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 [박규섭], [이승진]
[성령의 강론 (사도행전 17장 2~9절)]
[1. 성경으로 구속사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 성경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듣습니까? 내 이야기로 읽습니까?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증언할 내 구속사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2. 성령의 강론에 따르는 딱풀 성도가 생깁니다.]
- 여러분은 공동체와 한 편이 되어 주님을 따르는 딱풀 성도입니까? 공동체를 밀어내는 나 홀로 성도입니까?
[3. 시기하여 소동하는 유대인도 있습니다.]
- 시기 질투 경쟁심 등의 뿌리가 똑같은데, 그 중의 무엇으로 소동하나요?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시기를 하냐? 어떻게 아프냐?고 얼마나 자주 말합니까? 이것이 행위구원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나요?
* * * * *
[이승진]
회사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성경에 대해 설명을 한 적이 있어요. 영업 마감할 때, 당일 매출을 찍어서 보내는데, 카톡 프사에 말씀 사진을 설정해서 자주 노출하는 편이에요. 동료들이 프사를 보고, 둘러서 얘기하는 것도 들었어요.
우선순위가 뭔지 생각하게 되어서 공동체와 한 편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고난이 축복이여서 이렇게 붙어가고 있어요.
[박규섭]
딱풀 성도는 좋은 성도, 유대인은 나쁜 성도. 어렸을 때 가치관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열심히 예수 믿는 부모님이 너무 답답해서 교회 가기 싫다, 예배 드리기 싫다, 소동도 부리고, 도망도 가고 했어요.
'어떤 사람은 적용도 안하는데 눈물만 흘린다'고, '삶이 안 따라주니깐 성령의 강론이 되질 못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정말 저도 적용 없이 그저 감정에만 치우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또 공감하고 이해하기 보다, 판단하려고 하고, 옳고 그름으로 결론 내리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묵상하는 게 참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주는 정말 우리 목원들 한 명, 한 명 묵상하면서 '애통하기 위해서 소동케 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주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시고 살려주신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게 해달라고' 성령의 강론하는 한 주간을 보내고 싶네요.
**기도제목**
[박규섭]
- 주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시고 살려주신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게 해 주시고, 우리 목원들 묵상하며 애통할 수 있도록.
[이승진]
- 집 구하는 거, 직장 구하는 거 순적하게 이뤄지도록.
[이원용]
- 결혼의 문을 활짝열어주세요
-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