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200419
본문 : 사도행전 9:19 - 31
제목 : 성령의 위로
온라인 9주차. 선거가 끝났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다. 정말 17년 역사상 가장 많이 기도를 했다. 그러면 100프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어야한다.
잘되면 잘 되는대로 두려워해야하고안되면 안되는대로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도 낙심도 하지 않는다. 바울이 성령의 회심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의 위로로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성령의 위로는,
1.제자들과 함께 있을때 성령의 위로를 주십니다.
19절) 늘 제자들을 죽이고자했던 유대인 대제사장과 함께 있던 사람이 기독교인과 며칠을 같이 있게 되었다. 정오의 빛보다 밝은 빛이 강타를 하니 성령의 회심이 되어서 원수같던 제자들과 하나가 되었다. 지난주적용질문으로남녀차별과 지역감정에 대해 나눠보라고 했었는데 둘중 남녀차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초원님은 성령의 형제는 남녀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나눠봅시다 저는 75퍼센트입니다. 어떤 목자는 남녀차별 편견이 없다고 하더니 자기는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는 편견이 있다고 했다.다 틀렸지만 여전히 안목의 정욕이 대단해서 성령의 회심과 거리가 먼 것같다고 했다.그래도 목장에서 나눠주니 감사하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회심은 안되는것이다. 우리들 교회가 성령의 회심을하신 분이 많아서 남녀차별을 안할줄 알았는데 많았다. 제가 이 교회에서 목사를 하는게 얼마나 기적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하는 이유는 잘먹고 잘살고 전쟁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때문이다. 이번주 큐티 본문 이사야 31장 2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재앙을 내리는게 지혜롭다고 하셨다. 너희들의 악때문에 너희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가야한다. 그러니까 망하는거 인정해라. 너의 죄를 보라고 예레미야가 말하니 다 매국노로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어떻게 포로로 가냐 이러는 거짓선지자를 백성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이걸 말씀으로 해석해야 해결이 되는데 우리는 다시말하지만 잘먹고 잘살려고 기도하는게 아니다. 구원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회심을 하면 적대시 했던 원수들과 하나가 되고 하지 못하면 자기 편이었던 유대인들과는 적이 되니까 세상은 이걸 분별하지 못한다. 넓은 길은 사망으로 가는길이라고 하셨다. 소수라도 우리는 예수씨를 택해야 한다. 불신결혼도 소수가 가는 길이고 다 어렵다.세상은 인본주의 인권이 왕노릇 하는 그 세상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가 이상해도 살아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예수 씨를 위해서.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기 때문이다. 자기 가치관이 철저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절대 인정하지 못하고이해하지 못한다.
## 여러분은 소수라도 택해야하는 예수 씨 그 제자의 의미를 얼마나 압니까?
2.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십니다.
19-20절) 유대인들 그룹에 있다가 천해보이는 그룹인 제자들과 며칠됐다고 즉시로 회당에 들어가서 며칠들은 복음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다. 담대하게 전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전도하는 것외에는 사도바울의 행전이 계속 된다. 무슨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나. 본인이 기독교인을 잔멸하러 다녔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회당에 갔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갔던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그들에게는 가당찮고 사도행전에서는 이곳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물론 마태복음에서는 이미 베드로가 고백했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었다.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배척했던 이유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철저한 율법주의자 사울 역시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런 사울의 태도가 회심 이후 정반대로 급변한 것이다. 그토록 부인하며 배척했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를 하니까 다들 당황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제사장의 주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고 있기때문에 전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절대로 될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사렛 목수, 알수도 없는 처녀가 낳은 아들을 성령의 잉태라고 하면서 구세주라고 하니 믿지 못한 것이다.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저 사람이 무슨 메시아인가.네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증거는 네가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있는게 증거다.
유대교인인 사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중가서 보면 기복의 끝판왕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허수아비고 그는 자기를 믿는 자신교 교주라고 할수있다. 아무리 교양있게 믿어도 우리집안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믿고 다들 잘 되기 위해서 정화수도 놓고 믿는 류의 일등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어도 며느리와 동침해서 낳은 아이가 어떻게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하는가. 똑같이 성경을 보는데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 하늘의 언어, 땅의 언어가 분리되어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 거룩한 하늘의언어만 써야, 거룩한 이야기만 해야 거룩한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앞에서 기름을 바르고 슬픈기색을하고 흉한 얼굴로 기도를 하면 이땅에서 모든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진짜 머리만 처박고 있으면 고양이가 안 쫓아 오나? 거룩한 말만하고 좋은말만 한다고 거룩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온라인 예배때 주차를 안해서 시간이 조금 생겼다. 여러분들도 기쁘게 해드릴 겸 특송을 하고 있다. 모두들 자기 분야의 은사로 눈물의 간증을 하며 오페라도 하고 거문고, 트롯, 발라드,첼로,색소폰까지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예배때 트롯을 할수있냐는 사람이 있었다. 그야말로 이원론이다. 심지어 새벽기도 때 우리들교회 부목사님도 그런나눔을 하셨다. 이런 성도들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당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것이 너무 개혁적이고 새로워서 받아드릴수 없는 것이다.세례요한은 가죽옷 입고 메뚜기 먹으면서 광야에서 너무 경건하게 사는데 예수님은 포도주도 드시고 마태하고 놀고 사마리아 여인집에 가서도 유하시고 그러니 경건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분 요한은 보수고 예수님은 진보인가요? 아니면 요한이 진보이고 예수님은 보수인가요? 특별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많이 썼다.바울 서신에서 모두 165번 사용되었다.그건 아담안에서 라는 말과 대조되는 것인데 세상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나는 간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만 계셨다는 뜻이다.그리스도 안에서는 일원론이다. 구원때문에 안타까워하면 길이 바로 보이는데애통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아리송한 것이다.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여전히 목수의 아들입니까?
## 겉으로 경건합니까? 속으로 경건합니까?
## 여러분의 허세와 후까시가 몇프로입니까?
3.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성령이 위로합니다.
21절)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제자, 성도 등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다양하게 부르는데 아마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근데 사울은 그 모두를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지금도 멸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고 그는 또 이렇게 오해를 받는다. 그래도 그의 회심은 확실했다. 그는 주님을 보았고 만났고 지금도 동행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저는 주의 이름을 하루종일 부릅니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주를 부른다. 아이같이 모르니 나를 도와주소서 마음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하소서. 이렇게 매일 부른다. 옆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그렇게 나약하게 주의 이름만 부른다고 되는게 아니라고 했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저를 멸하려는 자는 시기마다 있었다. 근데 행동은 눈살 찌푸리게 하면서 주여주여 하면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멸하려던 자가 내 속에 있는 것이다. 사울이 남들에게 오해를 받아도 자신을 생각하면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슬퍼할 자격이 없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죄를 모르니 억울한 것이 많은 것이다. 아무리 끌어가려고 해도 사울은 힘을 더욱 가지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며 다메섹에서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한다. 굴복시켰다고 나온다.
22절) 사울은 감정적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논리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혜령선생도 딸의 고난을 통해서 간증이 생겼다. 그 간증에 굴복이 잠시는 되지만 안믿는 사람은 계속 안믿는다. 그래서 말씀 속에서 연단으로 분별이 되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
제가 집에만 있었지만 회심을 하니까 저도 아마 뒤집어질 회심을 했는지 아이들 유치원에 가도 학부모들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때만해도 시집살이하고 이런것에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성령의 회심을 하니 앉으나 서나 기회가 되면 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열매가 많았다. 전도훈련받아서 전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입증하려고 살았다. 큐티훈련, 전도훈련 훈련만 받으면 교리가 되어서 가르치려고 하니 은혜가 없다. 사람들은 저한테 광적으로 믿지 말라고 무시했다. 그러니까 난 막 좋아서 전하는데 저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가장 필요한 위로는 누가 와서하는 인간적인 위로가 아니라 내가 전한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그 사람이 교회를 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저를 위로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는 것은 성령의 위로가 아니라 자기 연민이다. 그건 또 죄로 연결이 된다. 남편의 위로 자녀의 위로 이런게 아니라 성령의 위로가 필요하다.
## 여러분은 예수의 이름을 얼마나 부르세요? 어느때 부르시나요?
## 복음을 간증과 말씀으로 설득력 있게 전합니까? 감정적으로 전합니까?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라고 하면 꽃길이 기다리는게 아니라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당연한 것이다. 무섭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무서울 것이다.
4.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가 임합니다.
23절)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영광을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여러날은 19절에 며칠과 대조하는 것이다. 여러날에 대해서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한단어로 지나갔지만 여러 뜻이 있다. 복음은 전하는 사명과 고난을 당하는 사명이 있다. 고난이 없다면 영광도 없다는 것이다. 여러날 충분한 시간을 가리킨다. 다메섹을 떠나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의 기간이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훈련의 기간을 보내게 하셨다. 이전에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죽으면 죽으리라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회당에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이 당혹해하니 지금은 열심 가지고는 안되겠다 생각했다.
갈라디아서 1장 16-17절)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 아라비아는 지금의 요르단 지역이다. 아주 요새같은 지역이라서 로마의 감시에서 벗어난 작지만 강한 권력을 가진 지역이다.
지금은 유대인을 피하기 위해 아라비아로갔다고 한다. 그곳은 전승에 의하면 집보다도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는 곳이라고 한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도 목숨 내걸고 전하던 자인데 그곳에 가서도 안 전했겠습니까? 살아계신 생명의 주를 전했더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무덤사업이 죽어버렸을 것이다. 이때 왕이 아레다4세인데 너무 강한 왕이라서 다메섹에까지 영향을 미친 자이다.
고린도후서 11장32절)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다고 한다. 아레다 왕이 그곳에까지 와서 사울을 죽이려고 했는데 유대인들과 뜻이 맞으니까 공모를 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지시를 한것이다. 여기있는 여러날에는 이런 뜻이 있다. 왜 아라비아 기막힌 사역을 전하지 않았을까? 다른 말 하지 않고 여러날이 지나매 라고만 말했다. 베드로가 고넬류를 전도한 것을 높여드려야 하니까 언급이 안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내시를 전도한 빌립도 사울도 늘 하나님에게 먼저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된다. 그게 아니어도 바울에게는 한일이 많다. 이처럼 성령의 회심을 한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고 고난이었다.그런데 이렇게 성령의 회심을 제대로 한 사람, 바울같은 스데반을 생각할때마다 그 죄가 얼마나 큰 지 알기때문에 입을 다물게 된다.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본 사울, 이것은 신의 한수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바울과 어거스틴이라고 한다. 아무리 정오의 빛을 만나도 이렇게 훈련이 필요하다.
저도 기도원가서 주님을 만났다. 그런 후에 평생을 훈련하고 있는 것같다. 저의 아라비아도 때마다 바뀌지만 그때의 아라비아는 병원을 개업하게 하셔서 치열한 훈련을 받게 하셨다. 말씀을 보면 무시받고 만나는 산모는 전도하고 전도했다고 욕먹고 아무도 안알아주는 사역이었지만 그 자체로 마지막처럼 살았기 때문에에스겔 간증이라는 결과물로 때마다 나타나게 하셨다.
24-25절)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과 등지게 되어있다. 내가 확실히 회심을 하면 세상도 확실히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세상에서 아무도 안미워한다면 여러분들의 회심이 가짜일수 있다. 이쪽 저쪽에서 인정받으려는 자는 회심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밤낮으로라는 표현은 사울을 죽이려는 자들이 사울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살폈다는 것이다. 성문까지라는 표현은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까지 조직적으로 가담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 아라비아를 다녀온 후에 사울에게 생긴 제자들이다. 사울의 제자들은 성벽 위에 큰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내려보냈다.사울에게 사명이 있기때문에 생각치도 못한 사람들이 때마다 도와준다. 그 대단한 사울이 그냥 광주리가 아니라 쓰레기 담는 광주리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전하고자 한 것이다.그럼 유대인들이 나중에 천하의 사울이 광주리타고 도망갔다고 하면 얼마나 조롱을 하겠습니까.
본인도 광주리타고 도망갔다고 생각하면 자존심 상해서 살수없다. 그래서 24절에 바울이 도망갔다고 하지 않고 제자들이 달아내렸다고 한다. 사울이 치사스럽게 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으로 구원이 되는게 아니다.
저에게 가장 강력하게 돕는 이는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서 돕는 것이다. 남편이 외도를 해도 암이 걸려도. 내가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해서 다른사람의 고통에 동참하지 못했다. 당해보니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았어요. 그래서 이런 고통을 겪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간증으로 예수님의 편지가 되어주셨다.
다들 그 향기를 보고 그 교회라는 곳이 어디지? 뭐지? 하면서 온다. 내가 부흥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정중수때문에 말씀을 시작한 것이다. 매 주일 이런 그리스도의 편지 때문에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한주도 안빠지고 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저에게 큰 성령의 위로이다.
이런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만났는데 사도바울이 이방인 선교로 복음을 전해야하니, 1세기 유럽사회에 복음을 전해야하니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해주신 것이다.
사명자는 사명이 끝나야 데려가신다. 각자 사명이 다르다. 끝나지 않으면 데려가지 않으신다. 그러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 여러분은 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은적이 있습니까? 지금 받고 있습니까?
## 그 위로를 받았으면 그 위로로 누굴 위로했습니까?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 성령의 위로를 받습니까? 세상의 위로를 받고 좋아합니까?
남편의 위로? 돈의 위로? 부모의 위로?
## 여러분의 연민은 몇프로 입니까?
5.중재자를 보내주셔서 위로하십니다.
26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간 이유가 성도들과 사귀기 위해서이다. 12사도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서이다. 성령의 형제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신뢰를 받고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단 사이비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제자들을 사귀고자 한 노력이 미완료과거로 계속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력은 다 숲으로 돌아갔다. 사도바울을 힘들게 한 것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사울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울같이 대단한 사람도 어떤 때는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이또한 지나간다.
27절) 이 위로의 아들 바나바가 이제 사울을 중재한다. 사울이 회심한 직후에는 아냐니아를 준비하셨는데 지금은 착하고 믿음 충만한 바나바를 보내주셨다. 바나바는 사도들보다 신뢰를 많이 받았다. 자기 토지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던 자이다. 사도도 아닌데 교회 성도들중에서 최고의 신뢰를 쌓은 사람이다. 예루살렘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 바나바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와 야곱에게 소개를 했고 베드로는 사울을 15일동안 대적했다.
28-29절) 이제 제자들과 바나바의 애정깊은 중재로 사울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졌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새로운 도시에 입성할때마다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유대인 회당을 찾아다니는 것이 그들의 격분을 산 이유중 하나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구원을 목숨을 버릴만큼 사랑한 것이다. 바울을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로마서9장1절부터 보면 나는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형제 거룩의 구원을 원한다고 했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해도 원수가 아니다.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을 원래 좋아했고 사울도 헬라화된 도시 다소에서 성장해서 율법에 흠이 없는 사람이면서 헬라의 논리적인 사고를 가졌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 토론에서 밀릴수밖에 없었다.
30절) 과거 그리스도를믿는 이들에게사울은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죽음을 무릅쓰고 전도를 하는 것을 보고 신뢰를 했고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을 했다.
성경공부가 아니라 이혼막고 자살막고 가정파괴를 막는 모습을 보고 저의 사역을 충분히 이해하는 목사님들이 나타나 신학을 하고큐티선교회를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저는 신학을 하는 3년동안 제가 하나님 보시기에 위기였던 것같다. 그 3년동안 아라비아간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다. 큐티 사역을 위해서 대충할수도 없었다. 지나온 모든 것 하나하나 지금까지도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것 처럼 왔다. 그러니까 사울도 호칭이 성도에서 형제로 더 가까워졌다.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사울의 위기와 처지를 알고 예루살렘에서 빨리 내보내지 않으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배를 태워서 다소로 보냈다. 아라비아에서 오래있던 것이 아니라 다소에서 연대기에 기록되지 않은 몇년을 보냈다. 사울은 복음 전하다가 죽고자 하니까 형제들이 옆에서 계속 도와줬다. 바울도 형제의 조언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한다. 형제의 사랑으로 만류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소 고향으로 내려간 것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간 것이다. 근데 그의 행전에서 위대한 전기가 되었다.
31절) 31절이 반전이다. 이러면 교회가 찌글어져야하는데 교회가 부흥되었다. 그리하여는 30절까지 받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교회 박해로 인해 생긴 모든 것을 받는다. 대 박해로 흩어져서 예루살렘 교회 하나밖에 없었는데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평안하며 든든히 서간다고 하셨다.더욱 주를 경외하며 모든 것이 성령의 위로로 진행해서 수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성령의 위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흩어졌을때는 핍박으로 인해 곳곳에서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다. 근데바울시대, 이 박해 시대에는 로마 황제가 황제우상화를행해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황제초상화를 가져다 놓고 하니 유대인 지도자들이 박해하는데 정신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니 이때 박해가 약해졌고, 하나님께서 이때 교회를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가게 하시니 하나님은 이래도 저래도 백프로 옳으시다. 언제나 우리가 기도하면 그것이 백프로응답이 맞다.
우리가 코로나로 힘든 이때 바울을 다시 생각해야하는 이유는 이게 유일하게 교회가 살아날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신의 한수. 뭐든 하나님의 결론입니다. 내가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해야합니다.
## 여러분의 바나바는? 바나바가 되어준적 있습니까?
성령의 위로는
제자들과 함께 있을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고난안에서,
중재자를 보내주셔서 사람을 통해서 위로합니다.
오단이목장 기도제목
단이
- 아빠의 행동을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 할아버지때부터 죄가 끊어지고 아빠삶의 결론이 구원이 될 수 있도록
- 가족구원
- 목소리 건강 회복
- 조카가 발달지연상태인데 속히 치유해주시길
수연
-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위로받기
- 가족 구원에 애통함 갖고 기도하기
- 오전에 큐티하기(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할수있길)
지인
-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 큐티말씀 볼 수 있도록
하영
- 집 문제에 대해 기도할 수 있도록
- 큐티하며 말씀 보기
- 질서에 순종할 수 있도록
유빈
- 말씀 해석하기
- 큐티하기
미경
-큐티 할 수 있도록
-상담 잘 받고 해석 잘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