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1. 3 주일예배>
일시 2019. 11. 3 주일
찬양 한숨을 바꾸셨네 ┃ 성령이여 임하소서 ┃ 불을 내려주소서 ┃ 밀알 ┃ 내 삶은 주의 것 ┃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암송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명기 15:4-5)
성 령 의 은 혜
본문 사도행전 4:32-37
설교 김양재 목사님
성령의 기도는 성령의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의 설교를 듣고 여러 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가 은혜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늘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은혜가 늘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인데 이렇게 가장 결론이고 가장 쉬운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은혜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성령의 은혜, 은혜의 공동체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첫째로, 재물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32)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돈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재물을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요? 재물이 정말 치사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의 인심도 광(*살림살이나 그 밖에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 또는 그 건물과 시설 예) 쌀광=쌀둑)에서 난다고 했는데. QTM부터 우리들 교회까지 힘든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서로 자기 죄를 보고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깐 재물 때문에 치사스러운 일은 비교적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딱히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자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통용(通用)한다고 하지만 같은 교회를 다녀도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이 있고 달동네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통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도곡동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달동네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차원이 다르대요. 도곡동 쓰레기는 우리 집에 다 가져다가 써도 되는 거래요.거기는 서로 앞 다투어 가져온다고 하는데 통용의 의미가 정말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점검을 거쳐야 하는데 무조건 이런 구절을 보고 통용하고 전부 내놓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처럼 핍박이 오고 성령이 충만할 때에는 재물에 대해서 소유권을 하나님께 드리기가 쉽습니다. 다 가난하니깐. 훨씬 쉬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진짜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셨기에 인류 최대 위기였기 때문에 또 인류 최대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여명(黎明)이 밝아오면 새벽이 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재물의 가치관이 바뀔까요? 돈은 똥이라고 그러던데. 맞나요? 지난 주 동류가 되어 성령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했습니다. 위협에서도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 동류가 기도하니깐 성령이 충만해서 오늘 첫 구절 믿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믿는 무리가 참 중요합니다. 믿는 무리의 특징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하네요.요즘 광화문, 서초동에 각자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바라바를 버리고 예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분별입니다. 가장 어렵지만 욕심을 버리면 쉬운 것이 분별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당시에는 3년이나 따라다녀도 분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니깐 갑자기 구약을 줄줄 꿰면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설교를 하니깐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기 때문에 사도들이 설교를 하고 그 말을 듣는 백성들 중에서도 구원 얻는 자가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만 해도 4대 째 모태신앙이지만 구원을 받으니깐 구원을 얻으니깐 새사람이 되어서 설교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믿는 무리는 구원 얻은 무리고.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이런 무리고. 31절처럼 성령충만한 무리가 바로 믿는 무리인 것입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은 눈만 찡긋해도 서로 딱 통합니다. 익하면 칙하길 바래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재물의 가치관은 돈이면 다입니까? 돈이 똥입니까? 아니면 가치중립입니까?
그러나 실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조차도 이런 믿음의 공동체가 계속 지속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의 은혜
두 번째, 큰 권능의 부활의 증언이 계속 되어져야 합니다. (33)
우리가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의 설교 이후에 42-47절까지 모든 물건을 통용했다.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의 기도 후에 서로 통용했다고 나옵니다.
통용하려면 성령의 설교와 성령의 기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33절입니다.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큰 권능으로 증언하니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재물의 가치관이 바뀌려면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언해야 하는데..
느헤미야 12장 44절처럼 재물을 나누게 하려면 지도자(대제사장)는 삶이 따르며 회개하며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가 십일조를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지도자한테 절대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신약의 베드로도 회개해서 통곡했던 거 기억하시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큰 권능의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큰 권능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해야지 큰 은혜를 받아 재물을 나눌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33절을 빼고 보면 32-37절까지는 33절을 빼면 구제 이상,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면은 왜 32절에 이 구절이 들어가지?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통용하고 나누다가도 말씀을 들어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 들어갔습니다. 33절이 참 중요합니다. 물질을 나누다가도 우리는 계속 큰 권능의 설교, 증언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의로 구제하고 안심합니다. 그러면 다른 세상 종교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설교로 큐티로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내가 죽인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듣고 나누어야 합니다. 큰 권능으로 증언해야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런 부활의 설교가 계속 선포되어질 때 은혜 공동체가 되어 재물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2장 36절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렇게 결론을 내렸더니 다들 찔려서 어찌할꼬 했잖아요? 말발굽이 내 가슴을 찔렀습니다. 찔려서 어찌할꼬?하는 설교를 어찌하여 감동의 설교라 할 수 있겠어요? 감동의 설교라 표현하면 안됩니다. 성령의 설교는 회개케 하는 설교입니다. 그것이 바로 큰 은혜입니다. 은혜의 설교는 회개케 하는 설교인데 나 감동 받았어는 설교를 폄하하는 것이고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설교입니다. 큰 은혜의 설교입니다.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용서해준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위해 값을 치러주시고 속량해주시고 죽어주실 수 있느냐 말입니다. 나를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실 수 있냐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내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잖아요. 내 것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것은 너무 많은데 내 것은 쬐끄만 하니깐 드리는 것도 죄송합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내가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어요. 내가 예수님을 죽였는데 주의 것은 다 내 것이래요. 너무 엄청난 선물을 받으니깐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의 신부랍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깐 내 아버지가 내 신랑이 엄청나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이제 정신을 차리면 신부로서 품위를 지켜야 되잖아요? 갑자기 영부인이 되었는데 내가 아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나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내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32절로 돌아가면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했는데 이게 바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내 것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것은 내 것.
이것이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마음으로 믿는 무리는 이 같은 신앙으로 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니깐 은혜는 구제가 아닙니다. 불교에서 적선(積善)하는 것처럼 헌금도 시주하는 것처럼 자기 옳음으로 자기 의로 남는 돈으로 자기 돈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공동체에서도 한 마음이 되기 어렵습니다. 보세요, 십일조를 안 하고 헌금을 안 하는 사람은 목장에서 계속 인본적인 얘기를 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십자가 지는 마음이 한 마음의 신앙고백이고 그것이 큰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우리가 받은 은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에 가난해도 차별 없이 믿음의 무리인 거지 나사로는 이름이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죠. 그래서 성경에는 어떤 부자의 이름이 없습니다. 부자 청년, 탕자 부자. 이름이 없습니다. 그만큼 재물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해야 됩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자가 남는 돈 일부 내고 구제하고 할일 다했다. 이게 나누는 게 아닙니다. 세상은 이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이렇게 큰 권능의 설교로 선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언하니는 마땅히 치러야할 것을 갚아버리다. 빚을 갚다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데요, 즉 베드로는 증언하는 일을 갚고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는데 누가에게 사도들의 복음 전파는 고마운 것이 아니고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빚진 자이니깐.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14절에서,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고백했습니다. 복음에 빚을 진 사람은 사도들뿐이겠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 사망으로의 부활을 믿어 구원을 얻은 자들은 모두 복음 전파라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십자가가 주제였는데 사도행전에 들어와서는 부활을 참 많이 증거 합니다. 큰 해를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의 큰 은혜를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아야 재물의 나눔이 이어집니다.이것이 나눔의 핵심입니다.
내가 십자가의 주님을 못 박았다.
이 고백 없이는 재물의 나눔은 시주하고 적선하고 똑같습니다.
[적용해보세요]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것이 감사해서 큰 권능의 부활 간증을 날마다 하나요? 한 번하고 말았나요? 아직도 못하고 있나요? 모든지 일원론입니다.
성령의 은혜
세 번째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니다. (34-35)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교회도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하나님은 어떻게 이렇게 자신 있게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하실까요? 가난을 저주로 여기고 계속 동정하여 구제만 하면 동정 받는 자, 하는 자 다 은혜공동체가 아니라 사회단체와 같은 구제 공동체일 것입니다. 그러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구제 공동체가 교회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구원 때문에 살아가는데 그러니깐 32절에 통용하니가 나오고 33절에 말씀을 또 들으니깐 땅을 팔게 되는 적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적용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깊어지니깐 이런 땅 파는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너무 중요합니다.
☆★☆ 오늘 큐티 말씀, 암송구절입니다.
신명기 15장 4-5절을 보면은,
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명기 15장 이 말씀의 성취가 오늘 사도행전 4장 34절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약속하고 꼭 지키세요. 그런데 은혜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왜 병자들이 없겠어요? 왜 아픈 사람들이 없겠어요? 그런데 가난한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구속사로 생각해야 되는 거에요. 하나님은 가난으로 우리를 훈련시키려는 원대한 뜻이 있으신데 그런데 무조건 돈으로 돕고 무조건 돈으로 안 돕고 하면 안 되는 거에요. 가난을 축복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의 통로로 여길 때 그러면 가난한 자를 당연히 나보다 낮게 여길 때, 믿는 우리가 되어서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한 사람 때문에 부패한 엘리 제사장에 이스라엘을 지켜주셨기 때문에 정말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기도하기 때문에 그를 존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유한데 기도가 나와요? 허벅지를 꼬집어도 기도가 안 나와요. 가난한 사람은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눈물로 기도가 나옵니다. 그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무조건 존경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지켜주시는 겁니다.
모든 것이 말씀의 시각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그 명령을 지키기만 하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약속을 하시잖아요. 그 한 사람 때문에 복을 받으리라. 복된 공동체가 되는 게 그 눈물의 기도하는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 그 교회를 지키는 겁니다. 이게 구속사적인 시각입니다. 그 가난한 사람이 어떤 큰 그릇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은 동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인본적으로 구제 받으면 열등감이 들어가고 하는 사람들은 무시합니다. 동정 받는 사람.
그러나 초대교회는 모두 성령의 은혜를 받은 정말 특별한 공동체였습니다. 가시적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잠깐 보여주셔야 하나님 나라가 진짜 있다는 것을 알잖아요? 생각건대, 현재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으니깐 염려 말고 이 땅에서 잘 싸우다가 오라고. 그래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잠시 보여준 것입니다. 이 땅에 이런 완전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없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는 원어에 코이노니아라는 교제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제 차원의 얘기가 아닙니다. 진정한 교제는 위로부터 온 선물을 은혜로 받아야만 가능한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가난한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를 생각하면 가난한 분 많지만 이렇게 큐티 열심히 하고 목장에서 말씀을 늘 지켜 행하는 것을 서로 나누고 듣고 가르쳐 지켜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가 그런 얘기입니다. 가난하지만 가난한 자가 없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가 육적인 복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주시니깐 지금까지 도곡동과 달동네의 갭이 비교적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있는 자, 없는 자가 골고루 모여서 믿음으로 행세하는 교회. 믿음만 있으면 대접받는 교회. 그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기까지 오게 하시지 않았나 싶어요.
가난한 자가 있지만 가난한 자가 없어요. 가난한 자가 있지만 가난한 자가 없어요. 믿습니까? 병자가 있지만 아픈 자가 없어요. 믿습니까?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된 공동체가 되어서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오늘 큐티에도 나왔습니다. 우리들 교회는 십자가 뿐 아니라 부활을 증거할 일들이 계속 일어나길 바랍니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만 오라고 했는데 와서 다들 하나님의 시간과 생각에 순종했더니 승리했다. 이런 간증이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졌지만 앞으로도 계속되어지길 바랍니다.
# 공동체 고백.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빚을 갚은 우리들 교회 초대에 유명한 간증이에요. 이것은 <<복있는 사람은>>에 나오는 간증인데 16년 전이라 다들 잘 모릅니다. 한 집사님이 일만 달란트 빚진 것과 같이 인간으로서는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그런 빚을 가졌습니다. 빚이 8억이었는데 3억은 법정을 드나들면서 소송을 해서 이겼습니다. 5억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이 분을 소개하면, 중학교 선생님이고 남편은 시도 쓰고 너무도 부드러운 남자로 S대 나온 엘리트였어요. 그런데 그 남편이 알고 보니깐 결혼하고 보니깐 여자 관계가 복잡하고 결혼을 하고나서도 정식으로 2-3번을 결혼을 했대요. 그러니깐 결국 사업을 하다가 중학교 선생님인 아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도장을 다 찍게 했는데 그분이 망하고 간통으로 고소를 했지만 졌어요. 이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애들 둘을 맡았는데 8억이라는 빚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넘어 온 거에요. 물이 철철 새는 셋방에 두 딸과 살면서 배신감에 시달리면서 월급은 계속 차압이 되고 이 분이 자살을 몇 번이나 생각하던 중에 저와 극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정말 자살할 일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애들 둘은 계속 다른 집사님들이 봐주고 재수생 큐티 모임에 일년을 한 번도 빠짐없이 와봐라. 그러면 살 길이 열리다고 제가 약속했습니다. 제가 하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거니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한 주도 안 빠지고 그 말씀을 들었어요. 그런데 빚은 갚아지지 않은데 말씀이 들어가니 인생이 달라졌어요. 학생들을 계속해서 전도해서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빚이 없어졌습니까? 안 없어졌어요. 이게 일,이년 만에 빚이 없어졌다면 우리들 교회에 안 왔을 텐데 빚이 있어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죠. 아주 고마운 빚이에요. 굉장히. 금세 해결되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5억 빚을 생각하면 가위에 눌리겠는데 계속 월급이 차압 당하니 살아야 겠어요? 죽어야 겠어요? 화가 복이 된다고 그 학교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차압한 것을 모은 것이 9천 3백만원 정도가 되는데 교장선생님이 이 선생님이 너무 안되서 공탁해야 할 것을 별단예금으로 모아놨던 거에요. 5억의 공소시효가 끝나면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주려고 했대요. 그게 감사에 걸린 거에요. 소송에서 어쩌구 저쩌구 해도 자기는 1억 정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자기는 교장선생님이 그런 말을 계속 해주니깐 1억 정도는 나한테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빚 갚기는커녕 이제는 1원도 없어지게 생겨 완전히 땅끝까지 가는 내리막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 중보기도 특공대 첫 번째 사역으로 기도를 무지무지 하게 했어요. 그때 주병수 변호사님을 수련회에서 만났는데 돈 드려 소송하지 말라. 반드시 패소다. 이건 그냥 싸그리 갚아야 한다고 결론을 냉정하게 내려주셨어요. 채권자를 만나서 탕감 받는 방법 밖에 없다고. 그런데 만나 주나요? 마지막 법원에 가는 날인데 그날 기적적으로 만나졌습니다. 가서 말한 거에요. 그동안 차압된 월급이 있다. 이러고 저러고 다 떼면 7천만원 밖에 없는데 7천만원으로 5억을 탕감해주시라고 내 살아온 얘기를 하고. 내가 애들 데리고 살고 있는데 모르고 도장 찍은 죄로 8억의 빚을 갚고 있는데 정말 이걸 탕감해주시라고. 그 얘기를 100번 1000번하고 댕겨도 성사가 되지 않았어요. 그때 월요일 3시 반까지 법원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채권자들이 기적적으로 모여서 탕감서류에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우리가 동류가 되어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진짜냐 가짜냐 단두대에 올라간 것처럼 아마 입있는 사람은 다 기도했을 거에요, 이 주 변호사님께서 3시 반 전에 나와서 그 서류가 적법한지 봐주시고 3시 반에 제출하고 완전히 탕감을 받은 거에요. 할렐루야.
말씀대로 명령을 지켜 행하며 큐티한 후로는 이제 차압되고 나머지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살았지만 이분이 그때 이후로 절대로 빚을 지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명령대로 사는 것, 적용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다 안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적용을 보세요. 그런데 목자 중에 빚으로 대출로 집 사고. 빚 갚는 것보다는 그 와중에 차 바꾸고. 남이 타다 준 외제차니깐 얼마든지 중고로 사면 그만이다. 적용으로 빚을 갚아야지. 우리가 글쎄 이 집사님을 돈으로 도왔어요? 돈으로 도왔어요? 이 8억을 말씀으로 탕감을 받은 것이죠. 3억도 소송하러 다닐 때 목장에서 처방하고 이러고 저러고 해서 진정성 있게 하니깐 3억을 탕감 받았는데 몇 년을 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가난한 사람을 돈으로 도와주고 받고 하다보면 그 공동체는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부다 내가 돈으로 도와줬다고 생색을 내고 열등감 느껴 공동체에서 살 수가 없는 거에요. 너와 나는 똑같은 죄인이다라는 입장에서 말씀을 지켜 행해야지 복된 공동체가 되어서 가난한 자가 없게 되는 겁니다. 누구도 여기에서 생색 낼 수 없습니다. 신앙고백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 받는 것이 주님이 값을 치르고 우리를 구속해주신 것과 똑같다 입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말씀으로 목장에 가서 한 마디 한 마디 듣는 게 8억을 탕감 받는 비결이 되는 것이죠. 지나고 보면 이 선생님은 여자선생님인데 얼마나 의롭고 이론이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거기에 불신이고 율법주의에 경건주의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려면 이 정도 고난 가지고는 안 돼. 이 정도의 고난이 왔어야 했어요. 그러고나서도 딸들이 아프기 때문에 아직도 그 센 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초대교회에서는 너무나 감사했는데 이제 중대교회로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은 알맞은 고난으로 다뤄주셨다고 생각해요.
# 제가 대학부 교사를 몇 년 했지만은 편한 사람보다 비판하고 센 사람이 선교사 목사들이 되었어요. 성격이랑 전혀 상관없어요. 부드러운 사람은 제가 목사 할 줄 알았어.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하세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목사를 하지? 이런 게 성경 이야기이고 사도행전이야기입니다. 성품이 좋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어서 사는 거에요. 성격이 좋아서 사는 게 아니에요. 성격이 못 되어도 살아야 해요. 믿음이 있어야 돼요. 서로가 진정한 부활이 증거가 될 때 큰 권능이 따르듯이 집 가져다 주면은 만족했겠어요? 돈 갖다 주면 만족했겠어요? 그 분이 8억을 누가 줘서 했다고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을지 몰라요. 어떤 것도 그 선생님을 도와주는 방법이 못 됩니다. 복음 줘서 감사한 거에요. 복음을 주려고 하니깐 시간이 필요한 거에요. 돈으로 갚을 수도 없지만은 이것을 무조건 땅 팔아가지고 도왔다. 네 집팔아서 도와라는 말이 아니에요. 갚을 길 없는 큰 은혜가 임해서 사도들처럼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언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알았습니까?
[적용해보세요]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는 적용이 있나요? 가난을 훈련으로 주셔서 감사하다는 간증이 있나요? 그렇게 힘들어서 왔는데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들로 산으로 다른 여자로 서치를 하고 맨날 인터넷에 들어가서 여자를 만나고 그러시면 아니되어요.
성령의 은혜
네 번째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36-37)
이것이 참 중요한 거에요.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교제는 서로 통용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코이노니아와 같은 말이라고 했는데 이 코이노니아를 잘하는 사람 중에 바나바를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높이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레위족이라고 언급을 하셨는데 왜 언급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죽인 사두개인, 대제사장들은 모두 다 레위족이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을 생각할 때 바나바같은 레위족도 있다는 겁니다. 일부러 레위족이라고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레위족속인데 땅이 있다는 거에요. 원래 레위족속은 땅을 가질 수 없잖아요. 그런데 포로기에는 율법이 사문화 되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바나바가 비록 레위인이었지만 큰 사유재산을 모으는데 법적 제약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어쨌든 바나바가 원래부터 믿음이 출중했다?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갖고 있던 땅을 바치고자 하지 않았을까? 내것이라고 끼고 있다가 사도들의 성령의 설교를 듣고 사도들의 성령의 은혜가 임해서 레위의 특권을 내려놓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만도 택자라고 생각합니다.목사들이 평신도에게 은혜받기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본문만 보면 생각이 됩니다.
레위인으로서 밭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렸습니다. 때가 되어서 정말 필요할 때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때라~할 때.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니깐. 바칠 때임을 알고 아낌없이 주련다하면서 적용한 것입니다. 가지고 사도들 발 앞에 두니라 했는데 가지고가 부정 과거형. 일회적으로 주저함 없이 한 번의 결단과 행위로 이루어진 신앙의 실천이었습니다. 그 값을 가지고 땅 판 돈에서 일원도 안 빼놓고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교인들 1만 9천명의 걸인들을 부양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렇게 자발적인 헌금자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거에요. 그것을 생각해보면은 우리가 빚지고 환란당하고 원통한 자들이 모였는데 우리는 자발적인 것 빼고는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부족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깐 바나바의 고향과 이름과 위로자라는 별명이 성경에 언급되는 어마어마한 영광을 바나바가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11장 24절에 보면,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이렇게 착한 사람인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인데. 모두가 바울을 살인자라고 배격했는데 바울을 소개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자기가 훨씬 레위족으로서 뭐가 있었는데. 그런데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자신은 빠지는 위로자도 맞고요. 사도들이 그를 위로자라고 불러줬습니다. 사도들의 위로자이니깐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천국가면 다윗보다 훌륭한 사람이 요난단이 있잖아요. 여호수아보다 훌륭한 갈렙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바나바가 있습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기가 참 어려운데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을 신뢰하고 신뢰해서 밭 판 값을 사도들 발 앞에 두었습니다. 사도들의 눈 앞에 두지 아니하고 발 앞에 두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둔 것입니다. 그것은 35절에서도 보면 성도들도 발 아래 두었어요. 바나바도 발 아래 두었다는 것처럼 초대교회는 자기 이름을 내주지 않아도 모두 사도들을 믿고 사도들의 눈도 안 마주치고 다 발 아래 바쳤습니다.
35절에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하였는데 필요를 따라는 필요한 것 만큼 만 공급되었지 헌금이 많다고 하여서 한 사람한테 많이 준 게 아닙니다. 아주 정확하게 어김없이 그러나 필요한 만큼 반복적으로 구제가 이루어졌다는 거에요. 누구는 헌금을 한 번 딱하고 산으로 들어가면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이것을 때마다 나누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이것을 사도들이 잘했다는 겁니다. 우리 맨 처음 예수 믿으면 내 마음대로 나눠주다가 다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나눠 주는 것도 얼마나 성숙해야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나눠주는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 목자들이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서 누구를 돕고 안 도울지를 비교적 분별을 잘하십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왼손이 한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그런데 내가 직접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 100%문제 생깁니다. 인간이 신앙고백이 없으면 그렇게 생색을 내려고 합니다. 받는 사람도 믿음이 없으면 받아서 시험 들어 떠나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도와주는 것 아주 경계해야합니다. 이 바나바가 바울의 동역자, 나눠주는 자, 위로 하는 자, 권고하는 자. 없는 게 없습니다. 이런 솔선수범한 초대교회가 했습니다.
출애굽 했을 때도 광야에서 다들 가난했지만 성막을 지을 때 자원해서 가져온 헌물을 넘쳤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너무 비축해서 솔로몬에게 넘겨줬는데 그때는 넘쳤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살고 못 살고는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충만할 때 모든 것이 넘치는 인생이 됩니다. 서로 가난한 사람이 없고 모두 통용해서 내 놓을 때 억만금을 내어놓는 것보다 위로와 안식과 치유가 되는거죠. 다른 사람의 고난을 날마다 오픈 할 때 다 성경을 보니깐 그 오픈을 다 소화해내는 거에요. 그러면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니깐 도저히 아까운 것이 없어지는 것이 이것이 초대 교회의 역사입니다. 말씀으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죽으면 천국가자. 이렇게 왔습니다.
나눠주려면 죽음에 이르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내가 빚 안 지는 게 남을 도와주는 비결입니다. 나부터 잘 살아야합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이용해서 사도들에게 땅 팔아서 내 발 앞에 가져오라고 하면 땅 팔아서 내 발 앞에 가져오라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공산주의이고 이단입니다. 요즘 원색적으로 그렇게 돈 가져오라고. 오히려 시간 당 시급을 지급하면서 성경공부하러 오라고 고집하는 것. 이것도 다 함부로 쓰는 거에요. 다시 말하지만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다 팔아서 구제하고 산에 가면 믿음이 좋은 것일까요? 사유재산을 관리하면서 늘 때마다 나눠주려고 너무 힘든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일까요? 때마다 다르겠지만 그러나 무조건 다 팔고 들어오라고 하는 곳이 있으면 그런 곳은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길거리에 나 앉아 남들에게 구제받는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 마가의 다락방이 있었기에 기도회도 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가정을 내놓아서 처소를 썼을 것인데 팔아버렸으면 어떻게 될 뻔 했어요? 문제는 이 4-50평을 살아도 늘 나눔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20평을 살아도 30평, 30평을 살아도 40평. 평수가 넓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소유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40평을 사는 사람보다 20평을 사는 사람이 부자인 것입니다. 부자는 자기만 바라고 내 것만 바라는. 우리들 교회가 고난 중에 있을 때 한 평 반 방에서 해도 너무 좋았는데 이제 먹고 살만해지니깐 집도 주시고 하니깐 다들 계속 뭐먹고 사나, 얼마가 더 있어야 하나, 노후를 걱정하면서 더 큰 집을 가야 한다고 주로 그 생각을 하게 된다는 사람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이 너무 좋아 오픈을 못하고 어떤 분은 너무 초라해서 못하고. 여전히 집을 물질로만 보는 가치관이 없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물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집에서 초대교회처럼 왕성하게 사람을 살리셔야 하는데 아직도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세상 가치관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내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정말 함부로 어떤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제가 집에서 큐티모임을 하다보니깐 30년을 그랬습니다. 1주일을 드나들고. 부자도 같이 오다보니깐 제가 냉장고 하나 바꾸려고 해도 내 돈 가지고 사도 남들이 실족할까 수없이 생각을 했습니다. 차 바꾸는 것도 수없이 생각해서 큐티모임 온 사람들은 제가 6개월 1년 적용한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병원을 하면서 가난한 산모를 많이 봤습니다. 입원비가 없어서 아이를 낳자마자 퇴원하겠다는 거에요. 그 귀한 아들을 낳았는데 입원비 없어서 퇴원한다는 거에요. 그런 것을 8년쯤 봤습니다. 극히 가난한 사람들이 산부인과가 많이 와요. 그런 병원이 잘된다고 해요. 낳고 가니깐 또 오잖아요. 그래서 목회하면서 그런 시간들은 저를 함부로 살 수없게 하는 시간이 되게 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누군가 실족할까 염려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점점 더 염려하는 시간들이 되게 하시네요. 성령 받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렇게 살 수가 없는 거에요. 제가 30년 넘게 혼자서 집 예쁘게 꾸미고 살지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제가 아끼고 살았어도 저희 집은 30년 동안 큐티 장소로 아무도 안 알아줘도 하나님 발 앞에 드렸어요.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깐. 아낌없이. 13개 모임을 통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살아났는데 정말 30년 동안. 상상이 가세요?
제가 뭘 사겠어요? 교회 개척도 집에서 하게 하셨어요. 마가의 다락방 아닌가요. 아낌없이 집이 쓰임을 받았어요. 큐티를 시작하고나서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 때문에 그냥 늘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믿음의 분량만큼 생각했어요. 보이기 위해서 적용도 하다가 그런 것들이 몸에 익어서 교회 개척후에도 목회에서도 똑같이 적용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잊어버린 한 적용 때문에 나는 잊어버렸는데 우리들 교회를 초대 교회같은 부흥을 주시고 축복하여주신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들 집을 열어서 나누는 연습을 목장을 통해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를 드리고. 제가 30년 넘게 한 것처럼 여러분도 계속 목장에서 50년 넘게 나누어서 자손대대로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성령의 은혜를 누리시고 축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헌금을 알아주기 위해서 합니까? 신앙고백으로 합니까?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은혜는 재물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큰 권능의 부활의 증언이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니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재물을 내려놓는 성령의 은혜라고 해요. 정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가 놀라워. 은혜가 아니면 내가 설 수 없는 것이죠.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주 찬양 주 찬양 내 마음 다해
주 찬양 주 찬양 내 생명 다해
2. 은혜 아니면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기도제목
여러분의 재물 가치관이 하나님의 소유로 바뀌도록 기도를 하시고. 나같은 죄인 살리신 것이 감사해서 큰 권능의 부활 간증을 날마다 할 수 있기를 기도하시고.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가난을 훈련으로 주셔서 감사하다는 간증을 하게 해달라고. 헌금을 신앙고백으로 할 수있도록. 성령의 은혜로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동성애를 위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또 여러분의 모든 삶을 놓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성령의 은혜 공동체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 세상 제일 마지막에 돈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맞습니다. 재물의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훈련을 하기 전에는 정말로 바뀌기가 어려운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러므로 큰 권능의 부활 증언을 하고 들으면 나누며 가지 않으면 저희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고백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 소유이지 하나님의 소유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 그러나 생각건대 현재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이 잠깐인데 아직도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모든 부분들이 많습니다. 재물 뿐 만 아니라 내 시간, 내 감정 이모든 것들이 주님의 소유인데 성령의 은혜대로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하나님의 타임스케줄에 따라서 주님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정말 나를 나타내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복된 공동체에서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하셨으니.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은혜로 이 나라를 지켜주시옵시고. 정말 동성애를 위하여서 동성애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낙태법이 통과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번 주는 우리 목장 전원출석하였습니다. ^^한수진 목장 기도제목입니다.
은영 : 일을 그만두었는데 낙심하지 않고새로운 일 잘 알아볼 수 있도록.하루하루잘 살아낼수 있도록.
지현 : 무기력 한게 나아지긴 했는데 양육자가 상담 추천해줌. 둘 다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안해본 것에 대한 두려움. 엄마 간호하면서 3년간 지쳐간 것 같다.
남아있는 그루터기가 되기 위해 먼저 회개하고 먼저 잘 서있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잘 서있을 수 있도록.
수요일 엄마 병원가심. (원래 다니시던 병원) 엄마 꼭 가실 수 있도록.
예진 : 남자친구 교회에 데리구 올 때 남자친구에게 말씀이 잘 들리고 복음이 잘 받아질 수 있도록. 좋은 직장 구할 수 있도록(잘 맞는 곳) 한 주도 턱관절 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월요일 :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자료받기.목요일 : 삼성병원 진료 받을 것)
지민 : 지민이 친구 자영이가 오늘 교회에 나와 새가족 등록을 하였는데 교회와 공동체에잘 정착할 수 있도록.
수진언니:남자친구가 우리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지금 회사가 엄청 바쁜데 혈기 안내고 잘 일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