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28 성령의 열림
✽ 사도행전 16:26-34
✽ 김양재목사님
굳게 닫힌 감옥문이 바울과 실라를 막아도, 그들의 찬송은 막지 못했다. 감옥문을 열고 간수의 마음 문을 열고 간수의 가정까지 여는 성령의 열림으로 이어지는 갇힘이었다.
1. 옥터를 움직여 감옥 문을 여신다.
26/ 이에는 깊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옥문까지 옥토가 움직여 열렸다. 귀신 들린 여종을 위해여 갇힘을 각오하고 옥에 들어간 그들에게 기쁜 화답의 현장이다. 대신 다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마태는 21장에서 (21:45) 온 땅에서 어둠이 임하여~ 라고 표현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52절) 와 같이 비슷한 상황이다. 십자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졌다. 마찬가지로 한 영혼을 위하여 생명을 포기하여 깊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보니 하나님은 어떻게 보셨을까? 내 삶이 지금 끝난다 할지라도 찬송하는 그들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상급이었다. 그래서 온 옥터를 흔들기까지 기뻐하셨던 하나님이다. 바울아 바울아,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있다 라며 큰 지진같은 사건이 오는 것은 역시 바로 구원의 사건이다. 흔들어 깨어 회개하게 하시는 임재이기에 옥터가 움직이든 내 존재의 기초까지 뒤흔드는 회개가 될 때 구원을 향해 활짝열린다. 옥터가 움직였다는 것은 감옥의 기반이 흔들렸다. 기초가 흔들리자 거기에 박혀있던 감옥 문들이 즉시 열린다. 단단히 매여있던 것들도 열린다. 모든 문제의 기초, 근본은 무엇일까? 갈라디아서 3:22-25에 나온다. 주님은 모든 것이 - 모든 사람이 죄 아래 갇혔다고 한다. 죄가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다. 수많은 옥문과 결박들이 뿌리내린 옥터는 죄악이다. 그래서 감옥문처럼 우리를 가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죄 문제를 봐야하지만, 우리는 죄를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괴롭다. 죄를 봐야 회개가 일어나고 해석과 해결이 이어온다. 그러나 죄를 못 보는 우리는, 온 째 흔들린다. 단단하게 깔려있는 죄악들이 큰 지진같은 사건으로 움직여 다 드러난다. 다 드러나야 회개할 수 있다. 말씀이 내 삶을 읽고 지나갈 때에만 기초부터 타락한 100%죄인임이 인정이 된다. 그게 죄로 막힌 내 삶이 열리는 성령의 열림이다. 그러나 그 것은 갑자기 온다. 갑자기 옥터가 움직이고 매인 것이 열린지라로 표현되는 이 동사들은 모두 수동태로 쓰인다. 내가 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가능하다. 내가 자꾸 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러나 바울같이 옥에 갇힌 때처럼, 내 삶의 결론이라고 구속사를 말로 한다. 실라와 나눌 때 - 바울은 참 죄가 없어보인다. 피해자가 무슨 죄가 있을까? 영적시각으로 회개할 때, 큰 지진이 오며 회개가 일어나고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들교회는 비교적 많이 일어남을 본다. 어느날 갑자기 자유함이 생기니, 옥이 아니고. 또 옥에 더 이상 매여있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찬양하는 현장으로 바뀐다.
적용/ 내 죄를 흔들어 크게 드러내신 지진의 사건은? 내 삶의 닫힌 문제가 내 기초(죄)에서 비롯된 결론임을 인정합니까?
이번 주도 큰 지진이 많았다. 중학생 아이가 살충제를 직접 구매하여 4/5를 먹고 죽으려하다가 자기가 괴로우니 신고하여 실려갔다. 벌써 여러번이었다. 부모들에게 큰 지진이 안 와서 그런지 처방이 안된다. 그래서, 정신과 입원치료를 처방했으나 따르지 않았던 부모님. 이번 살충제를 먹었던것을 보고 이번에 애통하게 되었다. 부부사이가 안좋아서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는 입원을 시키기로 하고 두 부부가 십 년 만에 손 잡고 기도했다. 처음으로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회개했다고 한다. 이 큰 지진에 기초인 옥토가 움직인 것 같고, 이제 옥문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열림이다.
2. 스스로 갇힌 자가 될 때 간수의 마음을 여십니다.
27,28,29/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사건.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 바울에게는 화답이었다. 자유케 되는 사건이었으나 간수에게는 자결할 사건이었다. 죽을 사건이었다. 같은 사건이 어디는 구원, 어디는 심판이 된다. 남편이 갔어도 믿음이 없었다면 심판이었을텐데 찬송의 사건으로 된 것이 이와 같다. 로마에는 죄수를 도망치게하면 간수가 대신 죽어야한다는 법이 있었다.
절망속에서 자긴 죽은 목숨이니, 칼을 빼어들어 자결할려는 그 때!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우리가 다 여기있다고 외쳤다. 여기는 참 너무 이상한 상황이다. 감옥문이 열렸는데, 죄수들이 다 모여서 안 나갔다. 모든 죄수가 다 같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죄수들이 옥에서 나가길 얼마나 소원했겠나? 아무도 안 움직인 것은 매 맞고 스스로 갇힌 바울의 결론이다. 하나님의 인정이었다. 스스로 구원을 위해 갇혔다. 성령의 열림은 바로 이런 것. 자신의 죄를 보고 마음의 문이 열리니, 옥문이 열려도 안 나가고 반납한다. 자유가 주어졌는데 반납한다. 베드로와 바울은 좀 다른데, 베드로는 환상중에 옥중 광채를 보고 따라나섰지만, 바울은 안 나가며 인도를 받았다. 쓰임이 다르다. 죄수들은 이미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공동체가 되어 그 곳이 옥이 아니었기에 안 나갔다. 어디나 대가지불이 있어야하기에, 바울의 목적은 자유케하여 나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 종이되어 이 낯선 땅에서 찬송을 부를 가장 힘든 또 한 사람을 보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을 성령께서 열어주시기를 바랬던 것. 사나 죽으나 하나님 것이 되었던 나머지 죄수들은 스스로 방문을 닫고 여전히 지진가운데 있었던 것. 그 때 지체를 도와야 한다. 간수는 자고 있었다. 자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어떤 말도 안 통한다. 그래서 지진의 사건은 바울의 결박을 풀어줄 뿐만아니라 자던 간수도 깨우는 일이었다. 내 삶을 흔드는 일은, 그 사람 귓가에 - 열려라 참깨! 하는 일이다. 이것이 나팔소리다. 내 평생 만날 수 없었던 예수를 만나는 축복의 사건이라고 알려주는 것. 죽을 사건이 아니기에, 바울은 놓치지 않았고 여전히 감옥을 지킨다. 누구를 구해야 할지 하나님이 큐티로 타이밍을 알려주듯 알게된다. 사건을 해석 못해 자결하려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고 스스로 종이 되는 것.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종된 바울이라고 소개한다. 학교가 잘 가고 돈이 벌리고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무렵, 지독한 가난의 옥에서 풀려났다. 질병의 옥에서 풀려났다. 아프리카 선교를 가는 것 보다 내 눈 옆의 그 한 사람을 찾아 소리질러 니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하며 우리가 여기있다며 공동체가 되어주는 것. (목장모임) 반드시 내 옆에 그 한 사람이 있다. 바울이 마게도냐 전도를 통하여 유럽으로 건너왔지만, 귀신들린 여종, 루디아 그리고 이번엔 이방인 간수 한 사람. 항상 그 한 사람에게 초점을 둘 때 유럽이 열린다. 지금까지 한 사람에게 초점을 두었던 적용이 한 사람의 메일을 받고 답장하는 것. 그것으로 온 교회가 열렸다.
수 많은 아버지 외도, 아버지로부터 성폭력, 등등 수 많은 고난에서 이번 주 처음으로 있었던 청년부 빕스캠프에서 나눔이 오고갔다. 각자 자기의 갇혀있는 환경을 나누었고 사역자들이 되려 놀랐다. 부모님들이 별거 중이고. 서울대 붙어서 서원기도를 했는데, 서울대를 졸업을 못했다는 나눔도 있었고. 조울증 약을 털어넣었다는 자매 이야기도 있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청년이 우리 청년 옆에서 듣다가 집에가다가 끄지 않고 다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입시문제로 부모님과의 갈등 - 정신병원에 4개월이나 입원했었다고 나눔하다가 자기도 공동체에 들어오고 싶다고 나눔했다는 것. 자신들의 옥토가 열려서 죄의 뿌리와 수치를 나누는게 불신 청년의 마음이 열렸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몸을 상하게하지말라는 나눔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나눔을 하면, 그렇게하고도 결혼이 되냐고 얘기가 나온다. 18년간 이런 나눔 마음대로하고 다 결혼했다. 양육받은 커플들은 이혼도 한 커플 없다. 하나님이 이 나눔에 책임을 지신다. 꼬이지않고 열렸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로도 청년부 간증으로 낙태와 동성애했던 사람을 보고 첫 부임한 분이 저런 나눔을 하냐며 욕했었다. 그러나 그 자매와 결혼했다는 것. 신비로운 것은 이 결혼 안 했으면 사역이 안 될 뻔했다. 이번 주간에도 알콜 중독, 실직으로 그을려고 했던 남편에게 와이프가 내가 함께있으니 자살하지 말라고 했더니 자살을 멈췄다는 나눔도 있었다.
적용/ 옥문이 열렸는데, 한 영혼을 위해서 스스로 갇히고자 하는 것은? 손해가 겨우 만회됐는데 자청해서 손해를 보고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내 구원을 쓰지 않는 것.
3. 주 예수를 믿으라 입니다
30,31/ 간수가 드디어 스스로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하고 먼저 묻는다. 잠에서 깬 간수는 한 가지 사건이 기억나지 않았을까? 자기가 잠들기 전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매맞고 들어온 주제에 내 죄때문이라며 나누는 것을 봤다. 구속사를 고백하며 회개하고 찬송했던 장면을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지만 간수들도 들었을 것. 들었어도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이 바람펴도 자기 일이 될 때는 말씀이 생각이 난다.
바로 이 사람이 옥에서 찬송하던 사람이구나 하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생각 났을 것같다. 자연스럽게 나도 그 구원을 받아야겠다고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 육적인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나도 바울처럼 살 수 있을까? 어떻게하여야 나도 당신이 받은 구원 얻는지 질문을 하게 된 것. 인생 최대의 질문을 하게 한 것이다.
바울의 대답은 질문만큼이나 간단하고 최고로 대답했다. 회개하란 말도 안했고,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너의 집이 구원 받는다고 한다.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나를 주목하지말라, 내가 간밤에 얘기했던 내가 죽였던 예수. 나 대신 죽으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복음이 그렇게 좋게 회유하더라도 되지 않는다. 옥에서 이미 복음을 전하고 들었다. 억울하게 갇힌 사람이 자기 죄를 보면서 회개를 했었지만 자기 일은 아니었던 간수다. 이제 옥문이 열렸는데도 자유를 반납하고 간수 곁에 있어줬던 바울. 간수가 질문을 하니, 그때서야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마무리한다. 임팩트가 있고, 복음은 이렇게 전하는 것.
목사님도 삶으로 나누고 전할 때 많이들 영접했으나, 보통때 영접예배/임종예배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3-4분이 있었다. 부목사님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의 특징이 자녀들과 사람들에게 삶으로 본 적 없으면 그렇다. 기도와 복음으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거의 다 영접을 했던 것. 지금 눈 앞에서 안되지만, 삶으로 본을 보이며 예수가 밥먹여주냐고 할때도 그러게요~하면서 잘 당하고. 그러면서도 초청장을 계속 넣어주는 것. 삶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전할 때, 오직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갇힌 자가 될 때, 비로소 중요한 지진의 때에 회개가 일어난다. 물론 바울 가정은 안열렸다. 수준이 그만큼 높아서 뒤에 해주지만, 바울때문에 온 인류가 돌아오게 생겼다. 그 가정이 안 열린 게 아니다. 그 가정이 수고해서 온 인류가 열린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튼 바울의 한 마디로 믿음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32/ 지진으로 옥문이 열린 것 다 잊어버리고 이제 간수의 집에 가서 그 집에 복음을 전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지진이 오던지 아니던지 말씀만이 인도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은 바울이었다. 어떤 말을 전해야할지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을텐데, 오로지 우리가 전할 것은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오직 예수로 전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접을 하게 된다.
적용/ 내가 이 세상에서 듣고 싶고,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주 예수를 믿으라입니까, 나를 믿으라 입니까?
마지막 자녀들에게 한 마디를 무엇을 남기고 싶습니까?
성령의 열림은, 옥문이 열리고 내가 나갈 수 있지만 스스로 갇힌 자 되는 것이 되니 한 마음이 열리고 이제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할때
4. 가정이 열립니다.
33-34/ 성령의 열림의 결론은 크게 기뻐함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니 가정이 열렸다. 날마다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 오라고 했더니 그 한 사람 열려서, 그 가정까지 열린다. 그래서 목장예배를 그렇게 진심이다.
복음을 듣고 드디어 간수는 바울과 실라 처지를 살피게 되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게 보였다. 곧장 수돗가로 가서 씻어주며 간수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으니 영혼의 상처가 씻기게 되었다. 내 마음이 열리니 상대방 아픔이 보인다. 그 아픔을 향해서 나가게된다. 조금 전만해도 간수와 죄수 관계였으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간수-죄수가 한 지체가 되었다. 우리들교회가 차별이 없는 원리와 같다. 마음이 열리고 세례를 받으니,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차린다. 감방 죄수들에게 음식 던져주기를 얼마나 귀찮아했겠나? 근데 마음이 열리니 오히려 집으로 데려와 음식을 차리게 된다. 우리들교회 목장도 같다. 그것으로 기뻐한다. 인생의 유턴을 했던 간수와 그 집. 성령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그 자리에 섰다.
삶이 변한 결과는 큰 기쁨이다. 그 이유가 중요하다.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한다고 한다. 로마의 간수라면 고급공무원인데, 그에게는 기쁠 일이 없다. 온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다른 지체를 돌보고 섬기니 큰 기쁨이 되었다. 이 세상 기쁨은 오직 주 밖에 없다.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 특별히 주시는 큰 기쁨이 있음을 매 주 목격한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섬김을 한 분이 예수님 - 자기 스스로를 대속물로 주셨음. 내가 다른 지체를 섬길 때 모델링이 발동하여 예수님이 겹쳐져서 온 천하보다 더 귀한 구원이 생기고, 크게 기쁘게 된다. 섬김을 받는 자는 물론, 섬기는 자까지 다 함께 예수님으로 기뻐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쁨의 원동력이다. 마음이 열려서 옥 문이 열리고, 권한을 쓰지 않으니 한 사람의 마음까지 열고, 이제는 그 사람의 가정까지 열린다. 가정이 열리니 데리고 가서 대접을 하게 되고 매일 박수치고 큰 기쁨을 누린다. 그런 일이 매맞아 아픈 게 보였다. 우리도 목장에가면 피투성이된 그 사람이 보인다. 씻어주고 섬기니 기뻐진다. 성령의 열림이 계속 이어진다.
적용/ 여러분의 집이 열려서 목장 섬김이 큰 기쁨입니까? 큰 노력입니까? 여러분은 마음이 열렸습니까? 꼬였습니까?
아직 노력인 분이라도 계속 섬기다보면 큰 기쁨으로 바뀝니다. 꼬인 사람이 소화가 안되겠지만 계속적으로 들어두면 언젠가 열릴 줄 믿습니다.
공동체나눔/ 아들이 모텔에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집의 물건을 다 팔아서, 가족들 물건까지 훔쳐서 비행을 한다. 학교에서 집단 폭행까지 일삼다 경찰에 잡혔다. 그래서 아빠가 아들을 장난감으로 내려칠려는 그 때 아들이 신고를 해서, 아들로부터 접근 금지가 3개월간 생겼다. 그 접근금지를 어기면 2천만원의 구속이 된다. 그래서 아들을 내보낼 수 없으니 아빠가 집을 나오게 되었다는 것. 그런 아들은 아빠가 때려서라도 고쳐야지 누가 고치겠나? 인권이 왕노릇하는 나라의 실체다. 들으면 기가 막힌 일이다. 내가 목자를 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나? 할 것 같다.
중학교 애가 자살기도를하고, 얘는 이렇게 비행을하고. 장차 읽어줄 때 어떻게 클 지 기대합시다. 얼마나 큰 지진이 이 목자님께 왔는가? 몸을 상하게 하지말라며 평원 초원이 총 출동하여 큐티나눔과 위로를 해드렸다. 아버지가 내가 혈기로 아들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하고 회개했다는 것. 이런 관계는 절대 용서가 안되는데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어 부모가 회개가 된다. 자식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최고의 통로가 된다. 이럼에도 아빠가 회개하는데, 이런 사건을 덮어둔 다고 없는게 아니다. 어떻게 해결하여 갈지, 말씀으로 훈련받아갈 때 지혜로워질텐데, 아까 성실한 청년은 우리가 없어 한 달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옥토가 움직이는 사건이 되어 이 집의 죄를 보게하여 수 많은 가정을 살리는 일이 되기를 믿는다.
약재료가 많을 때 정말 한 사람을 살립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죄인들의 공동체인 우리들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이되고 우리 모두 각자가 되어 집이 열리고 옥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기막힌 사건이 생기지만, 우리 맷집이 커지고 나누면서 가니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결론
옥토가 흔들려 내 죄의 근본이 흔들려 옥문이 열립니다. 열리지만, 내가 스스로 갇힌 자가 되어, 내 앞의 잠든 간수의 마음을 엽니다. 그 사람이 나도 구원 좀 얻자 하니 주 예수를 믿으라 하고 전합니다. 그렇게되니 그와 그 집이 세례받고 구원을 얻어 큰 기쁨을 누립니다.
[나눔]
0328 나눔
A
청약이 탈락하고, 본격적으로 누나 안에 잠자던 귀신들이 흔들어 깨어져 나왔다. 7년 이상의 생활비를 보탠 억울함 귀신, 생색 귀신, 연민 귀신 등 고맙고 미안했던 누나를 이제는 생활력 없는 가족들이 놓아주어야겠는 시점이 다가왔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인인 내가 혼자 살려면 여건이 되지만 반납하고 엄마 아빠와 생활비를 부담하며 살아갈 계획을 하고 있다. 역기능가정에서 회복을 위해서, 또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정말 예배가 사수되는 집 안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누나를 분가 시키고 살고 싶다. 편하게 목장예배도 개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말씀으로 구원을 위한 값을 지불하고, 환경에 스스로 갇힌 자가 될 때 하나님은 구원으로 갚아주신다는 말씀에 아멘이 된다. 그럼에도 부담이 되는 부분은, 나까지도 부양에 눌려 생색귀신과 자기연민의 귀신에 눌릴까봐이다. 현실적으로 초년생인 나의 월급으로는 넉넉한 생활도 안 될 뿐더러 당장 몇 년간에는 정말 가난에 눌려있을 것이다. 10대때 생활고가 다시 트라우마로 작용할까봐 두렵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 때 하나님은 한 번도 멸시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좋은 것으로 갚아주셨고, 가장 큰 기쁨을 누리게하셨다. 제일 큰 기쁨은, 내가 하나님 속에 있다는 소속감이었다. 그것을 이제 나 혼자 느끼다가 엄마와 누리고있고, 이제는 아빠를 수복하고 형 누나까지 함께 누리고 싶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심플앤 임팩트로 전할 수 있을까?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온데, 정말 하나님이 그 때를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은근히 눈치보이는 회사분위기와 뻣뻣한 나의 환경에서 꿋꿋이 큐티하고 휩쓸리지 않고 나는 나대로 생활예배를 중수하고 싶다.
B
요즘 낙이 없다. 기쁨이 없고 앞에 군대가기 전까지 기간이 떠서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다.
C
대학 들어와서 룸메와 친해지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펴보고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누리고 싶은 특권들이 이제 보이는데, 안할려고 한다.
큐티를 하다가, 의문이 생겼다. 예전에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믿고 있는건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건지 믿고 있는건지 헷갈리고 그렇게 되었다.
기쁨과 쾌락이 있을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큰 기쁨이었다.
D
나는 바리새인같다. 항상 결백하고 떳떳한 게 중요했다. 부끄러움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어려웠고 죄패가 없는데 고백해야하니 우리들교회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율법적으로 살아왔기에 죄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지진의 사건이 아직은 없었다. 매일 일정한 하루기 때문에. 지난 주와 이어서 얘기를 하자면, 삶의 재미가 정말 없다. 오늘 간증자 4500만원 때문에 죽은 형제 얘기도 들었을 때,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갚을려고하지 죽진 않았을텐데 하고 생각을 했었다. 오늘 말씀도 2번 대지부터 계속적으로 불편해지고 왜 잔소리를 들어야하지? 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이다. 교회도 괜히 한 번 옮겨보고 싶고, 재미를 찾아서 떠나봐야하나 싶기도 하고. 월급이 들어오니 결국 사는건 주식으로 돌아오고.
이렇게 나눔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싶은데 내 방 주변에서 가족들이 꼭 일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무료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와중에, 미루다가 부목자 모임에 들어갔다. 늦게 들어갔지만 아주 재밌었다.
삶에서 목표와 효율을 추구해왔었는데, 뚜렷한 목표와 과업이 없으니 방향을 잃고 무기력의 옥에 갇힌 것 같다.
기도제목
송승환
1. 잘 쉬었다 갔으면 좋겠어요.
2. 삶이 재미가 없는데 재미좀 찾았으면 좋겠어요
3. 삶이 흔들릴 때도, 계획과 달리 버겁더라도 예수님 본받아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4. 맡겨진 부서. 양육자 직분 감당해 10주 동안 서로 섬길 수 있는 사람 되길
안식
1. 집을 구할텐데, 정말 기쁠 수 있는 보금자리 허락해주시도록
2. 그 곳이 꼭 예배가 회복되는 성전이 될 수 있도록
3. 두려운 가운데, 큐티를 눈치보지 않고 회사에서 할 수 있도록
4. 생활비를 내놓게 될 때부터, 생색이 안나고 구원을 목적으로 붙어갈 수 있도록
5. 양육 가운데, 동반자의 마음이 열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