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성령의 견고함
본문:15:36~41
초대 교회가 할례와 율법 문제로 두 개로 쪼개질 뻔했지만 성령의 결정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좋은 결정을 했으니까 앞길이 뻥 뚫렸으면 좋겟지만 가장 큰 갈등 상황이 있습니다. 갈등추만=성령충만
깊은 바다로 들어갈 수 록 어떤 상황에도 요동함이 없게 됩니다.
1.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입니다.
36절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전도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음
견고하다는 흔들리는 것을 튼튼한 지대에 붙이는 것 여기서 흔들림을 멈추게 하는 지지대가 유대와 신라가 전한 권면의 말씀이었음
말씀이 들리면 흔들리는 상황에서 요동치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음 돈과 환경이 아님
말씀을 전 할 때 말씀이 들릴 때 제대로 드릴 때 나타나는 현상은 계속 강조하는 형제의식이 생김
36절에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에 뿌리내리고 전도하는 중에 말씀을 전하는 형제들을 다시가서 돌아보자고 바울이 말함
2차 때는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도하는 돌아보자라는 소박한 형제의식임 형제의식을 머리로 말하지만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이 어렵기에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지나침이 없음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 가장 요동함 그런데 그 관계가 평안해지는 것 성령의 결정을 하면 주시는 축복이 형제의 축복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형제의식이 대단함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 유대인도 자신들이 전도한 사람도 다 형제라고 함
1차 여행에서도 형제들을 심방하기 위해 짧고 편한 길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감
안디옥 교회에 유대인들의 공격이 시작된 상황을 매우 염려해서 그는 안디옥으로 돌아와서 아주 안정된 사역자가 되었지만 내려놓고 형제들을 돌아보고자 함
바울의 관심은 항상 구원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있으면 형제 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음
*거친 파도가 와도 날 견고하게 하는 것은 형제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되세요?
*여러분은 목장에서 어떤 목자이고 어떤 목원인지 나눠보세요.
나는 늘 돌보고 있는지 돌봄을 받고 있는지?
2.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37절 바나바도 자신의 기드권을 내려놓고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함
마가는 예루살렘의 출신으로 영적 육적으로 다이아몬드 수저 바나바의 혈육임
바나바는 마가를 세워주는 것이 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마가는 밤빌리아 버가에서 전도 여행을 할 떄 다시 돌아갔음
바나바는 바울의 제안을 받자마자 마가를 데리고 가서 이 수치를 씻어주자 그런데 바울이 반대를 함
38절 바울은 마가가 밤빌리아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을 자신을 배신하고 이방 선교의 선도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함 한번 배신한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함 옳고 그름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중대한 일이기에 언제든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는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음,, 많지도 않고 한명 데리고 가는데
-여러분은 이때 마가를 데리고 가야된다!? 아니다!?
바울의 거절과 마가의 맹목적이 애정이 충돌하니까 다투게 됨
37절 데리고가고>단회적으로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고 계속 말한 것 조카에게 한번더 기회 주는 것에 관심이 있음
38절 같이 데리고 가는 것 현제 부정법으로 지속적인 행위로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것 바울은 사명의 일을 위해 같이 데리고 다니 것을 중요하게 보는 것
바울은 끝까지 가야하기에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으로 신뢰 없는 사람과 부딪쳐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겨줘야 하는 것
바울은 책임져야 하니까 같이 사역해야 하니까 절대로 안 된다
바나바는 한 번 데리고 가지 뭐 한번 데리고 가자고 지속적으로 요구를 하는 것
바나바는 조카라는 관계에서 비록 되는 원함 바울은 이성으로 구원의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니까 의견이 좁혀질 수 없음
39절 이방인들의 눈에도 제우스로 헤르메스로 보일정도로 심히 다퉈 갈라섭니다. 7절에 베드로의 외식을 행하는데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을 합니다.
바울이 20절 고백을 믿음과 주님께 대한 사랑이 있기에 베드로를 책망 할 수 있었던 것
인본적으로 베드로를 책망한 것이 아님 바나바는 자기와 함께 같이 갔다 온 선교사인데 저렇게 외식을 하라고 하니까 좋게 보이지 않음
바울이 정확한 성격이라서 이런 것이 아니라 복음에 목숨을 걸었기에 이런 갈등이 있다가 터진 것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 사람들이 갈라선 사건은 인본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음
구속사적으로 보다면 이방인 선교를 이어가야하는 바울에게는 필요함
바울이 바나바가 유일한 친구이고 안디옥에서도 사역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바나바가 없으면 1차 전도여행을 할 수 없었을 것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뭐해도 돈 주는 엄마 시어머니가 최고 아무리 교회를 안 내려놓아짐 앞으로의 구원 사역을 통해 바나바의 약점이 들어남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진 사건이 사람을 의지하던 사건을 온전히 돌이키는 사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 할 수 없을 밖에 하시는 성령의 견고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었는데 그냥 결별 했다는 것 심히>사랑과 선행을 일으키는 자극을 준다는 것
바나바가 마가를 선택하자마자 자기 고향 구브로로 딱 떠납니다. 가장 마지막에 혈육과 교양이 있음
바나바는 이렇게 배타고 떠나면서 사도행전의 무대에서 떠남 안디옥 교회를 일으키는 일에 큰 힘을 쓴 바나바가 마가를 택하고 고향으로 떠남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죄가 있음 그러나 바나바는 죄가 없음 성품의 한계는 여기까지
*바나바처럼, 바울처럼 내가 절대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기준은 감정입니까? 이성입니까? 구원입니까? 정입니까?
3.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입니다.
40절 견고하다라는 단어는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선 이 일이 교회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함
갈라서자마자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떠남 먼저 바나바가 떠나니까 바울이 사람을 택할 수밖에 없음
바울은 바나바가 떠났기에 할 수 없이 실라를 택함 하나님의 일에는 다 준비시키심
주의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다 준비심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떠나니까 바울은 길리기아 시리아 북쪽으로 택해서 감
*의지했던 사람과의 심한 다툼이 지나고 보니 우리를 견고하게 한 일이 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도 다툰다고 내 다툼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외로운 길 바울이 전한 사람만 바울 복음의 제자가 되는 것 이럴 때는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하면 안됨
구원에 일에 자꾸 나서서 이러고 저러고 하면 될 일도 안 됨
오단이 목장 기도제목:
단이:
- 관계에 기준이 구원으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 설연휴에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찾아뵐 수 있도록
수연:
- 큐티하기
- 지랄총량 잘 채우기
- 감사기도하기
미경
- 큐티하기
- 규칙적인 생활하기(스트레스받는 걸 먹는 걸로 풀지 않기)
찬미:
- 큐티하기
- 핸드폰 사용시간 4시간 이내로 줄이기
지인:
- 오전에 큐티하기
- 아빠와 동생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
- 다음주에 라식하는데 라식 문제없이 잘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