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9 성령의 지금
사도행전 24:24-27
성령의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갇힌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고의 자유라고 했어요. 과연 대단한 자유함이겠죠. 그러기에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을 KJV은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그러니까 이 Redeeming, Redemption이라고 구원과 관계되는 말을 썼어요. 그러니 모든 시간을 구원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악한 날들 가운데서 악하게 살다가 지옥에 간다는 거죠. 가장 귀한 금은 황금도 아니고 소금도 아니고 지금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시간은 성령의 지금이에요. 그러므로 성령의 지금, 현재 이 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어야 합니다. (24절)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 벨릭스가 바울을 불렀다고 합니다. 24절부터 26절까지 불렀다가 세 번이나 나와요. 이건 사도행전에만 쓰인 단어인데요. 이렇게까지 부르고도 안 믿기가 힘들어서 이게 특이한 모델이라서 이 단어가 이렇게 여기만 쓰였나봐요. 총독이 죄수를 오라가라 했다는 의미보다는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듯 뭔가 듣고 싶은 게 있어서, 또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초대했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벨릭스도 대단하죠. 이렇게 부른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여튼 택자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울이 갇히지 않았다면 총독의 초대를 받는 일은 없었겠죠. 저도 힘들게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터키를 갔었지만 생각 못하게 국회의원, 대사, 총영사, 시장, 교장, 총회장님들의 초대를 받았네요. 제가 어떻게 그분들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의 행로가 너무 공감됩니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바울의 행적은 모두가 실례, for example이 됩니다. 그러니 전도를 하면서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번 이렇게 전도 주일에 거절을 당하셨다면 여러분의 생명책에는 똑같이 상으로 기록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벨릭스는 죄수인 바울을 왜 이렇게 따로 불렀을까요? 속으로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진짜 상담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24절 말미에 이 들음의 원어는 아쿠오예요. 청년부에 이제 보석들 이름으로 다시 네이밍을 하게 됐는데 거기 아쿠아 부서가 있어요. 그 아쿠아 말고 여기 아쿠오인데요. 여기 파라가 붙어가지고 제대로 못 듣는다 아주 중요한 단어죠. 그러니까 불렀는데 애초에 들을 마음이 없는 거예요. 이런 양가 감정을 가지고 자기 환경을 위로해주며 도장을 찍을 말, 이걸 듣기 원하는 거예요. 우리도 날마다 들으러 다니지만 욕심 때문에 십자가로 들을 마음, 즉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는 거죠. 왜죠? 이 벨릭스 부부의 모든 환경이 너무 찬란하자나요. 마찬가지로. 그러니까 교회 와도 안 들리는 들림을 내가복음 식으로 우기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바울에게 선고를 연기하고 자유를 주었던 벨릭스가 아내인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예수 믿는 도를 듣기 위해 바울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면 벨릭스와 드루실라의 환경이 왜 듣지 못할 찬란함일까요? 드루실라는 그냥 유대 여자가 아니고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증손녀입니다.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고요. 잠시 후 25장에서 등장할 아그립바 2세의 여동생입니다. 대대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사단의 괴수인 헤롯 가문의 공주이죠. 게다가 드루실라는 이슬이라는 뜻이에요. 절세미인이라고 하죠. 세상적으로는 이런 집안을 좋은 가문의 엄친아라고 해요. 이런 세상 대단한 가문이 예수 잡아 죽이는 가문이 너무 많죠. 이런 집안에서 하나님까지 부르짖고 있어요. 아버지에 뜻에 따라서 여섯 살 때, 이번에 다녀온 그 소아시아 터키에 있는 콤마겐의 왕자 에피파네스가 유대교가 된다는 조건으로 약혼을 했는데요. 에피파네스가 할례를 거부해서 파혼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열 다섯 살 때 수리아에 있는 에메사왕 아리두스와도 유대교를 조건으로 약혼하고 결혼을 했는데 이번에는 총독인 벨릭스의 유혹을 받고 음란을 행하고 이혼을 합니다. 나름 신결혼을 표방하고 나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어요. 노예 출신 벨릭스 또한 아내가 둘이나 있었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손녀가 두번째 부인인데요. 그러니 얼마나 미인이었을까요. 미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다른 미인을 찾아간다고 하죠. 출신에 열등감이 있었던 그는 왕족을, 그것도 최고의 왕족만 찾고요. '벨릭스가 가장 출세한 것이 아내 얻는 것이다.'고 다들 비꼬고 그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건 제가 한 얘기가 아니고 F. F. 브루스가 한 얘기예요. 학자.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두 번의 결혼이지만 각기 나름대로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가 이렇게 불륜으로, 모략으로 전 남편과 이혼하게 만들고, 특별히 마술사를 이용해서 위협하고, 설득하고, 두렵게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이런 모함까지도 가능한지 의문스러울 만큼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과감했습니다. 믿음을 그다지 빙자했는데 결론은 이렇게 났어요. 드루실라 18살에 세번째 결혼을 했고요. 벨릭스는 60살에 세번째 결혼을 한 거예요. 산전수전 다 겪어서 18살 드루실라 구워삶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나 봅니다. 그런데 현대에도 그런 일이 너무 많죠. 우리가 잘 아는 이슬같고 천사 같은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 아시죠? 첫째 남편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유명한 멜 파라인데요. 나이 많은 유부남이고, 지금 세번째 결혼을 했으니까, 너무 온순해 보이죠. 그런데 그가 엄청난 바람둥이이고 성질도 아주 못됐다고 했는데 그냥 햅번을 구워삶은 거예요. 그래서 멜 파라는 세 번째 부인을 버리고 오드리와 네 번째 결혼하죠. 그러나 곧 결혼 이후 계속되는 바람과 폭력으로, 그래도 십 몇 년 살았어요. 이혼을 했죠. 오드리는 그 후에 '나는 오드리 햅번과 결혼할 것이라.'고 어려서부터 외쳐 온, 그 로마의 휴일부터 노래를 부른 열혈 팬이었던 정신과 의사인 안드레아 도티와 결혼을 했는데요. 저도 어렸을 때 봤는데 너무 잘생기고 게다가 실력도 있어 보이고 멋있었어요. 그런데 그 도티도 결혼한 후에 오드리의 젊을 때 로마의 휴일, 그때 외모만 사랑했기 때문에 금세 젊은 다른 여자와 수 없이 외도를 한 거예요. 또 이혼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도티와 13년을 살았다고 하죠. 그러니까 늘 오드리는 참았어요. 많이. 성령의 지금이 아니고 지금이 중요한 것이 이 세상의 특징인 거예요. 정욕을 제어하지 않고 다들 멸망의 길로 달려갑니다. 잠깐인 이 세상인데요. 그런데 오드리 햅번을 보면 그 고난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 같아요. 이혼한 이후에는 유니세프 대사로 우리에게 아프리카 아이들을 수 십 번 찾아가면서 마지막 암 걸려서 생사의 고비길에도 소말리아를 찾아가면서 가장 기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갔습니다. 남자들이 교회를 나가거나 아니거나 여자랑 잘 놀고 너무 잘하면 하여튼 의심을 해봐야 할 일이 많아요. 예쁘고 착한 오드리가 나이 많은 이 나쁜 남자에게 당한 것일까요? 그도 유대인이죠. 그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뭔가?' 이걸 생각 안 한 거죠. 저도 이 말씀 없었으면, 그리고 제가 갇혀 있지 않았으면 똑같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 별 인생이 없으니까 우리 모두 정신 차리고 우리의 인생을 해석하고 오늘 잘 해결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보아야 해요. 그러나 볼 수가 없죠. 겉으로 이슬같고 청초하면 믿음도 좋아 보여요.
드루실라, 벨릭스의 이 드벨 커플은 모든 것을 갖춘 부부같이 보였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 한 곳의 이 불안함과 죄책감, 두려움이 끊임없이 있었을 거예요. 특별히 드루실라는 말씀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선교보다 더 힘들다는 재혼, 삼혼 부부여서 그런지 아부튼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복음을 듣기 위해 바울을 따로 불렀어요. 그러니 오늘 24절에 갇혀 있는 바울은 자유롭지만 여전히 죄와 죄책, 그리고 두려움에 갇혀 있는 드루실라가 남편 벨릭스와 함께 예수 믿는 도를 들으러 오게 됩니다. 이 찬란한 환경으로 들을 마음이 없는 그들은, 이 부부는 악한 일에는 하나가 딱 되어서 찰떡궁합이에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또 에스더를 죽이려던 하만과 세레스 같이 그렇게 악한데도 둘이 부부는 사이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우리 창세기에서 보니까 레아는 이 땅에서 남편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합했어요. 오드리가 그러지 않았을까요. 라헬은 야곱이 떠받들어주니까 죽을 때도 오래 못 살아서 슬픕니다. 그래서 마지막 아들을 낳으면서 베노니라고, 슬픔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짓고 떠났어요. 아마도 그 일로 야곱은 이 라헬을 분별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레아를 영원한 동반자로 정하고 약속의 땅에 레아를 묻고 떠났어요. 우리는 끝까지 가 봐야 압니다. 여러분의 이 조강지처의 호적은 금보다도 더 귀한 멸류관이에요. 이 세상은 잠깐이에요. 오늘 큐티인 내용은 베드로전서 3장인데요. 아내들아 .... 순종하라 ....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사라의 딸이 된다고 했어요. 제가 우리 남편 갔을 때 이거를 묵상했는데 제가 순종해서 이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므로 사라와 같은 반열에 들었다고 그때 칭찬을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남편들아 .... 너희 아내 .... 귀히 여기라 .... 너희 기도가 남편들이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기도가 막힌다고 해요. 여러분들 영적 생활이 막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거는 아내 순종보다 남편의 사랑이 더 중한 거예요. 그런데 이 드벨 부부에게는 이런 순종과 사랑은 없죠.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데요. 이 땅에서 잘 사는 거 밖에 모르니까 이런 말씀이 안 들리죠. 이 세상에서 주님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어떤 것도 그 이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들은 안 들렸지만 그래도 듣고 싶어한 것 만으로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 상황이 2천 년 동안 우리에게 이 상황이 정말 기쁜 소식, 복음이 되고 있죠. 그래서 내 생애 내가 해석되지 않는 고난, 이해되지 않은 아픔,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놓여졌다면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듣게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위로받기 위해 말씀을 듣나요? 순종하기 위해 말씀을 듣나요? 여러분의 결혼은 둘이 하나가 되어 지금은 말씀이 안 들리나요? 하나가 되지 못해 지금은 말씀이 들리나요? 하나가 됨에도 말씀이 잘 들리나요?
2. 의에 대하여 들어야 합니다. (25절)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25절이에요.
22절에서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을 전했을 때 벨릭스는 이미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요? 오늘 특별히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다고 주제만 적혀 있어요. 그럼 바울이 무슨 설교를 했을까 너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러면 이때 가 가지고 '어찌하여 너는 세 번 결혼을 했냐? 어찌하여 불법적으로 돈으로 총독이 됐냐?' 이러고 야단쳤겠어요? 보통 개혁한다고 그렇게 가서 야단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절제와 심판을 구속사 복음으로 설명했으리라고 생각이 돼요. 사실 13장에 바울은 의에 대해서 이미 설교를 한 적이 있어요. 1차 전도 여행을 했을 때 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회당에서 설교를 했자나요. 그때 자신의 간증을 섞어서 구속사적 설교를 했다고 그랬어요. 구약을 쫙 꿴 후에 예수님과의 연결 고리를 다윗으로 언급했어요. 바울은 사울 지파자나요. 그래서 사울 지파 얘기도 거기 썼어요. 그래서 제가 '아 간증을 했겠구나.' 그렇게 설교했습니다. 기억나시죠? 그런데 자기도 사울 지파였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연결 고리로 언급을 했다. 이 다윗이 어떤 사람인고 하니 살인과 간음을 행하고 그것도 가장 충직한 부하의 아내를 빼았았다. 그런 후에 삶의 결론으로 아들도 서로 형제끼리 누이를 좋아한다고 집착하더니 성폭력을 행하고, 그런 후에는 그 누이를 미워하고, 또 그런 형을 살인하고 살인한 아들은 이거 다 아버지 탓이라고 그러고, 그래서 아버지를 배반하고 완전 이거 콩가루 집안이에요. 다윗의 집안이. 이런 다윗이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아니죠.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주님이 필요한 사람인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자식을 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으로 그 13장 39절에 이런 결론을 냈죠.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예수를)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기억나시죠? 그러니까 바울의 설교가 '너 말이야 그러지마. 왜 자꾸 여자 얻어들여.' 이런 게 아니고 '착하게 살아라. 사랑해라. 참아라. 그래야 총독 자리 지킨다. 그래야 성공한다. 아니면 '이 독사의 자식아 니가 그러고도 총독이냐?' 세례 요한이 그랬죠. 이게 아닙니다.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게 아니라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도 바로 사도행전 13장에서 시편 말씀에 기록된 이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 콩가루 집안인 벨릭스 편에서 공감해주면서 이 의를 전한 거예요. 이해되시죠? 맨날 이렇게 잘난 척하고 복음을 전하면 안 돼요. 이 설교를 누가 듣고 있습니까? 남의 여자를 빼앗은 벨릭스와 남편이 있는데 불륜을 하고 음란을 행하고 결혼한 지금 드루실라가 이 얘기를 듣고 있는 거예요. 자신들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벨릭스는, 그러니까 깨달아야 했습니다. 돌이켰어야 했어요. '아 다윗이 나와 같았구나. 내가 의롭지 못하구나. 죄인이구나. 내 이 화려한 성공, 권력, 돈 가지고 불안한 이유가 이것이었네.' 그런데 거기까지 예요. 거기까지 들으니까 바울 보고 '지금 가라.' 딱 스톱했어요.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의로움에 대하여 아직도 착함이나 성실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니 늘 내가 옳습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가 의로움이라고 생각합니까?
3. 절제에 대하여 들어야 합니다.
->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알아야 절제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사람도 너무 좋은 게 생기면 참기가 쉬워요. 상대방이 좋으면, 연애할 때 잘 참자나요. 그런데 바울도 예수님도 절제에 대한 가르침은 음행과 연관이 많이 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9절에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러나 우리가 비단 음행뿐이겠습니까?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는 게 다 음행이에요. 그런데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모르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니까 자기 의밖에 모르기에 자기가 잘나서 절제를 모릅니다. 그러니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여기다 음행을 들이붓고 술을 들이붓는 거죠. 제 남편이 고혈압이었는데 음식도 전혀 조심하지 않고 고기만 좋아했어요. 잡곡밥 아주 싫어했어요. 생선회도 싫어했어요. 그래서 그의 건강을 위해서 잡곡밥, 현미밥을 하면 화를 냈기 때문에 늘 고기에 갈비에 흰 쌀밥을 대령해야 했어요. 어려서부터 환경이 좋아서 참아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겉으로 의롭지만 절제를 모릅니다. 먹고 싶은 것을 못 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명 때문에 잠도 자고 먹기도 해야 되는 거예요. 도 사명 때문에 안 먹기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의 주제가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죽는다.'예요. 정말 영육은 일원론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믿음이 있어야 말씀이 들리고, 또 안 들리는 들림 말고, 정말 자기를 위한 사랑하는 이 말도 듣는 거예요. 결국 들어야 될 말을 안 듣기 때문에 결국 심판이 오는 거죠. 문자적으로도 우리 남편은 심판 받았습니다.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자를 안 만났다고 자기는 의롭다고 큰 소리쳤지만 자기 몸에는 늘 그렇게 술을 들이부었어요. 똑같은 거 아니예요? 술도, 고기도, 흰 쌀밥도 우리 부부는 너무 하나가 안 되어가지고, 그 부분에 남편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제가 막을 수 없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의사 앞에서 말이 많다고, 그리고 남편은 체격도 건장했죠. 제가 그의 구원을 내놓고, 생명 내놓고 기도하는데 어찌 건강 기도를 안 하겠어요. 그런데 그와 하나가 너무 안 되니까 제가 주님과 연합하는 복을 누렸죠. 그럼에도 이 몸에 나쁜 것을 끊지 못하게 하는 제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였죠. 그러니까 지금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함으로 종말론적 인생을 저절로 살았습니다. 결론은 천국에 갔기 때문에 제가 이 잔소리해서 싸우는 것보다는 그냥 기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제가 그때 너무 제 자신에 대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여러 감정을 직면했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을 도울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절제가 참 중요합니다. 식탐과 이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이 절제가 안 되어서 그렇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가장 마지막 열매가 절제예요. 식탐, 정욕, 이 집착 등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인데요. 그러니까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온유한 자이고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했자나요. 그런데 누가 절제할 수 있어요? 진리의 성령님이니까 그저 가만가만 오늘 말씀 듣고 오늘 말씀만큼만 자기를 절제하는 것이 최고의 비결입니다. 그러니까 내 옆에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도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냥 날마다 예배 드리고, 말씀으로 인도하고, 계속 똑같은 일을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조금씩 절제해 가는 것이 우리들교회 성도들 중에서 너무 많이 그런 사람들을 보았어요. 예배 오고 목장 가면 진짜 다 변하더라고요.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야 진정한 의인이 되는 것이죠. 성품이 아무리 좋아도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이게 악인인 거예요. 지식으로 의롭게 되는 게 아니예요. 벨릭스는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안다고 그랬어요. 바울보다도. 그런데도 예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절제를 모르니까 이혼, 재혼, 삼혼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합리화를 시키는 거예요. 성령이 임하면 주 안에서의 바른 생활과 의로움이 임하죠. 그래야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가장 절제가 안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4.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25-27절)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25절에서 27절까지인데요.
의를 모르니까 절제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심판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설교를 들은 벨릭스가 어떠했습니까? 두려워했다고 했어요. 즉 두려워했다는 건 찔림이 있다는 거죠. 바로 이 심판 때문입니다. 심판이 없다면 우리는 마음대로 살아도 돼죠. 심판이 없다면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고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악하게 살다가 그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면 내가 악을 행해도 겁낼 게 없죠. 악인에게는 반드시 그러나 심판이 있어요. 지옥에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심판은 악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에게도 심판이 있어요. 어떤 심판입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는 심판이에요. 즉 의인도 악인도 모두 부활하고, 의인도 악인도 모두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의인의 심판은 이 땅에서 참아야 할 것도, 인내해야 할 것도, 눈물 흘릴 것도 많지만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우리 눈물을 닦아 주시는 심판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도 벨릭스는 '지금은 가라.'입니다. 여러분들 마귀 콘테스트에서 최고의 영예를 차지한 대상은 바로 차차 마귀라고 합니다. '응, 나중에. 지금은 아니고.' 현재 겉으로 드러난 내 삶이 화려하다면 아무리 기구한 인생과 가정사,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가진 드루실라라도 들리지가 않아요. 마지막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죠. 드벨 부부는 거의 구원까지 온 것 같았는데요. 99.9%까지 온 것 같았는데요. 바울을 이렇게 불러다가 들었자나요. 이렇게 기가 막힌 설교를 들었어요. 그런데 결국 거절했어요. 거의 합격이 없어요. 99.9% 합격은 없어요. 마찬가지로 거의 구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왜 바울의 말을 들어도 회개에 이르지 못한 것일까요? 결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은 가라.' 해놓고 26절에 보니까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 그렇게 돈 많은 그가 초라한 노인의 강론을 듣고 돈을 바랄까 하고 불렀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제 자기네는 안 믿어, 들은 말씀은 다 부러 잊고자 해요. '아니 서로 좋고 즐기면 되지, 왜 절제해?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아, 이혼 안 하는 부부가 어딨어? 지금은 즐겨야 해.' 그런데 바울이 실제로 헌금을 많이 들고 왔기 때문에 벨릭스는 바울이 돈이 많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가두어 놓으면 동료들이 보석금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러나 바울은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교회가 돈 버는 데예요? 헌금이 많으면 뭘 자꾸 달라고 그래요. 옛날에 우리가 휘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돈을 바라는 거예요. 그렇게 돈 많은 그가 초라한 노인의 강론을 듣고 돈을 바랄까 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았죠. 정말 알지 못하는 세계가 믿음의 세계 아니겠습니까? 돈 가지고 감옥에 갇혀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게 믿음의 세계입니다. 결국 여기도 끝에 돈이 있는 거예요. 지금. 어디나 끝에 돈이 있어요.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직장에서 결국은 다 돈이 있어. 그래서 영접도 하고, 영접도 하지 않고. 결국 우리도 돈을 좋아하니까 이 수많은 죄를 회개하기 보다는 내 죄는 해결하지 않은 채 그것을 딱 숨기고, 그 다음에 이 상황에서 나를 잘 되게 해주는 말, 위로해 주는 말만 듣기 원하니까. 그래서 내 지금 환경에서 돈을 내려 놓으라고 하니까 예수님 고백하기 싫어요. 그러니까 죄 고백과 이 상황에서 심판을 말하면 다 두려워 떠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안 나가, 목장 안 나가.' 이게 주제가인 거죠. 이게 다 숨겨 놓은 죄가 있어서 그래요. 미모에 재물에 음란하게 바람 피워서 남편을 버렸는데, 그래서 능력 있는 남편까지 얻은 그 드루실라, 그의 결국은 어떠했습니까? 먼저 그 아버지 헤롯은 충이 먹어서 온 몸의 내장이 썩어 들어가 갑자기 급사했어요. 그리고 친 언니는 친 오빠와 근친상간의 불륜의 행하고, 고모인 헤로디아는 남편을 버리고 시숙과 근친을 행하다가 이 죄를 지적하는 세례 요한을 죽였죠. 그것도 목을 소반에다가 딱. 세례 요한이 불쌍하게 죽은 것 같아도 여러분 이 구속사를 봐야 돼요. 그리고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첫째, 둘째, 셋째 아들들을 죽이는 아주 비극적인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 27절에 드디어 총독이 베스도로 바뀌면서 로마로 가게 됐어요. 바울은 계속 구류를 해 두고. 그런데 여전히 외모와 돈을 추구했던 그녀는 썩어도 준치라고 로마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 거주했던, 그 뭐 '강남에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돼.' 이런 거 있자나요. 폼페이에 살았어요. 물고기 모양의 이 도시는 물고기 눈 부분이 아주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2천 년 전인데도 도시에 헬스장, 수세식 화장실, 화려한 아파트, 극장, 휴양 시설, 대리석 수영장, 그 당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던 스타비안 목욕탕, 천혜의 환경을 가진 항구 도시로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며 겨울은 짧고 봄과 가을은 긴 쾌적한 도시여서 늘 파티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래서 내가 이 정도는 살아야지.'하고 거주하다 불과 30분만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뜨거운 용암 아래 그저 묻혀서 삶을 마감했어요. 그의 삶이 심판이란 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죠. 또 이 남편인 벨릭스는 가이사랴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충돌이 있었는데, 아주 이 사람이 잔인한 사람이거든요.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죽였어요. 그래서 이제 막 소환돼가지고 결국은 사형을 언도 받고 집행까지는 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다 죽을 죄라는 거를 세계에도 알려줘서, 세상에서 인싸가 돼서 살려고 했는데 세상에서도 '너희는 사형이다.' 결말이 심판이에요. 벨릭스가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외도를 하고, 집을 나가고, 자녀를 버리고, 쳐다보지도 않는 부모들이 많아요. 지금은 모르나 후일에 이것이 얼마나 큰 심판의 장중에 있는 것을 지금은 몰라요. 이 사형 언도 사건을 통해서 벨릭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기억했을까요? 드루실라도 갑자기 화산이 폭발했는데 그 복음을 기억했을까요? 바울을 이렇게 만나기를 원했다는 것 때문에 긍휼히 여기셔서 그랬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천국에 가서 드벨 부부를 좀 만나볼 수 있을까요? '내가 그래도 마지막에 회개했어요.' 그러기를 소원해요.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들의 누림은 세 번 결혼했다고 해도 너무 이 세상에서 잠깐인 거예요. 그래서 죄를 짓기에 그렇게 담대하면 안 됩니다. 내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그런데 바울은 벨릭스든 드루실라든 그 한 사람을 보았어요.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가장 추한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이 구속사적 사실에 주목했어요. 인생의 목적이 천국에 있는 인생은 영혼 구원이 제일의 관심이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해가 되지 않는 환경,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기에 연기를 거듭한 기가 막힌 사건 가운데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과 동행하는 줄을 믿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 의, 절제, 심판의 사이클이 이해가 잘되시나요? 심판이 있다는 것 믿으십니까? 누구에게 돈을 바랄까하고 교회에 옵니까?
제가 이제 루마니아, 터키 등 힘든 지역에 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는데 도리어 고위직에 있는 여러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니까 풍성한 우리나라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 부모가 없는, 부모가 버린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편지를 받았어요. '저는 청주의 그룹 홈에서 살고 있는데요. 우리들교회 안주은 집사님이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시면서 큐티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큐티인은 원장님이 늘 구입을 해주세요. 코로나 때 온라인으로 우리들 예배를 드렸는데요. 설교를 듣고 저에게 들리는 말씀을 적고요. 그 다음에는 적용 질문을 적어서 나눔을 합니다. 이렇 주일 예배, 수요 예배, 청소년 예배, 큐티 수련회, 그리고 각종 예배를 다 드리게 되니까 김양재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 되었어요. 한 달에 한 번 큐티 상을 주시는데요. 큐티 상은 한 달 동안 한 번도 큐티를 빼먹지 않고, 적용을 한 가지라도 하고 삶으로 변화가 있으면 큐티상을 주세요. 옷이나 물건을 주는데 저는 옷이나 물건보다 우리들교회 가서 목사님 만나는 것으로 큐티상을 주시면 안되시겠냐고. 그래서 드디어 7개월 만에 큐티상으로 목사님을 뵙는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황홀해가지고 잠까지 설쳐가면서 주일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판교 왔는데 저를 못 만났지 뭐예요. 너무 아쉽죠. '저는 부모님이 안 계셔요. 그래서 시설에서 살다보니까 이 상처가 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과 매일 큐티로 예배를 드리며 속 마음을 얘기하다 보니까 아픔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성령의 화해 설교를 듣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큰 시설에서 있을 때 원장님과 선생님들에게 고통을 받아서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되었는데 용서는 하나님의 특권이라고 하시니 용서할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나를 버리셨지만 영적인 부모인 하나님과 목사님 감사합니다.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터키에 선교 가셨다고 해서 너무 걱정돼서 안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휴 쉬었습니다. 한 달에 받는 용돈이 조금 있는데요. 목사님께 뭘 드릴까 고민하다가 목사님께서 늘 눈물, 콧물 흘리시는 게 기억에 남아 이 손수건을 준비했습니다.' 아유 이 아이가 편지 너무 잘 써요. 편지 봉투도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편지를 종이 글씨로 이렇게 두 장에 걸쳐서 너무 잘 쓴 거예요. 진짜 제가 너무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이렇게 마지막에 저한테 또 경고를 하네요. '목사님 끝까지 타락하지 마시고 겸손하고 영혼 구원에 안타까움을 가지시는, 하나님이 꼭 쓰시는 겸손한 목사님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진실이가 기도를 해 주니까 이 기도가 막 응답될 것 같아요. 제가 손녀 딸이 고1이라서 진짜 남의 일 같지 않아가지고 열심히 읽었는데 얼마나 편지를 잘 썼나 몰라요. 그러니까 성령의 지금을 순종하고 잘 살아내고 있어서 최고입니다. 너무 귀하게 생각이 돼요. 진짜 요셉이 따로 없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1부 예배를 드리고 안주은 선생님하고 연락을 좀 해봤더니만 너무 놀라운 사실을 들은 거 있죠. 진짜 너무, 얘는, 손수건도 얼마나 좋은지 흡수가 잘 돼. 눈물이. 그러니까 사랑하니까 손수건 하나를 골라도, 편지, 뭐 또 빵도 구워왔어요. 그것도 자기가 만든 거래요. 그런데 얘가 글쎄 지적장애 3급이라 그러자나요.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진짜 고난이 축복입니다. 제가 이 아이한테 큐티인 원고를 좀 맡기려고 그렇게 지금 해봤는데 쓸 것 같아요. 여러분 큐티인은 국회부터 부모가 안 계신 청소년까지 다 통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 적용할 때예요. 안 집사님 한 분이 가셔서 이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해요.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이 선교지나, 감옥이나 이 큐티인이 가는 곳에 축제가 열립니다. 청년부를 담당하시는 어떤 목사님이 자기가 설교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때는 열매가 없더니 그냥 큐티인을 읽게만 했는데도 청년들이 갑자기 나눔을 하면서 축제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이제 나누는 친구들 중에서 간증 쓰는 친구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적용해야 되는 일이에요. '차차 하지 뭐.' 하면 멀리 멀리 성령님이 가실 수가 있어요. 무엇이든지 지금 들어야 하고, 지금 영접하고, 지금 적용해야, 지금 큐티해야 해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나를 불러주는 한 영혼에게 전도할 시간이 곧 성령의 지금입니다. 남편을 보니까 반드시 심판은 있어요. 그런데 그 심판 받아야 될 가운데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거죠. 의와 절제와 이 심판의 얘기는 누구도 듣기 싫어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남편은 마지막에 예수님을 불렀어요. 평소에 복음 제시를 해준 사람도 없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우리 남편을 보고 '천국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요?' 물었을 때 그 입에서 '예수 이름으로요.'라는 대답은 인간의 힘으로 고백한 소리가 아니예요.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목숨 걸고 기도하면 우리의 모든 식구들의 구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말해서 다 될 것 같지만 구원에 최우선을 두고 살아갈 때에 나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속지 않으시고 다 카운트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말씀 맺어요. 성령의 지금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절제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차 오는 심판에 대해서 경고를 들어야 하는 거예요.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민희
기도제목
지영
엄마 수술한 곳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잘 먹어서 살찌워 항암치료 받을 수 있게
엄마한테 잘 맞는 항암제 찾을 수 있도록
엄마 주치의가 엄마를 포기하지 않고 치료해 주는 거
예선
성품이나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로 사는 인생임을 잊지 않도록
가만가만 오늘 주시는 말씀 듣고 오늘 말씀만큼만 절제하며 한 주 보낼 수 있도록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지 건강이 좀 나빠진 것 같은데 회복시켜 주시길
아웃리치 모임 계속 잘 붙어갈 수 있도록
미혜
나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은 수치스러움의 감정이 교만임을 인정하고 진정 회개할 마음을 주시기를
지금의 시간을 원망과 남 탓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변하지 않는 은혜를 사모하는 성령의 지금이 되기를
부모님의 잦은 싸움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내 감정을 쏟아붓지 않기를
피해의식 열등감으로 인해 분노하는 아빠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 너무나 간절한 기도 제목에 하나님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