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구원
사도행전 15:1-5
하나님 나라를 누리려면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세상에서 누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입니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성령의 구원을 받으려면
1.구원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로 내려와서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는 말을 유포합니다.
율법을 꿰고 있는 그들이 대단해 보여서 사람들은 혼란하게 됩니다. 500km나 되는 길을 열심히 걸어와서는 자기들이 아는 것을 가르쳐서 자랑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반대는 무서운 열심입니다. 바울은 이들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라고 지칭하며 그들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종으로 삼고자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 그들이 한번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부지런하게 열성적으로 가르치니 안디옥 교회 교인들 중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린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신약교회 시대가 시작이 되었지만 신약의 신학은 아직 과도기였습니다. 유대인 출신들로만 구성되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구약의 율법에 아직 얽매여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이방인이 쏟아져 들어오자 선민의식이 누구보다 하늘을 찌르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의 유입이 교회의 순수성과 윤리적인 기준을 저해하지 않을까
두려했습니다. 동시에 이면에는 자신들은 이처럼 수고해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으며 살아왔는데 세상문화를 맘껏 즐기던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구원을 받으면
손해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실컷 죄짓고 회개하고 천국 가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많지만 그렇게 되기는 폭포가 거꾸로 가는것처럼 어렵습니다.
한 기독 학교에서 한 아이가 눈쌀 찌푸릴 행동을 하자 학부모들이 그 아이를 내보내 달라고 했답니다. 여기는 수준있고 착한 아이들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아이를 보고 배우면 어떡하느냐 하며 선민의식이 대단합니다. 큐티인의 솔직한 간증을 보고 아이들이 닮으면 어떻게 하느냐면 큐티인 쓰는 것을 어려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정말 눈가리고 아웅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친 주동자이고 교회를 잔멸했는데 그가 전하는 복음이 맞겠느냐- 그렇게 바람피우고 감옥가고 하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이 맞겠냐- 이거하고 똑같죠? 교인들은 초신자라서 예수만 믿으면 구원-이것밖에 모르는데, 죄라고는 모르는 경건한 사람이 성경을 좔좔 외우면서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를 하면서 '그러므로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하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가 떠난 안디옥 교회는 니게르와 구레네 시몬 같은 이들이 남아있으니 갑자기 멋진 사람들이 와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안디옧 교회 사람들도 영접기도를 따라하고 바울 복음에 은혜 받았던 사람들인데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를 지금도 세상사람들은 모릅니다. 신천지도 기독교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아브라함부터 내려온 전통이 대단합니다. 처음 교회를 나가는 사람은 들어보니 대단한 것 같아서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할례의 전통이 중요하니까 강요를 합니다. 그 아픔을 겪어야 우리 조직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아닌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은 어떻게 할례를 안하는가 생각하며 바울과 바나바가 없으니 그래 할례는 해야돼-하고 생각해버립니다. 십자가의 길이 너무 좁은 길이고 팔복의 길이 좁은 길이니 오뚜기같이 금새 돌아옵니다. 합리화를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망자를 위한 미사와 연옥설등을 어려서부터 들려주며 구원에 있어서 신인협력설을 가르칩니다. 행위구원으로 자연스레 흘러갑니다. 그러니 매주 미사를 드려도 구원의 확신을 물어보면 다들 천국 갈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겸손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안디옥 교회 사람들도 우리도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보면 네 -합니다. 그러나 진짜 확신 있어요? 하면 모기만한 목소리로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겠어요 -합니다. 영접기도도 다 따라 했는데 왜그럴까요? 오뚜기처럼 행위 구권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내 삶이 따라주지를 않아요. 교회를 나와도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가겠어요.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돈도 좋아하고 여자도 남자도 술도 좋아하고 자식이라면 껌뻑죽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데. 생각을 해보다가 '그러니까 노력해서 천국 가야죠, 차차 갈 수 있는거죠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결론을 내보면 안디옥 교인들은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데 확신이 흔들흔들 하는거죠. 그에 비해서 유대로부터 온 사람들은 믿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확신이 충천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이걸 분별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확실한 것 같았는데 배운 시간이 너무 짧고 이방인들이 많다보니 확신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도 새해부터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 성도들도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은 흔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가르쳐야 하는데 도리어 가르침을 받고 있는 이단 같은 사람은 없어요?유대인 같은 사람은 없습니까? 성령으로 분명히 시작했는데 육체로 마치려는 분 없으세요? 사람은 기복이 본능이기 때문에 유대교도 아브라함의 구속사로 시작을 했는데 시기마다 변질이 되는거예요. 1차 전도 하고 왔던 갈라디아 교회도 바울이 떠나자 마자 이단에 빠졌습니다. 요란케 하는 다른 복음에 빠졌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작심삼일 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흘러 떠내려 갑니다. 그런데 계속 좁은 길로 가라고 하는데 지겹잖아요. 그런데 유대인이 와서 할례만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할례 하나 못 받겠어요? 받고 합격한다 성공한다 사업이 잘됐다 하는 요란함에 사람들이 다 빠집니다. 이것이 요란케 하는 복음입니다. 하지만 좁은길 십자가 복음이 진짜입니다.
적용해보세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2. 말이 아닌 삶의 변론을 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인본적인 가르침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논쟁했습니다.
이 문제는 착하고 양보하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위험천만한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조차 할례를 찬성하는 파가 있었습니다.
적지 아니한 다툼이라는 것은 수적으로도 매우 많고 기간적으로도 매우 오래 걸리며 정도에 있어서도 심각한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기 때문에
폭동과 같은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떄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오고 1년정도의 시간이 흐른 즈음으로 보이는데 이 때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예수로 인해 죄사함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합니다. 천사가 와서 증거할지라도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고 강력하게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안디옥 외에 갈라디아에도 갔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500km라는 길도 마다 않고 부흥하는 교회라면 반드시 찾아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들을 찾아가서 전도하는데 유대인들은 이미 바울이 전도해 놓은 곳을 찾아가서 훼방을 놓고 자기편으로 끌어오려고 합니다. 이단이 하는 짓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첫 종교회의가 열립니다. 복음을 위해서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런데 개인이 와서 떠들면 안 믿을 텐데, 진짜도 아니지만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을 했다고 하니까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500km 를 가서 확인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실 안디옥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모교회로서 특별한 권위를 가졌습니다. 첫번째 교회이자 자신들을 양육해준 그 대단한 사도들과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사도들과 장로들과 장로들이 모여있는 교회인거예요. 이 지위는 안디옥 교회가 아무리 크게 성장하고 이방선교를 많이 한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르칠 때 그 권위를 거스를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은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고 사도행전에 보면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해 열심이 있는자 라고 하고요, 나는 너희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수제자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라고 합니다. 인본적인 율법 전수에서 그야말로 나는 원탑이었다는 거죠.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자들의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습니다. 예전에 딱 이 생각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인 장본인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말로 논쟁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적 가치관에 대한 바울의 변화된 태도 자체가 너무 중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볼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말로 하는 논쟁은 대부분 온전한 결론을 낼 수 가 없습니다. 진영논리도 결론을 낼 수 가 없습니다. 한쪽에서 팍 죽어져야 합니다. 그러니 인류가 수 천년 넘게 붙들고 씨름하는 많은 철학적 문제들-태아가 인간인지 아닌지조차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논쟁은 보잘 것 하잘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말에서 답을 구하니 결론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방황합니다. 방황을 멈추게 할 답은 말이 아닌 변화된 삶입니다. 말로 가르치기만 해서는 설득하지 못합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한 때 율법주의에 미쳐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이 이제 교회를 위해 율법주의에 맞서서 변론하고 있는 그 변화된 모습 자체가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도대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것이 전환점이 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 후에 이어진 배척과 무시, 광야의 훈련, 시기와 배신을 겪을 때 마다 구원의 확신을 보여주면서 삶으로 변론이 되어가면서 점점 성령의 완수를 해가는 바울이 된거죠.
환란 가운데 말씀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니 옛사람의 가치관을 버립니다. 지금도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건이 지날수록 조금 더 버리고 버려서 옛날에는 여기까지 오픈을 했다면 조금 더 오픈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구원받지 못했습니까?. 내가 모든 걸 오픈하지 오픈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했다-이건 아닙니다. 자기 믿음 만큼 보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옛사람의 가치관을 조금씩 버리게 될 때 환란이 주제가 되고 말씀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어서 성령의 변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고난과 광야를 깨달을 수도 인본적인 가치관을 깨달을 수 도 없으니까 이제 모든 사건의 맞서서 변론을 할 수 도 없습니다.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거기서 돌이켜야 각자의 사로 잡혀있는 바리새적인 가치관에 맞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변론을 듣고 있던 안디옥의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지도자이기에 거부할 수 도 있지만 자기들의 윗질서인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묻기로 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에요. 윗질서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외적인 규모나 재정으로 판단했다면 규모에서도 재정에서도 사역에서도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이미 훨씬 넘어섰기 떄문이에요. 하지만 안디옥 교회는 오적인 조건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면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맡깁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잘 들은것 처럼 안디옥의 성도들은 잘 들었습니다. 지도자가 잘 들으면 성도들이 잘 묻습니다. 흥왕하는 말씀으로 말씀으로 양육받은 결과입니다. 바울 복음은 전세계가 인정한 복음이지만 바울과 바나바도 자기 주장만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미 안디옥 교회를 떠났으니 순종합니다. 이것이 변화된 삶으로 변론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이렇게 삶의 변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 큐티를 할 때 사람들이 변했지만 다 틀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로 변론할 문제가 아니구나-한것은 이혼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부도가 났는데 기쁘게 다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큐티를 안하면 다시 돌아갔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큐티모임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살아나는 사람들이 오는거예요. 그러니 이것은 성도들의 삶으로 변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교회 17년 동안 성도 여러분들의 삶으로 변론이 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변론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적용해보세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내 변론은 말의 변론입니까 변화된 삶의 변론입니까?
인본적인 가치관에 맞서기 위해서 내가 지금 당해야 할, 당하고 있는 배척과 무시, 광야의 삶, 배척과 훈련 시기와 배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삶의 변론에 꼭 필요한 일들이에요. 내가 왜 이걸 당하나?가 아니고 거기서 성령의 구원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3.구원을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를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가는 길에 베니게와 사마리아에 들렀습니다. 베니게는 옛부터 이방을 대표하는 지역이고사마리아는 앗수르와 유대의 혼혈 족으로 이방보다 더 무시를 받았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사건이후 흩어져서 이 지역들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1차 전도여행의 보고를 했더니 성도들이 너무나 크게 기뻐한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이방인의 차별을 받고 그 처지를 알았기 떄문에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조건없이 주어진 은혜의 구원을 크게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크게 기뻐한 이 성도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기뻐했는지 원어의 메갈렌-의 메가스는 영어의 백만에 해당하는 '메가'의 어원입니다. 저는 구원때문에 함께 애통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지체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고 이런 목장이 우리의 구원 공동체임을 믿습니다. 별 인생이 없어요. 별 기쁨도 없어요. 이제 새해가 되어 목장이 새롭게 시작이 되는데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도 목장에서 큰 기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공동체가 없고 목장에 안들어가면 믿음과 구원이 안생겨요. 혼자서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꿰어지지가 않아요. 목장이 잘나서가 아니라 목장에서 내가 묻고자 하는 그 태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다 이상한 사람들만 모인 곳에 물어보는데 하난미이 역사하시지 않겠어요? 쟤는 왜 믿음도 하나도 없는 목장에서 물어보나? 그 물어보는 한사람 때문에 목장이 다 살아나는 거예요. 그러니 공동체 없는 믿음은 허깨비입니다.
적용해보세요. 구원의 증언을 들을 때 크게 기쁩니까? 여전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합니까? 이게 여러분들의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내가 공동체에서 어떤 마음으로 간증을 듣고 목장모임을 사모하는가 아닌가로 알 수 있습니다.
4. 구원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목장에서 무얼해야 하냐면 인내해야 합니다. 와도 가도 우리는 인내해야 할 것 밖에 없습니다. 4절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들을 말하매' 라고 합니다. 3절에서 베니게와 사마리아 성도들이 너무 기뻐했는데 4절에 와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이건 신인협력적인 것이 아니라 바울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행하셔서 이 전도를 할 수 있었다. 하고 베니게와 사마리아에서와 같이 똑같이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5절에 바리새파들 중에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합니다. 이단같은 사람외에 예루살렘 본교회에서 틀렸다고 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마음이 녹았겠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모교회지만 후원을 받고 나서는 계속 적대적이고 발을 붙일 수 가 없습니다. 17년이 지나고 이방선교의 공을 혁혁하게 세우고 갔지만 여전히 살얼음 판인 모교회 였습니다. 구원의 열매가 있으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바울을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이 구원의 길이 힘든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힘든 길을 같이 가야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뭐든지 잘되고 이런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너무 짧아요, 별 인생이 없어요. 구원의 여정은 끝이 없습니다. 루스드라에서도 돌로 칠 때 툭툭 털고 일어났듯이 이 곳에서도 바울은 드러내야 되는거예요. 바울의 스데반 사건은 일생을 따라다니며 바울을 겸손케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기뻐하는 공동체의 힘으로 계속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격을 인내하면서 받아내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길입니다. 구원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들이 계속되는 것이 2021년의 결론입니다. 성령의 구원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삶의 변론을 할 때 힘든데 기뻐하는 공동체를 주셔서 참게 하십니다. 좋은 자식 좋은 남편때문에 기쁜것이 아닙니다.
적용해보세요. 구원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영육간에 구원을 위해 인내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87세의 석학 이어령 교수는 췌장암을 앓고 계시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피흘린 혁명도 경험해 봤고 땀흘린 경제도 부흥해봤어요. 그런데 딱 하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눈물입니다. 코로나라는 주술에서 벗어날 길은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 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어요. 대한민국만 해도 적폐청산으로 남북문제로 전염병으로 나라가 엉망이 됐지만, 독재를 이기는 것이 주먹이 아니라 보자기였듯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뜨거운 눈물 한방울입니다. 눈물 없는 자유과 평등이 인류의 문명을 초토화 시켰다고 봐요. 오늘의 재앙의 길을 끝내는 길, 몸과 더불어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인간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 한 방울 입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같은 지식인들이 외치는 백마디 말이 트로트 한 곡이 주는 위로를 당하지 못해요. 무대 위 가수의 노래를 듣고 우는 객석의 청중을 보고 시청자들이 다시 울잖아요. 그러나 타인을 위한 눈물을 어찌 악하고 음란한 인간이 흘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눈물은 구원 때문에 가능한거예요. 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눈물을 흘린 사람은 바울처럼 광야가 많은 사람, 자신의 어떤 상황에도 감사할 줄 아니까 툴툴 털고 일어나죠. 그것은 바울에게도 공동체가 있잖아요, 함께하는 삶이에요. 이런 구원을 위한 구원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2021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때문에 우십니까, 자기 연민때문에 우십니까? 눈물도 이타적인 눈물이 있고 이기적인 눈물이 있습니다. 이기적이라도 눈물을 흘리다가 이타적으로 바뀌어 갈 수 있습니다. 올해는 모든 성도들이 눈물 한방울의 은혜를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구원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말로 할 수 없어요. 믿어야 이해가 되지 이해가 되어야 믿는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말도 삶의 변론으로 할 수 있어야 해요. 말을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삶의 변론으로, 진실은 통하니까 진실한 변론을 해야 되겠죠. 그러기 위해서 구원을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를 주실 수 밖에 없어요. 나는 구원받았는데, 나는 성경을 아는데 공동체가 없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왜 공동체를 주셨겠어요, 구원을 검증하라고, 구원이 자라가라고, 견인되라고 주셨습니다. 좋은 공동체 나쁜 공동체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곳을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이상한 공동체라고 하더라고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를 알게 해 주시기 때문에 공동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동체가 없이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결론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기도제목>
고은희
1. 예배와 큐티묵상올리기
2. 가족구원과 목장중보
3. 교통사고 후유증이 빨리 회복될수 있도록
4. 코로나백신이 빨리 마련되고 차별금지법, 낙태법이 조정될수 있도록
5. 성경통독시작하기
한보화
1.매일 큐티와 성경통독하기
2.거짓 긍휼과 거짓 죄책감을 버리고 구원을 위해 자유하도록, 한번에 안되는 나를 인내할 수 있게.
3.올 해 그림 그리는 걸 시작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일로 인도해주시도록
4.친구가족이 하나님 품에 돌아오도록. 우리들교회 전할 수 있게.
5.목장과 가족 그리고 지체들 중보
6.코로나 백신이 효과적일 수 있도록 해주시고 변종 바이러스가 사그라들도록 보호해 주시길.
조민정
1. 성령충만, 지혜충만, 영혼육 강건함, 분별&통찰력 부어주시길, 영적 부지런함으로 매일 말씀양식을 먹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 나누며 깨어 있도록,
중보하는 삶 살도록, 외롭지 않고 활기찬 하루하루 보내도록
2. 가족 구원, 가족들의 영혼육 강건함, 평안
3. 교육공무직(강남서초교육청) 준비 잘하고 소망의 문이 열려 그길로 나아갈수 있도록.. 혹여 그 길이 아닐지라도 2021년 날 향한 하나님 뜻을 구하고 듣고 분별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도록..길을 열어주시길..
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곳을 함께 바라보며 나아가고, 서로 맞춰 갈 수있는 믿음의 배우자 만나도록
5. 개발된 코로나19 백신, 치료제가 효능이있어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온세계의 삶이 회복되도록
6. 1월말쯤까지 대체교사기간에 새힘주시고 기쁨이 충만하여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 끼치며 지도하고.. 아이들이 다치지않고 즐거운시간 보낼수 있도록..
원장.원감.교사들.아이들.학부모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대우받고 마지막 날까지 잘 지내고 마무리 하도록..
손연정
1. 매일 성경읽기. 기도하기.
이미선
1. 생활예배와 주일예배 등 모든 예배와 큐티, 목장 성경통독에 사모함이 생기길
2. 취업이 빨리 되길
3. 코로나가 더이상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종식되어 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가 정상화되도록
4. 나라의 낙태법. 차별금지법 등 모든 악법이 강제적으로 통과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