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31 성령의 성장
온라인 11번째 예배입니다. 같은 본문으로 2번 설교 했는데, 아직도 못한것이 있어서 한번더 한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우리는 날마다 어린이, 어버이 주일이라 가정설교를 할 필요가 없는데, 이런 본문이 얼마 없어서, 31절만 때서 다시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31절은 읽기만 해도 성장의 비결이다. 우리에게 영육간에 문자 그대로도 성장이 있었으면 합니다.
1.루저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31절
본문은 그리하여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앞의 본문을 다 담고 있는데, 예수믿는 사울을 죽이려고 하니까, 다소로 형제들이 사울을 보낸 것이다. 사울이 예수 믿는거 대문에 죽이려고 하니까, 믿는 사람들도 박해를 받아야 한다는 본문이 나와야 하는데, 평안히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하여는 성령님의 문법이다. 핍박받아 믿음이 병들었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모든것은 하나님이 하시는것이라고 말한다.
성령받은 사도들이 옥에 갔다가 풀려난 때도, 박해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가장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어쩔수 없이 흩어지게 되는데, 이 흩어짐으로 교회들이 세워지고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문법은 그러나가 아니라, 그리하여 이다.
사울이 다소에 있어도 갈릴리교회와 사마리아 교회는 성장했다는 것이다.
사울은 회심이후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나서는 나도 스데반처럼 설교 전하고 죽겠다는게 사울의 소원인 것이다. 너무 담대하게 전해서 사울이 전하기만 하면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사울은 죄를 미리 다 지어서, 오직 사명밖에 없는 것이다. 회심이 확실 하니까, 도저히 유대인들과는 영적인 교제를 할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친구와 친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성장하려면 우리는 선택을 제대로 해야 한다.
사울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외치니까 변해도 너무 변한 사울을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한것이다. 아라비아에서 3년 있다 왔지만 여전히 기다리는 것은 살해의 위협인 것이었다. 3년정도 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들이 보낸 곳이, 다소인 곳이다.
주의 일을 할때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정적으로 내가 낳은 사람이다. 그래서 복음으로 낳아야 하는 것이다. 나때문에 변화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영적 자녀가 없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소는 지금의 강남같은 곳이다. 그래서 다소 출신이라고 하면 다들 으쓱한다. 사울을 어디로 보내도 다 죽이려고 하니까, 고향 다소로 보내진 것이다. 잠깐이 아니고, 바나바가 천거해서 안디옥교회에서 가르친 1년 빼면 다소에서 13년을 있었던거 같다.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회심해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살해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 13년 동안 다소에서 있게 하신 하나님의 메세지는 다소에서 죽은 자처럼 조용히 살으라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사울이 특별해도 너무 특별한 것이다. 너무나 똑똑한데다, 주님을 만나서 설득력이 대단하고 가만히 있어도 입만 열면 들어나는 사람이다. 이런 사울을 모두가 버려진 자처럼 잊어버리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게 너무나 어마어마한 훈련이다. 그 잠시가 13년 인것이다. 아라비아까지는 16년이다. 대단한 사울이 버려진체로, 고향에서 잊혀진 체로 있었던 것이다.
사울이 회심을 하고 보니까, 사울은 달라졌는데, 세상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박해를 받는 입장이 됬다. 사울이 회심을 했는데, 13년을 전혀 알려지지 않은채로 보내게 하신것이다. 하나님을 독대하여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 외롭지만 사울에게는 가장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울이 믿는 사람을 워낙 잔인하게 잔멸했기에, 다른사람들이 사울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13년의 실패자 인생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자타가 인정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 했던 것이다.
아무도 인정 안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을 직면해야 하는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데, 누가 막는거야 하며 자기 열심이 앞서면 안되는 것이다.
사울을 끝까지 기다리신분은 하나님이 이시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하다. 16년간의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기에, 바울이 주옥같은 서신서를 격조있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만 봐도 사울이 다소로 간것은 하나님의 실수가 없는 것이다.
*목사님 간증
목사님의 결혼생활 13년의 시간은 말씀을 주구장창 보게 하셨기에 지금 이렇게 설교를 하는거 같다. 수준에 맞는 시간을 보내게 하신거 같다.
-버려진거 같이 다소의 시간을 보낸적이 있는가?
2.평안한 것입니다.
31절
평안과 성장은 분리될 수 없다. 고난중에서 해석이 되야 해결이 되어 평안을 경험하면 성장이 된다. 그렇다고 고난 자체가 성장을 가져다 주는것은 아니다. 평안한 교회가 성장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변화가 평안을 이루는 씨가 된다. 사울이 박해 받는 장면이 계속 나오다가 교회가 평안하다고 하니, 연결이 잘 안된다. 평안은 성령의 역사이다. 십자가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때에 로마의 칼리블라 황제가 자기의 초상을 예루살렘 지성소에 넣고 자기를 우상숭배 하라고 하던 시기이다. 이렇게 하니까,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잔멸할 시간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갈리리 교회 사마리아 교회에 핍박이 잠시 소강 상태로 온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육적 평안이 왔다고 좀 쉬어야 겠다. 놀러가야 겠다 하는 사람은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의 시간이든 박해의 시간이든 잘 보내야 하는 것이다.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평안이 없는것이다. 힘들어도 십자가에 달려 있기에 평안이 오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록 평안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이 무섭다고 교회에 오려는 그를 교회가 두려워 한것이다.
그런데 바나바라는 위로자가 사울을 소개 시킨다.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 바나바 때문에 교회가 평안해 지고 서 가는 것이다.
평안이 있고 없고는 어떤 차이일까? 돈이 많고 스펙이 좋고 아이들도 다 잘나간다고 그집이 평안할까? 모든걸 갖추었기에 우리집이 평안한가? 우리집의 분위기는 어떤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환경에서 어떻게 평안할 수 있는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기에 무슨말을 들어도 인정하게 되니, 지옥을 안살고 평안한 것이다. 자기 죄를 못보면 늘 자기가 옳기에 선한말을 하다가도 한마디만 들어도 잠을 못자고, 평안이 없는것이다.
죄인들의 집단은 자기 잘못이기에 평안이 있는데, 선한 사람들의 집단은 서로 니책임이라고 하기에 평안 할 수 없는것이다.
영육간에 자기 죄를 보니까, 영적으로 내가 깨어 있지 못해서 가족이 수고했다고, 자기죄를 보니, 온 집안의 평안이 깨지지 않는것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병원은 환자들이 와야 하는곳이다. 환자들을보고 의사가 너무 심하게 아프다고 처음본다고 볼수없다고 나가라고 하면 그 병원이 재정신인가?
교회에서 날마다 선한 사람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평안이 있겠는가?
사울이 스데반을 죽였기에, 죄인임을 알기에, 아무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행함만을 생각하면 지옥을 살텐데, 자기 죄를 보니까 평안할 수 있는것이다.
온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해 진다. 그러니까 든든히 서 가게 된다. 빌립이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이때는 핍박의 시대였다. 그런데 칼리불라 황제의 우상숭배 때문에 잠시 폭풍성장을 하게 하셨다.
주님은 사건을 가지고 흔드셔서 균형잡힌 평안을 주시는 거 같다.
-나의 평안은 무엇 때문인가? 십자가의 평안인가? 육체의 평안인가?
-가장 많이 추구하는 육체의 평안은 무엇인가?
3.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31절
평안해야 든든히 서갑니다. 든든히 서간다는 것은 집을 강하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집을 잘 세운다는 것은 말씀의 기초위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율법박사가 되어 전통위에 세우면 사람을 죽이는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살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나를 살리는 책이 됩니다. 그저 율법으로만 읽으면 나를 죽이는 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결정의 기준이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선택에 실패하는것을 보면 말씀으로, 목장에서 묻지를 않고 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으로 서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교회 핵심가치이기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기본기가 되어 있다면 늘 묻고 간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기본기가 되어 있으면 무슨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할 수 있는것이다.
해석이 잘 되야 평안해서 든든히 서갈 수 있는데, 말씀에 기초를 두면 기도와 교제와 전도가 저절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 지고 가는 길이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안해서 모두가 잘되서 든든히 서가는 것아니다. 일이 오면 거기서 자기 죄를 보고 가기에 해석이 되고 해결이 되거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내가 평안히 가는 것은 말씀때문인가? 돈때문인가?
-목장의 처방에 잘 적용하며 가는가?
4. 주를 경외함 입니다.
성령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경외입니다. 주를 경외 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주를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 하는것은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만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뜻이 그다음에 오는 것이다.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에 뿌려진 씨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를 경외했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의 감춰진 경륜은 성자 하나님으로 시작하지만, 성령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바로 성령의 후원이고 위로이다.
인간이 죄인이라 어려서 부터 무서운 사람이 없으면 망둥이로 자라가 된다.
이땅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부모도 두려워안하게 된다. 집집마다 자식이 우상이 되어 자식이 왕노릇 하게 된다. 우상이 되면 손을 댈 수가 없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면 삐뚫어지기도 하지만, 무서운 사람이 있는걸 알게 되기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게 몬지를 알게 된다.
어려서부터 무서운 사람이 없는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인간은 어려서 부터 악한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난이 오면 힘이든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것을 알려줘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하거나 하게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피차 복종하게 되는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야 서로 인간관계에서 복종하게 되는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면 자신의 환경이 사역지임을 알게 된다.
본인이 하나님 자리에 있으면 피차 복종을 모른다. 말씀에 대한 복종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렵기만 한것은 기복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에 두려워서 교회가고 하는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것이다.
하지만 요한일서에서는 말하는 두려움은 이기적인 두려움을 말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것이다. 사람을 두려워 하니까, 형벌이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르는것이기에, 이세상에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이런 평안이 없으면 어떻게 사울이 13년간 다소에서 있을 수 있겠는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순종하면 성령의 위로가 날마다 말씀으로 오기에, 힘들때마다 위로해 주시는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두려움과 격려가운데, 성장은 부수적으로 주시는 열매처럼 온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내 옆에서 복음으로 제자를 낳게 되고, 열매를 보게되니, 집에서 순종 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주를 경외해서 피차 복종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령행전이라 하는 사도행전에서 성령받기를 위해서 모든 제목에 성령을 넣고 있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이 시작이 되지 않는다.
기도제목:
1. 재엽: 오직 내 할 것만 할 수 있도록
2. 도원: 재미있고 설레도록
3. 현석: [비전스쿨] 기독청년 코칭선교 사역을 할 때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4. 희상: 어머니 병환의 사건과 치유과정이 어머니 영혼의 구원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