 목원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남자 목장에서의 음란, 외도, 도박, 아니 어떻게 이러한 것을 고백하실 수 있을까. 마스크도 안 쓰시고 그렇게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 죄 고백을 하는데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우리들 교회에 '외도 소그룹이 있다.'라는 것을 제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니까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증 페스티벌을 통해서 동성애의 죄, 외도, 음란의 죄를 목회자도 오픈을 하고, 그리고 그 죄를 위해서 약재료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했던 목회가 잘못된 목회였구나.' 이것을 오픈하고 고백할 수 있는 분들이나, 이것을 받아 주시는 공동체나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솔직하게 이러한 것들을 나누지 못하도록 만든 그 책임이 나에게 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목회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픈한 그 죄는 조롱 받고, 판단, 정죄 받아야 할 일들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들이 자랑스럽게 꺼내 놓은 부활의 못 자국, 생명을 살리는 약재료 들이었음을 이 시간을 빌어서 여러분들에게 고백합니다. 그 약재료로 제가 살아났습니다. 목욕탕에서 한 꺼풀도 벗지 못하고 주저하는 저를 깨닫고, 그동안 얼마나 두꺼운 체면과 가식의 옷을, 또 때를 겹겹이 쌓아 두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목욕탕 세미나 이후에 THINK 양육 참여하는 것은 저희들이 1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아내와 제가 바로 THINK 양육을 등록하고 그리고 더 깊이 있게 우리의 죄를 보는 그런 기회가 되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면 아내가 항상 '죽고 싶다. 이혼하고 싶다. 나는 여기 있는 사람 말고 저기 강단에 서 있는 저 사람하고 살고 싶다. 또 내가 죽더라도 당신이 얼마나 이중적인 사람인지 온 성도들에게 다 공개하고 죽겠다.' 그렇게 항상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는 '지가 복에 겨워서 그렇지 어디서 나같은 사람을 만나.' 아내의 마음을 체휼해 주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 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무시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심각한, 그러한 말인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저와 같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또 목사 안수를 받고, 또 선교지로 나가 선교사로 사역을 하다, 또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또 여기서 좋은 대학에서 그렇게 상담학 박사 과정을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아내를 무시했습니다. 저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당신이 몰라서 그래.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당신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또 시작이야. 내가 지금 이 말씀 준비하는 거 안 보여? 나중에 해. 그만해. 됐어' 이것이 항상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무시하고, 또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 가정의 전통을 성경의 가치관보다 우선시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밖에서는 미쿡물 먹은 정말 쿨하고, 세련되고 교양 있고 아내를 존중하는 그런 남자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내는 항상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면 이혼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도 목사입니다. 둘째가 대학 들어가면 이혼하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욕탕 세미나와 THINK 양육을 받을 때까지 이혼을 막으시기 위해서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지난해 양육을 받고 우리 딸의 4수의 수고를 그쳤지만 붙회떨감의 진리를 깨닫고 '아 우리 믿음의 수준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붙여 주셨구나.' 그렇게 저희들 회개했습니다.
2. 죄의 고백
아내도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아내 THINK 양육의 리더분은 이효숙 평원지기님이신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줌으로 우리가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아내는 딸 방에서, 저는 거실에서 그렇게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양육이 끝나고 점심시간에는 아내가 딸 방에서 나오는데 항상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나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씩 적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속인 자였어. 기브온처럼 나무 패고 물 긷는 자가 될 게.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그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그동안 속아온 것에 분하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속인 자였음이 깨달아졌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기브온의 해어진 전대, 기운 가죽 부대, 낡은 옷과 신발, 곰팡이 핀 마른 떡, 그것의 경건의 모습으로 속인 자였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저는 촌스러워서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잡니다. 그런데 주일에는 여러 번 예배를 인도해야 되기 때문에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또 마시고. 그래서 두, 세잔을 항상 마십니다. 그렇게 주일 정말 은혜스럽게 예배를 마치고 나면 주일 밤에는 잠을 자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 긴 밤 아내의 눈을 피해서 밤새 유튜브와 틱톡을 봅니다. 성도들에게는 '저는 TV를 잘 보지 않습니다. 드라마도 잘 보지 않습니다.' 뭐 사실이죠. TV는 잘 보지 않고 유튜브만 보니까요. 항상 교양 있는 척 이야기하고 그렇게 유튜브와 틱톡을 밤새 봤습니다.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유튜브는 주인님이 뭘 좋아하는지 너무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제가 힘들여 찾지 않아도 옆에서 알고리즘으로 쫙 죄의 길로 가도록 쫙 인도해줍니다. 그래서 점점 더 자극적이고, 점점 더 야하고, 점점 더 내 육신이 원하는, 정욕이 원하는 그 방향으로 갑니다. 한 번 꽂히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라 시시한 유튜브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진짜 야동, 진짜 포르노까지 찾아보고 쾌락을 쫓았던 죄가 깨달아졌습니다. 물론 회개합니다. 물론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한 달, 두 달 참고 지내기도 했지만 다시 죄의 자리로 가곤 했습니다. 주일 정말로 은혜스럽게 예배를 잘 드리고, 설교도 강단에서 멋지게 말씀을 선포하고, 그리고 주일 뿐만이 아니라 토요일도 새벽 예배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인도하지 않으니 금요일날 심야 예배도 잘 인도하고, 그리고 밤새 그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죄가 보이고, 그리고 이것을 우리 공동체에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께 고백을 하고, 그리고 또 강단에서 고백을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나니까 죄가 힘을 잃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여전히 유혹이 있지만 이제는 꿈에서도 죄를 끊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목사님들마다 목욕탕 큐티 세미나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THINK 양육을 이야기하고, 큐티인 말씀집을 이야기하고, 우리들교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잘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죄 고백의 전통은 사실 우리 감리교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밴드를 조직할 때, 우리식으로 하면 목장입니다. 그 밴드 규칙을, 1738년 그렇게 밴드 규칙을 만드셨을 때 그 밴드 규칙이 이랬습니다. 다섯 가지 영적 질문에 대하여 모일 때마다 고백하게 했습니다. '첫째 지난 모임 이후 당신은 어떤 죄들을 범하였습니까? 당신은 어떤 유혹을 받았습니까? 어떻게 유혹에서 벗어났습니까?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어떤 생각과 행동이 있었습니까? 숨기기를 원하는 어떤 비밀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초기 감리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강조했던 부분이 바로 이 죄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레 목사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지나치게 경건주의적이다. 비현실적이다.' 그러면서 점점 감리교 전통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21세기 우리들교회에서 그 전통을 봅니다. 감리교에서는 비현실적이라고 사라진 이 죄 고백의 역사가 21세기 우리들교회에서는 일상적인 일이 되어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너무 충격적이고 제가 만나는 목사님들마다 이 이야기를 합니다. '초기 감리교회보다 더 감리교회보다 더 감리교회 다운 교회가 우리들교회입니다. 초대교회보다 더 초대교회 다운 교회가 우리들교회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100%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고 말씀이 보이고 깨달아지고 해석되어지는 역사가 있었다.'라는 것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그러한 인정의 죄, 교만의 죄, 그리고 자녀의 우상, 학벌의 우상, 여러 가지 많은 그 죄들에 대해서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큐티와 양육의 필요성을 알렸고 그래서 지난 12월부터, 우리 여섯 명의 풀타임 목사님들이 계시는데 남자 목사님 네 분은 제가 양육하고, 그리고 여자 사역자님 두 분은 제 아내가 양육했습니다. 1월부터는 21분의 장로님들이 계시는데 19분이 그 10주의 양육에 참여하셨습니다. 금요일 심야 예배가 끝나면 9시 40분쯤 됩니다. 그러면 밤 12시 30분까지 어쩔 때는 새벽 한 시까지 그렇게 함께 죄 고백을 하고 나눴습니다. 저도 저의 죄를 고백하고 장로님들도 저도 그런 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별 인생이 있습니까? 우리가 100% 죄인입니다. 서로의 죄를 나누고 고백하는 그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제가 양육 교사 훈련을 받지 않아서 사실은 이 짝퉁 양육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목사님들도 제가 양육을 했지만 완전한 죄 고백이 있어지지 않은 것 같고, 그리고 양육이 끝나도 다시 돌아가고 우리 장로님들도 다시 돌아가시려는 그런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이제 막 시작하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우리들이지만 죄를 고백하고 그리고 죄를 보고, 또 회개하고 우리들교회가 보여주셨던 그 많은 그런 삶의 간증들과 그 약재료들을 우리가 먹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그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제 남자 청년 양육, 여자 청년 양육, 교사 양육, 그리고 속회 지도자 양육, 그리고 교사들 양육. 그 양육들을 저와 제 아내가 감당하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죄 고백을 성도님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바리새인처럼 정말로 잘 외식하고, 또 제가 죄 고백도 회개도 그럴 듯하게 잘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죄 고백도 잘한다.'고 김양재 목사님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걸 잘 했습니다. 그래서 큐티 이전에도 저의 설교를 들어보니까 죄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죄 고백은 저의 죄 고백이 아니라 우리의 죄. 그렇게 은근슬쩍 묻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생색을 낼 때는 우리가 아니라 꼭 제가 저 혼자 생색을 다 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했습니다. 이생의 자랑이 죄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6년 전에는 오토바이로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그런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눈을 떠요 아프리카' 국제실명예방기구 비전케어에서 함께 하는 그런 프로젝트였는데 오토바이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제가 2년간 훈련하고, 그리고 아프리카를 그렇게 무사히 잘 다녀왔는데 제가 열심히 준비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서 돌아왔음에도 하나님께 돌리기 보다는 '아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 내가 잘해서 그 일들을 했다.'라고 그렇게 온갖 생색을 냈습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 그 일들을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이 정말 중요한 사역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오토바이로 가야 됩니다.' 제가 부추겼습니다. '오토바이로 아프리카를 9개 국을 종단하면서 아이 캠프도 하고, 그리고 또 환자들을 진료도 하고, 그렇게 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그 일을 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역입니다. 아프리카는 의사 선생님도 적습니다. 안과 선생님은 특히 적습니다. 스와질랜드 같은 곳에서는 안과 의사 선생님이 2분 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니 돈이 있어도 수술 받지 못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명을 해도 이것을 수술 받고, 백내장인데, 우리는 30분 수술 받으면 되는데 '백내장 수술을 하고 눈을 뜰 수 있다.'라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가 너무 너무 필요합니다.'라고 그 프로젝트 이야기를 했지만 그러면서 '오토바이로 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습니다. 40대, 50대 남자들의 로망 오토바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토바이로 가야 됩니다.' 주장을 했고, 그리고 2년 동안 공개적으로 '제가 이것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고 설교를 가든, 세미나를 가든, 회의를 가든 인천을 벗어나는 일이면 '제가 오토바이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고 심지어는 설교하러 가서도 오토바이 복장으로 설교할 때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랬습니다. '아유 지가 오토바이 타고 싶으니까 그러지.' 다른 분들이 다 보는 죄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드러낸다.' 하면서 저의 의를 드러냈고 '아니 내가 이렇게 수고했는데, 내가 목숨 걸고 내가 지금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하면서 하나님께 돌려야 될 영광을 제가 가로챘습니다. 아간처럼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내가 수고한 물건 중에 이 정도쯤이야. 외투와 은덩이와 금덩이를 감추는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들교회 여러분들이 죄를 고백해 주시고, 오픈해 주시고, 나눠 주시니 저의 죄가 보인 겁니다. 부끄러운 죄를 오픈해 주시니까 제가 그 약재료로 살아나고, 제가 우리 성도들에게 그 죄를 오픈하고 고백하니까 성도들이 그 약재료를 먹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속은 자 속인 자' 그 설교를 제가 다시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 설교는 김양재 목사님의 속은 자 속인 자 설교입니다.'라고 하면서 설교를 했는데 설교 후에 한 권사님께서 이런 문자를 주셨습니다. '속은 자 속인 자 말씀을 들으며 죄의 통곡이 있어지게 하네요. 저는 의인인 척하고 남편을 물건이라면 좀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소리 안 나는 총이라도 있으면 쏴 죽이고 싶었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종의 모습으로 살겠습니다.' 여자 성도님들은 정말 감동적인데, 그리고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그러한 부분이었는데 남자 성도님들은 웃지를 못하셨습니다. 이 권사님이 자기 아내인 줄 알고. 지난주 한 권사님께서 거의 3년 만에 저의 설교를 듣고 이런 문자를 주셨습니다. 3년 동안 예배를 참석을 안 하신 겁니다. 코로나 이후로 한 번도 온라인 예배도 참석하지 않으셨는데, 그러니 제가 어떻게 바뀌어졌는지, 설교가 어떻게 바뀌어졌는지, 죄 고백을 어떻게 하는지도 한 번도 듣지 못하시고 3년 만에 저의 설교를 들으신 겁니다. 그분이 이렇게 보내십니다. '대면 예배를 드리지 않은 이후 오늘 처음 목사님 설교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고백에 울컥하네요. 사실 3년 전 목사님께 저희 부부 사정 얘기하며 기도 받고 새 출발하려 했을 때 기도는 받지 못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이유로 목사님 부부가 하셨던 심리 테스트 및 부부 상담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위로가 더 절실했던 순간에 평가 받고 잘, 잘못을 지적 받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고 불난 집에 부채질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목사님 또한 그떄 당시 목사님 의도가 그렇지 않았기에 저의 이 이야기가 거북하고 괘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실 겁니다. 목사님 설교 속 목사님의 작은 죄 고백에 저도 목사님에 대한 마음 속 응어리를 고백하고 풀고 싶었나 봅니다. 용서하세요.' 이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큐티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 앞에서 저의 죄가 보여지기 전에 저의 세상 가치관,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으로 성도님들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방하고, 그리고 세상적인 기술로 어떻게 바꿔보려고, 제 열심으로 바꿔보려고 했던 저의 모습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다 내면서 회칠한 무덤이 따로 없었고 제가 바로 속인 자였습니다. 저희가 파키스탄 선교사로 있으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학벌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점의 우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좋은 학점을 받고자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스펙을 쌓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컨닝도 하고, 페이퍼를 쓸 때는 아주 교묘하게 짜깁기도 하고, 표절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학점을 만들었습니다. 우수하게 졸업했습니다. 학벌에 우상이 있던 저희가 파기스탄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획하지 않은 셋째를 임신하고 '셋째를 키우면서 우리 둘 다 공부하기는 너무 어렵다.'라는 생각으로 낙태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둘 다 목사이고, 둘 다 생명을 살리고자 선교지에 갔는데, 한 영혼도 전도하지 못했는데 한 생명을 죽이는 낙태의 죄를 짓고도 잠시 죄책감만 갖고 잊고 살았습니다. 둘째 딸의 4수의 고난을 보며 셋째가 태어났다면 그 아이가 입시를 치를 때가 정확히 지난 해 수능이었습니다. 조금 편해보려고 생명을 지운 우리의 죄가 인정되어지고 100% 옳으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THINK 양육을 통해서 죄 고백을 하게 하셨고 이 죄는 우리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죄인데 공동체 앞에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100% 옳으신 하나님은 이후에 우리 교회에, 죄송합니다. 표현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미혼모 시설에 있는 두 자매를 새가족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 자매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목회자 가정이고, 선교사였고, 목사였고, 이미 두 아이가 있고, 셋째를 낳아 길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가정이었음에도 생명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분들은 싱글맘 아닙니까. 미혼모로서 생명을 지키고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날마다 우리 죄를 보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매가 새가족인데, 세례도 받지 않았고 교회도 다녀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 앞에 우리 죄를 고백하고, 큐티인으로 우리가 묵상하고, 새벽 예배 큐티인으로 말씀을 전하고, 또 김양재 목사님의 큐티 노트를 또 함께 나누고, 그리고 아내가 매일 같이 자기의 죄를 그 큐티로 고백하고 그것을 나누고 그 말씀을 듣고, 그 새가족인 그 자매가 매일같이 큐티를 합니다. 그리고 그 큐티 나눔을 합니다. 목사님들도 잘 못하고, 양육받은 장로님들도 잘 못하는데 새가족인 이 미혼모, 이 자매가 매일 매일 그 말씀 속에서 자기 죄를 보고 또 그것을 약재료로 우리에게 나눠줍니다. 지난 금요일날 이 자매가 나눈 큐티입니다.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말씀인데 '질문하기, 나는 육체의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요? 버려야 할 것과 행해야 할 것. 하나님을 믿으면, 그리고 기도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마음도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닥쳐온 고난에 지쳐올 때가 있었습니다. 분명 성령을 따라 행하지만 육체의 욕심이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커지는 내게 실망도 하고 주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한탄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성령을 따라하는 척을 했지 실제로 행한 적은 거의 없었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기도만 드렸음을 고백합니다. 과연 나의 육적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큐티를 하면서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며,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따지고 있는 타락한 죄인임에 부끄러워 회개가 나옵니다. 이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 내 안에 굳혀진 육체의 욕심을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분의 적용입니다. '큐티를 통해 인정 받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속에서 잘 따르는 자가 되겠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 막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분이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 속에서 죄가 보여지고, 그리고 공동체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니 이렇게 아름다운 큐티로 아름답게 자신의 죄를 약재료로 나누고 있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큐티 나눔을 매일 나누고, 아직도 우리는 걸음마 초보 단계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 교회가 변화되어 가는 것을 우리가 느낍니다.
제 아내도 매일 큐티를 나눕니다. 그러면서 제가 초기에는 아내에게 '이런 죄까지 다 고백을 해야 될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그랬는데 아내가 자신의 죄와 그리고 또 친정에서의 어려움과 그 사건들, 고난들을 다 공개를 합니다. 그래서 속회, 저희는 속회라고 하는데, 속회 지도자들에게 나누고, 그러면 속회 지도자 분들이 그것을 속회원들에게 다 나눕니다. 전교인들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 죄패를 약재료로 나누는데 그것을 듣고, 그리고 그것을 먹고 살아나는 그런 가정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가정들이 하나, 둘 씩 저희들에게 그 삶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저희가 상담 전공했다고 그렇게 성도님들에게 이야기하고'상담하시죠.'라고 했어도 성도님들이 상담 받지 않고, 그리고 또 판단 받고 정죄 받는 것에 대해서 상처받으셨는데 이제는 성도님들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픔이 있는지들도 사실은 몰랐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으십니다. '목사님 그 큐티인 묵상 간증은 조금 심한 거 같아요. 그건 좀 우리들교회만 조금 더 특별한 교회 아닙니까? 거기만 이혼한 가정이 많고 외도하는 사람들이 많지 우리 교회에 이혼한 가정이 얼마나 된다고 그 말씀을 자꾸 하십니까?' 지난 코로나 3년 동안에 우리 교회도 세 가정이나 이혼했습니다. 왜 없습니까? 있습니다. 외도가 왜 없습니까? 별 인생이 있습니까? 100% 죄인 된 우리인데 똑같습니다. 리서치 & 리서치 의뢰에서 강동우 박사가 2016년도에 조사한 그 통계가 있습니다. 성인 남성의 50.8%가 외도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50대 이상의 남성 53.7%, 그런데 바로 이 50%가 넘는 이 사람들은 다 비 기독교인이거나, 다 우리들교회 교인이거나 그렇겠죠? 외도하고 외도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50% 이상 된 그 사람들이 외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외도했다.'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내가 그 죄를 졌습니다.'라고 고백하고 회개하는 그 공동체가 바로 우리들교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 약재료로 나눠 주시지 않았다면 저희가 살아날 수 없었습니다. 저희 가정이 살아날 수도 없었고, 저희 가정이 살아나지 못하면 우리 교회도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이 땅의 많은 그 교회들이 그 약재료를 통해서 죄를 봅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런 용서하심을 경험합니다. 여전히 '목사님 큐티는 어려워요. 왜 꼭 죄 고백을 해야 되나요? 예전처럼 목사님 23분 설교하시면 되는데 요즘은 50분 설교하니 설교가 길어져서 새가족이 왔다가 다 그냥 갑니다. 우리 목사님 좀 말려주세요.' 그런 분들 아직 여전히 계십니다. 그러나 갈등 충만은 성령 충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런 저항이 있을 때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 성령 충만한 일이구나. 그리고 우리가 가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그리고 또 그분들의 마음이 100% 공감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야기가 저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제 마음에는 계속 설교하고 싶은 그런 유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몰랐는데요.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저를 살려 주시기 위해서 약재료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 앞에서 제가 어떤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가르쳐 주시고 저를 살려주신 분들인데. 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바로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20절 21절 말씀.
사도 바울과 같이 죄 고백과 삶을 나누는 것, 자신의 육체의 그 연약함을 죄 고백으로 나누는 것, 교회를 핍박했던 그 죄를 그 연약함을 나누는 것, 성도들이 보면 시험 당할만한 그 육체의 그 약함을 부끄러움 없이 고백하는 것. 그렇게 아름다운 사역을 이어가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들교회 그 사역이 계속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바울이 오랜 감금 생활 중에서도 '나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온전하게 되어진다면,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된다면 죽어도 좋다.'라는 그런 고백처럼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그리고 또 우리의 부족함과 죄를 고백함과 죄를 고백하고,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디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적용하며 복음을 증거할 때
그 복음이 죄악 된 이방인들에게 전해졌고, 그리고 우리들교회와 우리들교회를 통해서 우리 선린 교회에도 전해졌습니다.
저도 이 죄 고백을 할 때 성도들이 '아 왜 우리 목사님 이렇게 찌질하실까. 거룩한 줄 알았는데 아 그것밖에 되지 않는가.' 그러면서 저에게 돌을 던지실 줄 알았습니다. 쫓겨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사도 바울을 받아 준 갈라디아 성도들처럼 업신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있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그 고백 버려지지 않습니다. 업신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했을 때 이 산지는 험한 산지라는 것 우리가 다 잘 압니다. 그 헤브론, 아낙 자손이 사는 험한 산지인데 저는 항상 '나에게는 편안한 산지를 주소서.'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의 죄를 고백하며 약재료로 쓰기 위해 어디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감당하는 그러한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적용] 나는 복음을 위해서 어디든지 가고 언제든지 가며 무엇이든지 하고 있습니까?
다시 한 번 고백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우정, 지영, 민희
기도제목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날마다 회개하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나를 지키시고 나보다 먼저 앞서가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께 내 영혼을 온전히 의탁할 수 있도록
엄마 피부병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고, 막내 여동생이 새로 입사할 직장에서 연수 잘 받고 무사히 집으로 복귀 하도록. 취업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예비된 그 한사람 되도록
남동생 공무원 시험 결과 앞두고 있습니다. 상황과 형편을 허락하셔서 부디 무난하게 합격시켜주세요
우리 목원들 가정과 직장에서 지켜 주시고 각자의 삶의 예배를 잘 드리고 만날 수 있도록. 신교제, 신결혼 문을 열어 주시길 바래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내가 입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가는 인생이 되기를 그것이 이웃과 나누는 삶이라고 기쁘게 생각하고 이웃사랑을 이루어 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혜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내어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기를
아빠의 완고함에 화를 내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아빠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아빠 구원해주시기를
하나님께서 우리 목장 식구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예선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며 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정신이 없는데 가만가만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아웃리치 모임 계속 잘 붙어가고 사역 위해 기도하도록
엄마가 교회를 옮기시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들교회로 오셨으면 좋겠는데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인도하심 따라 때를 기다리며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