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의 은혜로
날짜 : 2021.08.08설교 : 심한섭 목사님본문 : 사도행전 15:1 ~ 11
바울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신 것을 다들 아실겁니다.그 편지의 인사말을 인용해서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우리들 교회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저 바울(심한섭)은 에베소에(우리들교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2 하나님 우리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분들)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저는 여러분이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은 제가 보이시죠?정말 너무 많이 보고싶었습니다. 심한섭목사입니다.저는 2014년에 욥기 말씀 적용으로 이제 교회를 떠나서 정확하게 거의 7년만에 교회에 이렇게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그 동안 우리들교회에서 나오고 다른 교회에 가서 사역을 하고 또 결혼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지금도 계속 공부중입니다.아마 저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 저는 지금 제 고향 친정집에 와 있습니다.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얻는 구원받는 자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여전히 되었함이 없는 어떤 인생속에서 거룩하게 되어지는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하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계속되는 우리 인생의 구원의 여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거룩하게 되어져간다는 의미입니다.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 모두가 여전히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우리들교회가 역사를 가졌다고 말할만큼 꽤나 긴 시간의 여정을 지나온 교회가되었습니다. 휘문고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2006년 부활주일에 저는 저의 오랜 방황에 마침표를 찍는 회개를 하면서 이승민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청년부 새가족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 중고등부,청년부, 청년부 수련회스텝,청년부 부목자,목자,그리고 분당채플 중고등부 간사,휘문 유년부 전도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젊은날들을 교회에서 형제같은 지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수백명의 또 수천명의 교회 성도분들이 마치 한몸인것처럼 우리들교회는 하나가 되어서 움직였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당시에 교회를 섬기던 그 어떤분도 그 어떠한 교회일을 하더라도 노동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전도사로 섬기던 시절에도 저에게 교회는 직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하러 교회를 다니는것이 아니라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한번의 예배를 위해서 정말 많은분들이 자기 일처럼 헌신을 했습니다. 늘 은혜의 시간마다 저와 함께했던 저의 사랑했던 목원분들, 여러분 모두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교회를 떠나 있던 7년동안 단 한순간도 잊은적이 없습니다. 우리들 한명 한명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들교회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정말 간단했습니다.살려고 살고 싶어서 찾아왔던 교회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경험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맛본 사람들이었습니다.쓸모없는 나의 인생을 사람 살리는 인생이 되도록 변화시켜주시는 그 은혜를 주 예수의 은혜를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우리 안에 살아난 흔적과, 열매와 간증이 있었습니다. 구원을 목적으로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양육하시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우리는 항상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다들 기억하실겁니다. 출근할때도 퇴근할때도 밥을 먹을때도 잠을 자기 전에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대로 교회 안에서양육되어 왔습니다.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에 은혜를 경험한 공동체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우리는 서로의 수치와 죄패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죄패와 수치를 가지고 어떤 사람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서로를 격려했고 서로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필요한 처방들을했지만 공격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았습니다.우리는 늘 서로를 위해 울어주었고, 서로가 더 힘든일을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서로 각자 자기의 죄를 생각하면서 회개했지 상대방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그 누구도 차별 없이 은혜를 경험한 형제였고,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섬김의 흔적과 생명의 간증을 나눈우리들에게 아직도 여전히 양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이미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걸어가야 할 성화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오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 즉 사도와 장로들입니다.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았고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였으며 누구보다 영적인 자부심이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 멤버였습니다.하지만 본문은 이들조차도 여전히 온전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는 여전히 제자로서 양육되어져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와 여러분, 우리들 교회가 생각났습니다.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 공의회 사도와 장로들 뿐 아니라 믿음있는 바리새파 사람들, 바울, 바나바, 베드로까지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등장을합니다.저와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부류에 속해 있던지 우리는 계속 양육되어지고 믿음 안에서 굳건히 자라나기를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를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이미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고, 믿음을 가졌고, 이제는 어느 정도 교회 안에서 신앙의 원리도 깨닫고 이제는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가 무슨 말인지 알겠고, 이렇게 생각이 드셔서 딱 보면 이 집사님은 이러시구나 이분은 믿음이 있구나 없구나 바로바로 딱 알수 있을 것같고 또 목자로 권찰로 섬기시면서 이 정도면 내가 이제 믿음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드실수도 있으실텐데요. 이미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믿음도 있는 내가 왜 여전히 양육을 받아야 되겠습니까?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첫번째로,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여전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1,2절에 보시면 안디옥 교회안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내용은 구원에 관한 문제였는데요. 얼마 전에 담임목사님께서 이 본문을 두 번의 설교로 나누어서, 성령의 구원과 성령의 의논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설교를 해주셨기 때문에 자세한 배경 설명지역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다른 구원을 말하는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는데요.이들의 요지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입니다. 할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이 정도 삶은 살아야 구원 받은 거 아닌가라는 어떤 행위의 징표 없이는 구원을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이런 이야기들이 이제 우리들 교회에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매우 뻔하고 익숙하게 들리실겁니다.행위와 은혜가 아주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어서 우리가 우리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위와 율법에 얽매히는 경우가 많습니다.나는 아닐거라고 나는 율법적이지 않다고 나는 행위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할 땐 인간인 우리 중에 행위와 율법에 그 굴레를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행위와 은혜의 미묘한 관계를 제가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해보려 합니다.
첫번째는 행위와 은혜를 이해할 때 이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순서라고 말하면 행위는 은혜 다음이여야 한단 말이죠. 제가 교회에서 나와서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아내는 우리들교회 청년부에 계시던 자매이구요. 제가 일대일 양육교사를 시키던 양육교사 훈련을 받던 자매였습니다.제 아내는 제가 내려놓지 못하는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것들이 참 많이 있는데요. 그 중에 그 때 결혼할때 누가 저에게 결혼할 때 뭐가 제일 중요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제가 늘 하던 말이 하얀 피부와 오밀조밀하게 예쁘게 생긴 얼굴 그런 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제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면 빈혈이 있냐고 왜 이렇게 창백하냐고 물어볼 정도로 얼굴이 하얗습니다.그런것보다 정말 매력적이고 저에게 아름다워보였던 더 큰 이유는 제 아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일평생 함께 살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하고 살았는데요.결혼을 해서 미국에 가니까 한국처럼 가족이나 친지분들이 있는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언어도 한국말처럼편하게 잘 안되는 그곳에서 아내와 둘이만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그런데 결혼을 해서 살다 보니까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줄 알았던 제 아내가 세상에 두려운게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두려움과 불안으로 염려하고 걱정하고 마음을 조리고 뭐 하나를 살때도 아주 싼 것 하나를 사면서도 수십개의 사이트를 뒤져보고 부작용을 따져보고 후기들을 읽어보고그래도 또 고민하고 결국에는 안 사고 염려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할 때도 생각하는 게 많아서 쉽게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합니다.물론 그런 모습이 귀여워보였고 좋게 보면 사람이신중하구나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었겠지만 저에게는 꽤 답답하게 느껴질때가 있었습니다.담임목사님께 두려움은 욕심때문이라고 아주 귀에 못이 박히게 저는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아내의 행동들이 욕심이 많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고치기를 바랬습니다. 한 편 저는 무언가 정해놓은 룰이나 기준에 어긋나는 일을 생기는 꼴을 못봅니다. 약간 강박적으로 어떤 것에 몰두해서 집착하는 저만의 율법이 있습니다.물건을 사용하고 나면 그 물건을 항상 있었던 그 자리 그 제자리에 두는 것 제 인생의 화두입니다.그런데 강박쟁이랑 두려움쟁이가 미국에서 살던 어느 날, 제 아내는 부엌에서 요리할 때 찬창을 다 열고 요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양념을 다 꺼내놓고 한번에 요리를 하고 요리가 다 끝나면 정리를 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간장을 꺼내서 쓰고 바로 다시 간장을 넣어놓고 찬장을 닫는 이런 스타일입니다.그러면 아내는 다시 찬장을 다 열고 온갖 필요한 양념을 꺼내서 또 요리를 합니다. 졸졸 뒤를 쫓아다니면서 아내가 꺼내놓은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놓고 또 찬장을 닫습니다. 저의 이러한 강박이 발동하면 저는 혈기가 올라오고 그러다 한번씩 터지면 그 혈기는 아내의 두려움을 마주합니다.강박쟁이와 두려움쟁이가 마주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강박쟁이는 금방 혈기쟁이로 변신하고 두려움쟁이는 울보가 됩니다.강박쟁이는 그 문제의 원인을 캐고 물어서 왜 그렇게 하는지 따지고 알아내고 싶어합니다.그런데 두려움쟁이인 아내는 그런 강박쟁이가 질려서 겁이 나서 눈물을 흘리며 회피해버리고 맙니다.저와 아내가 서로가 각자의 두려움과 강박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행위로 드러나는 어떠한 문제가 결국 은혜로밖에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를 경험시켜 주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두려움 많은 아내에게 강박과 혈기로 대할때가 많아서 아내의 구원과 은혜를 더 멀어지게 만들곤 했습니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인간에게 율법과 행위라는 문제는 지금 말씀드린 디테일한 아주 구체적인 우리의 삶의 작은 부분의 아주 깊숙히 들어와있습니다. 매일 매일 걸려 넘어지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강박이 고쳐지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중독이 끊어지면 큐티를 매일하면 부지런해지면 열심히 살면 무언가 행위가 변화되면 다시 말해서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라는 식의 율법과 행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녀 양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말을 잘들으면 착한 아이입니다. 심지어 노래도 있습니다.모든 세상이 착하고 나쁘고라는 율법과 행위의 굴레 안에서 돌아갑니다. 여러분 순서가 잘못된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하지만 우리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구원에 문제에 있어서는 행위는 은혜의 뒤에 따라옵니다.우리 잠시 다 함께 요한복음 15장 5절을 읽겠습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행위는 열매입니다.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방식은 포도 나무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은혜 그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먼저고 행위는 나중입니다.순서를 자꾸만 거꾸로 하려고 합니다.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행위로 지은 죄들을 생각합니다. 그러한 나눔들을 또한 많이 합니다.음란을 행한 사람, 도박을 행한 사람, 외도를 한 사람, 중독에 빠진 사람, 혈기와 강박이 충천한 사람 이런 모두가 그 행위를 고치는 것에 집중합니다.행위가 끊어지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것인처럼 말합니다. 술 중독을 여자 중독을 도박 중독을 끊어내면 혹은 내 배우자가 밖에 나가서 돈을 착실히 벌어오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행위가 변화되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그 사람이 할례를 받으면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 행위만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구원은 기본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행위와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위의 죄만 생각합니다.하지만 은혜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떠난 모든 것이 죄였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저는 이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위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한 아주 대표적인 죄인입니다.행위로 지은 죄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악하고 이기적인 것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저는 선교사였으며, 신학생이며, 목회자인 순간에도 여전히 제 말과 행동으로 거짓과 음란을 일삼는 야곱같은 죄인입니다.제 삶의 행위를 생각하면 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내 자신이 어떻게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 선한 것이 없어서 저는 지금도 괴로워합니다.오직 예수의 은혜 때문에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 순서를 혼동하시면 안됩니다.제가 은혜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으면 곧바로 육체의 율법과 예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주 예수의 은혜를 잊으면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짓는 공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오늘 제가 은혜를 잊으면 저는 그저 죄를 짓는 강박쟁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예수의 은혜가 아직 제가 죄인되었을 때 저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그 예수의 은혜가 제 안에 있어서 오늘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강박적인 제 모습을 고쳐달라고 기도합니다.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담임목사님과 어머님에게 일평생 배워온 것 입니다.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고 기도하고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셔서 내 옆에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것이 없는 마음입니다.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주님께서 내 아내도 내 남편도 모두 다 구원해주실 줄 믿습니다.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또 헷갈리시면 안됩니다.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기도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 은혜를 사모하는 것 그것이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어야합니다.
둘째로 율법은 인과응보를 말합니다.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무엇을 하면 복을 받고 무엇을 안하면 저주를 받는다 뭐 우리는 이것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은 이것을 합리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러한 기브앤테이크의 원리로 작동됩니다. 내가 준만큼 돌려받는 것,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다.이러한 논리로 세상은 돌아갑니다. 인간의 논리와 합리성은 은혜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오랜 시간동안 목자로 섬기고, 전도사로 섬기고 이제는 목사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제 안의 이렇게 율법의 행위를 뛰어넘지 못하는 기복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내가 아내를 위해 또 무언가를 했을 때 나는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라는 생색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우리가 예수로부터 받은 은혜는 전혀 합리적이지가 않습니다. 내가 예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복을 받는거라면 이 예배의 참석한 어느 누구도 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율법은 논리를 가지고 이기려고 들지만 은혜는 절대로 이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어짐으로 승리합니다.적용질문을 두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1. 타인의 겉으로 보여지는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진 않습니까?남편과 아내 자녀들의 행위의 문제가 고쳐지기만을 바라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2. 믿음이 있지만 여전히 생색과 기복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계시진 않습니까?나는 스스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것을 자랑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율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계십니까?
두번째로 우리가 거룩한 성화로 목표로 여전히 양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기쁨중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3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 4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 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 몇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베니게와 사마리아 믿지 않는 자들이 믿게 된 간증을 들려줍니다.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모두 기뻐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마찬가지로 사도와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 다시 말해서 인간이 행한 율법의 관한 일이 아닌 은혜에 관한 일을 말합니다. 모든 공동체가 기쁨으로 하나님의 행하신 은혜의 일을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바리새파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믿는 저와 여러분중에도 이런 바리새파의 모습이 있다는 말입니다. 1절에 등장한 유대로부터 어떤 사람들의 주제가가 할례받지 않으면 이였다면 이 바리새파 사람들의 주제가는 마땅하니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건 맞다 저건 틀리다.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를 뛰어넘지 못합니다.항상 그것을 따지느라고 공동체 안에서의구원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못합니다.이것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오늘 본문의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율법을 행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외치는 이 타이밍이 지금 예루살렘 공동체가 바울과 바나바를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함께 들으며 기뻐하는 순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공동체의 기쁨은 아랑곳 없이 마땅하니라 이건 옳고 저건 틀리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지면 잘 참지 못하는 모습이 있습니다.그렇게 항상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입밖으로 꺼내서 늘 말을 해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늘 제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무엇이 옳으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가 옳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공동체가 구원의 기쁨으로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계십니까?적용질문 두번째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렇습니까?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지 아닌지를 내 기준과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예수의 은혜로 얻은 구원만이 옳은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마지막으로 세번째로 우리가 여전히 구원의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끊임없이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 11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예루살렘 교회 사도와 장로들이 구원의 문제를 의논하러 모였습니다.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제자가 되었던 이들이 여전히 이 구원의 문제에 확신이 없는 모습입니다.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되었다함이 없이 계속해서 거룩을 향해 구원과 양육의 길을 걸어갈 이유입니다.자기에게 싫은 소리 쓴소리 하던 그 바울의 편에 섰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베드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사람의 일을 통해서 된 일이 있습니까? 율법을 통해서 육의 일을 통해서 된 일이 있습니까? 오늘 베드로가 설명한 복음의 그 핵심적인 내용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히 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로 다시 말해서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한량없는 주의 은혜로 우리는 목자가 되고 부목자가 되고 직분 맡은 자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차별을 하십니까? 저 집사님이 너무 아파 아 우리 남편 정말 이상하다 우리 아내는 진짜 교만하다 그래서 나는 아프지 않습니까?이제 나는 괜찮아 진 것 같습니까? 제가 살면서 가장 은혜를 받았던 순간은 제가 가장 아픈 사람이었을 때였습니다.제가 아는 우리들교회는 상처가 별이되던 것을 간증하던 교회였습니다. 고난이 복이라고 부르짖던 교회입니다.우리가 가장 힘들고 가장 아프던 순간에 그 때 우리를 받아주시고 찾아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이제는 별로 은혜가 되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이제는 별로 여러분이 나는 아프고 상처투성이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것일 수도 있습니다.여러분 스스로 이제는 꽤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다른이들의 마음도 깨끗게 하심을 믿는것입니다.그래서 차별이 없음은 결국 관계회복으로 나타냅니다. 내가 저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늘 아프다고 말하는 목원보다 더 나아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주 예수의 은혜로 그들보다 내 마음을 먼저 깨끗게 해주셨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는 믿음있는자가 되었습니다.그래서 모든자들에게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차별하지 않으며 끊어졌던 관계들을 우리는 회복해왔습니다.오늘 본문은 네번이나 형제들을 언급합니다. 베드로가 형제들아라고 부르는 이 순간에 제 생각에는 그 형제들을 향한 베드로의 차별없는 사랑과 하나님의 차별없는 구원의확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군가를 차별하고 계시진 않습니까?우리가 차별하고 무시하는 그 한사람, 그들도 그 한사람이 우리와 저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적용질문 세번째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차별하고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계가 단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회복하고 싶지 않고 손 내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내가 그보다는 낳은 것 같습니까? 내가 그사람을 차별하고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기도제목>
희진언니- 직장, 교회, 가정 등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내 죄를 깨닫고 적용하는 것들을 행위와 must로 여기다보니 무겁고, 눌리고, 스스로 정죄 되기도 하는데 은혜가 많이 필요한 상태인것 같습니다.. 은혜 채워주시기를...- 미뤄졌던 스냅촬영이 이번주 토요일인데.. 비가 오지 않고 오늘처럼 적당히 바람 불고 너무 덥지 않기를...- 부모님과의 관계, 남자친구의 진로 문제 모두 말씀대로 인도함 받고 은혜로 분별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오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도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 않은 지체가 떠올랐는데.. 현재 수준의 연약함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채연-큐티페스티벌에서지금겪고있는취업고난이말씀으로해석되고기도가응답되는은혜로운시간이될수있도록 -지금내가할수있는최소한의적용과생활예배를사수하며한주보낼수있도록-부모님이부부목장에들어가고남동생이목장에정착할수있기를 -목장식구들영육간건강지켜주시기를-엄마가 8/20 1차 백신 아빠가 8/23 2차 백신 접종을 할 예정인데 부작용이 없기를-코로나확산이잠잠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