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8 어떻게 성경을 읽으십니까?
ampbull 설교 본문: 누가복음 10장 25-37절
ampbull 설교자: 강영안 교수님(미국 칼빈신학교)
2019년 칼빈대학에 안식년으로 가 있는 동안 영국 에딘버러에서 온 성경학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브라이언 스탠리에게 물었습니다. 영국이 한국 선교사를 필요로 합니까? 네, 필요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Missional missionary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삶과 사회, 문화 속에 깊숙이 뛰어들어서 성육신의 삶을 살면서 복음의 능력을 보이는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분이 Missional missionary의 선구자이십니다. 1985년 3월에 제네바에서 그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그분이 제게 가까이 와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복음주의자시냐고 물었습니다. 신학적 색깔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답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놀랐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왜 목사님은 스스로 복음주의자가 아니냐고 하시냐고 물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주의자의 기본은 사실 말씀입니다. 성경주의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말씀을 강조하고 그 다음으로는 회심을 강조합니다. 세 번째는 전도를 강조합니다.
한국 기독교는 넓은 의미로 전부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주의자들만큼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반문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고 외울 뿐이지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제주도 난민 들어올 때 사람들은 안 된다고 외쳤지요? 성경에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평등이 심해지는 이 사회에서 성경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성경 말씀과 무관하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가 레슬리 뉴비긴의 말에 담겨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읽어야 성경을 제대로 읽는냐는 질문은 제게 항상 있었습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사실상 답을 하진 않았고 오히려 반문하셨습니다. 사실상 되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제가 공부는 유럽에서 하고 미국에서는 철학 강의를 했습니다. 교수가 하는 영어는 오히려 쉬운데, 청소년들이 하는 영어는 알아듣기가 힘들었습니다. 난감할 때는 교수도 되묻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도 되묻는 방법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첫 말씀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자들도 어디에 묵으시냐?고 묻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49번이나 질문하셨습니다. 되물었습니다.
율법 교사는 말씀을 인용해서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네 대답이 옳다고 하셨고 이를 행하면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율법 교사가 자신을 정당하게 보이려고 또 묻습니다. 네 이웃이 누구입니까?
1. 성경을 바로 읽으려면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담은 책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교사는 성경책을 율법서로 알았겠죠. 마치 법전처럼요. 법전의 특징은 명령, 계율, 규례로 금하는 것, 명하는 것이 나와있죠. 성경에서 613개의 율법이 나와있다고 합니다. 365개의 하지 말라는 말씀과 248개의 하라는 말씀이 나와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코르도바 출신의 의사이자 랍비, 철학자인 분이 세봤다고 합니다. 그 이후 유대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613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는 율법 교사는 그래도 정답을 말했습니다.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가장 크게 생각하시는 계명을 찾아 답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느냐,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느냐 뭐 이런 논쟁은 하지 않습니다. 율법 교사는 직업적 차원에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법규직으로 접근한 겁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했다고 할 수 있죠. 커다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가운데 주어진 말씀이지 단순한 율법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어떤 책이냐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딤후 3:15-16 포인트가 몇 개나 나옵니까? 성경의 기원, 목적, 효능, 결과를 찾아내봅시다.
(1) 성경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감동, 숨결, 영으로 쓰였습니다.
(2) 성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구원을 위한 책입니다.
(3) 성경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우리를 교육하고 훈계합니다.
(4)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성경읽기와 묵상으로 유명한 우리들교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레슬리 뉴비긴의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겠습니까?
2.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절실하게 관련지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 어떻게 읽습니까? 어떻게 김양재 목사님에게 배웠습니까? 저는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를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철학자인 제가 말이죠. 처음에는 공감의 방법으로 두 번째로는 분석적 방법으로 읽었습니다. 단계를 이야기해보세요.
제 질문이 왜 의미가 있는지를 먼저 말씀드리죠. 서양과 동양의 독서법 전통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되기 위한 독서법(유학)과 고대, 중세 전통으로 내려오는 독서법이 있습니다. 주자학을 만든 주희의 주자 의류라고 하는 대화편 125권 중 10-11권이 독서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배우는 사람에게 두 번째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실천이라고 합니다. 주희의 독서법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 강조하는 것은 열독과 속독입니다. 세 번째는 성찰의 독서라고 합니다. 이 독서법은 김양재 목사님의 독서법에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봅니다. 책을 백 번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뜻이 통한다는 말로 반복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서양의 독서법 전통이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전통이 있습니다. 5페이지 분량의 독서법에서 강조하는 것은 글을 읽는 것입니다. 서양 전통에서는 기원후 6세기, 7세기에 아일랜드에서부터 띄어쓰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띄어읽는 것을 먼저 강조합니다. 읽었으면 그 말씀을 가지고 묵상합니다. 하루종일 말씀을 입에 올리고 중얼거리고 생각하고 씹습니다. 이 행위가 묵상입니다. 히브리 말로 하가라고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말씀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약한 부분인데, 수도원 전통에서는 그 부분을 강조합니다. 네 번째로는 말씀 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청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보는 경험을 아주 잠깐이라도 합니다. 관상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을 음식을 먹는 것에 비유를 합니다. 포도 한 송이를 입에 넣는 단계, 씹는 단계, 즙을 빨아내는 단계, 단 맛 자체를 보는 단계로 비유합니다.
유진 피터슨이 관상을 소개할 때 카톨릭과는 달리 관상을 일상 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마틴 루터의 신학 방법론이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묵상 방법과 흡사합니다. 세 단계로 나눠집니다. 먼저,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는 묵상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합니다. 루터가 강조하는 초점은 말씀을 가지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술에 올리고 또다시 그 말씀을 생각하고 나를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밀고 부비고 닦는다는 라이벤이라는 독일어 표현을 활용합니다. 세 번째로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사탄과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방법과 큰 차이가 없죠?
우리들교회도 먼저 기도하죠. 좋은 밭이 되도록 마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큐티인과 같은 큐티책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고 하죠. 말씀에 자신을 내어놓는 기도를 합니다. 루터와 같죠. 그 다음으로는 묵상이라는 말을 붙였는데 우리들교회 표현으로는 본문 읽기입니다. 본문을 소리내어 읽고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으라고 합니다. 3중 읽기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소리내어 크게 읽는 방법은 동양이든 이스라엘이든 초대교회든 사실상 공통된 전통입니다. 소리내서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 읽는 것을 Auditory readning이라고 합니다. 고, 중세에서는 어디든 읽는다는 말은 소리내어 읽는다로 통했습니다. 눈, 마음으로 읽는 것은 근세에서나 들어와서 도입된 방법입니다. 저도 아주 어려운 철학책을 읽을 때는 소리내서 걸어다니면서 읽습니다. 어려운 구절이 이해되는 경험을 합니다. 침묵하며 읽기랑은 차이가 납니다.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을 벌집에 비유했습니다. 남의 책을 베끼면서도 소리내서 읽으면서 베꼈습니다. 벌이 앵앵거리는 것처럼 읽는 소리가 들렸다는 뜻이죠. 여기서 중요하게 관찰한 바가 등장합니다. 세 번째는 적용입니다. 한국 교회에서의 일반적인 관행으로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은 양날의 칼입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에 곧장 질문이 등장합니다. 사탄의 질문이죠. 이 과일을 먹으면 정말 죽는다고 하셨느냐? 죽이는 질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살려주시려고 하신 질문이죠. 질문하지 않으면 내 자신을 볼 수가 없습니다.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바라보게 만들고 내 자신을 말씀 앞에 내놓게 만듭니다.
우리 형편을 보면 교회를 들어올 때 나갈 때 머리는 떼놓고 가슴만 들고 다닙니다. 생각은 세상적으로 가슴은 말씀으로 되어있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머리도 가슴도 말씀의 전에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다. THINK를 안하면 SINK한다고 하죠. THINK하면 THANK합니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회개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감사할 것은 무엇인가? 네 가지를 묻습니다.
칼빈 기독교 강요에 첫 부분은 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내 자신을 아는 지식 이 두 가지 지혜가 우리를 살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곧 신학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내 자신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죄인됨을 아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마틴 루터는 끝까지 믿음으로 인해 우리가 의인된다고 했지만 죄인됨을 아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지라고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죽을 때까지 말했습니다. 이런 묵상 과정을 거쳐 적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적용이 가지는 의미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17-18세기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유럽에서 일어납니다. 그룹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적용이 중요한 부분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철학적으로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라는 독일 사람이 해석합니다. 적용할 수 없으면 아직 이해라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적용을 할 때 공부하면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해석학적 의미를 발견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본문의 율법 교사는 그렇게 읽지 않았죠. 자기 자신에게 말씀을 적용했다면 율법 교사는 순종했을 겁니다. 시험하기 위한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네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죠. 자기 자신에 대한 적용이 없습니다. 나를 말씀이 읽어내도록 내가 수동적인 상태에 들어갑니다. 수동적 읽기라고 저는 표현합니다. 내 자아가 살아있으면 불가능하죠. 내 자아가 responsible한 상태로 가는 거죠. 나를 아주 절실하게 말씀 앞으로 가져갑니다. 돌이켜 자기에게서 구한다고 주희는 표현합니다. 말씀이 내 자신을 읽게 만듭니다.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합니다.
이 가운데서 특별히 고난의 사상을 발견합니다. 모든 삶의 과정에서 겪은 목사님의 고난이 결국 축복이었다고 고백하시죠. 교회사 전통을 통해 충분히 해석이 가능합니다. 고난의 신학은 C.S.루이스와 관점이 비슷합니다. 고통의 문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또다른 하나는 조이 데이비드만에 관한 책입니다. 헤아려본 슬픔입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나와 교제하시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내 자신을 비우도록 하기 위해 고통을 주신다고 합니다. 만일 강아지를 데리고 침대에서 자려면 강아지를 깨끗하게 씻겨야 합니다.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생각은 우리 한국 교회의 편만한 기복 신앙을 깨뜨리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신의 삶을 성경 앞에 펼쳐놓고 성경이 읽도록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3. 성경을 제대로 읽는 다는 것은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구속사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호프만입니다. 각 학파에 따라 의미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성경을 단순한 도덕적 규범으로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든 역사를 심지어 세속사까지도 포함해서 구원의 역사로 본다는 겁니다. 점진적 구원의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전체를 다시 말하면 구원의 드라마, 구원의 역사로 성경을 봅니다. 제 6막으로 창조, 타락, 선택, 그리스도가 오심, 성령으로 교회를 세우심, 이미 오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6막까지 이루어져있습니다.
구속사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펼쳐가시는 드라마이자 이야기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레슬리 뉴비긴이 인도 어느 지식인을 만나서 들은 말이 이것과 관계된다고 할 수 있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성경은 단순한 종교서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고 인류의 역사를 아주 독특하게 표현하는 책입니다. 레슬리 뉴비긴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종교인으로 만들려는 의도로 쓰인 책이 아닙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생각해봅시다. 제사장,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제사장은 등을 돌려 가버립니다.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까? 집 나간 둘째 아들(탕자)을 보고 아버지가 느끼는 심정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 과부에게 예수님이 느끼신 것과 같스빈다. 보시고 불쌍히 여겨 내장이 아파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누가 우리의 이웃이냐는 것에 대한 답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교사의 질문에 철학적인, 사회학적인 정의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이웃은 강도 만난 사람처럼 현재 고통 받고 있고 내가 싸매어주어야 할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이웃은 고통 받는 사람입니다. 공간, 심리, 사회, 종교적 개념은 다 배제해버리십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이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거죠. 내 취향조차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그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냐 아니냐만 보는 겁니다.
예수님이 또 질문하십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네 이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 다친 자의 이웃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겁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르되 자비를 베푸는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눈에 갖다 대고 읽는 것만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삶으로 옮기는 것이 진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큐티는 말씀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읽기는 소리내어 읽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읽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족과 지체, 이웃에게 내밀어야 할 손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가까운 사람을 벗어나 지구 공동체에까지 내 관심이 나아가고 있습니까?
2019. 12. 8.
구준호
- 부모님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 휴식 취할 수 있도록
안식
- 시험기간 잘 붙어있고
- 듣는 마음 더 허락하게 해주시고
- 조치원 정리 잘 할 수 있게해주시고
- 출근 전 영육간 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조동민
- 양육교사 과정, 주제큐티 잘 할 수 있도록
- 작은 누나를 잘 대해줄 수 있도록
길태수
- 신체검사 잘 통과할 수 있도록
- 이번 한 주 쉬는데, 쉰다고 기도와 말씀 멀어지지 않도록
김주형
- QT , 생활예배 회복
- 하나님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박영준
- 매일 큐티하기, 매사에 하나님 의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