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구원 행 15:1-5
1. 구원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여기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래서 아가보 선지자가 흉년의 예언을 해도 잘 받아들이고,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까지 한 아주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비우고 1차 선교 전도를 갔다 온 그사이에 아주 요란케 하는 다른 복음에 빠진 것입니다.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자꾸 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신자가 많은 안디옥 교인들은 율법을 좔좔 꿰고 있는 그들이 너무 위대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사도회에서 시키지도 않고 가결되지도 않은 내용인데 와서 가르친 것입니다.
그들은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에게 전도해서 엄청나게 부흥했다는 소문을 듣고 50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달려 왔습니다.
자기들의 자랑인 율법을 가르칠 대상을 만난 것입니다. 안디옥 교인들은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데 확신이 흔들흔들하는 겁니다.
또 그런데 그에 비해서 유대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믿음은 없는데 확신이 충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은 기복이 본능이기 때문에, 유대교도 아브라함의 구속사로 시작했지만 시기마다 변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2. 말이 아닌 삶의 변론을 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인본적인 가르침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교회 정체성을 흔드는
위험천만한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들을 찾아가서 전도하는데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도해 놓으면 훼방을 놓고
자기편으로 끌어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첫 종교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이 와서 떠들면 그냥 안 믿을텐데, 진짜도 아니지만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을 했다고 하니깐 이게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 안디옥 교회를 포함한 모든 지역교회에서 예루살렘교회는 모교회로서 특별한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그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람들이 와서 열심히 가르칠 때, 그 권위를 거스를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말로 논쟁했다는 그 내용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적 가치관에 대한 바울의 변화된 태도 자체가 너무 중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볼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로 하는 논쟁은 대부분 온전한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말에서 답을 구하니깐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방황합니다. 방황을 멈추게 할 답은 말이 아닌 변화된 삶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고난과 광야를 깨달을 수도 인본적인 가치관을 깨달을 수도 없으니까 모든 사건에 맞서 변론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철저히 깨닫고 거기서 돌이켜야 각자 사로 잡혀있는 바리새적인 가치관에 맞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편 가르기로 하지 않고 위 질서인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묻기로 결정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외적인 조건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맡깁니다.
바울 복음은 전 세계가 인정한 복음이지만,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이것이 변화된 삶으로 변론하는 것입니다.
3. 구원을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를 허락하십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교회로 가는 길의 해변가에 두로와 시돈이 있었고, 베니게가 있었고, 예루살렘 바로 위에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내륙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에 거기를 들렸습니다. 베니게는 예로부터 세속적인 이방을 대표하는 중심지고, 사마리아는 앗수르와의 혼혈족으로 이방보다 더 무시합니다.
이렇게 굉장히 무시 받았던 두 지역을 스데반 사건 때 흩어져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여기를 지금 바울과 바나바가 가면서 1차 선교여행의 보고를 했더니, 너무나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이방인처럼 차별받고 그 처지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조건 없이 주신 은혜의 구원을 크게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구원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구원의 열매가 있으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바울을 공격합니다. 바울의 스데반 사건은 일생을 따라다니며 바울을 겸손케 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기뻐하는 공동체의 힘으로 계속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격을 인내하면서 받아내며 설득해야 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길입니다.
[기도제목]
[소정]
1. 앞으로의 방향과 길을 인도해주시기를
2. 영육간의 건강
[영은]
1. 회사 일 가운데 지혜롭게 처리 할 수 있도록
2.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