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부조 >
처음 온라인 예배를 시작한 2월 23일 주일의 설교 제목이 성령의 성전이었습니다. 우리들교회가 성령의 전이 되기를 원하시는 구나 그래서 죽어지는 순종으로 순교를 하라고 스데반의 성령의 순교가 이어 나오고, 모두 흩어지는 성령의 흩어짐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말씀대로라서 놀라고 있습니다. 2차 코로나로 인해 다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지난 주 설교 제목이 성령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제 이 고난을 통해 개개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 조롱하는 칭호였으나 지금은 존경받는 칭호가 된 것처럼 지금 개신교는 조롱받는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하는 때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죽어지고 손해를 보면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타산을 떠나서 성령의 부조를 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성령의 예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7절-그 떄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선지자들이 왜 왔을까요. 안디옥 교회가 날이 갈수록 흥해 간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기도 하지만 잘 믿는 자에게는 수준 높게 해줄 말이 있기에 온 것 같아요. 선지자들의 예언은 일시적인 것일 수 도, 영구적인 것일 수 도, 또한 교훈적인 내용일 수 도, 예언적인 내용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날을 내다보는 은사가 말씀에 의거하지 않으면 완전히 점쟁이가 되고맙니다. 그러면 늘 예언을 받으러 다닌다고 하면서 사실은 점을 치러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예언하는 은사가 나왔습니다. 이 때는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아서 구약과 복음서 정도만 구전으로 내려올 때 였습니다. 그래서 예언자가 존경을 받을 때 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는 예언의 예시가 몇개 없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많습니다. 베드로가 잡혀가고 스데반이 순교하고 박해가 일어나서 흩어지고 또 바울이 정오의 회심을 통해서 이방인의 사도가 될 것이라고 그 중요한 사건을 미리 예언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사건들이 가장 중요한 예언 아닙니까? 왜 그랬을까요? 구약에서 바벨론 포로로 갈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심해서 구원을 위해서 심판 받으라는 것이기에 바벨론으로 가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이 임해서 충만할 때에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예언하도록 하시지는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셨기 때문에 앞날을 예언하는 의사는 아주 비중이 낮게 다루어 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미 어떤 앞날의 일도 점쟁이처럼 알고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언제 죽는가 하는 것일 거예요. 그런데 믿는 우리는 우리의 처소가 이미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만남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점쟁이의 예언을 찾아다니겠지요. 이제는 진리의 성령님이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알게 해주시기에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면 모두 선지자입니다. 만인 선지자 시대에 살고있기 때문에우리 모두 선지자적인 예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구속사적으로 흉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28절-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아가보는 그의 사랑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인데요, 즉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성령의 예언을 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아가보의 예언은 '반드시 흉년이 있을 것인데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되-는 일반적인 말하다라는 동사가 아니에요. 신호하다 또는 알리다하는 의미입니다. 아마 아가보는 장래의 흉년을 알리기 위해서 손짓 발짓을 하며 안타깝게 예언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불신 결혼 하지 말라고 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신의 오장 육부를 다 드러내며 간증을 해야하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안들어도 후에는 알리라-때문에 지금도 다들 목장에서 후일의 흉년을, 오늘도 열심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싸인을 보내고 신호하고 알려야겠지요.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요, 베드로서 1장 21절 과 베드로전서 1장 10-11절을 성경으로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선지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해서 알아야할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입니다. 고난과 영광, 이것을 미리 증언하여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가보가 무슨 말을 했나요? 천하에 흉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건 고난이잖아요. 데살로니가 3장에 예언하듯이 장차 받을 환난을 예언한 것이에요. 그러면 후에 받을 영광이 있다는 거예요. 흉년만 얘기하는 것이 어디있어요, 반드시 후에 받을 영광이 있습니다. 흉년이라는 말이 나오니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8장에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바벨론 포로로 갈 것을 예언하는 예레미야와,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나오는데요, 그는 바벨론으로 옮겨간 기구를 2년이 가기전에 다 가지고 오게 하고 포로들도 다 돌아올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예레미야가 '그리되면 아멘이겠지만, 평화를 예언하는 자는 그 말이 응한 후에야 참선지자로 알게 될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어서는 모든 백성앞에서 말하기를'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2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의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합니다. 하나냐가 사람들 앞에서 거짓예언을 하니 예레미야가 할말이 없습니다. 때가 되기까지는 참 선지자가 참아야 할 일이 있는것입니다 15-17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는데 니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달에 죽었더라-합니다. 사람들은 거짓 선지가 하나냐의 말에 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막 자기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니 하나님이 하나냐에게 '네가 꺾은 나무멍에를 쇠멍에로 바꾸어서 바벨론 왕을 반드시 섬기게 하겠다'라고 하나냐에게 가서 전하라는 거예요.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고 있는데 가서 그말을 다시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바벨론 포로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너희들이 하도 교만하고 말을 안들으니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다시 거짓선지자 하나냐에게 예언을 하도록 하셨어요. 여러분,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참 선지자는 지금 당하는 일은 우리 죄의 결론이니까 포로로 가서 순종하라고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하는데 거짓선지자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포로로 가지 않는다, 결단코 망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좋겠습니까? 흉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흉년을 예언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의식이 있어서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흉년이란 없다-가 주제가 인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다 지켜주기 때문에 검사를 안받아도 된다 이런식의 선민의식이 있는거예요, 예루살렘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말씀을 잘 배운 안디옥 교인들은 우리에게 흉년은 없다고 하지 않아요. 안디옥의 교회의 교인들이 실력이 탄탄해서 흉년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 배우면 흉년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인들을 괜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으로 예수가 초라하다고, 저런사람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없다고 하면서 자기 고향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아프고, 떨어지고, 죽고, 망하고는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안망합니까? 우리 모두 날마다 큐티를 통해서 그날그날 주님의 인도하심을 한절한절 받기에 이것이 바로 예언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 처럼 성령으로 예언할 수 있는 참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천하는 언제든지 흉년 들 때가 옵니다.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도 협박성 발언도 아닙니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라고 끝없이 말해요. 이것을 미리 듣고 양육을 받으면, 우리 모두 만인 제사장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글라우디오 왕 떄가 되면 있어야 할 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의 실력입니다. 같은 때에 예레미야도 있고 하나냐도 있습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오실 예수님'을 찾고,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오신 예수님'을 찾으면, 모든 예언의 완성이시기에 우리 모두 성령의 예언자가 되게 하십니다. 한편 누가는 이 예언 성취의 때를 연대로 언급하지 않고 글라우디오 때라고만 언급했습니다. 천하는 통상 로마 제국을 지칭하는데 글라우디오 4-7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심한 기근이 있었습니다. 예언이 그대로 실행된 것이죠. 그런데 누가가 이 흉년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것은 흉년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아가보의 예언대로 흉년이 닥쳤을 때 안디옥 교회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흉년의 이야기는 슬쩍 한절에 지나갑니다. '흉년을 당하리라'는 늘 슬쩍 한절에 지나가는거예요.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부활의 예수님을 안다면 그렇습니다.
적용질문> 잘 될거라는 소리만 듣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어떤 흉년의 소식도 잘 들어냅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흉년의 소식은 그렇게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2.각각 힘대로 작정을 합니다.
29-30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힘대로-는 3인칭 단수이므로 제자들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따라 여건이 되는대로 부조를 작정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탄탄한 실력을 알 수 있습니다. 천하에 흉년이 들었는데 안디옥 교회에는 안들었어요, 예루살렘 교회에만 집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주는데 로마서에보면 '저희가 기뻐서 부조를 하였거니와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누어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합니다. 이사람들이 무시할 수 도 있지만, 먼저 복음이 좋아서 부조를 실천한 것은 성령님이 운행하신 성령의 부조입니다. 왜그럴까요, 복음이 전 세계에 나가기 위해서는 유대의 선민주의를 깨뜨려야 하고, 도움 받는 역할을 하게 하심으로 차별없는 복음을 보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 때 갈라졌지만 이 기독교도 초대교회의 선민주의가 되어서 오늘날 카톨릭의 로마교황을 낳았습니다. 그곳에는 베드로가 장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믿는다고 하는 선민주의는 끊임없이 이렇게 갈라지는 것 같아요. 유대교의 선민주의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고 있어요. 그러니 안디옥의 제자들이 유대의 제자들에게 부조하는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 다들내가 어떤 사람인데 이 생각만 하고 있잖아요. 부조는 봉사로 번역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예요. 헌신, 섬김 이런 뜻입니다. 한 때 교회 자선사업과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목표로 교회 옆에 지은 지정건물을 뜻했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디아코니아는 자선과 구제의 의미를 포함한 말로써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이것은 집사 디아코노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집사는 수종들고 헌신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부조할 때는 남는 것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중을 들듯이 고통 분담을 했다는 거예요. 안디옥 교인들은 사도행전 4장에 공동체에서 따온 공산주의 이론으로 평등하게 도운것이 아니라 청지기의 정신으로 나누었습니다. 다음은 장신대 최진봉 교수의 글에서 읽었습니다.
<청지기는 재물의 논리를 아는 자다 이 논리는 신비하여 나눌 수록 쌓여가는 하늘의 논리다. 잠언 11장 24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구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그렇다고 청지기가 극단적으로 재물을 포기하고 배척하는 자가 아니다. 누구는 돈을 똥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자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도 나오듯이 누가복음 16장 9절에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그러니 위험한 재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관리하는 자가 지혜로운 청지기라고 하는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2절에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 살아간다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하셨는데 나누어 주는 일은 소유물과 소유지가 없는 형제 자매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지기직과 기독교의 탈소유가 만나는 삶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성도의 십일조다>
맞습니다. 십일조의 신앙고백이 없으면 각각 힘대로 부조를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의로는 그 부조를 오래 할 수 가 없어요. 여러분이 알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가 느헤미야에서 읽었듯이 십일조를 하게 하기 위해서는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가 절대로 중요합니다. 느헤미야 12장 44절부터 보면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을 위해 즐거워서 십일조를 쌓았다고 합니다. 다시 43절에 보면 이 날에 큰무리가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 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며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온 백성들이 즐거워하니까 십일조가 저절로 쌓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지도자가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인가요?
44절부터 13장까지 풀어서 정리를 하면 첫 째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섬겼다고 합니다. 둘 째는 날마다 회개를 하고 셋 째는 섬김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을 행했다고 합니다. 넷 째는 최강의 예배를 회복시켰어요. 다섯 번 째는 무슨일에나 찬송과 감사를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여섯 번 째가 성격을 읽히는 지도자라고 합니다. 요약하면 날마다 회개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지도자 입니다. 죽거나 슬프거나 떨어지거나 아프거나 붙거나 하나님이 하신 일로 감사하고, 사건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정확한 해석과 처방을 가지고 보여줄 때 백성들이 즐거워서 십일조를 쌓아놓습니다. 그런데 같은 본문에서 엘리아십과 도비야처럼 근심케 하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보수하고 십일조 신앙을 드리게 하고 됐구나 했는데 잠시 떠나니 십일조를 맡아서 관장하던 엘리아십이 이스라엘의 원수 대적 도비야와 친하게 지내고 혼인까지 맺고는 십일조의 방을 도비야에게 내 줍니다. 십일조를 맡겼으니 얼마나 신뢰받는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식구들이 다 교회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니 당장에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지도자 한사람에 좌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통탄하며 다시 십일조 신앙을 회복시킵니다. 그러나 성도는 지도자가 즐겁게 해주던 근심케하던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십일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으로 드려지는 삶이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 앞에서 땅의 소산으로 응답하는 구체적인 예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거 하신것처럼 전 삶을 드리는 성도의 경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일조 신앙이 있을 때 각각 힘대로 작정해서 부조를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적용질문>십일조를 신앙고백으로 합니까, 의무적으로 합니까, 아예 안합니까?
그러기 위해 나는 즐겁게 하는 지도자입니까, 근심케하는 지도자입니까?
3. 잘 실행해야 합니다.
30절-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부조를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습니다. 29절 마지막에 작정하고 30절에 실행하여 보내니라-는 모두 삼인칭 복수형으로서 이 일이 안디옥 교회 전체의 뜻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세워진 교회가 부조를 하자 뒤에 세워진 이방인 교회도 줄줄이 따라 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마게도니아교회, 고린도 교회, 심지어 로마 교회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어요. 처음에 본을 보이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들교회가 본을 보여서 다들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십일조는 신앙고백으로 드려진 하나님의 성물이기 때문에 잘 실행하고 잘써야 합니다. 교회는 그걸 너무 잘써야 합니다 . 믿는 자는 먼저 믿는 자를 도와야 합니다. 신약 교회는 먼저 믿는 자를 도왔습니다. 교회가 먼저 교회 밖의 구제를 했다던지 하는 기록은 많이 보이지 않아요. 세상에 대해서는 복음 증거가 먼저이고 교회 안에서는 봉사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구제가 복음증거보다 우선시 되면 안됩니다. 구제도 교회 내의 구제는 교회 밖의 구제보다 앞설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증거, 구제는 항상 온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에 초점을 두어야 해요. 그러므로 신앙고백으로 하는 이 십일조를 자기마음대로 구제헌금으로 쓰고 선교헌금으로 쓴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이라기보다 자기의 의로, 자기의 선한 일로 열매를 쌓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십일조로 엄마를 돕고 삼촌을 돕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거예요. 사회복지 단체와 다를게 없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사도가 아니라 장로들에게 부조를 보냈다고 언급이 되는데 사도들은 구제나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손을 떼고 있었기 때문일거예요. 사도행전 6장에 그렇게 집사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때가 사울이 1년 동안 가르친 때 입니다. 하지만 30절에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앞서는 지도자입니다. 장로는 사도는 아니었지만 부조를 들고가도 사도들은 안만났습니다. 장로들만 만났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당시 베드로 사도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사울이 집안도 학벌도 훨씬 좋지만 사도 베드로는 지금 로마교황청의 교황정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헌금을 들고가도 베드로를 만나볼 수 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좀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안만나준다고 상처받지 마세요. 그런데도 사울은 자기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떤 일도 겸손하게 아랫자리에서 받아들였어요. 이정도되면 돈을 들고가도 잘난척을 안하고 안 만나줘도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십일조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조하면서 베드로 사도나 만나고 자기를 과시했다면 오늘 날의 사울은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교회와 사회를 위해 부조를 할까, 헌신을 할까 섬길까,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교회가 건물을 가지지 않고도 17년동안 휘문 체육관을 쓰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적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떄문에 휘문에서 6개월 이상 예배를 못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 얼마나 명분이 좋겠습니까, 그러나 말은 멋있는데 결국은 지금 예배를 못드리지요. 그러니 구제가 우선이 아니고 처소, 유형의 성전, 무형의 성전이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지 왜 성전을 짓냐 이 말도 맞고 저말도 맞고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부조를 해야합니다. 봉사를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질서를 지키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다 나라를 사랑하죠,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니 상식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눈물로 검사받을 것을 호소하고 확진자가 700명 이상이 나온것에 대해 나라에 사과하고 지금은 잠잠히 침묵하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어떤 상황이건, 지금 코로나가 날로 퍼지는데 계속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건 사회에 대한 부조가 아닙니다. 물질로 언어로 사랑으로 부조를 해야합니다. 때가 되기 까지는 악법도 법이라 지켜야 합니다. 막말하지 말아야합니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가운데 믿음이란 인내를 말한다고 생각해요. 영적 진실성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성령의 구제는 자발적인 봉사를 말하지만 자기 열심으로 인한 봉사는 아니한만 못한 봉사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치우치지 않은 부조를 하려면 신앙고백이 있어야 해요. 십일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재물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돈이 있는데 이 아까운 재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이게 기복으로 십일조를 한것이 아니라면 욕심으로 결정하지 않고 늘 하나님께 묻게 되어 있어요. 늘 하나님께 묻기에 십일조 신앙이 확실한 사람들은 본인의 실수로 망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내 잘못이 아닌 나라의 정책이나 흉년으로 힘들어 질 수 도 있겠지만 신앙이 확실하기 때문에 감사로 통과합니다. 이게 다 사회에 대한 부조, 가정에 대한 부조, 목장에 대한 부조입니다. 사건이 생겼을 때 감사를 보이는거예요. 십일조는 그러므로 신앙고백이 절대로 맞습니다. 부조를 헌금과 연결시켰고 돈으로 연결시켰으니까 사회에 대한 부조로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요. 원칙도 지켜요, 벌금도 제일 먼저 내요. 돈인가 하나님인가의 고백이 매 주일 신앙고백으로 드려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저의 간증이에요. 십일조 신앙은 어디서든지 본인이 책임지는 태도를 보입니다. 성령의 부조가 아니라면 나의 돈 많음으로, 나의 의로 부조를 했기 떄문에 조금만 환경이 나빠져도 하나님탓을 하고 남탓을 하고 모든것을 불평하고 특별히 세상법도 안지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하는 성도님들은 정말 기쁨이 있으세요. 의무적으로 하는 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몰라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위해 기도를 해왔는데 이런일로 도매급으로 통과가 될까봐 염려가 됩니다. 이것이 사탄이 노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다시말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쉽게 표기해서 동성애 허용법으로 다시 가부를 물어야 합니다. 동성애자들이 그동안의 법으로도 차별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것을 차별하지 말라고 조목조목 법으로 정해놓으면 징벌, 배상으로 나아가고 무섭게 휘몰아치게 됩니다. 그것은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본질을 위해 비본질은 인내하고 인내하고 참아야합니다. 사회에 대한 부조가 바로 이런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신앙고백이 없으면 관심이 하나도 없어요. 특별히 신앙고백이 드러나는 것은 십일조를 기쁘게 하는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의 삶이 도마위에 드러납니다.
적용질문>십일조의 축복을 나누어보세요.
<기도제목>
한보화
1.십일조로 신앙고백하는 삶을 인도해주시길
2.내 감정을 눌림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3.학업과 사업에 지혜와 기름 부어주시길
4.목장중보와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
5.코로나확산을 막아주시고, 우리나라의 성교육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질 수 있기를, 나라의 지도자들이 말씀으로 인도받기를
이미선
1. 흉년의 소식도 잘 듣고 말씀으로 잘 해석해나가는 삶이 되길
2. 신결혼을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3. 나를 직면해갈 때 회피하지 않고 말씀으로 용기내고 갈 수 있길
4.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종식될 수 있도록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의 모든 분야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5. 나라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도록
6. 차별금지법 낙태법 등의 악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7. 편향된 언론보도로 죄인 취급을 받는 코로나 확진 환자들이 상처받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손연정
1. 가족신화에서 깨이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인정되고 시인되고 살아가 질 수 있게.
2. 내가 가야할 길이 오직 하나님의 길.이라는 허황된것이 아닌 오늘 하루 한순간 하나님이 동행하심 임재하심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게
3. 오빠부부의 여행길이 순탄하고 오빠 건강을 지켜주세요.
4. 부모님 이사하시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든데 영육의 회복을 도와주세요.
5. 애인 남편 등 남자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빽빽하고 까탈스런 내 기준들을 하나님께 내려놔야하는지 기도해야하는지 분별이 되게
6. 착한 딸에서 벗어나게 해 주심 감사해요. 못됬다는 소릴 들어서 너무 속상하긴한데. 화나고 속상한 그 이유가 못됬기때문인것갔아요. 지랄 총량도 있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딸의 역할을 잘 맡아 갈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7. 코로나의 재 확산으로 온 나라가 두려워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심을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느끼고 알 수 있게 도와주세요.
8. 캘리포니아에 큰 산불이 났는데 자연재해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조민정
1. 성령충만, 지혜충만, 영혼육강건함, 명철함, 분별력 부어주시길
2. 가족구원, 가족들 영혼육 강건함
3. 날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알고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가고(직장), 좋은타이밍 잘 잡도록
4. 빨리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되어 종식되도록
5. 나와 잘맞는 믿음의 배우자
고은희
1.매일큐티
2.가족구원(부모님. 언니와 오빠가정), 목장중보
3.친오빠의 혈당과 신장기능수치가 정상으로 조절될수있기를,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길
4.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고 백신이 나올수있도록.
코로나환우와 수재민의 육적회복과 구원의 사건이 되길
5.낙태법.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않기를
6. 가정.직장에서 물질부조, 질서부조, 구원을 위한 부조를 할수있길
7.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