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3 주일예배
성령의 은혜
[사도행전 4:32-37]
김양재 담임목사님
성령의 기도는 성령의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의 설교를 듣고 여러 단계를 거쳐 이제 마지막 단계가 은혜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늘 은혜 받았다고 하죠. 은혜는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인데 이렇게 결론이고 가장 쉬운 것이며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은혜, 은혜 공동체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1. 재물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32절]가장 마지막에 돈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재물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인심도 광에서 난다고 했는데 큐티엠 때부터 우리들교회까지 힘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서로 자기 죄를 보고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재물 때문에 치사스러운 일은 비교적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딱히 믿음이 좋아서라기보다 부자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은 교회 다녀도 타워팰리스 사는 사람이 있고 달동네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통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도곡동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달동네 쓰레기는 차원이 다르다고 해요. 도곡동 쓰레기는 우리 집에서 써도 될 정도라고 합니다. 통용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런 구절을 보고 무조건 전부 내놓고 통용하라는 건 아닙니다. 초대교회처럼 핍박이 오고 성령이 충만할 때는 재물의 소유권을 내놓기가 쉬웠습니다. 다들 가난하니까요. 그때는 진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셔서 인류 최대의 위기였기에 인류 최고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여명 밝아오면 새벽이 오잖아요. 어떻게 해야 재물의 가치관이 바뀔까요? 돈은 똥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맞나요? 지난주에 동료가 되어 성령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했습니다. 위협을 피하는 게 아니라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죠. 믿는 무리가 참 중요합니다. 믿는 무리의 특징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광화문이 있고 서초동이 있는데 각자 거기서도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있어요. 이스라엘에서도 한 마음이 되어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분별입니다. 가장 어렵고도 욕심을 버리면 쉬운 것이 분별이에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녀도 분별을 못하다가 성령이 임하니 갑자기 구약을 줄줄 꿰면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설교했습니다. 천하에 다른 구원의 이름을 주신 일이 없기에 그 말을 듣고 구원 얻는 자가 많아지게 됐습니다. 완전히 다른 새 사람이 되었어요. 저만 해도 4대째 모태신앙이었지만 구원을 받으니 새 사람이 되어 설교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는 구원 얻은 무리고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무리고 31절에서처럼 성령 충만한 무리입니다.
THiNK여러분의 재물의 가치관은 돈이면 다입니까? 돈이 똥입니까? 아니면 가치중립입니까?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조차 이런 믿음의 공동체가 계속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2. 큰 권능의 부활의 증언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설교 이후에 모든 물건을 통용했다고 나오죠. 그런데 오늘은 성령의 기도 이후에 통용했다고 나옵니다. 통용하려면 성령의 설교와 성령의 기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33절]재물의 가치관이 바뀌려면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언해야 하는데 지도자는 느헤미야 44장처럼 삶이 따르고 회개하고 즐겁게 하는 지도자가 십일조 하게 한다고 합니다. 십일조 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에게 절대적 책임이 있습니다. 베드로도 회개로 통곡하고 큰 권능의 새사람이 되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큰 권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큰 은혜를 받아 재물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33절을 빼고 보면 32절부터 37절까지는 구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왜 33절이 들어가냐면 통용하고 나누다가도 말씀을 또 들어야 통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나누다가도 큰 권능의 설교와 증언을 들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의로 구제하고 안심합니다. 그러면 다른 종교와 다를 게 없습니다. 공동체와 큐티로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끊임없이 듣고 나눠야 합니다. 이런 부활의 설교가 선포될 때 은혜 공동체가 되어 재물의 가치관이 바뀌는 겁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니 사람들이 찔려서 어찌할꼬 라고 했습니다. 찔려서 어찌할꼬 하게 하는 설교는 그저 감동의 설교라고 표현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설교는 회개케 하는 설교입니다. 그것이 바로 큰 은혜의 설교입니다. 그냥 감동받았다고 하는 건 설교를 폄하하는 겁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은혜가 감사해지는 설교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속량해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시나 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갑자기 내가 죽였는데 주님은 주님 것이 다 내 것이라 하시는 겁니다. 너무 엄청난 선물을 받으니 믿어지지 않아요.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아버지 내 신랑이 너무 엄청나서 정신 차리면 신부로서 품위를 지키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 것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는 겁니다.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하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내 것이 하나님 것, 하나님 것이 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마음, 이 같은 신앙고백으로 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는 구제가 아닙니다. 불교에서 적선하는 것처럼, 자기 옳음과 자기 의, 자기 돈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공동체에서 한 마음이 되기 어렵습니다. 십일조 안 하는 사람들은 목장에서 계속 인본적인 얘기만 합니다. 큰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이기에 가난해도 거지 나사로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부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재물을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큰 권능의 설교를 선포해야 합니다. 여기서 증언하는 이는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을 갚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빚진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복음의 빚을 진 사람은 사도들만이 아니라 예수의 사망과 부활을 믿은 사람들 모두 복음 전파의 빚을 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십자가가 주제였는데 사도행전에서는 부활을 많이 증거합니다.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큰 권능으로 증거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아야 재물의 나눔이 이뤄집니다. 내가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았다는 고백 없이는 재물의 나눔이 시주 적선과 똑같습니다.
THiNK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것이 감사해서 큰 권능의 부활 간증을 날마다 하나요? 한 번 하고 말았나요? 아직도 못 하고 있나요?
3.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니다.
[34-35절]교회도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 있게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라고 하실까요? 가난을 저주로 여기고 계속 동정하여 구제만 하면 동정 받는 자와 하는 자로, 은혜 공동체가 아니고 사회단체와 같은 구제 공동체일 것입니다. 그러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이 교회여야 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영혼 구원 때문에 삽니다. 말씀을 들으니 땅을 파는 적용을 하는 겁니다. 말씀의 적용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게 점점 깊어지니 이렇게 땅 파는 적용을 하는 거죠. 말씀은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신명기 말씀 15장 4-5절에서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약속의 성취가 오늘 사도행전 말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약속하고 꼭 지키세요. 그런데 은혜 공동체 안에 왜 가난한 자가 없겠어요? 왜 아픈 사람들이 없겠어요? 그런데 가난한 자가 왜 없다고 하실까요? 구속사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난으로 우릴 훈련시키려는 원대한 뜻이 있으신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무조건 돈으로 돕고 돈으로 안 돕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가난이 축복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의 통로라고 여길 때, 가난한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믿는 우리가 되어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겁니다. 고난 받는 한 사람 때문에 부패한 엘리 제사장의 교회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기도하기 때문에 그를 존경해야 하는 거예요. 부유한데 기도가 나오나요? 가난한 사람은 저절로 눈물로 기도가 나옵니다. 그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지켜주시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약속하시잖아요. 그 한 사람 때문에 복된 공동체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 가난한 사람이 어떤 큰 그릇이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가난한 사람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인본적으로 구제 받으면 열등감이 들어가고 구제하는 사람은 무시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모두 성령의 은혜를 받은 특별한 공동체였어요. 가시적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잠깐 보여주셔야 하나님 나라가 진짜 있다는 걸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으니 염려 말고 이 땅에서 잘 싸우다 오라고 잠시 보여준 겁니다. 이 땅에 그 이후로 그렇게 완전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는 말은 원어로 코이노니아라는 교제의 뜻이 있습니다. 구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정한 교제는 위로부터 오는 선물을 은혜로 받아야 가능한 겁니다. 하나님 명령을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가난한 자가 없게 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에 가난한 분들이 많지만 큐티 열심히 하고 목장에서 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서로 나눕니다. 가난하지만 가난한 자가 없게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가 육적인 복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 자녀라는 자존감을 주시니 지금까지 도곡동과 달동네의 갭이 비교적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있는 자 없는 자가 골고루 모여 믿음으로 행세하는 교회, 믿음만 있으면 대접을 받는 교회가 원칙이었기에 하나님이 여기까지 오게 하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가난한 자가 있지만 가난한 자가 없어요. 병자가 있지만 아픈 자가 없어요.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된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오늘 큐티에도 나왔잖아요. 우리들교회에서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을 증거 할 일들이 계속 일어나길 바랍니다. 와서 다들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에 순종했더니 승리했다는 간증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졌지만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8억 빚진 집사님]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빚을 갚은 우리들교회 초대교회 때 유명한 간증입니다. 한 집사님이 인간으로서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빚이 있었습니다. 빚이 8억이었는데 3억은 법정 소송으로 해결되었고 5억이 해결 안 되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중학교 선생님으로 남편은 S대 나온 엘리트였습니다. 그 남편은 알고 보니 여자관계가 복잡했고 결혼하고도 정식으로 더 결혼을 2-3번 했습니다. 사업하다가 아내 명의로 이리저리 도장을 찍게 했는데 남편이 망하고 간통으로 고소했지만 졌습니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 둘을 맡았는데 8억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습니다. 물이 철철 새는 셋방에서 딸들을 키우면서 배신감에 시달리고 월급은 계속 차압되고 자살을 몇 번이나 생각하던 와중에 저와 만나게 됐습니다. 아이 둘은 계속 다른 집사님이 봐주고, 재수생 큐티 모임에 한 주도 빠지지 말고 오면 살 길이 열린다고 제가 약속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은 목장에서 다 봐줬습니다. 이 집사님이 한 주일도 안 빠지고 그 말을 들었습니다. 빚은 안 갚아졌는데 말씀이 들어가니 인생이 달라졌고 학생들을 계속 데려왔습니다. 그때까지 차압한 걸 다 모은 게 9천 3백만 원 정도 됐는데, 교장선생님이 이 선생님이 너무 안 돼서 공탁해야 하는 걸 별단 예금으로 모아둔 겁니다. 그랬는데 감사에 걸렸습니다. 1원도 못 받게 된 상황이었는데 그때 우리들교회 중보기도학교에서 기도를 무지 했습니다. 변호사님을 만났는데 이건 백 프로 패소라며 싹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채권자를 만나 탕감 받는 길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원에 가는 길이었는데 채권자를 기적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월급 차압된 7천만 원으로 5억을 탕감해주길 호소했습니다. 애들 데리고 사는데 모르고 도장 찍은 죄로 이렇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백 번 천 번 하고 다녀도 그런 모임이 성사가 안 됐는데 법원에 서류를 내기 전에 채권자들이 기적적으로 다 모여 탕감 서류에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우리가 동료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기도했습니다. 마치 우리들교회가 진짜냐 가짜냐 단두대에 올라간 것처럼 입 있는 사람은 다 기도했을 겁니다. 말씀대로 명령을 지켜 큐티한 후로는 월급 다 차압되고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살았지만 이분이 그 뒤로는 절대 빚을 지지 않으셨습니다. 명령대로 사는 게, 적용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다 안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적용을 보세요. 그런데 목자 중에는 빚으로 대출로 집 사고, 빚 갚는 것보다 차 사고, 남이 타던 외제차 중고로 사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빚 갚아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남자들은 집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고 딱 싫어해요. 우리들교회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집사님을 돈으로 도왔겠어요? 이 8억을 말씀으로 도와 탕감 받은 겁니다. 3억도 소송하러 다닐 때 목장의 처방대로 진정성 있게 하니 탕감 받았는데 몇 년을 그렇게 하니 하나님이 역사하신 겁니다. 가난한 사람을 돈으로 도와주고 받고 하다보면 그 공동체 완전히 망하는 거예요. 전부 내가 돈으로 도왔다고 생색내고 내가 열등감 느껴서 살 수 없는 거예요. 너와 나는 똑같은 죄인이다, 이 입장에서 말씀을 지켜 행해야 복된 공동체가 되고 가난한 자가 없는 거예요. 신앙고백이 제일 중요합니다. 탕감 받는 것이 주님이 우릴 값 치르고 구속해주신 것과 똑같은 겁니다. 목장 가서 한 마디 한 마디 듣는 게 8억을 탕감 받는 비결이 되는 거죠. 지나고 보면 이 선생님은 여선생님인데도 얼마나 의롭고 이론이 많은지 몰라요. 거기다 불신이니 율법주의에 경건주의라 예수님 믿으려면 이 정도 고난이 왔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딸들이 아파 아직도 센 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알맞은 고난으로 다뤄주셨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부 교사를 몇 년 했지만 편한 사람보다 비판하고 센 사람이 다 선교사 목사가 됐어요. 성격이랑 정말 상관이 없어요. 부드러운 사람은 쟤가 목사할 줄 알았어?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하세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목사하지? 하는 게 성경 이야기고 사도행전 이야기입니다.
'성품이 좋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다 탈피하시길 바랍니다. 우린 믿음이 있어 사는 거예요. 성격이 좋아서 사는 게 아니에요. 믿음이 있어야 사는 겁니다. 그 선생님에게 집 갖다 주면 돈 갖다 주면 만족했을까요? 그분이 8억을 누가 줘서 부자가 도와줬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어떤 것도 그 선생님을 도와주는 방법이 못 됐습니다. 복음을 줘서 감사한 겁니다. 복음을 주려니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갚을 길 없는 큰 은혜가 임해 사도들처럼 큰 권능으로 부활을 증언해야 다른 사람도 큰 은혜를 받는 겁니다.'
THiNK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적용이 있나요? 가난을 훈련으로 주셔서 감사하다는 간증이 있나요?
4.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36절]통용은 코이노니아와 같은 말이라 했습니다. 이 코이노니아를 잘한 바나바를 하나님이 높이셨어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 레위족이라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 사두개인들이 다 레위족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지만 바나바 같은 사람도 있었다는 겁니다. 또 하나 특이한 건 레위 족속인데 땅이 있었다는 겁니다. 원래는 레위족이 땅을 가질 수 없었지만 포로기에는 율법이 다 사문화되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바나바가 레위인이었지만 땅을 모으는 데 법적 제약이 없었을 거라 합니다. 바나바가 원래 믿음이 출중했다기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바치려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내 것이라 끼고 있다가 성령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은혜가 임해 레위의 특권을 내려놓고 은혜를 받은 겁니다. 그것만으로 택자라 생각합니다. 목사들이 평신도에게 은혜받기 어렵잖아요. 레위로서 밭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렸습니다. 때가 되어 필요할 때 많은 사람이 모여 이때라 할 때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니 바칠 때라는 걸 알고 아낌없이 주련다 하며 적용한 거죠. 가지고에 해당하는 원어는 부정과거형입니다. 일회적으로 주저함 없이 한 번의 결단과 행위로 이뤄진 신앙의 실천이었어요. 땅 판 돈을 일 원도 안 떼먹고 그 값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교인들이 1만 9천 명의 걸인들을 부양했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데 그 당시 그렇게 자발적인 헌금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겁니다. 우리도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모여 늘 자발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이 부족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나바는 고향, 이름, 위로자라는 별명이 다 성경에 언급되는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합니다. 모두가 바울을 살인자라 할 때 바울을 소개한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레위족이었지만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위로자라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천국 가면 다윗보다 훌륭한 사람이 요나단이라고 하고 여호수아보다 훌륭한 갈렙이 있었는데 사도 바울보다 훌륭하다 여겨지는 바나바가 있습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기가 참 어려운데 사도들의 복음을 신뢰해 판 값을 발 앞에 뒀습니다. 사도들의 눈앞에 두지 않고 발 앞에 뒀습니다. 하나님 앞에 둔 거죠. 초대교회는 자기 이름을 내주지 않아도 모두 사도들을 믿고 사도들의 눈도 안 마주치고 발아래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만큼 공급됐습니다. 헌금이 많다고 해서 한 사람한테 많이 주고 그런 게 아닙니다. 정확하게 어김없이 필요한 만큼 반복적으로 구제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누가 한꺼번에 헌금 딱 하고 산에 들어가면 믿음이 좋아 보이지만 때마다 나눠주는 게 힘든 일입니다. 사도들이 이걸 잘 했습니다. 맨 처음에 예수님 믿으면 내 맘대로 나눠주다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나눠주는 것도 성숙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나눠줘야 하는 거죠. 우리들교회 목자들은 말씀으로 훈련받아 누굴 도와야할지 어떻게 도와야할지 분별을 잘 하십니다. 내가 직접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 백 프로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이 신앙고백이 없으면 자꾸 생색을 내려 하고 받는 사람도 믿음 없으면 받았다가 다 시험 들어 떠나는 겁니다. 내 맘대로 도와주는 건 아주 경계해야 합니다. 출애굽 했을 때도 광야에서 다들 가난했지만 성막을 지을 때 자원해서 가져온 성물이 넘쳤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너무 비축해서 솔로몬에게 넘겨줬는데 그때는 넘쳤다는 표현이 없어요. 우리가 잘 살고 못 살고는 돈 있고 없고에 달린 게 아닙니다. 성령 충만할 때 모든 것이 넘치는 인생이 됩니다. 서로 가난한 사람이 없고, 우리의 고난을 통용하고 내놓을 때 이것이 억만금을 내놓는 것보다 위로와 안식과 치유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고난을 날마다 오픈할 때 우리가 성경을 보니 오픈을 다 소화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니 저절로 아까운 게 없어지는 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자며 이렇게 왔어요. 나눠주려면 빚 안 지려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해요. 내가 빚 안 지는 게 남을 도와주는 비결입니다. 나부터 잘 살아야 해요. 그런데 이걸 문자적으로 땅을 팔아 내 발 앞에 가져오라 하면 그게 바로 공산주의고 이단입니다. 요즘 그렇게 원색적으로 돈 가져오라고 하거나 시급 주면서 성경공부 하러 오라고 합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다 팔아서 구제하고 산에 가면 믿음이 좋은 것일까요? 무조건 다 팔고 어디로 들어오라 하는 데 있으면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마가의 다락방이 있었기에 기도회도 했어요. 그 당시 수많은 가정을 내놓아 기도의 처소로 썼을 것입니다. 40평 살아도 평수 넓히는 것만 바라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소유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40평 사는 사람보다 20평 사는 사람이 부자인 거죠. 부자는 자기만 바라고 내 것만 바랍니다. 우리들교회도 예전에 고난 중에 있을 땐 한 평 방에서 목장 해도 너무 좋았는데 이제는 먹고 살 걱정하고 노후 걱정하면서 더 큰 집에 갈 생각을 한다는 분들이 자꾸 생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집이 너무 좋아서 너무 초라해서 오픈을 못합니다. 여전히 집을 물질로만 보면 가치관이 없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물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집에서 초대교회처럼 왕성하게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아직도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해 세상 가치관에 젖어 있는 거예요. 내 것이 하나님 소유이기에 함부로 어떤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요. 저희 집에서 큐티모임 하다 보니 30년 동안 일주일 내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드나드니 냉장고 하나 내 돈 주고 살려고 해도 누가 실족할까봐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병원 하면서 가난한 산모들을 많이 봤습니다. 아들 낳자마자 입원비 없어서 퇴원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 걸 8년쯤 보니 목회하면서 함부로 살 수 없게 하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누군가 실족할까봐 염려하는 것은 내 것이 다 하나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겠어요? 큐티 모임을 아무도 안 알아줘도 하나님 발 앞에 드렸습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30년 동안 13개 모임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교회 개척도 집에서 하게 하셨어요. 마가의 다락방 아닌가요? 아낌없이 집이 쓰임 받았습니다. 큐티하고 나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보이기 위해 적용하다가 몸에 익어 교회 개척 후에도 목회에 똑같이 적용하게 하십니다. 나는 잊어버린 그 적용 때문에 초대교회 같이 우리들교회를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다들 집을 열어 나누는 연습을 목장을 통해 하고 계시는 걸 감사합니다. 제가 30년 넘게 이렇게 해온 것처럼 여러분도 계속 목장에서 50년 넘게 나누어 자손 대대로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하나님 소유된 백성으로 성령의 은혜를 누리시고 축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THiNK헌금을 알아주길 원해서 합니까? 신앙고백으로 합니까?
[말씀 맺어요]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재물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큰 권능의 부활의 증언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니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게 재물을 내려놓는 마지막 성령의 은혜라 해요.
2019.11.03 목장예배
커피방아에서 김영아 목장과조인목장
기도제목
김영아
- 하는 적용들이 아빠의 구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잘 갚을 수 있도록
- 안 믿는 가족들의 구원
최혜지
- 양교할 때 제시간에 숙제 내서 발표할 수 있도록
신비손
- 대학원 시험공부 슬럼프가 왔는데 힘을 조금 빼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 큐티잘 할 수 있도록
유서연
- 공부할 수 있도록
- 알바 잘할 수 있도록
정우철
-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 유투브 그만 볼 수 있도록!
박영빈
- 이번 한주 힘을 빼고 말씀을 볼 수 있도록
이종률
- 회사에서 팀장이 계속 놀리고, 그것 때문에 늘 피곤한데 잘 죽어질 수 있도록
전성주
- 주식에 대해 잘 물으며 갈 수 있도록
- 어머니 재산으로 소송을 거는데 잘 해결되고 해석받을 수 있도록
원도연
- 목장의 기도제목들 잘 들어주실 수 있도록
- 함께 나오는 친구 재우가 잘 나올수 있도록
안재우
- 교회에 빨리 등록 할 수 있도록
전진혁
- 취업 스트레스가 심한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말고 주어진 것들 하나 하나 할 수 있도록