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11. 3. 성령의 은혜 사도행전 4:32-37
서론.
성령의 기도는 성령의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선물 = 성령. 성령의 마지막단계 = 은혜다. 은혜는 기독교인들이 늘 받았다 한다. 늘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인 은혜. 결론이자 쉬운것이고 가장 어려운것이기도 하다.
특별히 은혜의 공동체에 대헤 나눠보자.
- 재물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32/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돈이 있다.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치사하면서 광에서 난다고 하는 돈. 큐티하고 자기 죄를 보면서 가니 그래도 우리 교회는 재물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딱히 없다. 서로 통용한다하며, 같은 교회다녀도 타워펠리스에 사는 이가 있고 또 달동네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교통이 어렵다. 도곡동쓰레기와 달동네는 쓰레기부터 다르다.
통용의 의미가 무엇일까. 점검을 갖춰야하는데, 통용하고 무조건 내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초대교회처럼 어렵고 가난할 때는 하나님께 내놓기가 좀 쉬웠다. 또 진짜 예수님이 실제로 오셨고 죽었던 증거가 있었다. 돈은 똥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했었다. 위협에서 피함이아니라 담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할 동료를 주셨다. 믿는 무리를 주실 때, 한 마음 한 뜻이 된다고 한다.
광화문 - 서초에도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기를 애쓴다. 예수를 죽일 때도 한 마음 한 뜻이었는데. 무엇이 맞고 틀릴까? 분별이 중요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삼년 따라다녀도 몰랐던 구속사가, 구원을 보고서는 바뀌었다. 구원 구하고 얻는 자가 많이 생겼다.
사 대째 모태신앙에 교양파에서도 구원얻으니 새사람되었던 목사님. 믿는 무리는 구원을 얻는 무리고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무리고, 31절처럼 성령 충만한 무리다.
한 마음 한 뜻이라는 것은 눈만 뜨면 한 뜻이다
적용/ 재물의 가치관은 돈이면 다 입니까? 돈이 똥입니까? 가치중립입니까?
그러나 실제 초대교회에서도 이런 믿음의 공동체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왜그럴까?
- 부활의 증언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3/ 성령의 설교 이후, 47절 이후 모든 게 통용했다하고, 또 성령의 기도 이후 통용했다 그런다. 즉 설교와 기도가 중요하다.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바뀌었다.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언해야한다
32절에 들어가야할 통용이 왜 33절에 나오냐면, 설교와 기도를 하다가도 말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의로 구제하는 게 아니라 (다른 종교와 같다) 설교와 큐티와 말씀으로 듣고 나눠야 차이점이 생긴다. 큰 권능으로 증언해야 큰 은혜를 받는다. 은혜공동체가 되어 그제서 돈 가치관이 바뀐다.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너희가 죽였다 하니 찔렸던 군중들.
이 찔려서 어찌할꼬 하는 설교가 어떻게 감동의 설교겠는가? 성령의 설교는 회개케한다. 그것이 큰 은혜다. 감동수준이 아니다. 자격없는 나를 구제해주신게 너무 기적이고 감사함으로, 큰 은혜다. 죄인을 사해준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자녀로까지 삼아주시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 = 하나님게 내꺼다. 그래서 드리는 것도 죄송한 마음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서, 갑자기 내가 죽였지만 또 내꺼라고 한다. 엄청난 선물을 받으니 믿어지지도 않는거다.
정신을 차리니 신부로서 품위를 지켜야 한다. 아무렇게 살 수는 없다. 이제 하나님걸 함부로 쓸수는 없다. 그래서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 amprarr 즉 신앙고백이다. 내것이 하나님거 하나님게 내거. 그러니 이같은 마음으로 믿는 무리는 이같은 신앙고백으로 한 마음이 될 수 밖에 없다. 은혜는 구제가 아니다. 헌금도 시주하는 것 처럼 자기 의로 옳음으로 남는 돈으로 생각하면 공동체에서도 한 마음 되기가 어렵다. 십일조/헌금을 안하면 목장에서 인본적 얘기만 할 수 밖에 없다. 같은 마음으로 십자가 지는 적용이고 그것은 큰 은혜로만 가능하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기에, 차별없이 대할 수 있다. 한편, 부자는 바늘 귀로 낙타가 들어가는 수준이기에 이름이 없다. 성령의 이름이 임해야한다.
세상은 이런 부분을 전혀 모른다. 이 큰 권능을 선포해야한다. 증언하는 이는 마땅히 지는 것을 갚아버리다 뜻이다. 증언하는 일로 베드로는 갚고있었다. 사도행전저자-누가는 복음전파는 고마운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었던 것. 지혜있는 자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고했다. 빚진자는 죽음과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믿기때문이다. 즉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게 합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아야 나눔이 됩니다. 내가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았다. 이 고백없이는 재물의 나눔은 시주와 똑같다.
적용/ 나같은 죄인 살려주심이 감사해서, 부활의 간증을 날나다 합니까? 한 번 하고 마나요? 아직도 못하나요?
-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니다.
34-5/ 교회도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하실까? 가난을 저주로 여기고 계속 동정하고 구제만 하면, 동정 하는 자 받는자 그 곳은 은혜공동체가 아니라 사회단체같은 구제 공동체가 된다.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린 영혼구원이 우선이다.
33/ 말씀을 또 들으니 땅을 파는 적용을 하게된다. 죄인고백이 점점 깊어지니 땅을 파는 적용을 한다. 오늘 본문 신명기를 보면,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와 같다. 은혜 공동체 안에서 왜 가난한 사람이 없겠나? 왜 아픈자 병든자가 없겠나? 근데 없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구속사로 봤을 때, 하나님은 가난으로 훈련받기 원하는 원대한 플랜이 있으시다. 그 가난을 축복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훈련의 통로로 여길 때, 가난한 자를 나보다 낫게 여길 때, 믿는 무리가 되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 부유한데 기도가 나오는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은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가난한 사람을 교회에서 존경해야한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 말씀의 시각에서 나오는 오늘 시사점은, 그 명령을 지키기만 하면 amprarr 반드시 복 받는다고 약속하신다. 그 한 사람때문에 복을 받으리라 한다. 복된 공동체가 되는 게 눈물흘리는 공동체다.
가난한 이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구제받으면 열등감이 드러나고, 동정 하는 사람은 무시한다. 초대교회는 모두 성령의 은혜를 받은 특별한 공동체였다. 가시적으로 보여야 하나님 나라도 증명되었기에.
현재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올 영광은 영원하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것. 통용은 구제차원이 아니다. 진정한 교제는 위로부터의 선물을 은혜로 받을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반드시 복 받는 것이다. 가난해도 큐티 열심히 하고 목장 지키고, 듣고 가르처 지켜 행하는 것 = 신명기. 가난하지만 가난한 자가 없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자존감을 주시니, 도곡과 달동네 갭은 비교적 없었나 싶다.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다. 있는 자 없는자 모여도 믿음으로 대접받는 원칙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우리들교회에서 십자가 뿐만아니라 부활의 증거가 계속 일어나길 바란다. 와서 다들 하나님의 시간 생각 방법으로 승리했다는 간증이 계속되어졌지만 마르지 않기를 기도한다. 가난하나 가난하지 않고 빚을 갚는 초대교회가 되기를.일만 달란드 빚진 것처럼 인간적으로 평생 못 갚을 빚이 있었다. 법정으로 3억은 해결해서, 5억은 해결이 안되는 상태였다. S대 남편, 중등교사였던 집사님. 그런데 남편은 첩만 여럿이었던 것. 남편이 망하고 간통으로 고소했으나 졌고, 헤어진 후 8억 빚이 넘어온 것. 배신감에 원통해서 괴로웠을 때 목사님을 만났다. 자살을 계속 하려고했는데, 재수생 큐티모임에 오게해서, 돌봤다. 초기 우리들교회 초기에는 이런것을 다 봐줬다. 1-2년 넘게 빚이 계속 안 없어졌고 계속 왔다. 전도해서 다들 왔다. 그 빚이 안 없어지니 계속왔다. 바로 해결되는게 좋은것만은 아닌 것 같다.
소송으로 1억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빚은 커녕 밑바닥을 제대로 쳤다. 그때 중보기도 첫 사역으로 무지 기도했다. 변호사님은 패소할게 뻔하니, 채권자를 만나 탕감해달라는 방법 밖에 없다고. 그날 기적적으로 만나졌다. 얘기를 했다. 월급이 차압되었고, 7천만원 밖에 없다고. 이걸로 탕감해주면 안되겠냐고. 호소했다. 그랬는데, 그 이야기를 100번 천번 해도 모임이 성사가 안되었는데, 이 채권자가 기적적으로 다 모여 탕감서류에 도장을 찍어줬다.
우리가 동료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기도했다. 우리들교회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단두대에 올라간 것 처럼. 이 변호사께서 적법한지를 또 세시반에 와서 검토해주고 제출에 성공했고 탕감됐다. 월급이 차압되고 쥐꼬리로 살았으나 그때부턴 절대로 빚지지 않았다. 적용이 너무 중요하다. 하나님은 적용을 기억하신다.
빚이 있을 때, 어떤 적용을 해야하는 지. 정말 알아야 한다. 우리 교회는 돈으로 돕지 않았고 말씀으로 도왔다. 목장에서 진정성있게 하니까 3억 탕감했었고, 이제 5억은 말씀으로, 동료로, 역사로 하니, 당장은 아니었으나 말씀을 지켜행하니 복된 공동체가 되어 가난하지 않게 되었다. 신앙고백이 되니, 하나님이 값을 치루고 아무도 생색낼 수 없게 해주셨다. 지나고보면 여선생님은 얼마나 의가 많고, 또 불신결혼이기에 인본주의가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너무 필요한 알맞은 고난으로 다루어주셨다.
편한사람보다 비판과 센 사람이 선교사가 되었다. 하나님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목사가 되었지? 하는게 하나님 역사다. 성격이 못되도 믿음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진정한 복음이 증거 될 때 큰 권능이 따르듯, 그 선생님이 집 돈 있었으면 만족했겠나. 어떤 것도 도울 방법이 못 됐고, 복음을 주었기에 살아났고 복음이기에 시간이 걸렸다. 갚을 길 없는 은혜가 임해 부활을 증언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이제 이 간증을 듣는다.
적용/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간증이 있습니까?
그렇게 힘들게 왔는데, 또 들로 산으로, 다른여자로 쫓고. 여자를 만나고. 도피처를 찾지말자.
- 성령의 은혜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37/ 교제는 서로 통용한다 한다. 코이노니아와 같은 말. 바나바를 기억하신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레위족 언급이 있다.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 새두개인들은 레위족이다. 그들은 예수를 죽임을 생각할 때 바나바같은 레위족도 있다. 그래서 일부로 언급하지 않았을까. 또 이 레위중에는 땅가진 사람도 있다 한다. 원칙적으로 레위족은 사유 땅이 없어야 하는데, 많이 물러진 관행에 사유지를 가진 것 같다.
그 땅을 내 것아라고 끼고 있다가, 성령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것. 그것만으로 택자라고 생각한다. 레위로서 밭을 가지는 것이 걸렸다. 때가 차서, 필요할 때 많은 사람이 모여 이때라 할때. 지혜/타이밍에 아낌없이 주련다하고 적용했다. 땅을 던진 것. 사도들 발 앞에 두니라 = 이례적인 실천이었다. 그 값을 가지고, 땅 판 돈 일원도 안 갖고, 사도들 앞에 뒀다한다. 그 후로, 19000명 걸인을 부양했다한다. 자발적 헌금자가 엄청 많았다.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자가 모였을 때, 우리 모두가 자발적으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족하게 하지 않으셨다. 위로자라는 별명을 바나바가 얻게 되었다.
사행11:21에는, 바나바는 착하고 성령충만하다한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데, 바울을 소개하고 - 사두개인으로 배격한 때 - 레위족으로서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있고, 자신은 빠지는 위로자가 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의 위로자라고 별명이 붙었다. 천국가면 바울보다 훌륭한 여겨지는 바나바가 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기가 첨 어렵다. 사도들을 신뢰하고 발 앞에 두었다. 사도들의 눈 앞에 두지않고 발 앞에 두었다. 즉 하나님 앞에 두었다.
32절에도 성도들도 발 아래 뒀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을 믿고 눈도 안 마주치고 그냥 내놓는게 너무 쉬웠던 것 같다.
35/ 그들의 필요를 따라 공급했다는 뜻 같다. 헌금이 많다고 차등이있는 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공평하게 주었다고 한다. 때마다 나누기는 너무 어려운데 그게 가능한 때였다.
나눠주는 것도 얼마나 성숙해야 하는 지 모른다. 우리들교회 목자들은 분별로 도울 자, 또 타이밍을 분별한다. 직접 돕고 도우면 100% 문제가 생긴다. = 생색. 받는 자도 받았다 시험들어 떠난다. 내 맘대로 돕는 것 경계해야한다.
바나바는 솔선수범 그 자체다. 출 애굽시에도 광야에서 가난했지만, 자원한 헌물이 넘쳤다 했다. 다윗은 비축하여 넘겨줬는데 그때는 넘쳤다는 말이 없다. 가난할 때 내놓을 때 억만금보다 위로와 안식이 된다. 오픈을 소화할 수 있다. 치유가 일어난다. 저절로 아까운 게 없어진다. 초대교회의 역사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굶어서 천국가자는 모토로 살다가, 여기까지 왔다. 사도들에게 한 것 처럼 땅 팔아 내 발 앞에 가져오라고 남이 하면 이단이고, 공산당이다.
문제는 항상 4-50평에 살아도 나눔을 생각하는 이가 있고, 바라는 것만 30평 바라는 사람이 있다. 부자는 상대적이다. 부자는 자기만 바라고 내것만 바라는 이가 아니다. 고난중에 있을 때 1평 반에서 해도 처음엔 너무 좋았는데, 다들 뭐 먹고사나 얼마가 있어야 하나 하는 분들이 자꾸 많다. 어떤이는 너무 좋아 집을 오픈을 못하고 어떤이는 너무 초라해서 오픈을 못하고. 초대교회처럼 왕성하게 살려야 하는데, 아직도 세상가치관에 젖어서 어렵다. 함부로, 어떤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큐티모임을 했었는데, 부자도 가난한자도 드나드니 내 돈으로 뭘 어떻게 할지 몰랐다. 병원하면서 가난한 산모를 참 많이 봤다. 입원비가 없어 아이를 낳자마자 퇴원하겠다 한다.
그 사태를 8년쯤 보고는 극히 가난한 자들이 드나드는 곳은 계속 회전이 되었고, 목회에 그 경험이 많이 돌아봤다. 하나님의 소유라서 결정하기가 어렵다.
아낌없이 모임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오고 살아났는데, 30년간 그랬다. 무엇을 살 수도 없고 안살수도 없다. 아낌없이 집이 쓰임받았다. 큐티를 시작하고나서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 것 때문에 믿음의 분량만큼 생각해왔다. 교회 개척이후에도 똑같이 적용하게 하신다.
다들 집을 열어 나누는 연습을 목장을 통해 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다들 목장에서 자손대대로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합시다.
적용/ 헌금을 알아주기 원해서 합니까 신앙고백으로 합니까?
[기도나눔]
2019. 11. 3. 기도제목
안식
- 자소서 과제 학업적으로 잘 붙어 있을 수 있도록
- 성의껏 할 수 있도록
- 은혜를 구하고 한 주 살 수 있도록
- 우울의 굴에서 나올 수 있도록
구준호
- 일하는 데에 체력 지켜주시도록
- 일에 지쳐 생활 예배 잘 성수 지킬 수 있도록
길태수
- 한 주 회사 준수
- 이력서 잘 준비해서 꾸준히 넣는 적용
- 생활예배 성수할 수 있도록
조동민
박성찬
- 말씀 듣는 자리에서 최대한 붙어있는 적용 지켜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