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0. 김유라 목장 보고서 (●◡●)
[주일설교]
사도행전 15:5-11
성령의 의논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의논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지도자교회에 도착해서 선교보고를 하는데,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말함. 선교사들이 보고하는 놀라운 사역과 바리새파의 주장이 딱 대립이 된 것. 이에 대해서 의논을 하기 위해서 모임을 가짐.
이 의논에는 죽이는 의논, 살리는 의논이 있다. 바리새파, 유대인들처럼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는 의논이 있고, 예루살렘 사도들과 장로들처럼 성도를 살리는 의논을 할 수도 있다. 가정, 교회, 사람을 살리는 의논이 성령의 의논이다.
안디옥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그들은 이 문제를 자신들의 교회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인 사도와 장로들에게 맡긴다. 물었음, 왜? 자기들이 결정할 수 없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의논하게 되는데, 이제 바울의 주장, 할례주의자가 대립함. 그런데 할례주의자들의 생각이 너무나 잘못되고, 어리석음과 편협함과 복음을 변질시키는 위험한 것이었음에도,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들을 비난하는 분위기 없었다. 말을 제지하지도, 인격모독을 하지도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었다.
변론은 자기 말로 이기려는 말싸움이 아니다.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찾기 위해 상대와진지하게, 치열하게 의논하는 것을 말한다. 승리가 목적으로 싸우면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성령의 의논은 목적이 진리이므로 사람을 살리고, 잘 듣고 의논하려 한다. 사도와 장로들이 잘 들으려고 했으니 여러 변론이 오고 간 것. 적어도 듣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변론을 거쳐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
## 집이나 회사나 학교에서 사람을 살리는 의논을 하는가, 죽이는 의논을 하는가? 친구하고 재밌게 잘지내는게 사람 죽이는 의논, 세상과는 거꾸로 구원을 위해서 해야할 말을 하는게 사람을 살리는 의논임.
## 그러기 위해서 또 잘 듣는가, 항상 지시하고 명령하는가?
2. 형제의식이 있어야합니다.
베드로는 치열하게 회의하는 도중 비로소 일어나 형제들아 부른다. 바리새인도 바울도 모두 주님이 피 값으로 대신 죽어주셔서 살아난 형제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많은 변론이 오고가는 와중에도 형제들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
이러한 베드로도 이전에 외식을 한 적이 있었음.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다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오자 그들의 비난이 두려워 떠났다고 한다. 이에 다른 유대인들도, 바나바까지도 똑같이 외식하게 됨. 이를 보고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 근거하여 일관적으로 행하지 않고 외식했던 것에 대해 쓴소리로 책망한다. 그러나 베드로가 훌륭한 것은 책망을 잘 들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던 바울의 책망을 들었다는 것 = 수제자 맞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는 최후의 변론을 함. 변론을 시작할 때, 형제들아 라는 말로 시작함. 나도 너희와 다를 것이 없다 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속사이다. 떠나 물러가매, 계속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그들과 나도 그랬다, 지체의식을 갖게 한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 내가 알고 있는게 아니라,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함. 이는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니라 호소하는 태도이다. 여전히 여기에도 사도와 장로들인데도 여전히 율법과 할례를 앞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이방인인 고넬료를 구원한 사건을 상기시키며 의논한다. 베드로가 이들을 미워하지 않았던 이유- 베드로도 이전에 유대인들이 두려워 이방인들과 밥을 먹다가 떠났었던 모습이 있었기에, 나도 당신과 같았다고 간증을 할 수 있었음.
주 안에서 한 형제의식을 가질 때 의논이 시작된다.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을 죽였던 죄인이고, 베드로는 자신이 외식하고 이방인의 구원에서 도망쳤던, 나도 너도 똑같은 죄인임을 인정한 것처럼, 우리가 다같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형제의식을 가지고 성령의 의논이 됨.
중등부의 학생이 조두순 집에 찾아가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며 구원은 하나님의 몫이니 조두순도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교회를 다녀도 이런 사건을 보면 고난이 왜 축복인지 모르기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정인이 사건을 보며 국민적인 공분을 살 때 우리 모두 죄인인데, 낙태로 뱃속에서 단번에 죽은 아이들은 어떡하겠는가? 양가가 다 목회자 가정인데, 교회에서 아픈 것조차 말하지 못하는 실상을 보여주었다. 우리들교회가 다른 것은 아픈 가정의 부모들이 아이와 같이 보고 듣고 하면서, 부모나 자녀나 먼저 믿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 가면서 하루하루 산다. 옳고 그름을 따지면 살리는 의논을 할 수 없다.
## 조두순은 불신자, 정인이 부모는 신자인데,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모두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형제의식이 얼마나 있는가? 형제의식이 없으니 이편저편하는 것.
## 정인이 엄마가 목장에 온다면 어떻게 의논하시겠는가?
3. 하나님이 답이십니다.
법정에서 증인이 얼마가 중요한가, 베드로는 하나님으로 증인으로 놓음. 즉,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셨다고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보고한 내용을 왈가할부게 아닌, 이미 하나님이 확실히 증언하신 일이라는 것. 또한 하나님은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다. 고넬료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어 그들에게 방언으로 찬양하게 하심.
이렇게 증언하시는 하나님을 베드로는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함.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아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속마음을 보시기에 겉으로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겉으로 의롭고 애국자처럼 보임. 이들은 즉,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자기 확신이 충만하고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매우 큰 불신앙, 인간은 절대 스스로 구원을 하지 못함을 알고, 나는 할 수 없다, 내 안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만이 답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것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죄를 알기 위해 주신 것이다.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나도 못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만 지키면 구원 받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금식만 하면, 할례만 받으면 내 죄와 상관없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병만 낫는다면, 할례를 행해서 붙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한다. 기복을 믿음이라 착각한다. 참 복음은 참 자유를 준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 11절에- 누구나 우리 주 예수의 은혜로 동일하게 구원받는다고 하며 베드로는 자신의 변론을 마침. 이것이 교회의 신앙고백이다.
누구나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는다. 이 신앙고백이 쉬운 것 같은데, 진정으로 고백하는 일이 잘되지 않는다.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고백이다. 인생의 여러 고난을 통과하며 저절로 회개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만이 답이 되지 않고, 여전히 나에게 답이 있는 것이다.
## 가정에서 내 말이 답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 언제나 하나님이 인생의 답이심이 몇 프로 인정되는가?
## 집에서 내 말이 답이다 하는 부모, 자녀, 형제는 누구인가?
[근황나눔]
■ 지윤
회사 합병은 지금 있는 팀과 동일하게 갈 것 같아 다행이다. 그렇지만 더 상위 업무를 하고 싶어서 이직한 것인데, 합병되는 회사의 팀으로 가면 상위 업무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동일한 업무를 하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 주현
이번 주를 끝으로 기초 양육 끝났다! 지난주 기도 제목으로도 낸 것처럼 아직도 논문을 미루는 회피가 있다.
■ 가희
남자친구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화나면 욱할 때가 있다. 남자친구는 그 감정을 너무 크게 표출하는 것 같다고 한다.
(유라언니)남자친구는 성품으로 참으려고 하는 게 있어서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솔직하게 말하고 해결하는 게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유라언니) 오히려 건강한 연애인 것 같아서 좋아 보여
■ 현진
언니랑 같이 사는데 집안일로 잘 맞지 않아서 싸웠다.
■유라언니
회사에서의 억울한 일이 있었는데, 퇴근하고 울면서 우울하게 지냈다. 아무리 큐티를 하고 말씀을 봐도 억울하니까 누그러지지 않았다. 특히 이번 주 큐티에서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의 목요일 큐티가 너무 짜증이 났었다. 그럼 내가 쇠해야 하는 거냐는 생각에 감정의 요동이 쳤다. 일요일에는 목원들 중보기도 하면서 괜찮아졌다가, 월요일, 화요일이 지날수록 감정이 요동됐다. 특히 동기들이 왜 당하고 있냐는 말들과 인사고과 결과 때문에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토요일 목자 모임을 하면서 지금 내가 힘든 이유가 내가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남들보다 더 빛나고 싶고, 부러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앞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을ㅠ. 같은 사건인데, 동기들과 같은 세상 사람들과 믿는 사람의 말이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엘더님의 잠잠히 기다리라는 권면에 내려놓지 못하는 세상 성공을 좇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나눔]
적용질문: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논을 하는지 죽이는 의논을 하는지?
■ 유라언니
회사에서 고과와 관련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 억울한 일을 널리 알려서 모두를 내 편을 들게끔 했다. 회사의 인사팀 직원이 미안하다고 했지만 계속 연락을 피했다.
이번에 새롭게 목장을 시작하면서 목원들로부터 연락을 거절당하는 그런 아픔이 있었다. 나에게 인사팀 사람이 얘기하려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피했다. 목장에서 거절당한 힘든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똑같이 인사팀 사람한테 거절의 상처를 준 것 같다. 항상 사람 죽이는 의논만 하던 사람인데 목장을 통해서 사람 살리는 의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살릴까 하는 생각보다는 누구를 죽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영적인 목자라는 직분을 세워 주셔서 남을 살리려는 생각(연락이 안 되는 목원한테 연락을 계속하는 등)을 하게끔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 지윤
남자친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을 구원의 관점보다는, 부모님의 인정을 받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동생 남자친구는 우리 가족들에게 교회에 나오고, 세례도 받고 목장도 잘 나오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내 남자친구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재촉하게 된다. 내 남자친구도 빨리 교회에 잘 정착해서 부모님께 나도 인정받아야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번 주에 목장 카톡방에 남자친구와의 말다툼에 대해서 나누다 보니, 구원의 관점으로 애통해하기보다는, 부모님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액세서리로 여긴 것이 인정되었다. 나의 성급함과 분별없는 것 때문에 한 사람을 실족시킬 수 있었는데, 목장에서 성령의 의논을 하니 정신 차리게 되고 목자 언니의 공동체에 맡기고 조용히 응원하라는 처방이 정말 감사했다.
(유라언니) 나부터 먼저 제대로 큐티하고, 정신 차리자. 내가 바로 서야 해.
■ 주현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리는 것이면, 내가 괜히 참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당함에 대해 말한다. 그러고 나서는 괜히 말했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넘어간다. 교회를 다닐수록 말씀이 점점 가까워지고는 있는 것 같은데, 설교 말씀 중에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가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바로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희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와닿지도 않는다.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을 잘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싫은 소리 같은 책망의 말을 하면 그 사람이 꺼려지고 피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목장에서 잘 나누고 가는 것이 중요하고, 목장 예배도 사모하고 잘 참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얘기를 오픈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남한테 위로와 체휼로 전도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냥 힘들었겠다고만 말하니까 구원으로 이끌기가 힘들다.
(유라언니)공감하는 게 당연히 힘들지.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내 상황이 더 중요하지 남의 이야기까지 들어주는 것은 힘들어.가희가 내 얘기를 하는 게 힘들다고 했는데, 내 얘기로 인한 상처가 완벽하게 치유가 안 되고, 내면에서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힘든 것 같아.
내가 빨리 정리를 할 거야! 라고 해서 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기 이야기도 본인조차도 회피하고 내 모습을 못 보는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기 싫은 것은 당연한 거야. 형제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가희의 모습을 잘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 하지만, 모습을 보면서 자기 연민으로는 가서는 안 되고, 내가 이렇다는 것을 스스로 직면하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 형제의식 보다는 자의식을 가지도록 하자.
[기도제목]
■ 가희
1. 프뢰벨 수업 잘 준비해서 할 수 있기를
2. 내 모습을 보고 자의식 가질 수 있기를
3. 매일 큐티 말씀을 사모 할 수 있기를
4. 남자친구를 인내하며 기도 할 수 있기를
■ 유라언니
1. 회사에서 옳고 그름으로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 살리는 의논'을 할 수 있기를
2. 날마다 생활 예배 잘 드리고 목장에도 잘 나눌 수 있기를
3. 우리 목장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형제의식을 갖도록
■ 주현
1. 맡은 일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지혜와 용기 주시기를
2. 적는 큐티하며 말씀 묵상하기를
3. 신교제
■ 지윤
1. 남자친구를 구원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길
2. 구원의 관점으로 보기 위해서 내가 먼저 큐티를 통해 말씀의 지경이 넓어질 수 있도록
3. 회사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 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정죄하는데, 나도 똑같은 100% 죄인임을 항상 알 수 있기를
4. 주식이라는 새로운 중독에서 경계할 수 있도록
5. 회사, 가족, 연인 모든 관계에서 입에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함을 더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