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성령의 소동 - 김양재 담임목사님
사도행전 19: 21 ~ 31
1. 세상 소동으로 시작합니다.
회심만 하면 깨끗한 그 곳에 더한 음란과 욕심이 채워저서 처음보다 형편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태워진 그 곳에 사명이 채워져야 합니다.
작정, 즉 경영은 헬라어 ??말을 써서 성령 안에서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성령께서 내게 매일 듣는 말씀 안에서 말씀으로 받도록 사명을 주십니다.
성령의 경영을 하고 작정을 하고 사명을 받으니까 그 다음으로 따라오는 게 소동입니다.
지금 나에게 대적이 많아 소동이 일어난 곳은 지금 내 삶의 사명이 주어졌고 생명이 태동하여 잘하는 곳이고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하를 소동하게 하는 가장 큰 소동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입니다. 복음이 가면 소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끝없이 일어나는 소동은 나를 죽이려는 소동이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이 있기에 일어나는 소동입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떤 소동 가운데 있습니까?
이 소동은 사명 떄문에 온 소동입니까, 욕심 때문에 온 소동입니다?
2. 세상 소동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소동에는 반드시 주동자가 있습니다. 종교성 가득한 시민들을 통해 많은 벌이를 하는 기득권층은 큰 재산을 모아 풍족한 생활을 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더 큰 번성을 원했습니다.
근면, 성실, 부지런 등 아주 좋고 선한 가치가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근면해도 죄인이고 성실해도 죄인이고 부지런해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오히려 선한 가치들 뒤에 감춰진 자기 실체,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인의 실체를 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면한 사람들은 사실 휠씬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 심각한 죄악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칭찬과 인정으로 더 두텁게 포장해 주님의 말씀을 더 못 듣게 합니다.
뭔가 대단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두껍게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서로 실체를 보지 못합니다.
근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포장을 뚫고 들어가서 에베소의 사람들 안에 감춰진 돈 우상을 드러냈습니다.
욕심을 드러내기 위해 선풍과 노력 아래 감춰진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 성령의 소동이 오는 것입니다.
신이 무너지고 우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소동입니다. 이제 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큰 지진 같은 사건입니다.
대단한 소동의 중심에 있는 그 원인은 아주 감동스럽게 보이기까지 하고 나라를 위하고 믿음을 위하고 구원을 위해 공정을 위해 우리는 분노하고 소동한다고 나가서 연설을 합니다.
애국심과 믿음과 명분의 포장 뒤에는 무시와 체면 상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돈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일으키는 세상 소동의 이유가 돈에 있는데 인정하지 않습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 가치 때문이라고, 욕심 때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자기들의 영업이 천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포장을 합니다.
나아가 온 지역이 섬기는 큰 여신 아데미 여신이 훼손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포장 위에 포장을 또 합니다. 이 포장이 세상 경영의 특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동을 일으키는 데는 포장을 잘하는 주동자 한 사람 천재같은 주동자 한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런 주동자가 없으면 소동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복음을 들으면 가만히 있지 않고 소동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말을 들은 결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요란이 있습니다.
세상의 말을 들으면 결국은 분노와 요란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찌질해 보여도 목장의 말을 듣는 것은 세계적인 대안이 맞습니다.
믿음으로 목장의 말을 듣기 때문에 너무 형편없는 목자라고 해도 하나님은 목장의 그 말을 책임지십니다.
적용질문)
나는 어떨 때 무시 받았다고 생각이 드나요?
소동의 근원이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가족이나 지체에게 분함이나 야망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부추기는 일은 무엇입니까?
3. 내가 죽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말씀 공동체에 붙어있는 게 참 필수입니다.
에스겔처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를 반복해서 외쳐주는 지체 곁에 있는 게 세상 소동에 휩쓸려 떠내려 가지 않는 비결입니다.
바울은 회당에 유대인에게도 배척받고 광장의 이방인에게도 박해를 당합니다. 바울은 성령으로 경영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이였습니다.
그러나 불같은 분노와 소동이 일어났을 때는 같이 맞서 싸워서는 안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는 소동을 일으키기 보다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든 것을 해석할 떄는 옳고 그름으로 하면 안되고 구원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소동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싫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을 만큼 재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죽여서라도 소동을 일으켜 혼자 살고자 합니다.
히틀러, 독재주의자들이 그렇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나를 위할 것 같지만 절대 안그렇습니다.
내가 날마다 목상하는 말씀 속에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이 소동을 멈추는 비결입니다.
성령의 경영을 막고있는 것은 마술사도 유대인도 아닌 십자가를 거스르는 바로 나입니다. 내가 죽기 싫기에 내 속에도 소동이 일어납니다.
소동은 맞서 싸워서도 안되고 피해서도 안되고 그 소동 속에 죄인인 내가 죽는 것이 생명이 탄생되는 비결입니다. 내 생각을 꺽는 것이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씀으로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고 내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예수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에 날마다 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동 속에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적용을 하는 것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소동 속에 생명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가 죽어 지금 한 사람이라도 내가 죽어지면 이 소동이 끝날텐데 서로 잘났다고 하니까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내 자아가 펄펄 살아있는 소동의 정체를 아셨나요? 그러면 죽어질 수 있겠습니까?
[기도제목]
A.
1. 건강한 몸 주심에 감사하고 다시 체력 훈련하기
2. 주식 끊으면서 손실 금액 잘 감당하기
3. 상대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내 죄 보며 사명의 길 가길
4. 일하기 귀찮아지고 느슨해 지는데 내게 주어진 일 잘 감당하기
5. 양육자로서 동반자 잘 섬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