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2. 1 주일예배>
일시 2019. 12. 1. 3부 예배
찬양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 주 신실하심 놀라워 ┃ 우리 주 안에서 노래하며 ┃ 온 맘 다해 ┃ 주의 나라 오리라
성령의 핍박
본문 사도행전 5:17-32
설교 김양재 목사님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서 폭발적으로 부흥할 때가 가장 위기라고 할 수 있죠. 예수님은 그런 위기의 때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어요. 그런데 초대 교회는 이미 시작이 되었으니 한적한 곳으로 갈 수 없잖아요. 이때 성령은 어떻게 도우시는가 봤더니 핍박으로 도우시는 것을 오늘 볼 수 있어요. 늘 배가 부르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잖아요. 성령의 핍박에 대해서 알아보겠어요.
첫째로, 교회 안 권력의 시기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17-18)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지난 주 16절에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은 바로 그때,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기, 질투가 일어나서 핍박이 일어났어요. 다 같이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 나머지는 감히 상종하시지 않는 무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보다 더 심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잡아 죽이고자 하는 무리가 바로 교회 안에 있었어요. 성령으로 가득 찬 지도자들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전념했다면 이 시기심으로 가득 찬 종교지도자들은 생명을 살리는 자들을 죽이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시기는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문장 서두에 나오는 단어가 가장 강조되는 단어고 그 다음 중요한 단어가 마지막으로 나옵니다. 이 구절은 원어로 보면, 일어나서가 먼저 나오고 가득하여가 마지막에 나옵니다. 일어나서는요, 일어날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요. 남성 단수 주어를 가져요. 바로 대제사장이 일어나서 시기가 가득했다는 게 가장 강조적인 부분이에요. 제일 중요한 사람이 대제사장이라는 거죠. 사두개인들은 부활교리를 믿지 않고 대제사장을 동조하는 무리가 되었고요, 한마디로 로마를 등에 업고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죠. 이 땅에서 잘 사니 당연히 부활이 싫겠죠. 그 대제사장 안나스 가문은 반세기를 대제사장을 배출해내니깐 부활이 싫을 만도 합니다. 그때는 그것이 좋았겠지만 예수님 죽이고도 계속 잘 사는 그들은 영원히 지옥백성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굉장히 분별이 안 되겠죠? 어떠세요? 안나스 가문 너무 좋지 않아요? 영육으로 최곤데. 끄떡끄떡하는 건 뭐에요? 그런 얘기 아닌데 아무데나 아멘하시면 안됩니다. 정말 우리는 이 땅에서 분별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 제가 대학 때 잠깐 소개 받았던 사람이 있어요. 정식으로 집안 다 알고 선을 처음 봐서 결혼했지만 잘 모르고 소개해줘서 잠깐 만났는데 왜 만났냐면 학벌이 굉장해서. 제가 굉장하다고 하면 굉장한 거에요. 그래가지고 진짜 한 두세번 쯤 만났습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 여러 가지 우리 남편보다 훨씬 나요. 그런데 괜찮은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사느라고 인생이 바빴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매우 많은 호감을 표시했지만 제가 매몰차게 걷어차고 안 만났죠. 여러 차례 연락이 오고 그랬는데요, 근래에 그 사람이 무슨 회장님 아들이었다는 말을 들은 거 있죠. 너무 놀랐어요. 그때 그 얘기를 했으면 얘기가 달라졌을텐데요. 정말 충격이 좀 되더라구요. 우리 남편은 자가용을 가지고 부자 티를 냈는데 그 사람은 거꾸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에요. 정말 몰랐구요. 잠깐 아쉽더라구요. 그러면 오늘날 목사가 100% 안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 이렇게 쓰셔야 되니깐 고르고 골라서 저에게 짝을 지어주신 것 맞구요. 저는 결혼을 100%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재밌습니까?
@ THINK. 시기에 대하여
시기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하죠. 사무엘상 18장에 보면. 기쁨에 열광한 여인들이 무심코 다윗을 칭송하는 심중의 말을 하였는데 이것이 다윗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중대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무엘 상 18장 8절에,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하면서 사울이 불쾌했다고 하죠.
10절에,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지금으로 생각하면 사울의 시기심으로 인하여서 악령이 들어서 막 정신없이 떠들었다고 하니깐 사울을 입원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왕이니깐 아무도 손을 못 대는 거에요. 왕이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입원을 해야 하는 부모, 형제, 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도 못 대는 집들이 있죠. 더군다나 권세와 돈이 있으면 더 더욱 아파도 손을 못 댑니다. 오늘 대제사장에게 권세가 있고 시기가 가득하니 이게 독한 시기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독한 시기가 있는 사람일수록 병든 열심이 있습니다.
시기의 뿌리는 열등감이에요. 질투도 시기와 같은데 열등감은 다른 사람이 내가 이루지 못하고 원하던 바를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에요. 자기의 단점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비웃음을 당할 때, 비판을 많이 받고 심한 벌을 받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줬다고 생각 할 때, 거기에서도 질투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부부관계에서 의처증, 의부증으로 나타나는 가장 무서운 병이죠. 자신을 망치고 가족을 망치고 공동체를 망칩니다.
# 자매가 각각 홀로 살고 있는데요, 우리들 교회 목자자매가 나이가 저보다 많고 비슷하고 한 대, 각각 살고 있는데 언니가 의처증 남편 때문에 인생을 힘들게 살다가 드디어 15년 동안 혼자 살았어요. 우리들 교회 개척할 때 와서. 남편이 망해서 노숙사 신세가 됐는데 그나마 조그마한 아파트가 재개발, 재건축이 되어서 다시 합치게 되었어요. 이 의처증을 복음으로 통과를 했어요. 정말 기적입니다. 그런데 동생도 혼자 살다가 언니와 형부가 요즘 깨를 볶고 있다는 거에요. 너무 시기가 난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데서 시기가 날 수 있습니다. 치매끼가 있는 엄마를 혼자 돌봐야 하기 때문에 언니가 너무 미운 거에요. 이해타산이 없으면 다들 축복하지만 자기이해타산이 직접 걸리면 자매도 시기가 가득차게 되는 것이죠. 농담일줄 믿습니다. 말로는 시기심을 정의합니다. 나는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책을 태우고 싶다. 이것이 바로 시기심의 실체입니다.
사무엘상 18장 12절에서도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시기를 하면서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에 두려운 거에요. 다윗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내가 압니다. 사울이 기름 부음 받은 자잖아요. 두려운 거에요. 시기심 끝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패거리도 시기가 가득해서 기득권에 침해가 되면 옥에 잡아가두고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을 하고 그러면서도 이제 뒤에 26절을 보면 돌로 칠까 두려워하고 적극적인 기쁨과 자유함은 하나도 없고 오직 부정적이고 깎아내리고 의심하고 삶이 시기와 질투에 사람인 것입니다. 여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시기와 질투를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광적으로 한 거에요. 그들은 성도의 영혼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끝에 돈이 있다고 했죠. 돈이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었다면 마구 기뻐해줄 텐데 이미 그들의 기득권으로 인해 어떤 팩트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당파라고 했듯이 그런 자들도 동류가 있어서 패거리가 있어요. 우리는 사도들보고 패거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가진 권세가 대단하기에 부러워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옥에 가두었다고 했는데 사적 감옥이 아니고 원문에 보면 공적 감옥을 의미합니다. 갇혀서도 경비와 감시를 철저히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본문을 보고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 다른 자녀가 잘되는 꼴을 못 보고 시기질투하며 안 그런척합니다. 배울수록 안 그런 척하는 데 달인이 됩니다. 나오지 못할 감옥에 가두어두고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자신 아닐까요? 우리도 사도들이 아닌 대제사장처럼 절대 내려놓고 싶지 않는 그런 기득권이 있습니다. 건드리면 큰 일날 기득권이 있어요. 내가 가야 할 자리를 누가 빼앗는다면 시기가 가득해서 잡아넣고 싶을 것이 있죠.
이제부터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가운데도 여러분 앞에서 어떤 목원이 와서 전에 목자가 지금 목자님보다 훨씬 나으신데요. 전에 목자는 너무 잘 들어주셨어요. 아주 정말~. 그러면 여러분들 기분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앞에서 얘기해도 기분이 나쁘고 뒤에서 얘기해도 기분이 나뻐요. 뒷담화해도 기분이 나쁘고. 그러면 여러분은 사도들에요? 대제사장들이에요? 바로 나는 사도들이 아니고 대제사장과 그 패거리인거죠. 대제사장과 그 패거리에 속하는 거죠? 또 김초원이 박초원보다 설교를 잘 하더라구~ 그러면 박초원이 들을 때 어떻겠어요? 부목사님 앞에서 누가 저는 아무개 목사님 설교가 제일 좋아요~ 어떻겠어요?
# 저 또한 예외가 아니겠죠. 내려놓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우리 가운데 있는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왜 나는 그 사람을 놓쳤을까? 그런데 제 속에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게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 저는 그 사람이 정말 가난하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제가 분별이 하나도 안 되는거죠. 그런데 저의 기득권은 그런 것이 아닐까. 고생을 하니깐 그럴 법도 했어요. 제 책이 구속사를 위해서 bestseller가 되면 좋겠는데 늘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가지고 언제 순위가 올라가나. 제가 이기고 이겨서 대학도 가고 출강도 했는데 저라고 별 다를 게 있겠습니까. 이런 성경을 볼 때마다 저는 늘 사도 베드로편이 아니라 늘 대제사장 편에서 적용이 되는 거에요. 우리들 교회는 모든 것을 알리고 왔어요. 교인 총수도 헌금도 설교도 처음부터 클릭수를 개수했습니다. 도대체 여자 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무시를 할까? 인정을 할까?도 있었어요. 구원의 총수에 들어가라고 개수를 한 것이고. 그 다음에 과연 제가 교회 때문에 교회를 한 것이 아니잖아요. 말씀묵상 때문에 했는데 이 큐티설교를 여러분들은 살아났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들을까.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개수했어요. 많아져서 한 것이 절대 아니에요. 첫 주일부터 이 모든 것을 개수했습니다. 나의 힘을 다 내려놓게 하시느라 또 내 속에 기득권을 빼내시느라고 하나님 수고하셨고 성령님이 도우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질투는 나의 힘이라 외치면서 여기까지 온 분이 많지 않을까요? 그 힘으로 아무리 잡아 가두어도 하나님은요, 하실 일을 다 아니깐 누가 하나를 잡아 가두던지 내 속에는 이쪽, 저쪽 세력이 다 있잖아요? 대제사장 세력도 있고
사도들의 세력도 있는데 나를 잡아가둬도 하나님은 하실 일 다 하시니깐 잘 갇혀있길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이 절대로 내려놓지 못하는 기득권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시기와 질투를 가장 많이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촌이 논을 샀는데 배가 아프세요? 한 탕 먹을 생각에 배가 고프세요? 고프길 바랍니다.
성령의 핍박
두 번째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주십니다. (19-26)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이렇게 명령을 하셨어요. 잘 갇혀 있으니깐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끌어 내었어요. 지난 번에 갇혀있을 때는 그냥 풀어주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옥에서 끌어냄으로 예수님의 다른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때에 맞게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핍박도 받지만 분명히 구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목적이 너희는 가서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라는 거에요. 이게 목적이에요. 끌어내어는 속박과 고통에서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끌어내어는 벌써 강제성이 보이죠? 그러니 때가 되면 주님은 출애굽을 시키신 것처럼 사명이 있는 인생은 옥문을 열고 끌어내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의 옥문, 아내의 옥문, 자녀의 옥문, 회사의 옥문, 취업의 옥문에서 끌어내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면 때가 차면 끌어내주십니다. 사도들도 감옥의 속박에서 빠져 나오게 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명입니다. 입시의 옥, 가난의 옥에서 구출해 주셨는데 제가 시댁의 옥에서 걸레질 하고 있을 때, 언제까지 갇혀있어야 하나? 이게 저의 주제가였잖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 언제까지 갇혀있어야 하나? 이 생각할 땐 자살과 이혼 등을 생각했지만 제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사명이 생겼죠. 제가 기도원에 가서 회개를 하고 편지를 쓸 때 이 구절을 썼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나를 연단시키고자 나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연단은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게 하고자 이 고난에 오게 해서 나의 악을 직면하게 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그때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을 통해서 드디어 나의 악을 직면하고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말씀을 통해 내가 사랑이 하나도 없어서 두려워했구나. 이것을 깨닫고 시댁에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나는 분가하게 해달라고 기도도 안 했고 편지에 제가 너무 힘든데 내보내주세요. 이딴 얘기도 하나 안 썼습니다. 제가 저를 용서하시라고. 저는 사랑받는 아내와 며느리와 엄마가 되겠다고. 이 생명의 말씀으로 편지를 썼지요. 정말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에요. 제가 그렇게 편지를 딱 쓰고 회개를 하니깐 생각 못한 시댁의 옥문이 열렸죠. 그래서 그 한 겨울에 분가를 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저를 편하라고 분가를 시켰나요? 물론 저는 그다음에는 남편의 옥문이라는 더 기가 막힌 옥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제가 성경이라도 편하게 봐야 되잖아요. 시댁에 있으면 그걸 못 보니깐. 성경 정말 열심히 봤구요. 전도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가 우리 아들 유치원을 가면서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 가서 열심히 전도를 했더니 전도 받은 엄마가 개인적으로 200명이나 전도를 한 제자도 생겼어요. 요즘에는 어디로 갔나 모르겠는데. 집에선 성경보고 전도하고. 확실히 저는 그때로부터는 정말 한 걸음도 뒤로 안 빠지고 저의 거룩의 양은 안찼지만 전도는 계속했던 같습니다.
21절서부터입니다.
(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랑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사도들을 처리하는 사안이 너무 중대해서 유대 대제사장과 일당들은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원로들을 다 초대를 했어요. 부하들은 이들 공회의 명령을 받아서 사도들이 갇힌 옥에 달려 갔는데 옥에 사도들이 없는 거에요. 영문도 모른 채 돌아와 설명하지만 부하들이 생각할 때 옥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고 간수들이 계속해서 그 문을 지켰음에도 실제로 감옥의 내부에 사도들이 없자 얼마나 당황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주의 사자들을 통해서 감옥을 빠져 나온 것은 19절에도 언급한 것처럼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빠져 나온 것이죠. 왜 주님의 사자들이 지난 번엔 그냥 풀어주더니 지금은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했을까? 이 땅에서는 구원이 이모양 저모양이 되어야 할텐데 만약에 정상적으로 간수들을 제치고 나오게 되면 사도들이 탈옥한 죄수들이 되잖아요? 이해되시죠? 그러면 나중에 복음을 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잖아요. 그러니깐 하나님은 항상 100% 옳으세요.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시는 거에요.
24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될까 하더니)
그때 보면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대리자급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대리자들인 그들이 이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생각 못하니깐 계속 일이 꼬여 가는 거에요. 인정이 해야 할 사도들을 인정하지 못하니깐 그 사도들과 대제사장들은 동종업계 종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이들은 유익을 구하는 단체가 아니잖아요. 제사장과 패거리들은 이미 꼬여서 정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을 수가 없어요. 제 설교 어디에 마음이 한 번 꼬여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제 설교가 안 들리게 되는 거에요. 안 들린대요. 그래서 오늘도 어떤 이단으로 간다는 자매가 있어가지고 제가 어젯밤에 급히 다른 데도 아니고 이단으로 간다고 하니깐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단으로 가면 안돼요. 가지마요. 요즘 제 설교가 은혜가 안 된다고. 대제사장들이 사도들이 무슨 말을 해도 한 번 꼬였어요. 안 들려요.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들으니깐 같이 듣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이 너무 쉬운데 기득권을 못 내려놓으니 끝이 없는 분쟁이 이어지는 거에요. 뭔가를 내려놓지 못할 때 말씀이 안 들려요. 그것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왜 말씀이 안 들리는가를.
25-26절.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라)
사도들은요, 자기 생각이 없어요. 즉시 순종해서 새벽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니깐. (풀려놨는데 가서 가르치고 싶겠어요? 그것 때문에 잡혀갔는데 그런데) 새벽에 가서 전했다고 하잖아요. 사도들은 말씀을 가서 전하고 있는데 같은 시간에 이쪽은 잡아 죽일 회의를 하고 있잖아요. 한 쪽에선 계속 가르치려 하고 한 쪽에선 계속 잡아 죽일 궁리만 하는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거에요. 사도들은 즉시 즉시 잡혀갑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르쳐요. 그때마다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내일 일은 남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가 맞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가르쳤더니 즉시 잡아오라는 명령을 또 기다리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생명의 말씀을 가서 전하라해서 전하러 갔더니 금새 잡으러 왔잖아요. 그래서 18절에도 옥에 갇혔더니 19절에는 끌어내시고 또다시 잡아오라고 해도 23절처럼 아무리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이 섰어도 하나님의 명령이 없으니깐 잡히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27절에 또 끌려가는 거에요. 그럼 우린 이럴 겁니다. 하나님 장난해요? 가지고 가실 거 주지나 말지. 이럽니다. 애써 임신이 되었는데 유산을 하면 데려갈 거 왜 주셔요? 이런 질문이 곳곳에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도 나를 잡아넣으실 수도 꺼내실 수도 있는 분이에요. 이거를 믿으셔야 되는 거에요. 사도들은 이것을 믿는데 대제사장들은 안 믿잖아요. 자기생각이 꽉 차있잖아요. 베드로를 잡아넣어야지만 될 거 같아요. 따라오는 감정이 시기, 질투, 두려움. 이런 것들이 다 따라오고 있잖아요. 그러니깐 성전 맡은 자와 부하들은 사도들을 체포할 수가 없는거죠. 왜냐하면 백성들이 부하들을 돌로 칠까봐. 왜냐하면은 백성들은 지금 사도들과 교회를 칭송했잖아요.(13절)
그리고 16절에는 다 나음을 입고 실제적으로 많은 영적 육적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을 만약에 강제적으로 끌고 가면 다 돌로 칠 기세에요. 그러니깐 체포할 수가 없어요. 가실까요?하며 동행을 요청했는데 사도들은 이때 또 스스로 응해서 가는 거죠. 억지로 하는 건 없어요. 성도들은 가자면 가고 있자면 있는 것이지, 안 돼, 안 해 절대 이런 얘기 쓰면 안돼요. 절대 안가, 절대 가 이런 거 없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냐 백성들 때문에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으니깐. 사도들이 반항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순순히 따르는 것은 이미 그들이 경험한 것처럼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보호하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나님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 그러므로 27절 3번째 체포 전에 이 지도자들을 보면 사도들을 두려워한다기 보다 사도들이 베푼 이적을 본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거죠. 이 사람들은 표적에 관심이 없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열매를 맺어 가면 그것이 나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거에요. 결국 나를 도울 사람은 목회자 세미나 목사님들에게 하는 얘기가 장로님들이 돕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살아난 한 사람이 나를 돕는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나 때문에 살아난 한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목사님을 도우실 거다. 제가 지나온 인생을 생각할 때도 정말 보잘것없어도 나 때문에 살아난 한 사람이 결정적일 때 도왔어요. 저는 이 간증할 게 참 많아요. 그러니깐 이렇게 점점점 확신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우주를 위협하는 세상이 힘이 세보이지만 실제는 다들 두려워하고 있어요. 두려워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두려움이 없겠어요? 하나님이 점점 차지하는 만큼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데. 저도 아직 물론 두려움이 있죠. 그러나 종류가 많이 달라졌죠.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도 그들도 다 하나님 손 안에 있는 거에요.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여러분의 옥에서 꺼내주신 일이 있습니까? 꺼내주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지금 잘 실천하고 있습니까?
# 우리 유명한 초대교회에 김익도 목사님의 성령의 세례 설교 중에 나오는 설교입니다. 예수의 원수는 미신자보다 신자 중에 많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자보다 성경을 잘 아는 자 중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불세례를 받으니 아내가 잘못할 때 전과 같은 완력으로 제지할 것이나 아내를 향하여 울게 되었습니다. 교인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눈에서 눈물이 흘러서 견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나의 마음에 불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게 성령인 것이지. 미신처럼 성령을 생각하지말라는 긴 설교가 있었습니다. 자기 영광을 받으려고 성령을 말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받았기에 목이 떨어지게 되었어요. 원색으로. 사도바울도 성령 받음으로 모든 고생보는 핍박, 환란, 끝으로 죽음까지 당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도 성령받음으로 목이 떨어지게 되었고 주로 목이 떨어진다고. 베드로도 성령받은 걸로 시험을 받아 죽음의 쓴 잔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환란을 받게 됩니다. 무서하지 마세요. 오늘 본문이 그렇잖아요. 고통이 옵니다. 죽음이 옵니다. 그렇지만 성령받은 사람은 이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에 기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결론이 성령 받고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할렐루야.
성령의 핍박은
세 번째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기에 당하는 것입니다. (27-29)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 이름, 이 사람이 누구죠? 예수님이죠. 생각해보세요. 분명히 감옥에서 사라졌잖아요. 그러면 사도들을 만나자마자 어떻게 거기서 나왔냐 물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기적을 하나도 안 묻고 왜 법정에서 하지 말라는 거 했냐. 왜 권세에 불복했냐 묻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난 것 관심없어요. 앉은뱅이가 일어 난 것 관심 없어요. 어찌하든 사도들을 죽이는 게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너희에게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명령을 명령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심기에 거슬렸기 때문에 이 이름이라고 계속 폄하하면서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고 십자가의 이름이에요. 예수의 이름이 영향력이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이 들어있고 잘 사셨고 잘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에 예수님의 인격이 들어가길 원해야 해요. 그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니깐 복음이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되고 이 사람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대적해서 죽였잖아요. 예수의 이름을 가르쳐서 우리에게 죄 값을 묻고자 하는 것이라고 그들 스스로 실체를 드러냈어요. 무슨 말인가. 예수님을 죽여놓고 왜 나보고 죽였다고 하냐고 반론합니다. 진짜 자기가 죽였는데. 그래놓고는 왜 우리한테 예수님 죽였느냐고 묻고 그 죄값을 돌리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박 논리에 공감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 다 그럽니다. 정치가 그렇고 전부다 그래요. 재판이 그렇고. 인본적인 논리가 죄에 대해서 전부 인정을 안 하니깐 기득권을 침해당하면 못할 일이 없는 게 인생입니다. 이 세상 모두는 죄를 지어놓고 왜 죄 없는 나보고 그러냐. 나는 죄 지은 적 없다, 이게 주제가입니다. 모두가 그래요. 그러니깐 여기서 다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해요. 내가 공평하고 아니 그게 아버지 때문이지 나 때문이야. 이게 맞습니다.
그래서 29절.
(29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지 말라고 했어도 아무리 반박을 해도 예수님이 내주하신 자와 안 하는 자의 차이는 너무도 큽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면 무서울 것이 없잖아요. 그러나 권세들이 권세자들이 하나님과 반하는 것을 지시할 때는 하나님께서 순종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권세에 불순종하는 게 마땅한 게 있죠? 그러나 하나님 믿는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는 질서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책임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할 때.
[적용해보세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세상권위에 순종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불순종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불순종을 밥 먹듯이 하는 여러분들 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깐 이 교통질서 신호 잘 지켜야 하는데 저도 설교를 앞두고 제일 안 되는게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빨간 불에 오기도 하죠. 괴로워요. 천국 갈 때 이거 책임 물으실 거 같아요. 눈물이 나는데 제가 늦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항상 저는 모든 게 중요한 일이잖아요. 설교 하는 일.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합니다.
성령의 핍박
네 번째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하여 당해야 합니다. (30-32)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대제사장이 이 사람 예수의 피를 왜 우리에게 돌리고자 하냐. 그랬더니 베드로가 뭐라고 하냐면, 그럼요. 우리가 어떻게 돌리겠습니다. 하지 않고 맞다! 너희가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합니다. 얼마나 정말 분하겠습니까? 예수를 우리의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 하는거에요. 예수님은 이 세상 살인 죄가 해당되지 않는 게 다시 살아나셨잖아요.
그래서 그걸 좋아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신 이유는 31절에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이제는 회개하고 찔림을 받으라는 거에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은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사함을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라는 거죠. 예수님을 죽인 자들에게도 지금 또한 사랑의 구원이 제시되고 있어요. 이 복음 듣고 회개해야 하는데 백성 중에 찔려서 어찌할꼬 하는 사람이 수없이 생겨났지만 지도자들은 들을수록 강퍅해져 갔어요. 그러니깐 아무리 기도해도 아직 때가 안 된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수 있어요. 이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지금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 돌아오고 있는거에요.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영적 교만인 거에요. 자기가 대제사장이라는 거에요. 가까운 사람, 교회 안에서 직분자들이 열심히면서 가장 무서울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총리인 요셉의 후손이 가장 가까운 유다의 후손을 가장 괴롭히는 후손이 된 것이죠.
32절.
(32 우리는 이 일에 중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이 일은 뭔가요? 예수그리스도를 왕과 구주로 높이신 일에 관한 설교요, 말씀을 가리키는 거죠.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그 말씀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라는 거에요. 이처럼 대제사장의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효과적으로 함께하심으로 증인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주신 성령이 한 성령이기 때문에 모두 증인이에요. 성령받은 것은 그러므로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순종과 동의어에요. 성령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이 그들을 통하여 계속계속 효과적으로 복음의 증인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담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지금 누군가에게 핍박 받는 모습을 옆 사람이 보고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에 증인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핍박을 받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전하는 복음이 진짜야 하며 증인이 되어줄 수 있겠냐구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기다리면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 공동체 고백이에요.
우리는 교단이나 나라보다 당장 내 옆에 아내, 자녀가 가장 힘들죠. 토 까놓고 남편이, 아내가 다 죽인다고 하는데 나라 걱정하게 생겼어요? 맞죠? 이분은 늘 아내를 핍박하는 남편 목자님이에요. 교회 나오기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장에서 몇 년 있다가 나오기도 했는데 처음부터 왔는데 워낙 오래되었으니깐 할 수 없이 미안해서 억지로 목자가 되셨어요. 그런데 여전히 아내를 핍박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핍박하는 것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래도 정말 할 수가 없어서 목자가 되셨어요. 할 수 없어서 목자를 드렸어요. 오늘 목자모임에 제가 들어가는데 그러면 저에게 큐티 한 번씩 내야 되거든요. 이 분이 큐티를 보냈어요. 신명기 28장 36절에서 57절 질문: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당하는 고난이 나의 불순종임이 인정되십니까? 결혼을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합니까? 본인의 질문입니다. 글쎄 이제 어려서 가난했고 한 번도 풍족한 적이 없기에 늘 주신 것에 만족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말씀들었어도 제물을 우상 삼았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누구는 믿지 않아도 잘 사는데 나는 믿어도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없어 보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고 행복은 돈이기에 아내에게 돈 벌어 오지 않고 무슨 봉사냐며 무시와 조롱을 주고 내가 편하자고 문제가 생기면 이혼하자고 입에 다 말말을 달고 삽니다. 세상 유혹에 잘 넘어가고 믿음은 뒷전이고 돈이 생기면 웃는 저의 모습이 있습니다. 결혼을 행복에 올려 놓고 보니 아내에게 교회는 무슨 교회, 돈 벌어오라고 아내에게 막말하고 상처주고. 내가 편하자고 이혼하자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잘 난 것도 없이 맨날 이혼하자고 해요. 우리 아내님이 얼마나 훌륭하신대) 내가 하고 싶은 거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나도 죽고 가족도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목사님이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화가 나면 전혀 생각이 전혀 안 났다가 제정신이 되면 이해가 되는 수준입니다. 내가 살아야 가정이 살아난다고 했는데 아직 제가 믿음으로 서있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나라에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니 아내가 믿음으로 서있어도 제가 방해를 하는 가해자입니다. 나의 치사한 돈 우상과 욕심으로 인해 아내를 배려하지 못하는 남편임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싸운 사건을 부부목장에 나눴고 부목자님의 처방이 아이를 붙잡고 이혼하겠다고한 부분에서는 권찰에게 사과를 하라고 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부부목장 카톡방에 이틀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큐티 나눔을 올리는 숙제를 부목자님이 내줘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목장에 목자가 이상하면 이렇게 부목자님이 기도해줘가면서 숙제도 내드리고 그래서 우리는 목자도 부목자도 다 똑같은 한 성령입니다. 이제는 이혼이라는 말은 안하기로 적용하고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잘 해석받고 중보기도 받으며 살아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분은 아내도 너무 용모비하도 많이 하시고 그 다음에 정말 들을 수 없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그렇지만 바트 이분이 교회를 나왔잖아요. 그러고 양육을 받았잖아요. 그리고 숙제를 해서 내잖아요. 그리고 이런 회개를 하잖아요. 그러니깐 내가 이 분 한테 목자를 임명하면서 제가 공개적으로 뭐라고 얘기했냐하면, 우리들 교회 영치가 몇 명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집사님이라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해도 못 알아듣기 때문에 자신은 화도 안 나고 죄가 없다고 해요. 모든 건 아내 탓인 거에요. 그러니깐 오늘 이 집사님, 아내집사님은 개 탔어요. 남편이 믿음이 없는데 제가 읽어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 제일 안 되는 사람을 읽기로. 왜냐하면 저도 핍박을 받아야 하니깐. 하기로 했는데 집사님이 몇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거 같은 개 탄 날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집사님이 숙제 해줘서 너무 귀엽고 이쁘고요.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우리 교회 나오는게 어디에요. 누구는 오늘 떠난다고 하는데. 낫지 않아요? 교양 있게 떠나는 것보다 영치라는 말 듣고 있으면 우리 함께 천국가지 않을까요? 할렐루야?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박수를 격려해주세요.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핍박은 교양, 권력의 시기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핍박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하여 당해야 합니다. 오늘 성령의 핍박하니깐 무섭잖아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굉장히 기쁜 찬송을 부르려고 하는데요.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거에요. 제가 설교할 때마다 날마다 울어서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암에 걸렸다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이분이 암에 걸렸다고 하는데 암이 걸린 날은 설교를 어떻게 했나. 이것을 막 찾아봤다는 거에요. 그랬더니 암 걸린 날은 한 방울도 눈물을 안 흘린다는 거에요. 목사님이 진짜구나 했대요.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핍박에 기쁘게 할렐루야 부르세. 이 찬송가를 부르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할렐루야
1.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수많은 심령 멸망 하겠네
그 누가 갈까 주의 복음 들고 생명을 구원하는 곳으로
2. 구원의 문은 넓게 열렸으니 십자가 군병 일어 나거라
너희의 힘을 하나로 뭉쳐서 죄악의 쇠사슬을 끊어라
3. 왜 너는 멸망 길을 가려느냐 주 음성 듣고 응답 하여라
널 구원하려 예수 죽었으니 생명의 이 복음을 전하라
4. 온 천하 만민 승리의 그날에 영광과 찬송 주께 드리네
속죄함 입어 구원 받았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부르세
(후렴)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기도제목
성령의 핍박이 정말 두려운일이 아닙니다. 기쁘게 할렐루야 부를 일입니다. 내 속에 기득권이 있다면 보게 해달라고. 내려놓게 해달라고. 시기와 질투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여러분의 옥에서 꺼내주셨다면 이제 잊지 말고 사명 감당하게 해달라고. 세상 권위를 분별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 권위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지금 받고 있는 핍박이 있다면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차별금지법, 낙태법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십시다. 주님 한 번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하기
주님 나라 안팎으로 교회 안팎으로 집안 안팎으로 우리가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 어려운 일 한 가운데 나의 기득권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날마다 예수님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면서 이 모든 일의 어려운 일에 중앙에서 제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런 기득권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기위해서 성령의 핍박으로 다스려주길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을 압니다. 하루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되는데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순종하기 원하고 참으로 핍박을 잘 받아서 복음의 증인이 되길 원하는데 주님, 이렇게 날마다 눈물 흘려 기도하지만 제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여러분 한 사람이 회개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 또 정말 많은 사람도 아니고 한 사람의 회개를 위하여서 제가 성령의 핍박을 받길 원합니다. 주님, 제가 말로만이 아니라 그렇게 사도들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 길을 걸어갈 때 그 한 사람이 돌아와서 성령 세례를 받고 이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줄 믿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세워주시고 여러분이 돌아오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거침돌이 않도록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써주시옵소서.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우리가 날마다 하는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시옵시고. 차별금지법과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이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12. 1.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
일시 2019. 12. 1.
장소 오랜만에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우지현, 이지민, 이은영
나눔 목자언니가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요약해주셨고 그중 나눔 질문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 나누어보았습니다.
지현 : 열등감, 시기에 대해서. 예수님 잘 믿는 가정에서 잘 사는 자녀와 스펙이 좋은 사람을 시기한 적 있었다. 회사동기가 갖은 방법을 다 써서 의사와 결혼을 하였다. 좋지 않게 보았는데 그 동기 얘기를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 동안 자주했었다. 나 자신을 속일 만큼 부러운 게 있었던 것 같다. 김의환 목사님과 달리 나는 망한 티 안 내고 교양 있는 척 해왔던 것 같다. 현재 무너질 수밖에 없게 일어난 일들이 내 삶의 결론임이 인정된다. 하나님의 개입을 느끼며 하나님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억지로 버텼던 부분에서 편안해지는 게 살아남을 느낀다. 현재 내게 온 무기력 기쁨으로 회복되길 소망한다. 양육 주차별로 느껴지는 게 있다. 성령충만! 갈등충만!
목자언니 : 수련회 등록했니?
지현 : 네!
목자언니 : 현재 우리 목장식구들이 처음과 같이 환경이 달라진 것은 없는데 나누는 것이 진짜임이 느껴진다. 너희의 증인이 되고 싶다.
은영 : 하나님 믿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과 단절되면서 세상과 비교대상이 없어지니 교회 안에서 잘 믿고 열심히 일하는 지체들에게서 열등감이 있었고 나를 제외하고 열심히 힘든 일하는 가족들에게서 눌림이 있었다. 그래서 졸업 후 1년 반 동안 취업에 도취되어 가족 구원은 잠시 잊은 채 구직 활동을 했으나 하나도 되는 것이 없으니 무기력이 오고 가족들에게 피해의식이 생겨 갈등이 생기고 점점 제자리를 지키는 것에 회의감만 들고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5월에 아버지의 암 사건이 오고 11월 아버지께서 위독해지시면서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의 사로잡혀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이끌어내시어 위독하신 아버지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셨다. 위기의 때에 목자언니를 비롯하여 가장 가까운 지체들이 함께 해주어 아버지에게 목사님 심방을 권면했고 11월 26일 아버지께서 목사님의 심방을 허락해주셨다. 아버지께서는 28일 목사님의 말씀과 간증을 들으시고 영접기도를 따라하시고 아멘 하셨다. 할렐루야. 위기의 순간에 지체들이 함께 해주어 그들의 기도와 또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으로 아버지께서 복음을 듣고 영접하셨다.
그 후로 정말 아버지께서 좋아지셨다가 다시 안 좋은 모습을 보이셨는데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담대하게 말씀을 읽어드리고 찬송가를 불러드렸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여 작은 적용들을 했더니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이 후 일들을 기막히게 인도해주시고 감당하게 하신 것 같다. 12월 7일 아버지께서 소천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으로 담대하게 하셔서 위로예배와 발인예배를 인도해주셨고 이에 감동받은 엄마와 동생이 오는 주 12월 15일 주일예배 장례 위로 시간에 인사드리러 온다고 한다. 할렐루야. 정말 아버지의 사건이 우리 가족 구원의 사건임을 믿는다. 이 사건에서 정말 하나님만이 하셨다는 게 너무 느껴져 할렐루야가 나온다. 정말 아버지 사건에서 아쉬운 것이 많은데 아버지 사건에서 정말 말씀으로 시마다 때마다 회개의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사 아버지를 구원에 이르게 하셨으니 정말 나를 평안하게 해주셨다.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의 확신을 주셔서감사하다. 또 아버지께서나와 가족을 구원으로 이끄신 최고의 공로자임이 인정이되었다.아빠가 천국 가셔서잘 누리고 사실 것을 믿고 헛된 것들은 다 내려놓고 남은 가족과 나의 구원을 위해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