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말씀 : 사도행전 17:1~7
제목 : 성령의 임하심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 성령의 임하심은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입니다. (1절)
바울은 에베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기를 반드시 전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렇게 분별해서 또 성령의 작별을 한다. 그런데 이제 돌고 돌아서 이 에베소에 다시 오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여기를 왔을까요? 바울은 아볼로에 대해서 살짝 근심을 한 것 같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대단한 출신이지만, 하나님이 이 아볼로의 이름을 안 남겨주셨다. 아볼로가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가르친 후에 아볼로를 바울의 후임으로 보내서 잘 가르쳤지만 고린도 교회에 파당을 가지고 왔다.
바울은 아볼로를 아주 조심스럽게 유리그릇처럼 다루었다.똑똑하고 구속사를 잘 아는데도 바울과 한 마음이 안된 부분이 있다. 그 아볼로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그를 사로잡고 넘어가지 못하는 이 본인의 지식 때문에 거기까지 인 사람도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아볼로의 결론이지만 왜 이때가 에베소에 올 때일까요? 에베소가 아주 황금 어장이긴 하지만 항상 바울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십자가와 지혜의 그 타이밍을 분별한다. 성령의 임하심이 구원의 분별에 절대적이다.
에베소가 너무 좋은 거점지라는 것을 알고도 자기가 여기를 꼭 가야 되겠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때마다 분별을 한다. 그래서 고린도, 에베소 모두 성령의 작별로 win win이 되게 하신다. 황금 어장이라고 내가 무조건 복음을 전한다고 무턱대고 가고,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선교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분별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성령의 임하심이 아니면 이렇게 분별이 안된다.
또 하나 분별해 볼 것은 바울을 그렇게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이 아볼로의 말은 듣고 좋다고 하니까 이것이 살짝 걱정되는 마음이 이해되십니까? 그런데 이 아볼로에게 뭔가 정말 2%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이 에베소 교회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바울은 이것을 분별을 해야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론이기 때문에 아볼로의 서론, 본론, 결론을 아는 것은 성령이 임하신 바울의 정확한 분별이다. 항상 성령이 임하신 구원의 분별이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온다.
적용 ampndash 성령의 임하심으로 항상 분별합니까? 내 생각으로 판단합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고 합니까? 어려워합니까? 더 쉽게 나는 뒤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2. 성령의 임하심은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하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2절)
1절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 가운데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누구의 제자인지 모르는 제자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만났다는 말은 찾았다라는 말인데, 우연히 마주친 만남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바울을 찾아가서 만났다. 그러니까 자기를 반기는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바울이 의도적으로 찾아가서 만난 어떤 제자들이 있다. 아볼로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아볼로의 제자가 아닐까 살짝 근심이 된다.
바울이 이제 진단을 해야 한다. 우리의 양육이 항상 이 시작이 된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참 성령이 임하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제자였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을 유심히 보니까 성령을 받지 않은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이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힘든 에베소에서 결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의 임하심이 없으면 결코 에베소 같은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믿을 때에 받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믿을 때는 어떤 조건이 아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동시에 내 속의 성령의 열매와 그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의 수치를 인정하고 내 수치를 고백하고, 그냥 죽어지는 적용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믿습니까?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그 한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 한 말씀을 믿고, 붙들고, 적용할 때 내 속에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시는 것이다.
적용 ampndash 내 실체를 드러내 주었던 질문은 어떤 질문이었습니까?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예요? 구원받았습니까?예요? 지금 나에게 죽기보다 싫은 적용은 무엇입니까?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다 맞다고 하는데 나 혼자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성령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어떤 제자예요? 예수의 제자예요? 내가 제일 기억나는 스승은 누구입니까?
3. 성령의 임하심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는 것입니다. (3~5절)
삶의 능력도 적용도, 자신의 수치를 드러냄도 없는 어떤 제자들을 향해 바울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느냐' 이렇게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해야 된다.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이 되어지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있게 요한의 세례라고 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바울은 그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어떤 말을 했는지 그들이 믿는 요한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해준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성령 세례가 나온다. 요한의 세례는 물로 세례를 베푼다. 요한은 예비하는 자고, 예수님은 이미 임한 메시지이다. 세례 요한의 설교가 듣기에 의롭고 멋있어서 열광하는 사람이 많아도 속사람의 죄를 못보기에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하나님 나라가 내게 임했기 때문에 이 더러운 내 속을 찔러주는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이다. 내가 예수를 믿어 심판을 이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내가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예수님의 세례인 것이다. 용서하고 깨끗하게 씻겨주는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이다. 날마다 용서, 물 깨끗함만 좋아하지만 내 속의 쭉정이가 이 땅에서 불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
환경이 아니라 이렇게 불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상급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예수의 세례, 성령 세례, 불 세례를 아는 자들은 그러므로 내 죄 때문에 깨어진 가정을 보며 끝없이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저 영혼까지 불의 심판을 받기에 이 심판 속에 능히 나를 살릴 예수를 전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며 갈급하게 된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는 불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기 자신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불의 세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는 것이 축복이다. 그 불 세례 속에서 내 죄가 깨달아져 회개한 자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 세례란 정확한 복음, 예수님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과 부활하심, 다시 사심과 승천하시며, 다시 오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성경을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정확하게 읽어가기에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 성령 세례이다. 세례란 죽는 것이 기 때문에 성령 세례란 십자가 지는 것이다.
적용 ampndash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당한 불의 심판은 무엇인가요? 사건 앞에서 나는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됩니까?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지금 던져버리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누가 어떤 사람이 그렇게 좋으세요? 성령 세례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가 달라졌나요?
4. 성령의 임하심으로 방언과 예언을 합니다 (6~7절)
바울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임하심으로 안수 직후 방언도 예언도 했는데 여기에 쓰인 시제가 모두 계속됨을 나타낸다. 우리는 성령 받음을 생각할 때 그냥 방언이나 예언 또는 기적 같은 은사에만 관심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령을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에너지로 여기는 것이다. 기준이 우리가 행하는 은사에 있으면 성령은 한낮 에너지나 자원이 된다. 내 생각, 내 가치관, 외모만 취하던 세상 가치관에서 이제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말하게 된다.
방언은 소통의 능력이다. 공감력과 소통이 왜 중요하죠? 우리는 타락해서 사단에 속한 사람들이 주님과 소통할 수 없다. 그래서 매사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소통이 안되는 나를 주님과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 방언이다.
그러면 그 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하죠? 말씀을 통해서.. 그래서 말씀으로 말하고 기도하는 것이 방언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다. 구속사는 방언 중에 방언이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내가 또 말씀으로 전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 세례를 통해 내 생각은 예수와 함께 죽고, 이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예언은 무엇인가요? 예언은 감화력인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소통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맡아 다른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이다. 내게 맡겨 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여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이것이 예언이다. 바울을 통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변화되고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아볼라가 변화되는 것이 예언이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내 삶의 이유를 말씀으로 해석하여 나와 같은 고난에 있는 자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 내가 깨달은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예언이다.
7절에 12는 회복의 숫자이다. 구약의 12 지파, 신약의 12 사도를 예표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며 무너졌지만 하나님이 회복시키신다. 12는 말씀을 맡은 공동체, 목장을 의미한다. 성령의 임하심은 그 12 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다. 우리가 다 여기있다!는 잘나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공동체인 것이다. 이 어떤 제자들이 열 두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이 성령이 임하시니 오늘 마지막 절, 온전한 회복 공동체로 변화된다.
적용 ampndash 이 소통하는 방언과 감화를 시키는 예언을 하시나요? 회복의 지름길이 온전한 열 두 공동체, 목장에 가는 것임을 아시나요? 나는 지금 무엇이 가장 회복되고 싶은가요?
[목장 기도 제목]
정은선 목자님
1. 우리 목장 식구들 모두 영육간에 온전히 회복 시켜주시고 성령이 임하는 은혜가 있길
서지연 부목자님
1. 연로하신 어머니가 더운 여름에 동생 보러 독일 여행 준비하시다가 코로나 검사 관련 자료 준비로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는지.. 쓰러지시기 직전까지 가셔서 입원 준비 중입니다.
입원하고 여러가지 검사 예정인데..무탈하실 수 있도록
2. 목원들의 신교제/신결혼
남궁이진
1. 나에게 아픔 준 사람들 정죄하지 말고 내 죄 깨닫고 마음에 평안 주시길
박선화
1. 할머니 척추협착으로 시술 받으시고 입원 중이신데 통증이 빨리 가라앉으셔서 요양원으로복귀 잘하시도록
예수님의 이름을 붙드실 수 있도록
2. 엄마가 요양원에서 잘 지내실 수 있기를 치매와 병의 진행이 늦춰지도록
3. 아빠가 하나님을 붙들고 육이 무너지는 시간을 통해 우리들 공동체에 속히 나오시도록
4. 죄의 값을 치르는 적용 끝까지 성령의 완수를 할 수 있도록 잘 버티도록
9/4이사하는데 밀린 카드 값 이사비용 마련해주시길
이영지
1. 예쁜 아이 둘 낳아 남편, 시아버지, 자기 아빠 모시고, 대, 일, 중, 한 다니며 예쁜 공주로, 남편의 아내로 살다가 죽게 해주세요.
김지아
1. 성령의 임하심으로 이번 주는 지난 주보다 더 회복되고 씩씩하게 지내보기
2. 오직 예수님의 제자로만 살도록 우리들 교회부심 큐티부심 다 버리기
3. 내 구속사 간증이 소통하는 방언 감화를 하는 나눔 되도록 용기 내어 친척지인들에게 카톡 보내보기
안주현
1. 공동체와 하나가 안되는 아볼로 같은 나의 기준과 법에서 회개하고 성령의 임하심으로 공동체와 하나가 되는 방언과 예언을 할 수 있도록
2. 짱아와 자두가 밥과 약도 잘 먹고 짱아의 치매와 디스크, 심장병과 자두의 쿠싱 증후군과 신장결석이 완화되고 회복될 수 있도록
3. 엄마 아빠 영혼 구원과 요즘 건강이 조금씩 안좋아지시는데 건강 지켜주시고 엄마의 담배 연기에 대한 망상과 공황장애,신체화 회복 시켜주시길
4. 신교제 신결혼에서 내가 먼저 돕는 베필이 되고 말씀과 구체적인 때와 방법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