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9 '사라! 들고 다녀라! 읽어라!' (마25:1-13) 고재국 목사님
제가 올해 50이다. 저는 25살에 결혼했다. 사모는 22살에 시집왔다. 10번 정도 만나고 결혼했다. 연애기간 없이 3개월만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아이가 25살이다.
저는 아이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제가 회사 다 말아먹고 부도나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신학 다니는데 아이 둘 더 낳아야 한다고 해서 찔리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둘째를 갖기 위해 엄청 기도했다. 딸이었다. 기도하면서 이 딸을 얻었다. 이 딸이 지금 중2인데 날마다 큐티하고 식사할때도 혼자 기도하고 예배드릴때도 아빠가 설교하는데도 받아적고...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근데 밤새도록 게임한다. 기도해도 그런 딸이 나왔다^^
어느 날 차 타고 가는데, 아빠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했다. 누구니 했더니 채팅으로 만났다고, 음악하는 아이라고 했다. 기도했니? 하고 물었다. 이야기가 없었다.
한 달 지난 후 딸이 우리 헤어졌다고 한다. 왜 이렇게 기쁜지. 그러나 너 슬프겠다, 기도하자 하고 말았다.
저는 용지 처인구 양지면에 위치한 농촌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 저희 교회는 전형적인 농촌 교회로, 올해로 45년된 시골교회이다. 면 전체 인구가 2만이 안된다.
저희 교회 양쪽에 논이 있었다. 근데 흙을 점점 가져와서 요즘 논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저녁에는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운치있는 교회이다. 때때로 개구리가 강단까지 올라와서 예배드리다 개구리를 쳐야 하고, 개구리 잡기도 한다. 개구리가 있으면 뱀도 있다. 간혹 가다가 뱀도 예배 드리러 들어온다. 지금은 저희 교회에 뱀은 없다. 이제는 성도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사람 체취가 나서 그런 것 같다.
제가 처음 교회에 왔을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2017년 11월에 제가 원로 목사님을 모시고 후임으로 부임했다.
교회에 왔는데 제가 생각한 목회 현장이 아니었다. 저는 중대형교회에서 사역했던 목사였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근데 와서 뱀부터 잡아야 했다. 저 뱀 무서워하는데 뱀 잡아서 비닐에 담아 출입구에 걸어두면 안온다고 해서 걸어두기도 하고, 이것저것 뿌려보기도 했다. 뱀과의 전쟁이었다. 게다가 교회가 너무 노후되어 전등에 불이 안들어왔다. 저녁이 되면 캄캄했다. 화장실도 야외화장실 한칸이 있었는데 거기서 볼일 보려고 하니 쪼그려 앉아서 끈으로 당겨야 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했다.
여름이 되니 천장에 물이 떨어졌다. 여기저기 그릇을 두어도 똑똑 소리에 집중이 안되었다. 그러다 장마가 왔는데 저는 노아의 홍수를 보는 것 같았다. 벽돌 한 장으로만 쌓아 둔 교회이다. 그러니 집중 호우 폭우가 쏟아지면 양쪽 벽돌사이로 물이 들어온다. 그것이 하필 강대상 밑에 와서 모인다. 그래서 정말 예배 드릴 때 양수기를 틀어가며 예배를 드렸다. 강단에 올라갈때마다 기도한다. 강단이 물때문에 썩어있어서 언제 무너질지 몰랐다. 지금은 리모델링해서 더 좋아졌다. 그러나 비 새는 것은 건물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런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 이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맞는가 싶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방치해 두는가 화가 났다. 그런데 일년 뒤에 알게 되었다. 시골 교회에 일년에 들어오는 헌금이 6-7천만원정도 들어왔다. 그러니 원로목사님 사례비 드리고 교회 빚 이자 내고 나면 운영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전구 하나 갈기 어려운 형편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부임을 했다. 도저히 답이 안나왔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것이 제 자동차를 팔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전구도 못 갈았다. 그리고 지금도 없지만 사택이 없다. 그래서 동생에게 2천만원 빌려서 월세 들어갔다. 그렇게 원로목사님 모시고 단독목회를 시작했다. 과연 이런 교회가 부흥될까? 비만 오면 교회 마당이 진흙탕으로 질퍽거리는데 어떻게 이런 교회에서 예배 드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제가 사역 2년만에 개인 빚이 4천이 넘었다. 왜냐하면 1년 사례 2400 만원 받아서 2500만원 헌금 나가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교회 전구 하나 갈수 없었다. 그래서 대출받고 카드빚도 내고 할수 있는 만큼 했다. 저는 다른 것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기도했다. 그러던 차에 큐티인 목욕탕세미나에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에 큐티하게 되었다. 그렇게 큐티한 지 1년 지났을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한방에 딱 4천만원을 처리해주셨다. 교회에서 감당한 것 아니고 누가 주신 것도 아니다. 그것 하나님께서 정말 한번에 끝내버리셨다. 그렇게 목회를 해 나갔다.
저는 열정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년 정도 전도하니 전도가 되었다. 그러니 제 마음속에 역시 너는 뭘해도 잘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제 죄패가 지가 제일 잘났어 이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공부를 잘 했다. 1등 놓쳐본 적이 없다. 영어책을 그냥 보면 암송이 되었다. 저는 과외 받아본 적 없고 정말 교과서 하나로 공부했다. 근데 영어책을 몇 번 읽으면 이미지로 박힌다. 그래서 시험지를 받아보면 이 지문이 몇페이지에 있는지 그려진다. 그렇게 해서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날샌 적 없고 놀것 다 놀았다. 그러니 제가 잘났다. 저는 장남이었다보니 집안에서 대소사를 부모님과 상의했다. 그러다보니 인정 받고 살아서 지가 제일 잘난줄 알았다. 나는 뭐든지 하면 잘하는 인간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다 2018년 아주 사역을 잘해서 조금 괜찮아졌다. 전도가 많이 되었다. 그런데 헌금은 쉽게 늘지 않았다. 그러다 결단한 것이 제 사례의 60프로를 하나님께 돌려드리자 였다. 처음에는 51프로였는데 나중에는 60프로가 되었다. 그래도 전혀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부스러기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스러기만 먹어도 충분히 살았다. 그러나 성도님들은 그렇게 하시면 안된다. 저는 목사, 담임목사이기에 가능하다. 부교역자도 절대 그렇게 하지 마시라.
그러다가 2019년 5월 목세에 참여하게 되었다. 저는 여지껏 세미나에 가본 적 없었다. 저는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못났으면 배우러 가냐고 생각했다. 너는 교재도 남들 것은 안쓴다. 제가 직접 만든다. 그러다 목세를 억지로 갔다. 그런데 온 첫 날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본질이다, 내가 원했던 목회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제가 고민하던 것은, 성경에서는 목회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한다. 그것이 목회의 본질로 배웠고, 주님이 저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에서 가르치는 건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지키게 할 것인가? 이것은 답이 없었다. 여러 툴들이 있지만 답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답을 목욕탕 세미나에서 발견했다. 큐티하면 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큐티인 이었다.
큐티를 해야한다는 것을 제가 알았다. 목사 중에 누가 말씀 묵상 안하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나는 큐티한 것이 아니라, 말씀 묵상한 것이 아니라 말씀 연구한 것이었다.
우리들교회 큐티는 달랐다. 이것은 말씀 묵상을 넘어선 것이다. 큐티인 책을 펼치고 간증을 보며 놀랐다. 뭐 이런책이 있나, 책에 많이 놀랐다. 말씀 묵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디서 얼마나 어긋나 있었는지, 십자가에서 얼만큼 내가 떨어져 있는지 분명히 보는 자리가 큐티였다. 이것은 말씀 묵상을 넘어 목회의 본질이라 싶어 붙들고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2019년 목세 끝나자마자 큐티양육을 시작했다. 저는 배우면 바로 한다. 그러니 그냥 해버렸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그냥 했다. 지금도 큐티를 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제가 걸음마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큐티하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10월부터 큐티 양육했는데 1-2월에 코로나 터졌다. 교회활동이 모두 스탑되었다. 이것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인으로 받았다. 그래서 혼자 큐티했다. 당시 성도님들은 큐티할 수 있는 여력이 안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지 않았다. 아이도 사모도 성도들도 안했는데 계속 혼자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기간 중 매일 묵상하고 큐티한 것을 새벽에 설교하고 그 설교한 것을 정리해서 장문의 문자로 매일 보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장문의 문자 보내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럼 아멘 이런걸 해야 하는데 아무 대꾸도 없었다. 나중엔 차단까지 당했다. 처음 차단당해보니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여기 있을 곳이 아닌가, 어떻게 목사가 문자 보냈는데 씹지 하면서 너무 낙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큐티 계속 하다가 보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요즘 김양재 목사님이 말씀하시지만 오늘 이 사건은 어제까지의 나의 삶의 결론이다. 그렇게 살았기에 씹힌다. 그러니 자유하게 되었다. 씹혀도 되지, 차단당해도 마땅하지. 그것이 수용이 되니 마음이 편했다. 자유하게 되었다.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보낼 수 있었다. 가끔 가다가 은혜받았다는 문자가 오면 무슨 사건이 벌어졌길래 은혜 받았나 싶어서 긴장된다. 그렇게 2년동안 지금도 계속해서 문자 보내고 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코로나 기간 동안 놀라운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졌다. 교회에 분명히 사람은 안 모이는데 부흥을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교회가 안모이는데 부흥을 할까. 누가 큐티를 같이 하겠는가 혼자 큐티하고 영상 찍어 보내고 했다. 그렇게 2년간 코로나 기간동안 큐티하며 함께 보냈다.
저는 죄송하지만 코로나가 조금 더 길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코로나 수혜자 중 한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021년 코로나 기간 때문에 한 해동안 못 모일 때 코로나 기간 동안 등록한 인원이 36명이었고 그분들은 지금 정착해서 잘 다니고 있다. 올해도 4월까지 보니 16분이 등록해서 정착했다. 숫자적으로도 부흥했고 무엇보다 재정적으로 부흥을 했다. 저희 교회에 제가 부임할 때 교회 재정이 6-7천만원, 제가 헌금하고 난 후 7-8천만원 정도 된 교회 재정이 작년 2022년 결산이 4억이 넘었다. 시골교회에서 4억이면 어마어마한 것이다. 저희가 노회라는 조직이 있다. 교회가 수십개가 있다. 그 중 저희 교회가 재정순위 5위가 되었다.
코로나 기간동안 뭐 했을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실 그 때 했던 큐티는 큐티가 아니었다. 근데도 김양재 목사님께서 안 하는 것 보다는 낫다 하셨는데 그 말이 맞다. 지난 2년 코로나 기간동안 큐티만 했다. 큐티만 해서 교회가 안정을 찾고 이제는 여러 군데에서 오신다.
저희 교회는 용인에 있음에도 수원 대전 세종 천안 서울 음성 진천 오산 이런곳에서 오신다. 1/3정도가 외지에서 오신다. 이렇게 코로나 기간동안 큐티만 했는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단단히 해 가셨다. 그때 제가 알았다. 성도들은 안했다. 지금도 안한다. 사모도 잘 안한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큐티하니 교회가 살아났다.
오늘 저는 열처녀 비유 이야기를 가지고 사라, 들고 다녀라, 읽어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큐티인 사라 들고다녀라 읽어라 이다. 오늘 이야기는 그것이다. 열처녀 비유와 큐티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설교는 지지난주 본 교회에서 했던 설교이다.
열 처녀 비유 이야기는 매우 심플하지만 그 마지막은 굉장히 엄중한 말씀으로 마친다.
열 처녀가 있다. 이들 모두는 신랑을 맞으러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열처녀는 신랑신부의 들러리를 말한다. 당시 들러리들은 신부의 친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왜 10명인가? 당시 최소 모임 단위였다고 한다. 별 뜻은 없다. 이 들러리는 딱 한가지 조건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처녀여야 한다. 결혼 안한 신부의 친구만이 들러리로 부름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래서 처녀라는 말을 들러리로 바꾸어서 진행하겠다.
열명의 들러리 중 다섯명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다섯은 등만 준비했다. 그렇게 열명 모두 다 더디 오는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이 드디어 왔다 도착했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2가지 발생한다.
첫번째 문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미련한 들러리들의 등이 점점 꺼져갔다. 여기서 꺼져가다 라는 의미는 실제로 진짜 꺼져갈 수도 있고, 이미 꺼진 것을 회화적인 것을 묘사한 글이기도 한다. 그제야 부랴부랴 기름을 나눠 달라고 요청한다. 근데 지혜로운 들러리들이 나눠주는가? 거절한다. 그러나 거절당한 이들이 포기하는가?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름을 구하기 위해 그 즉시 상점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만큼 기름을 구해서 왔다. 당시 기름은 올리브기름이 보편적이었는데 이 기름은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생활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기름 없는 집이 없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기름은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어딜 가도 기름을 구할 수 있었다. 사르밧 땅의 과부 아시는가? 그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도 기름은 있었다. 그 오랜 흉년으로 이것 먹고 죽자 할 때에도 기름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기름이라는 것은 어느 집에나 있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다. 기억하길 바란다. 본문을 풀어내는 굉장히 중요한 단서이다. 기름을 구하기 쉬웠다 어려웠다? 쉬웠다는 것이다. 이걸 기억하셔야 한다.
기름을 준비해서 왔지만 2차 문제가 생긴다. 혼인잔치의 문이 닫힌다. 한번 닫힌 문은 안 열린다. 이때 열어달라 요청하지만 혼인잔치 집 주인이 매우 두려운 엄중한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아버린다.
12절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였노라 라는 말은 혼인잔치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렸던 사람이다. 이들은 다른 들러리들과 함께 신랑을 기다렸다. 밤이 새도록 졸고 잤지만 기다렸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나는 너희를 모르겠다고 한다. 누가 들러리로 불렀는가? 혼인잔치 집의 주인이나 신랑 신부가 요청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와서 모른척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수고와 헌신이 없는 것이 아닌데, 안 기다린 것도 아닌데, 단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을 뿐인데 왜 주인이 모른척 하는가? 이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열심히 했지만 실수를 했다. 안 기다린것도 아니다. 단지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다고 거절당했다는건 너무한 처사 같다. 회사에서 한번 실수 했는데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 사장은 좋은 사장인가 나쁜 사장인가? 인정도 긍휼도 없는 냉정한 주인 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우리 생각이고, 당시 1세기 유대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들러리들은 부름받을 때의 역할 때문이다.
들러리는 딱 한가지 이유 때문에 부름받는다. 등에 불 밝히는 일이다. 들러리로 부름받으면 그 혼인잔치에서 딱 한가지 일만 잘 해주면 된다. 등에 불을 밝히는 것이다.
당시의 결혼식은 밤에 진행되는데,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른다. 당시에는 많이 축복 받아야 축복된 결혼식이라고 생각해서 여기 저기 들렀다 온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모든 하객과 들러리들은 혼인집에서 기다리다 졸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올지 모르는 신랑신부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때부터 들러리들이 움직이고 등을 밝힌다. 그러면 그 동네에 한밤중에 등이 밝혀지고 동네사람들이 저 집에 혼인잔치 있구나 한다. 그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직 신부를 보지 못했어도 등이 밝혀질 때 그 동네의 기쁨이 충만했다. 초대받은 모든 이들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을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밝히시는 들러리로 부르시는 줄 믿는다.
들러리로 부름받았으면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일은 기름의 양 이다. 들러리로 부름받으면 반드시 기름부터 체크해야 한다. 등의 모양이 어떤가 이런건 관심이 없다. 반드시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이 기름의 양 이다. 왜냐하면 들러리로 부름받았다는 것은 이 혼인잔치에 불을 밝히기 위해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을 여러분을 들러리로 불러주신 것을 믿는가?
가정에서 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면 그 가정에서 등을 밝혀야 한다.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등을 밝혀야 한다. 등 밝히라고 불러놨더니 등 밝힐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 마지막 날에 주님께 거절당할 수 있다.
적용해보자. 과연 나는 가정에 들러리로 부름받았는데 과연 나는 진리의 불을 밝히고 있는가? 내가 불 밝혀야 할 그 부르심의 자리는 어디인가? 다시한번 확인하시고 점검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럼 이제 기름준비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 기름이 뭘까?
열 명의 들러리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면 그 기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공통점은 1) 모두 다 처녀였다 2) 모두 다 신랑을 기다렸다 3) 모두 다 졸고 잤다 4) 신랑 올 때 모두 깨었다 5) 모두 다 등은 들고 있다.
근데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 한편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한편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
즉 다섯가지 아니라 열가지 천가지가 있어도 이것 하나 없으면 혼인잔치에 못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현상과 형식이 있어도 이것 없으면 절대 안된다. 우리는 이것을 본질이라고 한다. 아무리 대단해도 현상은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형식이 있다 해도 그것은 내용을 대체할 수 없다. 논문 쓸 때 형식에 맞춰서 쓴다. 그러나 형식에 맞췄다고 다 통과하는가? 아니다. 내용이 없으면 아무리 형식이 탄탄해도 그 논문은 통과할 수 없다.
즉, 이것 없으면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간다. 다른 것 다 있어도, 대단한 헌신, 수고, 업적이 있으나 이것 없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 믿음이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 없이는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오래 머물러 있어도, 아무리 열정과 열심, 대단한 봉사와 헌신이 있어도 그 속에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하나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10여년간 했다. 지금은 중단했다. 제가 얼마나 열정있는 목사인지. 저는 지가 젤 잘난 줄 아는 목사이다. 제가 매치메이커라는 청소년 선교단체를 꾸리게 되었다. 단체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팔로워들이 있어서 단체를 시작하게 되었다. 제가 예배사역 기도사역 청소년 캠프 이런것들을 오래 했었다. 그때는 굉장히 내 사명이라 생각해서 청년들과 함께 사역했다. 저는 지가 젤 잘난줄 아는 목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교단체 운영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캠프 한번 하면 500만원씩 마이너스가 되었다. 팔로워들에게 있으면 사례비는 못줘도 밥은 사줘야 했다. 근데 식대만 100만원이 넘었다. 그때 제가 교육전도사로 사례가 70만원이었다. 그러니 감당이 안되었다. 저희 사모가 일을 해야 움직여졌다. 아내가 92만 93만 받아오면 거기로 다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1년 사역하고 나면 전세방 빼서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안한다고 했지만 지가 젤 잘난 줄 아는 목사라서 다시 또 했다. 그럼 또 빚이 생겼다. 그러니 너무 힘들었다. 나는 분명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을 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 붙들고 가는데 이 가는 길이 왜 이렇게 안풀리는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힘들지만 계속 했던 것이 열매 있고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캠프 하면 눈물 흘리고 회개하고 열매가 있었다. 심지어 팔로워 청년들에게 일년간 휴학하라고 하면 휴학하고, 직장도 쉬라고 하면 쉬었다. 이런 팔로워들이 있으니 제가 못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함께 사역을 했지만, 이런 청년들이 있으면 잘 풀려야 했는데 힘들었다. 왜 힘든지 그때는 몰랐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스탑 시키셨다. 이유를 몰랐다. 내가 열심히 하고 헌신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물질적인 헌신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그 이유를 몰랐다. 정리하고 너무 낙심했다. 그런데 큐티하면서 그 이유를 발견했다. 나는 열정만 있었지 믿음이 없었다.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이 없었다. 믿음으로 사역하지 못하고 내 힘으로 사역을 한 것이다. 내 힘으로 하면 거기에 속았다. 내 힘으로 해도 어느정도는 되었다. 열매도 있고 사역에 현상도 있었다. 무언가가 일어나니 거기에 속는 것이다. 열매가 없으면 빨리 끝냈을텐데 현상이 있고 열매가 생기니 스스로 거기에 속는 것이다. 그런데 나만 속았느냐? 알고보니 속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마 7:22-23절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루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이들이 일을 했다. 주님의 나라 위해서 일을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불법한 자들이라고 정리하신다. 왜 그들이 정리당해야 하는가? 그들은 주를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나를 위해 일했다. 내가 높임받고 내가 인정받고 내가 박수받기 위해서 주의 이름도 끌어오고 주의 능력도 끌어왔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데, 나에게는 능력이 없다. 그러니 예수의 이름을 가져오고 예수의 권능도 가져왔다. 예수의 이름을 앞에 세우고 일하는 것이다. 제가 그랬다.
그런 자들에게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주님을 찾아도 나는 모른다 하신다. 주님께 거절당하고 마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본문에도 똑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미련한 다섯 들러리들이다.
11-12절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문장구조가 똑같다. 주여주여 나는 이랬습니다. 주님은 알지 못한다 한다. 이들이 신랑을 기다렸다. 등도 준비했다. 수고도 있고 헌신도 있고 형식도 갖췄고 신랑을 기다렸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다. 믿음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헌신과 봉사와 헌금을 많이 한다 해도 그 속에 믿음 없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믿음 없이는 아무리 대단한 현상이 있고 아무리 대단한 업적과 공로가 있어도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믿으시길 바란다.
적용) 나는 믿음으로 사역하고 있는가? 나는 믿음으로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는가? 아니면 체면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박수 받기 위해 일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그럼 그 믿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고, 언제 얻을 수 있는가?
믿음이라는 것이 열심히만 교회만 다니면 생길까?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면 생길까? 저는 생길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일이다. 주님의 일과 나의 일을 혼동하시면 안된다. 믿음을 주시는 것은 주님의 일이고, 그 주시는 믿음을 내 것 삼고 키워나가고 성장시켜가는 일은 누가 해야하는가? 내가 해야 한다. 그러면 믿음을 얻고 믿음의 분량을 채워가고 천국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그 믿음의 분량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말씀을 배우고 듣고 묵상하지 않으면, 날마다 큐티하지 않으면, 말씀으로 달아보지 않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분량을 소유하기가 어렵다.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다. 왜 편한 길 두고 돌아가려고 하는가? 날마다 말씀으로 나의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떨어져가는지 체크해보시기를 바란다. 날마다 그 말씀이 다림줄이 되어, 그 본문 앞에서 내가 얼마나 벗어나 있고 내가 어제까지는 열심히 했으나 오늘은 어떤 시험과 죄와 부끄러움 때문에 못 나가고 있는지, 그 말씀이 저울질 되어 그 말씀앞에 내 자신을 데려다놓고 날마다 큐티함으로 내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날마다 체크하고 채워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그러면 날마다 체크해야 한다면, 언제 준비해야 할까? 그렇게 큐티 하는거 언제 해야할까? 바로 지금이다.
어느 노신사가 점심시간 이용해서 도서관에 갔다. 갑자기 하나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졌다. 나는 무엇때문에 살아왔나, 나란 존재는 어떤 존재이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갔다. 보니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는 책이 있어서 빌렸다. 책을 펴서 일긍려고 하니 점심시간이라 배고파서 금강산도 식후경, 배부터 채우자 해서 식사를 주문했다. 나올 동안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음식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먹고 나왔으니 책 펴서 읽으려 하는데 회사에 하지 못한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회사로 부랴부랴 가서 퇴근시간 맞춰 다섯시에 일을 끝냈다. 한시간 짬이 나니 그때부터 책 읽으려고 펼쳤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일찍 들어오라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차막히기 전에 한시간 빨리 가자 싶어서 부랴부랴 집에 왔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책 읽으려고 했더니 아내가 불러서 식사하자고 해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맛있게 했다. 다시 소파로 와서 책 읽으려고 했다. 근데 석간신문이 도착했다. 그날 신문은 그날 읽어야 하니 노신사도 신문을 펴서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귀가 그 등 뒤에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 날이 노신사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성경보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봉사하지 말라 헌신하지 말라고 큐티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귀가 속삭이는 것이 무엇인가? 마귀는 지금 하지 말고 나중에 하라고 한다. 지금 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지금 시급한 일이 있고 다급한 일이 있고 절박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 놔두고 무슨 큐티 하냐고,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침에 일찍 나가 뛰어도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려운 시간에 지금 뭘 그리 큐티하냐고, 큐티는 문제 해결하고 나면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계속 마귀는 유혹한다.
절박하고 급박한 문제 앞에 말씀을 더 앞에 두는가 아니면 말씀보다 그 문제를 앞에 두는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이 우선되지 않으면 내일도 말씀이 우선되지 않는다. 오늘 큐티해야 할 본문을 오늘 하지 않고 내일로 미뤄두면 못하게 된다. 나는 언제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내게 닥친 이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큐티하겠다고 스스로 속이지 말라.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그 날이 온다. 그 날에 미련한 다섯 처녀들, 다섯 들러리처럼 큰 수치를 당하고 만다.
말씀맺음
기름을 구하는 일은 쉬웠다. 그것이 문제였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아무나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큐티였다. 너무 쉬우니 나를 속이게 된다. 그런데 내 발에 발등이 떨어졌다고 발등에 급한 불만 끄고 나면 나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한다. 스스로 속이지 마시라. 그것은 게으름이다. 내가 게을러서 오늘 기름을 구하지 않은 것이 실수이다. 지금 큐티 시작하기 바란다. 지금 못하면 내일도 못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거이다. 급한 불만 끄고 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귀는 호락호락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 3년동안 외쳤다. 사라 들고다녀라 했다. 요즘은 들고만 다닌다. 읽으라 했더니 읽는 분들이 생겼다. 올해는 한 단어를 추가했다. 언제 사라? 지금 사라. 지금 들고 다녀랴. 지금 읽어라. 지금 못하면 앞으로도 못한다.
오늘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가 내 발 앞에 있지만 거기에 푹 빠져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 앞에 나를 들여다보고 내 믿음의 분량이 얼만큼 줄어들었는가, 내가 어디서 얼만큼 말씀에서 떠나져 있는가, 십자가 복음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 스스로 말씀이 다림줄 되어 그 말씀 앞에 나를 달아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믿음의 분량이 부족하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지금 그 믿음의 분량을 채워가시는 저와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 기도제목 ]
크리스틴
1. 큐티 빼먹지 않고 읽은 말씀 하루동안 생각할 수 있도록
2. 일 집중할 수 있도록
3. 수시로 기도할 수 있도록
교희
1. 본질로 돌아가 큐티하고 우선순위를 잘 분별하도록
2.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섬기도록 (목장, 부서, 아웃리치)
3.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이 생기도록 (나 자신, 가족)
보련
1. 말씀이 잘안들릴때가있는데 잘 들을 수 있도록
2. 서류 결과 나오는동안 인내하는 시간 기를수 있도록
3. 지출하는 것 조리있게 쓸수있도록
은선
1. 큐티 절대적 시간과 질적인 부분을 늘려서 진로 치열하게 묻고 갈 수 있기를
해석되지 않은 인생과 죄 된 모습들. 해석시켜주시고 회개케해주시기를. 이를 통해 나의 베냐민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2. 해이해져서 날마다 놀고싶은데 6.10 학위논문디펜스 성실히 준비하게 해주시기를
3. 진행중인 연구들 선하게인도해주시기를
4. 전도하게 해 주신 지체 교회에 잘 정착해서 영적 기근에서 살아나게 해주시기를
5. 이번 주 금요일 조모임에서 상대방의 교만 통해 그보다 더 교만한 내 죄 보게 해 주시도록. 그리고 잘 깨어질 수 있도록
은우
1. 들러리의 역할인 등을 잘 밝히도록
2. 기름잔에 말씀과 믿음의 기름을 가득 채우는 한 주 되도록
3. 목장 식구들 양육 양교 위에 하늘로 부터 내리는 '큰 은총' 부어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