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경을 읽으십니까?
독서법의 전통을 통해서 본 탄설의 성경읽기와 묵상 눅10:25-37- 강영안 교수
참석: 이지현, 위한나, 이영지, 오지혜
장소: 판채 테라스 3층
목장풍경
교수님의 강의 설교, 성경을 읽기 전에, 성경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율법교사, 제자, 루터, 신학자들의 인식과 독서법을 통해 큐티인을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설명해주셨다. 큐티인을 통해 제대로 성경을 읽는 공동체에 있음을 감사히 여겼다. 목원들 중 반은 자고, 반은 들었다고 했다.. 아....
말씀요약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 성경을 삶으로 산다.
율법교사의 질문: 선생님 어떻게 해야 제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시험을 하려는 의도)
예수님이 답을 하지 않고 질문하신다.
율법교사는, 내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네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예수님: 네 대답이 옳도다. 그리하면 영생을 누릴 것이다.
율법교사: 내 이웃이 누구 입니까?
질문은 좋은 방법이다.
요한복음에도 1장, 세례요한 제자들에게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 질문이었다.
제자들도 되물었다. 예수님 어디에 머무르십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반복하셨다.
마지막 질문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너에게 무슨 상관이냐.
예수님이 49의 질문, 신약 전체 305번의 질문이 있다.
1. 성경을 바로 읽자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담은 책인 것을 알아야 한다.
율법교사는 성경을 율법서로 생각했다. 마치 법전처럼. 금하는 것과 명령으로 구성되었다. 구약성경에 246 명령, 365 하지말라 = 613. 중세 스페인 코르도바 출신 의사, 랍비 신학 철학자가 말했다. 그 이후 유대 전통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다. 중요도를 가려내기 힘들다.
율법교사는 그래도 정답을 말했다. 신명기6, 레위기 19장에서 가져왔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행위를 통한 구원이냐 믿음을 통한 구원이냐 그런 물음은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구원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
눅18에, 관리가, 선한 선생이여 제가 어떻게 영생을 얻습니까? 네가 계명을 아나니../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으니, 모든 소유를 팔아 나눠주라 하셨다. 제자들도,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물었다. 이와 같이 행위와 관련된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 결국,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다.!
자기 관점에서 성경을 법규집으로 보았다. 성경을 잘못 봤다. 신명기 레위기. 하나님 구원의 역사 가운데 하신 말씀이다. 도덕적 규율로 생각하면 오해이다. 하나님 역사 긴 이야기에 끊임없이 우리를 초청하는 책이다.
딤후3:15-17 성경의 기원 목적 효능 결과. 어디서 오나, 하나님의 감동, 숨결로, 영으로(사람의 말로 적혔지만, 사람 저자 언어 지적능력 문화 활용) 목적. 구원에 이르는 지혜 우리에게 심어줌. 구원을 위해. 구속의 관점에서 정치 학문 예술 을 볼 수 있다. 유익은 교훈, 의로 교육하기(가르침) 책망과 바르게 함(회개) 기능이다. 방향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만드는, 온전케 하심이다. 그러면, '어떻게 읽는가?' 우리들교회의 대답은?!!
2.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결부시켜서 읽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되기 위한 전통법. 중국에 유교식-주자학 10-11권이 독서법에 관한 내용이다. 중세 고대는, 띄어쓰기 읽는 법. 소리내어 읽기 말씀가지고 묵상하였다. 공동 독서 후에 수도원 안에서 일할때 계속 입에 올려 중얼거리며 생각하고 씹는 행동이다. 시1 주야로 묵상에 하다라는 말의 의미이다. 말씀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마5:8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개신교 전통에서는 참 약한 부분이다. 깊숙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보는 경험을 잠깐이라도 하는 것=관상이라고 불렀다.
포도알 하나(읽고), 씹고(묵상), 즙을 빨아내는 갓(기도), 단맛 자체을 보는 것(관상)....
유진 피터스 관상을 소개할 때 카톨릭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적용한 것이 개신교적 적용이다. 이미, 마틴 루터의 신학 방법론 세단계이다 인간의 지성으로 읽기보다는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해주시는 기도. 기도 후 말씀 묵상이다. 말씀을 가지고 그냥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술에 올리고, 생각, '밀고 부비고 닦는다. '독일어이다. 일상의 삶에서 고난 받으면서 씨름하고 사탄과 싸우는 삶.
우리들교회 큐티도, <준비> 좋은 밭되도록 기도하기,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라. 큐티인과 같은 책을 가지고 하는 게 낫다. 그룹으로 같이. 라고 했따.
말씀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기도한다. 본문읽기. 소리내어, 눈으로, 마음으로. (과거 모든 문화에서는 소리 내어 읽었다. 읽는다- 묵독은 근대 교육 방식이다.) 중세 수도원 필사 벌집에 비유했다. 앵앵거리는 소리 때문이다.
**질문하기: 한국사회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방법이 없다.
질문은 양날의 칼이다. 성경에 질문이 어디에 등장하는 가? 첫번째, 뱀. 정말 하나님이 먹지말라는가? 죽이는 질문이다. 선한 나무 열매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 아예카 어디있느냐? 살리는 질문이다. 집나간 아이를 찾아 헤매는 어머니같은 목소리이다. 찾아오셔서 건져주시려고 회복시켜주시려는 질문이다.
한국교회 형편 가슴만 가져와 은혜만 가져간다. 생각은 세상적으로, 가슴은 말씀대로. 충돌되어 도무지 되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하라.
루터는 질문했다. 믿어야 할 것 해야 할것 회개할 것 감사할 것.
우리들교회, 묵상의 핵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지혜'는 확고하고 단단함. 하나님을 아는 지식, 내 자신을 아는 지식. 이것이 곧 신학이다. 하나님을 알면 내 자신을 알게 된다.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데 내가 죄인인것을 모르면 아직 뭐가 안 된 것이다.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이 의인이다. 나를 의인 삼아주신 자긍심을 가능하지만, 자만심은 가질 수가 없다. 루터는 끝까지 죄인 고백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통해 이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한다.
율법교사가, 적용했다면,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정당화 하기 위해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내 이웃이 누구인가?'
성경은 나를 말씀에 읽어주도록 수동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난의 고백 축복
C.S루이스 1940 고통의 문제. 1961 조이 데이비드먼에 괸한 이야기. 핵심은,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것으로 채워져있기때문에, 비우시게 하기 위함이다. 강아지를 데려와 잘려면 깨끗이 씻기려는 것과 같다.
철저히 기복신앙을 깨트리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 건강 축복이 하나님이고 신자로서 누리는 것이라고, 불합격이나 실패 건강문제가 저주라고 인식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성경 앞에 펼쳐놓고, 성경이 앍도록 하고, 삶으로 성경을 읽어내고 있습니까?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갑니까'
3. 결국은 순종하는 삶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구속사, 실제 말로 쓴 사람. 호프만이다. 독일 랑핼대학 교수. 구속사 개념은 개혁신앙 전통에 있는 분들이써왔다. 성경을 단순한 복음의 사례로 읽지 않고 창조부터 재 창조, 세속의 역사까지 포함해 하나님의 역사로 본다는 점. 구원의 역사에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그리고 만물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 구원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6막 창조 타락 이스라엘 선택 예수 오심 부활승천 성령 역사, 하나님 나라의 완성되는 제 6막이다.
레슬리 뉴비긴(영국 신학자)이 인도 지식인에게 들은 말, 나는 당신의 선교사들이 왜 인도사람에게 성경을 종교서적으로 제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교서적이라면 인도에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세계 인류 역사을 독특하게 해석한 책입니다. 종교 문헌을 통틀어도 성경에 견줄만한 것은 없습니다. 비 기독교인이 말한 것이다.
이 눈을 가지고, 사마리아인 비유를 생각해 보자.
다같이 보았고, '보고 불쌍히'여겼다 이는 눅 15장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마음이다. 눅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내장이 도뭊 아파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서.
예수는 이웃이 누군지 보여주었다. 정의를 내리시지 않았다. 이웃은 공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회학적 사회적으로 같은 동류 사람.. 모든 답을 거부하시고 이웃은 강도 만난 사람. 도움 필요한 사람 싸매어 줘야 할 사람. 내가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면 고통 받는 사람. 공간 심리 사회적 종교 동질성을 다 배제하셨다. 나와 다른 상황. 그 차이.
마지막 예수님 질문, 이 세 사람 중 누가 이사람의 이웃이냐? 대상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이웃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방식의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가 없다.
37절, 이르되 자비를 베푸는 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읽음의 문제, 끝나는 말은 가서 선생님도 이와 같이 하십시오.
질문, 이웃에게 내밀어야 할 손은 무엇입니까?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위한나
1. 일주일동안 가정에서, 직장에서, 관계에서 하나님을 항상 마음에 모시고 살겠어요
이영지
1. 빨리 변호사님께 증언하러 같이 갈 수 있는 분을 찾는 것.
2. 매일 큐티에 성공하는 것
오지혜
1. 마무리까지 지혜주시길
이지현
1. 겸손한 환경에 순종하도록
2. 꾸준히 운동하며 떨어진 체력 올리도록
3. 도와야할 이웃을 잘 돌아보도록
4. 생활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