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11. 24. 성령의 표적 사도행전 5:12-16
서론.
여러가지 표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목자는 아내가 너무 화나게해서 획 운전했는데 살려주셨다. 아나니아 ampbull 삽비라 사건을 통해 두려움이 생겼는데 이 경외함을 바탕으로 더 부흥하게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위함으로, 이번에는 표적을 나타내신다.
-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셨다.
11/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을 통해 진리를 확증하게 하시려고 사도들을 통해 나타내셨다. 사탄 충만과 성령충만이 충돌 시, 어찌해야 하는지 보여주신다.
사도들이 잡혔을 때 성령의 기도로 풀려났다. 그때 기도가, 풀려나는게 아니라 자신의 손을 통하여 예수 이름으로 표적이 드라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였고, 응답되었다.
왜? 성령의 역사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 제사장. 사두개인이 아니라 어부출신 제자들로부터 시작됐다. 가난뱅이 앉은뱅이가 일어나니까, 다들 사도들을 가두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풀어주시고 성령의 설교를 또 하게 하셨다.
주님이 생전에 제자로 만든 자는 천 명이 채 안되었다. 그런데 사도들은 더 큰 수 만명의 결과를 얻는다. 이렇게 주님의 복음이 세계 곡곡 퍼져야하는데 주님이 손수 할 수는 없으니, 주님이 성령의 능력을 주실 수 밖에 없었다. 사도들을 통해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었다. 성령의 표적은 부지런한 손, 깨끗한 손을 통하여 미 완료적(계속적)으로 일어났다. 그게 율법적, 도덕적 깨끗함이 아니었고 인도적인 것도 아니었다. 단지 회개의 손이었다.
어찌할 꼬 하는 회개의 손이었다. 그게 참 중요하다. 상처와 미움에서만 벗어나는게 목적은 아니다. 성령의 이끌려서 과거의 나, 내 속의 우는 아이를 보라고. 그것만 있다면 상처가 남탓, 상처쫓는 기도와 남탓의 기도는 성령의 사역이 아니다. 성령의 표적은 성령이 효과적으로 나를 비쳐주시니 남탓이 아니라 심각하게 내 죄를 직면하고, 내게 회개가 일어나지 않으면 기쁨이 없겠구나 하며 항상 예수님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사역. 표적은 그 기적이 예수님 자체가 되는 게 표적이다. 병 나음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이 보이게 하는 성령의 표적이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음
나에게 연단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 내가 성령을 받으면 내가 효과적으로 계속 진리의 성령으로 비춰주신다. 마누라탓 남편탓이 아니라, 인정하기 싫었던 ampbull 그동안 보기 싫었던 내가 보이는 것.
시댁과 남편으로 연단 받으니 - 그렇게 혼자 착해서 지옥갈뻔하다가 - 나의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치사함. 악함. 교만이 드러났다. 그 죄가 똑같구나. 심각하게 직면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못하는 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쁨이 이제는 절대 없는 것. 너무 괴로우니 예수님으로부터 나가는 것. 성령님은 나를 직면하는 것으로 항상 예수님께 인도하신다. 늘 남탓 부모님 탓 하나님 탓. 이것이 기적의 손에만 관심이 있고 절대로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새 영으로 내 탓을 하게하는 나를 보게하시는 것 - 그것이 성령의 표적이다. 회개의 리더쉽으로 거듭난다.
고난가운데 니 안의 죄를 봐라 백성들은 사도들을 통하여, 대 제사장관 전혀다른 리더쉽을 맛보게 된 것. 그동안 훌륭한 목사님들을 만나오며, 우리들 교회 리더쉽을 보게한다.
날 양육시키는 그 리더쉽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길 축원한다. 여러분들의 손을 통하여.
목장보고/ 선택적 함묵증으로,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아이. 4학년인데, 그 과정 중 발표하는 일이 있음. 그 아이가 말 안함.
적용/ 여러분은 회개의.손을 통하여 회개한 기사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손이 부지런합니까, 따뜻합니까 더랍습니까?
-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다 모여야 합니다.
12/ 카리스마와 영적권위는 예루살렘의 대규모 개종을 가져왔다. 강한 역사로 인해 사도들을 잡아들였을 때, 성령 공동체가 함께 모여 표적과 기사가 예수이름으로 이뤄지게해달라는 합심 기도를 한 바 있다. 한 마음되기가 가장 큰 기적이다.
공동체에서 베드로 요한이 어부인데 잡혀갈 줄 알았다. 하며 조롱 하기 쉬웠을 텐데, 마음이 나뉘지 않았고 그 성령의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았다. 상처받아 굉장히 베드로 사도들처럼 거칠다. 한편 대단한 분들은 교양이 있어 인정해야한다. 내가 믿음 있다고, 돈 있으면 스펙있으면 다냐? 하면 다야^^ 하는 사람은 여기 없다.마음을 같이 하여반복구절은 아주 주목해야 한다.
믿는 사람은 한 마음이 되어야겠다. 믿음의 공동체가 최고의 공동체기에 이때는 되었다. 초대교회 표저꽈 기사가 베드로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사도들의 손. 백성 공동체. 등등 공동체의 모습들이 여럿 선 보였다. 이런 공동체는 모이기를 기뻐한다. 한 뜻을 품었다.
코이노니아가 17단어로 변역했다. 마음을 합해서 하나로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코이노니아는 결코 진공관속에서 가르칠 수 없다. 삶이라서 이론으로 가르칠 수 없다. 성부성자성령의 코이노니아. 교회 기사와 표적을 구한다면 믿는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고자 할 때 표적과 기사를 이루어주셨다.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놓고 성도가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납니다가 목세의 표어다. 우리들교회가 초대교회같다.
적용/ 한 마음이 안되는 곳은 어딥니까? 가정 ampbull 목장 ampbull 회사?
-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십니다
13-14/ 감히 그들과 상종도 안하게도 하도록 했다. 나머지가 있다. 나머지는 상종하는 자가 없다. 믿는 자들의 모임에 그들 나머지는 참석하지 않았다. 아교풀로 붙이는 것 = 떨어질 수 없다. 진짜 믿음은 아교풀로 붙임같이 붙어있다. 믿는 다고 하면, 교회를 나와도 나머지가 있다. 여기 감히라는 표현, 감히 상종치못한다는 것. 인정은 하지만 가까이는 가지 않겠다 = 교회 다니며 볼건 다 봐도 그 표적의 목적인 예수가 정작 믿어지지 않아 주께 나아가기 어렵다. 믿음의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으니 그는 기적과 표적이 없다. 주께 나아가지 못하니까. 안 믿으니까. 내 탓을 하는 것이 부드러운 마음이다. 나를 죽인 원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예수님의 공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된다(내탓이오)
내 속의 악을 보는 것은 너무 아픈 일이다. 크게 찔려 아파하는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주께로 나오는 것이다. 주께로 나오는 자가 많게 되는 것.
그들이 적대적인게 아니라 불신자로부터도 칭송받게 된다. 이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라가고싶은데, 대 제사장들이 적대적이니(최고로 치는 대제사장) 또 아나니아 삽비라에 대한 형벌도 한 몫한다. 상종은 감히 못해도 칭송은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적용을 너무 잘한다. = 인정해도 가까이하기는 또 싫다(누릴 게 많으니)
같지 않아 상종이 안된다. 아무리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도, 그들에겐 아교풀같은 끈끈한 공동체가 없고 그들 자체로도 공동체를 피해간다. 말씀이 안들리니까, 자기에게 싫은 소리만 하니 인간적으로. 끼리끼리. 당한사람 끼리끼리. 분한 자들 끼리끼리. 결국 믿는 자와는 상종하지 않게 된다.
즉, 같은 교회에 있지만, 교양있게 하다보니 평행선/막을 쳐놓고있다. 그래서 끼리끼리라서 그들 끼리 그 막을 모른다. 성령받은 자에겐 그런 부분이 보이기에 안다.
가까이 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사도들의 모임. 결국 그들은 주께로 나아가기보다 이 세상이 좋은 것이다. 그래도 사도들은 이적을 너무 베푸니, 사도들을 욕하거나 비난할 순 없었다.
여집사가 큐티만 해대니 amprarr 지금은 여자목사라니까. 이제 인정하기가 어렵다. 이런 모델이 없었으니 같이하기가 어려웠을 것. 한 마디로, 칭송하지만 감히 가까이하기는 싫은 것이다. 나머지 그들에겐 문화충격이 있어, 함께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목장에서 자기얘기를 오픈 하는 게 굉장히 충격인데, 왜 안하던 것을 하는가.. 우리들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히 찬성하기는 어려워도 칭송해왔다는 것 아닐까.
16년 간 설교해왔는데, 설교 한 번 잘못했다고 매도해야할까요? 이제 더 신뢰를 받아야겠는가. 한마디로 신뢰하지 않으면, 설교 한 편에도 와르르 무너진다. 그것이 목사님의 탓이 된다. 그러므로 기도가 필요하다.
적용/ 아교풀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나를 뒤에서 칭송하는 것 같습니까, 뒷담화하는 것 같습니까?
- 주께로 하는 이가 더 많습니다.
15/ 주께로 나오는 이가 더 크다고 미완료로 말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자가 아닌,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아졌다고 얘기합니다. 다들 부담을 갖고 나온다해도, 진정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람을 붙여주신다. 상종하는 사람이 50이면 주께로 나오는 사람이 51이면, 모두가 욕하고 모두가 뭐라하면 이상한 것 맞다. 그래도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사람이 더 많기에, 지금까지가 기적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얘길 하질 않았는데, 언제나 있어서 지금까지도 곤고한 목사님. 주께로 나아오는 역사는 매주일 일어났다. 둘이 싸워도 결론은 우리들교회 욕이다. 영혼구원문제기에 정말 애통하다. 그리고 사명이 아니면 목사님이 욕먹을 일이 없다.
목사님이 우는 이유를 생각해본적있는가.. 어둠속복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충돌이 안 일어나겠나. 복음이 확실할 수록 더 그렇다.
공부가 아니기에, 결국 죽어지고 썩어지는. 놀라운 표적을 이제야 알게 된다. 지난 주 추수감사절에도 수 많은 영접자가 있었고, 그것은 목사님의 공이 아니다. 수 많은 자가 영접기도를 함은 전적으로 성령의 힘이다.
16/ 행한 표적과 기사로,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도 나을것으로 생각했다. 문자적으로는 교주가 따로없다. 병고침만 일으켜 물위를 걷는 경우가 너무 많지만, 전폭적 신뢰를 통해, 기사를 행해간다. 영적소경이 육적소경보다 무섭다.
그러나 다들 영적소경이 나이스할때 누가 불쌍하다 생각하나. 그런데 그건 잠깐이다. 보지 못한다고하니, 예수님을 만났는데,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 훨씬 큰 죄악이다. 그러나, 맨 처음 개발도상국에는 병고침이 필요하기도 한 것.
종류 장르별로 성령의 열매를 알고 입문했으나 갈 길이 멀다. 그때마다 역사가 다르다
예수를 믿으면 다 병고침 받는다. 병원도 당연히 가야한다. 의료기관이 없었기에 그때는 다 사도들을 찾아갔을 뿐이다. 복음은 전파를 위해서 그 때 치유를 위해 강력했음을 알고있다.
적용/ 목장이 바뀌기를 기다립니까? 여러분의 지경이 넓어집니까 그대롭니까 좁아집니까?
[기도제목]
2019. 11. 24.
길태수
- 잘 기다릴 수 있도록
- 목장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안식
- 한 주 잘 붙어있기
- 내탓이오를 그만 할 수 있도록
- 심플하게 죄를 볼 수 있도록
박성찬
박영준
김주형
- 아무생각없이 한 주 잘 보낼 수 있도록
- 목장 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