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5. 성령의 고백 목장(사도행전 24:10-23)
살면서 어떤 고백이 가장 감동스러웠습니까?
1. 사과로 시작하는 고백입니다. 10-13절.
고발 당하는데 어찌 ww 기쁠 수 있겠나? 정말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복음을 겸손하게 전한다. 바울이 전한 변명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성경에서 변명한다는 것은 대화한다는 것이고 사과에 기반하고 있다. 고발당했을 때 오해가 되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하려던 의도는 따로 있다며 변명하는 것. 이런 사과하는 태도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을 변명이라고 한다.
바울은 자기가 죄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울은 동족을 핍박했던 죄인이기에 어디서나 죄인된 마음으로 사과의 마음을 갖고 고백할 수 있었다. 고발받고 변명하고 더 나아가 복음 전하는 것이 성령의 고백이다. 그리고 성령의 변명을 하면서 기꺼이 소요를 일으킨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변명을 한다.
팩트체크를 합니다.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와서 7일간 결례를 치렀다. 그래서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킨 사실이 없고, 곧 체포되었기에 겸손하게 사과로 시작하는 고백을 해야 한다.
바울은 특별히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람을 상대로 경쟁하지 않았다.
2. 죄의 자백이고 공동체 고백입니다. 14-15절.
고백하기 위해 중요한 고백을 한다. 그것은 나사렛 그리스도교가 이단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그 도를 믿는다고 인정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 도를 따라 유대인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서, 선지서에 있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 얼마나 자기가 신실한 유대인인지 주장한다.
여러 사람이 동의한, 합의한 선언인 공동체적인 고백이다. 우리의 목소리이다. 즉 성령의 고백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시는 것인데, 자기 생명을 접붙임으로써 몸으로 이어진 지체, 목장, 교회를 통해 내 속에 전해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동일하게 하는 고백, 우리의 간증이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사도행전을 고백합니다. 찬양 드릴 때도 함께 부릅니다. 이것도 성령의 고백입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 봉헌으로 하나가 되어 드릴 때도 성령의 고백이 된다. 새가족을 환영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는 것도 성령의 고백이다. 가정에서는 매일 같은 본문으로 묵상하고 적용하고 나누는 것도 성령의 고백이다. 날마다 목장에서 죄를 자백하면 깨끗하게 하신다. 날마다 고백할 때마다 공동체가 깨끗해지고 거룩해진다.
바울이 지금 벨릭스 법정에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한다. 공동체에서 죄를 드러내며 고백할 때 다른 사람들의 고백을 이끌어낸다. 나의 갈릴리, 전염병, 수치를 다 드러내니까 생명이 접붙혀져서 목장이 살아난다. 이런 고백이 날마다 이뤄져야 합니다.
- 나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 나는 고백한 죄인입니까, 고백하지 않은 죄인입니까?
- 나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가 있습니까?
- 목장에서 잘 나눕니까?
죽을 것 같은 환경이 최고의 준비입니다.
3.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고백입니다.
더둘로의 마지막 고발. 성전을 더럽게 하려 했다는 것에 대한 팩트 체크 16-20절.
17절.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에서 부조를 드렸다고 한다. 자신의 민족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데, 자기는 어려움에 처한 고향 민족을 돕기 위해 구제헌금까지 마련했다는 사실을 대비시킨다. 부조를 걷는 일도 어려웠겠지만,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가져오기까지 작전을 세웠는지 우리가 경험했다. 그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움을 돕는 것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자존심을 배려해야 했고, 금액조차 공개하지 않았을 만큼, 조심스러웠다. 생색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렇게 했으니까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밝힘으로써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쓴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방교회에서 가져다가 드린 부조는 사랑의 적용이다. 둘로 나뉘려는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려는 노력에 돈이 필요했다. 온갖 방해, 비난을 무릅쓰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의 일을 통해, 자기를 숨기고 이방교회의 사랑을 전했다. 이렇게 하나 되길 힘쓰는 것이 우리가 외쳐야 할 성령의 고백이다. 가장 결정적인 고백의 증거, 돈이 있다.
17절부터 다시 이야기를 한다. 돈을 가져왔지만, 율법적인 유대인들을 위해서 성전에서 결례부터 행했다.
바울은 처음에 10-13절에 소요하게 할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돈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다시 소동하게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18절에서 보았다는 말은 바울이 결례를 치르는 동안 한 번 봤기 때문에 성전에 있는 것을 봤다고 한다. 더둘로의 고발 앞에 바울의 이런 변명을 듣고 대제사장이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증거가 없다. 아시아의 증인들은 법정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둘로가 위중죄로 처벌받게 생겼다. 말씀 보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팩트가 굉장히 중요할 때가 있다.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밝혀야 할 때가 있다.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이 있습니까? QT, 부모의 말, 교수의 말, 나의 신념 등등 무엇입니까?
- 스승의 날에 원칙을 지키게 해주시고 긍지를 갖게 해주신 스승님이 있으신가요?
김태석
- 동생 교회 나올 수 있도록
- 큐티는 잘 되는데 설교가 잘 안들어오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유다니
-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 학교공부 잘 붙어갈 수 있도록
김준범
- 신념이 조금 더 세상적인 것에서 성경적일 수 있도록
안식
- 이번주도 내 주장을 내려놓고 팀장님 밑에 잘 순종하기
- 근무시간 내 회사 욕 하지않도록
- 고백을 시원하게 하는 죄인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