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제목>
GS : 공부 집중해서 할 수 있길. 다이어트.
MG : 목장 잘 참석하기.
GH : 교만하지 않기. 예배회복. 신교제.
JH : 생활예배 회복. 일중독으로 살지 않도록.
S : 생산적으로 살기, 돈 스트레스좀 줄일수 있도록.
SC : 매일큐티할 수 있도록, 야동과 게임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IS : 중간과제 기간인데, 학업의 지혜를 주시고, 건강 잘 챙기면서 할 수 있길
성령의 안아주심 (김양재 목사님) (by. JH)
사도행전 20 : 1 ampndash 12
1. 성령의 안아 주심은 권면의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A.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에배소 제자들을 불러 권했다고한다. ampndash 곁에 불러서 부모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권면하는 것이다. 파라칼래오 - 옆에서 같이 외쳐주고 위로하고 들어주는 것
B. 옆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이 똑 같은 안아주심이다. 바울 자신도 파라칼래오 성령의 안아주심을 하러 간다. 바울은 우리와 다르다 소동이 있으면 죽고자 그곳에 있고 소동이 끝나면 그곳을 떠난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제자들에게 있다. 제자는 자발적으로 묶여있는 사람이다. 나를 부른 그사람을 위해 있는 사람이 제자이다. 바울도 예수님도 죄인들의 무리인 군중중에 소수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그 한사람에게 집중한다. 무리를 떠나서 소요가 됬지만 자신이 전도했던 마게도냐 교회를 찾아보러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레아를 향해 다시간다. 한사람이라도 더 전하기 위해 위로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해야했을것이다. 세상에 기댈 것 하나 없는 성도들에게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유일한 피난처였을 것이다. 성경의 극복한다는 말은 없다 해석하며 통과하는것이다. 암을 부도를 내힘으로 하려하니 안되는것이다.
C. 적용
D. 위로를 받아야 할 트라우마는 무엇입니까?
E. 힘든사람옆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며 소리치나요? 보기도 힘들어하나요?
2. 성령의 안아 주심은 함께 가는 우리 공동체 그 자체입니다.
A. 3-4)마게도냐 심방을 마치고 헬라에 지역으로 간 바울은 그곳에서 3달동안 머물렀다. 헬라가 문화적 선민의식이 대단하고 유대인에게 적개심이 컷다. 바울의 기막힌 구원을 위한 디테일이 있다. 헬라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 바울의 피땀으로 세워진 고린도 교회가 있다. 헬라는 음란의 아이콘이다. 그곳에서 1년6개월동안 제자를 육성했지만 바울이 떠나자마자 바울을 의심하고 배신하고 음란으로 다시 물들었다. 그런곳을 바울은 다시 가서 3달동안 양육을 했다. 대단한사람... 그리고 그곳에서 바울이 로마서를 적는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바울도 키우고 메시지도 키워갔다. 3개월 이후에 배를 타고 수리아를 가고자했지만 유대인들이 자신을 해칠것을 알고 육로로 먼길을 돌아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한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음모를 들은게 아니라 성령이 알려주셔서 피하게 해줬다. 이것이 성령님이 파라칼레오 한것이다. 효과적으로 성령이 도와주지않으면 내가 할수 있는게 없다. 성령이 임하셔야한다. 바울의 힘든 여정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 디모데 두기고 드롭비모....7명이 바울과 함께 가고있다. 1차적으로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교회을 도울 헌금을 전하러였다. 바울에게 함께 가는 것 바울의 동행하는 것 자체가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독자들에게 성령의 안아 주심이 된다. 바울이 한번가서 복음을 전하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작 바울의 삶은 살해의 위험을 겪고 너무나도 처절한 외로움의 연속이였던 시간이 있다. 바나바로 인해 사명의 부름을 받았을대부터 성령의 지체가 생기게 된다. 지역을 지날때마다 지역을 대표한 동행자들을 붙여주셨다. 지체들과 끝까지 좁은 길을 가라고 주는 메시지가 성령의 안아주심이다. 큰돈을 맡기고 먼저 배를 태울정도로 신뢰가 쌓인 사람들을 주셨다. 돈 때문에 갈라지고 깨지는데 바울과 함께한 공동체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 부성령의 안아주심으로 한 형제된 지체들끼리 얼마나 큰 신뢰와 믿음이 생겼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나에게 잘해준다고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뢰로 볼수 없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값을 지불하고 나를 구원했는지 그 구원의 값을 아는 사람만 돈을 다룰수 있다. 아니라면 계속해서 갈아타고 만족하지 못할것이다. 복음으로 믿음이 형성되는 관계 이런사람이 내곁에 있는 것 만틈 큰 것이 없다. 그런지체가 내옆에 없다는 것은 본인이 그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B. 6)바울은 소수의 동역자들을 데리고 육로를 돌아 드로아로 갔다. 빌립보에서 누가는 떨어졌다가 여기서 우리라는 단어를 써서 다시 등장한다. 예전 빌립보에서 드로아로 갈때는 성령이 아시아로 가는 것은 순풍을 통해 2일 만에 도착하게했지만, 빌리보에서 드로아로 돌아올때는 5일이 걸렸다. 이렇게 힘들 때 우리라고 부를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히밍 되는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말씀으로 같이 있는 우리 공동체가 있으면 이겨낼수 있다. 나와 같이 한주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한말씀을 듣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들 공동체 입니다. 공동체 자체가 성령의 안아주심이다. 성령님의 강하고 따뜻한 팔에 안기는것이다.
C. 적용
D. 내가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지체가 있나요?
E. 믿는다면 그 사람이 사명이 있어서 믿습니까? 내감정으로 믿습니끼?
F. 믿음의 공동체가 그 자체ㄱ로 위로가 됨을 경험한 일이 있습니까?
3. 성령의 안아 주심은 떨어지는 약함까지 안아주시는 회복입니다.
A. 7-8) 드로아에 머문 그 첫날에 떡을 떼려(성찬식) 하며 그들에게 밤중까지 강론을 한다. 이는 주일예배로 모였다는 첫 기록이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보고 욕하는게 바울이 말을 못한다고 한것이다. 말도 못하는데 말을 길게 하는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게 여기에 언제올지 모르니까 계속 길어진다. 어둠이 예배에 지장을 주지않도록 등불이 많이 켰는데 산소가 부족하고 이산화탄소가 많아져 후끈거리고 힘들고 지쳤을것같다.
B. 9)유두고라는 청년이 지쳐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당시 9번째로 흔한 이름으로 일꾼이나 노예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늦게까지 종살이를 하다가 피곤한 상태로 와서 깊은 잠에 빠져 사고로 이어져 목숨이 달아났다. 정말 예배를 세상과 교회의 문턱에 걸쳐앉아있다가 떨어질수 있다. 예배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알알 못할 때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예배가 중단된 삶이다. 각자 떨어지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뭐든지 올라갔다 떨어지는 삶을 살고있다. 예배는 갔는데 들은 말씀이 없다. 졸지말자... 여기도 진자 유두고가있다. 그러니 날마다 핑계를 댄다. 당신이 나처럼 살아봤어? 내가 얼마나 피곤한데 와서 있는줄 알아? 라고 말한다. 그래도 예배에 와서 앉아 있길비란다. 조금있다 바울이 살려줄거니까. 왔다는거에 점수를 준다. 짝짝짝.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떨어지니까 예배를 안드리고, 예배를 안드려서 떨어지져 결국 중단되는 예배는 무엇인가.
C. 10) 바울이 내려와 생명이 여기 있다 말하고 다시 올라왔다. 율법적으로 보면 거리두기를 한다. 바울은 유두고가 떨어지는 그 약함의 자리로 내려갔다. 그리고 죽기까지한 연약한 곳으로 자신을 떨어졌다 그리고 율법적으로 부정한 시체를 꼭끌어 안았다. 유두고에게 가서 자기몸을 엎드려서 떨어뜨리고 생기를 불어넣어 덮은것이다. 에스겔 5장 3절에 보면 에스겔에게 머리털을 옷자락에 싸라는 명령을 했는데 이렇게 꼭꼭 둘러싸는 단어로 유두고를 안았다고 표현한다. 누가가 직접보고 그당시를 표현하기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유두고를 안고 그의 죄가 나의 죄다 라고 말한다. 지렁이 같은 나를 위해 예수님도 떨어져 내옆에 와주셨다. 죽어있던 내몸에 뭔가를 밀어 넣고 구원하셨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사망이라는 심판을 예수님께서 직접 받으셨다. 유두고가 바로 나다. 부정한 시체를 끌어앉고 말한다. 떠들지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우리는 누가 떨어뜨렸나 누구탓이냐 소란이 많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니 동네사람들이 다 떠들었다. 지난주 소동이 있던 에베소 광장에서도 사람들이 떠들었다. 바울은 죽은 유두고를 꼭 끌어 안았다. 어떤 떨어저 죽는 사건도 예배를 말씀을 막을수 없다. 가장 거룩한 예수님께서 가장 더러운 십자가를 자기십자가로 지고 세상이 할 수 없는 적용을 하셨다. 이것이 진짜 적용이다. 우리의 적용도 연약한 지체를 가족을 끌어 안는것이다. 내 연약함과 죄로 안아주는것이다. 그것이 성령의 안아주심이다.
D. 12) 그러니 사람들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한다. 유두고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 뿐이다. 내가 평생의 노동자여도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말씀앞에 나온것만 해도 세상사람들이 적지않은 위로를 받는다. 지금 힘들게 예배 나와 졸기만 했는데 나왔다는 것, 목장에 참석했다는 것만 해도 좋다. 결석만 하지말고 나오기만하자. 우리는 생명보다 돈이 권력이 좋다고 착각하지만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야하는 것이 성령의 생각 구원의 생각이다. 크든적든 성령의 ㅁ안아주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여기에 나와있는 것을 믿는다. 그럼에도 원망 속에 있는 분들도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연약한 부분을 성령이 안아주실것을 믿는다. 살아만있으라 그래서 구원을 누리라고 한다. 그럼으로 눈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살아만 계세요. 살아남아야한다. 결국 여러분의 구원은 모든 지체들이 살아난 여러분을 통해 적지않은 위로를 받을것이다.
E. 적용
F. 이제 다 끝났다며 떠들고 절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안아주는 성령의 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G. 지금이라도 성령님의 팔을 붙잡기 위해 내려가 엎드리어 끌어안은 적용 중에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 됩니까?
성령의 안아주심으 권면의말씀으로 파라칼레오하면서 안아주시는것이다. 때마다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우리 공동체 그자체가 안아주심이다. 그래서 그 공동체는 어디에서도 떨어지는 약함까지 않아주시는 회복이다. 이번주간에는 서로서로 안아주는 문자적인 적용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