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
사도행전 9:10-19 성령의 형제
1. 삶의 자리가 사역지임을 알려줍니다. (10절)
그때는 사울이 보지도 먹지도 아니하며 기도할 때를 말합니다. 아나니아(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제자로 소개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을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넘어온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복음을 들은 연륜 있는 그리스도인 이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아담에게 이름을 짓게 하시고 사역에 동참하는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이름 한번 나오고 들어간 아나니아에게 섬김 받게 하시고 형제의 사랑을 배우게 하십니다. 이것이 리더십이며 참 교육입니다. 어떤 성경 공부 보다 관계 훈련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랫자리에서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윗자리도 감당하기 힘듭니다.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주차관리는 인간관계에 큰 연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다른 성도들과 어울리며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메섹은 아나니아의 삶의 자리이며 사역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세계 선교나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켰기에 바울에게 안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가 힘들다고 이혼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지입니다. 365 기도 다이어리와 보석상자 글에 삶속에서 만남을 귀히 여기고 그 영혼을 위해 사는 것이 사역지라고 쓰여 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대 사도 바울을 형제의 사랑으로 공동체에 인도한 일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목장에서 인도한 그 한 사람이 사도 바울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어찌 설교할 수 있나 생각 듭니다. 여러분과 은사가 달라서 여기 서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은사를 쓰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연약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남의 간증을 듣고 나의 얘기로 듣는 것은 기적입니다. 택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역지를 버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우리도 참는 흉내를 내다가 진짜 사역지를 버리고 떠납니다. 성령의 형제가 없거나 형제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Q. 여러분은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십니까? 기뻐하는 만큼 상이 클 것입니다.
2. 서로 기도로 교통합니다. (11-12절)
직가는 거리 이름으로 곧은 길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어떤 한 사람을 찾아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 사람은 직가의 유다 집에 머물러 있는 사울이며 출신지가 다소라고 합니다. (다소: 소아시아 남동쪽위치한 길리기아의 수도로 약 50만의 인구가 거주하고 경제적 지리적 문화적 등 일세기에 매우 영향력 있는 도시) 사울은 출신지부터 모두 다 갖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을 크게 박해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이를 잘 아는 아나니아에게 위협과 살기등등한 과거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겸손히 기도하는 중에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기도하는 중이란 일시적이고 형식적이 아니라 큐티 기도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식음을 전패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진행형 단어입니다. 사울 역시 아나니아와 같이 동일하게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았습니다. 신비주의가 아닌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시고 서로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응답으로 적극적 신앙을 가진 아나니아의 형제사랑을 통해서 극적으로 회심한 사울이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 드려지도록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형제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해서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꾼인 이상 다른 성도의 기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 제목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를 위한 큐티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내용들을 보면, 기도제목에 댓글이 달리면 고맙게만 생각했는데 이틀만에 응답되는 것이 놀랍다. 나 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이 혼자 미국에서 16차 항암 받는데 입국이 안 된다는 안타까운 기도제목, 여전히 신천지 교육생과 사귀고 있는 아들 기도제목, 신천지와 다른 여러 이단에 빠져 있는 가족을 가진 분들의 기도제목, 80세에 집을 나와 이혼소송중인 시어머니와 형제들 간의 다툼으로 흩어진 시댁의 고난이 아니라 이 고난에서 구경하고 비웃는 나의 죄를 깨닫게 해달라는 기막힌 기도제목, 성공과 명예만을 바라며 악한 음란 속에서 살았던 인생이라는 기도제목, 아빠의 음란한 사생활로 찢긴 딸의 마음을 구원의 여정으로 가게 해달라는 기도제목, 언어발달 지언과 야경증인 5살 아들이 밤에 잘 자는데 신기하고 놀랍다는 기도제목, 교통사고 합의금이 기적적으로 조정되어졌다는 기도제목 등 많이 올라와 있는데 회개가 되는 것이 기도응답 입니다. 응답이 없다면 없는 것이 응답이며,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Q. 누군가의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명령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3.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해줍니다. (12,17-18절)
12절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17절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18절 다시 보게 된지라
형제는 어두움 가운데 있다가 눈이 떠지는 그 때에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사울은 사흘 동안의 흑암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세상사람들은 절대로 영의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자신들이 영적 소경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한번 회심을 했다고 복음을 전할 때 비웃는 사람들을 계속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왠만한 확신이 없으면 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안이 가리워져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면서 다 보고 있다고 대부분 착각합니다. 성령의 회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마음이 녹아지고 눈에 덮인 죄악의 비늘이 벗겨져 영의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된 그리스도인을 돕고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번 잘못하면 그동안 잘 했던 것들이 헛수고가 되어버립니다. 생색 날 수밖에 없는 양육을 오랫동안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형제의 돌봄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힘들어져도 결국은 가정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폭력적인 남편과의 이혼으로 엄마에게서 양육 받은 딸은 분리불안이라고 합니다. 힘든 남편이라도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한 것입니다. 경제형편상 딸을 친척집에 맡겼던 일로 문제만 생기면 엄마에게 나를 왜 버렸냐고 하며 싸운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성령의 형제가 해석해 주기 전에는 성령의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Q.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가정, 회사, 인간관계 중에서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4. 사명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줍니다. (13-19절)
13절 성도라는 표현이 처음 쓰입니다. 사도행전 4번, 바울서신 39번, 신약 전체 60번 쓰여진 성도란 말 그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아나니아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구별된 주의 성도들을 강조하며 사울을 해를 끼치고 결박하여 고난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에게 공포의 대상이며 악행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아나니아가 사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런 자에게 가라고 명령하신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면 사도 바울이 탄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4-6절 주님과 바울의 대화 10-16절 주님이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와의 대화입니다. 길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 아나니아를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인보다 의인을 설득하기 더 어렵습니다. 죄인은 햇빛이 비추면 눈이 멀고 하나님께 나오는데 의인은 죄가 없기에 여러 말로 설득해야 합니다. 여기서 아나니아는 편견이 아닌 정확한 사실로 물은 것입니다. 이렇게 묻는 것이 믿음 없는 것이 아니라 형제입니다. 하나님은 형제를 통해 답하십니다. 목장에서 물어보고 형제를 통해 답하십니다. 형제는 정답이 아닌 구원을 위한 답이기 때문에 또 다른 형제들에게 물으며 이어 올라갑니다.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 향한 계획가 뜻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온 세상을 위해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도구라고 합니다. 그렇게 후에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조건과 자격을 보고 은혜를 베푸시고 일꾼으로 삼으신다면 이 땅에서 선발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강팍하고 나약하고 부도덕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귀한 당신의 일꾼으로 보시고 택하여 세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영의 눈이 떠져서 사명을 발견하게 되고 사명으로 쓰여 집니다. 그의 배경, 스펙, 지식, 살기까지 주님의 그릇이 되어 이방인, 왕,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성령의 회심을 했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사명을 주십니다. 반드시 한가지 이상 사명을 주십니다. 16절 사울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 많은 핍박과 고난을 자발적으로 겪을 것입니다. 고난을 자발적을 겪는다는 것은 정오의 빛을 경험한 사람이 말씀을 보고 싫다 하면서 순종하는 큐티입니다. 나는 싫지만 말씀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것 바로 이것이 큐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결국 나의 의지로 자발적 고난을 택하는 적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큐티로 수 없는 질문을 통해 적용하는 것이 자발적 고난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은 그리스도의 교제 속으로 초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18절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의 시력이 회복되자 마자 할례 받습니다. 이는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단호히 결단하는 사울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로마서 6장 세례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면 그의 부활과 연합된 의식이라고 정의합니다. 세례 받은 자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과거의 죄에서 죽으신 것이고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사울이 거듭난 이후 음식 먹고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율법은 자기 육체를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형제는 서로 영육간의 강건을 위해서 서로 돌봐야 합니다. 같이 밥 먹어주고 도와주고 그것이 성령의 큰 공동체입니다.
Q. 성령의 형제가 못 되는 편견은 무엇입니까? 남녀차별, 지역감정 그 외에 있는 편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회심이 있는 사람이 지역감정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회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형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은우
회사가 사역지인 것을 알도록
회사 올라 가기전에 30분동안 회사와 나를 위해 기도하도록
입에 성령의 올무를 매여 주시고 지혜를 부으셔서 해야 하는 말 하지 말아야 하는 말 알려 주시도록
문제 해결사 아니라 내 것만 말씀에 해석 받고 갈 수 있도록
가족 구원위해서 중보 하도록
예선
집에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냉철한 사랑으로 적용 잘 하고 해야 하는 말 단호 하게 할 수 있도록
지금의 시간이 정오의 때 주님이 찾아오신 상황인 것 알고, 시간을 잘 보내도록
밖으로 나가는 연습 잘 할 수 있도록
보련
코로나가 빨리 회복되어서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긍정적인 마음 가질 수 있도록
현경
어머니 모시고 상담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상담 선생님께 괜찮은 척하지 않고 솔직 하게 얘기하고 솔직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잠 자는 것이 쉽지가 않고 약 처방 받는 것이 눌리고 두려운데 나를 위한 구원의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주시도록
목사님께 전화하는 것이 어려운데 참 위로 받고 올 수 있도록
예배 듣고 생활예배 하는 것이 어려운데 율법에 매이지 않고 솔직한 마음 하나님께 잘 내어 드리도록
내가 만들어 둔 편견에 매이지 말고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도록
목장에 오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힘든 시간 지나는 중인데 성령의 형제의 기도 잘 받으며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