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201227 성령의 완수
✽ 사도행전 14:19-28
✽ 김양재목사님
서론.
이 세상 업적/성취는 영원히 목 마르기에, 목표를 정해도 늘 목이 마르다. 1차 전도여행이 마쳐지기까지 1일 목적을 완수했다는 뜻으로 쓰였다. 때마다 성령의 일이 완수되는 것을 성령의 완수라고 한다. 우리의 마지막 예배에 성령의 완수가 되었다는 분이 계셔서 감사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뤄가야할 완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 기막힌 시기와 배신을 감당하는 것.
19/ 안디옥에서 이고니온까지 180km정도 되고,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는 35km 정도 거리가 된다. 이 땅 유대인의 시기가 가득하여 자기들이 쫓아내고도 성에 안 차 루스드라에서 인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부터 쫓아가서, 충동하기 위해서 갔다고 한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바나바,바울을 제우스로 알고 제사까지 지내려고 했었던 때에. 그 무리를 겨우 말렸다고 한다. 그랬는데, 유대인들의 설득이 얼마나 타고났는지 바울을 순식간에 돌로 쳐 죽이려는 폭도로 바뀌었다. 루스드라의 기막힌 배신이다.
성경은 인간론 맞다. 그러니 놀라지 말길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막상 와보니 유대인의 회당이 없다. 그리고 바울/바나바가 자신들을 섬기겠다는 것을 헛된 일이라며 창조주 하나님만 섬기라니까 그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바울을 유대인의 법으로 죽이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설득했을까? 우상숭배자들인 루스드라사람들을 바울에게 우상으로 추앙받으라고 했으니, 그 속에는 기복이 깔려있다. 점쳐주던 엘루마와 돈으로 성령을 살려했던 시몬처럼, 영을 재물로 사려고 했던 그 사람들처럼, 항상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의 끝에는 언제나 돈이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달콤한 말에도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했기에, 자기 이해타산이 걸리면 폭도로 돌변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배반하고,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와도 폭도로 변한다.
사탄은 못된 열심으로 끊임없이 주의 제자가 못 되게끔 흔들어댄다. 시기와 박해가 이렇게 모양을 달리하여 온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시기 반박 악감과 돌로침과 이제는 배신과 돌로 죽임까지, 끊임없이 모양을 변하게 한다.
주님은 바울에게 그런 것에서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 능히 이 산맥들을 건너게 한다. 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예방주사를 맞혀주고 가게 하신다. 그것이 성령의 완수다. 신앙은 버티는 것이 신앙이다. 말이 안되는 환경은 집집마다 있다. 시기와 배신이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되면, 오늘을 잘 살게 된다 그것이 성령의 완수이다.
내일은 모르고 하루 하루 살아요 는 정답 맞다
적용/ 은혜를 입고도 하루아침에 배신한 적이 있습니까?
- 사장에게 월급 받으며 은혜를 입으면서도 배신할 생각을 했다는 집사님 나눔
- 일 중독자였던 사장님은 직원들이 쉬는 것을 못 보는 사람, 당시 부목자로서 말씀의 은혜가운데 있었어도 정말 인내가 끝까지 차니 사장님을 끌고가서 흠씬 때리고 그렇게 살지마 하고 계획을 세웠었음
- 말씀에 순금같이 나아가리라 말씀을 보고 계획을 접고, 2년 4개월을 더 참고 이제는 최상의 직장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고. 오죽하면 월급받는 사장의 자리에 있다고 하는가?
- 이 분은 돈도 주고 훈련도 시켜주는 사장님을 붙여주셨던 것에 감사해야한다.
- 기막힌 상황에서 회개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
19-20/ 루스드라에서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사람이 이미 생겼다. 아마 디모데도 이 제자들 가운데 있었을 것. 이들 중 바울이 돌에 맞아, 성 밖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모였다. 어찌할 바 모르고 죽을 바울을 둘러싸서 쳐다보고 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루스드라 성을 갈 용기가 있을 사람이 있을까?
예를들어 개정청원하다가 목사님이 오해를 사서 돌에 맞을 정도가 되면 뭘 하시겠나?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바울은 이런 때에 자기의 생각 느낌 이런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귀기울였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느낌만 있고 아픔만 있다. 조금만 좌절해도 사명의 길을 딱 포기한다. 일어서기를 거부한다. 루스드라처럼 복음을 어제 받았는데, 돈과 연결되어있을 때는 바로 돌로 친다.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 음성이 들렸다. 말씀의 힘에 힘입은 사람이다. 우리는 7번 넘어지면 8번째 일어나야한다. 계속 넘어지라고 시련과 배신을 붙여주신다. 사람들이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내다버렸다. 죽을때까지 때렸다.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바울이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일어나서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다시 툴툴털고 제자들 챙겼다. 하룻밤을 쉬고 이튿날 더베로 떠났다. 더베로 향하여 루스드라로 나갔다는 것. 돌로치면 먼지를 떨고 떠나면 된다. 흥분하지 말고.. 루스드라 성에 하룻밤 들어갔다 나왔다는 것이 아주 대단하다. 제자들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바울처럼 되야지 한다고 될 수 있을까? 바울은 너무 위대해 하면서 따라하지 않을까? 바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구속사는 바울이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하는 것도 좋은데, 어떻게, 왜 하나님이 하셨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다. 어찌하여서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끌어내쳤다고 한다. 바울이 잔멸하던 사람들을 끌어내쳤던 그 모양과 동일하다. 안디옥에서 쫓겨나는 일은, 스데반이 성 밖으로 쫓겨난 일. 이고니온에서 돌 맞은 일은 스데반이 돌 맞은 일. 성도들이 바울에 의해서 각자의 집에서 체포된 일을 생각했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셨다. 실제로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치는 일에 아주 주도적인 일을 했다. 스데반이 돌로 맞을 때 성령의 얼굴이었다고 했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 했던 일이 바울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것.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돌에 맞았을 때 보여주는 얼굴이 중요하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하는 드라마를 살짝 봤는데, 때마다 저렇게 섬기는 거구나 하며 배웠다. 요즘의 정신질환자는 80%가 세상에 속해있다고 보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과 함께 할 때 툴툴 털까? 보이는 것에 열광하면, 눈 앞에서 보이면 좋아라하나, 안 변하면 통곡을 한다. 교회를 다녀도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주기도문은 눈물과 통곡의 내용이지 박수칠 일은 아니다. 소경처럼 낮은 환경에서 무시당 할 때는, 모두가 듣게, 불쌍히 여기소서 해야한다. 주님까지 들으시는 기도가 된다. 기뻐하며 소리지를 일은 전도이고, 제자양육이고 삶의 변화이고, 슬퍼할 일도 같다. 기복적으로 열광하며 기뻐하면 떨어질 때도 너무 슬퍼한다. 무언가 안되었을 때는 배신을 순식간에 하게된다.
바울은 이럴 때 옷을 찢고 Pass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도 툴툴 털고 간다.
적용/ 자기 죄를 보고 털고 일어났습니까? 배반 중에 자녀에게 배반 당하는게 가장 힘든데, 자녀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 부목자님 나눔
- 가장 큰 딸이 고2인데, 한 학기 전부터 자퇴하겠다해서, 쿨하게 그러라고 했다. 자퇴 숙고기간을 7주간 보냈다. 학교는 졸업시키겠다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으나 7주 후에 딱 안나갔다. 별 생각동안 3일간 문 잠그고 있었던 큰 딸. 주일에 지난 주에 식사도 하고 온라인 예배도 드리게 되었는데, 나오자마자 아빠는 어떤 말씀으로 3일간 지냈어요? 했더니 말씀을 붙잡고 살았던 게 아니라 아이만 무사했으면 하는 걱정으로 지냈던 것. 인기척이 있는지 없는지 두렵기만 했는데 딸이 그렇게 물어보니 부끄러웠다.
- 누워서 계속 울었으나 와중에 말씀도보고 큐티를 하고 했다는 것. 딸만 주목하며 깊이 큐티하지도 못했는데, 지난 주 설교로 딸도 주목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 딸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이었을 텐데, 쿨하게 자퇴하라는 말이 도리어 딸에게는 안좋게 비쳐줬을 것 같다. 안될때는 교양을 내려놓고 욕도하고 다그쳐야 할 것 같다.
- 앞으로는 딸을 주목하며 공감하도록 노력하겠다.
- 설교했던 초원님도 부동의 1위인데, 사춘기 아들이 딱 삐딱하니 난리가 났다.
- 제자를 키우는 것.
21/ 더베에서의 사역이 자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세워졌음을 나타낸다. 주목할 점 - 바울이 더베에서 안디옥으로 가는 것이 육로로 가는 것이 더 쉬운데 + 또 다소로 들를 수 있었음에도 굳이 자기가 왔던 길로 갔다. 왜? 방금 믿기 시작한 제자들이 있기 때문. 그들을 살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성령의 일은 자기가 편한 길이 아니다. 죽을 것 같아도 악감이 있어도 제자들을 위해서 성령의 완수를 생각하며 가게된다. 반드시 박해를 받는다. 경건에서 벗어나게끔 언제나 공작한다.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가도 포기하고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열광하다 금새 배신하는 것과 같다. 초신자의 교회정착은 교회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방치하지는 않는가? 양육하는 수고가 없이는 정착이 없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새신자가 정착하는 비율이 높고, 그들을 돌본다. 주님을 안 만난 사람을 어떻게 돌볼까? 하나님나라 부흥을 위해서이다. 감사하게도, 힘든 사람이 목사님 설교를 듣고 이혼도 안하고 회사에서도 감내하며 간다는 편지를 너무 많이 받는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그런데, 가서 무슨 설교를 하나?
22/ 제자들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나님 나라에 가게되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무장을 시키는 바울. 막 세워진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냐하면 다가올 미래가 성공과 안녕이 아닌 환란이다. 이 얘기를 미리 해준다.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주는 구원과 하나님 능력이다. 악하고 음란한 이 땅에서 구원의 여정을 가는 우리에게는 많은 환란이 당연히 있기에, 복음은 장차 올 환란이다. 환란은 짓눌림과 옥죄는 고통이다. 환란이 쉬우면 누가 환란이라 그러겠나? 막 옥죄는 것이다. 집이나 회사에서 옥죄는 것이다.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겪고 통과해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 환란은 각자에 맞게 주신다. 내 환란과 너의 환란이 다르지만, 내 환란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이끌 수 있다.
그 남편/그 자녀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환란을 잘 통과해야 믿음에 머물러 있어야하고 그러면 제자가되고, 제자가 된 후에는 제자를 키워내야한다. 다시 먼 길 돌아가는 바울은 제자들을 키우고 굳게해야해서 갔다.
요즘 유투브에 평원님이 다른 교회가서 간증했던 영상들이 올라왔다. 이 분은 평원이니 우리 교회의 얘기를 하며, 목자가 밑에 35명, 목원이 500명이라고. 컴퓨터도 못하지만 자동으로 나온다고. 부목사님들이 워낙 놀란다고. 하면서, 각자의 고난을 약재료삼아 한사람 한사람 관심을 두기때문에 묻기만하면 척척 나오는 체휼과 처방. 목장얘기를 저절로 하시더니 교양있는 이 초원님이 남편이 4번이나 바람피고 혼외자를 뒀다며 오픈하고, 또 남편이 같이 왔다며 얘기했다. 이런 전공자들이 우리교회에 평초원만해도 20명이 훌쩍 넘는다. 우리교회가 성령의 완수를 해가고 있구나 느낀 부분.
나의 환란은 제자를 키워내는 일에 쓰라고 했다. 설왕설레가 아니라 성경에 있는 이야기다. 밧세바부터, 다말, 라합 전부 오픈이 있다. 성경적.
적용/ 여러분의 환란으로 한 사람이라도 전도했습니까? 그래서, 그 환란으로 제자가 키워졌습니까? 아직도 환란 속에서 환란만 바라보고 있으세요?
오늘 성령의 완수, 기막힌 시기와 배신에도 툴툴털고 회개로 일어나면 제자가 키워나지고 마지막으로 완수는
- 교회가 세워야 합니다.
결국엔 교회를 세워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23/ 영적 지도자를 세워 교회 공동체가 장차 환란에 감당할 수 있게 체계를 세워져야한다. 장로의 역할은 분별과 결정이다. 제일 중요한 결정의 지도자 자격은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에게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한다. 즉 바울 바나바는 믿음이 있는지 그들을 분별해내야 했다. 그들이 믿는 주께 위탁했다. 성품과 스펙으로 지도자를 택했다가는 큰 일난다. 공동체를 위한 분별을 할 수 있다. 주님의 생각대로 내 하루를 순종하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카리스마로 실력으로, 경영학 실력으로. 지식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면 지도자의 독단이 된다. 그 독단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지혜없는 일이다. 성령은 경영학 교과서다. 법 지식의 제일이다. 성경을 믿고 성경대로 결정하고 믿고 살고 누리는 지도자 한 사람이 그 교회를 살린다. 지도자 한 사람을 잘 만나면, 그 사람 지혜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장로를 세웠다.
24-26/ 안디옥부터 버가까지 돌아가는 여정을 누가는 왔던 여정과 마찬가지로 기록한다. 13장 13절을 보면,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라고 쓰여있다. 버가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마가가 떠나버렸던 일이 있었던 때다. 그 버가에서 더 나아가서 안디옥으로 갔었다. 이제 귀환하면서는 비시디아 안디옥부터 버가까지 갔던 길을 갔다가 토로스 산맥을 가로질렀다. 이것은 굉장히 힘든 여정이다. 그런데, 자기 의와 열심으로 했다면 사람은 처음과 끝이 같을 수 없다.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을 사람은 없다. 처음과 끝이 사명으로 감당했기 때문에, 같을 수 있었다. 나는 간 곳이 없고 사명 붙잡고 갔기 때문에 처음과 끝이 같았다. 교회도 야망으로, 선교도 성취를 목적으로 했다면 바울 바나바는 도저히 더나아갈 수 없다. 성취가 목적이면 실패가 생기기 때문에 안되었을 것. 실패같은 현실에서도 말씀을 따라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고난 가운데서도 모든 여정을 마치고, 바울의 모 교회는 예루살렘이었으나 파송했던 안디옥으로 갈 수 있었다. 아직도 예루살렘교회는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안 간다. 이 모든 일을 완수하고 안디옥으로 갔던 바울, '안디옥교회의 기도로 말미암아 선교를 다녀올 수 있었다'라고 말을 전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합리화 시키지 말자. 불신결혼 안된다. 불신자에게 기대하지말자. 그러나 우리는 자꾸 믿을 사람이야, 하곤 하지만, 그런 사람 없다. 루스드라 사람이 하루아침에 돌로친다. 이해타산이 나타나면 딱 나타난다. 말씀에 의지하면, 말씀이 나를 읽고 가기때문에 처음과 끝이 같다. 지난 30여년 동안 수 많은 간증과 사람을 만났다. 말씀없이 만났다면 인간의 생각으로 말하니 식언만 했을것같고, 앞뒤가 안맞는다고 여기저기서 고발했을 것 같다.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내 자신을 세우는 말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말을 했던 것은 그때도 구속사를 깨달았기 때문에. 구속사는 교회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는 그래서 비교적 회사와 가정에서 신뢰를 얻는 것은 처음과 끝이 같기 때문인 것 같다.
큐티 이사회에서 40년동안 한 자리에 있었던 것은, 강산이 4번 변할 동안 미주알고주알 다 드러날 시간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선교에 완수를 했지만, 그들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채운 순종이었다. 말씀만 생각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말씀대로 하는 것이다. 처음 버가에 도착했을 때, 복음을 전해지 못했었던게 걸렸던 것 같은 바울. 그 곳에서 다시 기회를 찾고 전했다. 툭 치면 전했던 바울도 그러나 아딸랴는 여전히 화려한지, 지나치게 했다. 그런 아딸리아도 여전히 있다.
27/ 교회를 모아 보고하는 바울. 이방 세계에 복음이 열렸으나 엄청난 시련이 눈 앞에 있던 시기다. 고생했던 일만 보고하는 것은 객관적 보고는 아닐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인데,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바울은 보고했다. 지난 날 그 엄청난 시련들이 바울에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바울이 연 게 아니라 주님이 여신 복음의 문. 사단의 방해를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싶지 않은 바울. 말씀과 믿음에 근거하여 구속사적으로 보고하게 되고, 하나님께 모든 공을 돌리는 바울.
하나님이 다 하신 곳에, 내가 했다는 게 빠져있다. 그렇다고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리면서도 내가 너무 힘들었다는 동정과 그런 것들을 배제시키고 이성으로만 얘기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일이라고 명확히 했던 바울. 허물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일하신 하나님. 바울의 고백으로 하면, 이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함께 행하셨다고 진심으로 고백했다. 한마디로 구원의 사명, 100% 하나님 일인 동시에 100% 우리의 일이고, 성령님이 100% 동역하시고 사도행전이 사도의 행전이 되는 것이다. 나타낸 열매는 전적으로 ⍬의 일이다.
성령의 완수에는 반드시 구속사적으로 보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하나님 관점에서 해야한다.
28/ 이 방의 땅 끝 선교지에서 모교회에서나 제자들의 반응은 큰 차이가 없다. 오래있음 디아트리보(13:3) 내 몸을 반짝 반짝 닦아 수고하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13:3 이고니온에서는 부정과거이고 여기 수리아에서는 미완료이다. 이고니온은 오래있어도 떠나야 할 교회고, 안디옥은 본향이라는 뜻. 하나님이 불러주신 가시적 교회에 잘 붙어있어야 각자의 사명지에서 잘 머물 수 있다. 고난 없이 잘 지내는 삶이 아니라 주신 말씀안에서 공동체에 잘 붙어있을때, 각자의 사명지에 잘 머물 수 있다. 영원히 이방에도 믿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 공동체 고백 / 서로 시기하는 순간에 가족끼리 얼마나 배반했는지.
- 영원히 믿을 것 같지 않은 가족이 환란이다. 아내는 최고 직분까지 받았다. 60될때 까지 교회도 같이 다니고 원앙같던 부부였다.
- 그러나 60넘어 우울증과 갱년기로 고생하는 아내분은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가보라 했다가 외도를 시작했고, 격한 싸움 이후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은 아내
- 그런 고난 중에 우리들교회로 오신 집사님. 절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내, 착하고 예쁜 딸은 죄를 짓지 않으니 우리들교회를 믿지 않는다.
- 가족들이 모두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하는 것을 보니, 목사님의 말에 인정이 된다. 왠 날벼락일까? 평생 교회다니다가보니 이제보니 예수를 아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것.
- 우리들교회 목장을 열심히 사수하는 것을 보면서 시기를 계속 당하는 집사님. 매일 큐티와 목장을 사수하며 그들에게 그림자가 되어 예수가 전해지는 것이 성령의 완수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잘 감당하기를 원한다.
결론.
우리는 성령의 완수를 위한다, 기막힌 시기와 배신을 당하고, 그때 훌훌 털고 가야한다. 그렇게 제자를 세워야하고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교회를 세우고 구속사적으로 보고해야 성령의 완수이다.
나눔/
나눔 질문 : 2020년, 올해를 봤을 때 성령의 완수를 한 것 같은지? 목표였던 것과 결과를 나누자
A :올 한 해 목표는 딱히 없었고, 실연 했었기에 조금 덤덤하게 보내려고했었다.새롭게 연애도 했다가헤어졌다. 그 후에 정리를 위해서 공부에 좀 매진을 했었고 학점이 목표만큼 처음으로 나왔다. 많은 도전이 함께했던 시간들이었다.그러다가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힘든 시간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경제적인부분도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되게 현실을마주하게 되니 훨씬힘들어졌고, 또 다시 환경 탓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준비된 것도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직면하게 됨.
좋은 회사를 가려는 이유는 혼자만 생각했다면 중소기업도 좋았을 것같은데, 미래의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책임감을 다하고 싶고 경제적인 부분이 방해가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음. 주변이 너무 잘되는 것 같으니 더 위축되거나 비교되는 마음이 많아졌음.
그런데, 비대면이라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니 그래도 비교적 사람들과 비교할 기회가 적었으니 다행이기도 했다.비대면이라도 참석 잘하는 우리 목장이 감사하다. 목원들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
B : 2020년은 내게 회복의 때였다.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경험도 많이쌓고 고민도 하는 시간이었으며 미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여러모로 회복되었던 것 같다. 영적으로는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예전보다 말씀을 확실히 안 보게 된다. 말씀을 안 듣고 안보니 마음으로도 멀어졌다. 교회에 아예 가게되면 붙어가는 게 있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찬양을 좋아해서 찬양을 가끔 기타 치는 것 외에는 신앙생활을 안하게 되는 것 같다.
C : 2020년은 나에게는 최악이었따. 집이나 대학이나 마음에 안드는 것 뿐. 교회는 습관적으로 나왔지만 예배는 잘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목장은 기대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잘 붙어간 한 해 였던 것 같다.
D :안일했던 첫 목장이었다. 여러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내가 가진 어두운 마음대로 흩으셨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여름에는 3주 동안나까지도 마음이 식어서목장을 아예 열지 않았었는데, 그때 목원이 왜 목장 오늘 안하냐고 하는 말에 다시 돌이켰던 것이 기억난다. 안면몰수 하지 않고 새롭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역할에 순종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를 놓지 않아야겠다.
기도제목
송현
-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중, 조바심내지 않고 본분에 충실할 수 있도록
- 예전보다 나아진 동생과 부모님의 트러블을 내 생각대로 판단하지 않도록
- 컴퓨터게임을 줄여갈 수 있도록
송승환
- 신교제를 원합니다 - 믿음 안의 사람.
- 취업준비 중인데 하나님의 인도를 잘 따라 갈 수 있도록
- 믿음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을 붙들고 갈 수 있도록
안식
- 새롭게 미디어팀에 들어가서 봉사를 할 텐데,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 코로나가 잠잠해지도록
- 새해엔 긴장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 목원들이 다음주엔 잘 들어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