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택하심
본문: 사도행전 22:6~19
설교자: 김양재 목사님
1. 일어나 다메섹으로 가야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는 sound가 아니라 voice로 들린다, 다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라고 바울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해가 안된다. 우리 삶에 구체적인 적용을 말씀해주신다. 다메섹이 어떤 곳인가? 하늘에서 빛이 임하기 직전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받고 저주받고 나무에 매달려서 죽는 수많은 무시를 받는 그 곳으로 가라고 하신다. 우리는 예수 믿어도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그 곳으로 가라고 하신다. 항상 일관되게 자기 맡은 자리에 있던 자리에 있으면 그것이 예배이다. 내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화장실이 더러우면 여러분이 예배가 되겠습니까? 십삼년이나 집에서 큐티하도록 하셨다. 있어야할 자리에서 과부로서 잘 머무르도록 한 것이 저의 다메섹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세종이 신임한 신빈 김씨가 있었다. 가장 총애를 받았다. 그런데 소헌 왕후와 서로 우애하고 화목해서 그래서 조선왕조에서 가장 내명부가 화목하고 안정되었다고 한다. 신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타적인 지혜가 출중했다. 세종에게 인정 받았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에서 아들들이 다 출세를 했다. 아들들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세종이 죽고 신빈에게 저택을 선물했는데 거절하고 살았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았다. 이 한사람이 돈과 권세를 내려 놓으니 나라가 가정이 평안했따. 감동을 넘어서 이런 사람ㅇ이 되면 집집마다 다 평안하다. 결국은 한 사람이 못 내려놔도 도탄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한다. 일어나라 라는 단어는 예수계서 부활하실 때 죽음에서 일어나실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10절에서는 다메섹에 들어와라 했는데 11절에 빛의 광채로 볼 수 없게 되었다하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갔다고 한다. 누구의 도움이라고요?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그들이 무슨 좋은 공동체였겠는가. 말씀이 안 들리는 엘리트 공동체이다. 좀 있으면 나를 즉이겠다는 공동체이다. 바울이 엎드려있는데 유대인은 그냥 서 있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서 있는 것이 하나님께 유기된 상태인 것이다. 명백한 잘못한 잘못에서도 절대 인정을 안하는 게 우리이다. 그런데 사람은 좋거나 나쁘거나 혼자서는 못 산다. 다들 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왕따, 자살이 난제이다. 동창도 덧없다는 것이 끌려가봐야 한다. 여전히 말씀이 안 들리는 부모 아내 도움을 받는 수모를 겪게 하신다. 내가 믿고 나서 짠하고 나눠줄 것만 있는 인생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말씀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끌려가는 인생이 되게 하신다. 주님의 광채로 팔다리가 풀리고 힘이 없다. 심지어 그들 도움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간다. 이게 얼마나 구속사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세상이 안 보인다. 세상의 광채에 눈이 멀면 하나님이 안 보인다. 바울은 세상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끌려가는 다메섹에 아무말없이 가기 시작한다.
[적용질문] 돈이 없어 또는 할 수 없어서 끌려가는 다메섹이 택자의 축복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2. 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십니다.
여기서 고난 애기를 생략한다. 고난을 얘기할 때와 안할때가 있다. 이게 아나니아의 지혜이다. 살떨리는 엘리트 공동체에서 진정한 형제 공동체를 만났다. 아무리 일류라도 자기 가족밖에 모른다. 여러분이 큐티하며 목장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장은 조건없이 나누기에 노후 보장 최고의 공동체다. 택함은 택하고 버리고 택하고 반복잉 아니라, 부정과거로 단번에 택하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는 다는 택함이다. 그러나 죄인 중 괴수를 담은 바울을 택하셨기에 그 마음을 담아서 말씀 하신 것이다. 프로와 케이로와 합성어인 프로케이리좀와이를 써서 만세에 남겼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만세전에 나를 붙들고 나는 손과 발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 택하심이 대체 무엇을 위한 택하심이길래? 1.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려고 택하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거룩임을 알게 하기 위해 택하셨다. 둘째는 그 의인이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려고 택하심을 받았다. 예수를 직접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라고 썼다. 말씀을 듣게 하신다. 요즘은 죄를 보라고 하면 화는 내고 발작 내는 게 의인이다. 자기만 보던 습관에서 하나님 뜻을 알게하려고, 보게하시고, 듣게 하시려고 택하셨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이 우릴 택하신 목적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선택은 뭔가 대단한 보상을 바라는 선택이다. 그런데 어떤 선택도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나라 대통령들이 간 선택은 너무 아쉽다. 임기 후 다 감옥간다. 그래도 다들 하고 싶어한다. 눈으로 보기에 별 거 없기에 하찮게 여기기 쉽다. 늘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게 무슨 이익이 되는지? 그러나 누구나 삶의 마지막은 온다.
[적용질문] 저 사람 다시 봤어 하며 내 생각과 달리 다시 보게 된 사건 있나? 내 삶의 중심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선택 받은 일 중 제일 기쁜 선택은 무엇입니까? 내 사건 너머의 위를 쳐다봅니까, 본질을 봅니까? 내가 가장 눈치 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증인이 되라.
바울을 택하신 이유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증인이 되라고 하는 것이다. 겪을 것을 있는대로 전할 수 있는 진실성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진실하게 증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왜냐 세상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증인이 되는 것은 나가서 손해보기로 작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순교자가 되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그게 힘들어서 증인이 되기 주저한다. 주저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익숙한 것을 유지하는 게으름, 앞으로 당할 손해,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교만 때문에 늘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의 시점에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주저한다는 것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주저함으로 끝날뻔 했는데, 사명이 뭔지 알게 하셨다. 백퍼센트 예수 중심으로 살지 못하기에 우리가 주저한다. 그래서 주님이 왜 주저하냐 하고 물으신다. 주저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라 하신다.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일으키셨지만, 예수님도 능동태로 일어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예배드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백퍼센트 우리 자신의 의지로 일어나야하는 일어남이 되어야 한다. 오십대오십이 아닌, 능동태로 백대백 반응해여한다. 주저주저하지만 각종 중독에서 일어나야 한다. 본문은 기억나시는가? 제목만 기억나는가? 그런데 제목이라도 해 놓으니 기억이 나는 것이다. 한 단어 찾아서 생각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줄을 믿는다.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결혼식을[적용질문]가족을 구원을 위해 해야할 증인해야 할 증인의 사명인 줄 알지만 주저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이소정
1. 수련회를 통해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2. 진로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걱정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도록
3. 가족과 지체들의 영육간의 건강(아버지 눈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데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양세원
1. 진로
2. 아버지, 오빠 구원
3. 신교제 신결혼
류가영
1. 영육간 강건
2. 백신부작용 지켜주시길
3. 남자친구보다 하나님과 더 많이 교제하는 한 주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