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년 04월 04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16장35절~40절
제목 : 성령의 놓임
설교 : 김양재 목사님
35절 -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하니
36절 -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절 -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랴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한대
38절 -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절 -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절 -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김양재 목사님 인사말씀
너무 기가막히죠? 그런데 평생의 경찰서 한번도 안가셨는데 아들이 고소를해서 아빠가 아들을 때리지 않았어요.
무서운 세상입니다. 아들이 교회에 나왔어요. 아빠는 목자님이예요. 금새 목장에서 해결되었어요.
보통때는 자기 죄를 보는것이 안됩니다. 집집마다 원수가 다 있습니다.
아들 사랑해 그러지 말고 아빠 사랑해주고 풀어줘. 네. 감사합니다.
목회자 세미나가 이제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접수를 받는데요. 그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하실수 있고요.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소개부탁드려요. 작년 한해동안에는 열지못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때까지 대면이 되면은 하고 이번에는 온라인으로라도 할 생각을 합니다.
많이 알려주시고 작년에는 못열었습니다. 오직 오고싶으신 분들이 많이 못오신것 같습니다.
오늘 새가족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손을 들어서 표시를 해주실까요? 우리 박수로 전합니다.
오늘 많은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꽉 쥐고 내려 놓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내려놓되 성령의 놓음이 될수 있도록 주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은 성령의 열림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오늘 모든 것들이 닫혀 이곳을 찾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느누구도 치유할수 없는 나의 맞은 자리를 씻어주심으로 아픈부분과
묶인것들이 놓임을 받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열림은 이제 사명을 위해 성령의 놓임을 받습니다.
우리들 교회는 사도행전을 강해하고 있는데 특별히 전도 주일이라서 다른 본문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어지는 강해에서 오늘 이제 부활절 전도주일이지만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령의 놓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니다. 성령의 놓임은
첫 번째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있습니다.(35절)
35절 -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하니
날이 새매는 단순히 날이 밝았다는 뜻이 아니고요.
여기서 날이 새매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볼때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나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 아니면 내가 맨날 괴롭혔던 친구가
어느날 고 급 승용차를 타고 쫙 주변에 수많은 보디가드를 다 거느리고 나타났는데 알고보니까 재벌2세 예요.
짜자잔 이렇게 된거죠. 그동안 이제 자기 힘을 숨기고 있었던거죠.
이처럼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단어가 날이 새매입니다.
오늘 큐티 본문에 안식후 첫날 아직 어두울때에 무덤에서 시체만 찻던 울고있던 마리아에게 살아나신
우리 주님께서여자여 왜 울고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무덤에서 끝까지 죽은줄로만 알았던 우리 예수님이 날이새매 성령으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습니다.
나를 찾아오십니다. 지난주에 큰 지진으로 옥터가 흔들리는데 여전히 죄는 못보고 한주동안 울다 왔습니까?
마찬가지로 날이새매 한생명을 위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더 이상 감옥에 바울과 실라를 가둬둘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밤에 온도시가 흔들리니 바울과 실라를 아무죄도 묻지도 않고 그저 유대인이라는 감정으로 매로치고 가두었는데
그 감옥이 진원지가 되어서 온 도시가 흔들거리니까 상관들과 관리들이 잠을 못잤겠죠.
걔네들이 눈빛이 이상했어 뭐가 달랐어 이러면서 안되겠다 내보내야 되겠다
그래서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놓으라 명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때가 되면 하나님이 풀어주십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그런데 늘 날이 밝으면 좋을텐데 날이 새매가 인생의 시기마다 올때가 있더라구요.
분량대로 날이 새는것 같습니다. 남편은 빌립보 간수처럼 저를 간수같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감옥에 가두고 발을 차꼬에 든든히 가두고 매를 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믿음의 4대째이고 그렇게 힘들어서 결혼한지 5년 만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얼마나 제가 엄마를 무시하고 교만한가를 알았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가 초라하게 다니니까 얼마나 교회 사람들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당한거 봤어요.
저도 속으로 엄마를 무시했죠. 저희 엄마는 입학식 졸업식도 안오는 이상한 엄마였어요.
엊그제 성금요일 예배에 우리 설 목사님께서 아버지가 어려서 가정을 버려서
이제 아버지한테 원수갚는 목적으로 너무너무 찌들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면서
그 아버지를 이겨보려고 폐휴지와 고물을 주어 초등학교 6학년때 300만원을 모았다는 거예요.
대단하지 않아요? 이분은 못할것이 없는 사람 이더라구요. 오직 이세상의 목적은 성공하는것 돈버는것이예요.
그래서 이제 선교로 인도받아서 인도를 가게됩니다.
기도도 하루에 5시간씩 하면서 인도의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살려면 착하고 부지런하고 모범생으로 삶을 살았다는데
문제는 그런데 중요한것은 죄를 몰랐다는 거예요.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속을 썩이지는 않았어요. 저는 300만원만 모았겠어요?
초등학교가 아니라서 그렇지 장학금 알바비에 다 합하면 300만원보다 얼마나 훨씬 많이
천문학 적인 액수를 모았을까.예.그런데 저도 이제 죄를 몰랐습니다. 부자 시집으로 들어가서
걸레질을 못한다고 야단을 맞고, 비누도 아깝다고 하루는 방망이로 걸레를 빨으라고
야단을 맞고 썩어질 몸땡이 그냥 고무장갑을 끼지 말라고 야단을 맞고
제 손이 얼마나 비싼 손인데 그때 주부습진에 걸렸습니다. 손으로 발로 빨래를 하니까요.
평생 지병이 되었잖아요. 지금도 뭘 발랐네. 네 제가 물리를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선풍기도 전기값이 나간다고 아깝다고 틀어서 야단맞고 눈만뜨면 하도 열심히
부지런히 살고 걸레질을 열심히 해서 무슨 고난이 있을까 했지만은 제 죄가 안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친정엄마는 교회 변소 청소를 새벽마다 하시고 교회에서 변소 청소를 하셨습니다.
남의집 빨래도 하셨습니다. 우리엄마 시골여자가 아니예요. 최고 학벌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남의집 빨래도 하시면서 스스로 갇힌자가 되어서 그런 삶을 스스로 사셨는데 저는 그런 엄마 무시하다가
시어머니에게 강제로 갇힘을 당하면서 걸레질을 하다가 날이 새매 죄에서 놓임을 받고 제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이제 착한척 하는 죄 속으로는 사람들 무시하면서 이런 교만부터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죠.
내가 차별하고 교만하구나 죄패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죄가 보인다는것은요. 정죄하고는 달라요. 죄를 사해주셨지만은 그 죄패가 생깁니다.
죄패를 가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것이예요. 죄패가 있어야 십자가 잘 지고 갈수 있어요.
남편이 나를 가두고 감시하면서 매로 칠때도 있었지만
그때부터 나의 죄패를 보게 되니까 생각하면 남편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갇혀있을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패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시기마다 죄가 더 보이기에
결론은 늘 계속 내 죄 때문에 남편이 수고하는구나 이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론이 났습니다.
그니까 내 죄패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구원시키기 위한 평생의 호패예요.
이 호패는 암행어사 출도요하고 내미는 무서운 표시입니다. 호패입니다.
그 호패만 보면 사람들이 혼비백산이 되어서 엎드러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죄패를 가지고 내 옆에 사람들을 위해서 늘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늘 엎드려야 합니다.
뭐라고 할때마다 내 죄를 생각하고 엎드려야 되요.
내 죄는 용서 받았지만 내 죄패는 상대를 용서하기 위해 생각나게 하는 호패입니다.
자 바람 한번 핀것가지고 왜 그러냐 라고 하는것은 바람핀 당사자 가해자가 그러면 안되요. 할말이 아니고요.
그것은 피해자가 할이야기예요.
그래서 평생 지고갈 죄패가 생겼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 구원시키라고 엎드리라고 주는 호패예요.
무서운 호패입니다. 성령의 효과적인 도움 없이는 때마다 호패의 죄가 보이는 것은 사실 죄를 보는것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목자님이 되신 교장선생님이 바람 한번 피웠다가 정말 패가망신을 당했습니다.
아내가 학교에 와서 피켓 시위를 하고 큰 아들에게는 한시간을 두들겨 맞고
이분이 체면이 너무 우상이니까 사실은 조금 기다리면 감봉으로 끝날 수 있었는데
그냥 집이 세채나 있었는데 한 채는 아내를 주고 한 채는 큰 아들을 주고 한 채는 작은 아들을 줬습니다.
빨리 이혼을 했어요. 그런데도 아내가 분이 안풀려서 투서를 교육청에 넣었어요.
그때 이분은 자살을 생각했답니다. 믿는 사람이 없으니 이사건을 해석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세상은 이렇게 죽어도 용서하지 말고 이혼하라고 모든 변호사를 동원해 가지고
이혼 시키고 재산 분할 잘하라고 성공한것처럼 가르치고 이것이 세상입니다.
한사람 없어서 이혼을 하는구나 교장선생님이 너무 체면이 하늘을 찔러 사실
그것은 우리들 교회 목장이 있었으면 참고 인내하고 투서하든지 말든지
내버려두면 징계로 감봉으로 끝나는 것인데 이 분은 못견디었어요.
학교를 그만두시고 이혼까지 했습니다. 다들 그런 상황을 못 견뎌합니다.
목장이 있으면 견딜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 주고는 현재는 마을버스를 운전하십니다.
그 해 그렇게 되니 이분이 택자가 되어서 우리들교회 소식이 들렸어요.
이렇게 결론을 내려서 이분이 올때 갈 때 없어서 소문이 들린곳이 우리들 교회였어요. 오셨어요.
그래서 마을 버스를 운전하시는데 목자가 되셨어요. 그 후에 우리들 교회에서 다른분하고 재혼을 하셨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할게요.
이 살아보니까 그 징하딘 징한 전처가 밥을 잘해줬다는 거예요.
살아보니까 그 용서 할수 없는 전처가 그 징한 전처가 밥을 잘해줬다는것이예요.
그런데 지금 그래도 믿음으로 결혼한 지금의 아내는 인스턴트를 좋아해가지고
늘 라면과 소세지만 먹자고 한다는 거예요.
이분이 환갑이 가까운 나머지 늙어지면 먹는것이 중요한데
완전히 바람 한번 펴서 이제 패가 망신 한것처럼 했는데 가장 큰 것이 먹거리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도 밥을 안해줘서 교회끝나고 하도 밥을 안해줘서 콩나물 국밥을 먹고 가자고 하면은
집에 가서 라면을 먹자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제 결론적으로 그렇게 피켓시위를 하고
교육청에 투서를 했다라도 이혼을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밥을 얻어 먹으려면 늙어서 또 무슨또 낙이 있겠어요. 밥이나 얻어 먹고 살아야지.
그렇지만 이집에 믿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이혼한지 그렇게 꽤 됐는데 눈물기도해도
모든 식구가 눈도 깜짝 안합니다. 징한 전처라도 끝까지 인내해서 가정을 지켰어야 했는데
아무도 해석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혼을 하라고 저런 남편하고 살지말라고
자녀들도 다 엄마편을 들고 이세상에 흉학한 죄인 없습니다. 우리들교회에 비하면 세발의 피입니다.
그 정도의 죄로 이혼하면 이혼을 안할 집이 없습니다.
교장선생님 자신에 대해 생각할수 잇는 사람 잘못 나누는 사람 정죄해서
끝까지 교직에서 내려오게 하고 빈손들고 내보내야 겠습니까?
그 고난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까 완전히 이 목자님에게는 날이 새매 새로운 국면이 짜자잔 하고
아주 완전히 복 터진 거죠. 짧은 인생에 예수 믿게 되었잖아요
그러나 이분이 자기의 교양 체면 하늘 찌릅니다. 이정도가 되야지
하나님을 믿음 날이 새매새로운 국면으로 그 한밤이 지나고
날이 새매예. 그래서 지금 아내 반복되는 실수가 자꾸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를 질책하게 되는데
초원님은 자기 죄를 못봐서 그렇다고 하고, 평원님 부목자님도
지금 현 아내에게는 죄지은게 없으니 그렇다고 다들 처방을 내려
주셨다는거예요. 맞아요. 저는 죄지은것이 축복은 아내가 남편에게 식성을 맞춰주시길 바래요.
그럼에도 목자님은 이 가정을 결혼은 지켜야 해요. 선택이 없어요.
평생의 똑똑했던 바람의 죄패를 이마에 딱 붙어야 되요. 어떻게 붙입니까?
식성 안맞쳐 준다고 혹독하게 죄패를 나누고 가는것이 죄는 보는것의 얼마나 큰 비결인지 몰라요.
목장에 가는것이 비결입니다. 목장이 없으면 망합니다.
이 이야기 1부때 했습니다. 아내님 괜찮을까 했더니 예배 끝나고 뒤에 딱 나가니까
이 부부가 저를 딱 기다리고 서있는거예요. 아내분께서는 남편에게 밥을 해주겠다고
이야기를 하시고 목자님께서는 지금은 마을버스를 벗어나서 개인택시를 하신다고
약간 돈을 버셔서 개인택시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시어 죽으시잖아요.
그런데 그때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로 된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고 죄패를 붙이고 올라가셨어요.
그 당시 예수님을 이스라엘 왕이라고 해야지 존경하는 것이고 유대인의 왕은
굉장히 비하하는 말이니까 죄패를 수치스럽게 붙이고 그것도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으시겠어요?
유대인의 왕은 이스라엘 왕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의 왕의 명칭입니다. 멸시하는 칭호입니다.
자칭 유대인의 칭호를 붙이니까 예수님은 너무 수치스럽고 비아냥 거리는 죄패를 붙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데 예수님은 무슨 죄가 있나요?
우리 가운데 나는 죄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패는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죄만 보면 모두가 다 알아 듣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도 자기 죄를 보면은 알아 들어요. 택자는 죄를 보는 사람 다 알아듭니다.
이것이 자기죄를 보는것이 죽은자 일으키는 것보다 위대하다는 것이 이거예요.
저도 갇혀서 죄를보며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양을 하니까 내 옆에 죄수들이 듣고 변했습니다.
똑같이 이야기 해도 그래서 날이새매가 되었어요. 5년만에 날이새매가 됩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변합니다.남편은 간수처럼 성실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몰라요.
그런데 남편도 죄를 몰릅니다. 그런데 간수가 바울이 찬양하는것을 옆에서 들었잖아요?
죄수들이 들었습니다.그러니까 우리 남편도 이혼도 안하고 나가지도 않고 있으니까
저는 찬양과 기도를 옆에서 들었잖아요.그런데 간수가 찬양을 들었습니다.
간수 같은 남편이 하루만에 쓰러지고 간수도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 죽었던걸 기억하고 엎드립니다.
우리 남편은 갑자기 하루만에 쓰러지고 하루만에 갔습니다.
죄에서 놓임 받고 주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 났죠.
하루만에 주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 하루 아침에 갔는데 진짜 간수하고 똑같아요.
수혈하면서 산소 호흡기를 달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저한테 숨을 헐떡 거리면서 숨을 고르시면서
목사님 안오시냐고 어찌하면 구원받는것 이냐고 물어본것이고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의 그 복음을 듣고 산부인과 원장인 본인의 낙태죄를 고백하고
그 모든 사람 앞에서 죄패를 딱 붙이고 사람들이 둘러섰는데 고백하고 둘러섰는데
죄패를 붙이고 그 죄패를 내가 그 죄패를 밝히고 있잖아요. 주님을 영접하고 딱 천국갔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었죠. 분수령적인 새로운 국면으로 또 접어 들었습니 간수랑 같습니다.
평소에 들으니까 평소에 들려주는것이 중요합니다. 그 밤이 지나고 날이 새매 분수령적인 궁수적으로 되었습니다.
그 밤이 지나고 오늘 날이 새매날이샌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 내 인생의 벼뜰날이 온다는것이 아니구요.
예수를 만나 이제 덤으로 새 생명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뜻이예요.
저는 이제 하루아침에 30대 과부가 되어서 완전히 옥터가 흔들렸지만
그때 정말 거기서 제 죄패를 보고 제 자아를 못박아야 될 일이
옥문이 열려서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것이 지금까지 오게되었습니다.
날이 새는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예요.
그런데 예수를 못만나고 날이 새는것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놓치는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만나시기를 추권합니다. 세월을 아껴라. 구원 이야기를 하는것입니다.
구원 때문에 시간을 쓰는것입니다.
적용
평생에 이마에 붙이고 가야 할 죄패는 무엇입니까?
혹은 시기마다 날이 새매 죄의 종류가 달라집니까?
두 번째 특권의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36절~39절)
36절 -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절 -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랴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한대
38절 -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절 -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이제 살아난 간수는 이제 놓으라는 명령을 받고 바울에게 평안히 가라고 합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구약은 샬롬이라고 하고 신약은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완전 기독교적인 용어를 쓰면서 믿음으로 평안히 가라고 말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바울이 간수집에서 세례를 받고 옥으로 돌아갔다는 뜻이잖아요?
은혜 받은 간수가 바울님 옥에 들어가실 시간이 되셨겠습니다 그렇겠어요?
그랬더니 바울이 이제 들어가 있는데 평안히 가라고 한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바울이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로마사람인 우리를 법을 정하지도 않고 가두고 때리는게 맞냐고 하며 로마사람을 때리고
가두는게 어디있냐며 나갈수 없다고 합니다. 상관들이 로마 사람이라는 이 한마디에 기함을 했습니다.
정신이 나갑니다. 두려워 합니다. 로마 시민권을요 가진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이랑 동등한 특권을 누리면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로마사람의 특권은 대단합니다. 그 발레리안법에는 이런것이 있어요.
보면은 로마 시민을 결박하는것은 극악한 범죄이며 채찍질 하는것은 사악한 악행이며 사형에 처하는 것은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적 살인과 다름없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재판을 당할 않을 권리로 받게 되더라도 채면을 상당하지 않을권리 잔인한 형벌을
당하지 않은 권리 자백을 받을 목적으로 자백이나 채찍질 등 고문을 할수 없었어요.
그래서 바울도 로마시민인 이니까 죽을때 십자가형이 아니고죽을때 참수 당했다는 거예요.
열두사도는 십자가형으로 죽었는데 바울은 로마사람이라서 목 베임을 당하는 참수형으로 죽었다고 하죠.
제가 이렇게 가봤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중재인으로 다뤘던
그들이 이제 중재인이 되어서 거꾸로 사형당하게 생겼습니다.
로마 사람들을 때리고 옥에 가뒀으니까 자기네들이 옥에 가게 생겼어요.
그런데 바울은 왜 이제야 로마 시민의 권리를 주장할까요?
아니 진작 장터에서 매를 맞기전에 이거를 밝혔다면 한밤중에 그런 매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이제 지지난주 본문에 16장 20절~21에서 바울이 고소를 당한 이유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줘서가 아니고
유대인 이라서 죄목이 유대인이라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했냐면 로마사람인 우리를 정신이 없게하고 정신 사납게 하고 선동한다고 했어요.
정작 내용은 하나도 없는거예요. 고소했는데 팩트가 없습니다. 그니까 고발한 기준이 지역감정과 인종차별인거예요.
그러면 생각해보십시다. 바울이 이방인을 죽인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을 향한 목적으로 자기 동족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잖아요.
그니까 이방인을 위하여 선교하지만은 그 빚진자를 위하여 흩어져 사는 동족들에게
그때마다 유대인 회당을 찾아 들어갔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잘 안듣긴 해도
예. 죄목이 뭔가 하면 바울의 죄패는 스데반을 죽인것과 유대인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잔멸합니다.
그분은 그 죄패만 생각하면 어디서나 무릎을 꿇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이방을 향해 선교를 하지만 흩어진 디아스포라 선교할때도 자기가 유대인 기독교한테 하는 죄악이 있습니다
항상 유대인한테 먼저 설교를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사람들이 보는 광장 장터 한복판에서 나는 로마인이다 이러면은 누가 가장 배신감을 느끼겠어요?
유대인들이죠. 아브라함 함전 한복판에서 내가 로마인 이라하면 유대인이 제일먼저 배신감을 느낍니다.
당시 유대인과 로마인은 지금 우리나라가 일본의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렇게 않좋은 감정인데 저 사람은 위기가 닥칠때는 로마사람이라고 하고 복음을 전할때는 유대인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이라고 하고 그리고 사실 자기가 다니면서 로마인이라고 그러면은 복음을 앞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족팔려서 말빨이 안섭니다. 족팔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참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게 바울의 입장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우리는 심플해요. 그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다 내려놓았어요.
그래서 모진 매를 다 맞으며 댓가 지불을 했습니다. 값을 치룹니다.
우리 주님이 나 하늘보좌 권세를 가지고 왔다 하면서 하늘보좌에서 고난도 겪지 않고 나를 믿어라 하면은
외쳤다면 우리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가 아들 이시라도 순종한 고난으로 온전케 되었다고 했습니다.
죄도 없는 그분이 우리랑 같이 고난을 당하고 아니 내 죄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니까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이것을 체휼을 합니다.
그래서 평생 자신의 동족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죽인 자기죄를 깨닫게 되니까 자기 죄패가
어마어마하니까 자기의특권을 내려놓게 된거죠. 왜 내려 놓았습니까?
자기가 동족을 내려 놓았잖아요. 한영혼을 위해 값을 치룹니다. 로마인으로써 받을 특권이 많습니다.
세금도 다 면제를 받았습니다. 사형도 안당할 재판에 이렇게 회부될 자유도 있고 그랬습니다.
어마어마한 특권을 내려놓음은 성령의 놓임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댓가를 지불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들은 과부 루디아와 귀신들린 여종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땅의 특권을 오직 구원을 위해 써야하고 구원을 위해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내려놓은 로마인의 특권을 왜 지금 말하고 있을까요?
진작 말하지 그렇다면 내려놓은 로마인의 특권은 지금을 말하나요?
말하지 않을래면 끝까지 말하지 말것이지 그런데 37절을 잘 보면 아무 죄목도 없이
오직 지역 감정과 민족 감정으로 매질을 하며 인격을 말살하여 그들의 불법을 드러내야 되는
바울이 담대할때는 담대해야 되는거예요. 여기에서 값을 치뤘다면 복음 때문에 이해타산이 없이
생명을 내놓으면 불법입니다. 그리고 깊은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영원히 여기서 머물 사람이 아니잖아요.
복음을 전하고 떠날 사람입니다. 후에 남겨질 교회 성도 로마 사람 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고 남겨놓습니다.
불법을 할때 특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로마 상관의 고발이 아닙니다.
불법을 지적하고 상관들이 한 시름 놓았겠습니까? 바울이 생명의 은인이 되는것입니다.
이제 남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 과부 루디아 귀신들린 여종 간수 죄수들 이사람 성도들 이 사람들이
바울이 여기에서 로마 사람 이라고 밝히지 않고 떠나면 탈옥수가 되는것입니다.
자기가 그대로 로마 시민이라고 밝히지 않고 떠나면 자기도 탈옥수가 되잖아요.
바울 앞으로 전도하는데 명분이 걸림이 됩니다.
모든지 원칙을 지키고 떠나야지 앞으로 빌립교 교회를 지을 과부 루디아 귀신들린 여종 간수 죄수들
이 사람들이 빌립보 교회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그들을 보호 해야 하는 거예요.
그니까 로마 사람인 내가 복음을 전했다. 예. 그것을 그들에게 이제 남겨놓는 것이죠.
그니까 감춘것도 한생명을 얻기 위해 감추는 것이고 드러내는 것도 한 생명을 얻기위해 드러내는 것이죠.
무엇 하나 Think 하려면 여러 가지 복잡해도 생각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다 잘 살삽니다.
그런데 생각을 잘못하면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 모두가 다 죽습니다.
큐티 하는 사람은 세련됬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멋잇게 합니다. 이혼도 안하고 잘삽니다.
감추는 것도 한 생명을 얻기 위해 드러내는것도 마찬가지 구원을 위해서
어떤 수치를 드러낼수 있고 기득권을 내려 놓을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어떤 수치도 드러낼수 있고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란 자칭유대인의 왕이란 유대인의 비아냥거리고
수치스러운 죄패죠? 구원을 위해 나의 어떤 기득권도 내려 놓을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큐티를 하게 되면은 항상 훗날을 생각해 가지고 원칙대로 적용해야 구원을 이루는 과정이 됩니다.
항상 우리들 교회는 큐티하는 교회입니다. 원칙을 지키자 핵심 가치였어요.
해서 우리들 교회가 지금까지 여기까지 살아온 이유는 결론이 작은 원칙을 지켜서입니다.
작은 원칙을 안지켰으면 저도 깊은 옥에 갈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인들은 악하고 인간은 악하고 음란합니다.
구원을 모르면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적용이 다릅니다.
요즘에 방송을 보면은 아 그쯤은 괜찮잖아 이런것 때문에 요새 곤욕을 치루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조금한 원칙, 원칙 하나를 안지켜서 그 쯤이야 저정도 쯤이야 하면은 곤욕을 치룹니다.
우리가 원칙 하나 지키는것이 가정과 나라가 삽니다.
당장 눈 앞에 이득 밖에 모르고 이득과 타산이 이해타산이 떠나야 합니다.
갇힌자 되는 그 적용을 주님 때문에 하면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그 한사람을 위해 갇힌자된 적용은 주님 때문에 하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우리 큐티 적용이 이게 무서운 겁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기득권을 가질 필요도 있기 때문에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되요.
학생의 본분 직장인의 본분 아내의 본분 사업가의 본분 모두 자기 본분을 열심히 해야 되는데
성취나 보상이 목적이 아니고 구원 때문에 해야합니다.
우리도 정말 또 휘문이 잘못해서 우리들 교회를 건드렸습니다.
휘문이 잘못해서 교회 재정이 감사와 재정에 감사가 들어갔어요. 큰일날 일이 생긴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나라 재정에서 살아남을 거 있습니까?
작은거 하나하나 모든 교회에 모든 재정은 교회가 큰일날뻔 한일이 아닌가요?
사소한것 작은것에 에서부터 원칙을 지켜 살아남았습니다.아니면 내가 옥에 가있을 예정입니다.
현재 휘문 관계자들 모두가 옥에 계십니다.굉장히 존경하기 바래요.
따라서 예수믿는 사람은 기득권이 있어야지 로마 시민권으로 빌립보 교회를 살립니다.
자기 때 학생의 때 직장의 때 사업가의 때 성실하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모두 자기 본분을 열심히 해야 되는데 물론 성취나 보상이 목적이 아닙니다.
구원 때문에 이제 로마 시민권 같은 것들을 주님을 위해 쓰이지 않으면 다 썩어질 것들이죠.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지체들을 섬기면 빛이납니다.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섬김을 받을때면 빛이납니다. 제가 날마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 오라
우리가 죄인이래서 무시를 해요. 하나님이 저를 그래서 서울대학에 나오게 하셨죠.
그래서 전도할 때 저는 서울대를 나왔어요 그 도입부의 한마디 때문에 서울대를 나오게 하신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 고난이야기를 하는것입니다.
근데 그 도입부의 하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하고 다 자기 있는 자리에서 성과를 올려야
되는것이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청년부가 부흥하는것이 청년부들이 눈이 매섭습니다.
그냥 옳고 그름 화신들만 모였습니다. 교회들 이상합니다. 권위적 재정이 이상합니다.
청년들이 안모입니다. 청년들이 모이는 교회를 가야합니다.
약간 자랑 하고자 하면 그렇게해서 그 많은 재정과 감사하고 이천만원에 대한 용처를 밝히라고 했습니다.
그게 뭐가 없다고했는데 찾고 찾아서 영수증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수증이 안나왔다면 뇌물을 준게 됩니다. 이천만원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원칙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런데서 암이 걸린 저기가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원칙을 지켜야 살아남는줄 믿습니다. 교회가 괜히 평안히 가는것이 아닙니다.
적용
부모의 특권, 자녀의 특권, 상사로, 시민권자로 부자로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특권의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잘난척만 합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섬기고 있습니까?
잘난척만 하면은 자녀들에게 믿음이 내려 가지를 않죠.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이 특권을 가지고 목장이 찌질하다고 안나가면 구원이 흘러서 자손 대대로 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었다고 귀신들린 여종과 과부만 훌륭한것이 아닙니다. 살려준 로마 시민권자에게 있습니다.
전도한자 찌질한 자들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하나님이 서울대학에 보내셨습니다.
전도할 때 서울대를 나왔다고하면 입구에서 그 다음에 막 고난 이야기를 합니다.
입구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 어텐션을 둡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난한 학생이 서울대에 가는지 그것이 알고 싶은것입니다.
복음 전할 때 여자 목사니까 무시 하지 말라고 만세전부터 가게하셨습니다.
세 번째 끝까지 말씀으로 가르칩니다. (39-40절)
39절 -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절 -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상관들이 바울을 데리고 와서 나가 그 성에서 아주 떠나기를 청하였는데
이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관들이 비굴할 정도록 바울이 떠나기를 간곡히 청하는 거예요.
한쪽에서는 구원을 적용하는 삶을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이땅에 완전히 이렇게 시민권 자기 특권을 내려 놓을때 진짜 높은자들이 와서 이땅에서도 높이시고 존귀를 누리세요.
담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과부 루디아가 바울에게 제발 자기집에 머물라고 간청하고
귀신들린 여종도 바울을 계속 따라다니고 간수도 어땠나요? 자기 집으로 모셨잖아요.
누구도 바울을 떠나라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움켜잡는것이 없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까 복음을 듣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고난이 축복이 된 것이죠.
예수님 옆에는 막달라 마리아 귀신들린 여종 다 이런 교회 직분들을 권사 장로로 다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예요.
그 부자들은 한번 왔다가 다 도망갔다가 이때와서 장례 치러준 니고데모하고 아리마대요셉이 있죠.
부자들은 참 힘든거 같아요그래서 이제 상관 시장들은 바울이 살려줬잖아요. 죽을걸 살려줬잖아요.
그럼에도 가진게 많으니까 집에를 모시기는 커녕 이 도시를 떠나달라고 막 간절히 부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시장들은 높은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상관 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잃을게 많았어요.
요새 여러분들 믿는다고 하면 잃을게 많아요. 그래서 잘 믿는 사람 싫어해요.그래서 이것을 상관의 두려움 이라고 합니다.
바울을 살려줬음에도 사형을 받을 사람을 돌이켜줍니다.
그런데도 내가 죽었다가 살려줘도믿음이 안들어가면 사람을 배반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같이 있는게 싫습니다.
도시에서 떠나기를 부탁합니다. 이세상은 누구도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박수홍씨가 가난한집에서 벌어서 형이 경차만 타고 다녀서
형에게 자신의 돈을 맡겼는데 모두 명의를 자신의 형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형을 믿지 못하고 어떻게 사나요?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공과사를 분별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장가도 못가게 했습니다.
빌딩도 사야 하니까 형이 그러니까 그래서 남은 말할것도 없고 내 인생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도와주고랑 당하는것과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당하는것은 욕심이 많아서 도와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귀찮아 합니다. 내가 부지런하지 못합니다. 형한테 죄를짓게 합니다. 형한테 어마어마한 죄를 짓게 합니다.
고소하게 되었는데 할것도하게 되겠지만 박수홍씨 아는사람 있으면 우리들 교회로 전도 했으면 좋겠어요.
박수홍씨 누구 알든대? 전도하길 바래요.
그래서 이 모든사람들이 바울을 머물라고 했지만
이 시장들 높은 지위를 가진 상관들 사회적으로 잃을게 많았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잃을게 많아요. 그래서 이것을 상관의 두려움이라 합니다.
모든 죄수들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을때 그 찬양과 기도를 귀를 쫑긋하고
너무 열심히 들었지만은 관리중에는 지나가면서 간수 한사람만 듣고 돌아왔어요.
관리중에 오직 간수 한사람만 듣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빌립보 감옥에서의 이 간수는 천금 같은 한사람이었어요.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것 천국가는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이 모든 상관들이 떠나라고 그래요. 모두가 영접하는것은 아닙니다.
또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 교회가 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이 말들을 다 드러내고 견뎌야 하니까 늘 귀신들린 여종과 과부 루디아가 우리들 교회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천국에 갑니다.성령의 놓임이 그러니까 환경의 놓임이 아님을 볼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말씀으로 묶인것이 진정한 놓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감옥이나 감옥이나 초원이나 궁궐이나 자유한 것이예요.
이런 사람은 죽음 조차 묶어 놓을수가 없습니다. 묶인거 같으나 말씀에 묶어놔서 자유합니다.
죽음도 묶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집착 주변의 두려움 시선 환경 체면 나를 죽일것 같은 환경에서 말씀에 묶여 있으면
성령의 놓임으로 나아갈수가 있습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진리가 믿음의 반대입니다.
열심입니다. 믿음의 반대가 무서운 열심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무서운 열심히 스데반을 죽였었잖아요.
그래서 이사람의 죄패가 대단한 것이죠. 엊그제 성금요일에 설목사가 간증에서 자기는 그 무서운 열심히 인도에서 선교사로 가면서 막 하루에 다섯시간씩기도를 하고 쥐새끼가 많아서 잠바 주머니에서도 쥐가 나오고
이런데를 막 하루에 50도가 되는데서 이렇게 열심히 전도를 해가지고 부흥도 했다는 거예요.
다섯시간씩 기도도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갈등도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기수가 많이 진행된 암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암도 쎈암이 암이 걸렸다는 거예요. 지금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 선교지까지 가서 갔는데 막상
죽음에 갇혀서 그 죽음이 너무 두려웠다는 거예요. 그 막상 죽음에 갇혀서 죽음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너무 낙심이 나고 암걸린 것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한마디도 전도도 못했다는 거예요.
암에 갇혀서 암이 걸린것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아무에게 전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동안의 인도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맨날 전도를 했을텐데
무슨 전도를 했을까요? 예. 그러나 이것이 우리 모두의 실상이 아닐까 싶어요.
낙심과 수치스럽습니다. 우리 모두의 실상입니다.
저도 남편이 30대에 일찍갔고 게다가 암도 걸려서 남편은 일찍 죽었습니다.
그 약재료 가지고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목사님 선교사님이 그런 가치관 이라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같은 사람을 무시할까요?
그래서 저는 날마다 자칭 유대인의 왕 자기가 예수 잘믿는데 그런 이야기가 제 뒤꼭지에서 들립니다.
아이고 과부 주제에 암걸린 주제에 가만히 있어도 뒤꼭지가 뜨겁습니다.
말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자유함이 있어서 이렇게 죽을땐 죽어도 나는 로마인 이다 했기 때문에.
내가 자꾸 옛날에 별 이야기 다했는데 요즘에는 훨씬 덜했는데 온라인에 논란이 되어서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나에 대해서 자꾸 도마에 올라갑니다. 상관들의 간청으로 놓임을 받은 바울이
다시 마지막으로 루디아 집에 다시 들립니다. 이제 그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봅니다.
이 형제들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이요. 여자요.
과부인 루디아와 평생 귀신들려 악한 주인들에게 묶여 살던 부모도 지체도 없던 귀신들린
어린 여종과 자결하려던 간수와 한밤중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의 그 처절한 기도와 찬송을 열심히 듣던
죄수들이 구성원이네요. 도저히 이 하나가 될수 없는 구성원 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형제로 만납니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감옥안에서는요 실라 뿐이었는줄 알았는데,
실라하고 둘이서 찬송하는줄 알았잖아요.
바울 : 실라야 실라야. 실라 : 형님.
바울 : 우리가 괜히 들어왔니? 실라 : 아니예요.
바울 : 우리가 잘들어왔어.
이런 Think를 하면서 그랬는데 깊은 한밤을 지나고 보니까 나와보니까성령의 형제들이 주렁주렁 맺힌거예요.
연약하고 볼품없고 미약한 이들이 로마의 심장부로 향하는복음의 칼끝이 되어서 마지막까지 바울과 함께동행을 합니다.
할렐루야. 정말 저는 차별을 안할래야 안할래서가 아니고
제가 그냥 일주일 내내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들하고 가다가 보니까
다 이런 귀신들린 여종과 루디아 과부와 간수같은 사람만 저를 좋아하네요.
그런 분들에게 직분이 갈 수밖에 없네요. 뭐 어쩔수 없는 팩트예요.
그래서 앞으로 더욱더 야 성경이 이렇구나 이런 사람들이 우리들교회 주인공이구나.
변하면서 감사함이 있습니다. 부자가 변하면 강산이 없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씀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가는거지.
맨날 상관들처럼 떠나 달라고하는 그런 사람들처럼 하는 시간 없는것입니다. 맞습니다.
여기 위로한다는 말은 권면하다는 뜻인데요.
이 성경에서 권면하다란 일관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는 뜻이예요.
그니까 이 땅의 놓임을 위해서는 그리고 여러분들이 다 묶여있어요.
돈의 질병의 남편의 자녀에 다 묶여 있는데 권면중에 최고의 권면은 말씀중에 최고의 권면은 말씀의 권면이
최고의 위로가 되는것입니다. 이것이 힘든 사람에게 말씀으로 권면하는것이 최고의 위로입니다.
목장에서 말씀으로 권면을 하는데 다 살아나잖아요.
그니까 이 단어 파라칼레오에서 성령 파라클레이토스란 단어가 유래가 되는거예요.
바로 이것이 진리의 성령님이십니다. 말씀의 성령입니다.
우리 같으면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 한테가서 루디아 내가 얼마나 큰일을 하고 왔는지 알아?
감옥에서 옥터가 흔들려가지고 랄랄라라 나를 때렸는데 루디아 내가 이렇게 왔잖아.
나보고 말이야 무용담 이야기 힘들었다고 자랑을 할것이 많이 있었을것 같아요.
또 생색도 내고 어떻게 나를 때릴수가 있어 그럴텐데 바울은요. 그런말 하나도 안하고 일절 안합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수많은 고난의 여정을 겪어도 일관되게 위로하고 즉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해요. 위로하고 권면하고 갇힌 자들에게 자기의 죄패를 내놓고 생명을 구원하는데 전념합니다.
저에게 모든 간증은 오직 말씀 전하는 일에 쓰여요. 그리고 다른 사람 위로하는 일에 쓰여요.
갇힌일에 남편이 죽어서 갇히고 자녀가 죽어서 갇히고 힘든사람들한테 말씀으로
저의 모든 인생이 쓰이고 오직 말씀으로 위로를 하는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선교를 했어. 목사가 됐어가 아니라 내가 지금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치는 이 단순한 일반적인 일들이 모든 환경에서 놓임을 받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믿습니까? 성경이 그러네요. 우리는 죄인이라 조금만 놓아주면 흘러흘러 떠내려 갑니다.
바울이 1차, 2차 전도에서 몇 명을 전도 해서 돌에 맞아 죽을뻔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안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단순한 일들이 모든 환경에서 놓임을 받을줄 믿습니다.
참된 성령의 놓임은 모든 환경에서 놓임 받는것이 아니라 내 옆에 한영혼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하며
여전한 방식으로 묶여있을때 이 땅의 위정자와 공중의 권세자들이
내 옆에 와서 제발 놓아달라고 애걸 애원하는것이 성령의 놓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차별없이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이예요.
지나고 보면 저는 이제 항상 큐티를 권하며 그 사람의 갇힌 상황을 위로하며
성령의 효과적인 도움으로 성경 읽기를 권하는 것이 정말 저의 평생의 사명입니다.
평생의 사명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교회보다 큐티 선교회를 하게 하시면서 오직 말씀 묵상 가정 중수를 하루도 빠짐없이 외치며 가게하시니
그냥 오늘 본문만 해도 이게 제 이야기 우리들 교회 이야기가 아닙니까? 정말 말씀대로 인거예요.
말씀대로 걸어가니까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시는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율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걸 봤어요. 동영상으로요. 치매를 막으려면 생각하고 think 하라는것.
뇌의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뇌의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되고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되고 웃어야 한 대요. 웃어야 합니다. 우리들 교회는 딱 목장이 아닙니까?
우리는 날마다 Think를 하잖아요.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옛날에 쓰지않고 지금에서야 썼을까요?
이상한것 아닌가요? 목장에 가서 나누고 우리는 그냥 가만있어서 웃는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노력 Think를 해야합니다.
좋은사람하고 계속 목장에서 웃는것 치매에 걸리지 않는 가장 큰 비결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생각을 해보니 기적같이 우리들 교회 어르신들이 많은데 치매에 걸린 이야기가 없습니다
비결 중 비결이구나 생각이 듭니다.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해야합니다.
돈이 많다고 상관의 두려움으로 목장에 안나오고 그러면 치매에 걸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타적인 것이 얼마나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사람한테 일대지 이대지 삼대지 내 삶을 넣어서 어떻게 위로를 해줄까 권면을 해줄까 Think를 하잖아요.
그러면 목원들이 가서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할까 다 Think 를 해요.
적용질문으로 내 약재료를 어떻게 나누어 사람들의 죄를 변화 시킬까?
목원도 말씀을 듣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면 최고의 만남, 좋은 만남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거기서 얼마나 웃겠어요? 그런데 아무리 목장이라도 우리는 모이면 웃어요.
너무 믿음이 없어도 우리는 모이면 웃어요. 세상 로타리 클럽 보다는 백번 천번 웃어요.
그래서 제가 이 기가막힌 정말 전립품을 발견했는데요. 우리교회 많잖아요?
우리가 이 그 실버 목장이 1000명 가까이 되는가요.
그런데 지금까지요 치매 걸린 분이 한분도 없어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진짜 하나님 우리들 교회를 지키시는 구나 그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하나님 지키시는데도 Think는 여러분들이 하셔야 되니까 우리한테 무거운 짐일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해야되니까 이 생각 반드시 하셔야 되요.
Think를 어쩌다 하는것이 아니고 날마다 매주일 하고 쌓여지니 요즘같은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교회 청년부 이혼이 없고 SG공동체에서는 없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것이 아닙니다. 영상을 보았습니다. 세상 동영상은 고스톱을 하라고 그래요.
뇌를 쓰라고 합니다. 그거랑 이거랑 차원이 다릅니다.
아니 고스톱을 하는것보다 백번 낫지 않겠어요? 고스톱을 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생각 영적인 생각
예. 그렇게 이제 해서 그 다음에 좋은 사람들 만나서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니까 세상에 치매가 없는 거예요.
치매가 아직까지는 없어요. 내일은 모르겠는데 그니까 이것은 굉장한 효과적인 예방책의 최고인거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목장을 안나가는것은 아주 손해보는것 이예요.
아주 진짜 혼자서 독야청청 나홀로 돈이 있어서 잘먹고 잘사는것 같아도 그것은 진짜 손해보는 거예요.
이타적인 훈련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가자마자 언제나 일관되게 말씀으로 위로하고 권면하고
이제 가르치는것 절 닮아서우리들 교회 목자 다 그러고 있잖아요? 죄 고백 하는것이 얼나마 다들 멋있어?
말하는 것이 은쟁반위에 옥구슬처럼 아주 세련된 이야기만 하는데 지금 아까 교장선생님 이라도
그 이야기를 한사람이 안해서 그 가정이 파탄이 났습니다.
똑똑한 사람인가요? 여기서 조금만 참으면 합쳐집니다. 난 못참아가 아니라 참으면 모든 것을 얻습니다.
이런말을 안들어서 불신결혼을 하면 길이 없습니다. 말씀이 안들려서 이런 힘든일로 결혼을 하면 있습니다.
말씀을 안들어서 소통이 안됩니다.
바람피면 이혼해야지. 내가 왜 참아 도박하면 헤어져야지 세상사람들의 정답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 내 죄패가 필요합니다. 뭐라 할때마다 엎으러 져야 합니다.
죄를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 내가 잘났다 너가 잘났다가 아니라
내 죄가 호패가 되어 두려워 떨려 엎드러 지는것이 내 죄를 보는것이 무서운 능력입니다.
적용
끝까지 하고 싶은 것이 여전한 방식의 목장이고 목자입니까?
여행이고 쇼핑입니까?
지금 좀이 쑤시죠? 여러분 어디 가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요? 그렇죠? 그렇죠? 아니요? 아니요?
일초도 안참고 여행 이라고 하는것 안되는거지.
요새 코로나 때문에 너무 답답하죠? 그래도 목장이 있어서 재미있게 노니까 훨씬 좋은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밤이 있었고 날이 새매가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남편의 옥을 넘어서 과부의 옥에 이르고 죽을 사건이었죠. 남편은 병실에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날이 새매 새로운 국면이 되어 성령의 놓임을 받게됩니다.
저도 13년동안 갇혀있다가 간수가 평안히 가라고 놓으라의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오늘까지 한번도 안한 간증좀 하려고 해요. 34년만에 이 간증을 해요.
이 간수같은 남편이 천국가기 한달쯤 전에 어떤 말을 했는가하면 딱 한달 몇일전 그때에 병원에 가다가 답답하다고
바람좀 쐬자고 그래서 드라이브를 하다가 어느 한 냇가에 과천쯤인가? 그랬던것 같아요.
냇가에 잠깐 들어가서 차를 세우고 오후 3시~4시쯤에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만지면서 그랬는데 딱 얼굴을 봤는데 우리남편이 가기 한달전쯤 이었는데
간이 아팠을것 아니예요? 맨날 남편 얼굴을 저녁에는 불 밑에서보고 병원에서도 어두우니까 아픈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햇볓에서 딱 보는 우리남편의 얼굴이 노래 노래 노란 거예요. 그렇지 않았겠어요? 간암인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밝은데서 얼굴을 그렇게 햇빛에 남편얼굴이 딱 비쳤는데 얼굴이 왜이렇게 노랗냐고
간이 아픈거 아니냐고 간 아픈거 아니예요?
병원에 좀 가봐야 되겠다고 놀라서 이야기 하니까 그런 이야기 툭 튀어나왔는데 제가 이야기 했더니
이 남편이 너무나도 의사 앞에서 별 소리를 다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자기 입에서
그 사람도 나온 이야기가 알고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더니 그다음에 딱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그때는 천국가면 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나 죽으면 재혼해. 이러더라구요 자기가 죽으면 나보고
재혼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애기를 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귀를 의심했습니다.
남편은 의처증 비슷한 그 증상이 있는데 저 대학교때 저희 친정 어머니 돌아가시고
저희 친정 아버지께서 재혼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젊은 날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재혼을 하셨습니다.
결혼 후 날마다 뭐라고 하냐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재혼을 할 수가 있냐고
그런 남자가 있냐며 매일 흉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흉을 봤습니다. 그것을 날마다 그것을 노래를 했어요.
그러니까 나 죽어도 애데리고 절대로 재혼하지마 잘살아 이래야지
우리 남편한테 맞는건데 저한테 재혼을 하라고 했는데 아프다고 했을때 그렇게 재혼을 하라고
그러더니 농담인데도 진담처럼 단 조건은 정해줄게. 반드시 의사랑 하라 고 구체적입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날의 이야기가 저도 아주 완전히 예언을 한게 맞았어요.
진짜 아팠잖아요. 얼굴이 완전 노래가지고 예.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안했겠어요?
모든것이 다 나왔는데 내가 그때 30대 혼자되었습니다.
남편이 했다고 하면 남자들이 달려들면 저한테 달려들면 어떻게해요?
그래서 이제 오늘간 수가 평안히 가라. 샬롬 와 딱 맞는 이야기 잖아요.
기독교적인 믿음으로 맞는 이야기 인데 그러면은 제가 삽심 사오년이 되도록 이야기를 한번도
안했겠어요? 왜 안했을까요? 그니까 여러분들은 큐티가 안되는구나.
그렇게 이야기 하면 저한테 다 달려들것 아니예요. 그러면 제가 복잡해지잖아요.
제가 이렇게 굉장히 인생이 힘들어요. 여러분들 말고 귀까지 붙여주고 가기 때문에 나혼자
십자가 지기도 어려운데 이상한 일에도 예. 그래도 여러분들 적용도 솔직하다고 아무 이야기를
아무 때나 하는게 아닙니다. 다 때에 맞게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 이잖아요?
남편도 평안히 가라고 했겠다 완전히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냥 무슨 분해서 한것이 아니고 평안히 가운데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대의 여자가 남편의 유언도 있겠다.
자유의 몸이 되어서 시집도가고 마음대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영혼 구원을 위해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고 살았는데 내가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는다고
남편이 구원이 되었다고 내 마음대로 살라고 놓아 주셨겠어요?
그러니 남편이 주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생명 내놓고 기도했는데 아직 제 생명을 안가져 가셨잖아요.
아무리 평안히 가라고 간수가 주님의 평안을 빌어주셨지만 저는 바울이 전도를 통해 믿게된 빌립보
시민들을 위해서 날이 새기 전에 다시 감옥으로 들어갑니다.
간수 집에서 세례 받았지만 아침에 간수가 바울보고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했겠습니까?
도망가라고 가라고 했겠는데 바울이 감옥에 들어간것 처럼 저도 이미 옥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날당장부터 남편의 갑작스런 하루만의 죽음에 지진에 대한
그날의 큐티 에스겔에서 그것을 해주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부터 큐티 사역이 시작되었어요.
내가 믿음이 좋아서 헌신해서 하루하루 말씀대로 오다보니까, 목사하고 싶고 이런거 하나 없어요.
전해야 되는것입니다. 말씀으로 위로가 되는 것 사명이 시작됩니다.
저 때문에 에스겔 말씀이 그날 그렇게 임했고 나는 사역을 해야지 교회 선교 해야지 한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그날 말씀 따라 오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결혼을 해야지 안해야지 이런 생각 하나도 없어요.
그냥 하루하루 그날 말씀대로 살아야 하니까 저는 그 말씀을 전해야 했고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데 내 자신이 너무 잘알고 남편이 이야기 해줬습니다.
그날 큐티말씀 에스겔에서 이미 해주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부터 큐티 사역이 시작되었어요.
압도적인 성령의 내려놓음이 되고 또 이제 그동안도 문밖출입을 하지 못한 감옥이었지만
제가 스스로 집으로 돌아와서 들어와서 큐티모임으로 열 개 이상의 큐티모임으로 하면서
훨씬 왕성하게 또 13년을 갇혀있었습니다. 목사도 아니면서. 그냥 이렇게 말씀 사역을 했죠.
이때 제가 나갔다면 바울이 탈옥수 되는것처럼 저도 탈옥수가 되지 않았을까.
정말 집을 떠나 들로 산으로 뛰쳐 다니면서 나돌아 다녔다면 진짜 저는 전 그랬을것 같아요.
몸버려. 돈버려. 편안하게 세상적으로 잘살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남편의 구원은 해방을 위한 구원이었지 도구 자체가 아닙니다. 저의 경우입니다.
30대에 결혼할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누가봐도 결혼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권한 안썼다고 하나님이 수많은 영혼을 붙여주신줄 믿습니다.
그니까 내가 특권이 있었음에도 그것도 제힘이 아니고 성령이 임한거죠.
날이 새매는 저의 자유가 주어진 놓임의 날이기도 했지만 사명의 옥으로
메이게된 분수령적인 날이기도 했습니다. 놓였음나 메이기된 적용이죠.
한마디로 구원을 위한 적용을 하게 하신 것이고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말씀 가르치면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기적입니다.
결혼해야 주님의 일을하고 그런것이 아닌데 그날 그날 말씀으로 하루 하루 인도함을 받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장례인 계획을 세운것이 아니라 장례에 내가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죄패는 무엇인가? 하면은 우리 남편이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그래도 아까 간수처럼 차꼬에 든든히 채우고 감시하고 그리고 매로치기까지 해서 그래서
그 남편과 날마다 이혼 생각하고 자살 기도까지 두 번이나 했는데 제가 얼마나 사람을 모르는가 하면은
목사님 무슨 죄패가 많은가? 하는데 때마다 나는 너무나 남편의 옥에서 놓임만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자유가 없어서 진정한 놓임은 내가 내 자아가 예수와 함께 죽는것입니다.
어쩌구 저쩌구 해도 죽지 않는것은 특권의식이 안내려 놓아져서입니다.
말씀을 보고 그냥 그렇게 큐티를 열심히 날이 새매 몇 번 기회가 있었고 모든 사람이
나 때문에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불구하고 날마다 남편과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그 남편하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죽을 생각도 몇 번 하고 내가 알고있는 너무 얄팍한
내 자신이 나도 모르는 내 자신이 사건이 올때마다 드러나는 거예요.
그 한달전에 거보고 그렇게 재혼을 하라고 그리고 의사랑 하라고 하는것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생각했다는 뜻이고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준거 아니예요? 장례 그 영접하는 자리에서 마지막 구원받고 떠나는 날도 마지막까지
영접하고 장례식을 나한테 맡기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했잖아요.
자기가 너무 좋은데 갔는데 자기 장례식을 맡기는것에 대해서 너무 미안해. 했잖아요?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랑을 어떻게 받겠습니까? 저는 그 죄패로 이세상에서 예수님을 그 사람이 영접합니다.
살수 있는 마음이 되는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놓고 끊임없이 죽을생각하고 이혼생각 했습니다.
나한테 어쩌구 저쩌구 해도 생각을 저만 하고 있었는데 그 죄패가 너무 대단해서
그냥 이렇게 가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살아도 마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내가 교만해서 내가 잘났다고 맨날 이혼할 생각을하고 자살할 생각이나 하고
그래서 내가 이혼할 생각을 하는 사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너무 잘 알잖아요.
남편의 사랑을 내가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근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사가 됐을까 싶은데
그 아까 교장선생님도 그 징한 부인이 와가지고 그렇게 투서하고 했어도
죄패를 굳건하게 지고 교육청에 투서를 했어도 감봉 징계 그정도로 끝나는 것이었어요.
근데 누구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족이 저렇게 그냥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 되고
다 흩어지게 되고 누군가가 한마디만 해주는게 너무 중요한대 그 결론적으로 이혼하면 안되고
가정은 지킬만한 최고의 것입니다. 사건이 오기전에는 믿음이 좋다고 혼자 착각하고 성경을 읽고가면
나를 자꾸 깨우칠려고 남편의 옥에 갇혔습니다. 과부가 되게 하고 가장 큰 옥음 지금이예요
목회를 하는 지금이에요. 이런 옥이 없어요. 얼마나 죄가 많으면 옥에 가두셨습니까?
일주일 동안 굴속에 있는지 모를거예요. 그럴때마다 죄패가 있기때문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내가 이런 설교를 하게 되는것 목사님 무슨 죄패가 날마다 있나 하십니까?
날이새매 날로날로 죄패가 쌓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죄패를 늘 하나씩 얼마나 이렇게 사람을 모르는가
큐티를 백번 했어도 이렇게 사람을 모르고 내 인생의 목적이 진짜 거룩이 아니고 행복이었구나.
이런 죄패를 항상 굳건히 붙여서이제는 오직 말씀 묵상의 결론이 가정 중수 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제가 날마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오늘도 여러분들 앞에 죄패를 붙였습니다. 인생은 죄인입니다. 깨닫는가요? 깨닫지 못하는가요?
환경의 옥에서의 풀림이 아니라 내 자아의 옥에서 풀려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놓임은 내 죄가 예수와 함께죽는것입니다.
내 자아가 죽지 못하니 내 죄를 계속 보이지 않아서 나 때문에 남편이 갔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 때문에 모든 시댁식구가 수고했다는 생각이들고
이런 진정한 죄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그래서 결혼을 할때는 신결혼을 하고
일단 결혼하면 거기서부터 자기 자신을 보고 무너져야 합니다.
그럴때 예수를 만나게 되서 날이 새매 이런 어떤 죄의 죄패가 달라지고
누가 뭐라고 그럴때마다 그냥 호패를 던지면서 정말 꿇어 엎드리는 죄패가 확실한 사람은
많은사람을 주께로 인도할수 있게됩니다. 우리들교회는 맨날 죄 보라고 하는가요? 목장에 계속 인도하면
너무 힘든일 많잖아요. 힘든일이 많아도 복음을 받았습니다.
목장 열심히 꾸려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
내가 내 죄를 보는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만 그렇게 본 만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붙여주실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놓임은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있습니다. 나의 죄패를 그래서 늘 시기마다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그 죄패가 생각나야 하는거이예요. 다른 사람들이 이혼한다고 하면 나는 더했다. 이런 죄패를 내놓아야 하는거예요.
죽겠다. 그러면 나는 직접 시도를 했다. 그 이야기 하나도 안해도 되는데
그러니까 이 잘난척 하고 특권의식을 내려 놓지 않으면 이 이야기를 못하는 거잖아요.
구원 때문에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끝까지 위로하고 권면하며 말씀을 가르치며 가는 거라고 합니다.
우리의 최고의 위로는 말씀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나의 죄를 이렇게 보게 하신 것인데 내 죄를 보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구원 하기 위해서 내 죄는 용서를 받았지만 그것은 천국가기 그날까지 일평생 지고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도말하셨지만은 여러분들한테 생각나게 해달라고 특권의식을 내려 놓아야 해요.
감출때 감추고 드러낼때 드러내고 끝까지 말씀으로 권면과 위로가 가장 최고의 놓임 받는 위로인줄 알아요.
나같은 죄인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찬양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 주 찬양 하리라
여기서 시기마다 날이 새매 끝까지 자기 십자가 가지고 죄패가 늘 보여지고 옆에사람 구원하는 호패가되게
해달라고 우리의 죄패는 우리의 모든 옆에 사람 구원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큰 선물인 거예요.
왜 저렇게 자꾸 죄를 보라는 가가 아니예요. 우리의 모든 특권을 내려 놓고 이렇게 내려 놓았을때
수많은 사람이 구원이 되었는데 여러분들의 무슨 특권을 도대체 내려놓지 못하는지? 이제 내려놓게
해달라고 끝까지 하고 싶은 여전한 방식의 목장모임과 목자가 되게 해달라고 이제 태아 생명법이
재정되고 평등법이 차별금지법은 통과 되지 않게 해달라고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성령의 놓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주님 싸운것이 제가 노력해서 싸운것이 많다 보니 내려 놓기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시기마다 이제 원한것이 남편의 옥에서 벗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날마다 이제 내가 좀 자유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옥에서 벗어나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놓임은 제 자아가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보는것이었습니다.
봐도 봐도 끊이 없이 양파처럼 보이는 저의 죄 때문에 그래서 누군가 무슨 말을 해도 저는 이제 그 내 죄패를 생각하면
엎드릴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게하셨습니다. 아직도 제가 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사건이 왔어요.
또 깨닫게 하시고 주님 우리 사랑하는 예수님이 마지막 죄없으신 그분이 이렇게 죄패를 가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가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그 죄패는 바로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자녀십자가 또 배우자 십자가 질병의 십자가 수많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자기의 죄패를 이렇게 만천하에 수치스럽게 내놓고 갈수 있는 우리가 되어서
주님 성령의 놓임을 받을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도록 주여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나를 위해 죽어주시고 부활 하신 주님의 아버지 하나님 이 부활이 헛되지 않게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도록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기도제목
탁미나
-분노와 수치를 감해주시고 나도 죄인이란 생각을 하며,사람들과 트러블을 내지 않도록
-정말 공부 할 힘을 주셔서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김다혜
-가족구원
-해야할일 미루지 않고 기도하며 할수 있도록
-말씀 우선순위 삼기
김자영
-업무에 지혜 주시길
-어깨 아프지 않기를
김성은
-이번 한주간도 환경의 놓임이 아니라 성령의 놓임으로 말씀에 꽉꽈 묶여서 살기를
-성령의 놓임으로 이번한주도 오직 하나님과 말씀에 잘 묶여서 양육숙제에 집중하고 숙제를 기간내에 제출할수 있도록
-자녀의특권을 내려놓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손과 발이 가는 수고를 하기를
-나의 거룩을 위해 수고하는 아빠의 구원을 위해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길
-이번주 화요일에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에 가서 사직서쓰고 인수인계하고 실업급여설명 등등 원장님과 서로 오고가는
-말 속에서 서로가 감정상하지 않고 그 과정을 지켜주시고 원장님이 설득이 잘 되어서 직인 잘찍어주시고 마무리를
잘 하고 나오며 저의 추함과 무능함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오도록
-주님의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잘 해결해 주시고 실업급여 꼮꼮 받을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이번주도 오른쪽 어깨 석회성건염 치료 잘 받고 통증 감해주시고 건강이 회복되기를
-앞으로 다시 가게될 직장 진로 정말 분별하고 잘 구별하여서 하나님의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인도해주시길
-신교제 신결혼 하나님의 선하신 방법으로 인도해주시길
윤지혜
-잘 자고 잘 일어나는 적용을 통해서 낮과 밤에 잘 순종하여 하루 잘 살아내기
-몸큐티통해 건강과 체력관리 하도록
-구원위해 어떤 수치도 내어놓고 어떤 특권의식도 내려놓을 수 있기를
-양육동안 시간관리 잘 하고 과제할 때에 사건이 생각나고 깨달아지도록 기름부어주세요
-언니 직장생활과 조카들 양육 인도해주세요
-집안일도 잘 돕도록 손과 발이가는 적용할 수 있게
-가족들 영육간 강건함위해서
-현장예배 사모하는 우리 목장되기를
*공통기도제목*
-신교제 신결혼 소망주시고 인도함받도록!
-모두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