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말씀 요약>
성령의 자유
사도행전 24:17-23
김양재 담임목사님
1.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합니다.
17-20절.바울의 성령의 고백은 대제사장의 고발과 실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죠. 첫번째 변명을 했는데 듣다가 난리를 쳐서 천부장이 와서 공회 앞에서 두번째 변명을 하고, 지금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기꺼이 세번째 변명을 하고 있는 거에요.
-> 1, 소요죄에 대해서는 결례를 행하느라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킨 사실이 없다고. 2, 이단의 죄에 대해서는 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담대하게 인정하고 유대인들이 믿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고, 3,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며, 부조를 가져오고 드렸다고 변론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강조해요.
21절.부활의 복음 전함 때문에 그 많은 변론을 했다는 거에요. 심문 받는 이유가 오직 죽은 자의 부활 때문이다.
이기겠다고 변론한 게 아니라, 사명에 붙들림 바 된 것이에요.바로 이것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이겼기 때문에, 부활했잖아요. 이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절망의 옥에 미움의 옥에 갇히지 않아요. 그 복음이 나에게 복음이 되면 우리는 자유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 자유 그 자체에요.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합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으면 부활을 소망할 수가 없는 거죠.
2.치우치지 않습니다.
각 나라가 다 치우쳐 있더라구요. 변하려면 특별한 은혜가 있어야 해요. 하루도 빠짐 없이 말씀을 묵상해가며 치우침이 없나 생각 해 왔습니다. 한 가지만 강조를 하면 이단될 확률이 높아지는 거에요. 우리는 영혼 구원 때문에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는 말씀에 치우쳐있어서 찬양 시간에 처음부터 오질 않아요. 이슬람에 비하면 우리는 경건의 모양 조차도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3.삶으로 살아냅니다.
22절, 벨릭스가 바울이 말한 것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했어요. 벨릭스는 무죄인 줄 알면서도 석방하지 않았어요. 알면 뭐하겠어요 삶을 살지를 않는데.
유대인들에게 뇌물 받았는데 어떻게 뜻을 바로 꺾겠어요. 26절에 보면 바울에게 돈을 받고자 했데요. 돈을 향한 탐욕은 끝없어요. 정치가 다 이래요.
성령의 자유는 안다는 것을 넘어서 살아야 하는 거에요.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욕심이 많아서 두려운거죠.
날마다 구속사 묵상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이번주 큐티 말씀을 통해 살펴볼게요.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 야곱이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라헬과 요셉이었어요.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레아와 유다가 하나님의 상급에는 더 위에 올라갔어요. 야곱도 마지막에 알아보고 레아를 약속의 땅에 묻은 거에요. 유다는 내 생명을 내놓고 아버지를 위해서 화해를 했잖아요. 천국은 힘들고 죄 많고 수치스러운 사람들이 회개하고 가는 곳이더라구요 성경적인 구속사 가치관이잖아요. 우리는 이쁘고 잘되는 것만 좋아하면 자유가 없잖아요. 이 땅이 참 짧아요.
이런 구속사적 가치관이 있으면 정말 복된 거에요. '
4.복음 전하는 자유입니다.
벨릭스가 자유를 주어도 자유를 누리는 자유함이 있어야 해요.바울은 자유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찾아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자유함이에요.
감옥에 갇혀 있어도 자유함이 있으니까 계속 복음을 전한 것이에요.
<적용 질문>
1. 부활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절망의 옥, 미움의 옥, 의심의 옥에 갇혀있지는 않은지요? 죽은 자의 부활이 안 믿어지니 여러분을 때마다 죄인으로 가두어 놓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2. 여러분은 말씀과 기도와 선교와 구제와 찬양 치유 방언 전통 등 어디에 가장 치우쳐 있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들이 다 무너진 것에 대해 아무리 좋은 것도 보이는 것들은 다 무너진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3. 말씀에 대해 안다고 하면서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4. 여러분의 자유는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자유입니까? 여러분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 <목장 나눔 ㅇ> ----------
B: 이번주에 회사에서 좀 힘들었다 열등감이 올라와서 또 괴로웠다. 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는데 겉으론 웃으며 대했지만 또 내적으로 비교가 되었다. 자꾸만 내가 작아지는 사건들이 오는데 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우울해졌다. 사실 서로 뭘 해도 서로를 무시해대는 아주 잘난 사람들만 모여있고 말이 많은 팀이긴 하다. 그 속에서 자꾸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쳐대는 내 모습이 답답하고, 조급해진다.
요즘 남자친구가 심하게 아침마다 목사님 말씀들과 파일을 보내와서 그러지 말라고 해서 다퉜다. 다른 지체들 톡방에서 받는 말씀과 요약들은 언제 봐도 참 좋은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자친구 톡방에서 무슨 봇이 아침뉴스 보내오듯이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것 외에도 남자친구로서 있는 시간을 좀 하고나서 보내라고 말했는데, 반복된 싸움들에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 같으니 미워지고 보기가 싫다.
A : 우리들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여전히 말씀으로 깨닫고 진짜로 살아내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생각해보면 받은 은혜가 너무 많고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데 감사기도도 잘 드리지 않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 보면 내 기준이 너무 높고 내 틀이 너무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내 판단과 기준에 맞지 않으면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난다. 목사님께서 내 죄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늘 하시는데, 정말 맞는 것 같다. 나라도 똑바로 말씀으로 서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는 것 같다.
C: 전 회사 상사 언니 둘이 있는데 알게 된 지 한 3년이 되었다. 매달 보는데 간만에 모임을 가졌다. 그중 한 명의 언니가 점점 흐트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번 모임 중에 갑자기 언니가 바람을 핀다고 밝히는 일이 있었다. 정말 멋진 커리어 우먼이고 배우고 싶은 여성상이었던 언니가 점점 나락으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다음 달에 또 만나게 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조심스럽고 잘 모르겠다. 교회를 다녔던 언니이고 떠나있는 상태이긴 하다.
목자언니: 이번에 때마침 전도축제를 여니, 그 언니에게도 한번 가볍게 가보자고 얘기를 해 보는 게 좋겠다. 물론 용기가 너무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전도의 말을 전해보는 건 우리가 할 일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 이다.
C: 또 교회를 엄청 싫어하는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요즘 여러 부분에서 많이 좋게 바뀌었는데 거기에 하나님만 있으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좋은 친구인데 자기 확신이 강한 친구라 전도 자체가 너무 어려운 것 같기도 해서, 이 좋은 공동체를 만나서 함게 누렸으면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령의 자유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기도 제목> ----------
*현아
- 무기력한 나날들이 많은데 일으켜 주시길
- 회사 프로젝트 맡은 일에 헤쳐나갈 지혜 주시길
- 양육동반자 잘 마쳤는데 목장에 잘 붙어가길
- 가족구원
*윤진
-남자친구에게 생긴 일이 잘 해결되길!
- 아빠마음이 풀리고, 이사건이 잘해석 될 수 있도록!
*은혜
- 매일 큐티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고 힘 주시길!
- 제가 우리들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은혜언니
-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수있도록
- 좋고 싫음이 모호해지도록
- 체력적으로 힘이드는데 힘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