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30 박상수 목장 보고서
플랫폼 : 줌
참석 : 박상수 안동현 김동민
1.내 자랑이 아니라 우리를 대표하는 이야기입니다.
질문1) 내 말 내 간증을 듣는 사람을 관객으로 여깁니까? 나와 같은 죄인은 우리로 여깁니까? 간증 중에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건 무엇입니까?
목자님: 나도 간증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불신교재 했다고 간증하는 것이 주된 간증인데 학벌이 짧다보니 박사과정도 공부하고 싶고, 은근히 예수님 만나고 싶어서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은근히 자랑하는 마음이 있다. 학벌이 좋은 것보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공부하는건데 그럼에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간 살아온 나의 삶에서 우리들교회 이전의 삶을 보면 내 의가 강한 사람이여서 우리로 대하기보다는 내 간증을 듣고 박수쳐주는 관객을 대하듯이 간증햇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죄인인 우리로 대하는 것은 우리들교회에 와서 그렇게 나누게 된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수준인 것 같지만 아직도 잘된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양육해주신 목사님이 된 것만 말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다. 안된 것을 말함으로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동민: 공부를 고등학교 때 많이 못했었는데 이제 어떻게 어떻게 좀 수능 날 운이 좋았어가지고 현역 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좋은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학벌을 지녔다고 생각을 했다. 수능 날 운이 좋게 되서 보내주신 것인데 내가 이걸 은근히 내가 노력해서 성적으로 올렸다 하면서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굳이 안해도 되는 이야기인데 내가 잘 했다 꺼내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런게 있고 저도 제 간증을 듣는 사람을 박수쳐주는 관객처럼 대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지만 남은게 좀 있는 것 같다.
동현: 전 목자한테 전도사님이 양육해주시는 목사님께 들으셨던 말씀을 똑같이 들었다. 왜 된 것만 말하냐 라고 말이다. 전도할 형과 날마다 큐티를 하고 있으니까, 3월달부터 학기가 시작되니까, 2월 말까지 큐티를 같이 하고 3월이 되기 전에 우리들교회에 이 형이 빨리 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이 형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에 대해서 제 간증도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혈기가 올라온다. 여전히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느니 편의점을 다 때려부수겠다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혈기가 올라온다. 지금까지 내가 이 형한테 나도 제가 했던 간증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학교 온 것들 등 내가 한 간증들을 들은게 맞나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참아야 한다.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들은 어디로 갔는가? 생각하는게 있다. 내 간증을 그 형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제가 형을 관객 수준으로 생각하고 한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 경건의 모습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목자님: 우리 안에 자존적인 교만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끊임없이 사역과 같이 전도하려고 큐티나눔하고 하는 활동에서도 나는 죄인이야 하고 외치고 있지만 내가 자존적인 교만 때문에 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바울이 대단하다 내가 너와 똑같다 하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동현이가 이야기한것처럼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안들리는 사람은 안들리는게 맞는 거 같다. 정말 하나님이 하셔야 들리는 것 같다.
동민이가 말한 것 처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지만 우리는 너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게 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은근히 고생했다고 은혜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사람이 참 어려운 것 같다.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것 같다.
2. 내 죄가 내 고난보다 더 크다는 고백입니다.
질문2) 예전에 죄인줄 몰랐는데 이제 큰 죄임을 깨닫게 된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할 때 늘 나의 고난만 나눕니까? 그로 인한 죄도 나눕니까? 내 고난보다 내 죄가 더 크다고 몇% 생각하나요?
목자님: 내가 죄인임을 알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민감해지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작은 죄의 민감도가 높아지는 것이 큰 죄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화내고 이러는 것도 성품적으로 별로 화가 없으니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들어 혈기가 엄청난 죄임을 더욱 깨달아가고 잇는 것 같다. 부모님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어떨 때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있다. 나도 수치와 고난을 감당하고 가는 모습이 있는데 화를 내고 말씀을 볼 때가 그렇다. 우리 가족은 아침마다 말씀을 보기 때문에 아침마다 모여 대화를 하는데, 화를 내고 아침에 말씀을 보면 왜 화를 내냐고 가족에게 책망받으면 사과하고 사과하면 왜 화내고 나서 사과하나고 한소리를 듣는다. 지난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빠가 너무 싼 음식을 큰이모에게 대접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아빠는 저런데에서 돈을 아낄 수 있느냐 하고 화를 냈었다. 큰이모가 목사님 사모님인데 이모가 말하길 '너는 목사 될 사람이 왜 화를 참지 못하느냐' 하시는 말을 들으니 더욱 화가 났었다. 그날 큰이모랑 할머니를 차로 모셔다 드리며 하필이면 큐티노트를 들었는데 그 큐티노트가 나를 두고 말하는 것 같아 할말이 없게 되었다. 할머니 큰이모 그리고 나 우리 셋이서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알고, 했던 것을 보았는데 큐티노트가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처럼 들리니 너무나 창피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큰 죄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 같다. 지랄 총량을 채워야 한다고 하는데, 지랄 총량이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인데 그런걸 보면 내가 큰 죄인인걸 깨닫는다. 며칠전 딱지를 뗐는데 진로를 변경할 때 깜빡이를 키지 않고 들어가는 것을 누가 블랙박스로 신고를 한 것이다. 돈 3만원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혈기로 운전하면 안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우리가 평가를 해야 한다고 하니 나눔을 할 때 늘 나는 나의 고난만 이야기 하는지 내 죄도 나누는지 평가를 해 줬으면 좋겠고, 고난보다 내 죄가 얼마나 크냐고 %로 이야기하면 나는... 내 죄보다 50% 정도 크다고 생각한다.
동민: 예전에는 교만과 같은 사소한 것들이 큰 죄인지 몰랐는데 교화와 목장을 다니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살인과 절도 같은 눈으로 들어나는 죄들이 큰 죄지 음란이나 교만과 같은 죄들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혼자 하는 것들은 마음으로 짓는 죄인데 어떻게 큰 죄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죄는 다 똑같고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 말씀해 주시니 깨달아지는 것이 있는 것 같다. 3주정도 목장을 했는데, 느끼는 것이 동현이 형과 목자님은 고난과 죄를 같이 나누는 것이 은혜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제 고난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죄까지 봐야 하나 고난도 힘든데 하는 생각이 커서 제 고난보다 죄가 더 크다고 생각 안하는 것 같다.
목자님: 동민이는 잘 나누는 편이던데? 우리들교회에서 자라서 그런지 죄를 잘 나누는 것 같다.
동민: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다.
목자님: 고난보다 내 죄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는가?
동민: 평상시에는 10% 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예배드리고 큐티를 하다 보면 가끔씩 정말 내 죄가 고난보다 크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목자님: 그래도 그렇게 생각함이 감사하다.
동현: 전 목자가 정말 많이 수고 해줬다. 해석보다는 해결이 우선이었던 사람이었고, 거룩의 모양을 갖추기 너무나 쉬운 환경에 있었고, 학력과 관계에 대한 열등이 있다 보니 거룩함의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었던게 많았던 것 같다. 전 목자와 가장 크게 싸우게 된 말이 바로 내가 어디가 교만해서 그러느냐 가지고 싸웠었다. 해석이 아니라 해결을 추구하는 내 모습이 정말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죄임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눔 할 때 늘 나의 고난만 나누냐고 했는데 이거는 나누다 보니깐 처음에는 고난만 나누려고 하다가 내 죄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평소에 큐티하는 습관이 안 들어져 있는 사람이다. 단지 큐티를 할 수 있는 모임이 지속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 뿐인데 그럼에도 말씀을 그렇게 깊이 보지 못할 때가 많아요. 깊이 보지 못한 채로 하다가도 나누다 보면 내 죄도 같이 나누는 것 같다. 내 죄가 고난보다 2-30%가 더 큰 것 같다.
목자님: 동현이가 전 목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기 전까지 정말 자기 고난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이 임했는지 사람이 변하더라 감사하다. 이제는 내 죄를 이야기하더라도 감사할 것 같다. 내가 이야기 했던 것도 많이 눌렸을 것 같기도 하다. 신학생에게 있어서 김양재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가는 것이 최고라고 하는 말들이 말이다. 그런데 결국엔 말씀이 열매를 맺은 것 같다. 감사하다. 이대로만 가기를 원한다. 벗어나지 말고
3. 엎드려져 들음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질문3) 빛에 둘러쌓여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무엇입니까? 환경만 바라봅니까? 예수를 만나서 말씀이 들립니가? 성령의 말을 합니까?
목자님: 고등학교때 왕따를 당했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고난과 수치를 당했었다. 사물함에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말이 쓰여있기도 했다. 괴롭히던 친구들은 지금은 친구가 되었지만 그때는 똑같이 예수를 믿어도 나를 구원할 환경만을 바랬었다. 그러나 해석이 되고 나니 부끄러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왕따의 과거들이 이제는 공동체 안에서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니 말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 같다. 나도 왕따 당했고, 너만 당한게 아니다 하고 말이다. 나는 그럴 때 예수님을 붙잡았다고, 그 때는 환경 가운데 구원해주시기를 바란 것이지만 말이다. 나도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땅의 사건을 겪으니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내 열심으로 너무나 열심히 살았는데 불신 교제로 넘어지기 전까지 하나님을 믿기도 하지만 내 의가 더 큰 시간이었다. 너무 착하게 살고 깨끗하니 죄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깨끗하니 내 의가 너무나 강한 것이다. 예전 다니던 교회에서 친구들이 제이어스 컨퍼런스를 다녀온 애들이 '주님이 하셨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 '야 너는 그게 말이 되냐 주님이 하셨다는 이야기가 말이 되냐? 주님이 하셨어도 나를 통해 일하신 것이지 그게 진짜 네 고백이냐? 가서 것멋만 들어왔네' 하는 말로 정죄했는데 지금은 내 삶만 봐도 주님이 하셨다는 것이 깨달아진다. 불신교제를 할 때 넘어지고 참 힘들었는데 주님이 그때 날 만나주셨고, 나는 끝났고 난 더 이상 사역할 사람이 아니구나 할 때 만나주셔서 '너는 그래도 내가 부른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해야할 사명을 말씀해 주셔서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성령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찬양이 '오 신실하신 주' 이다.
이런 사람이 우리들교회에 와서 사역하게 된 것을 보면 신기하다.
동민: 나도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어쩌다 보니 노는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입장이 바뀌어 제가 괴롭히는 옆에 서서 있었던 적이 있다. 따돌림 당했을 때는 그것을 구원해 줄 황경과 친구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친해지고 나니 따돌림 당한 생각하지 못하고 따돌리는 입장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에 우리들교회에 엄마 권유로 오게 되고 그때 정말 내 죄가 너무나 깨달아져서 교회 다니면서 조금식 나눔을 시작했고, 노는 친구들과 인연을 정리하는 개기가 되었다. 죄가 깨달아지니 엎드려져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목자님: 나도 중학교 2학년에 누구를 놀린 적이 있다. 탈모인 친구 머리털 뽑기 같은 걸로 놀렸는데, 그리고 2학년에 따돌림 당하고 또 고등학교 2학년에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따돌렸던 경험이 있다. 정말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동민이 이야기를 들으니 내 죄가 생각난다.
동현: 나도 따돌림을 당해서 자퇴를 했다. 왜 따돌림을 당했냐 하면 중학교 때 몸이 그리고 정신이 불편한 친구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고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왕따가 시작이 되었다.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서도 그런 사람들, 관심병사들이 있었다. 내가 군종병이다보니 상담 역할도 했었는데, 중학교 때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상담은 해주지만 그 친구랑 엮이고 싶지 않아 하면서 이야기만 들어주고 있었는데, 다리를 크게 다친적이 있었다. 발목이 이제 앞으로 꺾였는데 깁스를 6주간 차고 있게 되었다. 그 때 선진 병영이라고 해서 동기들하고 같이 생활관을 쓰는데 한달 단위로 바뀌었었는데, 내가 돌보던 걔가 갈 곳이 없었다. 결국에는 나하고 상담을 했었기에 나하고 같은 생활관을 쓰게 되었다. 그 친구랑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걔가 없으면 밥을 못 먹으러 가는 상황이라 정말 걔는 싫고 걔가 없으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는 내가 악에 받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너를 절대 인격적으로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니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난 너 싫어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를 잘 돌려서 한 것이다. 그 친구가 문제가 있어서 저도 고충을 많이 겪었는데, 그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같이 큐티를 하게 되었다. 그 환경이 저를 살린 환경이 되었다. 큐티로 둘러쌓인 이 환경이 빛으로 둘러쌓인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목자님: 정말 동현이가 큐티해야 한다. 큐티를 할 때와 안할 때가 너무나 다르다. 전목자에 대한 미움이 너무 강했었고 말이다. 오늘 다 따돌림 이야기를 했는데 너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니 너와 똑같은 상황에 있었더라면 나도 역시나 그럴것 같다. 나는 너가 싫은데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이런 말을 하겠지. 그게 참 돌려까기인데 이걸 또 멍청한 이들은 못알아듣는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하고서도 죄책감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민감하고 친밀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죄라고 생각하는게 성령의 말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 말이 참 멋있는 말인데 이건 속에서 되뇌야 하는데 말이다. 진짜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내 속에서 나오고 내 죄를 깨달았을 때 나오는게 맞는데, 동현이처럼 내 죄를 깨닫지 않고 나온다면 아까 목사님이 말씀하신 자기 자랑과 죄를 분별하는 것의 문제인 것이다. 얼마나 재수없게 들리겠는가? 그런데 멍청한 애들은 또 알아듣지를 못하니 얼마나 속이 더 답답하다. 그래서 그 친구는 예수를 믿는가?
동현: 믿지 않는다. 가끔씩 전화를 하긴 하는데 말씀으로 권면하기도 한다. 찾아가봐야 하는데 너무 멀어서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목자님: 그 친구가 고맙게 너를 생각하는가?
동현: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다.
목자님: 고마워 한다는게 어디냐, 그 친구에게 말씀이 들렸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동민 :
-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하기
- 이번주에 결과 나오는데 정말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가질 수 있도록 (주여 붙어서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ㅜㅜ)
동현:
-명절 때 사촌 형 동생 만날 때 혈기 부리지 않고 또 거룩의 모습만 보여서 선 긋지 않도록
- 남은 방학 기간동안 성실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큐티할 수 있도록!
상수 :
- 명절동안 가족과의 여행 속에서 엎드려져 내 죄만 보고 성령의 말함을 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 매일마다 큐티함으로 나사렛 예수의 은혜가 임하도록
- 규칙적인 생활의 루틴이 깨지지 않도록
Written by 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