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돌보심
슬픔이나 아픔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보살피는 것이 돌보는것
1.눈높이를 낮추는 것입니다.
12절
온무리가 잠잠해지자 바울과 바나바에게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수준에 맞춰서 표적과 기사를 보고싶어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기복같이했지만 사도들에게는 눈높이에 맞게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주된 역할마저 바나바를 내세움니다.
아직도 바울은 기독교를 박해했던 자였고 바나바는 인기스타였습니다.
13절부터 바나바를 앞으로 세웁니다.
그런데 앉은 뱅이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칭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자랑하면안되고 상황에 따라서 맡아야할 역할이 있고 상황이 있습니다.
낮아질 수 있는 비결은 구원이 목적인 삶입니다.
목장에서 같이 보살핌을 받고 보살핌을 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래요
적용
가정이나 회사에서 눈치를 보십니까 눈치를 보게합니까 성령의 눈치를 보십니까?
2.하나님의 신방입니다.
유대인들이 상상을 불허하는 고정관념을 본 겁니다.
예수님의 식구들이 왜 다들 안믿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성령받지 않고는 못알아봅니다.
예수님의 식구들 조차도 인정하지않았는데
동생들한테도 별소리를 다들었을거에요
식구들이 너무 잘살았다면 인류가 구원받기 힘들지 않았을까? 9절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경륜을 이룬 것 입니다.
베드로가 대단한 간증을 해도 안되는데 부활의 증인 야고보를 딱 세우니 바뀝니다.
유대인의 선빈의식은 무너지기 어려웠는데
야고보를 쓰셨는데 후대는 베드로가 비춰지듯이
상황에 따라서 역할이 바뀌고있어요
2)이방인을 신방하십니다.
14절
저주받은 이방인도 하나님이 신방하시니 변화되었다.
구원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가 파카드
돌아보신다는게 주님의 따뜻한 신방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장은 기본이 출석입니다.
아무것도 안해도 됩니다. 출석만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신방하십니다.
25절
돌봄은 신방입니다. 이방인들을 신방해야합니다.
적용
여러분은 하나님의 신방이 따듯하게 느껴집니까?
귀찮습니까? 목장의 심방이 귀찮습니까? 좋습니까? 톡방을 나가버리나요?
3.말씀과 일치해야합니다.
돌보심의 기초는 말씀과 일치하는가 입니다.
삶에서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17장
유대인이 에돔의 남은자들까지 내이름으로 만물의 하나님을 아는 능력을 알게된다는
모든 이방인들의 주를 찾게하기 위함
아모스의 이야기나 어제나 오늘이나 바뀌지않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방인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몰랐는다 헬라어가 생겨서 이방인들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헬라어로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눈높이를 맞췄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표적과기사른보고 돌봄과 돌봄을 받아도
성경대로 하지않으면 이단입니다.
적용
말씀과 일치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모든 예배를 드리시나요?
출석
원도일 목자님
유정현
김승환 형제
윤도열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