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8 성령의 사명
사도행전 20:25-31
성령에 매여 성려의 사명으로 나가는 바울은 3년 동안 눈물로 사역하며 구원의 열매로 세워진 에베소 교회를 뒤로한 채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해야 합니다. 본인도 예루살렘에 가기 힘들었을 텐데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보살피라고 부탁을 합니다. 성경에서 장로를 가리키는 단어로 감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감독자라고 번역했어요. 그러면 감독자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오늘은 성령의 감독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오늘을 마지막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25-27절)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를 섬긴 것을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했자나요. 그런데 이번에는 바울 자신이 아노라 그래요. 뭘 알았나요? 오늘 이 시간이 그들과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마지막 날임을 안다고 했어요. 사실 이 장로들을 불러 모아 놓은 것은 마지막 양육을 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에게 제자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각 아시아 지역 교회의 대표가 되었기에 이 에베소 교회가 무너지면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하며 만난 수많은 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이 무너지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바울 선교의 너무나 큰 상징이었어요. 그러하기에 바울은 이 에베소를 뒤로한 채 장로들에게 이 교회를 부탁합니다.
큐티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큐티하는 교회가 곳곳에 세워져야 하기에 지금 이제 우리들교회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개척부터 우리들교회의 정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바꾼 그 정관 1장 2조에는 본 교회는 큐티를 통해 말씀을 깨닫고 구체적인 삶의 적용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른 교인들도 아니고 성도님들 중에 우리가 왜 큐티 사역을 하냐 교회에 집중을 해야지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심지어 목사님은 책 팔러 다닌다고 하는 분도 있고, 저의 큐티 사역을 노후 보장, 그걸로 아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저는 큐티인 전에도 아무 대가 없이 눈깔 사탕 하나 안 받고 매일 성경이라는 큐티 책을 30년 가깝게 전 세계에 팔러 다녔어요. 그래서 큐티가 저변화 되는데 일조했지요. 그런데 이 큐티인 한권은 인생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수없이 경험한 거 아실 거예요.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지 책 파는 게 아니예요. 선교와 구제도 하지만 교회마다 은사가 다르자나요. 우리들교회는 가정 중수와 말씀 묵상으로 수많은 가정이 회복되는 이 선교를 핵심 가치로 놓고 갑니다. 눈에 딱 안 보여서 그렇지 그런 그런 모델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들교회 정체성은 큐티예요. 어떻게 교회와 큐티 사역이 따로 가겠습니까? 이것을 이원론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역은 구속사적 큐티를 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큐티 선교회가 따로 따로 갈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간증을 안 적어주면 어떻게 큐티인 책이 나오겠습니까? 그리고 저의 인생에 남은 날도 여러분 아시다시피 그리 길지 않아요. 그런데 말씀 묵상이 강에서 바다로 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순교를 예견했어요. 에베소에 다시 못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에 내일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저도 내일 일을 모릅니다. 큐티하는 것은 오늘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일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내 생각을 죽이는 것이에요. 이것은 사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죽어도 오늘 내게 임한 주님의 말씀이 너무 달콤하고 감사해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큐티 선교를 위해 제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이 무엇일까요? 항상 이렇게 제가 좋은 말만 해도 되지만, 좋은 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위로 얘기만 해주면 좋겠지마는 22절에도 보라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 25절에도 보면 보라라고 했는데 내가 여러분들 중에 왕래하며 주신 마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 하면 내가 오늘 가는 곳이 마지막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자랑할 것은 큐티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위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그 마음, 그 마음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다시는 이 아시아로 오지 않았어요. 이것이 마지막 이별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복음되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바울의 그동안 행한 일도 엄청 많지만, 또 우리들교회도 행한 일이 많지만 그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나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하나만 있으면 여러분들도 어디 가든지 감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설교를 잘해도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세월을 낭비할 수 있는 것이죠. 제가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겠다고 했었기에 성령님이 늘 저에게 그 마음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며 백성에게 말씀을 전해서 경종을 울리는 파수꾼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에스겔에게 그 피 값을 찾겠다고 하셨어요. 에스겔 3장, 33장에 같은 얘기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 책임은 듣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사명을 받은 에스겔은 꺼리지 말고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전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전하는 것일까요? 저는 처음부터 큐티를 위한 큐티가 아니라, 큐티가 말씀 묵상이죠. 늘 구원을 위한 큐티, 가정 회복을 위한 큐티, 예수 믿게 하는 큐티를 했기에 큐티 모임을 하면서 불신자에 대한 부담이 있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주중에 하는 큐티 모임에는 불신자는 거의 오지 않았어요. 다른 믿는 분들이 오기 때문에 저는 믿는 사람 양육도 중요하지만 불신자를 전도해서 정말 지옥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되자나요. 그래서 제가 주일 사역을 하고자 했지마는 저를 써 주는 교회가 한 교회도 없었어요. 그래서 성령의 거절로 인하여서 큐티 선교회 이사님들의 허락을 받아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개척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예요. 아 큐티 사역을 위해서 사역을 해야지. 그런 게 아니예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그 적용의 결론은 영혼 구원이라고 했자나요. 그렇게 제가 생각한대로 이 성령의 작정을 하게 하셔서 거절을 받으니까 작정을 하게 하셔서 지금까지 성령의 매여서 성령의 사명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8년 지금 지났지만 제가 억지로 억지로 떠밀려서 이 길을 왔지마는 제가 교회를 개척하지 않았다면 저에게 맡겨 주신 이 수많은 영혼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것은 완전 성령의 작정이셨죠. 고정관념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만 항상 제가 말씀대로 왔기 때문에 이것이 성령의 감독자가 되게 하신 게 아닌가. 우리들교회가 이 장소 때문에 할 수 없이 주일 예배에 시간에 쫓겨가며 전도 집회를 했어요. 주일 설교로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고 결신시킨다는 게 인간적으로는 너무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첫 해에는 3부 예배 때 제가 전도 집회를 하면서 한 시간 반 동안 간증을 했습니다. 그 다음 해 부터는 모든 주일 예배 시간에 전도 집회를 하는데, 그래서 이제 여기서 휘문체육관에서 10년동안 예배를 드리니까 당연히 모든 교회가 하는 주중 새벽기도, 부흥회, 특새 아무것도 못했자나요? 오직 주일날 이렇게 예배 모이는 게 다였어요. 그리고 이제 판교가 지어졌는데 휘문의 10년의 예배가 정체성이 된 셈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주일에 전도 대회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것도 부활절, 추수감사절 이렇게 두 세번 밖에, 그러니까 우리들교회는 프로그램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그 영혼 구원의 목적, 그걸 이루어주셔서 주일마다 영접하는 사람 또 있게 하시고, 지난주 전도 축제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영접을 하시고 많은 사람이 또 등록을 하셨어요.
정말 말씀 묵상에 목숨을 걸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산 제일 중요한 표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것을 그날 그날 큐티 말씀따라 설교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이었어요. 그 날 말씀 가지고 하는 것 때문에 날마다 피를 말렸어요. 하루도 묵상하지 않으면 모임도 할 수 없고 사람들을 돌보고 감독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어요. 설교를 만세전부터 다 정한 거 가지고 그냥 읽으면 좋겠는데 그날 그날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의 위력을 날마다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었지만 성령의 사명이었기에 이런 묵상이 사람들을 살리고, 또 살아난 사람들이 감독자가 되게 하셨어요. 제일 압권은 초창기에 느헤미야 설교할 때 인대요. 그날 본문이 7장 39절에서 73절까지 사람 이름만 나오는 족보 본문이에요. 그래서 이 계보를 본문으로 전도 축제 설교를 하려니까 제가 가위가 눌리는 거예요. 밤 잠을 못자고 그 날 아침까지도 이 어려운 히브리식의 이름들만 나열된 것을 가지고 어떻게 영접을 하고 예수를 믿겠는가. 피가 마르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그때로부터 성경의 어떤 본문으로부터 수도 없이 듣고 알고 있는 제 간증이지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어떤 본문에서도 제 간증을 할 수 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똑같은 간증인데 말씀이 늘 새롭게 들리는 은혜를 또 부셨어요. 물론 제가 100% 그날 본문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것이 율법이 되면 안 되겠죠. 하여튼 인간의 힘으로는 못 할 일인데 하나님이 하셨어요. 정말 말씀은 놀랍습니다. 그러면 그날 본문가지고 제가 어떻게 전도 주일 설교를 했을까요? 그때 내용은 바벨론에 포로 갔다가 귀환하는 사람들의 명단이자나요. 그런데 이제 그 200만명이 출애굽기에서 출애굽을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또 우상을 섬겨가지고 바벨론의 포로로 갔자나요. 그리고 이제 귀환하는 그 명단이 나왔는데 그 출바벨론하는 명단이 4만 2360명인 거예요. 남자만 치면 2만 9818명인 거예요. 결국 200만명 중에서 남은 자가 이렇게 적은 거예요. 이 남은 자가 너무나 귀하므로 4만 2300명으로 총 수만 기록해도 되는데 그 조상들의 이름을 다 일일이 언급한 것이죠. 4만 2360명의 귀한 자들이 노비를 7337명이나 데리고 온 거예요. 이방 사람들을 이렇게 데리고 온 것은 포로로 가서 점점 계급이 없어진 것이고 나라 간의 차별도 없어지고, 그리고 6분의 1이나 그 노비들을 데리고 온 것은 복음은 차별이 없다는 것이고 이 일을 위해서 믿음의 조상이 있었고, 그리고 바벨론으로 포로 되게 하시고 징계하셨지만 끝까지 거룩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어떤 상황이 와도 100% 옳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우리 다같이 이 남은 자의 반열에 들어가자고 제가 호소했죠? 그랬더니 이 알아듣지도 못할 이름을 읽으면서 그 믿음의 조상들의 사연을 조금씩 언급하며 설교를 했는데 난생 처음 온 불신자 분들이 다 내 이야기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은 아이고 어려워 이러는 거예요. 고정관념이 있자나요. 저 무슨 이름 가지고 설교를 하나. 그러나 그 주일에 수많은 사람이 영접을 하시고 등록을 하셨어요. 우리는 수평이동이 아닌 거 아실 거예요. 불신자가 한 해에 500명 세례를 받은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구속사적인 큐티 사역은 해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저의 노후 보장 사역이 아니예요. 에스겔 1장에서 저의 사명이 시작이 되었는데 에스겔 43장에 교회를 하면서 48장에 끝나는데 늘 지금 제 인생이 어디쯤에 있는가? 늘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까지 허락하실지 알지 못하지만 저는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이것도 말씀대로인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제 인생이 뭐 그렇게 길게 남지 않았자나요? 얼굴은 젊어보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듣고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당할 심판에 대해서는 자유하다는 것이에요. 생명은 전하라고 주셨는데 여러분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이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누구도 떳떳하게 심판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제가 마지막처럼 가는 그 마음 때문에 제가 전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영접해주셨어요. 바울이 내가 꺼리지 않고 복음을 다 전했다고 하는데 저도 이 두려움의 종류가 점점 달라지고 있지만 구원에 위한 두려움은 날로 커갑니다. 교회가 이렇게 커졌다고 이 마지막처럼의 마음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장례식을 가도, 결혼식을 가도 항상 한 영혼을 위해서 갑니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처럼 복음을 전합니다. 이 추상적으로 마지막처럼 사는 것은 뭐 믿음이 대단히 좋아서가 아니고, 이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장례식에 가도, 오늘 성경의 비밀은 인봉을 풀 자가 없다 그랬자나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스캔들의 주인공이에요. 처녀가 아들을 낳았으니까. 이걸, 이 비밀을 누가 풀겠습니까? 그렇게 시작해서 제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꼭 한 영혼 생각하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큐티 본문대로, 그날 큐티 본문대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구체적으로 마지막처럼 사는 것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되세요? 저만 사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도 다 마지막처럼 지금 살고 계신 거예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여기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제가 장례식 두 군데 갔는데 1부 때 그 한 영혼이 오셨고요, 2부 때에 이렇게 또 형님이 와주셔서 저는 늘 감사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필요 없고 항상 한 영혼, 적용을 해보세요.
[적용] 여러분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무엇을 합니까? 아직도 닭털같이 많은 날이 남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2. 삼가야 합니다. (28-30절)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삼가라고 합니다. 주일을 집중해서 잘 지키라는 뜻인데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는 거예요. 양 떼를 보살피려면 자기부터 삼가라는 거죠. 자기 자신도 집중해서 잘 지키고 온 양떼도 집중해서 잘 지키라는 뜻입니다. 자신이나 교회의 온 성도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복음의 길에서, 진리의 길에서, 거룩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삼가고 그 길을 끝까지 잘 따라가도록 삼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를 양 떼로 표현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유하시는 단골 메뉴가 성도를 양 떼로 표현하시는 거예요. 왜 양입니까? 눈도 나쁘고 힘도 없어서 자기 스스로 갈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목자가 인도해 주어야만 가야할 길로 갈 수 있고 목자가 지켜주어야만 안전할 수 있습니다. 목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 있는 존재가 바로 양떼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양 떼 같은 성도들을 집중해서 잘 지키라고 성령께서 장로들을 감독자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감독자는 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라는 말인데요. 에피는 대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고요. 스코포스는 지켜보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감독자는 집중해서 지켜보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지켜보는 게 그냥 눈으로만 보는 걸 뜻하지 않고 그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고 조사하고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는 그런 관심과 애정을 듬뿍 담은 시선을 함축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지켜보신다는 거예요. 출애굽기 3장 16절에 ....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그 돌보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유명한 저의 간증 룻기 1장, 사도행전 얼마 전 성령의 돌보심 설교에서도 설명한대로 하나님의 돌보심은 하나님의 방문이고 하나님의 심방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백성을 친히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공감해주시고, 처방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의 심방이 바로 이 돌보심이에요.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감독자는 돌보는 사람, 심방하는 사람이죠. 감시하고 조종하고 지시하는 상관이 아니에요. 대접받는 윗사람도 아니예요. 라떼는 말이야.하면서 잔소리하는 꼰대는 더욱 아닙니다. 성령의 감독자는 사랑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돌보는 목자입니다. 이 감독자는 장로의 다른 이름이자나요. 지금 이 설교가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다고 그랬자나요. 그런데 장로들을 감독자 삼으셨대요. 그러니까 감독자나 장로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장로가 높은 지위나 명예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예요. 상석에 앉아야 할 사람을 일컫는 말도 아닙니다. 장로는 이타적인 돌봄과 섬김이 무르익어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듯 하나님이 맡기신 성도를 부모의 마음으로 돌보는 사람입니다.
이 감독자와 장로의 역할을 우리들교회에서 맡은 분들이 목자님이죠. 그 중에서도 목자들의 목자인 마을지기가 있고, 또 마을지기들을 돌보는 초원지기가 있고, 또 초원지기를 돌보는 평원지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 모든 직분을 지기라고 하자나요. 지기. 이 초원지기, 마을지기, 평원지기. 지기라는 말이 마땅히 방점이 찍여야 하는 단어인데요. 지기라는 말은 짐을 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초원을 돌보는 거룩한 사명을 지는 직분이라는 거죠. 또 평원을 돌보는 거룩한 짐을 지는 직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초원장, 평원장 이런 단어를 안 썼어요. 마을지기, 초원지기, 평원지기 이 이름 자체에 감독자, 즉 돌보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있죠. 그럼에도 이번에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이 평원지기와 초원지기를 장로와 권사로 세우고자 합니다. 이미 정관에 있던 것을 이제 시행하고자 해요. 그리고 너무나 많잖아요. 그 장로, 권사 중에서 투표를 해서 강력한 시무 당회를 세우기로, 이렇게 성령의 작정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말씀 묵상 운동이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 물결이 더욱 힘차게 흘러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한국 교회에 통용되는 제도가 장로 정치인데요. 교단과 상관없이 어느 교회나 다 장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개척 때 만든 정관에 이미 장로제가 담겨 있어요. 그런데 거기는 평원지기, 초원지지 이런 게 없어요. 그래서 그것도 이제 넣어야 돼는 거예요. 모든 걸 이제 한 번 이렇게 살펴야 되는데요. 그러나 우리는 늘 본질에 집중했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시행을 서두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판교에 교회를 지었지만 이 교회를 건축하려면 장로부터 세워야 한다고 주변에서 많이 조언들을 하셨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라는 직분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고, 성경대로 지체들을 섬길 지체들을 양육하는데 힘써왔습니다. 그래서 장로, 권사를 빨리 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들교회가 처음이기 때문에 정말 모르자나요. 한 번 세우면 또 큰일이자나요. 그래서 지체를 돌보기 위한 목자, 마을지기, 초원지기, 평원지기를 키우며 세워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1924명의 목자가 세워졌고요, 131명의 평원지기와 초원지기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평원지기, 초원지기라고 하면 잘 모르더라고요. 앞으로 한국 교회와 더 많이 교류하게 될 텐데 이 문화가 또 있자나요. 그래서 이제 정관에 있던 장로와 권사를 시행하여 전체 교회에 통용되는 그 이름을 좀 쓰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남자 초원지기는 영원한 항존직 장로가 되고요. 여자 평원지기와 초원지기는 항존직 권사가 됩니다. 시무 당회는 남자, 여자 다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코로나로 작년 2월 이후에 이렇게 50%가 모이는 게 거의 2년 걸렸어요. 진작 다 이렇게 준비를 해 두고 개정을 했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늦어졌고 빨리 요 /때, 모일 때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빨리. 한, 두 주 밖에 안됐자나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장로들에게 하는 설교인 거예요. 그리고 또 감독관에게 하는 설교인 거예요. 너무 놀랍지 않으세요? 성경에 장로라는 얘기가 희귀하게 나오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날짜도 맞추셔서, 이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보통은요, 장로는 아침에 세워지면 저녁부터 달라진다고 하는 말들이 있어요. 그리고 또 하려면 뭘 또 내야 된다고 그러는데, 우리는 도리어 우리들교회가 그동안에 수고하셔서 이 선물을 정말 드려야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도 우리들교회도 정말 귀감이 될 줄을 믿습니다. 성령의 감독자로 세움을 받는 여러분은 정말 자신을 잘 삼가셔서 이 맡겨 주신 지체들을 잘 돌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셨어요. 하나님만큼 갚진 교회라는 뜻인데요. 그 교회를 보살피는 것, 목자가 양 떼를 인도하고 먹이듯 그렇게 사랑과 인내로 보살피는 것이 성령의 감독자가 삼가 지켜야 할 책임입니다.
성령의 감독자가 이렇게 철저히 삼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9절, 30절이에요.
그러니까 사나운 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어지럽히는 이단의 무리일수도 있고요. 교회를 박해하고, 비방하고, 조롱하는 악한 세력도 사나운 이리입니다. 이들이 들어와서 성도들을 아끼지 않고 다 먹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럼 굶자나요. 영양실조 걸리자나요. 그렇게 되는 걸 막기 위해서 감독자들이 자신을 삼가야 되는 거예요. 양떼에게 삼가라고 하려면 감독자들이 자신부터 삼가야 하는 거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제자들을 미혹하여 주님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사람들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집중해서 이렇게 살펴야 된다 그랬자나요. 집중해서 주님이 우리를 살피듯이.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지금 교회 안에서 생긴다고 하시니까 너무 걱정이 됐고, 그런데 교회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이 참 많았자나요. 어그러진 말, 왜곡된 말, 사실과 다른 말, 사실이 아니지만 욕심을 자극해서 믿고 싶게 만드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 사회아 교회나 어디에서나 늘 있습니다.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냥 이 때 이 설교를 하려고 제가 또 이상한 얘기를 듣게 하셨는데 상상이 안되죠? 그러니까 안팎에서, 밖에서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자꾸 이간질을 시키고 분열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양의 탈을 쓰고 미혹하며 왜곡하기에 어리석은 양은 늘 따라갑니다. 분별이 쉽지 않아요. 일단 남의 말을 교묘하게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늘 이렇게 안 좋게 비난하는 사람은 일단 조심해야 돼요. 구속사가 정말 확 들어 와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이런 미혹하는 사람들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감독자는 바른 복음, 진리의 복음을 더욱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뭐 다른 게 아니죠. 매일 말씀 묵상해야 돼요. 오늘 마지막처럼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해요. 그리고 적용하는 삶을 더 철저히 살아야 하겠죠. 이것이 성령의 감독자가 삼가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책임이에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바울이 있을 때는 이렇게 말을 잘 들었는데 에베소서 보면 한 3년쯤 지나서, 요새 우리 계시록 큐티 하자나요. 첫사랑을 버렸다고 그러자나요. 그러니까 바울도 너무 염려가 되는 것처럼 저도 또 염려가 됩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 삼가야 하는 줄 알면서도 잘 삼가지 못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어그러진 말을 분별하여 멀리합니까, 욕심대로 듣고 선동됩니까?
3. 기억해야 합니다. (31절)
그러니까 오늘 마지막처럼 삼가고 기억하라는 거예요. 일깨어라는 말은 잠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이고요, 깨어 경계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잠에 들면 사나운 이리가 와도 알지 못해 당하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이 일어나도 이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분별하지 못하고 다 선동 당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가 다 무너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파수꾼이 밤중에 깨어 경계하듯 감독자들이 일깨어 이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깨어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해요. 장로들을 복음으로 낳고 키운 바울이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 이 깨어 있는 비결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지난 30여년 간 또 교회하면서 18년간 날마다 쉬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 준비를 하고, 여러분들을 심방하며, 상담하고, 양육한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날마다 이 자리에서 흘린 그 눈물, 또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깨달으려고 했고 그 흘린 눈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 아플 것 알면서도 거리낌없이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느라고 여러분을 훈계했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높임을 받고 추앙을 받기 위함이 아니예요. 제가 이 세상에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는 그런 사명을 주셨는데요.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것이 여러분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주님을 향해 품었던 그 첫 사랑을 잃지 않고 지키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손해나는 일을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간다. 이래야 돼요. 이런 말을 기억하라는 것이에요. 아유 그러셨지. 옛날에 그러셨지. 날마다 설교하는 한 편 한 편이 그냥 다 저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으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정말 저는 내일 일을 모르겠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뭐 새털같이 많은 날을 생각하지 않아요. 자 예를 들어서, 그러니까 이제 목원이 마음이 상할 때는 다 전화도 안 받고 오지 마세요 그런 말을 하자나요. 그럼 그 사람 집을 확실히 알 때에는 집 앞에 가서 기다린다.하고 문자를 보내고 못 만나면 그냥 오면 돼요. 그런데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나는 몰라요. 이러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만 내가 다녀간 것을 알면 사람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는데 우리 목자님, 또 마을님, 초원님, 평원님들의 헌신이 이렇다고 생각해요. 늘 압도적으로 일깨워서 눈물로 훈계하시는, 그래서 우리들교회가 여기까지 왔어요. 프로그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교회가 어떻게 모이겠습니까? 목자님들의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럼 예를 들어서 우리 목자님들, 평, 초원님들이 우리들교회 대표적인 주제, 불신결혼 하지 말라고 외치시죠. 이거 쉬운 일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아버지가 애인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아들이 보고 엄마한테 말했어요. 그때부터 그렇게 아들을 아버지가 원수로 여기고 미워한다고 해요. 이 아버지가 엘리트고 박사인데 이것이 아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모르고 이 세상의 학문이 얼마나 초등 학문이면 그 얘기를 했다고 아들을 원수처럼 여기겠습니까? 결혼할 때는 스펙이 있고 모든 것이 있어서, 외모까지 있어서 했지만 무슨 일을 당하면 인간은 죄인이고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성공하면 다 자기 길로 가는 거예요. 자기 쾌락이 최고인 거예요. 몇 년 전 전도 대회 때 안 믿는 청년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인생의 목적이 뭐냐?고 물었더니 다들 우리가 결혼할 때 외모로 배우자를 고르자나요. 그런데 그렇게 순진무구하고 예쁜 아이들이 나이가 많고 적고 다 떠나서 인생의 목적을 물으니까 행복, 집, 자동차 등등 그러면서 다 모르겠는데요.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불신결혼을 시킬 겁니까? 믿음 있는 내가 끊어줘야 하고 끊어졌던 것 때문에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혜로운 처녀가 미련한 처녀에게 자기 기름을 나눠주지 않는 거예요. 구원의 문제는 너무 절실한 거예요. 나눠줘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예요. 와이프 치마고리 잡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예요. 내가 니가 학벌도 있고 너무 잘생겼지만 믿음이 없어서 믿음 때문에 너를 끊는다. 그래야 이 돈 있는 사람이, 잘 생긴 사람이 인생을 심각하게 한 번 생각을 해보고 예수 안 믿는 것이 참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상급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있죠. 내가 목사님 때문에 그 사람 끊었더니 제가 너무 이상한 사람 만났자나요. 그리고 그 사람은 나중에 예수님을 저렇게 잘 믿자나요. 나는 이게 뭐예요. 이런 사람이 꼭 또 있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그것이 알고 싶죠. 그러니까 앉으나 서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서 그래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구원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기복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제가 오늘 굉장히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듣습니까?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애부터 그렇게 노래를 하자나요. 불신을 쫓아내고, 불신결혼은 안된다. 적어도 세례를 받고 양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 말이 안 들리니까 결혼하려고 와 있다 기분이 나쁜 거죠. 제가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니까 어떤 부자들이 이 교회를 오겠냐고 다 합니다. 그러니까 장기 결석을 한, 교회를 오고 한 번도 안 온 사람이 이제 결혼하려고 자기 배우자 될 사람을 THINK 양육을 해달라고 왔어요. 자기는 안 오면서. 그래서 적어도 목장은 좀 나가야 되겠다. 나가면서 해라. 그랬더니만 그 목장 한 주일을 못 나오고 교회를 떠나버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여기 자리 하나 채우자고 양육을 해주는 교회 아니예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그냥 나 편하라고, 나한테 잘하라고 배우자고 양육 받게 해야 된다고 하는 거죠. 그러나 불신을 끊어내라.하면 심각하지만 이런 것을 듣고 나면 교회를 떠났다고 해도 후에 생각나리라. 우리들교회에서 그 말을 들은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안 되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수많은 일들을 이 평, 초원님들이 너무나 비난도 수없이 들어가시면서 이게 우리들교회 목장은 갈등 구조가 있어요. 믿음의 분량이 서로 다르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해서 속상해서 상처받고 나가도 후에 힘들어지면 또 꼭 생각나서 돌아오셔요. 그러니까 이렇게 차고 넘치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 프로그램이 없는데. 너무 평, 초원님들, 목자님들 눈물 흘리시고 열심히 하셔서 저는 이제 정말 모두에게 정말 상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제가 도리어 그냥 다, 뭔가 있으면 다. 정말 그만큼 감사하셔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죽었다가 살아난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꼭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아들, 딸처럼 그렇게 눈물 흘리면서 해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다들 얼마나 찾아가십니까? 뭐가 생기는 거 있다고 찾아가십니까?
전 세계 복음의 주춧돌 역할을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에요. 그러니까 이 역사적인 발걸음이, 사도 바울은 죽을 줄 알면서 예루살렘을 갔자나요. 그런데 그것이 로마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환난이 있는 예루살렘을 선택할 때, 내가 죽을 것 같은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이 모든 환난이 있는 예루살렘을 선택할 때 로마가, 전 세계가 복음화 되는 놀라운 영광을 허락하신 겁니다. 저도 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결혼을 했자나요. 그런데 성령의 매임을 받아서 헌신한 후에도 여전히 문밖 출입을 못하고 집에 13년간 매임을 받고 있었죠. 그러나 성령의 사명으로 나가게 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그것이 오늘날 큐티 선교회와 우리들교회와, 그리고 전 세계로의 복음으로의 길이 열려진 줄 믿습니다. 제가 그 남편하고 이혼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저는 이혼할 이유가 천가지도 넘었는데. 그런데 거기다가, 이 매임에다가 진리의 성령님, 말씀 묵상이 딱 떨어지니까 그냥 성령이 매임이 되서 사명이 되어서 지금 이 얘기를 하면서 여러분들을 살리고 있자나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하고자 눈물로 훈계해주는 믿음의 앞선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들에게 이런 많은 증인들을 허락해 주신 것이에요. 아까 우리 초원님도 간증해 주셨지만 저런 아픈 얘기들을 계속 하셔서 상처가 별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 그냥 교회 한 자리 숫자 채우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진짜 이 증인이 증인을 낳고, 그냥 나의 솔직한, 진솔한 얘기들을 하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은 그렇게 해서 세워지는 이 목자와 이런 다 부목자, 목자, 마을지기, 초원지기, 평원지기. 그러니까 더욱 더 윗 질서를 존경하고 사랑하시면 감사하겠어요. 여기서 바울 사도는 자기의 눈물을 기억하라고 했자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모두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 영적으로 일깨어 있기 위해 기억해야 할 눈물의 훈계는 무엇입니까? 눈물로 훈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크리스틴
양육숙제를 왜 못하고 시간이 걸리는지 솔직하게 적어보고 적어본 글들 1줄 숙제로 낼 수 있도록
잘 하려고 하는 마음에 힘을 빼고 성령의 은혜로 리포트 마감할 수 있도록
환자의 경계를 지키고 두려운 마음을 내려 놓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병원에 가서 자세하게 나누고 알맞은 치료받는 큰 은혜 누릴 수 있도록
예선
회사의 주인과 나의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 밸런스 있는 스케줄로 하루만 잘 살도록
병원을 옮기려고 합니다. 선생님과 굿바이 잘 하고 나에게 알맞은 치료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겨지도록
동생이 15년동안 간사로 섬겼는데, 집으로 꼭 돌아와야 할 때 돌아오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너집니다. 옥토가 흔들려서 모든 집이 구원받는 은혜 누리도록
가족들과 경계 잘 지키기
다인
본사에서 사람들이 옵니다. 평가받는 것 같은 자리가 힘이 드는데 그 회사의 주인과 나의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 알고 배째 기법으로 하루만 잘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 주시도록
자궁에 혹이 생겼습니다. 상한 곳 없이 알맞은 치료받을 수 있는 일반 은총 내려주시고, 꼭 만나야 하는 의료진과 병원 분별할 수 있는 힘 주시도록
언니네 아기가 목이 온전히 돌아오고 믿음 안에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도록
언니가 엄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큰 은총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향
나의 말씀의 잔이 차고 넘쳐 가만히 있어도, 가족들에게도 나눠 줄 수 있도록
전통과 율법과 규율을 넘어 진리의 성령님이 저의 결혼예배를 주관해 주시도록
십자가 지혜 타이밍으로 결혼예배의 장소 가족들에게 간결하고 담대하게 잘 나누고 올 수 있도록
보련
양교 잘 끝내고 받은 은혜로 이력서도 잘 넣을 수 있도록
면접이 있는데 성령이 이미 인도하신 직장이 있음을 알고 편하게 원장님 뵙고 올 수 있는 담대한 마음 주시도록
허전한 마음에 말씀의 은혜가 풍성하도록
현경
학교 직장 운전면허 나는 할 수 없지만 인생의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께서 경영해 주시도록
백신 후유증으로 건강 회복이 잘 안되는데 지치지 않고 영육의 체력 허락해 주시도록
가족 구원
은진
감정이 파도 칠 때 나에게 사명이 있음을 알고, 놀라지 않고 에덴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약속의 말씀 주시도록
나의 상태를 살펴보고 네/아니요 잘 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 잘 받고 올 수 있도록
보경
허리가 많이 아파서 힘이 듭니다. 고쳐 주시고 알맞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예배와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어 주시고 목장에 꼭 붙어 갈 수 있는 큰 용기와 힘 주시도록
은우
계약을 하러 갑니다. 나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사명 있음을 알고 잘 다녀오도록
사업이 깨끗이 마무리되고 붙여 준 지체들과 저의 구원위해서 기도하도록
가야할 곳과 분별해야 하는 사람들 말씀으로 잘 보고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