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2 성령의 자유
사도행전 24:17-23
제가 없는 동안 성령의 고백으로 사과 많이 하셨나요? 무슨 말인지 모르시죠? 이번 선교 여행에 고위직에 계신 어떤 분을 만나서 제가 복음을 제시를 했어요. 그런데 영접을 하셨네요. 그분의 문제는 직장의 관계 문제였는데 상대방에게 아무리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다고 했대요. 그래서 제가 '그분 때문에 저를 찾아왔고 천하보다 귀한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그분이 사실 얼마나 공로자고 고마운 분인가 그 생각으로 가서 그대로 그렇게 한 번 사과를 해보시라.'고 했는데요. 그분이 글쎄 그렇게 적용을 하셨어요. 그랬더니 상대방과 상관없이 마음이 좀 평강하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유함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는 집회를 참석하시고 확실하게 그날 예배 때 다시 한번 일어나서 영접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그 한 분 때문에 간 것만 해도 제가 이 소기의 목적을 다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한 분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해요.
1. 죽은자의 부활을 전합니다. (21절)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 21절이에요.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에 내려오시며 사도행전이 시작이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이 되고, 또 세워지고 바울에 의해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교회가 세워진 것을 우리가 요즘 계속 읽고 보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선교 보고 겸 해서 말씀을 전하겠어요.
이번에 간 터키가 바로 이 소아시아에 세워진 교회들이 있는 곳이에요. 우리가 볼 때 얼마나 핍박을 받은 교회입니까. 그래서 이제 서머나 교회자리도 가봤고 에베소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에 갔지만 교회는 없고 무너진 터만 있었어요. 바울의 눈물로 세워진 그 선교지, 터키 그곳을 거의 다 이슬람이 꽉 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예수 믿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이제 왜 그럴까를 THINK 또 해봐야죠. 아마 그곳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교회나 소아시아 교회가 그대로 있다면 전 세계의 성지가 되어서 아마 터져나갈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이제 어떤 건물이나 이런 것들이 우상화되는 거를 안 좋아하시니까 무너지게 하셨죠.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이나 시신도 없게 하셨죠. 그런데 for example, 샘플로 로마 바티칸 성당에 베드로의 시신이 있다고 하니까 거기 지금 미어지게 가죠. 카톨릭들이. 그곳에 가 보면 남대문 시장이 따로 없어요. 성당 안에서도 그냥 다 떠밀려 가는 거예요. 인파의 홍수. 이 땅에 우상 삼을 것은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에 중동 선교사 수련회를 갔기 때문에 중동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릴게요. 소아시아 교회가 있는 터키가 거의 알라를 믿는 이슬람으로 채워졌는데요. 그 이슬람은 이스마엘의 후예들이고 이스마엘을 내쫓을 때 큰 나라를 이루리라 한 거 기억나시나요? 그래서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큰 자다. 라는 생각 때문인지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영적인 피해의식이 아닌가. 그들 정말 믿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아이들을 막 10명씩, 10명 더 이상씩 낳아가지고 점점 세계로 밀려오고 지금 큰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슬람 국가라고 하는 나라만도 43개국에 달하고, 한국에 2009년도에 3만 5천명이었던 그냥 그들은 이미 100만명이 훨씬 넘은지가 오래되었어요. 그들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알라로 무장되어 있고, 그리고는 너무 이제 행위로 천국 가야 되니까 착해 보여서 그 경건함과 종교심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예인 마호메트를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일생에 한 번 사우디를 가야 하는 것이 5개 조항에 하나 들어가 있어요. 마호메트의 출생지 사우디의 메카카 성지로 되어서 평생 돈 모아 가는 것이 소원인데요. 그것도 특별히 12월에, 그때가 그냥 한꺼번에 수 백만 명이 해마다 참배를 하면서 마귀 돌 기둥에 돌 던지며 마귀를 쫓는다고 그렇게 돌에 던지는데, 그것도 가까이 가서 던져야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아서 해마다 참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많이 죽어요. 그래도 그곳에서 죽으면 천국 간다고 그렇게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이들의 종교관이 무섭죠. 그래서자살 폭탄 테러하다가 죽어도 알라를 섬기다가 죽는 것이니까 다 기쁨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거기 사우디에 그거 성지 한 번 간다고 그러는데 우리도 예배가 열렸는데 현장 예배를 좀 그렇게 사모하면 안될까요? 왜 아무도 반응이 없어요. 진짜 그렇게 죽음을 불사하고 천국 가려고 지금 온다는데. 그런데 그들이 모든 거 다 갖춘 것 같은데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자유함이에요. 너무 경직돼 있고 여자들이 이 더운데 부르카를 그냥 첩첩이 쓰고 다니면서, 나는 저 머리를 보면서 '저 땀띠나면 어떻게 하나.' 그렇게 걱정이 되는데. 그렇게 남자들의 종속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어떤 아주 세련되고 멋있는 여자가 남편을 쫙 기다리고 있는데 그 남편이 오면서 여자한테 눈도 안 마주쳐요. 그냥 쌱 지나치더라고요. 문화가 그래요. 철저히 남자 중심의 세계이지만 그들은 도덕의 유치원 시대에 살고 있고 영적 문맹자들로 보입니다. 무서워요. 이렇게 알라를 믿고 있는데도 바울의 행적으로 터키의 이스탄불만 해도 인구가 2천 만명인데요. 소아시아의 7 교회나 로마시대의 그런 지하 묘지, 갑바도기아 등을 보러 1년에 그 이스탄불만 해도 4천 만명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이 전해 놓은 복음은 간 곳이 없고 바울 때문에 먹고 살면서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아요. 이런 기가막힌 일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에 바울 사도 때문에 너무 감격하면서 사도행전 읽고 있는데, 세상에 그 대단한 그곳을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또 여자인 제가 그곳에 가서 복음의 메카인 소아시아의 터키에서 복음을 전하다니 이야말로 차별 없는 복음의 진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중동 지역 선교사 수련회를 이번에 터키에서 한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한 150여 분이 참여를 했는데요. 이런 곳에서 선교를 하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그 힘든 것도 이번에 가서 삶으로 전하니까 다들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 폭발했어요. 저를 불러주신 중동 선교사 협회 회장님은 서울대학교 조선 공학과를 졸업하시고 요르단과 모로코에서 20년 사역하고 계신 분인데요. 3여년 전에 THINK 세미나를 참석하시고 아주 저를 기다려서 불렀어요. 그 이후에 2년 7개월을 하루도 안 빠지고 큐티를 하고 계시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한글 4종 세트, 영문 세트를 가지고 나오셔서 큐티를 비교하시면서 하신대요. 장년 큐티인이 안 깨달아지면 청소년 큐티인, 거기도 안 깨달아지면 어린이 큐티인, 그것도 안 깨달아지면 새싹 큐티인도, 한 줄로 깨달아지는 게 있다는 거예요. 그 똑똑하신 분이. 그리고 영어도 보면서, 아주 열변을 토하시면서 간증을 하셨는데, 그런데 그 좋은 큐티인이 4종을 여기서 유럽으로 보내려면 10만원이 넘게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곳에서 종이 큐티인이 얼마나 귀한지 나가보면 알아요. 다들 그 너무 큐티인을 갖고 싶고 하고 싶어하셨는데요. 우리는 큐티책의 귀함을 모르죠. 그래서 이번에는 선교사님 전체에게 pdf 파일로 보내드렸는데 비교가 안 된다고. 그 선교사님한테도 우리가 pdf 파일 보내드리다가 이번에 종이책을 갖다 드리니까 막 너무 비교가 안된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는 큐티앱만 보는 분도 계시죠? 여기? 5천원 밖에 안 하는데도 그것도 안 사가지고. 그래서 이번에 오신 목사님이 '큐티책을 사라, 사라.' 그러자나요. '큐티인으로 목회하고 싶은데 이 4종 세트만 있다면.' 하시는 선교사님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책이 없으니까 번역하는 길 밖에 없는데요. 너무 우리 큐티선교회가 할 일이 진짜 너무 많고, 우리들교회가 할 일이 많습니다. 이번에 선교사 수련회 마지막 피드백하신 선교사님은 '보통 수련회 끝나고 성령충만 받고 좋아서 갔는데 이번 수련회에서는 이 큐티를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이 기복이 아닌 팔복의', 십자가를 길로 놓아야 되니까, '아주 무거운 마음에 숙제를 안고 간다.'고 '그러나 길 찾은 거 같아서 기쁘다.'고 하셨어요. 이것이 바로 거룩한 부담이겠죠. 죽은 자의 부활을 만나고 전하셔서 자유를 만끽하고 경직된 중동 지역의 백성들에게 바로 이 자유를 선물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경직된 백성은 바로 우리의 동포인 북한이에요. 이 세상 아무데를 가봐도 가장 땅끝 나라는 북한입니다. 문자적으로 그렇게 무서운 독재 국가는 아직 제가 보지를 못했어요. 북한에 제가 3번이나 다녀왔죠. 그곳에 자유가 선포되기를 기도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인 예수님이 전해져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몇 주 전에 했던 이 24장 말씀들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다 잊으셨죠. 복습합시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 17절서부터 20절을 한 번 다시 읽어요.
이제 바울은 더둘로하고 대제사장에게 고발을 당했자나요. 맨 처음서부터 여기 왔을 때 결례를 행하고 났는데 무조건 잡아가지고 '이방인하고 다녔다, 성전을 더럽게 했다.' 이러면서 그때 이제 나는, 내가 어떻게 예수 믿었는지 간증을 해서 1차 변명을, 그랬는데 막 중간에 듣다가 난리를 쳐가지고 천부장한테 잡혀가가지고, 또 천부장과 공회 앞에서 2차 또 변명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그때도 난리가 나고 이번에는 벨릭스 총독 앞에서 이 3차 변명을 하는데 너무 바울이 억울한 거죠. 누명을 썼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염병, 전염병자라고 더둘로가 고발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성령의 고백은 대제사장의 고발과는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죠. 그래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소요 죄에 대해, 이단의 괴수에 대해, 성전 모독 죄에 대해서 기꺼이 변명을 했다고 했어요. 소요 죄에 대해서는 자신은 예루살렘에 온지 열이틀 밖에 안 되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결례를 7일 동안 지키는 것을 본 증인들도 있기 때문에 자기는 어떤 소란을 일으킨 일이 없다, 증인 데려와라. 이단의 괴수 죄에 대해서는 나사렛 그리스도교가 이단임을 인정한 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다는 사실을 인정했어요. 그리고 자기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고 했어요. 성전 모독 죄에 대해서는 자기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하면서 비로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에서 부조를 얻어 걷어와서 드렸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이기려는 변론을 한 게 아니라 내 목소리, 자기 그거가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로 공동체적인 고백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고발이 유효하려면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있어야 되자나요. 그런데 유대인들의 고발은 증인도 없이 순전히 날조된 지금 거짓말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은 과거 공회에서 심문 받을 때 자신의 위법 사실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해보라.' 이러자나요. 그래서 이제 그 모든 거를 변명을 다 끝나고,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외친 말 한 마디를 다시 강조합니다.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 21절.
바울은 자신에 대한 변명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부활에 대한 메세지를 증거해요. 바울이 팩트로 조목조목 변명을 했지만 그 이유는 그 한 마디 부활의, 죽은자의 부활의 복음 전함 때문에 그 많은 변명을 조목조목 한 거예요. '나는 오직 잘못한 게 없지만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심문을 받는다.' 그러니까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는 더둘로와 경쟁해서 이기겠다고 변론하지 않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붙들림바 되어서, 그래서 전한다고 하는 바울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 자유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울러 로마가 신경을 쓸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이거는 종교적, 교리적 이슈였다는 거예요. 이 바울의 한마디 울부짖음과 외침은 사과를 하면서 비굴하게 사과를 하는 게 아니고, 사과를 하면서도 죄인이 하는 소리가 아닌 거예요. 이 사람이 진짜 죄인이라서 이런 사과를 한 게 아니죠. 죽음이 가장 큰 권세라면 죽음을 이겼기 때문에 아무리 갇혀 있어도, 바울이 지금 갇혀 있자나요. 갇혀 있으면서 재판을 지금 받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바울은 절망의 옥에, 부정의 옥에, 미움의 옥에 갇히지 않아요. 죽은 자의 부활인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 복음이 나에게 복음이 되면 우리는 자유한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자유예요. 출애굽기 3장 14절에. 스스로 계신 자.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계신 자. 스스로 자, 말미암을 유.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한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죽은 자예요. 이 세상에 대해 죽지 않으면 부활을 소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하고 갇히고, 전하고 갇히면서 갑니다. 결국 그들은 바울을 죄인으로 가두었지만 하나님은 누가의 그 기록으로 그의 진실됨이 지금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알려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오늘 가정의 파괴의 원인이 여러분에게 있지 않아도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라면 여러분들이 가정을 지키면서 심문 받고 있는 여러분의 이 죄 고백의 나눔은 지금 기록이 되어서 영원히 남아서 인류에게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큐티인의 나눔이 지금 전 세계로 가고 있자나요. 이거 지금 다 남아 있는, 정말 영원한, 영생의 이 보고들이 아닌가 싶어요.
[적용] 부활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절망의 옥, 미움의 옥, 의심의 옥에 갇혀있지는 않은지요? 죽은 자의 부활이 안 믿어지니 여러분을 때마다 죄인으로 가두어놓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2. 치우치지 않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치우치면 안 돼요. 내가 예수 믿는다고 무섭게 믿으면 안 되는 거예요. 이번에 보니까 각 나라가 예배를 드리는데 다 치우쳐 있었어요. 정말 변화되려면 특별한 은혜가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오래 전에 제가 여성 목회를 하는데 너무 많이 모이니까 이단 소리를 듣지 않겠냐고 어떤 기자가 물어본 일이 있어요.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다 이단이고 그런 게 아니죠. 제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누구 비위를 맞춘 것도 아니고 평신도 집사로 사역을 하면서도 죽은 자의 부활 복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말씀으로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 위해 말씀으로 치우치지 않고 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방언의 본문 나오면 방언 달라고 기도하고, 신유 말씀이 나오면 신유 달라고 기도하고. 그래서 말씀을 보면서, 이제 남목사님의 특허 낸 말 '가만가만 오늘은 무엇이 부족한가.' 저도 이제 그거 갖다 쓰려고. 가만가만 찬양이 부족한가, 기도가 부족한가, 신유가 부족한가, 구제가 부족한가, 선교가 부족한가 헌금이 부족한가 등등. 무엇이 부족한가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치우침을 묵상했어요. 그 Balanced Life를 살려고 애썼죠. 자 어떤 교회는 양육만 강조해서 너무 아주 그냥 마른 뼈 같아요. 어떤 교회는 또 구원만 강조해요. 그래서 또 기도만 강조하면 너무 시끄럽고요. 또 이제 신유만 강조하면 무서운 교회더라고요. 어떤 교회는 전도만 강조해요. 그러면, 하나만 강조하면 아무리 좋아도 다 이단 될 확률이 너무 높아요. 우리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이 영혼 구원이기 때문에, 영혼 구원 때문에 큐티도 하고,
영혼 구원 때문에 찬양도 하고, 영혼 구원 때문에 적용도 하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기도했다 하면 기도도 뜨겁고 찬양도 세련 됐어요.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은혜로운 것이 가장 세련된 것입니다. 모든 순서가 유기적으로 은혜를 끼쳐야 해요. 그런데 이것은 뭐 예배학을 배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성경만 바르게 읽으면 이렇게 모든 것이 나오게 되어 있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게 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날마다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뭐라고 하지?' 하니까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신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를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여러분들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치우쳐 있는 게 있어요. 말씀에 좀 치우쳐 있어가지고 찬양 시간에 처음부터 오지를 않아요. 예배는 찬양부터인데 전부 예배의 찬양을 다 사전 찬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여러분 찬양부터 예배입니다. 말씀부터 예배가 아니예요. 그 부분이 치우쳐 있어요. 우리가 이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경건의 능력도 없지만 경건의 모양도 없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그렇게 안 가면 큰일날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그러는데 우리는 너무 자유함이 너무 넘쳐서 방종으로 가는 거 같아요.
이번에 갔던 공산권이었던 루마니아는 30년 전까지 만해도 공산권이었자나요. 그래서 그리스 정교회가 온 나라를 도배하고 있어요. 공산권에서도 그렇게 교회가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 하자나요. 그러니까 루마니아도, 우크라이나도, 이 중동 지역도 개신교가 발붙이기가 너무 힘든 곳이에요. 그런데 영문 큐티인을 2월달에 우크라이나 사태 때 헌금과 같이 보냈자나요. 그런데 그 큐티인이 국회로 들어가게 되어 이번에 제가 국회에 초청을 받았자나요. 국회의원들과 더불어 발칸반도의 대표들이 1년에 한 번 모이는 날이었다는데 제가 갈 때가 마침 그때가 되서 제가 굉장한 모임에 초청을 받아서 제가 간증을 했어요. 그런데 여자인 제가 그곳에 섰다는 것 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큐티인이 보급되는데 굉장히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라고 했으니 감사하죠. 그곳에 왔던 미국의 한 여성 대표는 제가 7월 달에 워싱턴에 간다고 하니까, 세계 선교사 대회 제가 가는데 그렇게 오면 저를 또 초청하고 싶다고, 밥도 사주겠다고. 또 사석에서는 시장님도, 교장선생님도 다들 아주 이렇게 고위직에 있는 분들 만나서 모두 삶을 말씀으로 설명을 하니까 다들 너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잘 들어주셨고요. 그리고 각 교단의 교단장들도 만났어요. 각종 교단이 있자나요. 침례교도 있고 뭐 정교회도 있고. 다들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셨어요. 여러분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사석에서 막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그냥 오랜 시간 동안 나눔을 하면서 간증을 하고, 우리 평원님들이 또 다 간증을 하고, 사석에서 너무 은혜를 받으니까. 그 다음에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분들을 모아 놓고 큐티인에 대한 그런 설명회를 하는데 여기는 우크라이나 선교사님 통역하고, 여기는 루마니아 선교사님 따로 따로 통역을 하는데 평원님들도 다 나와서 간증을 하고, 그리고나서 끝나서 밥을 먹는데 모두 자기 나눔을 하는 거예요. 테이블, 테이블 마다. 밥 우리가 샀어요. 그런데 남편 때문에 우울하고 낙심되고, 뭐 힘들고, 부모에게 차별 받아서 힘들고, 다들 처음으로 자기 나눔을 한다고 했어요. 어떻게 그걸 나눔을 할 수가 있겠어요. 지금. 알라를 믿고, 이렇게 공산권에서. 그리고 이제 루마니아 침례교 총회장 교회에서 제가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가서 예배를 드려보니까 30분 찬양을 하고, 30분 기도를 하고, 30분 설교를 무려 2번이나 해요. 30분 설교하고 나서 조금 이따가 다시 또 30분. 그리고 여자는 찬양대도 못 서요. 그리고 설교도 못합니다.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침에 비향기에서 내려서 갔기 때문에 바지를 입고 강단 아래에서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그런 게 문제가 아니예요. 그런 곳에서도 삶으로 간증을 하니까 다들 들었어요. 지루해 하다가 갑자기 눈이 반짝. 아유 참 지루한 걸 그분들이 잘도 참고 듣더만요. 그런데 너무 형식과 전통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 전통이 오래된 교회 젊은이들이 다 떠난다고 하는데요. 무려 거기가 30여년 전 공산권일 때는 환난과 핍박 중에 예배가 그냥 다 살아있어가지고 교회가 그렇게 부흥이 됐는데 그 예배 자체도, 말씀만도 그냥 능력이 있어가지도 부흥이 됐었는데 지금은 조금 편해져 가지고 다들 지금 젊은이들이 떠나는 거예요. 노인들이 많고. 그래도 그 교회도 이렇게 이제 예배만 드리다가 이 삶으로 말씀을 설명하니까 삶은 만국 공통어였어요. 그 전통 교회도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을 이렇게 표하셨어요. 바울 때도 방해가 심했지만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 치우쳐 있기 때문에 교회 한 번 나가기 위해서, 또 큐티 운동을 위해서 사단은 교묘하게 오기에 늘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말씀 기도 선교 구제 찬양 치유 방언 전통 등 어디에 가장 치우쳐 있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들이 다 무너진 것에 대해 아무리 좋은 것도 보이는 것들은 다 무너진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3. 삶으로 살아냅니다. (22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 이렇게 죽은 자의 부활을 막 전하니까 벨릭스가 그 도에 관한 것은 더 자세히 안대요. 바울이 설명한 거보다 더 자세히 안대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 24장 10절에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벨릭스 총독이 여러 해 전부터 유대 민족의 재판장으로 있었으니까 당연히 당신 유대 민족의 종교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변명하기가 쉬워서 기쁘다고 했어요. 갓 부임한 총독이 아니고 벌써 이제 오래됐으니까. 더구나 아내 드루실라는 유대인이었죠. 또한 가이사랴에는 오래 전부터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해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어요. 또한 바울이 실정법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아는 고로라고 번역된 헬라어의 뜻은 알면서도,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인 줄 알면서도 석방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바로 무죄 판결을 바로 내리지 않은 것은 역시 뇌물의 힘인 거 같아요. 뇌물은 받았는데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뜻을 바로 꺾기가 민망했겠죠. 그래서 판결을 연기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바울을 감금합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26절에 보면 바울에게 돈을 받고자 했죠. 그러니까 벨릭스가 총독이면서도 돈에 대한 탐욕이 끝이 없어죠. 정치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죄인데 돈을 받았기 때문에 못 풀어주고, 풀어주고 이러자나요. 다 아는데. 이 정치의 세계예요. 벨릭스는 예수의 도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었지만 도를 따르지 않았어요. 삶으로 살지를 못했다고요. 더 잘 알고 있어요. 지금. 여기 더 잘 알고 있다 그랬자나요. 이 아는 것, 공부 많이 해서 아는 거 너무 많아요. 그런데 알면 뭐하겠어요. 살지를 않아요. 오늘 성령의 자유는 삶으로 살아내야 되는데, 그러니까 벨릭스는 예수의 도를 따른 게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의 눈치만 보면서 자기 욕망을 따랐죠. 인격적인 지식을 말해요. 안다는 거는. 예수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알았을 뿐 삶으로는 전혀 깨닫지도, 따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반면에 바울은 구속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도를 따라 삶으로 담대하게 전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예수의 도를 안다는 것은 그 아는 것을 넘어서 반드시 그 일상을 살아내야 되는 거예요. 지켜야 돼요. 행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유를 잘 누리려면 이렇게 아는 것을 넘어서 살아야 되는 거, 유턴해야 되는 거, 모압에서 완전히 유턴해야 되는 거예요.
이제 바울의 선교 여행지인 토로스 산맥을 우리가 굉장히 묵상을 했자나요. 이번에 가면서 이렇게 버스 타고 지나면서 봤는데 멀리서 봐도 너무 너무 험산 준령인 거예요. 거기만 번쩍번쩍 빛나는 아주 무슨 바위산 같은데 '이야 정말 마가가 가기 싫었겠다.' 봐야 알아. 그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복음이 구속사적이라 유대인의 방해가 원색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자나요. 왜 바울이 전하면 저렇게 죽이려고 했을까? 그러면 우리가 날마다 구속사, 구속사하는데 도대체 구속사가 뭔가? 날마다 큐티를 하면서 구속사. 이번주의 구속사는 뭔가 하면요.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 야곱이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라헬과 요셉이었어요. 요셉을 보고 죽어도 좋겠다고 해요. 그러면 다른 아들은 뭐 예요. 그러니까 야곱이 끝까지 사랑한 라헬과 요셉은 누가 봐도 상품이 좋자나요. 그러면 야곱도 그거를 벗어나지를 못한 거자나요. 그러나 아무리 믿음의 조상 야곱이 사랑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커트라인에는 그 사랑받지 못한 레아와 아들 중에 며느리와 동침한 아들 유다가 더 위에 올라갔자나요. 그러니까 분명히 그렇게 라헬 타령을 했는데 레아가 약속의 땅에 묻혔어요. 그리고 라헬은 베들레헴 길가에 묻혔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요셉이 아니고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커트라인이 더 위에 올라갔죠. 믿음 있는 내가 좋아한다고 천국에도 똑같은 순위로 입성하지 않아요. 천국은 내가 생각하는 고정관념, 예쁘고 총리로 성공해서 가는 곳이 아니고, 힘들고 죄 많고 수치스러운 사람들이 회개하고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성경적인, 구속사적인 가치관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예쁘지 못해서 죽고, 아들이 공부 못해서 죽을 지경인데 지금 보세요. 레아는 그 입에서 '내가 찬송하리로다, 연합하리로다, 후한 선물' 이런 언어가 나오는데 사랑받는 라헬은 '억울하도다, 형과 경쟁해서 이겼도다' 죽을 때도 슬픔의 아들 베노니. 그리고 이제 정말 유다도 말을 못하자나요. 그러나 요셉도 마지막에 아버지를 기뻐하지 아니했다고 그러거든요. 자기 아버지 야곱을. 그런데 유다는 내 생명을 내놓고 아버지를 위해서, 내 생명을 내놓겠다. 결국은 이 땅에서도 그 언어가, 유다와 레아는 너무 언어가 화평의 언어, 화목의 언어를 쓰는데 라헬과 요셉은 마지막에 결론이 정말 아니올시다 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구속사를 들으니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는 맹렬한 분이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요셉이고, 내가 라헬이니까. 여러분들도 거기에서 이제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 이번주에 구속사적인 이런 가치관이었어요. 매 주일 나오는 거에요. 이렇게 성경을 읽어야지 우리가 다 자유함을 누리지 아니면 내가 없어서 너무 힘들고 지옥을 살지 않겠어요? 천국은 다 없어도 이렇게 기쁘고 즐겁게 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난민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그 전도가 안 되는 그 힘든 터키에서도 힘든 이 디아스포라 난민 교회만 부흥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불쌍하게 여길 게 아니고 그들은 그냥 모이기를 너무 기뻐하면서, 우리가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지 몰라요. 마찬가지 원리예요.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은 확실하게 구원과 심판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도 사단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을 넘어서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가치관이 바뀌어야 해요.
알라를 믿는 그들이 중동에서 교회 나오는 것은 지하드예요. 성전이에요. 전쟁이에요. 그래서 각자 집에서 목숨을 걸어야 나올 수 있는일이에요. 그래서 이 문화가 너무 달라서 힘들다고 해서 제가 또 그 선교사님한테 우리도 이 가정의 문제에서 목숨을 걸지 않으면 가정을 지켜낼 수가 없다고, 그런 분들이 있다고, 우리도 이제 망치로 매를 맞은 엄마도 있다고. 그런데 2009년에 들어가서 2022년 현재 터키에 교인이 30명가량이라는데 아주 그 교회는 부흥하고 있는 교회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여자인 자매가 찬양을 인도하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나오니까 그냥 표정만도 은혜스럽고 너무나 영적인 거예요. 사실 이런 곳에 선교사님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냥 열매가 없어도 삶으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전해지기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아시아 교회, 바울이 세웠던 교회가 다 무너지고 지진에 휩쓸렸지만, 그렇게 그건 없어졌지만 전 세계에 바울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걸 보면서 저는 '그래 우리들교회가 없어진다 해도 우리가 삶으로 살아낸다면 전 세계에 이 구속사의 복음이 전파되어서 QT Movement의 사역이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일 설교에 제가 없는 동안에 이 THINK 목회자 세미나를 참석하신 개척 교회 목사님, 시골 교회 목사님, 교회는 크지만 힘드신 젊으신 목사님들이 QT Movement에 힘 입어서 차별 없이 다 복음을 전해주셨어요. 그 특별한 사람이 복음을 잘 전하는 게 아니라 말씀 묵상을, 그러니까 목사가 다 죽자고 하게 됐다고 그랬어요. 한 사람이 묵상을 해도 시골 교회가 달라졌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와 같은 마인드의 설교를 하는 걸 보게 됐어요. 구원을 악세사리쯤으로 여기는 목사인 가만가만 목사님, 큐티인을 사고, 들고 다니며 읽어라 하는 목사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궤도 수정 질문으로 말씀을 전한 목사님. 이 개척 교회인 작은 교회는 코로나 기간에 150명가량으로 부흥이 되었고 시골 교회는 1년 예산이 6천만원에서 4억으로, 이 3년 동안에 늘었다는 거예요. 그 큰 교회 목사님은 누가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이 서고에 꽂혀 있던 큐티인을 보고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1000권을 시켜서 지금 2년째 해오고 있다고 그랬어요. 삶의 궤도 수정이 일어났다고. 여러분 이렇게 한 분이 큐티를 하고 바뀌니까 그냥 큐티 목회하는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이것이에요. 고유 명사에서 보통 명사로 바뀌어가는 운동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놀랍지 않아요? 제가 말했던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자나요. 그렇죠? 앞으로는 설교 잘하는 목사보다는 사람 살리는 목사가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교계에 지각변동을 기대합니다. 적용해 보세요.
[적용] 말씀에 대해 안다고 하면서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4.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다. (23절)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 벨릭스도 자기의 연기 결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바울에게 큰 호의를 베푸는 척합니다. 선고를 연기하고 자유를 주라고 했어요. 친구들이 돌보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너무 배려해 주는 것 같은데 갇혔지만 갇히지 않은 애매한 상태가 되었어요. 그러나 불과 그 며칠 전에 테러를 당할 것 같은 처지를 생각하면 지금 안전하게 지켜지면서 개인적인 신변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입니다. 우리도 공동체도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 사명을 위해서 생각지 못한 이런 자유라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자유를 주어도 그 자유를 누리려면 자유함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믿고 살고 누리는 것, 바로 그 우리 핵심 가치자나요. 이 자유함이 없다면 편함도 갇힘도 못 누립니다. 누린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예요. 해변에서 강만 쳐다보고 있는 게 누리는 게 아니예요. 바울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누리는 것 같습니까? 바울은 벨릭스가 부여한 자유를 이용하여서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한 거예요. 2년 동안. 그러니까 바울의 몸이 구속된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억울하게 수감되게 하셨죠. 갇혀 있으나 편한 환경이거나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자유함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자유예요. 그런데 '내가 억울하다. 내가 왜 갇혀 있냐?' 이래서 화가 나고 억울하고 그래서 교만하면 거기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13년 동안 저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할 것이, 버킷 리스트가 너무 많았어요. 여행도 가고, 뭐도 하고, 그냥 피아노 독주회도. 이렇게 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여러분 상상이 됩니까? 제가 그것도 아주 꽃띠 30대에 과부가 됐는데 어떻게. 세상적으로 말하면, 이 땅이 다라고 그럴 거 같으면 이거는 너무 그냥 불쌍한 인생인 거죠. 그런데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자유가 최고의 자유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 어디를 가도 놀라 그러면 불안해요. 내가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이 달라지는데, 한 교회라도 가면 여기가 달라지는데. 이러니까 저는 복음 전하는 게 쉼이에요. 그리고 노는 게 괴로움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들이 나하고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게 아니고 목장에서 여러분들 다 힘들어 지금. 가족도 힘들고, 남편도 힘들고, 아내들 다 힘든데 목장 가서 복음 전하는 최고의 자유를 누리니까 일주일을 잘 살 수 있는 거 자나요. 다 똑같이 이 환경에서 갇혀 있는데 다 복음을 전하고 있자나요. 지금. 그게 얼마나 최고의 자유입니까? 여러분들이 도대체 뭘 하면 그렇게 자유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인생이 너무 짧아요. 짧으니까 다른 꿈을 좀 꾸지 말아요. '내가 지금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겠노라.' 이렇게 결단하면 최고의 자유함이 밀려올 줄 믿습니다.
[적용] 여러분의 자유는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자유입니까? 여러분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자유는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고, 또 그 죽은 자의 부활이 임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치우치질 않아요. Balanced Life를 살아요. 무섭지 않아요. 시끄럽지 않아요. 우리는 균형이 잡혔어요. 그러니까 아는 것에서 넘어서 한 가지라도 적용을 해서 삶으로 살아내야 돼요. 그래서 그게 뭉뚱그려서 복음을 전하는 자유입니다. 최고의 자유예요. 제가 다시 생각해봐도 뭐 좋은 신랑 만나서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딱 제가 지옥 갈 뻔했는데 지금 이렇게 복음 전하는 자유를 저에게 주셔서 상상하지 못하는 이런 성령의 자유를 누리는 걸 여러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 계신 주를 전하고 이렇게 만나기 때문입니다.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우정
기도제목
미혜
연약하고 무기력해진 내 모습에 자책하지 말고 예수님의 흠도 점도 없는 보혈 의지하여 자유하기를
회사의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아빠가 엄마에게 화를 내어 엄마가 힘들어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엄마를 위로해 주시기를
우리 목원들의 현재와 장래를 인도해주시고 기도 제목에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기를
지영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 엄마 CT결과가 안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공항문을 밖으로 빼는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 먼저는 저희 엄마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살려는 마음을 엄마에게 불어넣어 주셔서 저희 엄마 치료하는 여정에 외롭고 두려운 마음, 지치는 마음 없애고 살고 싶은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저희 엄마 항암치료 너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다음 항암은 잘 들어서 저희 엄마 몸속에 있는 암들이 다 제거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날이 오길 바라오니 아버지 제발 긍휼히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 엄마 오늘 하루도 컨디션 좋게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데 저희 엄마 어제보다는 오늘이 통증이 덜하고 컨디션 좋은 날 될 수 있도록 아버지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오며 생명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 렸습니다. 아멘.
예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궤도 수정하며 하루만 잘 살도록
목장에 잘 붙어가며 주님 주시는 참 자유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나의 영육을 위해 해야 할 일들 (운동, 목장 식구들과 아웃리치 위해 기도하기) 미루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아웃리치 모임 잘 붙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