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 사도행전15:5-11 (성령의 의논)
1.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의논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회중앞에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이중 바리새인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고 싫어합니다. 모세의 율법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바울의 선교보고는 들을것도 없다면서 벌떡 일어나 외친것입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믿는 사람들인데 이러는 것입니다.
바울의 놀라운 사역과 바리새파들의 그럴듯한 주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여 모였다고 합니다. 의논도 예수님을 죽이는 의논이 있고 이렇게 성도를 살리는 의논이 있을수있습니다. 가정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의논이 성령의 의논입니다.
안디옥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교회도 자신들을 지도하는 사도들과 영적지도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자신들이 도저히 결정할 수 없기에 맡긴것입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에서처럼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할례주의자들의 변론입니다. 편협함과 어리석음을 보고있으면 얼마나 속이 터집니까? 이들의 주장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패가 갈라졌는데 비난하는 분위기가 없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분히 말을 할수 있었습니다. 변론은 가짜를 진짜를 찾기위해 진지하게 치열하게 의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싸움과 달리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진리가 목적입니다. 진리가 목적임으로 그 진리가 사람을 살립니다. 시간이 걸리고 인내를 해야합니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잘 들으려 하니 잘 묻고 잘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듣는 의지가 있으니 잘 듣게 되는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논을 합니까? 죽이는 의논을 합니까? 목장에서 가정에서 말입니다. 잘듣습니까? 지시하고 명령합니까?
2.형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성령으로 일어나 처음으로 한말이 형제들아 입니다. 베드로나 변론하는 사람들이나 바울이나 예수님이 피값을 치르고 함께해주신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형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좋아서 형제들아 하겠습니까?
12장에서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성도들이 기도를 하지만 실제로 나왔다 하니 미쳤다 하지 않습니까? 촛대가 옮겨지면 다시 회복되기 힘든것같습니다. 그래서 그후로 바로 13장에 안디옥교회가 나오고 구속사의 믿음의 시대로 촛대를 옮기십니다. 그후로 베드로가 사라집니다.
그후 갈라디아서 2장에 잠시 나오죠?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다가 유대인들이 오자 그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서 그자리를 피하고 그자리에 있던 유대인과 바나바까지도 외식된 행동을 했지요. 그에 대하여 바울이 책망을 한것입니다. 고넬료 사건을 겪은 베드로가 그럼에도 선민의식으로 외식을 한것입니다.
이렇게 총회 이전이든 이후든 베드로가 외식한 것은 바울에게로 촛대를 옮기게 되는 큰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래도 괜찮은 것은 이때의 사건을 권위도전으로 보지않고 책망을 잘 들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제자 맞습니다. 그 후에 베드로의 최후의 변론을 하고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 그 베드로의 최후의 변론을 듣습니다.
자신도 3번이나 거절했으나 환상으로 하나님이 설득하신일 고넬료의 일 식탁에서 일어나 외식했던것들 모두 너희들과 나도 같았다고 간증을 합니다. 어쨌든 간증이 있고 회개가 있어도 실수도 너무 잦으면 촛대를 옮기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내가 알거니와가 아니라 너희가 알거니와 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기준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기준을 두고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자기들보다 훨씬 많은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오니 얼마나 격하게 할례를 내세우며 선민의식을 내세우며 주장합니까? 기득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가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인데도 여전히 율법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주님몫이라면 주안에서 형제가 될수있고 어떤 범죄자라도 형제가 될수있는것입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형제의식을 의논할 때 주앞에서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형제입니다. 별인생이 없습니다. 공동체안에서 의논하기에 살리는 의논이 됩니다.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 라고 하면 의논이 되지 않습니다.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모두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형제의식이 얼마나 있습니까?
주님은 강도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잖아요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에게 주신 음성으로 들려야 합니다.
정인이 엄마가 목장에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얘기할까요?
3.하나님이 답이십니다.
서로 다른의견이 충돌하는 변론의 답은 증인이나 증거로 결정이 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베드로도 증인을 제시하는데 그 증인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확실이 증언하셨다. 무엇을? 이방인들도 복음을 들어 그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보고한 것 우리가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증언하셨습니까? 성령으로 증언하셨습니다. 고넬료 집안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으로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할례파든 율법주의자들이든 누구에게든 가장 확실한 증언으로 하나님이 말하셨음을 얘기합니다. 그런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합니까?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구원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얘기합니다. 사람은 외모로 보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고 하나님앞에서는 겸손한척 믿음있는 척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선민의식으로는 나는 할수있다 자기 확신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베드로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는 구원할수 없는 존재임을 압니다. 나는 할수 없다는 인식이 분명해요 주제파악을 하는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이 하실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답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율법은 지키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알라고 주십니다. 지킬수없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지킬수없는 것을 지켜려는 것 지킬수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합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는것입니다. 겉으로 할례를 받아도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다고 하는것입니다. 나도 못지키면서 다른사람에게 지키면 구원받는다 라고 하는것입니다.
나는 죄로 태어났습니다 상처받아서 절대 용서 못하겠어요 쓴뿌리가 올라옵니다. 이때 율법만 지키면, 할례만 하면 나 스스로 구원할수있다. 이것입니다. 나를 위한것입니다. 그 열심이 이단의 열심이 무섭습니다. 그 열심이 모든 구원을 삼켜버립니다. 그리고 내 병만 낫는다면 물불을 안가리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팔백배 절을하면 다 잘될것같은 것이 이것입니다.
무서운 할례를 몸에 하면 이때 부적효과가 나올것같습니다. 인간의 종교심리는 부패에 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인간이 영적이라는 것이 종교의 부패를 나타냅니다. 큐티도 좋지만 구원도 좋지만 남을 죽이는 열심이 되면 안됩니다. 끊임없이 말씀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의논을 해야합니다.
억눌린자 갖힌자 참자유가 없습니다. 참복음은 참자유를 줍니다. 바울이 돌에 맞는데 어떻게 평강이 있을수있겠니까? 그러나 그보다 더한 하나 더 기쁨을 주셔서 그 길을 갑니다.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면 고백할 수 없습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답이심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 땅은 모든 환경을 셋팅해서 하나님이 답이심을 알려주시는 것이 최선의 환경입니다.
*가정에서 내 말이 답이다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고 어떤 주장을 합니까? 하나님이 인생의 답이심이 인정됩니까?
-목장나눔-
하나언니
기도제목
-내가 못 지키는 것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데, 구원을 위해서는 나도 지키고 같이 지키자고 권유하는 사람이 되길
-나도 할수있다는 인본적인 생각으로 내려놓고 하나님이 답이시라는 생각으로 한주 살아갈수있길
-내가 옳고 남이 그르다라는 생각의 확신을 내려놓고 나보다 옳도다의 생각으로 살아갈수있길
경아
기도제목
- 할머니의 마음, 가족들의 마음을 지켜주시길
- 수요일에 있을 교수님과의 논문지도시간을 잘 준비하되, 너무 두려워하지 않도록
예진
(새로 온 새신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도제목
-아버지가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실수있길
-게으름의 죄에 대해 자꾸 채찍질하게 되는데 조급해 하지않고 쉼을 잘 누릴수있길
-큐티도 주기적으로 하고 홈트나 산책 할수있길
저는 모태신앙인데 엄마가 믿음이 좋으시고 아빠는 엄마를 따라가는 정도였습니다. 아빠가 군인이셔서 20살까지 17번 이사를 했었고 길면 3년, 짧으면 1년 이렇게 살다보니 적응하기 너무 어려웠고 어렸을때는 소심하고 그래서 다가가는게 더 어려워서 힘들었습니다. 오래된 친구도 없고 해서 방황을 많이 했었습니다
가족끼리만 뭉치다시피 살았어서 친구들이랑 얘기해야할건 친구랑 해야하는데 그런걸 못해서 매여있던게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했는데 스스로 소심했던 게 있어서 음악으로 대학도 못갈 줄 알앗는데 대학도가고 어쩌다보니 졸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두분 다 신학대학을 갔었는데-엄마는 신앙이 그로인해 두터워졋으나 아빠는 신앙이 깨지는 계기가 되서 그후 아빠는 교회를 안 가게 되었고 하나님을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믿을때보다 자신이랑 더 부딪치게 된것같습니다.
아빠가 음악은 돈이 안되니 회사를 가라고 해서 통신사 들어가서 상담일을 했었고 27,28살에 일을 열심히 하고 인정을 받아도 바탕이 없으니 승진이나 이런게 안되는게 인생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음악을 계속했다면 성공은 못해도 내가 원하는것을 했고, 내 결정에 의한 것이 엿으니 지금보단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회사를 가라고 한 아빠를 원망하고 정말 미워하고 작년까지만 해도 엄청 싸웠고 사이가 계속 안좋아졌습니다.
28살에 회사가 망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음악을 계속 해볼까란 생각이 들어서 문화예술교육사라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라이센스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돈이 너무 중요하고 하나님도 멀리 두고 살았기 때문에 아예 하나님은 멀리 있고 나는 나대로 사는것처럼 살앗는데, 라이센스를 따고보니 돈이 안됐었고, 돈은 필요하니 그래서 약국에서 알바를 했었습니다. 그때 약사님이 이것저것 알려주시면서 약사에 대해 들으면서 하나님한테 답도 안구하고 멋대로 결정해서 세상적으로 좋아보이고 부모님한테도 당당해 보일수있지 않을까라며 2019년도부터 약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긴 시간 하는데 텅 빈 느낌같은 공허함이 많이 있고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공부를 하다 목이 너무 아파서 통증주사를 맞으려고 검사를 했는데 갑상선에 종양을 발견했고 암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때 무너지며 교회를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엄마는 우리들교회를 다녔었는데 계속 저를 전도하고 섬기는 엄마를 보는데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느날 새벽에 저멀리 던져놓았던 엄마가 전해준 큐티책을 보게 됐는데 계속 읽게 되었고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는 내용이 너무나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랬지만 작년 여름쯤 수술끝나고 아파서 쉬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포기한거야? 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약사를 포기할수가 없었고 공부를 하려고 영종도 섬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아파서 공부는 못하겠어서 에이 모르겟다라며 큐티랑 성경이나 읽자라고 보게되었고 그때 회개에 대한 부분을 묵상하며 아빠에게 했던 악행을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빠한테 회개를 하라고 하는구나 라고 느꼈고 회개를 안하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그길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빠한테 사과를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안하면 내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한거라 결국 나를 위해 한것이긴 하지만 그 이후부터 완벽한 안정과 휴식을 취하고있습니다.
큐티만하고 성경책만 보며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아져서 너무 좋습니다. 자유롭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기회가 된것같습니다
아빠가 하나님을 너무 부정하는것에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고 현재는 그게 저의 첫번째 기도제목입니다. 그리고 너무 쉬고있는건 아닌가라며 걱정도 되고 게으른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름별
기도제목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끝냈는데 그게 마음안에서 잘 정리될수있길, 일로도 살짝 엮여있는데 요동함없이 잘 정리될수있게
-하나님앞에서 떳떳할수있는 상대와의 만남이 있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수있는 자세를 보여줄수 있게 준비하고 그러기위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수있길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할수있도록, 외로움이 하나님으로 채워지길
미국에서 살다 코로나 때문에 5월달에 들어와 자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현재 놀면서 너무 편하게 지내고있습니다. 너무 놀아서 이제부터는 공동체와 교회에 다시 열심히 다니려고 하고있습니다.
하루하루 시험인것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내가 혼자 할수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믿음속에서 안정과 기쁨을 누리면서 하나님이랑 가까워지고 나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 아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꼐를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는 그로인해 열심히 기도하고 회개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나누고 다른분들에게, 나에게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걸 느끼고 기쁨과 평온 안정을 찾고 싶은게 큽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별일이 없는데도 불안함이 큽니다.
매일마다 기도하고 큐티하는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그간 고민했던 문제중 썸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교제했던 남자가 있는데 외국을 나가게 되면 관계가 멀어질것이고 모태신앙이지만 지금 현재 상대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만 만나자고 이번주 월요일에 얘기해서 관계를 끝냈고 현재는 연락안하고 있습니다. 그것때문에 마음에 흔들림이 있었고 지금도 그 영향 때문에 커리어나 미래나 흔들림이 많습니다.
마음이 힘들어져서 불안하다보니 현재 커리어는 잘하고 있는지 나는 잘하고 있는지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는지 공허하고 불안한 느낌이 많습니다.
당연한 현상인것같기도 하고 이런 과정을 겪고있는게 시간지나면 괜찮아질거고 지금의 결정이 맞다고 믿고있습니다.
시간이 많아지니 좀더 힘들었었던 것 같고 그 시간들에 책도 읽고 미래에 대해서 좀 더 계획해보게 됐습니다. 지금 그래도 고난이 숨쉬고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일부터 일이 다시 시작되는데 그렇게 되면 뉴욕이라 낮과 밤이 바뀔것같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든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힘든게 더 힘들고, 불안함같은걸 느끼는게 힘이듭니다. 안정감을 같는게 1순위 같습니다.
목장의 권유로 상담을 받는것도 괜찮을 것 같고 큐티를 읽기만 했는데 영어자막이 된 예배도 듣고 영어로 변역 된 큐티를 하고 쓰면서 이런 나의 연약한 부분에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더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다님
기도제목
-남을 죽이는 열심을 내려놓고 안되는 나도 사랑하시는 주의 참사랑을 알고 하나님만 답이심을 알려주시는 이 환경을 더욱 감사할수있길
-내 이득보다 구원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가치관으로 변해갈수있길
-활동을 못하니 점점 아파오는데 몸의 고통을 줄여주시고 산책과 운동, 기도하는 습관들일수있길
최근 코로나로 인해 인터넷쇼핑몰사업이기에 집에서만 일을하고 거의 나가질 않다보니 무기력이 올라오고 게으름과 나태함의 죄가 올라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어쩔수없어라며 지내고 있었는데최근 몇일전에 미국에 사는 이모에게 사촌여동생이 코로나양성판정을 받았다고 지금 이모와 이모부, 사촌남동생이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기도요청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감사하게 나머지 가족들은 음성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도할 일이 생기니 그제야 맘이 급해져 기도를 하는 저를 보며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아 진짜 이런일이 없으면 저번주에 회개하고도 나아짐이 없는 안되는 제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때 기도를 하면서 구원을 위한 사건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그간 이모가정의 구원을 위해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지금 이 사건을 통해서도 구원이 먼저인것을아는데도 담대히 하지 못했습니다.
이모가 몸이 많이 약해서 코로나가 걸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사촌동생들의 구원을 위해 그렇게 쓰시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하시면,. 이라고 생각하면서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을 하는 순간도두려웠습니다.
그전까지 내가 만약 아프거나 하면 천국가는건데 뭐가 그렇게 두렵겠어?라며 사실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을꺼야 구원이 더 중요하지!라며 자신했었구나라고
이모가 아픈것도 이렇게 두려운데 나도 그 두려움에서벗어날수 없겠구나 정말 사람은 자기가 겪은것만 아는구나 라고깨달았습니다. 그날큐티를 하며두려워하는 나의 불신앙과 믿음의 수준에 대해,밑바닥에 대해 다시 한번 드러나는 계기가 됐었는데선민의식으로 인한 자기확신과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오늘 말씀으로 또 한번알려주시는것 같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변론을 보며 3번 거절했던 연약함을 다시 얘기하며 저의 안되는 부분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결국 그 연약함으로 촛대를 옮기신것을 보면서도 인정중독으로 나도 그렇게 촛대를 옮기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더욱더 깨어있어야 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