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 07일
사도행전 15장
36절~41절
' 성령의 견고함'
'김양재 목사님'
36절 - '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
37절 - '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
38절 - '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것이 옳지 않다 하여 '
39절 -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절 -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얼마나 이땅에서 견고하게 살기를 원하는지 모릅니다.
진정한 견고함은 성령의 견고함이라고하시니,
오늘 성령의 견고함에 대해서 저희가 듣기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초대교회가 할례 입법 문제로 이방인교회와 유대 교회 두 개로 쪼개질뻔 했지만
성령의 결정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좋은 결정이 났으니 룰루 랄라 앞길이 뻥 뚫렸으면 좋겠는데
오늘 본문 보니 그렇지 않고 가장 큰 갈등 상황이 보입니다.
그러나 갈등 충만은 성령 충만 이라고 했기때문에 그 갈등은 성령을 견고케 합니다.
찰썩 거리는 파도를 지나 깊은 바다로 지나가는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함이 없습니다.
성령의 견고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끊임없는 형제 의식의 돌봄입니다.
(35절)
안디옥 교회가 할례문제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어요.
많은 이방인들을 인도하고 세계최초 선교사들 파송하여 여러 교회 들을 세웠는데,
율법 주의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아 기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32절에 나오고 오늘 41절에 나오는 '견고하게 하다' 라는 뜻은
말랑 하다는거에서 딱딱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 시키다를 말합니다.
기대거나 붙어있을 지지대가 없어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튼튼한 지지대에 딱풀처럼 붙게 하는것입니다.
31절부터의 유다와 실라가 전한 위로와 권면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들리면 마구 흔들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중심을 잡을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유다와 실라가 전한 말씀에 여세를 모아 수다한 사람들과
함께 유하며 반짝빤짝 사명을 닦고 요한의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 들릴때 들을때 나타나는 현상은 계속 강조하는 형제의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36절입니다. 안디옥 교회 말씀 안에서 뿌리 내리고 자라게 하는 전하는 전념하는 중에
1차 전도 여행때 전했던 형제들을 다시가서 돌아보자고 바울이 제안했습니다.
며칠후에는 문자적인 날짜는 길어야 2-3달 걸립니다.
며칠후란 뜻은 사도바울이 개인적인 시간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매진함을 말합니다.
의미도 지닙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 보내심 잘 갔다 왔는데 2차때 거창한 계획있으심이 아니라
성령이 보내셨다기보다 '자신이 전도한 성도들 보기' 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견고함입니다.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소박하게 떠났다는것이지만
유럽전도를 나타내기도 해요.
항상 형제를 돌아보는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늘 형제의식을 말하지만, 머리로는 알겠지만 가슴으로 내려오기 어렵습니다.
형제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설교를 아무리해도 형제의식 때문에 하는것입니다.
교회 나오는 목적이 형제의식 때문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어떨때 가장 요동하나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요동한다.
형제의식 생기면 가족애, 목장, 회사 전부다 그 관계가 편해 지는것입니다.
성령의 결정하면 주시는 축복이 형제의식의 축복입니다.
왕왕 목사가 설교만 잘하면 된다고 합니다.
유대인 회당장들 설교 잘합니다.
그들도 자기들 끼리끼리 형제의식을 잘합니다.
바울에게 있는 형제의식은 이방인도 형제이고, 유대인도 형제고, 전도한 자도 형제입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참으로 진정한 형제의식이며 사람을 견고케 합니다.
그는 편지에서도 성도에게 직접 방문하고, 로마서, 고린도전도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요
이미 1차 전도 여행 때 더 짧고 편한 귀향길 마다하고, 토로스 산맥 마다온길(온길을 그대로) 따라 들어왔잖아요.
이방인 선교 할례논쟁으로 시작된 갈등이 성령의 결정으로 해소되었지만
실제로 이방인들 핍박이 있는곳 할례주의자들의 공격이 위협이 될지 뻔했기 때문에
공격이 시작된 안디옥 루스드아 이고니온에 상황을 염려했습니다.
그는 이제 굉장히 성공한 사역자이고,선교사입니다.
인정받는 위치에서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 잘하면 되는데 며칠만에 다 내려놓고 떠나고자 하는것이 견고함입니다.
바울이 제안하는 재 방문 15:14 돌보심입니다. 히브리어로 파카드, 헬라어로는 에피스켑토마인 이라고 합니다.
영혼을 돌보기 위한 심방을 한다고 한것과, 마찬가지예요.
성령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을 괴롭히려고 했던 죄에서 활짤 열고 다시
이방인에게 가는 적용을 바울이 대표해서 하는 상징. 시제를 부정과거를 썼습니다.
결정을 단번에 따르기로 햇다는 뜻이기도 하고, 돌이키는 모습 볼수 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구원에 초점이 있습니다.
구원에 초점이 있는 사람은 형제의식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형제 하면은 베드로와 야고보의 '형제들아' 의 그 간증을 기억합시다.
적용
거칠 파도가 와도 날 견고하게 하는 것은 형제 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되세요?
어떤 힘든일이와도 우리가 주 안에서 한 형제며 견고케됩니다. 지지대가 되어서 주와 함께 날아 오르는것입니다.
이번주 형제의식 안된다는 목자님들의 나눔만 읽어 드릴게요 물론 되는분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남편이 바람 피우고 감옥에 갔을 때, 가장 회개한 것이 공동체를 무시한 것이었다.'는
평원님의 간증에서 그때 본인이 부자이고, S대를 나왔기 때문에 공동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어요.
또 어떤 목자님은 '목장을 오래 하다보니 반복되는 질문과 끝이 없는 나눔이 힘듭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겹습니다. 형제의식이 안 됩니다.'
또 '목자인 제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주는 목원들은 같이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세속적이고 이기적으로 잘 나갈 때는 발길을 딱 끊다가 아쉬울 땐 목장에 나와서 자기 말만 하고,
목장 지체들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들과 이게 또 이제 형제의식을 가지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매주 목장 예배를 드리지만 은혜도 안되고 힘들기만 하다.' 목자들은 모여서 이런 나눔을 합니다.
이제 또 목자부부가 싸우는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언제나 해결되고 정리된 후에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데..
그래서 이제 그 권찰이 자꾸 나를 ampndash남편을- 고발을 하려고 해도 말하지 말라고 맨날 찍어 누르고 있다.'
이런 목자님의 나눔이에요.
또 어떤 목자님은 '우리 목원이 우리 목장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권찰이 맞아요. 우리 목자님은 재미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약간 농담을 하니까 여기가 사회 계모임이에요?
무슨 농담이에요? 또 이랬다'는 거예요. 재미없다고 해서 농담했는데...
그런데 이제 어떤 분은 '진짜 화가 치밀어 아내와 아이를 힘들게 합니다.
합방은 했으나 부부관계가 안됩니다.
관계성이 떨어져 직장 그만두고 혼자 일합니다.
이런 나눔을 하시면 공감이 안 되고,
애통함도 별로 안 들고, 정죄감만 드는데.. 이게 왜 안 될까?' 이러고 또 나눔을 해요.
그러니까 목자들도 목자나눔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목원 얘기만 들으면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이제 못해. 막 힘든 얘기만 들으니까...
좋은 얘기만 하지 않고, 목자들도 이런 나눔을 이제 해야 살아요.
평원도, 목자도, 목원도 다들 힘이 듭니다.
성령의 견고함으로 나가지 않으면 우리가 무너집니다.
이세상 어떤 모임에도 어떤 소리 들어주겠습니까,
우리가 서로가 연약하여 돌봄의 대상입니다.
먼저와서 목자가 되신겁니다. 형제의식이 없으면 하루가 힘든것이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가장 결론이 형제의식입니다.
형제의식이 가장 발표되는것이 목장이고,
목장에 잘 붙어있는 주시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대대손손 내려가는 축복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고학력자에 교회 변기청소 외 늘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시루떡을 하셨어요.
먹고 싸주고 해주셨어요.
그 당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떡 한다고 하면은 대단한거예요.
그리고 남의 집에 가서 빨래를 해주셨어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창피해요. 제일 부자동네 사시면서. 우리엄마는 왜저럴까 ..
부끄러웠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여기 서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우리엄마가 당연히 무시가 되요.
엄마의 빨래 변소청소 하니까 그것 때문에 제가 여기 서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세상모임을 어디서 영양가 있는 모임 하나요?
목장은 천국 공동체 인내의 최고 장소입니다.
듣고 말하는연습 하니 듣는연습 훈련 하니 축복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돈주고도 못사는것이 목장입니다.
이상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목장이예요.
이상한 사람 아니면 들을수 없습니다.
목장 잘 붙어 있기에 훈련하면서 세상에서도 축복받을수 밖에 없습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 들어야 하는데 구원 받으면 형제의식 생깁니다.
저희 어머니 보면 예수에 미쳤다 생각들어요.
엄마만 보면 숨이 막혀요. 다른 사람도 그렇겠죠?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나의 이런 모습 못 보고 가셨지만 딸인 제가 사명자가 되어 걸어갑니다.
형제의식은 당대라도 후손이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섬김을 손톱 만한것이라도 기억하십니다.
꽁짜가 없습니다. 지겨워 하면 기억할손톱이 없어진다.
반드시 하나님은 다 기억하신다 생색내지 마세요.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데 길다 짧다 따지고,
예배 시간에 자는데 왜깨워 그따구 짓을...
예배시간에 물먹지 지금? 커피 마시냐? 청년부 목장은 축복입니다.
지금까지 18년 동안 한 커플도아무도 이혼 안하십니다.
여러분이 잘났어요? 전부 아파 전부 병원갑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손톱 만한것도 기억하셔서도
목장의 나눔 손톱 만큼의 나눔 기억하십니다.
돈도 없는데 빵 사먹인것, 대대손손 축복하십니다.
목장은 이상한 것을 들으러 가는것. 그 훈련이 최고입니다. 할렐루야.
회사서도 잘다닙니다.
18년이 되어도 열매를 나눕니다. 청년부 목장에서 나누는 연습하니,
알량한 아내의 모습, 시어머니모습, 남편모습, 장인모습, 장모모습 드러내는것입니다.
청년부에시 이미 나눔 훈련 했기 때문에 결혼후 아무도 이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청년부 아무도 이혼 안하는게 말이됩니까,
바람한번 피면 이혼하고 시어머니랑 싸우면 이혼하고 목장이 축복의 근원입니다.
적용
여러분은 목장에서 어떤 목자이고 어떤 목원인지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눠보세요.
끊임없이 돌보고 있습니까? 돌봄을 받고 있습니까?
자기를 보면 압니다. 다른 이야기하면 듣기 싫어하고 사랑이 없다면 안되십니다.
나는 늘 돌고보 있습니까, 돌봄을 받고만 있나요?
나에게 편한 이야기를 할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어떤 초원보고서를 받고 '참 바쁘신데 이렇게 하시느라고 수고가 많다'고..
이제 무슨 사안이 있어가지고 그랬더니
초원님이 저한테 답장 보내기를 저를 그렇게 편하게 마구 야단쳐주는 초원이 되겠습니다.
편안 사람이 못되서 편한 이야기만 썻다고,
제가 그렇게 칭찬만 했다 그거죠. 칭찬을 해줘도 우리는 불안합니다.
자기가 불편하니까. 그래서 제가 그냥 와 수준 굉장히 높으시네 거기까지는 답을 못했네요.
그러니까 칭찬을 하나도 안하면, 내가 불편하구나. 이렇게 알아듣는다 이거죠.
(아마도 목사님께서 칭찬만 하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신다는 것 )
우리들교회 초원들 수준이. 아 목사님은 내가 불편하구나. 이러셔야지.
그렇게 칭찬을 안해준다고 우리들교회는 사랑이 없어. 맨날 정죄만 하고 판단만 해
그거는 이제 늘 돌봄이 필요하신 분인 거죠. 목장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분한테는 돌보시고,
또 이제 또 뭐 각자 안식의 종류가 다 다르니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양육이 됩니다.
아무에게도 편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수준이 약해서 조금만 이야기하면 사랑이 없냐 하고 조금 편하고 이야기 하고,
좋은 이야기 하면 불편한것입니다.
늘 나한테 칭찬만 하나, 아직 멀었습니다.
회개 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따따닥 니 주제를 알아라, 불신결혼 절대안되
라는 되는 말을 하나 생각해보세요.
그런말을 듣는것은 내 수준이 되는것입니다.
여기서 들어야지 자다가도 떡이 생깁니다.
다른교회에서 온 사람은 처방하면 잘 못듣습니다.
사랑 위로 이것만 좋으면 매력없습니다.
매력이 꽝입니다. 연애도 못합니다.
아무 이야기도 드러낼수 있어야 합니다.
목장에서 연습하는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37절)
바나바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려고 하는데 마가라는 요한 사람을 데리고 간다고 합니다.
마가는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출신이며, 이 마가가 예수님알고, 열두사도를보고,
베드로를 보고, 바울을 보고, 헬라어를 잘하고,
어머니 마리아도 그냥 그 집을 다 예수님의 그 유월절 장소와 기도처소로 다 내놓고...
다락방 기도회 했고 부자입니다.
예수님 보고 영적 육적 다이아몬드 바나바의 사촌동생 조카입니다.
바나바와 혈육입니다 바나바가 마가를 아꼈습니다 마가를 잘 세워 주는것이 교회 미래를 위해서 생각했을것입니다.
마가를 1차 전도여행때도 수행원으로 데리고갔습니다.
하지만 마가는 그 수행원의 의미를 잘 모르고, [휘페레테스]라고
기억나시죠?
이 종의 의무를 저버리고 토로스 산맥을 앞에 두고 밤빌리아 버가에서
포기하고 힘들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더베 등에 세운 교회는 구경도 못했어요.
돌아가는 순간에는 '나 힘들어 못해. 한발짝도 못가. 누가 뭐라해도 돌아갈거야.
' 바울이 치밀었겠어요? 예루살렘 가선 부끄러웠습니다.
걸림이 되었어요. 충분히 헤아린 바나바는 마가를 생각했습니다.
마가를 데려가서 수치를 다 씻어 주자, 마음고생 했겠다.
마가를 데려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울이 반대를 하는것이예요.
38절에 - 바울은 마가가 밤빌리아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을 자기들을 떠나 돌아간일 함께
알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합니다. 마가의 중도 포기는 자신들의 배신이기도 하지만 이방인 선교도
배신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배신한 사람 데리고 다님 옳지 않습니다.
단순히 옳고 그름이라기보다 이번 여행 심각하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이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얼마나 휘청거릴지 알기 때문에 언제든지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는 이 마가를 데리고 갈 수가 없죠.
많지도 않고 한명 데려가는데 한명 데려가면 되나 한번의 기회를 줘야 한다.
바나바 편 손들어 봐요? 바울편 손들어 봐요?.
바울의 가차 없는 거절과 바나바의 맹목적 애정이 충돌했습니다.
인류를 바꾼 큰 차입니다.
하여튼 이 가차 없는 거절과 맹목적인 애정이 충돌했는데 이 둘의 차이가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차이인데 제가 큐티를 예전에 할 때도 저는 이제 원어의 뜻을 알았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럴때
원어를 찾아보지 않아도 신학교 가서 생각하는것. 원어 일치하는것입니다.
바울도 똑같이 데려갑니다. 살펴보니 누가의 뛰어난 문학적 자질 뛰어났습니다.
37절 부정과거 부정법 단회적으로 즉시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고, 가고자 한것은 미완료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 지속적으로 말했습니다.
바나바는 전도 여행을 끝까지 한 사람을 선택 하기보다는,
조카에게 한번더 기회주는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 보다는 자기 체면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38절에 바울이 같이 데리고 가는것은 바나바는 부정과거 인데 그런데 여기는 현재 부정법입니다.
현재 부정법은 지속적인 행위로 같이 데리고 가는것.
바울은 한번 데리고 떠나는것이 아니라 사명의 일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다니는것
중요하게 보는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나의 큰 차이.인것이죠.
바나바에게 있어 마가라는 것은 한번 데리고 다닌다는 별수롭지 않은
문제였지만은 끈질긴 자기의 체면이 더 중요했습니다.
반면에 바울에 있어서 마가를 데리고 가야하는것은 끝까지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으로 신뢰감이 없는 사람과 부딪혀야 한다는것에 부담감을
안겨 줘야 한다는것 알수있었습니다.
원어의 시제가 하나로 나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가를 책임 지는것이고, 바나바는 한번 기회를 줘보자.입니다.
바나바가 부각 되는것이고. 마가 자체 생각하는것입니다. 바나바 원함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분별으로 의견이 충돌합니다.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가는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역도 해야 하니까 데리고 가는것은 옳지 않다는 것보다도 확고한 생각입니다.
반면에 바나바는 한번 데리고 가보자 지속적 요구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의 뜻을 아는것이 중요한것입니다.
똑같이 데리고 갔는데 이럴때 찾아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한절씩 묵상하니 제가 묵상 했던것이 원어의 결론입다.
저 옛날 사도행전 큐티 햇을때 똑같이 큐티했습니다.
원어만 읊어 대는것이고. 바나바의 원함입니다.
바울의 충돌이 있습니다. 바울은 마가의 행동 근거를 평가하며,
바나바는 조카 관계에서 비롯되는 원함 말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감성이면 바울은 이성으로 바나바는 정으로 바울은 구원의 시각 가지니
서로의 견해가 좁혀질수가 없습니다.
가족에게 한번더 기회를 주고싶은 바나바는 마가의 객관적 평가를
내놓는 거절하는 바울이 섭섭합니다.
목장 처방할 때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을 섭섭하다고 합니다.
눈앞에 가리는 것으로 옳고, 그름 따집니다. 반대로 구속사 귀한 사역 위해
최대한 믿을 만한 사람 데리고 간다는 이성적 판단 당연한것입니다.
혈연에 메여서 우유부단한 바나바에게 바울은 실망합니다.
2차 전도 여행 얼마나 중요한대 구원의 시각에 다가가는 요점이 중요합니다.
인본적일수록 앞에것밖에 모르며 좋아하는 사람이 불신자라서 도장찍어주길 바랍니다.
안된다고 말해주니 교회 안나가는것이고. 욕을 먹어도 안된다고 해줘야 합니다.
39절 -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먼저 갔어요.
이방인 제우스 헤르메스 같이 보일정도록 환상의 단짝 인것 같지만 갈등으로 갈라졌습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갈등은요,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생긴 갈등에서 시작된 거 아시죠?
지난번 7절에 베드로의 형제들아 간증에서 봤지만,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안디옥에 온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주의자들이 오자
유대인과 안 어울린척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나바도 그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 2장 11절 13절 이야기다.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습니다. 은사도 몰라보고 그럴수 있나 하겠습니다.
그렇게 11절에 베드로를 책망했는데 바로 20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11절에는 책망하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는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이런 믿음 주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책망 할수 있었습니다.
혈연 하면은 복음 전파 안됩니다. 인본적 베드로 책망 아닙니다.
그때도 바울이 바나바에게 직접 뭐라고 안했어도 그 상황에서도 바나바도 유혹된다고 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편한 마음 가집니다.
바울이 보기에 바나바는 자기와 함께 이방 선교를 같이 갔다온 선교사인데 베드로 따라 외식하니 마음이 안좋습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보기에 바울은 자신이 추천해서 이렇게 교회로 데리고 온 사람인데 자기 없음 안되었을텐데
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감히 그렇게 비판할 수 있나.. 원망스러웠을 것 같아요.
바울은 원칙 주의자 인가 복음에 목숨을 겁니다.
정이 중요한 바나바는 서로가 감정이 안좋고 마가를 두고 터집니다.
인본적 생각으로도 갈라서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해 복음을 위해 갈라섭니다.
기복적인 가치관으로도 도저히 해석이 안됩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갈라섬 사건을구속사적으로 차례차례읽어 가야 합니다.
회사, 직장, 자녀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아니면 억울해서 살수가 없습니다.
갈라섬의 사건이 특별히 이방선교 이어 가는 바울에게는 반드시 있어야만 한 사건입니다.
바울이 사람을 전혀 의지 하지 않도록 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봤지만, 바울은 참 외로웠습니다.
누구보다도 유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유대교에 대한 열심이 있던 사람인데
이제 그 유대인에게 시기와 미움을 온몸으로 받고 있어요.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까지 했죠.
바울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없고 바나바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바나바가 있었기에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올수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있었기에 안디옥에서 선교 할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편이 되어주고위로 해주는 바나바가 없었다면 1차 선교여행도 할수없었습니다.
이방인의 할례 논쟁에서도 예루살렘 교회에 호소할수 있었던것은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에 바나바 없음 아무것도 안됩니다.
강직한 바울이라도 저절로 바나바가 의지가 되었습니다.
돈주는 친정엄마 안믿는 시어머니가 최고입니다.
아무리 교회 다녀도 의지합니다. 때만되면 못 내려 놓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같이 복음 전하니, 인간이기에 바울에게 기대는 마음 없을수 없습니다.
앞으로 구원 사역 위해서 바나바의 약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앞으로의 구원 사역을 볼 때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향해서 가는데 외식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바나바가 율법주의자 유대인들과 같이 외식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같이 밥 안먹은척 합니다.
또한, 마가 사건에서도 인본적인 태도로 실수 합니다.
바나바 실수입니다. 성품에 크라이막스 드러납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갈라선 사건이 바나바와 바울이 사람을 의지 하려던 마음을 온전히 깨닫고
돌이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화가 아니라 복입니다.
갈라섬사건을통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 할수 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의지 할수 없는것이 성령께서 견고하게 하시는 성령의 견고입니다 .
성령께서 정말 가장 견고하게 하시는 성령의 견고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 었다고 했는데 심히는 원문에 없고, 그냥 '결별했다는것' 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툼이란것은 결별 한단 뜻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한번더 쓰였는데 같은 단어가 거기에서는 다투는 게 아니고,
'사랑과 선행을 강하게 일으키는 자극 주는 것'이렇게 다투었어도 사랑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의도치 않은 갈등으로 바나바는 믿어 지지도 않고 믿을수도 없지만 바울 보다는 마가를 선택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바나바 없이 사역 할수 없습니다.
바나바 외식 사건 1차 선교여행 이후 쉬운 단순한 문제 아닙니다.
인간적인 실수를 바나바가 합니다. 바나바는 고난이 없습니다.
인간의 성품이 여기까지 온것은 최고의 성품입니다.
성품의 한계는 여기까지 입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은 마지막판에 이런것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라선 사건은 복입니다.
사람을 의지할수 없게 되는것이 하나님만을 의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견고하게 하시는 사람 의지 하지 마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성령의 견고함이다.
여기서 바나바가 끊어내는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바나바가 딱 마가 선택 하자 마자 자기 뜻대로 두리 선교 여행 가야 하는데
조카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 자기 고향으로 먼저 갑니다.
바나바는 이방인 선교 하자는 대신에 혈육과 고향 지역 감정을 택합니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고향과 혈육이 있습니다.
물론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양육을 합니다.
후에 다시 바울의 동역자로 인정 했습니다. 마가복음도 기록할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배타고 떠났습니다. 사도행전의 무대에서는 퇴장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초기에 밭을 팔아 헌금 하고 좋은 성품으로 입장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견고케 하는데 크게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는 500-1000키로 떨어져있는데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바울을 데려갔습니다.
직접 편지를 안보내고 본인이 움직이고 그랬는데..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세상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함께 첫 이방 선교와 함께 주교한 바나바가 마가를 택한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정말 별인생이 없습니다.
이세상 시종일관 인정받는 사역을 했다면 자기 모르는 세 바나바가 하나님 자리에 가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죄가 있습니다. 바나바 없이는 사역을 할수가 없습니다.
적용
바나바처럼 바울처럼 내가 절대 의지 하고 있는 사람이나 환경은누구 입니까?
여러분의 기준은 감정입니까, 이성입니까, 구원입니까, 정입니까?
세 번째, 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입니다. (40절-41절)
여기서 '견고하다' 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사도행전에서만 4번이 나옵니다.
지난주 설교 15장 32절 이번주 설교 15장 41절 두 번 나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다투고 갈라선 이일이 교회들을 견고케 한다는 일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비온뒤 땅이 굳는다고 했는데 그런것 같습니다.
과연 이다툼은 세계적인 다툼이 되어서 세계적 견고함이 되어서 세계적인 선교로 나가게 된것입니다.
근데 먼저 39절에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바나바가 감정적으로 행했습니다.
갈라 섰습니다. 갈라 서자마자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니까 먼저 떠났으니 바울도 40절에 사람이 없으니까 누군가를 택할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썻지만 바울편에 손을 들어줍니다.
형제들 주의 손을 들어준 사람은 바나바 아닌 바울입니다.
이 사건 후 바나바는 사도행전에서 사라집니다. 할수없이 실라를 택한 바울입니다.
갈라선 사건후 사람의 의지 안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홀로 감당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사람 준비시키다 보니까 실라가 있는것이다.
실라는 로마 시민 이었는데 이제 나중에 보면. 그런데 우리가 지난 주일에 안 읽었지만
15장 34절이 있는데'없음'으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개혁개정 성경 밑에 성경 맨 밑에 나누의 주에 보면 이렇게 써 있어요.
어떤 사본에는 실라는 그들과 함께 유하기를 작정하고가 있고,
35절에 바나바와 바울도 안디옥에서 유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제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실라가 같이 편지를 가지고 오면서 실라는 바울에게 은혜를 받은 거 같아요.
그리고 (은혜를 받고)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인정받은 자리에 지도자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다 내려놓고, 안디옥에서 바울과 같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다와 실라는 예루살렘의 지도자잖아요.
유다는 돌아갔어요.
실라는 남았다는 거예요.
바울의 짝으로 손실이 없습니다.
마가가 남았지만 바울이 쓰겟다고 한것이 아니라 바나바가 먼저 떠나 실라를 택한것입니다.
주의 일 하는 사람을 허락하심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하면 사람을 택하심니다.
교회에 돈이 있고 건물만 있어도 사람만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건물이 있으면 사람이 올줄압니다.
바울은 여정에 있는 여러 교회에 심방하며 그들을 견고하게 했습니다.
바나바가 배타고먼저 떠남으로 인해같이 갈수 없음으로 바울은 육료로 가는 심방 결정합니다.
지도 좀 보여줄까요?

그러니깐, 지금 이제 예루살렘에서 저기 안디옥으로 갔는데,
안디옥에서 바울은 저 위쪽으로 육로로 통해서 길리기아,
시리아 지방과 루스드라-더베를 그 위쪽 육로를 통해서 갔고.
바나바는 구브로 섬으로 마가를 데리고 갔다는 거죠.
그 다음에 이제 바나바 일정은 모르니깐 여기까지인 거예요.
이렇게 해서 제가 오늘 다시 천천히 읽어보니깐,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바나바가 감정적으로 움직입니다.
혼자서 구브로로 먼저 떠납니다.
바울은 모든 것 변경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나바가 먼저 다 시작합니다. 순서적으로 알수가 있습니다.
의지했던 바나바였기 때문에 바나바가 버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헤어질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여기까지가 부르심을 받는 사역으로 쓰임을 받았음니다.
역할이 대단합니다.
열두 사도 역할에 바울사도역할 있고,
각자의 역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말씀이 딱 있으면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됩니다.
적용
의지했던 사람과의 심한 다툼이 시간이 지나고 우리를 견고하게 한일 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도 다툰다고 내 다툼을 합리화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나바와 바울도 다투는데, 나도 싸워야지. 이건 대단한... 비교 할 것이 안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다투는 얘기를 좀 해야되잖아요. 큐티 나눔에 카톡방에
디모데전서 5장의 천국 공동체라는 말씀을 통해 나눔을 (이분은 지금 목원인데)
여러분들이 각자 목장에서 큐티를 나누는 훈련은 정말 유익한 훈련이에요. 좀 다 나눠보세요.
하여튼 이런 것들은 형제의식이 되게 하는데 최고이고요. 나중에 흘러 떠내려갈 때도 이게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목장 카톡방에 올라온 큐티나눔입니다. 아휴~ 길게도 쓰셨더라고요.
얼마나 천국 공동체가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는데,
청년 시절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신앙생활을 하게 된 후,
열심을 가지고 선교단체와 유명 교회에서 말씀 훈련을 받고 전도 활동도 했습니다.
그러나 직업군인으로서 임관한 후에 (육사 출신이죠.) 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직된 군대 문화로 인해 군 교회에서 영적 공급을 받지 못하고
특성상 여러 교회를 전전했기 때문에 영적 공급을 받을만한 공동체가 없어서 영육 간에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결국, 결혼 13년 만에 아내가 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여 이제 해달별이 떨어지는
심판의 철퇴를 맞고 통곡하면서 회복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재혼을 해서 우리들교회에 정착해서 이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아내와 자녀들 모두 목자가 되는 상급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군대 전역 후에 (군인들이 또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교회에서 성전 문지기 경비직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6개월간 일을 하다가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저는 교회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하며 교만을 떨어 교회에서 잘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 목자직에서도 치리를 받게 되어 부목자로 강등되었습니다.
교회 경비직에서 잘리면서 마음속에 쓴뿌리가 생겨 교회에 대한 원한과 미움으로
목사님과 운영위원들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불평불만을 하였고, 다른 교회로 가고자 했습니다.
초원지기와도 싸우고, 마을지기와도 싸우고. 여러 갈등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붙어만 있어도 은혜라더니 그렇게 교회와 목사님을 욕하고 독설을 퍼부었음에도
천국 공동체에 속해 있으니 마음의 불평불만이 사그러들고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배우는 기회가 되어서
이제는 내 죄를 먼저 보게 되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정욕의 죄와 유부녀와 불륜의 죄를 지었지만 다른 성도님들의 간증과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으며
다시 회복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진정 천국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자기 죄를 볼 수 있는 목장이 있는 진정한 천국 공동체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것을
아주 깊이 깨닫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있으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조금이나마 감당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온라인 예배를 핑계 대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이 마음에 찔리긴 합니다.
무슨 돈이 있어서 골프를 치러 다니시는지 이것이 궁금해요.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 집사님이 청년 때 -육사 다닐 때- 제 큐티 모임에 왔었어요.
그런데 그때 큐티가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선교단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큐티를 하고 적용을 시키면 '저는 아프리카 선교 갈 겁니다!'
뜬금없는 소리만 그렇게 하고, 너무 혼자 경건한 거예요.
그냥 아주 절벽인 거예요. 말이 안 통하는 거예요. 말이.
그러더니 결국 이렇게 말이 안통해서 돌고 돌고 도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육사 졸업 반지를 저한테 줬잖아요.
은반지에다 루비 달린 거. 그런데 말씀도 안 들리는데 저를 왜 좋아할까요?
그것이 알고 싶어요.
그래도 그때 왔던 것 때문에 안 떠나고 이렇게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참으로 자기가 음란한데 우리 큐티 모임에 와서는 그렇게 맨날 아프리카 선교만 간다고 하고...
부모님한테 효도한다고 그러고.. 거룩하게 얘기하고 이러는 거 있죠?
그러니까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고요.
그리고 자기 죄 가운데 있으면 이렇게 와서 불평불만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다 잘렸다고 그랬잖아요.
아, 이분이 이렇게 얘기를 해주니까 내가 속이 다 시원하네.
우리들교회는 치리를 해요.
그래서 이렇게 거룩이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성령이 우리들교회를 이 정도로 견고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미워서 그랬겠어요?
옛날에 재수생 큐티 모임 왔다고 '와~' 이러겠어요? 더욱더 단호하게! 자르고! 찌르고! 이랬죠.
그랬더니 지금 목원으로 이 나눔을 이렇게 길게 올린 거예요.
지금 목자도 아니라니까요.
다음 주일에 그 얼굴을 보시겠습니다.^^
이렇게 파도를 많이 넘고 넘어야 견고케 되는 모양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견고함은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죠. 주의 은혜에 이제 맡기는 것이죠.
그죠?
오늘 바울이 옛날부터 그러니까 자기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바울의 고백으로 베드로를 책망했을 바울을 생각하니주중에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이 사랑인데 다들 욕할것 아니냐, 은사도 못알아보고 은인도 못알아 보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의 고백 찬양으로 불러보겠습니다.
구원은 형제의식으로 불쌍히 여겨야 하는것입니다.
사람을 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견고함입니다.
주의 은혜에 맡겨야 합니다.
나한테도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찬양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 내가 산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
우리가 견고함이 목에 힘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형제의식에 돌봄이 있다면어떤 사건이 와도 요동함이 없을것입니다.
나는 돌봄 받기 보다는 돌봄을 해주기를...
절대적 의지하는 사람 이라면 하나님 의지하게 해달라고 갈라섬이
우리를 견고케 하는것이라는것을 알게 해달라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고 평등법이 통과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이번 명절에 정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해도 이러한 견고함의
주님의 심방으로 우리가 전화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돌봄을 표현하는 이번 명절이 되게 해 달라고 다 같이 우리 침묵으로 기도하십니다.
기도합니다.
지금 성령의 견고함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누가 뭐래도 우뚝 서있는것이 견고함인줄 알았는데,
갈라서고 심히 다투고 있는 가운데 사람을 의지 하지 못하게 하시고 형제의식이 굳건하게 자리 잡는 것임을
다시 한번 알게 하심을 알게 하십니다.
날마다 갈대같이 흔들리고 사람을 의지 하고, 형제의식이 부족하고, 견고하지 못합니다.
주님 정말 제가 견고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오늘 바나바가 평생의 주의일을 했어도 견고치 못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울의 외로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이 부르셔서 그길을 가는데 참으로 자기 고향사람 바나바는 같이 주의 일을 해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바울은 아무도 바울편 서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같이 주의일을 하는데 갈곳이 없습니다. 참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갈라섬이
세계 선교를 가져 왔듯이 내 옆에 바나바가 떠나도 옆에 실라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실라를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대단한것 비교하지 않게 하옵시고 형편 없어 보이는
실라를 견고함으로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우리들교회 우리들의 많은 적용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수리아 길리기아 교회를 견고케 함으로 모든 교회 견고하게 해주시옵소서.
태아생명 보호법 평등법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장 기도제목 ]
윤지혜
- 사람이 아닌 오직 주님과 말씀만 의지하도록
- 내게 허락하신 실라를 알라볼 수 있도록
- 큐티기도회에 기도올리고 같이 중보하도록
- 과제와 수업, 이번주 촬영위해서
- 조카들 양육위해서
- 신교제*신결혼 준비되어지고 인도함받기를
이은실
- 이사님이 지혜롭게 컨설턴트 교체를 다른 통역사들에게 잘 말씀할 수 있도록
- 아픈 내 마음 보면서 2개월동안 버틸 힘을 달라고
- 이번 사건이 내가 단단해질수 있는 계기가되도록
김자영
- 업무 잘 할 수 있기를
- 업무 분장이 될 때 지혜롭게 택할 수 있도록
김다혜
- 가족구원
- 되어짐의 은혜를 구하며 늘 말씀과 기도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 분주한 마음 내려놓고 결혼예배를 위해 기도하도록
오찬미
- 진로에대해고민이많이되는데 말씀으로 인도받기를
- 나의 사건에서 자신만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않고 나의 상처와 악함을 직면할수있도록
- 동생을위해기도하도록
탁미나
-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 큐티하며 하루중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잘 지킬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김성은
- 의지했던 바나바가 있었는데, 바나바가 저를 버려주었기에, 헤어질수 있다고 하십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잘 안내려오는데 가슴으로까지 내려와서 깨달을수 있도록
-사람을 의지 하려고 했던것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견고해지기를
- 어린이집 원장님 미워 하는 마음 가라앉히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길
-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손과 발이 가는 수고를 잘할 수 있기를
- 제 옆에 실라를 견고함으로 분별할수 있도록
- 신교제, 신결혼 온전히 준비시켜주시며, 가장선한길로 인도해주시길
*공통기도제목
신교제 신결혼 소망주시고 인도함받도록!
모두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