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광의 왕
본문: 시편24:1-10
설교: 이태근 목사님
여러분들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어떤 인생을 사시다가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영광의 왕.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 오셨습니까? 아니면 원망과 불평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악을 쓰며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우리의 원망이 찬양이 되고, 불평이 찬송이 되며, 우리의 고난이 할렐루야와 아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내 것이 아니고, 다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를 의미하고,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모든 인류와 인간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고도화 되면 될수록,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집도 내 것이고, 차도 내 것이고, 땅도 내 것이기에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삶으로 고백하려면 많은 사건들이 오고 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1-2절,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원문 1-2절 사이에는 접속사 왜냐하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연히 집도 내 것이고, 차도 내 것이고,땅도 내 것이겠지만, 이것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통해서 첫째 날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둘째 날에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또 나누셨는데, 궁창 위에 물은 노아 홍수 이전까지 모든 피조물들이 안락하게 최적의 환경에서 살아 가도록 모든 유해 물질을 차단하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주었을 텐데, 인간의 타락으로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자, 창조 질서의 일부가 깨지고, 궁창 위에 물이 다 쏟아져서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노아 홍수 이후로 인간의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먼저 나눠야 할 것이 있고, 한 곳으로 모으고 드러나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 쪽은 모여서 바다와 강이 되고, 또 한쪽은 뭍이 드러나 마른 땅이 되어야 합니다. 둘 다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고, 각자 알맞게 쓰임을 받아야 하는데, 바다는 물이 모여서 더욱 풍성해지고, 뭍은 드러남으로 마른 땅이 되어야 씨 갖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창조의 질서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뒤죽박죽, 어디서 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모으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나누는 것부터 먼저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모으고 쌓고 더 긁어 모으고 쌓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에 가진 것이 있어도 누리지 못하고, 가진 것이 많아도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할 때가 많습니다.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려면, 내 마음과 생각 속에서 어두움과 빛이 항상 공존, 뒤죽박죽 하고 있는 데 그것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가 될 수가 없기에 우리는 날마다 어두움의 생각과 빛의 생각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갈등 충만이 성령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 과연 빛의 생각인 지, 어둠의 생각인 지 조차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우리의 인생에도 비로소 첫째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1-2절, 쉽게 설명해서, '너희가 땅에 집을 짓고, 문화를 만들고, 도시를 건설했다고 해서 스스로 교만한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터가 바다 위에 세워졌고, 강들 위에 건설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변가에 모래성도 쉽게 무너지는데 하물며 바다와 강들 위에 세워진 것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든지 노아의 시대처럼 모든 땅을 바다에 잠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혜가 계속되면, 그것은 나의 권리가 되고, 나의 일상이 되기 때문에 집도 차도 땅도 내 것이고, 자녀도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터를 바다와 강들 위에 세우고 건설했기에 유라굴로 광풍이 한번 불면, 276명을 태운 큰 배도 한순간에 파선 될 수 있다고 지난 주와 이번 주에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터를 반석 위에 세우지 않으면,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은 그 기초가 너무나 약하기에 한순간에 다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적용] 여전히 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로만 주님의 것이라고 하며,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은 없습니까? 내 힘으로 쌓아 올렸지만 그 터와 기초가 너무 약해서 허망하게 무너진 것은 없습니까?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절서가 잘 세워지고 있습니까?
2.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행위가 아닌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3절,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집니다. 구약은 율법의 말씀이고 신약은 은혜의 말씀인데,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구약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항상 신약의 빛 아래서 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언제든지 죄만 지적할 뿐 말씀에 대한 은혜와 구원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약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고,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언제든지 나의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살았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고난이 약재료가 되고 나의 상처가 별이 되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지는 것처럼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도 양대산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산은 광야에 있는 시내산이고, 두 번째 있는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입니다. 출애굽기 19장 말씀에 보면, 시내산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 지 보여줍니다.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산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올라가는 산입니다. 모세 자신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말씀에 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12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절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구약의 율법은 이처럼 어두움이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반드시 먼저 찾아 오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호와의 산은 율법을 주신 시내산이 아니고, 성전이 세워진 시온산을 가리킵니다.
과거의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어린 양을 준비해주신 바로 그 장소입니다. 율법을 주신 시내산에는 오직 모세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여호와의 성전이 세워진 시온산에는 과연 누가 올라갈 수 있을까요? 4절, 여호와의 산에 오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조건은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외적인 행위가 성결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나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것은 내 손을 더럽히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마음이 청결하여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아야 합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외적인 행위만 깨끗해서는 안되고 그 마음과 뜻이 근본적으로 청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자라 하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 두 가지 조건이 하나님과 나의 관계라면,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인간과의 관계를 염두 해둔 표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자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신실해야 합니다.
3-5절, 율법이 있는 시내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올라가지 못할 것 같고, 성전이 세워진 시온산은 자격이 되지 않아서 올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3-4절 말씀은 행위가 아닌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나의 손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더러운 손을 씻고, 깨끗한 손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받치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어린 양을 준비해주신 원리와 똑같습니다. 나의 마음이 불결하여 허탄한 것을 계속해서 생각한다면, 나의 더러워진 마음을 공동체와 하나님께 고백하고 창녀의 마음이 아닌 청결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5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의를 행하는 자라고 않고, 하나님께 의를 얻는 자라고 했습니다. 내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더 확실한 증거가 6절 말씀에 나옵니다. 3-5절 말씀이 만약 행위를 강조했다면, 야곱의 하나님이 아닌 요셉의 하나님을 찾았을 텐데, 성경은 언제든지 야곱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뜻은 속이는 자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털 가죽과 별미로 아버지 이삭을 기만하고, 그렇게 속이는 인생을 살다가 외삼촌 라반에게 잘 못 걸려서 20년 간 종 노릇을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너무 못됐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야곱이 여자 좋아하고 돈을 좋아했기 때문에 남에게 책임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 가운데,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라고 분명히 세 가지 조건을 달았는데,그 결론이 요셉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나의 행위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자가 아무도 없고, 오직 은혜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공동체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까지 오는 데에 어떤 인생을 살다가 오셨습니까?내 손에 피를 묻히고 음란을 행하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다가 나보다 더 강한 외삼촌 라반같은 사람을 만나 갖은 고생을 하다가 인생을 낭비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우리들 공동체까지 찾아 오셨습니까? 너무 잘 오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는 데 너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내가 요셉처럼 살지 못했을 지라도, 야곱처럼 속이는 인생을 살았을 지라도, 나의 손에 피 묻은 손을 보며 회개하고 나의 창녀와 같은 마음을 회개하며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은 무섭고 두려운 시내산이 아니고, 은혜가 아니면 올라갈 수 없는 시온산입니다.
[적용] 나의 피 묻은 손과 창녀 같은 마음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이 되어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여전히 옳고 그름으로 시온 산이 아닌, 시내 산을 올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높은 산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로 사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행위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3.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립니다.
7-8절, 시편 24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언제 이 시를 썼을까?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오베네돔 집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에 부른 찬양 시라고 합니다. 7절, 첫 번째 문은 성소의 문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문들은 하늘 성소의 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의 들지어다는 능동 명령형이고,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의 들릴지어다는 수동 명령형입니다. 즉 짧은 한 절이긴 하지만,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리고,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하늘의 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들지어다는 문들이 자발적으로 머리를 들어 왕의 입성을 환영하는 장면이고, 들릴지어다는 영광의 왕 앞에 문들이 필연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함께 모여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내인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히 매고 갈 때에 다윗이 기뻐 뛰며 힘을 다하여 춤을 추웠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그 모습을 창틀에 기대어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쳐다 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어찌 게집종 앞에서 저렇게 몸을 드러내며 방탕하게 춤을 추냐고 심중에 자기의 남편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했습니다. 남편 다윗에게도 닫힌 마음이고, 여호와 하나님께도 굳게 닫혀있는 마음입니다.문들에게 머리를 들라는 것은 시적인 표현인데, 빼꼼히 문을 열라는 것이 아니고, 문을 활짝 문짝 전체를 들어 올리라는 표현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야 하늘의 문도 열립니다. 다윗의 아내이지만 여전히 사울의 딸 미갈이 되어 자기의 상처, 자기 연민, 궁궐 안에 홀로 틀어 박혀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공동체가 하나도 없이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록 다윗의 아내이지만, 여전히 가진 것도 많지만, 집도 궁궐에 살고 있지만, 미갈의 인생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남편이 수치를 무릅쓰고 자기 나눔을 할 때, 무슨 얘기를 하나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남편을 업신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힘들 이야기를 조잘조잘 할 때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들어야 합니다. 왜 남 앞에서 저런 이야기까지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닫힌 마음이고, 미갈과 같은 마음입니다.
능동태와 수동태로 명령을 해주신 것처럼 내가 먼저 머리를 들어 마음의 문을 열고, 내가 미처 다 열지 못하는 그 문을 주님께서 함께 열어주시기를 온 성도가 함께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9-10절, 앞 절과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강조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24편은 찬양시로 분류되지만, 동시에 메시야 예언시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말씀이 언약궤라고 하지 않고, 영광의 왕. 만군의 여호와.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의 능한 여호와라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시는 개성장군처럼 메시야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마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실 때에 천군 천사가 함께 모여 행군 나팔을 불며 영광의 왕. 만군의 여호와께서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께서 하늘의 있는 성전에 이제 들어가시니, '문들아! 너희는 너희의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천군 천사가 외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소의 문도 열리고, 하늘의 문도 열린 것처럼 내 마음의 문도 열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다 함께 기뻐하며 찬양하며 뛰어 놀 때 자기 연민, 자기 상처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우리의 자녀와 식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문 밖에 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화가 나서 쾅쾅쾅 두드리지 말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사랑이 느껴지도록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노크 소리가 되도록, 자녀의 방문 앞에서, 남편의 방문 앞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닫힌 문이 열릴 때까지 문 밖에 서서 악 쓰지 말고, 고함 치지 말고, 우리의 소리가 음성이 되어 그 문이 열릴 때까지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 식구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적용] 나의 마음은 열린 마음입니까, 닫힌 마음입니까? 여전히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못하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하며 찬양할 때 혼자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문 밖에 서서 두드려야 할 나의 가족은 누구입니까?
*나눔
문에스더
- 동생이 10월에 집을 보러 올라오는데, 10월에 내 생일이 있기도 하고, 생일 선물로 현장 예배를 같이 가달라고 말하려 한다. 이번에 동생이 남자친구와 크게 싸우는 일이 있고 나서, 연락이 왔는데 통화를 할 때 본인에게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였고, 남자친구와 분리되어 서울에서 독립하라는 권면을 받아 드리기로 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동생이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해주셔서 함께 예배 드릴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시고 계신 것 같아 감사하다. 동생이 부모님의 갑작스런 귀국으로 정리되지 못한 중국에 학원을 혼자 대학생 때 정리하고 처리하면서 부모님께 생활비까지 보내야 했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 때 만난 남자친구인데, 지금도 엄청 의지를 하고 있다. 지금 스스로 해결되지 않은 인생 문제가 많아 분노가 쌓여 있다. 이번 주에 동생 생각을 많이 했는데, 가엽고 짠하고, 내가 언니로서 동생의 구원보다는 내 연민에 빠져 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해서 눈물이 많이 났다.
-나의 마음은 열린 마음입니까,닫힌 마음입니까?여전히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못하고,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지는 않습니까?
1)오늘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도 있고 어두움도 있는 그런 공존의 상태가 항상 나한테 있다. 그래서 에너지가 있으면서도 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만큼의 우울함도 있다. 공허함이나 외로움이 커지면 우울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요즘에는 그걸 더 잘 느꼈다. 왜냐하면 4년 가까이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고, 어두운 부분에 40%를 채워줬다고 하면, 40%가 비게 되면서 그 우울함을 직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생활에서는 매일 같이 밥을 먹는 동기들이 있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동아리에 있거나 알바를 가고, 내 어두운 부분과 직면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가끔 그런 우울함이 찾아 올 때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에게 그런 어두운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며 직면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뺴곰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 큐티를 하루에 잠깐 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빼꼼히이지 않을까. 진짜로 내가 마음을 활짝 열고 그런 어두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반만 걸치고 큐티할 때만 잠깐 그리고 그 이후 생활에서는 여전히 그 어두움을 그대로 느끼기만 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결을 해왔던 것 같다. 엄청 찔리면서 내가 마음을 활짝 열지 않았음이 발견됐다. 활짝 연다는 것이 큐티 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어두움이 찾아오는 그 순간에 말씀을 보던지 기도를 하던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은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보자, 더 활짝! 이라고 다짐을 해본다.
2) 감사한 것은 한국에 혼자 왔지만, 완전히 혼자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주변 지체들을 붙여주심으로 호호 불어가시며, 나의 모습을 조금씩 직면 하게 하신 것 같다. 처음부터 너무 단절을 경험했다면 내가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도 잘 지내고, 씩씩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내 연약함이나 결핍을 아시고, 사람들을 붙여주신 건데, 오만하게 생각했다. 나는 공동체 없이는 살 수 없고, 너무나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이 기간이 너무 감사하고, 심적으로도 더 편안하다.
최혜신
- 이번 추석 때는 어머니 건강도 안 좋으시고, 아버지가 올라오시면 더 악화가 되기도 해서 아버지께 이번에는 올라오시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처음에는 화가 나셨다가 다행히 중간에서 어머니 상황을 잘 말씀드려서나중에는 이해를 하셨다.
- 마음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었는데, 불안감 때문에 내려놓지 못하고행동이 먼저 앞서게 됐다.
-나 같은 죄인이 되어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까?은혜로 사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행위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내가 적용을 하겠다고 이번 주에 말했지만, 내 죄성으로 인해서 이 적용을 지킬 힘이 나한테는 없구나.. 나는 말씀을 들으면 바로바로 적용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한테 할 말이 없었다. 적용을 해나갈 때마다 내 의로 가득 찼던 과정이지 않았나.. 말씀을 보고 깨닫고, 그것을 적용을 해야겠다고 하면, 웬만하면 다 했었는데..근데 시편에서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를 계속 붙들고 계시고 그런 나를 지켜가고 계시고, 의로운 자라고 여겨 주시는 것들이 본문에서 볼 때마다 너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스스로 깨끗해질 수는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뱉은 말 하나 지켜낼 수 없는 연약한 존재구나.. 죄 앞에서..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은혜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적용을 할 때마다 의인이라는 적립을 매번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런 것들이 뭍이 드러나는 환경이 되었던 것 같고, 이런 것들에 창조 질서가 하나님 앞에 되어져야 할 것들이 되어져 가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기도제목
김은희
1. 하루하루 무사히 다치는 사람 없이 공연 잘 해 나갈수 있게 해주세요
2. 담주 오디션 잘 준비해서 잘 보여줄수 있게 해주세요
3. 부모님의 건강과 나의 건강과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세요
4. 남자친구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문을 하나님이 때에 맞게 열어주세요
신은주
1. 점점 번아웃이 되어가고 있으면서 출근하기 너무 싫은데 환경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마음을 바꿔주세요
2. 체력적으로도 너무 지치는데 체력관리 잘 할 수 있도록
3. 오늘 9/20 남자친구 아버님이 갑자기 수술하게되었는데 (담낭절제술) 무사히 잘 수술받을수있도록
권희경
1. 아빠가 다른 사람을 만날까봐 엄마가 불안을 느끼는 모습이 있었는데ㅠ 믿어주고 사랑함으로써 엄마가 그런 생각에서 자유케 되기를
2. 어떤 일을 하며 살지, 잘할 수 있을지 늘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과 답답함이 있는데 주어진 일 감사함으로 즐겁게 하며 내게 맞는 진로를 찾을 수 있기를
3. ㄷㅏ음달 과학실험 연구수업 준비해야 하는데 주제 정하는 것부터 지혜를 구합니다(원래 하려던 주제를 시연해봤는데 생각보다 실험이 잘 안돼서 바꿔야 하나 걱정ㅠ)
4. 예전 교회 친구가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어 마음 다치지 않게 도움주고 위로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주님께서 만져주시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허락해 주시기를
5. 우리들교회 같이 온 친구가 믿음의 선물 받을 수 있기를
6. (장기) 평택에 있는 상가 앞으로 들어가는 세금, 이자, 상환금 등 지출이 많이 부담되는데 이 사건을 통해 진정으로 겸손히 회개하고 지옥처럼 사는 게 아니라 이 속에서도 하나님 묵상하고 인내하기를
문에스더
1. 아버지와 어머니 연세가 점점 들고 계시지만, 사랑과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하시는데 공동체에서 부모님을 긍휼히 여겨주실 수 있는 지체들을 붙여 주셔서 그 사랑으로 다시 회복되어 목장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2. 동생(문예나)이 남자친구와 분리를 결단하는 사건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10월에 경기도 혹은 서울에 집을 보러 올라오는데 함께 현장 예배를 꼭 참석할 수 있도록
3. 큐티할 때만 빼꼼히 내밀며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활짝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외롭고, 두렵고, 우울한 어둠이 찾아 올 때에도 말씀 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4. 키즈맘카페 그룹수업 광고를 내려면 여러 절차가 있어 아직 기다리는 중인데, 다음 주에 글이 승인이 되면 정말 현재 도움이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한 가정이 연결될 수 있도록
5. 내 안에 아직 발견치 못한 결핍이 말씀을 통해 발견되어져 건강하게 영적으로 성장하고 준비된 신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최혜신
1.1차 시험날까지 코로나 안 걸리도록
2.1차 시험날까지 최선을 다해 공부할 수 있도록
3.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할 수 있도록
4.엄마 건강 지켜주시길
5.나의 죄가 큼을 인정하고 온전히 주께 피하는 시간이 되어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