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기도제목: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을 관점으로 놓으며 사람 살리는 성령의 의논을 하게 해주세요.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벗어나 모두가 구원받아야 할 대상임을 깨닫는 형제의식을 가지게 해주세요.
내가 답이 아니고 하나님이 답이라는 것을 깨닫게 도와주세요.
차한나
1. 아빠의 영육 보호하고 인도해주세요
2. 대학원 공부와 병행 할 수 있는 알바 잘 찾을 수 있도록(이전 알바했던 곳에서 다시 연락이 오길 기대하는데...선하게 인도해주시길)
3. 임용시험을 조금씩 준비하려고 합니다.
조급한 마음 내려놓고 주어진 시간 성실하게 잘 사용하며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체력 주시길
4. 하나님이 내 삶의 답이심을 고백하는 한 주 되길
이은영
1. 치열하게 큐티하며 허무감과 무력감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목장에도 나누고 의논하며 갈 수 있도록.
2. 마감이 2주 남았는데, 육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체력 주시도록.
정지윤
1. 말씀과 다시 함께하는 한주 되도록. 이주에는 내생각만 적지말고 목장식구들 마음에 기쁨달라고도 적으면서 기도할게요
2. 회사 일정과 관계와 내 마음과 말, 행동 생각도 하나님이 참여하시도록
3. 참 형제의식 묵상하면서 허세 허당질 잘하는 내모습으로 속이기 하지 않고 약점들 잘 고백하고 참 동의 하는 관심 주시도록
4. 가계부 관련 나의 일들을 밀리지 않고 적용 지켜주시도록
장승영
1. 살리는 의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인간적인 방어와 옳고그름으로 죽이는 의논을 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2. 바리새인의 외식을 깨고.... 목장에서 나의 연약함과 부끄러움을 잘 나누고 갈 때 우리모두 형제의식을 가지고 성령의 의논을 하게 해주세요.
3. 하루하루 하나더 즐거운 것을 알려주셔서 ..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길을 즐겁게 걸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4. 직장, 가정, 목장.. 하나님이 답이 되어주세요.
성령의 의논 2021. 1.10. 주일말씀
화성연쇄 살인범 사건의 진범이 잡혀서 억울하게 20여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가 무죄가 됐죠. 그때는 그들에게 참 범인이 필요 했나봐요. 그래서 범인으로 몰아넣은
경찰이 꼭 대제사장 바리세인 같았습니다. 예수님도 다들 의논 했지만, 빌라도 법정에서 일방적으로 사형으로 몰려서 십자가형을 당하셨죠. 세상에는 수많은 의논이
지금도 행해지죠. 그리고 수준이 높을수록 이렇게 억울한 의논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더라고요. 이 윤성여씨는
수십억 보상금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끝나서 이런 엄청난 억울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억울한 것 풀어달라는 옳고 그른 이런 의논보다는
그 기가막힌 사건이 천하보다 귀한 구원이 되도록 성령의 의논을 해야합니다.
1 성령의 의논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의논이 되어야 합니다.
5: 바리세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지난주에 본대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 회중 앞에서 섬겨 보고를 했습니다. 차별 받았던 베니게와 사마리아의 교회들은 크게 기뻐했다고 했죠. 그런데 바리세인들은
크게 싫어했죠. 바리세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원어에 보면, 부정과거로 벌떡 일어났대요.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들어볼
것 도 없다며 바울의 선교 보고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 내려온 유대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시도 없이 내려왔다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를 받고자 올라왔는데, 모교회의 회의에서는 할례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혹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인 아주 강경기류가 내뿜어졌어요. 그래서
이 일어나가 원어에는 이 구절에 첫 단어로 나와서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이 유대인들도 바리세파 중에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해서 믿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러는거예요. 그러니 선교사들이 보고하는 놀라운 사역과 바리세파 신자들의 그럴 듯한 주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뭔가 항상 의논을 하지만 한쪽은
맞았지만 한쪽은 틀렸을탠데.. 모르죠. 우리들은.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기막혔을까요? 그래서 6절에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답니다. 의논에도 죽이는 의논이 있고, 살리는 의논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세인
처럼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여서 의논할 수도 있고,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장로들처럼 성도를 살리는 의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의논이 성령의 의논입니다.
이혼 28년만에 재결합해서 혼인신고 하고 10일만에 천국 보냈다는 구원의 간증을 들으면 인내는 인간이 감당할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인내는 하늘의 언어 같습니다. 라고
나눔한 목자님이 계시던데요, 이 땅에서 우리는 하늘의 언어를 쓰려니까, 하늘 가족 식구인 구원의 공동체에서 의논을 하지 않으면, 인내를 못해서 또 다른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린 늘 의논을 해야 합니다. 안디옥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그들은 이 문제를 자신들을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인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맡깁니다.
물었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도저히 결정할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모여서 뭘 했나요? 7절 앞에 보니, 많은 변론을 했다고 합니다.앞서 2절에서 안디옥 교회에서도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을 벌였다고 했잖아요? 이제 같은 변론이 예루살렘에서도 바울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바리세파에 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변론이 일어난거죠. 바울의 주장과
유대주의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릅니까? 할례주의자들의 생각이 사실 얼마나 잘못됐습니까? 그들의 편협함과 어리석음과 복음에 대한 몰이해를 보고 있으면, 사실 울화통이
터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너무나 복음을 변질시키는 위험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 사이에 파가 갈라졌잖아요. 그런데 비난하는 분위기가 없는 거예요. 말을 제재하는 법도 없어요. 또 인격적 모욕을 주는 이도
없었어요.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분히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변론은 자기말로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찾기 위해 상대와 진지하게 치열하게
의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싸움과 달리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진리가 목적입니다. 승리를 목적으로 싸우면, 사람을 살릴 수 없어요. 그러나 성령의 의논은 진리가
목적이므로 그 진리가 결국 사람을 살립니다.그런데 시간이 걸리고, 인내를 해야죠.
목적이 진리에 있으니 서로 잘 물을 뿐만 아니라 잘 듣습니다. 그러니 결혼도 목적이 진리에 있는 사람들끼리 해야 해요. 교회도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면, 너무나 잘 묻고 잘 듣는
거예요. 사도들과 장로들이 서로 잘 들으려고 했으니, 많은 변론이 있었겠죠. 서로 잘 묻고 잘 들으니까요. 각자 자기주장만 하고 듣지 않았다면 변론은 금세 끝났을 것입니다.
물론 답도 찾을 수 없었겠죠. 기분만 상했겠죠. 적어도 듣는 마음을 가졌기에 많은 변론을 거쳐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사람을 살리는 의논을 합니까. 죽이는 의논을 합니까. ? 직장 목장 가정에서 잘 듣습니까? 지시하고 명령합니까?
2. 성령의 의논을 하려면 형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ampndash
많은 변론이 끝난 후에 베드로가 비로소 일어나 자기 말을 합니다. 6세기에 기록된 사본에는 베드로가 성령으로 일어나 말 하되라고 했는데, 여러분도 이렇게 성령으로 벌떡
일어나는 것 말고 성령으로 일어나는게 중요합니다. 성령으로 일어나 처음으로 한 말이 뭔가, 하면: 형제들아.
어떻게 이렇게 싸우면서 형제들아, 그렇게 물을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바리세인들도 바울도 모두 주님이 핏값을 치르시고 죽어주신 형제들이라는 거죠.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나쁠수도 있고 갈등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라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구속사를 또 생각해보는거예요. 베드로는 워낙 훌륭하고
수석 사도래서 오래 잘 듣고 그래서 훌륭한 걸 도출해냈다. 이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린 베드로같지 못하잖아요. 그럼 베드로가 믿음이 워낙 훌륭해서 이렇게 형제들아..
그러고 얘기했겠습니까?
사도행전을 우리가 읽어왔잖아요? 얼마전에 12장 읽었어요. 옥에 같혔는데, 간절히 기도한 성도들이 베드로가 막상 나왔다고 하니까, 미쳤다고 하는거예요. 감옥문은 열렸는데,
교회 문이 안 열렸어요. 이때 촛대를 옮기실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13장에 안디옥 교회가 나오고 여기에 바울의 체험 + 구속사의 믿음 시대로 촛대를 옮기십니다.
한번 촛대가 옮겨지면 참 그 사역은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 후로 베드로가 사라졌어요. 근데 갈라디아서에 보면 2장에서 안디옥에 잠깐 나타났습니다. 이 때가
언젠가 하면,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 바로 예루살렘 총회 전 후로 봅니다.
그래서 11절~14절을 보면 :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책망 받을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게바가 베드로고 바울이 책망했다는 거예요.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전에 게바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하려느냐 하였노라
바울이 막 호통을 지금 치는 걸로, 베드로를 야단 쳤어요.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오자, 그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하였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유대인 바나바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거예요. 바울이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 근거하여 일관되게 행동하지
아니하고 상황에 따라 이중적으로 행동한데 대하여 책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고넬료 사건을 겪었던 베드로가 여전히 율법과 할례에 자유롭지 못하고 두려워하여서 외식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은 생각보다 너무 깊었어요. 안디옥에선 잘 가르쳤지만, 갈라디아 교회는 지금 루스드라- 더베- 이고니온 이 교회들은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자마자 이단에 빠졌어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또 3절에는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ampndash 하면서 통렬하게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총회 이전 이든지 이 후 던지 베드로가 외식한 것은 그러므로 바울에게로 촛불을 옮길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훌륭한 것은 이 때에 사건을 권위 도전으로
보지 않고, 책망을 잘 들었다는거예요. 그래서 수제자 맞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최후의 장렬한 변론을 하고 다시는 등장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오늘 베드로 최후의 변론을 보고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가 꺼낸 첫 마디가, 형제들아..
이 얘기는 내가 너희와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별 인생이 없다. 나에게도 고정관념이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넬료가 이방인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았는데도 여전히
유대인 앞에서 이방인과 밥 먹다가 두려워서 도망갔다는 것이예요. 여기서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가 미완료로 계속 반복 되었다는거예요. 그러니 당신들이 지금 할례, 율법
외치는데, 나도 당신들하고 똑같았다. 나도 그랬다. 이렇게 베드로가 지금 간증하면서 형제들아 나도 그랬다.
이렇게 회개는 했어도 당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실수도 너무 잦으면 촛불을 옮기실 수가 있는거예요. 그래서 이어지는 베드로의 말은,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내가 알거니와가 아니예요. 너희도 알거니와) 베드로 수석 사도로서 내가 변론을 다 들어봤더니 결론을 좀 내리겠어.. 이래도 누가 뭐라하겠어요? 그런데 자신을 기준으로
내세우지 않아요. 주 안에서 서로 형제인 지체들, 서로 논쟁하는 그들의 입장을 존중하며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호소한거예요. 그들이 알고있는,
너희가 알고있는 사실이 뭔가요? 베드로를 선택해서 제일 먼저 이방인에게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이죠. 바로 로마군의 백부장 고넬료 일을 말합니다. 그건 뭔가요? 같은
환상을 세번이나 반복하시면서 짐승을 내려오게 해서 먹으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못 먹습니다. 먹으라! 아니오, 먹으라! 아니오... 그러니까, 부정한데 그것을 어떻게 먹냐는
거였어요.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에 보내신 일은 예루살렘 교회에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할례자들, 즉 유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성도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서 어떻게
사도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나요?? 하며 비난을 했죠. 그때 베드로는 그 있었던 일 세번, (먹어라! 아니오) 모든 일을 차례대로 자세히 설명을 해서
성령의 설득으로 이해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고넬료의 집 한 사람이 성도가 된 것으로도 이렇게 거부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인데, 이제 자기들보다 훨씬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믿고 교회로 들어왔다고 하니까 그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율법과 할례를 주장했을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기득권하고 다 연결이 되는거죠.. 여기가 지금 일반 성도도
아니고 사도와 장로들인데도 여전히 이렇게 율법을 앞세우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렇지만은 베드로는 그들을 믿음이 약한 그들을 정죄하지 않고 과거 고넬료 사건
때 이미 받아들인 이방인의 구원을 상기시킵니다. 내가 당한게 얼마나 능력인지 몰라요.. 의논할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 뭐 그런 일이 선악과 먹고
죄가 들어와서 인간들이 하는 일은 맨날 나는 옳고 너는 그르고예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아무리 의논해도 살리는 답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도 당신과 같았다. 나도 당신하고 똑같아.. 뭐 바람폈어,. 망했어,. 아이가 속 썩여.. 그러면서
간증을 하며 주 안에서 한 형제 의식을 가질 때 성령의 의논이 되서 구원으로 인도되는 거예요.
중등부의 한 학생은 조두순을 다 무서워하고 그 집을 어떻게 해야된다 그러지만 자기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이 안된다고 .. 맞습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주님 몫이라면,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될 수 있고 어떤 범죄자도 형제가 될 수 있는것이죠.. 베드로도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죄인이고 바울도 스데반 죽인 죄인이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늘 형제의식을
가질 때 의논이 되는거예요.
맞아요.. 우리는 모두 이 지구상 어떤 사람도 한 형제인거예요. 우린 다 같이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살려주신 형제예요.
그래서 이번 주일에도 정인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어요.. 그 아이가 정말 너무 예쁘더군요... 기가막힙니다. 너무 정인이 때문에 애도를 하니까 저는 다른 면으로
봐볼게요.. 얘가 입양되어서 16개월 때 그렇게 죽어서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럼 뱃속에서 단번에 죽은 아이들은 어떡하나... 이 생각이 드는거죠.. 우린 모두
죄인인데요. 올해 사자성어가 아시타비예요. 내로남불, 나는 옳고 너는 그르고..
저는 좀 정인이 엄마를 (정인이는 이미 갔는데, 남은 정인이 엄마를 생각할 때 너무 많이 아픈거같아요..) 많이 아프면요 부모도 건드릴 수 가 없는게 있어요. 게다가 정상적으로
학교까지 졸업을 했으니까, 딸을 믿고 싶은 것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랬을 때 본인이 입양을 한다고 하니까 정말 말릴 수 없었을것같아요.. 자식 가진 사람들은 남의 말을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정인이 어머니 아버지 너무 힘들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또 다 알려졌으니까 저도 얘기 하지마는 이제,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은데, 우리들교회도 다 그런건 아니지만, 한국 교회에서 아픈 것을 말하기가 쉽지가 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픈데.. 이런 집이 많으리라 생각 합니다. 우리들
교회인들 왜 아픈 사람이 없겠습니까.. 우리들교회도 이번 수요일날 초원지기님이 간증을 하면서 조현병 딸을 20살인 딸이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데, 남편에게 매를
맞아가면서 아픈 조현병 딸을 가진 딸이 지금 목자, 초원지기를 넘어서 마을지기가 되어서 얼굴도 예쁜 분이 정말 지경이 넓어져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 아픈 가정의 부모들이 아이와 같이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살면서 그리고 자신의 죄를 깨닳아가면서 정말 하루 하루 살아요.. 그러니까 지난주도 아버지가 쇼미더머니
프로에서 아들이 미는 후보가 2위를 하고 자기와 딸이 미는 후보가 1위를 했대요. 그래도 사춘기 아들 앞에서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되기 때문에 딸과 몰래 눈짓을 해가지고
함께 방에 들어와서 거기서 같이 껴안고 기뻐했다는거 아녜요. 저는 이제 이런거라고 생각 합니다. 또 어떤 집은요.. 대학 입시에 떨어졌는데 아빠가 가만히 있었대요.. 뭐
기분이 나빴겠죠. 그런데 딸이 아빠에게 기분 나쁜건 난데 왜 나의 기분을 아빠가 표현해? 이러면서 아빠는 자신 옆에 붙어있는 블래홀과 같다면서 기분나쁘다고
그랬다는거예요. 여러분, 아빠가 기분 나쁘다고 표현도 못합니까? 그러나 이런 얘기를 목장에서 마음껏 하면서 격려를 받기 때문에 아픈 부모, 자녀가 우리들교회에 너무
많아요. 문제가 많아도, 이렇게 문제 없이 가고 있는 것이죠. 계속 문제가 많아요.
그런데 그 문제보다 하나 더 기쁜 것이 있어서 나누면서 가는 거예요. 우리는 다 형제고 별 인생이 없다는 거예요. 이런걸 공동체에서 의논을 하기 때문에 이것이 살리는
의논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아시타비..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하면, 집은 집이고 교회고 나라고.. 살리는 의논이 되지를 않습니다.
사회적인 적용을 오늘 한번 나눠보셨으면 좋겠는데,
적용: 조두순이나 정인이 부모가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모두 구원 받아야할 대상이라는 형제의식이 얼마나 있습니까?
주님은 강도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했잖아요? 그게 남한테 한 얘기가 아니고 나한테 주신 음성으로 들려야 된다는거죠.. 혹여나 정인이 엄마가
목장에 온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의논 하실까요? 이런 것들이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내 얘기, 내 딸 얘기, 내 엄마 얘기로 받아들여서 아파하고 기도하는 것이 한국 교회가
회개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추상적으로 회개를 하면,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잖아요? 당장 우리들교회서부터 그렇게 적용을 좀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3. 성령의 의논을 하려면 하나님이 답이 되어야 합니다.
8~9절 :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변론이나 논쟁의 답은, 증인이나 증거로 결정이 되잖아요.. 법정에서 증인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윤성여씨가 자기가 죽이지 않았지만 증인이 없고,
증거가 없어서 20년 옥살이를 했다고요.. 따라서 베드로도 여기서 증인을 제시하는데요, 그 증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증언하셨다는 거예요. 부정과거를
써서 이거는 기정 사실이라는 거죠. 하나님이 확실히 증언하셨는데, 자 그러면, 무엇을 증언하셨다고 합니까?
이방인도 복음을 듣고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거예요. 율법 없는 이방인들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셨다는 것이죠.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에서부터 올라와 보고한 내용에 대해 우리가 지금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하나님이 확실히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증언
하셨습니까?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어요. 고넬료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죠. 11장에 나오죠? 오순절 성령 강림과 똑 같은 일이
이방인의 집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할례파든, 바리세파든 율법주의자든 그들의 일원으로 절대 반박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성령의 증거로 하나님이 증언하신
일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증언하신 하나님은 어떤분입니까? 베드로는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 이것은 이방인과 율법의 문제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얘기하죠.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마음을 아신다고 그러잖아요? 사람의 속 마음을 보시기에 겉으로 율법을 지키는 척 하는 것이 겸손한 척
믿음 있는척.. 이게 통하지를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들교회 주제가 할까요? 척,척척,
10절 :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애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이방인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하는
바리세파 형제들은 겉으로는 의롭게 보입니다. 전통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같아요. 종교적으로는 더 거룩해 보입니다. 우린 막 양쪽으로 다들 애국자같아요. 누가 애국잔지
모르겠어요..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애국잔가요,? 대면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애국잔가요? 서로가 다 애국자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인간에 대한 잘못 된
이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리세인은 인간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율법 준수가 인간이 능히 질 수 있는 멍애인거예요. 그들에게 율법의 멍애는 수치나 고난이
아니라 특권이자 자랑이었어요. 육법전서 보듯이 성경을 좔좔 외우는거예요.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자기 확신이 충만합니다. 신명기 6장도 율법을 문설주에 대 발라놓고 나는
모든걸 할 수 있다. 인생의 답을 자기가 가지고 있으니까, 교회를 다니지만, 궂이 답을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없는것이죠.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어요. 그들은 여기서 태양까지
걸어갈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것과 마찬가지예요.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으면 또 그런 소리를 하겠죠..
그러나 바울이나 베드로는 인간이 절대 스스로 구원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압니다. 그러니 그들은 율법을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매지 못하던 멍에로 봅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분명해요. 자기 안에 답이 있을 수 없음을 봅니다. 주재파악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답을 구해야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답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니 나는 할 수 있다가 얼마나 불신앙의 말인 것을 아시겠죠? 물론 주 안에서는 주님이 하시니까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분별을 잘 못하더라고요..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알라고 주신 거예요. 죄를 죄 되게 하기위해 주신 것이 율법이예요. 그래서 율법을 주시고 성경을 주시고 그걸 지키기 위한 613가지
율법이 또 있잖아요.. 인간은 절대 그거 못지켜요..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너희도 못 지키는 것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는거예요. 예레미야 9:25-2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받은자와 할례 받지 못한자를 내가 다 벌하리나 곧 에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서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겉으로 아무리 할례를 받아도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이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치 못하면 할례를 받거나 안 받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변론을 잘 들으세요.. 나도 못 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만 지키면 니가 구원받는다 이런건 무슨 예가 있을까요?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어요. 사람들에게
나서기도 싫어요. 그 사람을 싫어요. 그런데 생각만 하면 상처가 올라와요. 쓴 뿌리가 올라와요. 그런데 절대로 용서는 못하겠어요. 이럴 때 금식만 하면, 할례만 받으면, 내 죄와
상관없이 혼자 구원 받는다.. 이거 얼마나 매력있습니까? 상처와 쓴뿌리를 다 귀신이라고 그러고 다 귀신만 내쫓으면 된다고 하고. 그러니까 막 너무 열심히 것두 그러니까
결국은 에고인거죠. 이기적인거죠. 나를 위한 것이죠.
그것이 그 열심히 이단의 열심이 진짜 무섭습니다.. 그 열심이 모든 구원을 삼켜버려요.. 그래가지고 특징이 원칙을 안지킵니다. 이번에 신천지에서도 보듯이, 그리고 내 병만
낫는다면 물불을 안가리는거예요. 하지만 이런 얘기를 유대인들하고 아무리 변론을 벌여도 정말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런 종교일수록 사람이 열광을 하면서
몰려드는거예요. 병이 낫는다.
상처를 치유한다. 이러면.. 그러니까 나는 용서 안해도 돼. 그냥 기도만 받으면 다 물러가니까.
이단일수록 사람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는 거예요. 교주가 성폭력으로 감옥을 가도 아랑옷 않고 교주를 위해 무거운 멍에를 당연하다는 듯 다 짊어집니다. 이단도 병고침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메시아가 났어요 이제.. 그러니까 막 자살테러도 합니다. 신천지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언가 특별한 멍에를
질 때에 부적같이 종교적 효험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이 무서운 할례를 몸에 하면 거기에 부적 효과가 나타날것만 같습니다. 부처 앞에 삼천배를 올리고나면 뭐가 잘 될 것과
같은것과 똑같아요.
그만큼 인간의 종료심리는 부패해 있어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적이예요.. 그래서 그냥 악하고 음란한 인간이 영적이래는 것이 완전히 잘못된 종교의 거짓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러니 다 기능을 제대로 못해요. 그러고는 그것을 다 믿음이라고 착각하는거예요. 그 열심과 이 모든 것..
큐티도 좋지만 남을 죽이는 열심이 되면 안되는거예요. 구원도 좋지만, 남을 죽이는 열심이 되면 안되는거죠.. 살리는 의논이 되야되는거죠. 끊임없이 말씀을 보면서 인내를
해야되는데, 이걸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것이 거짓의 영이잖아요. 유대교가 그러했고 열심으로 중세의 타락한 로마 카톨릭이 그랬어요. 오늘날 이단들이 그러합니다. 교회도
이런 거짓들이 들어와 있어요.
멍에만 지우려는 거짓 종교에 속지 말아야하는데, 인간이 백프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뚜기를 눕혀놔도 다시 제자리로 딱 돌아와서 가는게 기복인거예요. 본능이
기복이기 때문에 나 잘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러나 눌려있어요. 억눌린 자 같힌자, 참 자유가 없는거예요.
참 복음은 참 자유를 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인거예요.
그럼 그럴거예요. 어우 내가 너무 힘들어죽겠는데 무슨 평강이냐.. 좁은길에 아니 어떻게 바울이 돌에 맞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무슨 평강이 있겠어요.. 그러나 그것보다
한가지 더 좋은 기쁨을 주세요. 하나 더 좋은거 있어서 그 길을 가는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에 인도 선교사 하다가 오신 목사님이 계세요.
(간증)할례를 강조하면서 500km 를 달려온 지난 자신의 모습을 지난 주 설교 때에 들으면서 제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의 해석이 없는 열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봅니다. 동일한 모습으로 행위와 경건주의의 열심 다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평신도는 한시간 리더는 두시간 목회자는 세시간, 선교사는 다섯시간 기도하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졸든, 어찌하든 하루 다섯시간 기도 시간을 채우고나서는 기도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죄와 판단이 되기 시작했다는거죠. 그래서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똑 같은, 기도시간을 강요하는 저의 모습이 있었다는거죠. 그러니까 또 구원을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기도를 하고도 지금까지 진실됨으로
나누는 공동체가 없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거운 멍에냐구요..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예수의 은혜로 그들이 (이방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줄을 믿노라!! 이게 교회의 신앙고백인거예요.
누구나 주예수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받는줄을 믿습니다. 말로는 너무 쉬운 것 같은데 이것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일이 참 잘 되지 않아요.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부폐한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이번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다 나눠보라고 했지마는 입으로만 확신 있다고 하는분도 많이 계실거예요.
그러나 이게 참 쉽지 않았어요. 인생의 여러 고난을 통하여 처절한 회계로 돌이켜야 하나님만이 답이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모든게 잘 먹고 잘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답이겠어요.. 내가 답인것이지. 이 땅은 모든 환경을 세팅해서 하나님이 답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환경인거예요. 여러분들의 아픔과 가난과 질병을 주님이 모르겠어요?
거기에서 하나 더 기쁜 기쁨. 그 병의 나음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 믿노라. 이런 신앙고백이 되셔야 (이게 안되니까) 목장에서 성령의 의논을 오래 내내
하셔야되는거죠) 혼자서는 안되는거예요.
적용: 가정에서 내 말이 답이다!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고
또 주장하는거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인생의 답이심이 얼마나 인정이 되십니까?
모두 요즘 의논이 안되는 낙태법에 대해서 조금 궁금도 하시죠? 1월부터 낙태죄가 사라지고 낙태 거부죄가 생겼다죠. 1월 4일 병원문을 연지 두시간만에 두 명의 여성이
함께 와서 낙태 시술을 해달라고 했단 거예요. 한 명은 십대 여학생인데, 3-4주가 좀 지나야지 애기집이 생성된 다음에 그때 보자고 했더니 올해부터 낙태가 합법 아니예요?
하면서 지금 바로 수술을 해달라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보냈다고 하는데 5일에는 20대 여성이 다른 병원에서 검사 받고 임신했다는 결과가 나오자 마자 그 자리에서
낙태시술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여기서 거부하면 의사에게 낙태 거부죄가 성립이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법을 재정할 수가 있을까요?
한 초원 변호사님의 의견에 따르면 결혼, 출산, 양육이라는 기본적인 과정이 순리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결혼도 안 해. 출산도 안 해. 자유로이 낙태해, 이혼, 양육을 포기하고
그러니까 아동을 입양하면 학대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인데 낙태문제는 이런 전반적인 가정파괴, 생명경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입양, 아동학대
문제 등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 교회 가정중수 사역이 가장 종합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어요. 정인이 사건으로 입양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교회 차원에서는 낙태죄 처벌이라는 현안보다는 낙태 반대, 생명보호의 일원으로 낙태를 안하고 아이를 낳은 미혼 부모에 대한 지원과 입양가정에 대한 지원 등에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울러 우리들교회 가정중수 사역을 좀 더 사회 참여적으로 시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해주시고요. 낙태 계정법에 동의 해달라고 하면서 여러분은 많은
변론에 직면했을 것이예요. 낙태계정동의에 불을 붙인 의사 집사님이 자기가 아끼는 친구 후배인 여성 암 전공인 센터장 의사친구 후배에게 계정동의를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 분은 난 낙태죄를 폐지 해야한다는 의견이야. 종교와 믿음또한 내 개인의 문제니까 이해해주길 바래. 내 주변에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서 수많은 친척들이 기독교인이고
늘 기도중이시지만, 난 자유의지로 종교없는 삶을 선택 한거야. 주소를 물어보는 이유가, 뭔갈 보내려고 하는거면 사양할게.
이 분이 같은 의사로서 의사 관계에 굉장히 선후배간에 대단한게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편지를 받고 얼마나 자괴감이 들으셨겠어요. 서늘해지는 변론에 너무 많이 낙심이
된거예요. 정말 우울증이 생기려고 하는, 그러나 형제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답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분이 다시 답장을 보냈습니다. 여기에 저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사랑하는 아무개에게.
니 메시지를 받고 마음이 무겁네. 먼저 니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한채 내 생각을 쏟아 부은 것 같아서 미안해.
(의사들이 다 자존심이 세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간증을 한거예요.) 나는 대학 때 너랑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낙태 계정 청원에 동의해달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보냈지만 사실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사람에게 집착하고 음란하고 방탕하게 살았지.. 물론 열심히 살았어.
공부하느라고. 레지던트때 임신을 했는데, 교수님들하고 동료 레지던트들에게 알려질 걸 생각하면 너무 수치스럽고 끔찍해서 낙태를 했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대학 때 극단적인 페미니즘에 빠져서 가족은 여성들을 억압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이자 도구일 뿐이라며 가정 해체를 부르짖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고, 아빠는 숱하게
외도를 했는데, 엄마는 아빠가 그러는 이유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 나한테 남자들이 취하는 기득권은 경멸의 대상이었고 남녀 불평등 문제에
있어 여자들의 집단적 적이라고 생각했지. 낙태를 한다는 것 자체는 끔찍하게 여겨졌지만, 내 몸은 내가 당연히 결정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 했어. 내가 낙태를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결혼하고 바로 월경이 끊어져서 의사가 자연 임신이
어렵다고 하면서 치료법이 없다고 하면서 가능한 빨리 임신 하는게 내 몸에 좋다고 했지만, 그 때 나는 이전에 내가 낙태를 한 일이 생각났어. 하지만 나는 아직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고생은 하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듣지 않았어. 그리고 이제 2년이 지나서 이제는 내가 아기를 가져야 하겠다고 하는데 안되는거야.. 결국은 시험관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심한 합병증으로 두번이나 병원에 입원하고 미국에 와서 출산하면서 과다 출혈로 완전히 죽기 직전에 살아났지. 그 모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마다
나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었는데도 내가 이 전에 낙태한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나는 법으로 금지하고 사람들이 이건 죄야,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거 같아. 그런데 내 마음에 그 마음이 떠 올랐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비난하거나 판단 할 자격이 없어.. 나야말로 늘
원망과 불평과 분노로 살았거든.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살아.. 아무개야. 2021년 새해에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기를 바래.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는 거예요. 이거 오늘 형제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답이고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야 될 필요하 하나도 없는데, 저는 성령의 의논은 성령님이 하시는
거가 되 서 이 분이 미국에서 본인이 이혼을 하고 낙태를 하고 또 그 아이가 지금 ADHD고 이런 얘기를 우리들교회 이야기, 말씀을 듣고 이 똑같이 간증한 것을 국회의원
모두에게 당을 가리지 않고 다 보냈다는 거 아니예요.. 너무 놀라운 일 아닙니까? 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니까 이렇게 되요.. 우리들 교회에서 누가 국회에다 편지를.. 그 잘
쓰는 편지로 다 보냈어요. 그런데 딱 한사람, 그것도 개정하겠다고 보낸 건 아니지만, 답이 왔지만, 그만큼 권세자에게 말씀이 들어가는게 어려운데, 하나님은 그냥 어떻게
이 말씀 외에 말씀 묵상과 가정중수의 역사를,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게 하실 지 모르겠어요.. 바로 이것이 성령의 의논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령의 의논은 하나님이
답이시라는 고백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서로 자기말이 답이라는 의논은 교회를, 사회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의논은 하나님만이 답이시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이 사람을 살리는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게 되실 줄을 믿습니다. 말씀 맺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의논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용서하고 가 아니고 구원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너도 나도 똑같이 주 안에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형제라는 거예요.
저 사람은 너무 무섭고 그런 게 아니고 형제의식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답이 아닌 거예요. 내 말을 들으라 가 아니고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답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다 눌려 있어요. 율법을 지키는 데에도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자유가 있다네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