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참석인원(장소 : 4층 연수홀)
: 이호진(93), 김승택(95), 김혁(95), 이동영(95), 김범준(00), 김태건(00)
Ⅱ. 말씀요약
「성령의 떠남」(사도행전 7:1-8 / 김양재목사님)
1.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1절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지혜의 영이 들어간 스데반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고 1절부터 50절까지 구속사적으로 구약을 뀁니다.
그리고 51절의 말씀, 이 경고 하나 하려고 50절까지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성경으로 전합니다.
항상 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렇게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알고 있어도 제대로 꿴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한마디 하면 됩니다.
위대한 설교는 다른 설교가 아니라 예수님을 길러놓고 구속사적으로 요점 정리를 잘한 설교입니다.
2절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 같은 갈대아 우르 메소포데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그것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이미 보이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디도 계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고 믿음의 몇 대손, 혈통, 이런 걸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Q.정말 상상할 수 없는 곳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그곳은 어디입니까?
2.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하십니다.
3절 :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떠남이 없이는 약속의 땅으로 못 갑니다. 돈이 많으면 의지하느라고 못 떠나고, 없어도 또 무시하느라고 못 떠납니다.
우리는 구원 때문에 떠나야 할 때도 있고, 남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이 있는데, 부모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수 잘 믿는 부모와 같이 동역자가 되어 걸어가는 것 이외에는 우리가 얼마나 부모를 떠나야 하는지 모릅니다.
함께 천국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잘못된 효도 때문에 부모도 죽고 나도 죽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언제나 질서가 있고, 위아래가 있는 것인데 그 질서를 잘 일으켜 가는 과정에서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런데 내가 영광의 메소포데미아에 있을 때, 즉, 내가 잘 먹고 잘 살 때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 들립니다.
안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할 수 없이 질서라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질서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고 한 일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이었고, 마지막 질서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결국,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영육의 나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Q. 떠나지 못하는 고향 친척은 무엇입니까?
3. 아비가 죽으매 떠납니다.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맨 처음부터 떠났어야 하는데, 우상숭배자 아버지랑 같이 가려고 하다 보니까 늦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계속 있으니까 떠나질 못해 결국 하나님께서 데라를 죽이질 않으면 아브라함이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지 못하니까 아버지를 죽인 것입니다.
내가 떠나지 못해 죽이는 아버지 데라가 누구인가요?
떠나면서 만남이 있습니다. 택한 사람의 특징은 매번 뒤에서 무엇인가 잡아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갈등 충만 입니다. 떠나야 하는데, 잘 믿어야 하는데..를 매번 고민하다 사건이 오면 미리 들은 말씀이 있어서 딱 깨닫습니다.
내가 떠나지 못해서 아버지가 죽었고, 아버지가 죽고 나면 딱 깨달아집니다.
평생 떠남이 계속됩니다. 25년동안 떠남이 계속 되다가 드디어 가장 아까운 이삭과의 떠남까지 이루어집니다.
결국 내가 아끼는 것은 하나씩 하나씩 내놓는 것입니다.
'옮기셨느니라'합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믿음이 좋아서 떠난게 아니라 나하고 똑같은 인생인데, 이런 환경이 오니까 떠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평범한 사람들이 적용할 수 있도록 구속사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 변화가 옵니다. 성경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잘못이 그대로 다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하고, 딸과 아버지가 간음한 것이 다 나와 있어서 성경처럼 위대한 책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Q. 아비가 죽으매 떠난 것, 옮겨진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 대단한 사건에서 우리들교회로 옮겨졌는데, 무엇 때문에 옮겨졌습니까?
4. 떠나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5절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떠나라! 떠나라!'해서 떠났는데,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자식도 없이 떠났는데, 약속만 믿고 걸어가라 하십니다.
'속았잖아! 예수 믿었더니 되는 것이 하나도 없자나!'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6절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은 유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약속이 온전히 믿어지기 위해서는 나그네된 인생을 살아서 종노릇도 해봐야합니다.
아브라함이 떠났듯이 자손들도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떠나야지 약속의 자손이 됩니다. 400년의 시간이 차듯, 마지막까지 기다려야합니다.
결국 영적으로 소망이 바뀌어야 되는데 이 잘난 아들 이스마엘에서 눈만 껌뻑껌뻑 뜨고 있는 이삭으로 가치관이 바뀌어야한다는 것입니다.
25년동안 계속 떠남을 경험하니까 육적인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는 영적인 성전이 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자식이 고난을 당해야 약속의 자손이 된다는 말이 축복의 말씀으로 들리면 세상이 감당을 못하는 믿음이 됩니다.
내려놔야할 육신의 정욕들. 그것들을 다 떠나야 합니다.
Q. 세상이 여러분을 감당 못합니까?, 여러분이 세상을 감당 못합니까?
5. 영적 자녀 낳는 것이 떠남의 결론입니다.
7절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절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통한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미 창세기에서 할례의 언약을 주십니다.
성경을 믿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먼저 주셨고 그리고 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신 것이지 우리가,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자체가 상급인 것을 보여주고 가는 역할을 믿는 성도는 감당해야합니다.
최초가 너무 힘들지만, 최초에 아들 하나 낳으려고 떠남이 있어야합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속을 믿고 걸아가야하고, 그러면서 이 고난의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듣는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잘난 아들인 육적 이스마엘을 아직 너무 사모합니까? 눈만 껌뻑껌뻑거리는 영적인 이삭을 사모합니까?
Ⅲ. 목장 기도제목
이호진(93) : 회사 사업 기간들 넘기지 않고 작업 잘 끝낼 수 있도록
김승택(95) : 주중에 주어진 시간들 큐티하며 성실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이동영(95) : 여행 전까지 나태하지 않는 생활할 수 있도록, 신교제
김범준(00) : 스트레스 받아도 힘들어하지 않도록
김태건(00) : 재수생활 마음 잘 다지고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