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2일, '성령의 일으키심' (행 13:31-41), 김양재 담임목사님
지난주 큐페온 부흥회에서 룻기를 통해 흉년에서 남은 것을 보라 하셨고 무슨 일을 만나든 말씀에 관개수로를 통해 만사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면 에스겔의 대장정에서는 흉년에서 어떻게 말씀을 만나서 하늘이 열리는지를 봤다. 모든 성도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성령의 살리심으로 은혜 받았다면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일어나야 한다. 왜 그런가?
1. 증인으로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31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다 하니 전부 살아난 증거 있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니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다고 한다.
나의 증인은 대제사장이나 유대 관원들보다도 부족해보이나 함께 올라간 어부 제자들이다. 그러니 나의 증인이 되어주는 자를 인간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찾지 말라. 내가 죽었다 살아난 자를 한 명이라도 본 증인이 있어야 한다.
19절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셔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 당했으나 살아났음에도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들을 닫았다고 했다.
주님은 십자가 지러 가시면서도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니 말고의 귀도 붙여가면서 가셨다. 그리고 자기를 저주해 부인하는 베드로까지 뒤돌아 쳐다보며 시선을 양육하시며 십자가 지러 가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모두 다 도망갔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어 예수님을 만났다. 주님은 그녀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을 만난 것을 가서 전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부활의 첫 증인도 일곱 귀신 들린 마리아의 것이 되었다. 흉년이 오지 않는 자는 육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끊임 없이 의심하고 부활을 얄팍한 육으로만 생각한다. 일곱 귀신이 들렸기에 육이 무너진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무너질 육이 없기에 영이 세워지기가 쉽다.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육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기에 그 사랑이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그동안의 양육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다 숨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빨리 가셔야 하는데 40일 동안 지체하시면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여러 모양으로 부활을 확증해 주셨다. 닫은 문을 뚫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나타나셔서 못자국 창자국을 보여주시고 평강을 빌어주신다.
저는 특별히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 부활을 보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이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인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데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근데 주님이 시공을 뚫고 그 방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다 봤다.
근데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다. 후에 도마가 이 소식을 듣고 만져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했다. 시공을 초월하신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8일만에 같은 장소인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손가락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시는 것을 보면서 구원 때문에 그 한사람 때문에 모임을 갈수도 안 갈 수도 있게 된다. 주님이 떠나시고 나서 모든 그 일을 제자들이 해야 하니 주님의 관심이 온통 제자들에게 있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으로 공동체에 한 사람이 오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면 부활을 주님을 못만난 것이다. 도마 한사람을 챙기는 주님의 사랑을 적용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못 믿겠다는 도마 같은 성도를 보고 너무 믿음이 없으니 나가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좋은 일이 아니라 상처 받고 나갈 때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가.
17년 지나보니 우리들교회 아니면 절대 변하지 않을 분들이 변하는 것을 많이 본다. 사역하기 위해 두려운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빌어주시는 것이 평강이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어떻게 사역 하겠는가?
부활을 경험한 자의 특징이 평강이다. 야망이 있는 자는 평강을 누리지 못한다. 제일 평강 누리지 못하는 부분이 언제인가? 다른 사람 천명 괴롭히는 것 보다 자식 하나 괴롭히는 것이 가장 괴롭다. 죽일수도 살릴수도 없는 집안 식구들이 훈련을 가장 많이 시킨다. 내가 주님의 부활을 경험할 때 평강을 누리며 다른 사람을 일으킬 수 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와서 평강을 빌어주는 것이다.
한 목원이 나는 목장도 참석 안하고 남편과 부부관계도 안하고 아이도 안 갖겠다고 했는데 지난주 주일 말씀을 들으며 자기 소행을 참아주신 하나님을 깨닫고 남편에게 사과하고 아이도 갖기로 하고 목장예배로 집도 오픈했다고 한다. 이 마음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부탁했기에 오늘 공표한다. 이러한 나눔은 소소한 적용이 아니다. 천지가 흔들리는 굉장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후에는 열두제자 모두 성령 받고 주님이 와서 양육해주시니 부활의 증인으로 다 십자가형 참수형으로 증인되게 하셨다. 어쨌든 주님과 함께 고향 갈릴리를 떠나 십자가 사명이 기다리는 에루살렘으로 함께 올라온 사람들이 결국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고 주님을 십자가에 죽인 유대인과 백성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었다. 그래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있었더니 증인이 되게 하셨다. 결국 여러 날 보이신 모습은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기도 했지만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육체에 계실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모든 백성들을 도우시게 된 것이다.
32절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를 전파한다 하지 않고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전파한다고 한다. 조상들에게 되어진 약속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에서 부활시킬시거라는 예언을 말한다. 이는 35절 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바로 이 약속이 구속사의 예수님 약속이고 좋은 소식이고 복음이다.
내가 증인되어 전파할 때 왜 십자가에 머물러 있는가, 부활의 주님이 계신데 하며 이원론적으로생각하면 안된다. 십자가 빼놓고 병 나은 것 부자된 것 붙은 것만이 부활의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와 하나님의 살리신 것을 정확히 약속의 말씀에 의거하여 전파해야 건강하게 일으킴을 받는 증인이 된다.
제가 어려서 고난 시집살이의 고난 남편 고난 자녀와의 고난 등에서 잘 되고 못되고를 떠나 늘 약속의 말씀으로 히 1:1에서 여러 모양으로 여러 날 동안 천국가기 전 나의 40일 동안 전파한 것과 같다. 여러 모습으로 전파하는 것이지 잘된 것만 간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균형이 안 잡힌 것이다. 부활만 강조해도 이단이고 십자가만 강조해도 이단이다. 균형이 잡혀야 한다.
적용) 내가 살아난 이야기를 여러 날 여러 모습으로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아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가셨다.) 그렇게 여러 날 여러모습으로 증거하다가 가면 그런 나를 증거해줄 증인이 있는가?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하루하루를 주 안에서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의 시시때때에 말씀이 있는데 말씀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성령의 일으키심이다. 그러면 왜 일으켜 주실까?
2. 하나님이 낳아주셨기 때문입니다.
33절
일으키사도 지난번의 하나님께서 살리신지라 처럼 능동태 부정과거분사이다. 하나님이 단번에 일으키셨지만 성삼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일어나신 것이다. 모든 일에 직접 일어나셔야 한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예수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일으키심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 주셨다. 약속을 받은 조상의 후손인 우리 시대에 이 일이 일어났기에 우리는 약속의 성취를 얻은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 너를 낳았다고 했는데, 오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망에서 일으켜 부활하게 하신 때를 의미한다. 이를 굳이 오늘로 표현한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있어서는 모든 시간이 오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50년 참을 때 하루를 잘 참으면 450년 참는 것이다.
삼하 7:14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아들로 삼겠다고 말씀하신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고 왕도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왕이 백성을 대표하고 백성들을 구원하기 때문이다.
히 1:5, 시2:7, 삼하 7:14 -
그 중 오늘 본문의 시2편에서는 헤롯시대에 빌라도에게 핍박받는 예수님이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것을 보며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신다고 하고 7절에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신다. 그리고 그 이후에 허사를 경영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해 하나님은 웃으셨다고 한다.
이 땅에서는 예수가 없으면 다 허사를 경영한다. 정치 경제 모두 예수가 없으면 허사이다. 예수님을 죽이는 빌라도나 세상의 권세자들을 보고 하나님이 웃으셨다. 이것은 비웃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소한 명령에 순종하면 이세상에 아무리 거대해 보이는 권세가 대단할지라도 그것이 사소하고 시시해 보이기에 속으로 비웃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웃음에 동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말씀 묵상이다.
내 자신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다. 세상적인 것은 허사를 경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가치관이 적립되지 않았다면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남편의 구원 때문에 애통하다보니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의 구원이 눈에 들어오고 애통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나를 낳아주신 것 처럼 하나님이 그들도 낳아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남편에 대한 애통함을 주신 것이지 남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애통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주신 고난으로 그런 애통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사울이 미워하는 그 미움을 안받아본 사람은 다윗의 믿음과 고난과 영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울이 진짜 불쌍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이 권세자이다. 그러니 권세자를 보고 나를 낳아주신 하나님이 당신도 낳아주셔야겠으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그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이 낳은 자를 비방하여 잠시 후에 지옥에 갈 생각하니 사울이 불쌍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이걸 깨달았으니 사울 같은 권세자를 다윗에게 붙여주신 것은 가장 최고의 축복이었다.
가족구원 위해 사명을 주셨지만 그로 인해 말씀묵상 하다보니 가족을 뛰어넘는 우주적인 사명을 주셨다. 그런데 내 식구만 쳐다보다 지옥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내 식구 때문에 슬프고 애통한 사람은 자기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권세자가 어떤 조롱을 해도 나는 하나님이 낳아준 자이기에 하나님의 웃음을 웃어야 한다. 속으로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이세상 권세를 비웃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울을 억지로 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를 미워한다고 잘라내면 안되는것이다. 예수님의 계보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많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가정이다. 그래서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낳아주셨으니 하나님의 대리자이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도 통치권이 오게 되어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낳아주시고 나를 낳아주신 것이다. 나는 기가막힌 부활의 주님의 증인이 되기위해 하나님의 대리자로 살아야 하는 대단한 신분이라는 것이다.
적용) 하나님이 나를 낳아주신 것이 믿어집니까? 어머니가 낳아준 것만 믿어집니까?
3. 썩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34-35절
다윗에게 주신 거룩하고 미쁜 은사라는 것은 신실한 은혜의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34절부터 4-7절에 썩음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온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다윗은 썩음을 당했는데 시 16편의 다윗에 대한 구절은 그것이 다윗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구절이라는 것을 말하는 대목이다.
행2:29
베드로는 이전에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다고 하며 확실한 다윗의 죽음을 언급했다. 다윗은 사명을 다한 뒤 죽었는데 썩지 않음을 당한 분은 다윗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라는 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의 외모 능력 지위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수행했다는 데 있다.
36절
뜻을 따라 섬기다가는 수행원이라는 의미이다. 배 밑창에서 열심히 노예처럼 노 젓는 것이다. 다윗은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배 밑에서 노젓는 것 처럼 그분의 뜻을 따라 겸손히 섬겼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마음에 뒤를 따르는 사람으로써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기 뜻을 다 이루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잘 따르면 노예처럼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아도 사람들이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노예다 하는데도 모든 유대인이 다윗을 존경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존경해도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가 다윗이 아니라는 것이다.
37절
썩음을 당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윗같이 위대한 왕에게 어울리는 것 같지만 죽음을 이기는 것은 다윗이 아니라 그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일이다. 다윗이 아니라 다윗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기신 메시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윗은 왕이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다. 누가 메시야를 나사렛 청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세례요한도 다윗도 부르짖었다.
행 2:30-32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 장사된 후에 무덤에서 살아나신 것을 천년 전에 미리 봤다는 것이다. 시 16편에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그 예언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윗이 미리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괜히 다윗이 아니다.
배 밑창에서 노를 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도 취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의 부활을미리 보게 하신다. 다윗도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1도 취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열광하는데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세례요한과 똑같다. 썩음 당하지 않는 자는 주님이라고 다윗이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요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씀하신다.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았다. 베드로가 목격한 부활의 주님은 다윗이 미리 본 그리스도의 부활과 똑같았다. 죽음과 약속과 부활을 미리 본다면 이것이 믿음이고 복인 것이다. 그것을 다윗이 베드로가 내가 알아서 내 속의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일으키신다.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다. 이것을 미리 본 부활의 증인으로 살려면 인생이 짧다. 제자들과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을 보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전 까지 능력을 몰랐다. 근데 성령이 강림하셔서 그 능력이 나타났다. 제자들과 베드로는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육적으로 봤다. 근데 영적으로 못봤기에 숨어서 두려워했다. 모습으로 본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해서 부활이 임해야 한다. 똑같이 교회를 다녀도 똑같은 간증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영으로 듣고 어떤 사람은 모습으로 본다. 그러니 간증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부활의 능력은 오직 개인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주셨다. 자기 집안 잘 먹고 잘 살려고 그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저는 요즘에 믿음 생긴 것 아니라 남편이 갈 때도 성령이 임했으니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에 남편을 데리고 와서 나 과부라고 온 주민이 보는데 등을 달고 장례식을 치뤘다. 젊은 과부가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하겠는가? 제가 영으로 주님을 보고 부활의 주님을 보았기에 그렇다. 다 시집가서 잘 살 생각하고 두려우니 숨는 것이다. 다 부끄러워서 숨는데 나는 내가 과부다 하고 떠들었다.
교회를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이 사건을 주셨다. 나의 모든 사건도 성경에 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이것을 미리 봐야 하는 것이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제가 나 죽었다 남편 죽었다 하다가 살려주셨는데 제가 당장 일어났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결국 다시 사는 부활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지 않고는 성령의 일으키심을 받을 수 없다. 인본적인 것으로 부활을 설명해서 그렇다 기복적으로 부활을 설명해서 그렇다. 십자가와 부활은 같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보이는 신유나 능력정도만 강조한다면 잠시 일어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일으키심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30년이나 더 살게 하셨다.
우리도 그렇다면 다시 살아나 증인이 되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시고 구원자가 되셨다 날마다 외쳐야 한다. 그것은 성령이 임하니 저절로 외치게 되는 것 같다. 억만금을 준다고 우리집에 온 분들에게 제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성령이 임하면 저절로 외치게 된다.
예수님을 전하라 하면 한마디도 못한다면 성령이 임하지 못했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고, 그의 부활은 그의 두번째 탄생인 것이다. 다 다시 사는 것 같다는 것이다. 거듭나면 다시 사는 것 같다. 다시 사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것이다. 다른 인생이 내 눈앞에 왔으니 이 모든 환경을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배설물로 여기고 별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이다. 근데 배설물로 여기니 한번 나오게 되니 모든 것들이 수치가 아니라 약재료가 된다. 전부 부족과 수치를 약재료로 내놓는다.
미리 보는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는다. 그래야 장래를 보여준다. 근데 내가 부활을 미리 보지 못하고 모습으로만 봤으니 썩어짐을 당한다. 육신이니 썩어진다. 내가 부활의 주님을 보지 못하니 내가 썩어질 몸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것이다. 썩어짐을 당하고 썩을 속이 없어 못썩어진다고 한다. 하나님이 낳아주셨으니 나는 썩지 않는다. 그런 부활의 주님을 내가 보니 예수 믿어야 한다고, 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간증하는 것이다. 그 능력은 나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 때문에 주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부활의 능력을 보면 우리끼리 잘 살겠다는 것에서 넘어가는 것이다. 모든 결론은 천국에서 구원받은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다. 내 식구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주는 것이다.
4.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바울 사역의 결론이다. 16절부터 시작된 설교의 결론이다.
38-39절
구속사가 예수님의 이야기고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죄사함을 알수도 없고 의롭다 하심을 얻지도 못한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된다. 유대인이 울법을 좔좔 외우고 있어도 몰라서 예수님을 죽인다. 그래서 믿는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사람이 모세의 율법을 꿰는 사람, 성경을 꿰는 사람이다. 이것을 부활의 영이 아니고선 깨달을 수 없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니 16, 26, 38절에 세번이나 형제들을 부른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형제라 차별 없이 부른다. 소통해야 한다.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면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 예수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아니라면 누구도 의로워질 수 없고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 구속사의 결론도 마찬가지라고 바울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 바울이 구속사의 최고의 설교를 했다. 우리가 말하는 구속사의 설교가 여기에 다 있다.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 가신다.
바울처럼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는, 문자적으로도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제가 설교를 하면 오실 예수님, 오신 예수님, 성경 어디서든 예수님을 뽑아내는 설교를 한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부활을 맛본 사람은 제가 한 시간 설교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40절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심판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41절
이는 하박국 1:5 인용이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시는 유대인이다. 근데 바벨론 포로 가기 전 나라가 어둡다. 어느 때까지 고난을 당해야 하냐고 하박국 선지자가 물었다. 정의가 굽었다 했다. 이 나라에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 왜 이러냐고 했다. 그랬더니 응답으로 바벨론에 잡혀갈거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도 유대인도 혈통만 주장하면 심판 올거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어떤 환경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고 복음을 거절한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을 듣고 지속적으로 조심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날마다 무슨 응답을 주실지 하나님만 쳐다보고 있다. 근데 악한사람은 다 망하고 떨어져야 하고 나같이 목자도 하고 선한 사람은 우리아이는 붙고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 말도 안되는 식구 상사를 참은 것은 모두 아이 수능을 위해 참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근데 아이가 수능에 떨어지고 승진도 안되고 해고되고 악한사람이 승진되면 이해할 수 없다. 다운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내가 떨어진 것은 좋은데 저 집은 잘되고 승진되면 그때부터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못한다. 원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이러시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근데 오늘 5절처럼 하나님께서 놀라고 멸망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대로 기도하고 응답받아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니가 덜 놀랐다고 간담이 떨어지도록 더 놀랄일이 와야한다고 하시며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생겨야 그것이 응답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울부짖으며 언제 문제가 해결될까 언제 집을 살까 했더니 넌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고, 망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응답이다.
우리는 나는 죽지 않고 환경이 바뀌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두렵다. 정답은 내가 변하는 것인데 나는 죽지 않고 환경이 바뀌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지옥을 살고 썩어지고 있다. 환경이 바라기를 바라는 기도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나에게 평강이 온다. 십자가를 거쳤기에 부활이 온다. 십자가를 거쳐 죽으면 움찔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아는 것이 너무 큰 실력이다. 성경을 읽는 우리는 실력자이다.
나에게 사건이 왔을 때 내가 말씀대로 기도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 하나님이 아직 때가 안되었다고 한다. 나는 시누이가 미워 죽을 지경인데 우리 집이 지진나고 부도가 나면 시누이 미워하는 것이 다 없어져버린다. 너무 정신없으니 바벨론이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하박국 1:12부터 하박국이 질문하고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면서 결국은 바벨론에 멸망이 와야 한다고 한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사건으로 양육을 받는 것 처럼 우리도 사건으로 하나님의 양육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훈련하기 위해 등장하는 몽둥이가 있다고 한다. 그 몽둥이는 나보다 항상 더 악한 존재이다. 내가 악한 존재이기에 반드시 나보다 더 악한 사람과 사건으로 훈련시키신다. 나보다 선한 사람에게는 훈련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 집에서 악한 사람은 다 합당하게 있다. 이땅에는 악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이 하박국의 주제이다.
원리를 알면 해석이 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일으키심을 받는다. 살리심을 받았다고 가만히 있으면안된다. 일어나서 복음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이 나를 낳아주셨다고, 나는 썩음을 당치 않는다고 외치고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적용) 기도응답으로 놀라고 멸망하라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박국이 물어본 것 처럼 우리도 물어볼 공동체가 있는 것 처럼 목장에서 물어보시길 바란다.
우리는 썩음을 당치 않기에 지진나고 부도가 나도 부활의 주님을 맛본 사람은 거기서도 썩음을 당치 않는다고 한다. 결국 항상 나라는 것이다. 환경이 절대 아니다.
어떤 목자님이 두집살림 하시는 아버지를 너무 미워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 미워하며 평생고생하셨고 자기는 평생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3년동안 부모님 댁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미워했던 아버지는 돌아가시며 자기 죄를 보니 돌아가시면서 천국의 소망을 보여주시고 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시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아버지가 하나님 자리에 있으니 그 아버지를 미워하느라 평생 그랬다. 우상이면 따라 죽는다. 무시하면 지게꾼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맞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죄를 알기에 회개하셨고 어머니는 너무 바르게 사셔서 오직 의인은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내 죄를 알아야 하는데 피해자들은 당했다고만 생각하니 죄를 모른다. 그러니 가해자 피해자가 다 같은 죄인이다.
한 초원님 이야기 ampndash 바람핀 친구들의 이야기
바람피는 죄와 예수 안믿는 죄는 육과 영의 죄이다. 이것이 분별이 되지 않는가? 바람핀 죄는 사함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 안믿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내 죄를 알면 의롭게 된다. 내 죄사함 받는 것은 내 행한 것 죄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만 하면 되는데, 이 쉬운 것이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윤리적인 죄는 회개하기 쉽다. 근데 영적인 죄는 삶이 없다. 내 힘으로는 구원받을 근거가 하나도 없다.
말씀맺음
성령의 일으키심은 우리를 증인으로 전파하기 위해 교회를 위해 우리에게 증인되게 하신다. 여러날 여러 모습으로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이 낳아주셨다는 신분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썩어질 환경에서 썩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나를 낳아주셨기에 그렇다. 예수만이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의롭게 해주신다는 것이 바울 설교의 결론이다. 그러니 내가 미리 주님을 보고 일어나야 한다. 일어날 힘이 없는데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오늘은 전나윤 자매목장과 조인(?)을 했습니다 :)
[기도제목]
*이지현
1. 내가 죄인인것, 내 주제를 알고 깨닫도록
2. 생활예배와 건강관리 잘 하도록
3. 붙여주신 한 영혼을 위한 사명 감당 잘 하도록
*전나윤
1. 엄마아빠의 구속사를 잘 알고 순종 잘 하도록
2. 회사에서 썩어짐으로 내 역할과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3. 매일 큐티하고 말씀 보도록
4.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절제할 수 있는 힘 주시도록
*김교희
1. 앞으로 회사 지역 평가 말씀으로 잘 준비하고 갈 수 있도록
2. 동생 구원 위해서, 엄마 목장 잘 붙어가실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3. 집 문제에 대해 욕심 잘 분별하고 잘 묻고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