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김유라 목장 보고서 (●◡●)
성령의 돌보심
사도행전 15:12~18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성령의 돌보심*
1.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이방인 중에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대해 보고를 한다. 유대인들이 표적과 기사를 좋아했기에 바나바와 바울이 그들의 눈높이로 이를 말한 것이다.(유대인들은 표적과 기사를 너무 좋아했는데, 우리도 짠하고 기적을 바람) 그러나 진정한 표적은 십자가임이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전파보고를 할 때, 유대인들에게는 기복적 관점으로, 사도들에게는 팔복에 맞춰서 보고를 했을 것이다 바나바는 착하고 성령충만, 돈도 많은 자, 바울은 교회를 잔멸했던 자로 미움을 받던 자였기에, 항상 바나바와 바울, 바나바가 바울보다 이름이 앞에 나왔음. 신약의 역사를 볼 때, 바울이 주인공이지만 그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질서와 권위를 존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중요해서 순종이 안된다. 우리는 항상 끝에 돈이 있기 때문. 그러나 이거에 대해서 눈높이를 맞춰서 얼마나 교회를 다녔고, 처방을 얼마나 듣고 순종할 수 있는지들을 생각해서 이야기를 해야한다. 바울은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돌보시기에 항상 눈높이에 맞춰서 말하고 절제할 수 있었다. 사랑도 받은 사람이 줄 수도 있는 것처럼, 성령의 돌보심을 받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성령의 도움심으로 돌볼 수 있다 이는 자랑하고 싶은거 참고, 인내해야 하고 절제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것. 이는 구원이 목적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환경에 따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가정이나 회사, 목장에서 눈치를 보십니까, 무시합니까, 눈높이를 맞추십니까? 눈높이를 맞춘다면 구원 때문입니까, 열등감 때문입니까?
2. 하나님의 심방입니다.
1) 야고보를 심방하십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표적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공의회의 의장이었던 야고보가 형제들아하면서 말을 시작한다.지난 설교에서 베드로도 형제들아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외식에 대한 애통함으로 외식하는 자들에게 나도 너랑 똑같았다라며 이야기한 것이다.
구속사는 예수님 없는 삶은 부패하고 무능할 뿐임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아주 지독한, 강한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의 차별적 관점으로는 이방인을 선교할 수 없었다 이런 때 예수님의 식구인, 동생인 야고보에게 성령이 찾아오심. 야고보는 왜 유대인, 할례주의자들에게 형제들아 라고 했을까?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그저 사생아 일 뿐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잉태했다는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가 스스로 메시아라고 하고 있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고 있는 것을 동생인 야고보는 다 보았을 것이다. 야고보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었고, 예수님하고 사는 게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날마다 동생들에게 조용히 좀 살아, 형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않아? 메시야면 다야?라는 말들을 들었을 것이다. 과거에 이랬었던 야고보였기에, 야고보는 공의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나도 너희와 같이 선민 의식이 있었다고 말하며 나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말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야고보도 나도 너네처럼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었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하나님의 심방으로 이렇게 달라졌다는 것.하나님의 심방= 때에 맞춘 심방 = 때가 되면 어느 날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이 밝혀지고 나서는 갑자기 로얄 패밀리가 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야고보를 심방하신 것이 하나님이 경륜. 온 인류의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예수님 옆에서 모든 것을 본, 이 야고보의 특권을 베드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음. 그럼에도 베드로는 수제자라는 칭을 받았는데, 이는 제대로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말씀을 배웠기 때문이다.베드로(이전에 외식했었던 자)도 야고보도(과거에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었던자) 공의회에 모인 사람들, 유대인들, 할례주의자들,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도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 했었기 때문에 둘 다 형제들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믿기만 하면 달라지는 것이다.
2) 이방인을 심방하십니다.
이방인을 하나님이 심방하시니 이들이 구원을 받았다. 심방은 돌보심이며, 방문이며, 직접 보는 것이다. 최고의 돌보심은 하나님이 찾아가는 것, 심방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방이 따뜻하게 느껴집니까, 귀찮습니까? 목자의 심방이 즐거우세요, 부담되세요? 마음에 안든다고 톡방에서 나간 적은 없나요?
3.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돌보심의 결론은 말씀과 일치하는 가이다. 어떤 표적과 기사를 보았더라도 말씀에 의거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허사이다.
예수님, 메시아를 통하여 택함 받고 남은자와 이방인들에게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구원받는 대상인 것을 하나님은 이전부터 말씀하셨고,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인 것.
##말씀과 일치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를 잘 드리고 있나요? 온라인 예배에서 열려있는 화면은 몇개인가요?
[근황나눔]
■ 가희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집에서 쉬고 있는 나를 못마땅 해하시는 할아버지로 인해 힘들다.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고,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오늘 말씀에서 그러지 말라고 해서 목장에서 잘 나누고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라언니) 나도 취업 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엄마와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었다. 그러던 중에 취업이 되면서 나만 수원으로 떠났다. 그때는 당장 그 환경을 떠나니 탈출한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작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너무 후회가 되던 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무관심해서 그 환경 속에서 탈출이 끝이라는 생각에 하나님을 전도하지 못했던 것이 회개가 되었다. 하나님이 구원에 관점을 맞추고, 행복에 맞추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계속 후회로 남았었다. 그래서 가희의 마음도 너무 이해가 가고 지금 이 환경이 너무 고난이지만, 이게 구원의 여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고난 때문에 목장이 이렇게 사모가 되니까 이렇게 목장을 하는 것이다. 같이 기도하고 구원의 과정으로 가자.
지금 살고 있는 당진에서 나와서 좀 더 큰 도시인 대전으로 가고 싶다. 대전에 가면 더 내가 가르칠 학생들도 많고, 안정적일 것같기 때문이다.
(유라언니) 옛날부터 생각은 했을 것이고, 대전에 집을 알아보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당장 급하게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목장도 목장이지만, 하나님께 물어야 하는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집에서 나가도 좋고 있어도 좋겠지만, 당장의 충동적인 것으로 도피하면서 집을 나가기 보다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면서 기다리면서 가보자. 기다리는 것도 적용이라고 생각해.
■ 지윤
최근 들어 살이 더 찌고 있는데,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 기분이 나쁘지만, 퇴근하면 피곤해서 별 말하지 않고 있다. 비단 살찌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학생 때는 좋은 학교를 못 갔다는 비난과 잔소리를 했다. 성적장학금을 받으면 안 좋은 학교에서 성적장학금이라도 받아야지 하면서 상처를 줬다. 아마 취업도 그저 그런 곳으로 했더라면 회사를 가지고 잔소리하며 비꼬았을 것이다.
(유라언니) 피곤하다고, 귀찮다면서 말 안 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엄마한테 딱 말하자.
■ 유라언니
어제 목자모임에 늦게 참여했다. 일정이 있어서 늦게 라도 들어가 나누었는데, 나누는 과정에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말씀에 출석체크라도 하라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목자모임에 참여하는 것 만으로도 심방해 주시는 느낌이었다.
[나눔]
적용질문: 가정이나 회사, 목장에서 눈치를 보십니까, 무시합니까, 눈높이를 맞추십니까? 눈높이를 맞춘다면 구원 때문입니까, 열등감 때문입니까?
■ 유라언니
회사나, 인간관계에서 미어캣처럼 눈치를 많이 본다. 그렇다고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은 아니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힘든 친구한테 비싼 심층수 물을 주문해주었다. 친구가 추워서 수돗물이 안나와 보내준 물로 세수하고 샤워하고 했다고 연락을 해주었다. 나는 친구를 생각해서 비싼 물을 사주었는데, 정작 친구는 그 물을 자기 씻는 데 사용했다고 하니 생색이 났다. 돌이켜보니, 그 친구는 힘들어서 그 물을 사용한 것일 텐데, 내 기준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 회개가 되었다.
이번 목장이 목자로 처음인 데다가 첫 만남을 비대면인 줌으로 하니까 힘들었다. 특히 나부터가 원래 목자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보니, 목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싶다. 거절당하는 연습 잘해야겠다.
■ 가희
목장에서 부목자가 나보다 어리면 괜히 무시가 되는 게 있었다. 오늘 말씀처럼 목장에 잘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윤
전에는 목장에서 눈치를 많이 보았다. 혹시나 내 나눔을 듣고, 저런 일상적인 것을 고난이라고 나누나? 하면서 지루해할 것 같았다. 2년 전에 회사가 너무 힘드니 목장에서 솔직하게 나누게 되었다. 그때 나누고 나니. 힘든 것들이 상황이 해결되지는 못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해결되었다. 특히,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자기연민에 빠지기 쉬운데, 공동체에 나누면 객관적으로 봐주고 처방해주니 감사하다. 그때 당시에는 왜 저런 처방을 해줄까 싶은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처방이 맞았음을 알게 해주시는 경험을 하니 이제는 딱히 목장에 눈치 보면서 나누지는 않는다.
지난주에 남자친구가 교회 오고 정착하는 것에 대해 유라언니가 조급해하지 말고 그저 공동체에 맡기며 조용히 응원해주라고 했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서는 것이 먼저라고 해줘서, 그것에 대한 적용으로 매일 퇴근 후 큐티를 했다. 남자친구가 저녁에 뭐 하고 있었냐고 하면 큐티했다고 말하니 큐티가 뭐냐면서 관심을 가져주었다. 오늘 말씀처럼 남자친구 눈높이에 맞게 큐티하는 모습을 통해 본을 보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지난주에 목장에 나누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제목]
■가희
1. 큐티하면서 말씀 묵상하기
2. 집에서 순종하기 어렵지만 너무 불평하지 않고, 가족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3. 남자친구가 교회에 나올 수 있기를
■지윤
1. 저녁에 큐티를 하는 습관 지속하기를
2. 남자친구의 눈높이를 잘 맞추는 적용하기(다른 남자친구와 비교 안 하기 등)
3. 큐티를 통해 지경이 넓어질 있도록,
4. 회사에서의 사건들을 하나님께 묻고 갈 수 있도록
■ 유라언니
1. 큐티하면서 묻고 갈 수 있도록,
2. 생활예배 하면서 하나님께 계속 묻고 갈 수 있도록.
3. 큐티 나눔 하나 꼭 올리기. 올 한 해 목원들 눈높이를 맞추는 목장 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