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멘토에게서 내 공허함을 그 사람으로 채우고자 하고, 목장 식구들 각자마다 자신의 익숙한 방법으로 그 공허함을 채우고자 함을 많이 나눠보는 한 주 였어요. 역시 혼자 괴로워하기보다 목장에 SOS 치는 것이 최고인듯! 역시 주님을 소망하는 목장에 붙어서 죽지않고 살아냅니다~ 목장은 선물이에요 ㅠ
<설교요약>
제목: 성령의 전도
날짜 : 2019.12.15
본문 : 사도행전 5:33 ~ 42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성령의 전도는 전도학교를 졸업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이론으로 함도 아님. 치열한 전쟁같은 현장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이 흥왕해지는 것.
1 분노를 감당해야 함
그들-> 산헤드린 공헤원, 원로들. 이스라엘의 국회, 로마의 식민지 시대였음. 그들이 크게 노하여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노를 한 것. 교회 다니는 지도자에게 예수님을 전헀는데 적대감을 가짐. 무시하는 어부들의 말을 듣고 크게 노하는 이유는? 너희가 죽인 예수를 이스라엘을 회개하고 죄사함 얻게 하려고 부활하게 하셨다고 믿고 회개하라고 임금과 구주되신거라 함. 체험적 간증 하고 완벽한 복음 전파하고 설득력 있는 메세지를 줌. 그런데도 자신들이 여호와를 거역한자며 살인한 것이니 그것이 인정이 안되는 것.
예수를 거절하는 것은 배후에 사탄이 또아리 틀고 있는 것. 죄를 봐야 하는데 죄를 보면 기득권 내려놔야 하니 안됨. 사탄은 익지 않은 열매나무 흔들지도 않음. 그리스도인만 건드림. 끝에는 돈이 있다고 그들은 대제사장과 사두개 당파이므로 예배전문가인데, 베드로 설교때마다 3천 5천 빠져나가니 죽을 지경 됨. 왜 그럴지 연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다 가버리고 내가 망할 것 같으니 불안하고 가슴 터짐. 엘리트고 하니 더 죄 안보임. 그러니 못할 짓 없음. 사형 집행 없었는데 불법 저지르면서까지 기득권에 목숨 걸고 사도들의 목숨 노리는 것. 인간은 못할 짓이 없음. 들키지 않으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고 오는 것 기쁘지만 그것 때문에 죽이려고 하는 자들 감당해야함. 주님도 이들에게 죽임 당함. 제자들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만 주님이 먼저 당했기에 있어야 할 일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음. 살아있을 때 당하는 것을 많이 보여야 (여러분들이 후일에 기억날 것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심.) 이것이 성령의 전도. 믿는 사람끼리의 싸움. 종교 지도자 및 예배 전문가와의 싸움. 밖보다 안이 너 무서움. 누구나 실수함. 그러나 성령의 주제인 예수 믿으라 하고 회개하는 자가 진짜 주님 백성. 그러나 그들을 저주하고 미워하면 성령 전도 못함.
적용:
복음 듣고 회개 하는가 분노하는가?
회개에 대한 마음의 원이 있지만 감정으로 끝나는 것 같다. 나를 이겨주시는 그 날을 기다려야지..
설교듣고 회개하는가 아직도 분기탱천해서 들어줄 수 없는가 아예 안들리는가?
주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해서 울지만 삶으로 돌아가면 금새 잊고 분기탱천하고 회사를 미워하고 욕하고 이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주님을 원망하기만 하는.... 하아... 어쩔...
끝에 돈이 있음
맞다. 결국 돈이야.
2 지성과 선함도 필요함
하나님은 시시때때로 100퍼 옳으신 방법으로 우릴 도우심. 진실로 복음 전하면 신실하게 주님 일을 하여주심. 상급이란 이름 있는 가말리엘은 사도들 돕는 천사로 나타남. 바리새파의 교법사로 그 시대의 지성의 아이콘, 존경 받음. 엄한 교육 받은 바울을 바울되게 하였지. 그가 죽었을 때 율법 영광 떠났고 거룩함이 죽었다고 애도함.
공회에서 이런 그가 조심하라고 한 것. 백성들에게 칭송받고 경외함을 받는 사도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한 것. 쉬운 일 아님. 가말리엘이 양심 있는 것. 있는 모습 그대로 봐줄 수 없음. 꼬인 시선으로 봄. 사도들의 모습 그대로 보기에 선행을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음. 지성의 아이콘으로 사두개파와 원수같은 바리새파 모두에게 인정 받았으므로 좌파 우파를 전부 설득해낸 것.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예비해두고 계셨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바리새파 가말리엘 사용해서 사도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해내심. 사두개파는 부활 인정 안하고 바리새파는 인정하는데 서로 교리가 이렇게 다른데도 둘다 설득함.
전도를 위해 성경도 읽어야 하지만...
적용:
신문도 책도 읽으면 어떨지? (사람의 문화가 다 있으므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정말 나밖에 모르는 자. 모닝와이드라도 봐야해!
왜곡하지 않고 인정하는지? 내가 꼬이면 꼬인대로 보기 때문에 왜곡하지 않는 것만도 선한 것.
감정 기복따라 움직이는 나와 말씀에 반응하는 내가 부딪힌다. 객관화가 될 때는 말씀이 내 것이 되었을 떄이다. 말씀에 처절히 나를 비추어보지 않는 순간들에는 그만큼 무너진다. 자타를 막론하고 모든 상황에 대해서 내 피해의식과 가해의식을 투입하여 보게 된다. 그들의 죄가 내 죄가 되고 내가 주님께 용납 받은 것처럼 용납하지 못할 사람이, 일이 없는 은혜가 있는데... 조금만 멀어지면 사람을 죽이고 주님을 죽인다. 정말 부끄럽다...
영육간의 위기에서 뜻밖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얼마나 나는 사랑의 말만 듣고 싶어하는지. 말씀보라고 적용하라고 하는 말 듣는 것이 너무 외로운 때에, 주님이 원망스러워서 울고 있는 그 때에 나나가 문자를 남겼어. 아기를 통해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았다는 고백 때문에 내가 그 날을 살았어.
3 역사의식도 필요함
가말리엘은 역사를 들어 사도들 풀어줄 것을 권면. 그래서 공부도 하고 신문도 봐야 함. 그들을 통해 교훈 받아야 할 것이 있음.
드다 통해 ->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면 안 됨.
말씀 그대로 드다는 AD 44-46년 쯤 스스로 높이고 자칭 메시아라고 구세주라며 요단강물을 저가 가를 수 있다고 백성들 미혹. 로마서 파견한 유대 총독이 그를 죽임. 사건 일단락 되니 그 추종자들이 단번에 흩어짐.부정과거로 철저히 흩어져 없어졌다고 함. 지저스를 신성모독자로 몰아붙인 것도 주님이 스스로 메시아라 했기 때문이잖아. 드다는 자신을 스스로 높였지만 예수님은 종의 형태로 오심. 무슨 일을 할 때 종의 형태를 가지는 것이 자녀된 것이고 이렇게 당하고 전하는 것이 전도임.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눈살 찌뿌리게 하는 것을 하면 안 됨. ㅡㅡ 기도하고 말씀 듣고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이 성령의 전도임. 요즘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빛과소금의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중론임.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좋게 본 것은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기에 그러함.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해도 진리 담는 그릇이 안 좋으면 진리가 훼손됨.
유다-> 로마의 무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면 안 됨.
갈릴리 출신 유다라는 자가 로마의 인구조사때 구레뇨 총독이 인두세 걷으려고 하니... 백성들 동원해서 우리가 어찌 로마에 세금 내냐고 반란함. 구레뇨 총독이 다 무력진압. 유다 따른 자들은 기복적이며 이해타산적으로 모였으니 지도자 사라지니 흩어짐. 그럴듯한 명분에 미혹되어 폭력 씀은 성령의 전도 아님. 무력에 같은 폭력으로 대항하면 같이 망함. 일시적 승리 있어도 또다른 보복을 만듦. 국가가 전시 선포하면 나가 싸워야 하는데 개인적인 것으로 싸우지 말아야함. 여호와의 증인이 종교를 앞세워 국방의 의무를 안하는 것은 이단일 뿐임.
드다와 유다 얘기하며 거짓 메시아들은 다 흩어졌다고, 사도들의 피를 흘리지 말자고 설득함. 지혜롭게 설득을 함. 역사도 알아야 함. 진짜면 남을 것이고 가짜이면 흩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함.
적용:
복음을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 높이는가? 낮추는가?
복음을 설득하려고 하긴 했나. 복음을 가지고 내가 이기려고 하지 않았나. 정말 부끄럽다.
복음 설득 해야하는데 강압적으로 네가 나보다 높냐고 부모 권세로 전도하는게 아닌지. 요새는 애들이 더 권세 심함. -_-
폭력을 당할 때 폭력으로 나가는가, 기도로 참는가? 그런 경험이 있는가?
지금 폭력을 쓰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갑을병정정정정에 있기 때문이지, 얼마든지 나는 같은 폭력으로 무력으로 대항할 사람이다. 내 마음에 부소장과 그 무리가 버뮤다 삼각지대로 사라지거나 수치 당하여 쫓겨나기를 바라는 보복의 마음만 있지 않은가.
4 영적 분별력이 필요
가말리엘은 맞는 얘기만 함. 38절에 상관말고 버려두라 는 명령은 39절의 하나님의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라고 하는 것.
거짓메시아는 시간 지나면 다흩어짐. 사람 소행은 다 무너짐. 하나님께 났으면 동조하지 않아도 역사와 신관이 하나님이 주관있음을 가말리엘이 앎. 그런데 이 말은 주님이 가말리엘 통해 하신 것. 때가 되면 핍박 당하다가 누군가의 명령을 통해 버려둘 때가 옴. 사탄이 자녀 부모 배우자 모습으로 날뛰어도 버려둘때가있어. 가라지 뽑다 곡식까지뽑을까함. 칼날 위의 물방울로 훈련시키려고 하시는 것. 구속사적 이말을 날죽이려하는 가말리엘이 한다는 것으로 그가당대의 종교 석학이었음을 말해줌.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부흥한 초대교회의 역사 통해 증명됨. 40절에 그들이 옳게여김. 설득 당함. 그런데 막 때려서 지저스 말못하게함. 가죽벗겨 채찍질한다는 것봐. 양쪽을 다 아우를 수 있는 가말리엘도 필요함.
그러나 여기까지임.
그들은 사도들을 채찍질 하고 가죽 벗기다에서 유래한 말로 심하게 때린 것. 율법에서 가장 최고로 40의 하나 감한 매를 의미하는 것으로 때려서 방면함. 하나님속의 인간적 분노는 여전함. 이것이 가말리엘 (나)의 한계. 가말리엘의 연설 들었지 설교들은게아냐. 그들의 유익 때문에 내쫓은 것이지 성령의 은혜로 한 것이 아님. 연설로 변한자 없음. 이런자 분별 어려움. 가말리엘이 최고지혜가졌는데 가말은 지저스 안믿어. 상관말고 버려두라 하니 관대하고 멋있어 보이잖아.
일단 모두를 편하게 만들었자나. 교회도 다니고 지식도 있는데 단 하나 복음 받아들이지않아.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예수안믿어도 가말 낫다고 하고 믿음 행위 성품 이런거 분별못함. 성공해도 나이스해도 전도 안함. 이런 가말리엘 위해 눈물뿌려 애통해하면 돌맞지 않겠는가. 이세상은 이말 이해못해. 가말리엘 위해 뭘 분별하지? 주님이 그리스도인거 왜 못받아들여? 표적 다 보았는데.. 표적은 사실 예수 그자체. 안 믿어짐. 성경지식은 연구 아무리해도.. 사람에게서 난 것은 짧은 지식이라 하나님께서 난 것과 비교가 안 됨.최고의 율법학자가 하나님 믿는다면서 예수께로 인도 안 됨. 가말리엘 보면서 내가 믿는 예수님 대단한걸 좀 봐! 성령님 없이 누구도 예수 내 주시라 할수없어. 가말리엘은 죄에 대한 심각한 인식없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이 최고 교만인데 이미 하나님자리에 가있는 천사. 나는 구원받을만한것이 하나도 없구나 해야하는데 가말리엘 같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정도면 되었다고 무작정.. 구원 받을 만하다 함. 큐티하고 목장 나가도 죄에대한인식없음 듣기도 싫어하고. 무섭고. 잘될때 잠시기쁘고 곧잘되고있으면 매너리즘 빠짐. 오래되면 옳고그름으로 정착. 합리화 해야 하니까. 고난오면 주님 부인. 싸이클. 내 옆의 가말리엘같은 존재 있는게 좋은게 아닌가 하겠지. 그러나 우리 모두 하나님 알고 날 알아야하고 그러면 신학자가 된다 하셨으니 성경 주셨으니 답이 있는 인생임. 위대한 가말리엘보다는 사도들이 위에 있음. 사도들은 복음 위해 고난올때 힘들지만 나위해 십자가 진 주님 아니까 주님께 나아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 나오라. 같이 져주시니까. 가말리엘도 고난 설명하지만 고난을 이길 힘이 없음. 사도들은 없는 자 같으나 있는 자.
적용:
가말리엘같은자 분별 어떻게?
분별을 못하니 여기저기 분노했다 쭈구리되었다 하며 팔랑귀처럼 살아왔지. -_- 하지만 자신의 정의를 주님을 빙자하여 공의로 포장하는 자들은 금새 드러나게 되어있어. 그 사람 삶에서 자기 열심 외에는 이루어진 평안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드러나니까.
가말리엘 좋은가 싫은가?
교양있어서 좋아. 있어보이고. 능력있고 멋지고 게다가 외모도 출중해. PERFECT~ 그런데 영혼이 없어. 마치 죽은 영혼이 '아버지 아버지'만 부르짖으면 부활할 것처럼 여기는 '그것'? 생기도 생명도 생령도 없어보여. 그런데 가진 것으로 찬사를 받고 주님께 받은지도 모르고 그것을 은근히 즐긴단 말임. 이게 내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생명이 없어도 찬사받고 싶은 것. 기가 막히는구나..
그러나 주님 없이 쌓아 만든 교양탑은 뒤집어보면 사우론 탑이잖아. -_-
5 그 이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기뻐함
41절 그 이름 예수 위하여 능욕받는 일을 합당해하며 기뻐하고 공회앞을 떠남. 채찍 맞고 능욕 당했는데 그 이름 예수를 위하여 능욕 받는 일을 기쁘게 여김. 사도들 감옥에서 나오는게 응답아냐. 감옥에서 나와도 복음전하지 않으면 타옥이 있음. 바람의 감옥에서 나왔는데 복음 안 전하면 또 다른 바람이 기다림. 인생목적은 오직 그이름 위하여여야해. 그들이 받은 고난이 오직 윤리 이런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위하여 받은 것이잖아. 주의 이름 위하여. 기뻐함을 비밀. 박해를 내 이름으로 받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고 너희 전의 선지자들도 이랬다고 주님이 말씀했었잖아. 이 세상이 알 수가 없음. 그래서 비밀이고 고난이 축복인 것이 맞는 말씀. 적용하게되는것.
적용: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아봤는가?
나의 욕심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지만... 제발 그 이름 위하여 핍박 당하기를 기뻐할 수 있길.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넘겨짐 받을 수 있길..!!! ㅠㅠ
세상서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하잖아. 예수그 이름 비밀하고 다른게 있음. 사랑할 때 모든 걸 다 바침. 그러나 한계가 오지. 예수 신랑이 내 속에 있기에 그 풍부함은 말할 수 없음. 내 하는 모든 행동은 주님 신부로써 품위유지 해야하는 것. 험담이 있거나 어쩌거나 그 능욕 받음 기쁘게여기고 억울해도 1도 변명 없이 그 이름을 위해 또 생색없이함. 그 이름 위하여 해야 함. 그 이름 풍부함 사랑 표현할 수 없음. 무슨일을 당해도 적용하고 당하면 기쁠 수 있음. 말씀대로 적용했는데도 비난하고 욕할수있음. 42절 그들이 전도를 어디서도 그치지 않음. 그이름 위해 능욕받는 목적은 전도. 자기맘대로 행하는 사두개파있고 기다리라는 가말리엘 있음. 예수 이름으로 증인의 삶을 사는 사도들있음. 목숨 내놓은 증인삶을 사는것이 성령의 전도이고 그런 증인들 때문에 복음이 내게 전해짐. 목숨 내놓겠다는 한 마디만으로도 주님이 해주신 것이 있음. 그들이 날마다 집에있건 성전에 있건 예수는 그리스도다 하는것을확신하는 고백이 중요. 부족하고 모르기 때문에 그 이름에 대한 고백이 확고할 수 있음. 여러사람을 질리게도 하지만 권고함을 주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심. 아무리 나를 죽이고자 해도 낙심치 말고 그들의 악보다 한 가지 사명 더 감당하라. 더 열심히 자기일함. 사명. 죽지않아.. 한가지 더 사명을 악보다 하면됨. 평신도라도 그 이름 위하여 능욕 받기를 기뻐하면 어디서든지 전할 수 있게 됨. 몸이 기억하는 예배를 스스로 가르쳐두라. 자발적으로 안 가지고 몸으로 감. 그래도 감. 그 이름을 위해 살게 되는 것이 전자동으로 되어야 하는데 주의일 나의 일 나누잖아. 큐티하랴 목장하랴 하느라 내 생활 가져야 한다 하면 이원론. 모든 시간은 주님을 위한 것. 일원론. 집에 있는 것도 교회에 있어도 주님을 위한 것. 자꾸 생색내고 띠껍게 굴면 안 됨 (나네.. -_-).
나의 수치와 죄를 드러내면 될 것을. 진실을 드러내라고만 말하는 것에 눌리지 않을 수 없음. 공익이라니. (내가 바로 타인보고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오히려 정죄한 자가 아닌가. 부끄럽다) 죄 고백하고 수치 드러내도 울고 웃을 수 있으며 즐거워할 수 있음.
적용:
그이름 비밀아는가?
알아요. 고단한 중에도 내게 주신 평안과 요지부동함 없는 자유함을 맛보게 해주셨으니까.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요. 매시간 매초마다 은혜로 살려주세요.
그이름 위하여가 인생목적, 내이름을 위하여가 목적?
내 이름 위하여. 이것이 훨씬 훨씬 크잖아. 그러니 내가 자유함이 없는거였네.
<나눔 및 기도>
사랑을 하려면 주님을 알아야 함. 말씀을 봄. 채워짐. 내가 용납 받음 경험했으니 그 사람 그대로 용납. 객관화. 잠시은혜의 감정이 아니길. 다시 금송아지 만들었다 엎어졌다 해도 말씀으로 go back~ 공동체에 일상 나누고 죄의 힘 잃게 되길. 큐티하고 성경 읽으면서! 육이 떨어져 있어도 주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길~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