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6 성령의 택하심
사도행전 22:9-16
운전직 공무원 필기시험에, 9급인데 합격을 하셨데요. 솔직하게 면접을 본 후에 10명 뽑는 면접에서 2명 떨어졌는데 거기 떨어졌다는 나눔을 읽었어요. 그래서 무슨 나눔을 했냐고 봤더니 교통사고 난 적이 있냐?고 그랬더니 십 수년 전에 사망 사고가 있었다.고 면접을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교회에서 배운 대로 솔직하게. 그러니까 옆에 권찰님이 그거 조회도 안 되는 내용인데. 그래서 트라우마를 물어보는 줄 알고 전혀 문제가 없다. 이렇게 했는데. 그래서 목장에서 뭐라고 해석을 해줬냐고 하면 한 생명을 앗아갔는데 너무 당당하게 발언을 하니까 떨어진 사건을 주신 거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지혜도 있어야 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장에서 묻고 갔기 때문에 그 다음에 주택관리사 시험에 붙으신 거예요. 이분이. 그러니까 그 9급보다 훨씬 정년도 없는 좋은데 되셔서 훨씬 좋았는데 맨 처음에는 우리들교회 때문에 망했다. 너무 솔직하게 면접을 하는 바람에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나눔을 해요.
우리가 명절에 여러분들 말로 열매 맺으셨어요? 아니면 본전도 못 찾으셨어요? 그래도 여러가지 참 많은 보고가 올라왔는데 다 진짜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데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어떤 일이 와도 낙심하지 마시는 것이 우리는 실패해도 부족해도 다 주님의 자녀 자나요. 자녀는 전공이 실수하는 거예요.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부모는 너무 기뻐해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으세요. 하나님 아저씨는 좀 안 그렇겠죠. 그래서 참으로 이것이 우리가 말씀대로 가면 어떤 일을 가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이제 택자가 아닌가 싶어서 오늘은 성령의 택하심에 대해서 좀 말씀을 보도록 해볼게요.
1.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9-11절)
빛은 보고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의 9장 간증에 7절을 보면 거기는 소리만 듣고 보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면 똑 같은 사건이 성경에 상충 되자나요. 성경이 이상한가요? 9장에서 옆에 사람이 들었던 소리는 sound였고, 바울이 들은 것은 voicce였다고 탁월한 번역을 했다고 한 거 기억나세요? 그래서 택자들의 특징은 어떤 말씀이라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들교회에서 간증이나 소개를 할 때 다들 그래요. 저는 창세기 45장 말씀하실 때 왔어요. 그때 요셉이 형들을 보면서 크게 통곡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첫 예배 때 그냥 펑펑 울었습니다. 또 저는 룻기 1장 할 때 왔는데 3차 흉년이 제 말씀이었어요. 또 어떤 분은 저는 계시록 때 와가지고 심판만 죽도록 당했어요. 또 이렇게 voicce로 들리니까 기억을 하시는 거예요. 어떤 장로님은 이혼하려고 왔다가 아픈 아내 버리면 개, 돼지만도 못하다. 이게 또 크게 들려가지고 그냥 첫 예배 때부터 펑펑 울어서 등록을 하셨다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voice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음처럼 sound로 들렸던 말씀이 내 귓가에 대시고 크게 외치시는 그 voice로 들리는 것이죠. 그럼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요?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백성들이 사도행전 2장에 백성들이 찔려가지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 찔려서, 쇠 말발굽이 내 가슴을 치는 것처럼 찔려서 어찌할꼬 했어요. 기억나시죠? 우리 이렇게 열심히 들었던 분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찔려서 어찌할꼬 한 거예요. 바울 앞에서 자결하려고 했던 그 빌립보 감옥의 죄수의 반응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것도 다 마찬가지예요.
바울의 삶의 주어가 내가에서 주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서 중요하죠. 다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이게 이해가 안 되지 않아요? 주님이 바울아 너는 이제 로마로 가 전도를 해. 구제를 해. 선교를 해. 땅끝까지 가라. 그럼 이해가 되자나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우리 삶에 구체적인 적용을 말씀해 주시는데 다메섹으로 가래요. 다메섹이 어떤 곳입니까? 지금 직전까지 바울이 분노에 떨면서 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찾아서 박해하려고 가던 곳이자나요. 어떤 곳이냐 하면 나무에 달려 죽어서 율법으로는 저주받아 죽은 그런 예수를 믿는 그들이 너무 무시가 되고, 또 이제 자신도 무시를 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죠. 무시받고 무시하는. 그곳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내가 성령의 말을 했다고 성령의 간증을 했다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갑자가 목적지가 바뀌는 게 아니죠. 내가 드라마틱한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예요. 그저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그곳, 나를 환영하지 않는 그곳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엊그제 여호수아 10장 설교를 들어보니까 여호수아는 전쟁하는 얘기인데 그 전쟁하는데 일반이었더라, 일반이었더라가 짧은 구절이 7, 8번이 나오는데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항상 일관되게 자기 맡은 자리에 이렇게 있다보면 단번에 쳐서 취하니라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화장실, 주차 모두가 자기 역할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설교한다고 예배가 됩니까? 화장실 청소가 다 예배죠. 설교 들었는데 화장실이 들어가서 너무 더러우면 예배가 됩니까?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화장실 청소하다 가셨기 때문에 그거 주의 일이고 다같이 예배인 거예요. 그러니까 일반이었더라가 정말 중요한 얘기인데. 이 장로님은 너무 무시가 되는 아내와 이혼하려고 왔다가 너무 무시가 되는 아내에게 다시 들어갔죠. 거기가 다메섹이에요. 그랬더니 지금 이제 목자도 되고 장로도 되고 세상에 강남에 빌딩도 지었어요. 부부가 하나가 돼야 돈도 모입니다. 저도 주님 만나고 말씀이 voice로 들렸어요. 그런데 시기마다 다메섹이 달라서 주의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직 훈련이 너무 필요했기 때문에 집에서 그 의미 없는 시간 같은 10년을 있게 하시고. voice로 들려서 쌓여서 남편이 간 후에는 이 voice가 나팔 소리처럼 들려서 말씀이 특별히 임했어요. 그러니까 책을 내자는 권유도 있고, 뭐 신학을 하라고 옆에서 그러는 사람도 좀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저를 초청해서 집회를 원하는 곳도 있었지만 저는 이제 50이 되어서야 큐티 모임을 하려면 신학을 해야 한다.는 교회의 부탁으로 제가 순종하려고 신학을 했고, 그렇다고 또 전도사로 임용된 것도 아니자나요. 그렇다고 제가 또 교회를 바로 개척하지도 않았어요. 13년간이나 집에서 교회에서 힘든 사람들과 큐티 모임을 하게 하셨는데 그저 오늘 하루 하루 내게 주시는 그 음성으로, 또 한 가정 한 가정 살리면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이게 중요해요. 무시받으면서, 저 무시받을 조건 다 갖췄죠. 특별히 과부자나요. 과부. 무시받으면서 잘 머무른 것이 저의 다메섹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 사람을 좀 소개하겠는데요. 세종이 가장 총애한 후궁 신빈 김씨는요. 노비 출신에서 그야말로 신데렐라 택자가 되어서 세종의 후궁도 대단한데 거기서 가장 총애를 받았던 이 신빈이. 그 왕후도, 소현왕후도 굉장히 훌륭한 왕후예요. 그런데 소현왕후를 너무 정말 윗 질서로 받들고 서로 우애하고 화목했다 그러죠. 그래서 그때 조선왕조에서 가장 내명부가 안정이 되고 자손이 번창했다고 해요. 그래서 세종이 죽은 후에 그 수양대군이었던 세조에게까지 인정을 받은 그런 분인데. 신빈은 그냥 그 사람만 만나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데 예쁜 장희빈하고는 다르게 이타적인 지혜가 출중한 거 같아요. 이 신빈은 자녀를 6남 2녀나 낳았고 소현왕후도 8남 2녀 이렇게 굉장히 자녀를 많이 낳았어요. 그런데 세조를 봐 준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세조가 인정을 해서 그 아들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른 거예요. 세종이 죽은 후에도. 그러니까 신빈은 너무 세도를 부릴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세종이 죽고, 그러니까 세종이 가장 훌륭했는데 그 세종이 가장 총애한 사람이니까, 세종이 똑똑하자나요. 정말 대화가 통했나봐요. 예쁜 거 하고 다른. 그런데 세종이 죽고 후궁은 나가야 되자나요. 세조가 엄청난 저택을 내렸어요. 그런데 이거 사양했어요. 그 다음에 그 잘나가던 아들들의 공계??도 다 거절하고 머리를 깎고 왕실과 세종의 명복을 빌다가 갔다는 거예요. 노비였던 그녀가 대를 이어가면서 최고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는데도, 아들이 6명이 출세를 하고 있는데도 끝까지 자기 노비였던 초심을 잃지 않고 윗 질서를 섬겼어요. 저는 이 밑에 사람 하나가, 후궁이었지만 사실 가장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이자나요. 그런데 이 한 사람이 권세와 돈을 내려놓으니까 집안이, 왕실이, 나라가 평안한 거예요. 정말 이 한 사람, 이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한 거 같아. 아무리 자리가 후궁이었지만 나라를 좌지우지할 만한 자리에 간 거예요. 세종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었으니까. 정말 감동을 넘어서 은혜가 되더라고요. 우리가 그때 예수가 없어서 그렇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정말 믿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시기마다의 다메섹으로 갈 때마다 우리는 엎드러져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야 돼요. 그런데 일어나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실 때 사용되는 단어예요. 그만큼 일어나는 것이 때마다 힘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빈은 어떻게 그 권세와 거기에서 자기를 저렇게 지킬 수 있었을까. 굉장히. 우리는 알아도 살기가 어렵자나요. 정말.
지금 누구의 도움으로 일어나갔다고 했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한 마디로 빛의 광채로 볼 수 없게 되서 나는 다메섹에 갈 수가 없는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바울에게 있는 공동체가 무슨 좋은 공동체였겠어요. 말씀이 sound로 안 들리는 위협과 살기의 엘리트 공동체였죠. 그러다가 지금 바울만 만난 거자나요. 이번 명절에도 죄 고백을 하니까 도리어 안 믿는 친정은 좋아하는데 믿는 시댁은 너무나 당황을 하고 믿음 있는 시어머니는 막 덮으려고 하니까 구속사를 나도 모르는데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나 혼자라는 이런 나눔을 읽었어요. 바울의 동료들은 똑같이 큰 빛을 봤는데도 말씀이 들리지가 않고 벙어리되어 할 말도 없는데 그냥 서 있었어요. 바울만 엎드리고 있지. 그냥 같이 걸어오던 그 태도, 그 마음, 그 열심 그대로 서 있는 거예요. 이 말은 옆에 있는 동료들은 아무 변화가 없어요. 사실 이렇게 아무 사건 없이 살던 그대로 자기 모습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유기된 상태죠. 유기, 아시죠? 유기견 얘기. Reprobation. 유기된 상태인 거예요. 그러니까 죄와 사망의 노예 로 버림받았어요. 진노의 자녀로 버림을 받았어요. 이런 버림받은 태도는 배우자를 폭행하고도 할 말이 있는 게 우리 모습이에요. 남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어. 그래도 그게 자기 일이 되면 다 때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때렸다.고 합리화를 합니다.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게 유기된 상태의 인간이에요. 무릎을 꿇고 사과 한 번 하면 되는데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요. 유기된 상태예요. 그러나 사람은 좋거나 나쁘거나 혼자서는 못 살아요. 어른이고 아이고 친구 너무 좋아해요. 그냥 이 친구가 인생의 난제예요. 아이들도 맨날 왕따당했다고 죽는다고 그러고. 그래서 동창에 목을 매지만 그게 덧없다는 것도 이렇게 끌려 다녀보아야 만 하는 거예요. 지금 바울처럼 믿고 났는데 도와줄 사람은 말씀이 안 들리는 공동체인 거예요. 자기를 도와줄 사람은 말씀이 안 들리는 내 식구, 내 친구들, 옆에 같이 가는 사람. 그래서 이런 부모, 남편, 형제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런 수모를 겪어야 돼요. 말이 안 통하니까. 아는 사람은 내 친구, 가족 밖에 없기 때문이죠. 내가 믿고나서 짠하고 식구들 도움을 다 마다하고 혼자서 선교도 하고 내 의식주를 다 책임지며 나누어줄 것만 있으면 그 아니좋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말씀이 안 들리는 내 옆의 가까운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끌려가는 인생을 이렇게 경험케 하시는 거예요. 참으로 주님의 세팅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돈으로 차비를 해서 예배를 드리러 왔어요. 빛의 광채로 내가 눈이 멀어가지고 팔, 다리가 다 풀렸고 힘이 빠졌죠. 무시당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생각나는 거예요. 나는 왜 10년 동안 예수 믿고 나서도 계속 남편의 도움으로 무시를 받고 살게 하셨을까? 나한테 필요했던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세상이 안 보이기 시작해요. 그런데 세상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안 보여요. 바울은 세상이 안 보이기 시작했죠. 그러니 끌려서 가라는 다메섹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이제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 있기 때문에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눈이 멀어서 못 가는 게 아니예요. 눈이 멀어도 생각은 다 있자나요. 우리가 누구를 좋아하면 아이고 쟤가 눈이 멀었구나, 누구한테 눈이 멀었네. 이러지 않아요? 이왕 눈이 멀려면 하나님께 눈이 멀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 세상이 안 보이는 사람과 하나님이 안 보이는 사람이 같이 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좁은 길인 거죠. 성도의 인생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어떤 광채에 눈이 멀고 있나요? 하나님인가요? 세상인가요? 돈이 없어 또는 할 수 없어서 끌려가는 다메섹이 택자의 축복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2. 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십니다. (10, 12-14절)
예수님을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는 거죠. 10절부터입니다.
하나님은 힘든 나를 힘들게만 하지 않으세요. 끌려가야 할 동료가 있고 가다보니까 나에게 힘을 주는 지체를 또 만나게 하세요. 바울이 체포하려던 다메섹 제자 중에 아나니아가 있었죠. 9장 기록에서는 바울에 대해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바울 자신이 아나니아에게 들은 바울의 관점에서 9장보다 자세히 기록해요. 간증할 때 뭐는 자세하고 뭐는 뺐나. 이런 걸 좀 눈여겨보면 좋아요. 그러니까 아나니아에 대한 소개도 지금 바울의 간증을 듣는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아나니아를 예수님의 제자라 하지 않고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 그들은 지금 예수 얘기를 듣기 싫어해요.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요. 한 마디로 여러분들 다 인정할 수 있는 아나니아다. 왜 바울은 아나니아에 대해 이런 디테일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과 그리스도인이 원수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거를 계속 암암리에 들려주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어떤 구절이 없냐하면 3일 동안 바울의 눈을 못 보게 하셔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는 이런 말이 여기는 생략이 됐어요. 자 왜 생략이 됐을까요? 유대 군중들이 듣기도 싫어하고 알아듣지 못할 말은 지금 과감히 생략을 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의 고난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우리의 고난도 상대에 따라서는 전해야 할 때가 있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한테는 얘기하면 안돼요. 이게 내 고난, 고생이라고 아무한테나 가서 간증을 하고 그럼 안돼요. 유대인 군중들은 이거 들어줄 인내심이 없어요. 여기서 딱 뺐어요. 내 고난도 절대로 아무한테나 가서 함부로 얘기하시면 안돼요. 딱 맞게.
그래서 아나니아가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다시 보라는 말은 아나블레포(아나는 위를 나타내는 접두어, 블레포는 보라)인데요. 위를 보라는 말, 그게 이제 쳐다보라 이 얘기인 거예요. 쳐다보라, 위를 보라 사울아 너는 위를 향해 봐. 이 보이는 것의 너머를 봐. 이 눈이 멀은 사건 가운데 본질을 좀 봐. 그러니까 이제 그 말 한마디로 말씀이 들리니까 시각이 달라졌어요. 지금까지 살기로 충만했던 이 얼굴이 은혜로 바뀌어졌어요. 성령미인, 성령미남으로 바뀌어졌어요. 그래서 나는 신빈의 얼굴이 이 성령미인 아니었을까. 그 사람은 뭐 이렇게 예쁘다는 평가는 별로 없더라고요. 성령미인으로 바뀌면, 세종하고 얘기가 통할 정도면 대단한 지혜가 있는 분이 아니었나. 공부를 해서가 아니고 노비 출신이었다 그랬자나요. 정말 신분이 정말 바뀌자나요. 이전에 아나니아도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했던 바울과 결코 형제가 될 수 없었죠. 그러니까 아나니아도 너희들과 같았다. 그런데 바로 너희들이 칭찬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내가 눈을 뜨게 되었다. 지금 고난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눈을 떴나. 아나니아 때문에,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칭찬하는 아나니아가 안수해서. 그 사람이 유대인 아니냐? 내가 눈을 떴다. 살기 어린 엘리트 동료들과 있다가 지금 이제 아나니아 형제 공동체를 만나게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설교는 잘 안 들려도 목장을 가셔야 되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에요. 우리는 자녀들을 다 일류로 키워 놓느라고 다 예배도 안 드리고 있는대로 뒷바라지를 했는데 결국은 자기 식구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 나갈 때는 전혀 엘리트 공동체만 좋아하죠. 그런데 내 식구 중에 누가 속을 썩이면 드디어 다른 사람의 아픔이 조금 체휼이 되고 그때서야 이타적인 이 형제 공동체를 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늙어서 내가 식구밖에 모르면, 다들 바쁜데 자녀만 쳐다보고 있으면 서로 섭섭하자나요. 여러분들이 큐티하면서 이 이타적인 공동체에서 목장을 하는 것은, 이건 하나님께 투자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자나요. 그런데 이 형제공동체를 매년 바꿔가면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청난 최고의 노후 보장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늙었는데 누가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어 하겠어요. 하루 종일. 그러니까 이것도, 제가 설교 준비하는 것도 고난이겠지만 갑자기 참 특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남편도 없는데 뭐하고 지내겠어요. 정말 할 일이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감사한가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하나님께 투자를 하고, 큐티를 하고 이렇게 목장을 섬기는 건 여러분들의 죽을 때까지 노후 보장이 되는 거예요. 그거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눈을 뜬 사울에게 아나니아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했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여기서 택하다는 일반적으로 선택의 단어인 골라서 꺼내다라는 에클레고마이가 아니고요. 전에와 앞에라는 뜻의 프로라는 단어와 손을 뜻하는 케이로아의 합성어예요. 그래서 합치면 프로케이리쪼마이. 시제까지 합치면 그렇게 되는데. 그러니까 이거는 뭔가 하면 택하여 버리고 또 택하여가 아니라 과거에 너를 단번에 택했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의 아주 뜻깊은 단어인데 신약에서만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3번을 사용했는데요. 한 번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수님에게 대해서 사용하고 2번을 바울에게 사용한. 그러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이 선택한 그 택하심을 바울에게 쓴 거예요. 그러면 이거 신성모독 아냐?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하나님이 죄인 중 괴수였던 바울을 택하시는 그 은혜가 너무 대단하기에 그 단어가 아니면 다 담을 수가 없는 엄청난 사랑이기 때문에 특별한 단어를 써서 바울에게 말씀을 하셨을 것이고요. 두 차례 기록한 자신의 간증에서 이 택하여라는 단어를 써서 은혜를 만세에 남게 했습니다. 지난주 설교에 고난을 우리는 때리는 손, 깨우는 손, 멈춰 세우는 손, 잡아당겨 끌어오는 손이라고 했는데 이 택하심은 미리 나를 붙드는 손인 거예요.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붙잡는 손. 만세 전부터, 창조 전에. 이것이 바로 택하심이에요. 하나님께서 붙드는 손이기 때문에 누가 그 손에서 빼앗아갈 자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세우고 나의 손이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과 손과 우리의 손이 딱 만나는 게 택하심이라 이 얘기입니다. 그러면 대체 이 택하심은 무엇을 위한 택하심이길래 이렇게 특별한 단어로 강조할까요? 세 가지로 말씀을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고 택하셨다고 해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이제 거룩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그 뜻을 우리에게 눈에 보이도록, 귀에 들리도록 드러내 주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위해,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그 말이에요. 둘째는 그 의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려고, 조금 전에는 알게 하시려고 이건 보게 하시려고.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저마다 자기가 다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아요. 그래서 자신이 의인은 늘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충고나 비난을 들을 수가 없어요. 죄를 보라고 하면 화를 내고 죄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자기만 보던 인생에서 택하셔서 진짜 의인인 예수님을 보게 하시려고, 예수께서만 유일한 기준임을 알게 하시려고 택하셨다는 거예요. 유대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그 의인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정말 눈물 겨워요. 바울의 디테일이. 셋째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시려고 택하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목적일 만큼 말씀 듣는 게 너무 중요한데 맨날 똑같은 말씀을 듣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불평할 수 있지만 이 바울의 택하심이라는 그 단어를 보면 그 택하심 앞에서 불평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택해 주신 것처럼 나를 택했다는 이런 마음이 들면 어떤 불평도 설 자리가 없어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우리를 흑암에서 택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가지 목적의 중심에 바로 그 의인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죠. 예수님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의 삶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오직 우리의 삶에 중심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했다고.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게가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인생의 목적이 예수님과 동떨어져서는 아무것도, 정말 쓰잘데기가 다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기대하는 선택은 이 땅에서 뭔가 대단한 보상이 있는 선택을 늘 바라자나요. 시험도 그렇고, 취직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대통령을 뽑는 대선도 그렇고. 바랄 수 있는 보상이 크면 클수록 그 선택에 대한 열망도 커지는 거죠. 우리는 선택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지 몰라요. 다 시집 잘 가려고, 취직 잘 하려고 불철주야 공부하고, 모양을 가꾸고. 그런데 어떤 선택도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간 길은 슬프지만 인생의 중요한 면을 알려주는 계시적인 역사예요. 그러니까 나라의 택함을 받은 듯한 같은 그 기쁨은 5년 임기가 끝나는 즉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자나요. 그 뿐만 아니라 다 큰집으로 가셨어요. 세상 선택의 결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도 다 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택함이 아닌 성령의 택하심을 받으신 것을 감사해야 돼요. 그래서 정말 이 신빈이 훌륭하다는 그런 생각이 너무 드는 거예요. 우리는 눈으로 보기에 별 거 없기 때문에 하찮게 여기기 쉽죠.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게 실제 삶에서 무슨 유익이 있는가. 다들 그러나우리 그날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누구나 다 오자나요. 그런데 그날에 유기된 사람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이 들리는 분들은 성령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중심의 삶으로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적용] 저 사람 다시 봤어하며 내 생각과 달리 다시 보게 된 사건이나 사람이 있나요? 내 삶의 중심은 누구이며 또는 무엇입니까? 선택 받은 일 중에 제일 기쁜 선택은 무엇입니까? 내사건 너머 위를 쳐다봅니까, 본질을 봅니까? 내가 가장 눈치 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떤 분은 남편이 나를 선택해준 게 인생의 가장 기쁨이었는데 그 남편이 나를 그렇게 괴롭힐 줄 몰랐다. 그런데 괴롭혔기 때문에 또 예수를 만나게 되서 결국은 제일 기쁜 선택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정답을 다 얘기해줬는데도 목장에서 몰라요. 나누라 그러시면 그냥 이렇게 제 얘기 들은 거대로 그냥 한 번 나눠보세요.
3. 증인이 되라. (15-16절)
증인이 되라는 거는 늘 얘기하죠. Martyrs. 순교. 순교자. 왜 순교라고 할까?
주님이 바울을 택하셔서 맡겨 주신 임무는 거창한 게 아니예요. 모든 사람 앞에서 바울 자신이 알고, 보고, 들은 것, 즉 주님의 삶과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 되라는 거예요. 아는 그대로 증언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죠. 가장 중요한 것은 보고 들은 경험이죠.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확신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확신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진실성이에요. 진실성. 다른 조건이 필요 없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증인이 되는 게 아니고 본 사람, 알고 보고 들은 사람. 모두가 동등하게 받을 수 있는 임무가 바로 증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진실하게 증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자나요. 우리는 뭔가를 제보해도 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나요. 이 땅에서ㄷ. 왜냐하면 이 세상이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세상이 싫어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있는 그대로 증언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기복적으로 복받으려고 와서 예배만 드리면 좋겠는데 증인이 되는 것을 손해를 보기로 작정해야 될 때가 많기 때문에 바로 이게 순교라고 하는 거죠. 순교자. 그래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때마다 주저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이제는 무엇을 주저하느냐? 이 뜻도 되는 거예요. 주저하는 이유는 주저하게 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죠. 외부로부터 그게 오는 거 같아도 결국 내부에서 일어난, 나 때문에 주저하는 거죠. 그러니까 왜냐하면 익숙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게으름이 있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하는 욕심이 있고, 앞으로 당할 일에 인한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제일인 줄 착각하는 교만 때문에 나를 택하여 맡기신 증인의 사명을 알면서도 주저주저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주저함을 매 순간 이제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시점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매 순간 이제 두려워하고 갈등해요. 그래서 갈등 충만이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주저한다는 것은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그래도 알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택하심으로 나를 택하셔서 사명이 뭔지는 알려주셨는데 아는 대로 이제 100% 행하지를 못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주님이 이런 상태를 아시고 물으시는 거예요.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그리고 말씀하세요.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그래서 일어나라고 처방을 내려주시자나요. 주저함으로 주저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우리가 사도행전 사도행전 13장 33절에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사라고 하셨는데 성령의 일으키심 설교 기억 나시나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셨지만 예수님도 친히 죽음을 이기시고 일어났다는 거예요. 일으켜 주셨으면 예수님이 수동태가 돼야 되자나요. 그런데 예수님도 능동태가 되가지고 본인이 일어나셨다는 거예요. 주의 손이 그냥 나의 손을 포개지만 나의 손도 내밀고 주의 손도 내밀어서 우리가 이렇게 흑암 가운데 눈 멀고 다리가 꺾여 쓰러져 있던 우리를 택하여 일으켜 주셨는데 주님이 50%, 내가 50%하는 신인 협력설이 아니라 주님도 100%, 나도 100% 이게 믿어지셔야 돼요. 이게 삼위일체 하나님이에요. 셋이 합쳐서 100이 아니라 다 100씩 100씩 100인데 하나가 되는 거.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를 로보트나 노예로 삼지 않으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인격으로 동역자로 삼으신 주님의 섭리인 거예요. 그러니까 나도 주님이 나를 일으켜주신 것만큼 내가 힘써 일어나야 되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주님이 손을 내밀으셨으면 나도 손을 내밀어야 되는 거예요. 정말 나의 발을 내밀어서 내가 이렇게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매 순간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게으름에서, 중독에서, 음란에서, 탐욕에서, 폭력에서, 질투에서 피해 의식에서, 우울에서, 패배의식에서, 절망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붙잡으려 하는 죄의 권세에서, 그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일어납니까? 오늘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세요. 그럼 우리가 주의 이름 맨날 부르는데 주여, 자동차 탈 때도 주여 밥 먹을 때도 주여 그러는데요. 그것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거죠. 그러니까 예배 드리는 거예요. 공예배, 개인 예배, 공동체 예배. 공예배. 개인 예배, 큐티. 공동체 예배, 목장 예배. 그건 다 하실 수 있자나요. 내가 일어나지는 못해도 그럴 때마다 가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자나요. 그런데 이 큐티가 어려운 분들은 그저 그날 본문을 읽기라도 하시고요. 그것도 힘든 분들은 새벽 설교와 극동방송 큐티를 들으시기를 바래요. 그날 본문에서 한 단어 찾아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보세요. 첫 걸음이 될 거예요. 여러분 지나가면 다 잊어버려요. 설교 뭐 했는지 다 잊어버려요. 그런데 제가 이 사도행전을 두, 세마디로 늘 성령의 전송, 영접, 허락하면 여러분들은 그래도 고거는 기억이 나자나요. 오직 기억하는 게 제목밖에 없어요. 여러분. 제목도 기억 안 나시겠지만, 그래도 제목은 기억이 나는데 제목도 길게 되면 한 두 주일 전 것도 새까맣게 무슨 설교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많아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한 단어라도 찾아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설교도 여러분들이 늘 외워서 제목만도 이렇게 연결해서 스토리를 만들어 놓으면 전도도 되고 상담도 되고 다 됩니다. 그것만 해도 성경을 한 권을 읽어 놓으면 성경 전체가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사도행전 하나를 잘 읽어 놓으면 성경 전체가, 거기에다 살을 붙인 게 성경 전체예요.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 놓고 정말 외우시면. 자 그래서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우리 모두 각자 일어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으로 주님의 은혜에 응답하여서 주저하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지만 내가 예수님께 택함을 입었지만 세례는 결혼식과 같아서 택자로 시작하겠다고 공동체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거예요. 우리가 결혼식을 하는 것은 똑같아요. 음란하고 방탕한 내 삶을 보호해주듯이 세례를 통해 주변에 알리므로 죄의 유혹에서 보호를 받으며 성령의 택함을 더 이렇게 완성을 시키는 거죠.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도 결코 우리의 결혼 관계를 깨지 않는 것처럼 결혼식을 통해 하나된 가정은 결코 깨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이 성령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 누릴 축복인 줄 믿습니다.
[적용]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증인의 사명인 줄 알지만 주저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엄마 피부병 때문에 고생하시는 데 속히 회복시켜 주시고 재발하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석 달이 지나도록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피부병이 참으로 많은 걱정이 됩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도 별수가 없고 금액도 부담이 되고 이런 상황에 있지만 주님께 부르짖는 적용으로 엄마 속히 깨끗이 회복시켜 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손수 치료해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여호와 라파와 성령의 불을 부르짖는 이 입술로 선포하고 가는 고백을 지켜주세요.
4개월 남은 시험 준비를 위해 기도로 무장하며 담대히 나아가도록 지혜와 총명을 허락해주세요. 무엇보다 의지와 계획을 세우도록 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부량을 무난히 채울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시길
매순간 순간이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시도록
아버지 건강 역시 보호하여 주시고 가족을 위해 무너진 예배를 먼저 회복하기를 이 가정의 머리 된 자로써 삶으로 보여주는 예배를 마땅히 여기며 간구하기를
여동생 일본으로 대학원 유학을 주장하는 데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오늘 자 신문에 게시된 대기업 공채를 준비하고 도전하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깨닫게 되는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여동생이 고집을 꺾고 엄마의 말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를 허락해 주시길
남동생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침착하게 준비하고 시작해서 마침까지 함께 해주시고 무엇보다 주님 마음을 지켜주시고 힘을 더해주시길
미혜
직원 채용의 구체적인 업무의 내용을 정하고 자격 조건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지혜와 일어나 적용할 용기 주시도록
엄마가 아빠의 잔소리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하시는데 주님께서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영육을 지켜주시길
일관된 일상을 살 때마다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택하신 것의 기쁨을 다시 생각하며 그냥 일상을 살아내도록
우리 목장 식구들 각자의 환경에서 택하심의 은혜를 누리를 한 주 되길
민희
남자친구가 어머님 무릎 수술비가 천만원 가까이 나오게 돼서 재정적으로 시험에 들고 본인의 20대 돈씀씀이에 대해 후회하면서 기도제목을 냈는데 구원의 사건이 되도록
회사가 나의 다메섹임을 인정하고 한 주 잘 보낼 수 있기를
중등부 아이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지혜 주시도록
엄마의 믿음을 위해, 건강을 위해 기도하도록
예선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엄청 사소한 것에도 쉽게 판단하는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가고 있습니다. 나의 모습 보고 쭈그러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메섹같이 여겨지는 부모님께 퇴사한 것에 대해 말씀드릴 때를 잘 분별하여 겸손히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목장 식구들 위해 기도하고 수련회 위해 새벽기도회 다시 들어가 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