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성령의 임하심 - 김양재 담임목사님
사도행전 19:1~7
성령의 능력과 은혜는 가르친다고 되지 않습니다.
제자 양육과 성령 받는 것 중 어떤 것이 선행되야 하는지 시간적 순서를 알 수 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 양육은 성령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땅에서 개미처럼 수고하고 썩어질 뿐입니다. 제자 양육은 성령의 임하심이 절대적입니다.
성령을 가르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도 들으면서 나기 때문에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1.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입니다.
아볼로가 똑똑하고 구속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바울과 한마음이 안된 부분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에게 성령의 제자 양육을 받고 은혜가 있음에도 아볼로 본인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그를 사로잡아 넘어가지 못하는 지식 때문에 거기까지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양육의 시간을 내니 열매가 많았습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는 것 맞습니다.
황금어장이라고 무조건 가서 선교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끝없이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분별이 안됩니다.
성경은 인간론이기 때문에 아볼로의 서론 본론 결론을 아는 것은 성령이 임하신 바울의 정확한 분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성령이 임하신 구원에 대한 분별이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순간의 내 생각의 판단이 영혼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적용질문)
성령의 임하심으로 항상 분별합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합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고 합니까, 어려워합니까?
나는 뒤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프칸 철수의 바이든 결정이 분별일지 판단일지는 역사가 증언해줍니다. 한 사람의 분별이 이렇게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나라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2.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한 제자였습니다.
근데 바울이 그들을 유심히 보니 성령을 받지 않은 거예요. 사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되고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명목상 제자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결코 에베소 같은 돈 많고 인물 좋고 몸매 좋은 것을 다 갖춘 내 남편, 아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령 없이는 금그릇을 깰 수 없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저 에베소 같은 인간의 마음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열심히 섬겨도 돈으로 살 수도 간절히 원해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근데 여기서 믿을 때는 어떤 조건이 아닙니다. 믿음이 조건이 되어서 성령을 받는다면 믿음조차 행위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예수를 믿었다면 동시에 성령의 열매와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탁월한 교회와 탁월한 양육을 받아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고 사람의 제자(어떤 제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믿기 때문에 우리는 죽기보다 싫은 수치도 당할 수 있는 것이고 믿기 때문에 죽기보다 싫은 적용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우리는 죽기보다 싫은 것이 인정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수치를 인정하고 내 수치를 고백하고 죽어지는 적용을 하는 성령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죽기보다 싫은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 공동체에 고백하는 것이 믿을 때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QT할 때 오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이는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말씀을 믿고 붙들고 적용할 때 내 속에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양육을 하거나 회사를 하려면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하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적용질문)
내 실체를 드러내 주었던 질문은 어떤 질문입니까?
지금 내가 죽기보다 싫은 적용은 무엇입니까?
다 맞다고 말하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성령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제일 기억나는 스승은 누구입니까?
성령의 임하심은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입니다. 사람의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입니다.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설교가 듣기 의롭고 멋있어서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속의 사람의 죄를 보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더러운 내 속을 막찔러준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도전이 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입니다. 즉, 내가 예수 믿으면 잘된다가 아니라 예수 믿으면 심판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회개합니다.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깨달아집니다하는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용서하고 깨끗하게 씻겨주는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인 것입니다. 이 심판은 내 죄보다 가벼운 것을 깨닫는 세례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싫어하고 만날 용서와 물 깨끗한 것만 원합니다. 근데 내 속에 쭉정이가 뼈속까지 죄인인 끝없는 죄악이 이땅에서 불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영원한 심판을 면하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주님 저는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환경이 아니라 불의 심판을 통해 구원을 하나님의 상급을 받았기 때문에 환경의 어떠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의 세례 불 세례를 아는 자들은 지금 현 시국에 내 죄때문에 깨어진 가정이라며 보며 끝없이 토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은 내가 열심히 살았고 용서함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합니다.
이 땅에서 불의 세례로 모든 것이 무너저 내림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정말 이렇게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지 않으면 어떻게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고난이 와도 죄가 안 깨달아 지는 사람은 요한의 세례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아닌 세례요한이 외쳤던 예수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세례란 정확한 복음. 예수님을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예수님를 설명하고 복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정확하게 읽어가기에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이것보다 정확한 성령 세례가 없습니다. 세례란 죽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열광하면서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질 하며 욕하고 던저버리고 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있습니다.
성령 세례의 표적은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지고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도 달라집니다.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그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에 여러분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물 세례 성령 세례는 동시에 올 수도 있고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 세례를 알려주기 위해 바울이 가르친 것은 정확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QT를 하고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정확한 복음을 듣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성령 세례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적용질문)
내가 예수 믿으면 잘된다가 아니라, 내가 당한 불의 심판은 무엇인가요?
사건 앞에 나는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이 인정됩니까?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나 던저버리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물세례도 안받으신 분들은 왜 안 받으시는지요?
가장 정확한 예수님의 대해서 알려주는 게 가장 정확한 성령 세례입니다.
4. 방언과 예언을 합니다.
우리는 성령 받음을 생각할 때 방언이나 예언 이런 기적같은 은사의 말에 관심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런 가시적인 능력이 있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이 우리가 행하는 은사에 있으면 성령은 한낯 에너지나 자원이 되는 잘못된 예입니다.
내가 취하던 가치관에서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말하게 됩니다.
방언은 소통의 능력이고 공감력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모든 고난과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려고 허락한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과 소통할 수 없는 내가 주님과 소통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통하고 공감하려면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방언이라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처방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구속사는 방언 중에 방언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설교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고 세례를 통해 내 생각은 죽고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감화력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소통이 일어나 말씀을 맡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이유를 해석해서 고난이 있는 자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 내가 깨달은 이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예언입니다.
방언과 예언도 영혼 구원을 위함이며 성령이 임하시면 영혼 구원을 길러놓고 가게되는 것이 성령의 임하심에 목적입니다.
아무리 무너졌던 공동체도 성령이 임하시면 회복시킵니다. 말씀을 맡은 공동체가 목장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온전한 회복의 공동체입니다.
적용질문)
소통하는 방언과 감화를 시키는 예언을 하시나요?
회복의 지름길이 온전한 12공동체 목장에 가는 것임을 아시나요?
나는 무엇이 회복되고 싶나요?
[기도제목]
A.
1. 출장 기간동안 지혜와 체력 주시도록
2. 목장 식구들 말씀 잘 들리도록
B.
1. 일하기 귀찮아지고 느슨해 지는데 내게 주어진 일 잘 감당하기
2. 주식 끊으면서 손실난 금액 잘 감당하기
3. 상처 주고 상처 받았던 지체에게 안부 전화하기
4. 다음주 2차 백신접종 때 더 아프다는데 1차 때 같이 내 몸에 잘 흡수되길
5. 귀뚜라미 우는 계절이 왔는데 우울감 생기지 않고 잘 이겨내길
C.
1. 드론 촬영을 잘해서 기술을 잘 익히도록
2. 새 여친을 만나서 대화를 매끄럽게 잘 이어갈 수 있도록
3. 독서를 많이 해서 많은 지식을 쌓일 수 있도록
4. 신결혼 잘 될 수 있도록
5. 어딜가든 안전운전 될 수 있도록
D.
1. 월 5백 이상 벌 수 있는 직장으로 옮겨주세요
2. 빠르면 추석 전이나 늦으면 올해 연말 전에 독립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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