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8. 성령의 고발 (행24:1-10) 김양재 담임목사님
지난주 벧엘교회의 김한요 목사님께서 성령의 편지로 와주셔서 우리들교회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듣게 하셔서 격려도 되고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없고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고 했는데, 오늘 우리가 실 예의 간증을 들었다.
우리는 그럼 어떤 부모일까? 소위 좋은 부모로 최고로 키우고 교회도 다니게 했는데, 김 목사님 말씀처럼 죽고 나서 내 자녀가 이상한 곳에서 눈 뜨면 어쩌는가?
요즘 사회적으로 이렇게 고소 고발의 시대를 산 적은 없는 것 같다. 꼭 법적 고발이 아니더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적이나 공격 받는 것도 고발을 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내 자신이 내게 비난하는 내면의 소리도 스스로 고발하고 고발당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그 자신이 특별한 성령의 편지가 되어 가이사랴로 왔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로 전달되어졌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바울이라는 편지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바울이라는 편지가 펼쳐지기 위해서 아주 독특한 방법이 사용되는데, 바로 그것이 고발이다. 바울이 그 무서운 고발을 당하니 무서울수록 사악할수록 그 고발이 더 큰 성령의 고발로 바뀐다. 그래서 바울이라는 편지가 온 세상에 펼쳐지기 위한 최고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된 것이다.그래서 고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고발을 당하는가 가 중요하다. 바울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 고발에 성령이 임하시니 최고의 은혜로 바뀌게 하셨다. 발상의 전환이 너무 중요하다.
오늘은 서로 정죄하는 모든 고발이 성령의 고발로 바뀌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생각해보겠다.
성령의 고발은 첫째
1. 세상으로 내려가는 고발이 아닙니다.
1절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바울의 전도여행이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바울을 잡고자 죽이고자 하는 박해가 계속 되어지고 있다.
21장 보면 유대군중을 향한 바울의 변론이 있고, 산헤드린 공회의 변론이 23장에 있다. 그것도 끝이 나지 않아서 로마총독에게까지 고발을 하니 오늘 벨릭스 총독 앞에서의 변론이 있고, 아그립바 앞에서의 변론이 이어진다. 이런 변론을 길게 다루는 것은 이런 변론의 의미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수많은 고발에 대해 변론하는 것이다. 성령의 편지가 되려면 반대에 직면하여 수 없는 변론을 해야 한다. 초대 교회 당시 갖은 박해와 고난 가운데 처해 있었지만, 바울의 이런 변론에 힘을 얻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세한 변론 내용은 수많은 고발을 받아낸 우리들교회의 성도들의 간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큐티인 간증이 풍성하다.
오늘은 벨릭스 총독앞에서의 변론을 보겠다.
바울이 보병 기병의 호위를 받아 완벽한 전략으로 안디바드리를 지나 가이사랴로 떠난지 닷새가 지났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40명의 암살단이 있었는데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다. 거기의 대표격인 아나니아 제사장은 자기가 예루살렘의 유대인의 대표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자기 수하의 장로들을 데리고 탁월한 한 변호사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력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바울을 잡겠다고 떠났다. 지금으로 따지면 아나니아가 행정 수반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치인과 대형로펌의 대표가 한 팀을 꾸려서 온 것이다. 근데 이 1절에 총독만 이름이 없다. 그것은 이미 공정할 수 없는 재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 왜 벨릭스 총독이 공정할 수 없는 인물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겠다.
벨릭스 형제는 원래 글라우디오 황제의 어머니의 노예였다. 근데 글라우디오 황제는 온갖 못된 쾌락은 모조리 추구하면서 유대인들을 다 추방했던 악한 왕이었다. 이 사람은 쾌락적인것, 새것을 날마다 계속 추구했다. 그 때 온갖 쾌락의 소스를 제공한 자가 바로 벨릭스의 형 팔라스였다. 이 쾌락을 제공하는 자들과 당연히 이권이 개입되었고,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그 돈으로 노예인 동생을 신분세탁해서 총독으로 밀어 넣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리고 팔라스는 끝까지 왕을 모시고 자신은 총독이 되지 않았다. 충신 맞다.
갱단 마피아같이 죽고 죽이는 정치판에서 이권과 고발이 난무했다. 여기에 거의 99%의 승률을 자랑하는 더둘로 변호사가 돈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돈 되는 일이구나 하면서 아나니아의 오른팔이 되어 협업을 했다.
더둘로가 헬라어를 잘하지만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오직 돈만이 나의 힘이라는 리더그룹이다.
그렇게 돈돈 하면서 잔인하게 모든 통치를 했던 벨릭스도 총독을 6년밖에 못했다. 불안하게 지옥을 살다가 악한 황제에게 소환되어 비참하게 죽었다. 이 세상의 권세가 그렇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원한 보장인 지 알아야 하는데 참 안타깝다. 벨릭스의 스토리가 이렇게 되는 것을 알고 출발하자.
오늘 1절에 대제사장과 그 일행들이 함께 내려왔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바울이 가이사랴로 갈 때는 내려갔다는 표현이 없다. 똑같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왔다.
바울이 가이사랴로 갈 때는 내려갔다는 표현이 없다.안디바드리에 이르러 가이사랴로 들어가...이르렀다 들어갔다고 표현되어 있지 내려갔다는 말은 없다.바울이 가이사랴에 간 것은 마침내 이르렀다, 안전하게 들어갔다, 뭔가 꼭 가야한다는 표현이다.
근데 영적인 예루살렘은 꼭 올라갔다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함께 내려갔다는 이 말은 영적이 아닌 세상으로 흘러내려갔다는 뜻이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했다는 뜻이다. 이 단어를 유심히 보면 내려왔다는 단어가 3인칭 단수이다. 이상하다. 주어가 여럿인데 어떻게 단수일 수 있는가. 복수여야 하는데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받는 내려왔다는 동사는 단수라고 한다. 주어를 단수로 한 사람을 꼬집어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제일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근데 대제사장은 어디있어야 하는가? 성전에 있어야 한다. 절기 지키는 예배를 준비해야 하고 성전에서 할 일이 많다. 그런데 바울에 대한 증오심으로 바울 한 사람 죽이겠다고 104km나 떨어진 300리 길을 닷새나 달려왔다.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이 아니더라도 여자와 노예 이방인을 무시한다. 그리고 소송하지 말라고 해서 세상법정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깨고 나이 많은 대제사장 양반께서 손수 자기가 직접 와서 이방인 법정에 들어간다. 얼마나 급하면 이러겠는가?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급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여러 무리가 내려왔지만 이 기막힌 대제사장을 바라보며 내려왔다고 단수로 기록한 것이다. 대제사장이 함께 내려온 이 일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가 획책했기 때문에 같이 간 모든 사람이 고발해서 주어가 똑같이 복수인데 내려갔다는 것은 단수이고 고발했다는 것은 복수이다. 대제사장이 내려와서 모두 같이 고발했다는 뜻이다.
결국 이렇게 내려간 아나니아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십일조를 가로채며 온 나라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훗날 온 백성의 미움을 받다가 결국 하숙에 숨어있다가 로마 군병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대제사장도 아나니아도 최후가 너무 비참하다. 다시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내려간 것이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힘과 권세와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내려갔다. 먹고 살만한 힘이 있으면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내려간다. 돈도 권세도 없으면 박차고 내려가지 못할 텐데 우리가 권세가 없어서 누군가 고발을 해도 박차고 내려갈 환경이 안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증오심으로 바울의 죄를 묻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쫓아가면 상대는 더욱 악해져서 싸움만 날 뿐이다.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리를 지키는 것, 목숨 걸고 가정을 지키고 예배와 목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결국 누군가를 회개케 하는 성령의 고발이다. 이것이 성령의 고발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면 나를 보고만 있어도 성령의 고발이 되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 이 고발의 뜻으로 사용된 단어는 엠파니조 라고, 눈에 띄도록 드러내다 라는 뜻이다. 바울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이 똑똑히 보도록 드러내도록 고발한다는 것이다. 우리 말에도 잘못을 까발리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이 엠파니조의 의미이다. 고발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을 고발했기 때문에 결국 바울을 온 세상에 나타내며 알리며 바울을 도리어 자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단어는 부활 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실 때 쓰이는 단어이다. 즉 이 단어는 법정적인 어휘인데, 재판장 앞에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즉 바울을 고발한 이 사건이 도리어 바울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고 바울 옆에 바울을 변호하기 위해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고발이다.
바울은 늘 이르렀고 들어가고 자기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를 미워해서 고발한 적이 없다. 그러니 세상 방법으로 누군가를 죽이고자 원수 갚고자 내려가지 않고 내 자리를 잘 지킬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알리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편지 성령의 편지이신 나를 알리실 것이다.나의 믿음과 눈물과 자리를 주께서 아시기 때문에 주께서 가만히 자리 잘 지키고 있는 나를 알리시고 주께서 변호하시고 주께서 결국 내 앞에 나타나실 줄 믿는다. 나타나신다.
적용)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혼 등을 생각하나요? 권세와 재물이 주어져서 편한 교회, 편한 가정의 환상을 가지고 지금 어디로 내려가고 있나요?
권세와 재물이 주어지면 우리들교회가 부담이 되는 분들도 계신다. 이혼하려니 나가야 한다, 이래야 해서 이래야 해 저래야 해 하면서...
결정적으로 제가 세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킨 가장 큰 힘은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새벽이면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하시던 어머니가 그저 그 자리를 지킨 그것 하나만으로 그 삶이 저에게 성령의 고발이 되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성령의 고발이 되어서 어머니의 그 자리 앞에서 울며 회개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단한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고발 두번째는
2. 말에 걸려 넘어지면 세상의 고발로 끝납니다.
2절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고발장이 접수되자 총독이 바울을 소환한다.
바울이 법정에 나온다. 지금 피고신분이다. 아나니아가 대표하는 유대인 전체가 원고가 되고 그 원고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있고 이미 아나니아와 뇌물을 주고받는 사이인 벨릭스가 재판장인 법정에 바울이 피고로 선다. 그리고더둘로가 벨릭스에게 아첨한다.
3절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변호사 더둘로는 연설 전문가 답게 고상한 단어와 품격 있는 어투로 벨릭스 총독을 향해 바울을 고발하는 연설을 한다.각하 태평 선견 개선.. 멋있는 단어들이다. 각하, 벨릭스 때문에 태평하다고 한다. 그는 신의 예지를 하나님의 예지를 선견을 가졌다고 한다. 개혁을 했다고 여러가지로 이 나라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런 묵직한 단어로 벨릭스를 한껏 칭송한다.
그러나 사실 노예출신 벨릭스는 각하나 선견이라는 말이 절대로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통치는 분쟁이 잦았기 때문에 태평이나 개선이라는 말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그때 도둑을 잡았다고 한다. 근데 앞에서는 잡고 뒤에서는 돈 받고 다 풀어주었다. 이 사람이 돈밖에 모르니 그렇다. 우리가 벨릭스에 대해 조금 전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잔인하고 악하고 음탕한 노예이고 특별히 돈 노예이고 이방인인 그에게 이스라엘의 최고 행정수반인 대제사장이 변호사를 통해 짧지만 굵은 칭찬으로 총독을 한껏 띄운 더둘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더둘로는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곳에서나 현재형으로 크게 감사한다고 한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감사하다고 어마어마한 칭찬을 한 것이다.더둘로는 그렇게 칭찬을 해놓고는 바울을 고발한다.
5-9절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하반-상반 없음)
7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바울에 대해 더둘로는 전염병이라는 죄패를 딱 붙인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도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물며 과거에는 어땠겠는가? 과거에는 전염병을 듣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조건 피해야 하고 없앨 수 있으면 무조건 없애야 하는 기피대상 1호였다. 그런데 진짜 더둘로가 언변이 좋았던 것 같다. 이 단어 하나를 잘 골라서 특정 인물에 딱 연결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다. 그러니 승률 100프로이다.
더둘로가 전문가답게 하고 많은 단어 중에서 전염병이라는 가공할 단어를 바울과 연결시킨다. 이제 바울은 전염병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언론에서 한 사람에 대해 프레임을 씌우면 낙인이 찍히는 것이 있다. 정치가들은 끊임없는 언론플레이를 한다. 이것이 진짜 그런 것 같다. 그럼 어떻게 그럼 전염병 같은 자인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첫째,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다 소요하기 때문에 전염병 같은 자라는 것이다. 소요는 로마 관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인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로마는 넓은 영토를 로마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에 두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소요나 폭동을 철저히 예비하고 진압해야 했다. 그러나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유대인의 소요를 일으키는 폭동가라는 것이다. 그러니 로마법에 따라 처형해야 하고 반역죄로 십자가 형으로 다스리라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바울이 가는 곳 마다 소요를 일으킨다고 한다.
바울이 전염병인 이유 두번째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바울이 전하는 가르침은 정통 유대교가 아니라 나사렛 이단이라고 폄훼를 한다. 그가 비주류집단이라서 그는 늘 주류를 비판하고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 위험집단의 두목이 바로 바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의 안전을 위해서 그 싹을 싹둑 잘라야 한다고 변론을 했다. 이것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제가 항상 비주류에 있어봐서 그런가 전부 내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번째로, 왜 전염병인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로마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때로는 지방에 일정 권한을 주기도 했다. 예루살렘처럼 종교성이 강한 지역에 대해서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규율에 따라 형벌을 집행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 그 나라의 그 민족의 전통문화를 다 인정해줬다. 오직 소요만 다스렸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나 스데반 집사를 로마의 관여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알아서 처형해도 될 만한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변론하는지 성전을 더럽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라고 했다. 성전을 더렵히지 않았다. 나중에 책임소재가 될까봐 더럽게 하려 하므로 라고 했다. 이렇게 일류 변호사는 나갈자리를 보고 이렇게 변호를 한다.
더둘로가 이렇게 유창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고발 연설로 바울을 순식간에 전염병 같은 자로 만들어버린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향해 그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여 가르치는 자 라는 프레임을 씌웠던 것을 기억하시는가? 사실 그때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방인과 같이 성전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그룹이 프레임을 씌우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더둘로가 전염병이라는 한 단어로 딱 각인을 시켜버렸다. 과연 더둘로이다. 이 고발에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다 동의한다.
9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그러니 아나니아와 더둘로와 장로들, 그 리더그룹이 결정만 하면 이 유대인들은 옳다고 한다. 자기 생각이 없다. 정치도 똑같다. 이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똑같다. 유대인들이 더둘로의 고발의 증인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어떻게 벨릭스를 그렇게 칭찬할 수 있나? 자기 동족 바울은 가말리엘의 후예고 산헤드린 공회원이고 유대인 중의 유대인인데, 바울을 향한 고발에 전부 바울을 죽이라고 했다. 바울이 이방인과 어울리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비난한 그들인데 정작 자기들이 이방인 총독에게 지금 동족 바울을 고발하고 있다.
제가 벨릭스의 히스토리를 괜히 말씀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이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발할 수 있는가? 그러나 자기 이권이 자기 유익이 딱 생기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생각하는 것이 본능이다. 여러분은 누군가 여러분을 전염병 같은 자라고 말하면 어떨 것 같은가? 저 코로나 같은 놈 이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기분이 안 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왜 전염병 같은 자인지 설명한다면 어땠겠는가? 듣기가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우리를 향한 고발은 이렇게 공격하는 말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그 말에 다 걸려 넘어진다. 잘 참다가도 말 한마디, 단어 한마디에 걸려서 다 폭발한다. 결국 아흔 아홉번 참아도 한번 못참으면 똑같다. 공격하는 자나 당하는자나 다 똑같다. 결국 거기서 거기다.
이렇게 말에 걸려 넘어지면 우리가 당하는 고발은 세상의 고발로 끝날 수 밖에 없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말을 하는데, 이 고발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또 같이 고발하고 싸우면 지는 것이다. 화가 나면 지는 것이다 왜? 예수님의 편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서야 내가 받는 고발이 성령의 고발이 되는데 화를 내고 서로 싸우고 고발로 갚으면 결국 성령의 고발로 바뀌어지지 못한다. 내가 성령의 편지가 못되니 그렇다.
여러분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또 교회에서도 말 한마디에 부르르 떨지 말고 넘어가시길 바란다. 말 하나에 시험 들어서 사네 못사네 하면서 이혼하고 그러는데 그 의도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전하시려는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그 어떤 말을 해도 넘어가시면 좋겠다.
적용)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단어 하나는 무엇입니까? 또 한마디만 들으면 용서가 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고발이 아첨으로 시작한다는 것 인정하십니까?
분별 해야한다. 그러면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이 단어를 어떻게 하면 넘어갈 수 있을까?
성령의 고발 세번째
3.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알리는 고발입니다.
똑같이 5-9절을 다시 읽겠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하반-상반 없음)
7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바울의 죄를 고발할 때 우리가 보니 라고 시작한다. 우리가 이전에 들었던 본이라는 단어는 아주 주의 깊게 보다 라는 단어이다. 여기서 쓰인 단어는 휴리스코 라고, 대충 봐도 안다, 지나갔다가 우연히 한번만 봐도 전염병 같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충 봐도 알고 한번만 봐도 알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도 바울을 전염병 같은 놈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넘어가는가?
전염병이라는 놈이라는 고발을 들은 바울은 어땠을까? 이 말 자체가 너무 기분 나쁜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내용이 다 맞다. 자신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한 일이 바로 복음을 전한 것이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다녔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예수 믿는 제자들이 곳곳에 생겼고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가 점점 늘어났다. 전염병 같은 자 맞지 않는가? 정말 복음을 퍼트리고 다녔다.
바울은 이런 식으로 내가 한 전도가 인정받을 수도 있다 한 것 같다.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속으로 맞다, 나 전염병 같은 놈이야 했을 것 같다. 뭐든지 구원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걸려서 넘어지지 않고 다 훌쩍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이렇게 걸려 넘어지는 것은 여러분들이 성령의 고발이 못되어서 그렇다. 이 말도 안되는 고발은 더둘로의 말에 하나님의 시선이 담겨있음을 봐야 한다. 하나님이 보실 때 바울이 이 세상을 복음으로 전염시키는 당신의 편지인 것이다.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가 전해지고 전세계로 복음이 전해지는데 이 바울이 나사렛 도당의 첫번째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의 동네, 나사렛에서 제일 앞서 달려가는 사람이 바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 힘든 사람 제일 앞에서 죄와 싸우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첫번째 사람, 최고의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맞지, 내가 전염병 같은 놈 맞어, 저 더둘로가 나를 인정해주네
이렇게 생각을, 발상의 전환을 하시면 된다.
누가는 지난번 24장에서 그때도 고발 이야기를 했는데, 고발을 여덟 번을 언급했다. 개혁성경에는 똑같이 다 고발이라고 되어있는데, 헬라어에는 세번이나 단어가 바뀐다.
23:28에서의 고발은 엔칼레오라고 했다. 내것 내놔라 이다. 기억나시죠?
오늘 1절은 엠파니조, 그들의 잘못을 까발리다 이다. 그들이 잘못을 까발리면 하나님이 자랑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2, 8절에 쓰인 단어는 카테고레인 인데, 카테고리아의 어원이기도 하다. 범주라고 하는데, 카타의 접두어와 아고라의 합성어인데, 즉 광장 아고라에서 공개적으로 죄를 묻고 그 죄를 지목해서 널리 알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카테고레인의 고발하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광장,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매주 모여 말씀 앞에서 치열하게 나를 드러내고 고백하는 목장이라는 것이다. 더둘로처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목장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 그 앞에 말씀 앞에 나의 눈물과 상처를, 심지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죄까지도 나누며 나갈 때 이 모든 나눔을 널리 알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고발이다.
내 것 내놔라 하며 내 죄를 까발리는 고발을 할 때도 그들이 나를 까발리면 하나님이 도리어 자랑해 주신다고, 그리고 광장에서 주목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 이것이 고발인데, 모든 나눔을 널리 알리는 것이 성령의 고발이다.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가 같은 내 죄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무리 앞에서 제일 앞장서서 달려가는, 하나님이 첫번째로 달려가 자랑하고 싶은 첫번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며 가는 모든 나눔을 온 세상에 전파하며 천하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을 와글와글 소요케 하는 이것이 성령의 고발이다.
큐티인이 영어로 번역되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필리핀에서, 온 천하에 우리의 나눔이 읽혀지고 있다. 그러면 아이고 쪽팔려 하겠는가? 천하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고발당한 사실들을 다 읽어내려간다. 그런데 그럴 때 그들의 마음에 소동이 일어나고 나와 같이 고난 당한 사람이 또 있구나 하며 위로 받으며 우리가 붙든 예수를 다시 붙들고 나갈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복음을 온세상에 전염시키는 제일 첫번째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고발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내 자리에서 목장 나눔만 했는데, 거기서 내 죄를 봤는데 그것이 온 천하에 흘러 내려가서 온 천하를 소요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염병 같은 ㄴ과 ㄴ 이다.
우리가 세상으로 흘러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온천하에 열매 맺어 자라는 복음이 된 것이다. 수많은 요동과 고발로 우리 안의 편지가 열려서 내 속의 예수가 전해지는 것이다. 변호사 더둘로가 자신의 탁월한 헬라어 실력과 법정 지식과 로마법과 절차에 대한 탁월한 학문으로 고발했지만 오히려 바울이라는 편지를 열어서 바울을 널리 알리고 있는 것이다. 더둘로가 고발했지만 사실 더둘로가 바울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가 뭐라고 고발할 때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미워하지만 않고 고발하지만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더둘로가 알려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편지를 열어서 온 세계에 알리고 싶어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벧엘교회가 더둘로는 아닌데, 천당 밑에 얼바인이 있다고 한다.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당연히 박사들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데 가만히 있었더니 그분들을 사용하셔서 영어가 네이티브로 번역하게 하셨으니 이것이 우리들교회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너무 놀랍지 않은가? 여러분들이 뭐라고 우리의 나눔이 영어로 번역되겠는가.
실제로 바울은 1-3차 전도 여행보다 더 갇혀있는데 계속 고발당하고 있다. 유대인 지도자, 대제사장, 로마 총독들, 그리고 로마 황제에게까지 고발을 당하니 복음의 지경이 점점 더 넓혀지는 것이다. 그러니 고발로 말미암아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너무 놀랍지 않는가?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서 가만히만 있으니 자꾸 잡혀가서 로마 왕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여러분들을 미워하고 고발하고 고소하는 것을 안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주실 줄 믿는다.
적용) 내 죄를 대충 보고 넘어가고 있습니까? 목장에서 구체적으로 내 죄를 보고 나누며 가는 것이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누구의 고발로 이 자리에 왔나요?
너무나 감동적인 편지 하나를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믿었던 상관의 이해할 수 없는 무시와 그로 인해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팀원 중 유일하게 저만 제외되는 힘든 일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급성 우울과 공황 증상이 찾아와서 괴로웠다. 바로 이것이 힘들때마다 본인을 고발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고발하는 것이다. 직장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그저 혼자서 괴로워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처음 받으러 간 곳이라 예약하고 가야 하는 것인지도 몰라서 당일 진료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용기 내어 간 것이라 어쩔 줄 몰라 난감하게 서 있는데, 어떤 남자분이 자기 순서를 미뤄줄테니 진료를 보라고 하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렇게 첫 진료를 마치고 추가로 검사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저에게 순서 양보해주신 남자분이 어떻게오셨냐 질문하시기에 그분과 길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신과 처음이시냐고, 처음오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셔서 정신과에 참 잘 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니 정신과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이야기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니 제 마음은 훨씬 더 편안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저도 누군가에게 처음보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분은 목사님이셨다. 그런데 그 목사님도 자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눠주시고 오히려 저에게 많이 힘들었겠다고 위로를 해주셨다. 근데 교회 목사님이 저와 같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오셨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소개해 주시길, 그 분이 자기는 우리들교회 부목사이고 꼭 우리들교회와서 김양재 목사님 말씀도 들어보고 소그룹 모임에 와서 오늘 자기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이 나눔도 해보라고 하셨다. 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청년들이 많다고.
그 목사님도 지금 너무 힘든데 목사님 말씀 듣고 약 먹으며 견디고 있다고 하면서 저는 전도를 당했다. 그렇게 위로보다 더한 위로를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저는 약 처방을 한 알 받았는데 그분은 다섯알을 받아가셨다. 그 만남이 기억에 남아 지난 일요일에 우리들교회 찾아와서 예배 참석을 했다. 조금 낯설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으신 분이 나와서 자기 소개를 하시는 것도 충격이었고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설교말씀도 충격이었다. 벨릭스 맞나요? 저도 그 사람처럼 돈과 명예의 노예로 살면서 직장에서도 열등감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비굴하게 누군가에게는 권위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이렇게 힘든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 편지를 써줘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설교, 마지막 사연 이야기처럼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목사님을 정신과에서 만나서 우리들교회로 오게 된 것도 제가 편지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오며 가며 봐왔던 교회인데, 참 좋은 교회인 것 같다.
예수님과 위대한 결혼을 한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자타의 고발에 넘어지면 안되겠다. 성령께서 주시는 성령의 고발로 받아야 하겠다. 오늘 어버이날이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힘입어서 어버이인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기쁘게, 자신들을 수없이 고발하는 자녀들에게 우리를 향한 모든 고발이, 이 복음을, 온천하에 전파하는 성령의 고발이 되어서 천하의 복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우리가 적용할 것은 무조건 나는 유죄 너는 무죄,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다 내 사랑하는 딸아. 어머니 죄송해요 아버지 죄송해요. 이것이 성령의 고발인 줄 믿는다.
말씀 맺음
성령의 고발은 세상으로 내려가는 고발이 아니다. 자기 자리 잘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말에, 한 말에 걸려 넘어지면, 세상의 고발로 끝나면 열매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똑같은 말이라도 나보고 전염병 환자라고 하면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된다. 너무 잘 아셨다 하면 된다. 천하에 흩어진 백성들에게 알리는 고발이다. 우리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서 봐야 하는 줄 믿는다.
[ 기도제목 ]
*지영
1. 반려견 건강회복
2. 성령의 고발이 임하기를
3. 많이 지쳐있는 심신이 말씀으로 회복되기를
* 크리스틴
1. 다시 상담 잘 시작하고 상담선생님이 의사 선생님께 약 타는 거 잘 말해주셔서 약 처방 받을 수 있도록
2. 진로를 위해 - 개인택스를 계속 해야하는지 기업택스 기회를 찾아야하는지. 무엇이든 내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지 묵상하며 갈 수 있도록
3. 친할머니 케어 잘 받을 수 있는 곳 찾을 수 있도록. 부모님이 하나 될 수 있도록.
*승희
1. 말씀 보고 하루 잘 살아낼수 있도록
2. 기숙사에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룸메와 각자 시간을 잘 활용할수 있도록
3. 양육과제 조금씩이라도 완료하기
4. 막내고모 예전에 교회다녔었는데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보련
1. 손편지써서 서류낼수있도록
2. 매일 말씀보기
3. 카페 일주일에 한번가보는적용해보기
*은선
1. 5.20일까지 제출인 학위논문 조급함과 힘든마음 주님 앞에 잘 내려놓고 준비할수있기를. 기름부어주시기를
2. 엄마 양육 가운데 은혜주시기를
3. 부모임 코로나 4차 접종 후 부작용 없기를
4. 늦은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공부하며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많이 눌리는데 허락해주신 길임을 깨닫고 기도하며 강건할수있기를
* 교희
1. 말에 걸려 넘어지는 세상의 고발 되지 않고 발상의 전환이 되도록
2. 생활 예배 회복, 말씀에 잘 묻고 갈 수 있도록
3. 남은 양육 충실히 보내도록
4. 가족에 대한 건강한 거리 찾도록
* 은우
1.새로운 처소에서 발상에 전환되고 하루만 말씀에 살도록
2.부모님 집 3층이 불이 났는데 주님이신 줄 알고 (인명 피해 없음) 말씀에 해석 되고 여러 상황들 지켜보호해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